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전집 1 - 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파이돈 / 향연, 2017년 개정판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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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톤>은 사형 선고 이틀 전 친구 크리톤과 소크라테스간 이루어진 대화다. 

 

먼저,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에게 탈옥을 권유한다. 소크라테스가 크리톤의 입장과 평판, 경제적 부담, 탈출 후 처신, 자기 자식들의 교육 문제 등 여러 면에서 걱정하겠지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득한다.

 

 '자네와 내가 당할 불행이 한 가지가 아닐세. 나는 두 번 다시는 구하지 못할 친구를 잃을 뿐 아니라, 자네와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돈을 썼더라면 자네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테니 말일세.'(44c)

 '자네를 구출해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겠다는 사람들에게는 큰돈을 주지 않아도 되니까.... 또한 자네가 아테나이를 떠나면 어떻게 처신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한 자네의 법정 진술에도 신경 쓰지 말게..... 또한 소크라테스, 자네는 구출될 수 있는데도 자포자기하려고 하는데, 나는 자네의 그런 행위가 옳다고 생각하지 않네.... 게다가 내가 보기에, 자네가 하는 짓은 자네 아들들을 배신하는 행위인 거 같네. 자네 아들들을 양육하고 교육시킬 능력이 있는데도 자네가 그 애들을 버리고 그 애들 곁을 떠나니 말일세.'(45d)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전문가의 권위가 대중의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모든 사람의 의견을 존중할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의 의견들은 존중하되 다른 사람들의 의견들은 존중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옳은 말이라고 생각되지 않나?'(47a)
'체력 단련을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칭찬이나 비난이나 의견에 신경 써야 하는가, 아니면 단 한 사람, 즉 의사나 트레이너의 칭찬과 비난과 의견에 신경 써야 하는가?'(47b)

 

이이서, 소크라테스는 '국법'과 '국가'를 의인화시켜 소크라테스의 도주가 불의하다며 비난하는 내용으로 크리톤을 논박한다.

 

'불의한 짓을 저지르는 것도, 불의한 짓을 앙갚음하는 것도, 해를 입은 사람이 앙갚음으로 자기를 지키는 것도 결코 옳지 못하다는 전제를 우리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겠는지 말일세.... 어떤 사람이 누구에게 정당한 것을 약속했을 때 그것을 이행해야 하는가, 아니면 약속을 어겨도 좋은가?'(49e)
'우리가 이곳에서 도주할 채비를 하고 있을 때 국법과 국가 공동체가 다가와 우리를 막아서며 다음과 같이 묻는다고 가정해보세. "소크라테스, 이런 일을 기도함으로써 그대는 우리둘을, 즉 국법과 국가 전체를 파괴할 작정인가?"'(50a)
'그대는 시민으로서의 모든 활동에서 우리들 국법을 준수하기로 합의해놓고 계약조건과 합의사항을 어기고 도주하려고 기도하는데, 그것은 가장 천한 노예나 할법한 짓이라네.'(52d)
 
이렇게 해서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소크라테스의 말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대중의 의견보다 권위있는 전문가 한 사람이 더 옳다면 그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47b)면 소크라테스에게 사형을 선고한 대중(아테나이 배심원들)보다, 전문가(양심에 따라 행동한 소크라테스)의 말에 따라 판결에 불복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적어도,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을테니까.)

 그리고, 여태까지 국가나 국법이 옳다고 하더라도, 특정사안에 있어서는 옳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여태까지 다른 내용에 대해 불만없이 합의했기 때문에, 불의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에 대해서도 불만없이 따라가야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것은 다분히 개인보다 국가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전체주의'적인 시각이라 생각된다.

 

 <크리톤>은 짧은 대화편이다. 그렇지만, 그 안에는 플라톤의 '엘리트주의(대중보다 전문가의견 중요)'와 '전체주의(국가 공동체 중시)'가 아주 잘 나타난 대화편이라 생각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크리톤>의 논리 전개로 볼때, 플라톤에게 있어 '엘리트 주의'는 '전체주의'를 위한 기본 조건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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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깨비 2016-06-30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채링 크로스 84번지를 읽고 플라톤을 한번 읽어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리뷰쓰신 것 보니까 역시 어렵네요. 대화 한마디 한마디를 고민해보며 읽으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어요. 그래도 언제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요. ㅎㅎ

