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굴이나 홍합이 혹시라도 고통을 느낀다면 이들을 먹을 경우 많은 수의 생물에게 고통을 주게 되는 것이다. 굴이나 홍합 등을 먹지 않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이제 나는 그들을 먹지 않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채식이다.(p302) <동물 해방> 中


 핵심은 인간 아닌 동물들은 다른 대안을 생각해 볼 수 없다는 것, 다시 말해 그들이 먹기 위해 살생하는 것의 옳고 그름을 도덕적으로 고찰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다. 인간 아닌 동물들이 자신들이 행하는 바에 대해 도덕적인 책임이 있다거나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반면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은 먹기 위해 살생을 하는 문제에 대해 도덕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p379) <동물 해방> 中


 <동물 해방 Animal Liberation>을 통해 피터 싱어(Peter Singer, 1946 ~)은 위와 같은 내용으로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육식(肉食)과 채식(菜食) 중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다른 동물들을 생각해서 채식을 할 것을 주장한다. 그렇지만, 채식을 한다는 것은 음식문화의 변화를 가져오는데, 이러한 음식문화의 변화를 단순히 개인의 선택 문제, 또는 윤리의 문제로만 넘길 수 있을까? 이번 페이퍼는 이러한 물음으로부터 출발해 본다.


 단백질에 대해 알아야 할 두 번째 사항은 고기가 단백질을 포함하고 있는 수많은 것들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굳이 차이를 말하자면 고기가 비싸다는 정도라는 점이다.(p312)... 서로 다른 종의 식물성 단백질을 동시에 먹을 경우 동물성 단백질과 완전히 같은 기능을 하는 단백질을 얻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 단백질 상보효과(protein complementarity) - <동물 해방> 中


 피터 싱어는 위와 같은 내용을 통해 단백질 제공원이 동물인가 식물인가하는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마빈 해리스(Marvin Harris, 1927 ~ 2001)의 관점은 이와 다르다. 인간 수명이 길어진 것이 육식(肉食)에 의한 것이라는 가능성을 보다 높게 보고, 육식 선호의 문화사(文化史)를 인류의 합리적 결정의 결과물로 판단하고 있다. 

 

 동물성식품이 필수적인 단백질과 미네랄, 비타민을 풍부하게 함유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수명이 길어진 것이 완전히 다른 요인들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 경솔한 일이 되지 않을까? 동물성식품에 몸에 해롭다고 생각되는 지방과 콜레스테롤이 들어 있긴 하지만 동물성식품을 많이 먹는 것이 가져온 유리한 결과를 생각할 때 우리는 이 해로운 물질을 제거하여 그 영양가를 더 높이도록 해야 할 것이다.(p52)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中


 영양과다보다는 영양부족이 더 일차적인 문제인 제3세계에서는 영양학적 관점에서 볼 때 고기와 생선, 닭고기류, 그리고 낙농제품의 지방과 콜레스테롤 함유량을 낮추지 않아도 동물성식품이 식물성식품에 비해 영양학적으로 확실히 유용하다. 따라서 더욱 많은 고기와 생선, 닭고기, 우유에 대한 계속되는 세계의 열망은 인간의 생리와 두 가지 식품의 영양학적 구성과의 상호작용에서 생기는 완전히 합리적인 선호를 보여주는 것이다.(p52)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中


 마빈 해리스는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The Sacred Cow and the Abominable Pig : Riddles of Food and Culture>를 통해 서로 다른 자연환경이 다양한 음식문화를 만들었으며 서로 다른 체질(體質)을 형성했음을 보이고 있다. 가령 서유럽에서 개를 먹지 않은 이유는 개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먹을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지적하고, 중국인들은 우유를 먹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젖당못견딤증(lactose intolerance 선천적으로 젖당 lactose 을 분해하는 효소 부족 증상)이 많은 체질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해리스에 의하면 전통 음식은 영양분을 공급할 최적의 공급원이 식재료로 활용되고 이로 인한 서로 다른 문명권간 체질 차이도 설명할 수 있다. 해리스에게 서로 다른 환경은 중요한 변수가 된다.


 서유럽인들은 개가 자신들이 가장 사랑하는 애완동물이어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개가 육식동물로서 비효율적인 고기 공급원이기 때문에 먹지 않는 것이다. 서유럽인들은 다른 동물성 식품 공급원들이 엄청나게 많다. 그리고 개는 그 고기와 송장보다 훨씬 가치있는 많은 서비스를 살아서 제공한다.(p212)... 중부 멕시코에는 폴리네시아처럼 사냥할 만한 큰 육지동물이 실제로 거의 없었다. 멕시코인들은 사냥하기 위해서 개가 필요하지 않았으며 다른 북미 원주민들처럼 가축이라고는 개와 칠면조뿐이었기 때문에 오직 고기를 위해서만 개를 필요로 했다.(p220)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中


 중국인들은 그들이 락토우즈 과민이기 때문에 우유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유를 무시했기 때문에 락토우즈 과민이 되었다... 이는 극동지역의 사람들이 그들의 환경이나 생활방식으로 인해 칼슘이나 혹은 다른 영양소를 얻기 위해 우유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다는 것을 의미한다.(p177) <음식문화의 수수께끼> 中


 이러한 다른 환경으로부터 초래된 문화적 차이, 신체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피터 싱어는 우리에게는 다양한 선택(選澤)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윤리(倫理)의 기준으로 육식을 피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선택권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권리라고 볼 수 있을까?

