어떤 합리적인 선거 체계에서도 신뢰성은 일종의 논리적 필연이다. 책임성은 논리적 필연은 아니라 하더라도, 합리성에 대한 우리의 정의 속에 그 의미가 강하게 함축되어 있다. 물론,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고 해서, 우리 모형에 신뢰성과 책임성이 실제로 존재함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당들이 시종일관 신뢰성과 책임성 모두를 동기로 해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우리는 신뢰성과책임성이 우리 모형 안에서 기능하고 있음을 - 따라서 우리의 모형이 합리적임을 - 증명할 수 있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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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의 인민주권 정당론 클래식 1
E. E. 샤츠슈나이더 지음, 현재호.박수형 옮김 / 후마니타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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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론 연구의 함의 가운데 하나는 인민이 너무 무식해서 여론조사원이 묻는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고 답변할 수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는 실패작이라는 것이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모든 사람은 이런 해석에 저항해야 한다.(p214)...  그 누구도 정부를 운영할 만큼 충분히 많은 지식을 가질 수는 없기에, 무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문가조차도 어느 한 분야에 관해서는 전부를 알고자 하면서도 그 밖의 많은 것들에 대해서는 무지하기를 선택한 사람들일 뿐이다.(p217)... 문제는 1억8천만 명의 아리스토텔레스들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운영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1억8천만 명의 보통 사람들로 구성된 정치 공동체를 어떻게 조직해야 이 공동체가 보통 사람들의 요구에 응답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는 리더십, 조직, 대안 그리고 책임과 신뢰의 체계에 관한 문제이다._E.E. 샤츠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p218


 E. E. 샤츠슈나이더 (Elmer Eric Schattschneider, 1892 ~ 1971)의 <절반의 인민주권 The Semisovereign People>에서 (미국) 민주주의 실패의 원인을 진단한다. 샤츠슈나이더에 의하면 현대 민주주의의 실패는 민중의 무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조직에서 생겨난다. 과거보다 전문화된 현대사회에서 어느 누구도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BC 322)나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i ser Piero da Vinci, 1452 ~ 1519)와 같이 다방면에 걸쳐 전문성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불완전한 개인이 각자 자산의 분야를 가지고 생활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이들에게 고대 아테네 시민과 같은 참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실패의 원인을 돌리는 것이 과연 적절한 지적일까?  


 샤츠슈나이더는 이러한 물음에 대한 반론을 <절반의 인민주권>에서 펼친다. 여기에서 저자는 '갈등'에 주목하는데, 그에 따르면 '갈등'은 부정적인 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 사회에서 문제들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이에 따라 문제를 해결하도록 강제하는 촉진제이기에, 여러 형태의 '갈등'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매우 긍정적이고 당연한 현상이다. 문제는 이를 적절하게 조정하는 정치의 역할일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정치는 어떻게 갈등을 조정해야 하는가? 저자는 미국의 정치 제도인 민주주의와 경제 제도인 자본주의를 통해 정치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정치의 핵심은 대중이 갈등의 확산에 참여하는 방식 및 대중과 갈등 간의 유동적인 관계를 관리하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_E.E. 샤츠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p44


 현대사회라면 어디에서나 무수히 많은 갈등이 잠재되어 있지만, 오직 몇몇 갈등만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갈등의 수를 줄이는 일은 정치가 수행하는 핵심적인 기능이다. 정치는 갈등들 간의 지배와 종속을 다룬다. 민주주의 사회가 존속할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잠재된 갈등들에 대해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갈등은 매우 강력한 정치적 도구이기 때문에 모든 정치체제는 필연적으로 그것을 관리하고, 그것을 통해 통치하며, 그것을 변화, 성장, 통합의 도구로서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데 관심을 갖는다. 정치의 근본 전략은 갈등과 관련된 공공정책을 다루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정책이다._E.E. 샤츠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p121


 샤츠슈나이더는 <절반의 인민주권>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지향하는 두 제도가 양립하기 위해서는 두 제도 사이의 긴장과 균형이 필요하며, 이러한 견제와 균형 속에서 대중에 의한 지배는 올바르게 자리잡을 수 있음을 말한다. 과거 서양의 역사 속에서 '로마'와 '카르타고'라는 두 강대국이 첨예한 대립을 했을 때, 북아프리카의 누미디아 왕국, 서유럽의 갈리아 지역, 지중해 연안의 마케도니아 왕국 등은 자치권과 독립을 누릴 수 있었지만, 이후 카르타고의 멸망 이후 급속하게 로마의 제국 아래 흡수되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다.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로 표현되는 정치권력과 자본주의로 표현되는 경제권력의 견제와 균형이 만들어 내는 여러 대안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대중에게 전달되고 이를 주권자들이 선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대의제 민주주의가 안착할 수 있음을 저자는 말한다.


 미국 사회의 기반이 되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조합은 긴장을 전제로 한다. 이런 긴장은 정치체제와 경제체제라는 두 권력 체계의 권력이 매우 다른 원리를 통해 조직된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증폭된다. 정치체제는 대체로 평등주의적이며,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수 數이다. 정치체제의 법과 전통에서 강조되는 바는 그 운영 과정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경제 체제는 배타적이다. 그것은 높은 수준의 불평등을 조장하고 권력의 집중화를 장려한다. 게다가 기업의 공적 책임이 제한적이라는 가정은 기업 활동의 자유와 같은 강한 독단적 교리를 통해 뒷받침되고 있다. 두 권력 체계의 편향성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_E.E. 샤츠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p194