겨울호랑이 2016-06-30 10:56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북깨비님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 도움이 될까 해서 적어봅니다. 저도 처음에는 머리에 하나도 안들어왔는데 러셀의 「서양철학사」로 줄기를 잡고 다시 읽으니 조금 낫네요. 한번 고려해 보셔도 좋지 않을까 싶네요 제 코가 석자라 좀 부끄럽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syo 2016-06-30 1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러셀의 서양철학사가 더 어려웠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6-06-30 11:12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syo님 감사합니다. 사실은 저도......ㅋㅋ 지금도 플라톤을 보며 내 머리는 돌인가보다고 절망하고 지내요. 그래도 아마 몇 번 들여다보니 돌에 글이 새겨져 비석이 되듯이 좀 나아진것 같네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플라톤전집 1 - 소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파이돈 / 향연, 2017년 개정판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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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스스로를 변론한 글. 작품에서 소크라테스는 멜레토스, 아뉘토스, 뤼콘으로부터 고발을 당한다. 첫번 째 고발내용은 다음과 같이, `자연철학`에 관심이 있으며, 이를 가르친다는 고발이다.

`소크라테스는 주제넘게도 지하에 있는 것들과 하늘에 있는 것들을 탐구하고 사론을 정론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침으로써 불법을 저지르고 있습니다.`(19b)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자연`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으로 자신을 변론한다.

`그런 종류의 지식을 폄하하려고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테나이인 여러분, 그런 주제들은 실제로 내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19d)`
`아테나이인 여러분, 내가 이런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어떤 지혜 때문입니다. 그게 어떤 지혜냐고요? 그것은 아마도 인간적인 지혜일 것입니다.`(20d)

동시에, 소크라테스 자신이 생각하는 소크라테스가 미움을 받는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한다.

`나는 그와 대화해보고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특히 그 자신에게 지혜로워 보이지만 사실은 지혜로운 것이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21c)
`나는 분명 저 사람보다는 더 지혜로워. 우리 둘 다 남에게 자랑할 만한 것을 아무것도 모른다 해도, 그는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반면 나는 모르면 모른다고 생각하니까.`(21d)

두번 째 고발 내용은 다음과 같이 새로운 신을 섬긴다는 내용의 고발이다.

`소크라테스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국가가 인정하는 신들을 인정하는 대신 다른 새로운 신들을 믿음으로써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24b)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행하는 일은 델포이 신탁에 의한 것이며(21a), 자신은 신의 뜻에 따라 이 일을 행단다고 말한다.`(30e)

`내가 미움을 산다는 것을 알고 슬프고 두렵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신에 관한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21e)
`신만이 진정한 현자이며, 신께서는 그 신탁을 통해 인간의 지혜란 별로 또는 전혀 가치가 없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23a)
`내가 하는 일이래야 돌아다니며 노소를 막론하고 여러분의 몸과 재산이 아니라, 여러분 혼의 최선의 상태에 관심을 쏟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도록 여러분을 설득하는 것이 전부이니까요.`(30b)

사형 선고를 받은 후에는 `죽음`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말하면서 이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변론을 마친다.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지혜롭지도 않으면서 스스로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것이외에 아무것도 아닙니다. 죽음이 인간에게 사실은 최대의 축복이 아닌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29a)
`죽음은 둘 중 하나입니다. 죽음은 일종의 소멸이어서 죽은 자는 아무것도 지각하지 못하거나, 아니면 사람들이 말하듯 죽음은 일종의 변화이고 혼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이주하는 것입니다.`(40c)

소크라테스의 생애는 여러가지 면에서 예수와 비교된다.
혼란한 시대 속에 새로운 사상을 제시하다가, 반대자들에 의해 죽음을 당했지만, 후대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점에 주목한 학자들에 의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학자들의 주장에 공감하면서도, 소크라테스를 굳이 비교한다면 예수보다 `세례자 요한`과 비교하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등에의 자극이 필요한 말에게 배정되듯, 신에 의해 이 도시에 배정된 것입니다.`(30e)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복음 1:27)`

예수를 `로고스`로 규정한 <요한 복음>저자의 시각과, 자신을 `신`이 아닌 `등에`로 비유한 소크라테스의 말을 함께 본다면 `세례자 요한`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하는 짧은 생각이 든다.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장은 개인적으로 마지막 문장이다.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어느 쪽이 더 나은 운명을 향해 가는지는, 신 말고는 아무도 모릅니다.`(42a)