 

 식량이 풍부한데도 굶주림이 존재하는 것은 제3세계의 두드러진 현상이다. 세계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1950년대 이래로 식량생산 증가분은 아프리카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인구증가율을 앞지르고 있다... 가장 굶주린 나라들조차도 당장 국민들에게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양의 식량을 보유하고 있다. 굶주림이 만연한 나라들에서는 농업 관련 상품의 수출량이 수입량보다 훨씬 많다. 서구국가들이 주로 식량을 수입하는데, 이들의 수입량은 1992년 전세계 수입식량 총액의 71.2%를 차지한다.(p25) <굶주리는 세계> 中


 농업을 주산업으로 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역설적으로 굶주림으로 많은 이들이 죽어간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육식과 채식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소위 선진국(先進國)이라고 하는 몇몇 나라의 국민에 한정된 권리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채식을 한다고 했을 때에 곡물/채소로 전환된 수요는 별다른 문제 없이 충족될 수 있을 것인가? 1990년대 녹색 혁명이 가져온 효과를 보면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비료, 농약, 관개시설, 기계를 대부분 수입해야 하는 제3세계 국가에서는 녹색혁명으로 발생한 이익이 모두 그 나라를 빠져나간다.(p132)... 제3세계 국가의 농업이 점차 얼마 되지도 않는 외환으로 수입물을 구매하는 데 의존하게 되면서, 농촌의 빈곤은 환율 변동, 달러 보유고, 인플레이션에 더욱 큰 영향을 받게 됐다... 녹색혁명은 앞으로도 농민들과 국가 전체를 소수의 기업 공급자들에게 더욱 의존하도록 만들 것이 분명하다.(p133) <굶주리는 세계> 中


 비록 현재 생산되고 있는 많은 곡물이 가축 사료로 사용되기에 육식이 줄면 필요 곡물량도 줄어든다고는 하지만, 필요곡물량이 한순간 급감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반면, 많은 곡물회사를 비롯한 대기업들은 곡물을 비롯한 식량생산량을 증대시킬 것이고 여기에 많은 자원이 몰릴 것이다. 그렇다면, 채식이 가져온 사회경제적 불균형은 더 심해지지 않을까?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육식이나 채식을 어느 일방의 기준을 적용해서 선(善)과 악(惡)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된다. 피터 싱어가 지적한대로 현재 공장제 사육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분명 개선되어야겠지만, 경제적/문화적 요인들을 고려하지 않고 흑백논리를 통해 '육식은 나쁜 것'이라는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옳지 않다고 생각된다. 모든 문제는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끼면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사진] 태국과 한국의 자연환경과 음식(by 겨울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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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9-30 2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국 잘 다녀 오셨어요? 태국 음식은 어떠셨어요?^^

겨울호랑이 2018-09-30 20:09   좋아요 2 | URL
^^:) 저는 잡식성이라 태국 음식 잘 먹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 나라 고등어가 그쪽 생선보다는 맛있네요 ㅋ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9-30 20:45   좋아요 2 | URL
전 우리나라 과일이, 특히 배와 사과가 태국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8-09-30 20:49   좋아요 2 | URL
^^:) 저도 한국 사람인지라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동시에, 아마 태국 사람들은 두리안이 우리 나라의 감, 배 등보다 맛있다 여길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요.ㅋ

북다이제스터 2018-09-30 20:52   좋아요 2 | URL
두 군데 모두 산 한국에 사는 태국 사람들에게 꼭 물어보고픈 질문이 생겼습니다. 감사합니다. ^^

2018-09-30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30 2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8-09-30 2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행 즐거우셨다니 다행입니다.
마빈해리스3부작 이거. 번역 논란이 많던데 읽기는 어떠셨는지요?