  많은 경우에 현 체제를 위협하는 외부 세력(불온한 공산주의자, 외계인 등등)에 대항하기 위해 '갈등'을 없어져야 할 요소로 규정하고, 현재 민주주의의 실패 원인을 대중의 무관심/무지로 돌리는 일반적인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이 갖는 위험성은 '대중은 개/돼지와 같기 때문에, 이들이 자기 눈높이 만큼의 정치인과 정치수준을 갖는다'라는 명제를 합리화시킨다는 데 있다. 이에 대해, 샤츠슈나이더는 <절반의 인민주권>에서 명쾌하게 반박한다.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민주주의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잘못된 작동 방식이 가져온 '실패'는 작동 방식의 변경으로 고칠 수 있다는 것이 샤츠슈나이더의 분석이며, 이는 '갈등'의 적절한 조직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그가 제시한 해결방안이고, 책 전반을 규정하는 큰 흐름이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많은 경우 우리들은 '우리 내부'로부터 문제의 원인을 찾아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 번도 외부에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스스로 끌어안고 좌절해온 것은 아니었을까. 샤츠슈나이더의 <절반의 인민주권>이 정치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것은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새로운 분석 때문이라는 생각으로 리뷰를 정리한다...


 대중은 경쟁적인 권력 체계를 좋아한다. 대중은 민주주의와 높은 수준의 삶의 질 둘 다를 원하며, 체제 내 민주적 요소와 자본주의적 요소 사이의 역동적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면 이들 모두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중은 자본주의를 규제할 만큼 충분히 강력한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면, 기꺼이 자본주의 체제와 함꼐 살아가고자 노력할 것이다._E.E. 샤츠슈나이더, <절반의 인민주권>, p198


어떤 민주주의 체제에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인민의 주권을 이용 내지 활용하는 방식, 즉 대중이 결정하거나 지시할 만한 사안으로서 어떤 문제들을 어떻게 그들에게 제시할 것이며, 대안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그리고 대중의 한계를 어떤 방식으로 고려할 것인가에 있다. 좋은 민주주의 체제는 대중에게 불가능한 것을 하도록 요구하는 상황으로부터 대중을 보호한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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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의 대체는 갈등의 범위 또한 변화시킨다. 새로운  방향의  갈등이 부상함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사람들이  싸움에 가담하는 반면, 이전의 갈등에 참여했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새로운 이슈에 대해 별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갈등의 대체 혹은 치환, 즉 새로운 갈등을 불러들여 기존 갈등을 대체하는 것은 정치 전략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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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1947」에서는 독도의 영유권과 관련하여 역사적 영유권을 주장하는 한국과 국제법상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의 대립이 1951년 샌프란시스코 회담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미국은 샌프란시스코 회담을 통해 일본령임을 넌지시 암시하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공개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인해 독도 문제는 한•미•일의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 책의 주된 요지다.

이러한 1951년의 모호한 미 행정부의 입장은 2018년 평창 올림픽 당시 독도를 한반도 영토에서 빼도록 요구했지만,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독도의 일본 영토 표시에 대해 침묵하는 IOC의 행태와 묘하게 닮아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시감을 느낀 김에 미뤄두었던 「독도 1947」리뷰를 시작한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회담의 진행과정에서 일본의 영토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결정할 권리는 미국에 있었고, 미 행정부는 자신들이 독도문제와 관련해 내린 결정이 한일관계에 어떤 파급력을 지닐지 잘 알지 못했다(p951)... 외형적으로 독도를 둘러싼 한일갈등은 1952년 일본이 한국의 평화선 선포에 강력히 반발하며 독도가 일본령임을 주장하면서 폭발했다. 한국전쟁의 와중에 미국의 가장 중요한 극동의 동맹국들이 적전 충돌을 불사하자 미국은 중재를 생각하기도 했다. 표면에서는 한일 간에 독도논쟁이 격렬하게 전개되었지만, 그 이면에서 미 국무부는 러스크 서한을 공개하겠다고 한국정부를 억제하는 한편, 일본정부가 러스크 서한에 명시된 독도의 일본 영유권 확인사실을 알까봐 전전긍긍해하며 국제사법재판소행을 권유했다.
- P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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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6-04 10: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도 진짜 묵직하네요. 단순히 샌프란시스코 조약이 애매한 논쟁지점을 많이 만들었다고만 생각했는데 궁금하지만 너무 두꺼워서 엄두가 안나요. 앞으로 겨울호랑이님 리뷰를 열심히 보는걸로..... ^^;;

겨울호랑이 2021-06-04 11:53   좋아요 0 | URL
저자도 서문에 ‘단행본 3권‘ 분량이라고 하고, 책이 950페이지 분량이라 적지 않지만, 많은 부분이 외교 문서에 할당되어 막상 읽으면 나름 읽히는 책이었습니다. 내용을 잘 정리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페크pek0501 2021-06-04 14: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도 표기에 대한 것, 뉴스에서 봤어요.
참 못말리는 일본이올시다. 틀린 걸 가지고 참 끈질겨요.

겨울호랑이 2021-06-04 14:41   좋아요 2 | URL
저도 뉴스에서 보면서 치졸한 행태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습니다. 그렇게 되뇌이다보면 스스로는 정신승리를 할 수 있겠고, 운이 좋아 상대가 실수하는 요행을 바라는 듯 합니다...
 

프랑스 혁명의 중심성은 세계경제의 헤게모니에 대한 프랑스와 영국 간 투쟁의 중심성의 한 결과이다. 프랑스 혁명은 이 투쟁에서 프랑스의 임박한 패배감에 뒤이어 그리고 그것의 한 결과로 일어났다. 그리고 프랑스 혁명은 헤게모니 투쟁에서 패배했던 바로 그 나라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그것이 미쳤던 바와 같은 영향을 세계체제에 미쳤다. 많은 사람들이 영국의 승리의 물결을 뒤집어엎으리라고 기대했던 프랑스 혁명은 반대로 지속적인 영국의 승리를 확인시켜주는 데에 결정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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