소크라테스는 이 말처럼 선고를 받고 한 달 후에 독배를 마시고 죽는다. 반면, 많은 아테나이인들은 그보다 더 오래 살았을 것이지만, 소크라테스는 그가 말한 대로 `불멸의 영혼`이 되어 우리에게 인식되는 반면, 많은 아테나이인들은 잊혀지고 말았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으로서 <파이드로스>에서 언급한 `혼의 불멸성`과 `에로스`의 의미를 입증하게 된다.(이 부분은 예수와 연관성이 있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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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6-30 17: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은 플라톤의 모든 책들을 독파하실 것 같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6-06-30 17:1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cyrus님 아이구 아닙니다...읽기는 하는데 제것이 되어야 말이지요... 그저 한 번 익숙해지겠다는 생각으로 보고 있어요..ㅜㅜ 감사합니다^^
 
노년에 관하여 우정에 관하여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M.T. 키케로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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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관하여>


 '노년'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자연스럽게 부모님이 연상된다.

 인생 80으로 가정하면, 이제 나도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짧은 세대'에 속하다 보니,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그분들을 이제는 어느정도 이해하게 된다. 내가 딸에게 느꼈던 감정을, '나와 동갑이었던' 아버지도 '어린 내'게서 느꼈으리라. 주어진 상황을 다를지라도, 공통된 그 무엇인가를 참 많이 느끼는 요즘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모님 세대'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생각하게 된다.


 흔히들 '세대간' 갈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최근 Brexit(영국의 EU탈퇴)도 세대간 갈등에서 빚어졌다는 분석도 있는 것을 보면, 이미 세계적 현상인 것 같다. '저출산-고령화' 속에서 증가하는 복지부담과 청년실업 문제는 '보수화된 50~60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은퇴를 하지 못하고 비정규직으로 삶을 영위해야하는 노년층들은 노년층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것이 우리나라 세대간 갈등의 현주소라 생각된다.  


  세계적인 경제불황 속에서 다 공감되는 이야기지만, 우리가 알고 있지만, 평소 잊고 지내는 사실이 있다.


 우리가 비판하는 세대는 빠르게는 일제강점하에서 희망없이 지냈으며, 해방 후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한국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었던 세대다. 그리고, 가난을 후세대에 물려주기 싫어서 60년대, 70년대를 악착같이 살아온 세대다. 그들은 독일에서 광부, 간호사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건설노동자로, 베트남에서는 군인으로, 국내에서는 산업노동자로 70년대 '한강의 기적'이라는 산업화를 이루어낸 세대다.

 그리고, 이들이 30년 전 시민 항쟁을 통해 이 땅에 '민주화'를 가져온 세대다.


 그럼에도, 이들은 지금 어떤 대우를 받고 있는가.

 2012년 OECD 통계에 따르면, 65세 이상 연금수급자의 소득은 평균소득 대비 60.1%로, OECD 최하위다.(OECD 평균 86.8%) 또한, 2012년 가계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한 연금수급자 65세 이상 빈곤율은 49.6%로 OECD 1위다.(OECD 12.4%).


 이러한 어려운 경제적 현실 때문에 우리나라의 노년층들은 더 이상 빼앗기면 안된다는 심정으로 말 그대로, 보수(保守)화 된 것은 아닐까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노년에 관한 네 가지 불평


1. 노년에는 큰 일을 할 수 없다.

2. 노년에는 몸이 쇠약해진다.

3. 노년은 거의 모든 쾌락을 앗아간다.

4. 노년이 되면 죽을 날이 멀지 않았다.


 작품에서 마르쿠스 카토의 목소리로 말하는 키케로는 노년에 관한 네 가지 불평에 대해 반론을 한다. 그렇지만, 우리의 현실에서 노년층들에게 이러한 대(大)카토의 반론이 얼마나 와 닿을 것인지...... 


'젊은 선원들이 하는 일은 하지 않지만, 키잡이가 하는 일은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네. 큰일은 체력이나 민첩성이나 신체의 기민성이 아니라, 계획과 명망과 판단력에 의하여 이루어 진다네.'(17)


'한창 때의 젊은이들은 경솔하기 마련이고, 분별력은 늙어가면서 생기는 법이라네.'(20)


 우리의 부모님 세대가 '우리 시대의 원로'로서 대접받고, '아름다운 노년'을 맞이하고 보낼 수 있는 변화가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우정에 관하여>


'우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윗사람이 아랫사람과 동등해지는 것이네.'(69)


'가까운 친구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윗사람이 아랫사람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듯이, 아랫사람은 윗사람이 재능과 재산과 지위에서 자기를 능가한다고 해서 괴로워해서는 안 되네. 그러나 대부분의 아랫사람은 노상 불평하고 비난한다네.'(71)


'따라서, 우정에서 윗사람은 자신을 친구의 수준으로 낮춰야 할 뿐만 아니라 아랫사람인 친구를 어떻게든 자기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네.'(72)


 내 주변에 '깊이 있는 우정을 나눈' 친구가 그렇게 많지 않다.