겨울호랑이 2018-09-30 20:4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마빈 해리스 3부작을 아직 완전히 읽지는 못해 전체를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저는 편안하게 읽은 편이었습니다. 제가 제대로 못 읽은 것일까요?ㅜㅜ

만화애니비평 2018-09-30 2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해리스의 책을 보면서 인간의 오만성을 다시 확인합니다.
동물육식 물론 채식이 좋겠지요. 그러나 채식을 하는 순간, 문젠 단백질과 각종 비타민 함유가 문제입니다.
책을 쓰고 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럴 능력이 되나, 일반 대중과 가난한 사람들은
불가능하지요. 인도처럼 소를 키워 우유를 마시면 모르나(아이러니하게 인도의 소숭배와 다르게 소가 불법도축되죠)
저런 대안도 없이 나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좀 마음에 들지 않지요.
저렇게 하려면 자본주의 경제구조보단 농업경제구조로 환원해야 하나, 그렇게 되면 현대적 물질토대가 무너지고.,.,
아무튼 음식이 참 중요하지요. 한국서 개를 먹는건 부족한 단백질 보충인데 현재는 그럴 필요가 없기에
개를 안먹었지요. 먹고 살만하니 그런거지. 그걸 두고 야만인이라 말하는 그들의 오만함이 문제겠죠

겨울호랑이 2018-09-30 20:52   좋아요 2 | URL
그렇습니다. 자신의 입장에서 다른 문화를 일방적으로 우열을 가리는 태도는 바르지 않다는 만화애니비평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현재 개도국들이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책임의 상당 부분이 유럽 문명이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래 그렇다는 식의 유럽중심주의는 경계해야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서니데이 2018-09-30 22: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는 아직은 채식만 하시는 분들이 많은 편은 아니라서, 밖에서 음식을 드실 때는 불편한 점이 있을 것 같아요.
자신이 원하는 식습관을 선택하는 것도 자유의 영역인데,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아직은 어려운 문제 같아요.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주말 보내셨나요. 편안한 밤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8-09-30 22:22   좋아요 2 | URL
네. ^^:) 덕분에요. 서니데이님 말씀처럼 채식을 원하는 분들이 식사하기에 제한이 많은 것이 사실이라 생각됩니다. 채식주의자뿐 아니라 종교별로 금지된 음식에 대한 배려도 필요하겠지요. 이러한 부분에 대한 개선이 차차 이뤄질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서니데이님께서도 하루 마무리 잘 하시고 행복한 10월 맞이하세요! 감사합니다.

2018-10-01 09: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01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01 1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01 14: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8-10-01 14: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겨호 님의 글은 정보을 매우 정확하게 요점만 골라서 뽑는다는 점에서 읽기 좋습니다... 다행히 저도 위에서 언급한 책 3권 모두 읽은 상태여서 매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10-01 14:56   좋아요 0 | URL
^^: ) 곰곰발님께서 흥미롭게 읽어주셔서 저도 기쁩니다. 늦었지만 추석은 잘 보내셨는지요? 늦가을로 가면서 기온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곰곰발님, 건강한 하루 되세요!

2018-10-02 1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동물 해방 - 개정완역판
피터 싱어 지음, 김성한 옮김 / 연암서가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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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요지는 단순히 한 개체가 어떤 종(種)에 속해 있다는 이유로 그 존재를 차별하는 것이 일종의 편견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어떤 인종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개인을 차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부도덕하고 정당화될 수 없다.(p409) <동물 해방> 中


 피터 싱어(Peter Singer, 1946 ~ )는 <동물 해방 Animal Liberation>에서 모든 동물이 평등하다는 근거 위에서 우리의 현실(동물 실험, 공장식 농장)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이 책이 다른 책과 구별되는 지점은 감정적 호소보다 이성적 논증으로 동물을 학대하는 것은 잔혹한 행동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부분이라 생각되고, 이 부분이 저자에게 높은 명성을 가져다 주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번 리뷰에서는 <동물 해방>에 담긴 저자의 현대 문명 비판과 해결방안이 무엇인지를 개략적으로 살펴 보고자 한다.


 "문제는 그들이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는가가 아니다. 또한 그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가도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이다."(p346)... 벤담은 고통이나 즐거움을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모든 생물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을 함으로써 무단으로 이익을 배제하지 않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고통이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은 적어도 이익(interest)을 갖기 위한 전제조건이며, 그러한 능력을 갖는다는 조건은 이익을 의미 있는 방식으로 논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충족되어야 한다.(p37) <동물 해방> 中


 제레미 벤담(Jeremy Bentham, 1748 ~ 1832)은 이성적 사고나 언어의 관점이 아닌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의 관점에서 동물을 바라본 최초의 사상가였다. 그리고, 이 관점을 피어 싱어는 <동물 해방>에서 그대로 이어받고 있으며, 최근 연구 성과를 통해 이를 뒷받침 하고 있다.  최근 뇌(腦)과학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동물 역시 고통을 느끼며, 오히려 간뇌가 발달한 동물이 느끼는 고통이 더 클 수도 있음을 주장하고 있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인간 대뇌 피질이 더욱 잘 발달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뇌 피질은 기본적인 충동이나 정서, 그리고 느낌보다는 사고 기능과 관련이 있다. 충동이나 정서, 그리고 느낌은 간뇌(間腦, diencephalon)가 주로 담당하며, 이러한 부위는 다른 종의 동물들, 특히 포유류와 조류에서도 발달이 두드러진다.(p43)... 동물들은 고통을 느낄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물이 느끼는 고통(또는 쾌락)이 인간이 느끼는 동일한 양의 고통(또는 쾌락)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은 어떤 경우에도 도덕적으로 정당화되지 않는다.(p49) <동물 해방> 中