 그것은 아마, 내가 마음을 많이 나누지 못해서인듯 하다. 여러가지 내 상황과 주변 여건에 따라 또는 연령, 성, 학력 등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도 벽을 세우고 마음을 열지 못했던 것 같다. 


 키케로는 이 글에서 진정한 우정을 위해서는 같은 위치에 설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진정한 우정이 너의 마음에 들어올 수 있도록 너의 마음을 열었는지 키케로가 물어보는 듯하다. 대답하기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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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6-29 16: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앞으로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가까이 있는 사람마저 믿지 못하게 될 것 같습니다. 깊이 있는 우정을 나누고 싶은 순수한 마음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겨울호랑이 2016-06-29 16:50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cyrus님 진정한 사랑이나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거 같네요. 교감하지는 못해도 먼저 저부터 마음을 비워보려고 해요. 그러다보면 `지기`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올리신 글 읽었습니다. 답답하시겠지만 힘내시고 건승하시길 바랍니다

yureka01 2016-06-30 00: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금의 노년들은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에 공부해본적이 없었습니다.앞으로 늙음에 대한 미학을 배울 세대가 우리들 세대가 아닐까 싶어요..부모세대는 그러지를 못했죠...

겨울호랑이 2016-06-30 04:05   좋아요 2 | URL
안녕하세요? yureka01님 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노인의 빈곤과 복지문제가 더 안타깝네요......
 
뤼시스 / 라케스 / 카르미데스 - 초기 대화편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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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 : 친구 사이의 정
용기 : 씩씩하고 굳센 기운. 또는 사물을 겁내지 아니하는 기개
절제 : 정도에 넘지 아니하도록 알맞게 조절하여 제한함

<뤼시스>는 소크라테스와 메넥세소스, 뤼시스 간에 `우정`을 가지고 논한 대화편이다.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쓸모가 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누군가를) 필요로 하며, 친구가 되고, 사랑하게 된다고 논의를 시작한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그분들은 자네가 행복해지는 것을, 그리고 자네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을 그토록 완강하게 막으시는가?`(209e)
`우리가 더 잘 아는 분야들은, 헬라스인들이든 비헬레스인들이든 남자든 여자든 모두 우리에게 맡길 걸세.`(201b)

다음으로,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는 경우에 대해 물음을 제기한 후, `훌륭함과 나쁨`, `훌륭함과 훌륭함`, `나쁨과 나쁨`이 친구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닮은 것들은 친구가 될 수 없으며, 상반된 것도 친구가 될 수 없음을 밝힌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 쓸모없는 분야들에서 우리가 누군가의 친구가 되고, 누군가가 우리를 사랑하게 될까?(210c)`
`서로 가장 닮은 것들은 서로에 대해 시샘과 경쟁심과 적대감으로 가득 차고, 서로 가장 닮지 않은 것들은 우정으로 가득찰 수 밖에 없다.`(215d)
`올바른 것이 불의한 것의 친구이고, 절제 있는 것이 방종한 것의 친구이며, 훌륭한 것이 나쁜 것의 친구인가?`(216b)

결국, 소크라테스는 1차적으로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이 아름답고 훌륭한 것의 친구(216d)`라는 가정을 세운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우리는 신이든 인간이든 이미 지혜로운 이들은 더는 지혜를 사랑하지 않으며, 무지해서 나쁜 자들도 지혜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네....따라서, 지혜를 사랑하는 것은 아직은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사람들일세.(218b)`

그러나, 이러한 1차 결론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벽에 부딪힌다. `친구`라는 목적은 `욕구의 필요`라는 수단에 의해 존재하기 때문에, 결국 `우리에게 친근한 것`이 우리의 친구라는 논의로 돌아가게 된다. 이러한 결론은 최초의 논의(서로 닮은 것은 친구가 될 수 없다)에 모순되므로, 결국 정의에 실패한다.