 그렇다면, 저자에게 동물들이 고통을 느낀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저자는 <동물 해방>을 통해 동물의 행동과 신경계통의 유사성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고통인지 여부를 판단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준에 의하면 비교적 최근 출현한 동물이 더 많은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나는 인간 아닌 동물이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증거를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능력에 대한 두 가지 척도를 제시한 바 있다. 우선 그 생물의 행동이 척도가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생물이 움츠린다거나 소리를 지른다거나 고통을 피하려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는 경우 고통을 느낀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그 생물과 우리의 신경계가 유사한지의 여부가 구획선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두 가지 기준으로 보았을 때, 우리는 진화 단계를 거슬러 내려감에 따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증거의 강도가 약해짐을 발견한다.(p297) <동물 해방> 中


  이처럼 동물 역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낀다는 분명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현재 동물들이 놓여있는 환경은 어떤가? 동물 실험 도구로 사용되는 토끼, 비좁은 곳에서 사육되는 닭과 돼지, 신속한 도살을 위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소의 모습이 <동물 해방>에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이를 근거로 더 이상 육류 소비를 하지 말 것을 독자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에 대안은 무엇일까? 


[사진] 공장식 사육 (출처 : http://marathon.ohmynews.com/NWS_Web/View/img_pg.aspx?CNTN_CD=IE001749870)


 나는 지금까지 이 책을 읽어온 사람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현대 공장식 농장이라는 조건하에서 사육된 가축의 고기나 생산물을 구입하거나 먹지 말아야 할 도덕적인 필연성을 인식했길 바란다. 이것이 필연적이라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확실하다. 이는 최소한 요건이다.(p295) <동물 해방> 中

 이처럼 동물들에 대한 냉혹한 태도는 '인간(人間)' 중심의 사고와 경제(經濟) 논리에서 비롯되었음을 저자는 <동물 해방>을 통해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채식(採食)을 주장한다. 스스로 채식주의자(Vegetarian)이기도 한 저자가 독자들에게 요청하는 행동 양식은 구체적이다.


 동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키려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운 요인들 중에서 극복하기 가장 어려운 것은 첫째, '인간 우선'이라는 가정과 둘째, 동물에 관한 문제는 그 무엇이건 인간에 관한 문제와 비교할 만큼 중대한 도덕적 또는 정치적 이슈가 될 수 없다는 가정이다.(p371) <동물 해방> 中 


 가축에서 온 고기를 식물성 음식으로 대체한다. 구할 수만 있다면 공장식 농장에서 온 계란을 방사한 닭의 계란으로 대체한다.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계란을 먹지 말라. 우유와 치즈를 두유, 두부, 또는 다른 식물성 식품으로 대체하라. 하지만 유제품이 들어 있는 모든 음식을 피하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상세히 알아보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p305) <동물 해방> 中


[사진] 채식주의 식단(출처 : http://www.chooseveg.in/food-plate-in)


  최종적으로 저자는 <동물 해방>을 통해 동물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에, 다른 종(種)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책에 나오는 많은 동물 학대 사례와 논증은 이를 위한 과정에 불과하지만, 생생한 사례와 함께 제시되는 저자의 논증은 동물 학대가 바르지 않음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때문에, <동물 해방>을 통해 비록 채식주의자가 아니더라도, 현재 육가공 시스템의 문제점과 제약 업계의 동물 실험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 다수가 동의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은 성공적이다.


 인간 평등의 원리는 인간이 실질적으로 평등하다(이는 근거가 없다)는 사실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이 아니다. 이러한 원리는 우리가 인간을 어떻게 처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규정(prescrition)이다.(p33) <동물 해방> 中


 최근 우리 주변에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구제역(口蹄疫, Aphtae epizoot), 조류독감(avian influenza, HPAI)의 문제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받고 있는 원인 중 하나는 '공장식 사육 제도'다. 좁은 공간에 많은 동물을 사육하는 이 시스템 아래에서 가축들의 면역력도 딸어지며, 질병이 빠르게 퍼진다는 것은 대표적인 공장식 사육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높아진 고기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주장과 동물에게 지나치게 가혹다는 반대 주장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업계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현실 속에서 <동물 해방>은  공장식 사육제를 비롯한 동물 문제에 대해 독자들에게 비판적으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생산적이다.


 그렇지만, <동물 해방>은 나름의 한계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그렇다면, 왜 육식만 금지해야 하고, 채식은 허용되는가?' 라는 질문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저자에 따르면 동물 역시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끼기 때문에 이들을 고통스럽게 죽여서는 안되고, 먹어서도 안된다. 


 저자의 논리대로라면, 동물의 고통은 밝혀졌지만, 아직 식물의 고통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고통이 확인된 동물을 먹는 대신 아직 확인되지 않은 식물을 먹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입증(入證)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렇지 않다는 것과는 다른 문제가 아닐까? 또한, 음식은 우리 인류 역사가 담긴 문화(文化)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각 문화권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온 음식 문화를 획일적인 기준으로 금지시키거나 강요하는 것은 또다른 폭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쉽게 끊어버릴 수 있는 육식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종 평등' 이라는 이름하에 또다른 획일화 강요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공장식 사육', '공장식 도축'에 대해서 부정적이지만, 다른 측면이 있음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고통을 느끼는 기준이 우리 신경계와의 유사성 때문이라면 그 기준 자체가 인간 중심적인 기준은 아닌가에 대한 물음도 제시할 수 있겠다. 종(種) 평등을 주장하는 저자지만, 인간에서 멀리 떨어진 종일수록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기준 자체가 종 차별적인 주장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동물 해방>에 담겨진 저자의 주장에 대해 위와 같은 물음이 떠오르지만, 큰 틀에서 본다면 육식(肉食) 위주의 식습관과 경제논리에 입각한 현재 축산업, 제약업계의 문제점을 지적한 <동물 해방>은 독자들에게 여러 과제를 던져주는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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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28 17: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8 17: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8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28 2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8-09-30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닭장 사진을 보면 - 뉴스에서 - 가엾더라고요. 인간 평등을 넘어 종 평등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해야 하는 시점인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9-30 01:27   좋아요 1 | URL
네 페크님 말씀처럼 인간과 동물, 자연 모두에게 더 나은 세상이 되도록 고민해야할 때라 생각합니다^^:)

2018-09-30 0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30 0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30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30 1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30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10-04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뭐든 과하게 표현하는 게 심하잖아요. 사회가 어렵다보니 먹방, 음식 열광도 크게 두드러지는데요. 치킨을 치느님 하며 맥주랑 열심히 즐기는데 그게 단지 맛의 취향만은 아니잖아요. 한우나 삼겹살보다 싸고 구하기도 쉽고 영세한 자영업자들과 프랜차이즈 사업의 결합으로 널리 깔린 치킨 사업 영향도 있는 것이고요.

오래 전이야 고기가 귀했고 그 영양분이 사피엔스 성장에 영향을 줬기에 큰 메리트가 있었다지만 요즘처럼 다양한 먹거리, 레시피가 있는 상황에서 과도한 육류 소비는 미식 취향으로 치부하기 어렵죠. 생태적, 환경적, 생명 존중적 성숙한 사고가 필요하고 전반적인 의식 변화가 있어야 하죠.
일전에 뷔페에서 중국인 관광객이 과하게 음식을 퍼나르다가 싸움나는 뉴스도 봤는데요. 인종차별로서 말하는 건 아니고 이런 뉴스들 보면 뷔페 정도 갈 사람들이 이런 정도니 사피엔스 종의 정신적인 성숙 길은 참 멀고도 멀구나 싶어요....

겨울호랑이 2018-10-04 17:42   좋아요 1 | URL
현대인들이 과도하게 육식을 한다는 AgalmA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영양 결핍이 아닌 영양 과잉이 문제가 되는 것을 보면 육식 뿐 아니라 무엇이든 더 먹고, 더 챙기려는 욕심이 현대 사회의 비극이라 생각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문제의 뒷면에는 끊임없이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의 논리가 있다는 것 또한 씁쓸하기만 합니다. 말씀하신 사피엔스의 정신적인 성숙을 위해서는 개인들의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벤담 & 싱어 : 매사에 공평하라 지식인마을 16
최훈 지음 / 김영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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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트( Immanuel Kant, 1724 ~ 1804)는 <실천이성비판 實踐理性批判,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에서 '정언명령 定言命令, Categorical Imperative'을 인간의 행동의 준칙으로 제시하는데, 이 '보편성'의 원칙은 이 책 <벤담 & 싱어 : 매사에 공평하라>의 전반에 적용되는 일반적인 법칙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떠한 행위를 할 때 따르는 지침을 칸트는 준칙(maxim)이라고 불렀다... 칸트는 이 준칙이 무조건적이고 보편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먼저 준칙이 무조건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준칙에 어떤 조건이 붙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p50)... 무조건적인 명령을 정언명령이라고 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마치 당신의 행동 준칙이 자신의 의지에 의해 자연의 보편적 법칙인 것처럼 행위하라"이다.(p51) <벤담 & 싱어> 中


  <벤담 & 싱어 : 매사에 공평하라>는  공리주의(功利主義, Utilitarianism)인 벤담(Jeremy Bentham, 1748 ~ 1832)과 실천윤리학자인 피터 싱어(Peter Singer, 1946 ~ )의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라는 윤리학(倫理學) 과제에 대한 답을 소개하고 있다. 공리주의자들은 인간 사회 내에서 인간 행동의 선택 기준에 대해 논의했다면, 실천 윤리학자인 피터 싱어는 주제 범위를 동물(animal)로 확대하고 있다. 먼저 공리주의자들의 입장을 살펴보자. 