`나쁘지도 훌륭하지도 않은 것이 훌륭한 것의 친구인 까닭은 나쁘고 가증스러운 것 때문이며, 훌륭하고 친한 것을 위해서일세.`(219b)
`훌륭한 것은 병이라는 나쁜 것을 고치는 약과 같다네. 그러나 병이 없다면 약도 필요 없을 걸세. 훌륭한 것은 본성이 그러하기에 나쁜 것 때문에 나쁜 것과 좋은 것의 중간에 있는 우리에게 사랑받지만 그 자체로는 아무 쓸모없는 것 아닌가?`(220d)
`욕구가 우정의 원인이고, 욕구를 느끼는 사람이 욕구를 느끼는 동안에는 자기가 욕구하는 것의 친구일세.`(221d)
`욕구하는 것은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욕구하네, 그리고 필요한 것은 그것이 필요한 사람의 친구겠지? 그렇다면 메넥세소스와 뤼시스, 연정과 우정과 욕구의 대상은 우리와 친근한 것인 듯하네.`(221e)
`우리가 훌륭한 것과 친근한 것은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훌륭한 것들끼리만 친구가 될 수밖에 없겠지?(222d)`

<라케스>

<라케스>는 용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소크라테스와 라케스, 니키아스 간에 이루어진 대화편이다.

`중무장하고 싸우는 법`이 젊은이들 교육에 유익한가`하는 질문(181c)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배워두면 젊은이들의 혼에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것(185a)`으로 논점을 세분화한다. 이후 `미덕`의 부분인 `용기`로 한정하여 논의를 시작한다.

`어떻게 하면 자기 아들들의 혼에 미덕이 덧붙여져 아들들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겠는지 조언해달라고 우리에게 부탁하는 것 아닌가요?`(190b)
`처음부터 곧장 미덕 전체를 고찰할 것이 아니라 먼저 우리가 미덕의 한 부분-용기-을 충분히 알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해요.`(190d)

라케스의 용기
라케스는 용기를 혼의 인내라 정의하지만, 소크라테스의 `어리석은`인내에 대한 반론으로 논파당한다.

`나는 용기가 일종의 혼의 인내라 생각하오.`(192c)
`그대의 논리에 따르면 지혜로운 인내만이 용기군요.`(192d)
`폐렴을 앓는 아들이나 다른 환자가 먹을 것이나 마실 것을 달라고 간청하는데도 청을 들어주지 않고 인내력을 발휘하며 거절한다면 어떨까요?`(193a)

니키아스의 용기
니키아스는 용기는 지혜라는 정의를 내리지만, 소크라테스에 의해 반박된다.

`나는 그대가 우리는 저마다 자기가 아는 일에는 훌륭하고 자기가 모르는 일에는 나쁘다고 말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어요. 그러니 용감한 사람이 훌륭하다면, 그는 분명 지혜로울 것이오.`(194d)
`이분은 용기가 일종의 지식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194d)
`토론을 처음 시작했을 때 우리는 용기를 미덕의 일부로 간주했어요. 나는 용기에 더하여 절제와 정의 등등도 미덕의 부분이라고 부른다오.`(198b)
`그대의 주장대로라면 용기는 무엇이 두려움에 떨게하고 무엇이 자신감을 불러넣는지 아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사실상 현재와 과거와 미래의 모든 좋은 일과 나쁜 일에 관한 지식인 것 같아요.`(199c)
`지금 그대가 말씀하시는 것은 미덕의 일부가 아니라 미덕 전체입니다.(199e).`

결국 이와 같이 `용기`에 대해서도 별다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대화는 끝나게 된다.

<카르미데스>는 카르미데스, 크리티아스와 소크라테스가 `절제`에 대해 대화하는 작품이다.
크리티아스는 두통있는 카르미데스를 소크라테스에게 소개한다. 소크라테스는 `혼을 치유하지 않고 몸을 치유하지 않으면 안된다(156e)`, `일단 혼에 절제가 생겨나 자리 잡으면 머리와 몸의 다른 부분을 치유하기는 쉽다(157a)`면서 `절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카르미데스의 절제
카르미데스는 절제를 차분함으로 정의하지만, 소크라테스에게 논박당한다.

`선생님께서 물어보시는 것은 한마디로 일종의 차분함인 것 같아요.`(159b)
`그렇다면 카르미데스, 혼에 관련되든 몸에 관련되든 인간의 모든 활동에서는 빠름과 활력이 느림과 차분함보다 더 아름다운 것 같네. 그렇다면, 절제는 일종의 차분함일 수 없고 절제 있는 삶은 차분한 삶일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네.`(160c)

크리티아스의 절제
카르미데스는 절제를 다시 정의하지만, 사실 크리티아스의 정의를 옮긴 것에 불과하기에, 논박당한 후에는 크리티아스가 논의를 이어받는다. `제 할일을 하는 것`이라는 크리티아스의 주장은 `알지도 못하고 행한다`는 소크라테스의 말로 논박된다.