 우리에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the greatest happiness of the greatest number'으로 널리 알려진 공리주의자 벤담은 양(量)적 공리주의를 주장하는데, 이에 따르면 모든 행복(또는 효용 效用)은 측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는 경제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비자 이론의 효용함수(效用函數)와 무차별곡선(Indifference curve)가 공리주의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개념이다. 


 [그림] 기펜재의 무차별 곡선(출처 : 위키백과)

 

 어떤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결정할 때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이익, 곧 공공의 이익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공리주의(Utilitarianism)이다.(p61)... 공리주의의 주장은 명쾌하다. 나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행동이 옳으며, 우리는 그런 행동을 해야만 한다. 이때  '모든 사람'에는 내가 아닌 사람만이 포함되지는 않는다... 공리주의의 창시자인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1748~ 1832)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은 하나로 계산되며 어느 누구도 하나 이상으로 계산되지 않는다."(p62) <벤담 & 싱어> 中


  많은 경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다수결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공리주의에서는 다수결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소수의 이익도 고려하는 공리주의지만, 공리주의 원칙대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한계효용 체감법칙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동일한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함에 따라 느끼는 주관적인 만족도는 점차 감소'하게 된다. 때문에, 공리주의 원칙에서 바라본다면, 우리가 치맥을 먹는 대신 아프리카 어린이가 굶주림을 벗어날 수 있도록 원조하는 것이 바람직한 선택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이는 공리주의의 현실적인 한계이기도 하다.

 

 다수결의 원리에서는 단순히 사람들의 수에 따라서 결정을 내리지만 공리주의에서는 각 사람들의 선호하는 정도까지 고려한다. 그러므로 다수결의 원리에서 문제되는 소수 억압이 발생하지 않고, 발생하지 않더라도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밀(John Stuart Mill, 1806 ~ 1873)의 <자유론 On Liberty>(1859)은 소수자 억압에 반대한 대표적인 책이다.(p64) <벤담 & 싱어> 中


 공리주의에서는 전체 행복이 증대된다면 정당한 방법으로 부자가 된 사람의 재산을 훔쳐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행위도 용납될 수 있다. 공리주의는 이렇게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을 옹호한다. 그런 상황을 옹호한다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의무라는 뜻이기도 하다.(p82)... 공리주의는 지키기 너무나 힘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p84) <벤담 & 싱어> 中


 이처럼 공리주의에서 바라보는 관점은 인류(人類) 보편적인 관점이다. 같은 종(種)에 속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도 이처럼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현실 속에서, 피터 싱어는 한 걸음 더 들어간 논의를 한다. 그의 저서 <동물 해방 Animal Liberation>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평등의 원칙을 동물에도 적용한 것이다. '동물의 평등'에 대해 말하기 전 먼저 그의 관점에 대해 살펴보자.


 도덕 원리라면 보편화가능성(universalizability) 조건을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p100)... 싱어는 이성은 끝이 없는 에스컬레이터와 비슷하다는 비유를 자주 든다... 싱어가 생각하는 더 높은 곳은 어디를 말할까? 그것은 우주적인 관점을 말한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름대로의 욕구와 선호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다.(p106)... 나의 이익이 다른 사람의 유사한 이익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성적(합리적)인 사고다.(p110) <벤담 & 싱어> 中


 피터 싱어에 따르면 우리는 우주(宇宙)적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인간과 동물의 구분은 무의미해지게 되고 보편성의 원칙을 동물에게 까지 확대될 수 있다.


 싱어는 자신의 이익에 대한 평등한 고려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하여 동물 해방이라는 주장과 운동을 이끌어낸다. 사람의 피부색이나 성별이 다르다고 해서 이익을 다르게 고려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어떤 존재가 어느 동물 집단에 속하느냐를 따라 그 존재의 이익을 다르게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p139) <벤담 & 싱어> 中


 피터 싱어는 <동물 해방>을 통해 동물에 대해 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을 위해 사육되거나, 실험도구로 쓰이는 동물 역시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에 동물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배려의 출발점으로 피터 싱어는 '채식'을 권하고 있다.