`나는 전에 절제는 제 할 일을 하는 것이라고 누가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어요.`(161b)
`만약, 남의 것들에 손대지 않고 저마다 제 것을 제작하고 제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각자 제 외투를 짜고 세탁하고 제 구두와 기름병과 때밀이 기구 따위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의 규정이 있다면, 자네 생각에 국가가 잘 경영될 것 같은가? 절제는 제 할 일을 하는 것이 아닐세.`(162a)
`내 주장은 좋은 것을 아니라 나쁜 것을 만드는 사람은 절제 있는 사람이 아니고,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만드는 사람은 절제 있는 사람이라는 거에요.`(163e)
`그렇다면 의사는 자기가 유익한 짓을 하는지 해로운 짓을 하는지 모르고 무엇인가를 할 때도 있겠구먼.`(164c)

크리티아스 절제 수정
크리티아스는 이번에는 절제는 `지식`이라면서 다시 정의를 내린다. 이 정의에 따라 절제에 대해 논의하지만, 결국 `절제`가 어떤 유용함이 있는지에 대해서 결론 내리는데는 실패한다.

`차라리 나는 내가 동의한 것 가운데 일부를 취소하고 내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을 거에요. 사실 나는 자신을 아는 것이 절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며, 그 점에서 나는 델포이에 `너 자신을 알라!`는 비명을 봉헌한 사람에게 동조해요.`(164c)
`절제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라면, 그것은 분명 일종의 지식이며 무엇인가에 관한 지식일세.`(165c)
`다른 지식은 모두 다른 것에 관한 지식이고 그 자체에 관한 지식이 아니지만, 절제만은 다른 지식들에 관한 지식이자 그 자체에 관한 지식이기 때문이에요.`(166c)
`크리티아스, 만약 절제가 그런 것이라면, 우리는 절제에서 대체 무슨 덕을 보게 될까?(172d)`
`설사 우리가 모든 지식을 다 가지고 있다 해도 우리를 잘나가고 행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지식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좋음과 나쁨에 관한 이 한가지 지식을 가져야 하는 것`(174c)
`내가 제대로 검토했다면, 우리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인정한 것이 우리에게 쓸모없는 것으로 드러나지 않았을테니까.`(175a)

<뤼시스>, <라케스>,<카르미데스>에서는 `우정`과 `용기`, `절제`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모두 뚜렷한 정의에 이르지 못하고 결론이 내려지고 만다. 이 중에서 `절제`는 피지배계급에게, `용기`는 수호자 계급에게 필요한 것으로 <국가>에서 논의된다. 그럼에도, 초기 대화편에서 이에 대한 정의가 제대로 내려지지 못한 채 <국가>에서 `4주덕`의 형태로 나타난 것은 논의의 비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거의 같은 시기에 살았던 소크라테스(BC 469 ~ BC 399)와 공자(BC 551 ~ BC 479)가 만났다면, 어땠을까하는 상상을 해본다.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대화편을 통해, 공자는 <논어(論語)>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樊遲問仁 子曰 愛人
(번지가 인에 대해서 묻자, 공자께서 대답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顔淵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안연이 인에 대해서 묻자, 공자께서 대답했다. ˝자신을 극복하여 禮(예)로 돌아가는 것이 仁(인)이다.˝)

아마, 소크라테스는 때에 따라 다른 정의를 하는 공자를 `인간이 만물의 척도`라고 주장하는 프로타고라스처럼 생각하고, 소피스트 취급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 공자도 돈을 받고 가르쳤으니(풍우란, <중국철학사>中), 소피스트라 해도 할 말은 없었을 것 같다.) 반면, 공자는 소크라테스를 몸은 튼튼하지만, 폭넓게 생각하지 못한다면서 자로(子路)수준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만약, 이 두 사람이 어떤 주제에 대해 대화를 한다면, `정의`만 하려고 본질을 파고들려는 `소크라테스`와 `상황에 맞게 설명을 하려는 `공자`는 동문서답을 하다 논의가 끝나지 않았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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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드로스/메논
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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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드로스>는 소크라테스와 파이드로스간 대화이며, Eros(에로스)와 수사학에 대해 논의한다.