 <벤담 & 싱어>에서는 이처럼 윤리학의 법칙을 보편적으로 적용한다는 면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다만, 공리주의자들은 윤리학의 법칙을 인간으로 한정하여 적용한다면, 실천윤리학에서는 인간을 넘어서 동물로까지 보편적 법칙의 적용 범위가 확대됨을 확인하게 된다. 실천윤리학은 이처럼 형이상학적인 물음을 현실과제에 적용시키기 때문에 철학의 대중화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또한 많은 반론(反論)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채식주의 菜食主義, vegetarianism'에 대해 말을 해보자. 동물이 고통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에 살생을 피해야 한다는 주장을 피터 싱어는 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주장에 대해 '채식'에 대해 식물도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고 반론할 수도 있다. 아직 논의 중이긴 하지만, 만약 식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주장이 정설이 된다면 그 때 우리는 채식도 중단해야 할 것인가? 


관련기사 : 식물도 통증을 느끼는가 (출처 : 한겨레 21) http://legacy.h21.hani.co.kr/h21/data/L980824/1p3p8o29.html


 이러한 사실 이외에도 현재 공장식으로 사육되는 시스템이 아니면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반론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에, <동물해방>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또한,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벤담의 공리주의 또한 많은 비판을 받아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타인(他人), 타자(他者)에 대한 고려를 해야한다는 공리주의와 실천윤리학의 관점은 자신만을 아는 요즘 우리에게 분명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여겨진다. 그리고, <벤담 & 싱어 : 매사에 공평하라>는 그 새로운 관점을 쉽게 잘 요약해서 보여주고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PS. 사람과 동물이 함께 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기대하며 오래 전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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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2 19: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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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2 20: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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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2 20: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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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2 20: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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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2 2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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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7-23 1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함수 같은 것을 이해하려면 다시 수학책을 보고 경제학으로 가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오래전에 찍은 사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귀한 것이 되는 것 같아요.
그 때로 돌아가서 다시 찍을 수 없으니까요.
오늘도 더운 날씨 계속되고 있어요.
겨울호랑이님, 더위 조심하시고,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7-23 15:05   좋아요 1 | URL
네 서니데이님 요즘은 에어컨과 선풍기가 없으면 정말 안될 것 같은 더위네요. 에어컨을 오래 틀고 있으면 몸에 별로 좋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끼고 사는 요즘입니다. 서니데이님께서도 건강하게 오늘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벤야민 & 아도르노 :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 지식인마을 30
신혜경 지음 / 김영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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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야민 & 아도르노 :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는 벤야민(Walter Bendix Schonflies Benjamin, 1892 ~ 1940)과 아도르노(Theodor Ludwig Wiesengrund Adorno, 1903 ~ 1969)을 다룬 입문(入門)서적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Frankfurter Schule)인 두 사람은 대중문화에 대해서 상반된 시각을 보이고 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대표되는 20세기을 대표하는 문화양식을 대중문화(大衆文化)라 했을 때, 이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할 것인가? 

 


 먼저 아도르노의 관점부터 시작해 보자.  아도르노는 인간이 자기보존의 목적으로 계몽이 출발되었지만, 점차 자연, 사회, 내적 자연의 지배로 확대되어 가면서 인간 자체의 말살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파악한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 1895 ~ 1973)가 사용하는 '계몽 enlightenment'은 신화와 마법의 전제 專制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서 자연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이성적으로 각성된 사유 양식"을 지칭한다.(p52) <벤야민 & 아도르노> 中


 애초에 계몽의 출발은 인간이 자연의 위협적인 힘에 맞서서 자신을 보존하고 자연을 지배하려는 데서 시작되었다. 여기에서 핵심적인 개념은 '자기보존'이라는 개념인데, 아도르노는 자기보존이야말로 모든 생명체의 진정한 법칙이라고 강조한다... 이성적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이다. 이제 인간은 자연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자연을 지배하는 길로 들어선다.(p53)... 인간은 대자연의 지배로부터 권력을 빼앗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 성공이 귀결하는 바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와 억압이라는 또 다른 '야만'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아도르노의 생각이었다.(p54) <벤야민 & 아도르노> 中 


 그 결과 인간의 이성은 주체적으로 사고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사회 지배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되었는데, 이를 호르크하이머는 '도구적 이성'이라 부른다. 최대 효율을 위해 동일성을 추구하는 도구적 이성에 의한 지배는 대중 문화에서도 이루어지고, 아도르노는 대중문화를 일종의 지배 수단으로 파악한다.