1. 사랑에 대한 정의
"비이성적인 욕구가 올바른 것을 지향하는 판단력보다 우위에 선 다음 아름다움의 쾌락 쪽으로 이끌리다가 자신과 친족관계에 있는 다른 욕구들에서 육신의 아름다움을 추구할 새로운 힘을 얻어 모든 것을 정복한다면, 그런 욕구는 바로 이 힘에서 이름을 얻어 에로스라고 불린다는 말일세"(238c)

2. 에로스의 부정적인 면 : 연인의 피해
소크라테스는 에로스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먼저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에로스는 성인남자와 소년과의 동성애적 사랑을 의미하지만,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피해는 동성애만 아니라, 이성연인으로 확대해 보더라도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상대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불러오는 폐해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다름이 아닌 것 같다.

연인의 피해

"그런데 마음이 병든 사람은 자기에게 반항하지 않는 것은 좋아하지만, 자기보다 더 강하거나 자기와 대등한 것은 미워하게 마련이네. 그러니 연인은 할 수만 있다면 연동이 자기보다 더 강해지거나 자기와 대등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언제나 연동이 더 약해지고 더 열등해지게 만들 것이네."(239a)
"연동이 연인에게는 최대의 쾌락을 제공하되 스스로는 가장 큰 피해를 입도록 말일세. 그러니 정신적인 측면에서 연인은 결코 유익한 수호자가 아닐세."(239c)

3. 에로스의 긍정적인 면
논의 중 소크라테스는 에로스에 대해 긍정적인 측면의 접근을 한다.
'에로스'는 '상기'를 통해 몸에 갇힌 혼에 날개를 달아주어 진리(실재 Idea)로 가게 해 준다는 것이다.

혼의 불멸성
"모든 혼은 불멸하네. 항상 움직이는 것은 사멸하지 않기 때문이네."(245c)

진리
"색깔도 없고 형태도 없고 만질 수도 없고 혼의 키잡이인 지성에 의해서만 볼 수 있으며 모든 참된 지식이 관여하는 실재(實在)일세."(247c)

신들의 삶
"혼은 한동안 실재를 보고 진리를 관조하며 흐뭇해하는 가운데 영양분을 섭취하고 행복감을 느끼다가 결국 하늘의 회전운동에 따라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다네."(247d)

"첫 번째 생을 마감한 후 심판을 받게 되네(249a)....철학자의 혼에만 날개가 생기는 것은 당연하네. 철학자의 혼은 그것들을 가까이함으로써 신이 신적인 존재가 되는 그런 것들을 상기를 통해 최대한 가까이 하기 때문이네."(249c)

"인간들은 그분을 날개 달린 에로스라 부르지만, 신들은 그분을 날개 신이라 부른다네. 그들은 날개가 자라나게 하니까."(252b)

4. 수사학
에로스에 대한 정의를 내린 후, 소크라테스는 대화의 논의가 시작된 뤼시아스의 연설문을 살펴보면서, 수사학에 대한 논의와 수사학적 방법, 연설문에 대한 비판을 한다.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는 수사학은 '혼의 본성'을 규명하고 이를 잘 나타내는 방법으로 구현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말하는 기술이 유행하는 당대의 현실에 대한 비판이라 생각된다.
이미 2500년 전에 이러한 사실왜곡에 대한 비판이 이루어졌음에도, 여전히 '진실을 숨기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점을 시사해주는 것 같다.

수사학과 전문기술
"수사학을 공부하려는 사람은 먼저 대중이 헷갈리게 되어 있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체계적으로 나눈 뒤, 이 두 종류의 특징이 각각 무엇인지 파악해야 하네.
.. 둘째, 그는 개개의 주제에 모르고 다가가서는 안 되고, 자기가 논의하려는 것이 두 종류 가운데 어느 것에 속하는지 예의주시해야 하네."(263c)

"의술은 몸의 본성을, 수사학은 혼의 본성을 규명해야 한다는 말일세."(269b)

"누군가 자신의 연설을 듣게 될 청중의 다양한 성격을 헤아리는 한편 사물들을 형상별로 분류하고 개별 사물들을 하나의 형상에 포함시킬 능력이 없다면, 그는 인간으로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 가장 훌륭한 수사학 전문가가 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오."(274e)

"첫째, 자네는 말이나 글의 주제에 관해 진실을 알아야 하네. 둘째, 자네는 똑같은 방법으로 혼을 구분하여 개개의 혼에 맞는 연설을 찾아내 자네의 연설들을 그에 맞게 정리 정종한 다음 복잡한 혼에게는 복잡하고 포괄적인 연설을, 단순한 혼에게는 단순한 연설을 제공해야 하네."(277c)

<파이드로스>에서는 영혼불멸, 윤회, 소크라테스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수사학 등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말하는 논의가 <국가>에서는 어떻게 발전되는지, 특히 '동굴의 비유'에서 나타나는지 비교해서 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 같다.

<메논>은 메논과 소크라테스 간 '미덕(arete)'에 대해 논의한 대화편이다.

'미덕'이 무엇인가에 대해 메논이 질문을 하지만, 이에 대해 제대로 정의하지 못한다. 하나의 단일한 '미덕'이 있는가와 아니면 상황과 경우에 따른 여러가지의 '미덕'이 있는가에 대한 첫 번째 논의가 이루어진다.

"비록 미덕은 수도 많고 종류도 다양하지만 모두 동일한 형상을 하고 있어서, 그것에 힘입어 미덕이 미덕이 되는 것이라네."(72c)

"누가 뭔가를 깨부술 때 익살꾼들이 말하듯이 하나를 여럿으로 만들기를 그만두게. 미덕은 전체로서 온전하게 내버려두고, 미덕이 무엇인지 말해주게."(77b)

소크라테스는 미덕의 '정의'에 대해서 묻는 반면, 메논은 현실에 나타난 '특성'을 통해 말하기 때문에, 만족할만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논의가 지지부진하게 되어 끝나는 이러한 문제는 러셀의 <기술이론>에 의해서 후대에 해결되는 것 같다. 모든 정의가 결국 '기술(서술)의 집합'이라는 러셀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정의'-'특성'간 논의는 결국 무의미하다는 것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아닐까.

'미덕'에 대한 정의가 실패하자, 논의를 바꿔서 '상기(想起)'에 대해 말하게 된다.

본문에서는 소크라테스가 메논의 노예 소년에게 질문을 통해 기하학 문제에 대한 해답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설명된다. 소크라테스는 노예 소년이 답을 이미 가지고 있었지만, 이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상기' 시켰기 때문에,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 부분은 무리한 논리 전개인것 같다.
본문에서는 마치 우리가 예전 중학교 수학 시간에 맞꼭지각, 엇각 등의 개념의 사용해서 SAS 합동을 증명했던 때를 연상시키는 논의를 한다. 나는 당시 선생님이 증명할 때 '그런가보다' 했지, 덮어놓고 다시 하라면 '헤맸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봤을 때, 들어서 '인정'하는 것과 '안다'는 것은 다르지 않을까?

그런 이후, '미덕은 배울 수 있는 것인가?'하는 논의가 이루어진다.
소크라테스는 테미스토클레스와 그의 아들 예를 들어 미덕이 배울 수 없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테미스토클레스가 다른 분야는 아들에게 가르치기를 원하면서 자신이 지혜로웠던 분야에서는 아들을 결코 이웃보다 더 나은 인물로 만들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야 하는가?"(93e)

"만약 지성이 만들어져 사람 안에 심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자들은
엄청난 보수를 받게 되리라."(95e)

이를 통해, 교사라고 자처하는 소피스트들을 비판하고, '미덕'으로 인도하는 것은 '바른 의견', '바른 신념', '지식'라는 이야기(97b)와 함께, '바른 의견'이 혼에서 달아나지 않도록 묶어두는 것이 '상기'라고 결론 짓는다. 결국 '미덕'은 신의 섭리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라는 이야기로 논의가 끝난다.

"미덕은 타고나는 것도 아니고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닐세. 오히려 미덕은 그것을 지닌 사람들에게 지성과는 무관하게 신의 섭리에 의해 주어지는 것일세."(100a)

<메논>을 통해서, 플라톤 철학과 기하학의 관계에 대해 파악할 수 있었다.
'기하학'은 추상적인 학문의 성격상 질문을 통해 답을 유도해나가는 과정이 다른 학문보다 용이하기 때문에, 플라톤 철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으리라.
또한, <메논>에서 소크라테스가 노예 소년으로부터 답을 끌어내는 과정을 통해, '동굴의 비유'에서 밖으로 나가서 빛을 본 사람이 묶여 있는 동료들에게 '빛(Logos)'을 설명하는 모습이 비춰지는 것 같다.

결국, '플라톤 철학'의 초기/중기 단편들은 각 단편이 주제를 가지면서도, <국가>라는 거대한 구조물 속의 한 개의 공간/구역이라는 느낌이 들게 한 <파이드로스/메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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