 이제 인간의 이성적 사유는 진정으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 스스로를 반성하고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버리고 어떻게 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에만 몰두하는 도구적 이성  instrumental reason 이 되어버렸다.(p78)... 도구적 이성의 기저에 깔려 있는 정신적 원리가 바로 동일성 원리 the princilpe of identity 라는 것이다. 동일성 원리란 주체가 대상을 파악하고 관리하기 위해 서로 다른 대상들을 주체가 가지고 있는 동일한 하나의 형식으로 강제하는 지배 원리다.(p82) <벤야민 & 아도르노> 中 


 아도르노는 문화산업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오늘날 철저하게 이윤을 추구하는 일종의 비즈니스가 되었음을 강조한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문화산업이란 궁극적으로는 인간 주체의 내면적 자연, 그러니까 인간의 감정, 충동, 욕망, 본능, 상상력, 육체 등에 대해서 외적 자연에 가했던 것과 똑같은 폭력을 가함으로써 동일성 원리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지배의 수단이다.(p88) <벤야민 & 아도르노> 中


 이에 반해, 벤야민의 대중문화론은 긍정적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대량생산로 대표되는 20세기의 기술 복제 시대에 대중문화는 일반 대중을 각성시킨다는 것이다. 이를 조금 더 깊이 살펴보자.


 벤야민은 대중문화의 산물이 대중을 기만하고 불구로 만든다고 비판한 아도르노와는 달리,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로서 영화가 몽타주라는 형식 원리를 통해 대중의 충격과 각성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대중을 집단적 주체로 형성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보았다. 한마디로 말해 아우라의 붕괴를 특징으로 하는 기술 복제 시대에는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p217) <벤야민 & 아도르노> 中


 벤야민에 따르면 기술 복제 시대를 거치면서 종래 예술이 가지고 있던 권위(아우라)가 상실되었다. 종교예술로 대표되는 과거와 달리 기술복제시대에 들어, 대량생산이 되면서 예술작품은 희소성을 잃게 된 것이다. 그는 특히 사진과 영화에 주목하면서 '소외'를 통해 대중들은 종래 익숙했던 것들을 새롭게 보면서 새롭게 자각하게 된다고 대중문화를 해석한다. 


 벤야민이 대중문화의 산물을 보다 긍정적인 각도에서 평가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무엇보다도 오늘날 기술 매체의 발전, 즉 복제 기술의 발전이 예술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에 주목했다.(p173)... 벤야민에 따르면 예술의 생산 방식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변화는 기술적 복제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기술 복제 시대의 새로운 예술의 등장은 전통적인 예술에 어떠항 영향을 끼쳤는가? 벤야민은 그것을 한마디로 아우라 Aura의 상실이라고 설명한다.(p175) <벤야민 & 아도르노> 中


 보통 소외라는 개념은 부정적인 의미로 곧잘 이해되지만, 여기에서 벤야민이 사용하는 '소외 alienation' 개념은 브레히트의 '소격 Verfremdung' 개념에서 차용해 온 것으로, 긍정적이고 유익한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p188) ... 소외는 우리가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겨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낯설게 만들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을 다시 주목하고 세부까지 조명할 수 있도록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인간과 대상 사이의 관계를 의미한다.(p189)... 벤야민은 이러한 장이야말로 정치적으로 훈련된 시각의 가능성을 새롭게 열어젖힌다고 보았다.(p191) <벤야민 & 아도르노> 中


  정리하면, 아도르노에게 대중문화는 도구적 이성의 결과로 일종의 프로파간다(propaganda) 수단이지만, 벤야민에게 대중문화는 복제를 통해 대상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대중이 새롭게 깨어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수단이 된다. 그렇다면, 두 석학 중 누가 현실을 바르게 바라본 것일까.


[사진] 영화 <토이 스토리 Toystory> 中( 출처 : ttps://www.youtube.com/watch?v=y03qIQciuxQ)


 영화 <토이스토리 2> 에서 주인공 중 하나인 버즈(Buzz)는 자신을 유일한 우주전사로 생각하지만, 마트에 진열된 수많은 '버즈'를 보면서 좌절하는 모습을 보인다. 처음에는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다가 나중에는 다른 버즈를 도와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이야기는 대중문화에 대한 상반된 관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된다. 외양이 같은 수많은 버즈에 집중하는가, 아니면 각성하는 버즈에 집중하는가가 아도르노와 벤야민 관점의 차이점이라 여겨진다. 


 20세기의 대중문화에는 이러한 양면이 모두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대중문화에 대해 우리는 어떤 관점을 취해야할 것인가. 이에 대한 선택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상황이라 생각된다. 보다 현명하게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깊이 있는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이처럼 <벤야민 & 아도르노>는 대중문화에 대한 두 사상가에 대한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어, 이름만 들어본 이들도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좋은 입문서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에 대한 내용을 옮기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아도르노에게 "변증법이란 수미일관한 비동일성의 의식"이 된다. 아도르노는 헤겔 Georg Hegel, 1770 ~ 1831 의 변증법에 대해 부정의 부정을 통해 긍정을 산출하는 긍정적 변증법이라고 비판하면서, 이에 반해 부정의 부정이 긍정으로 넘어가지 않는 것, 즉 사회에서 부정적인 것이 지속되는 한 부정의 부정은 부정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부정 변증법'을 주장한다. 한 마디로 말해 사유의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부정 변증법은 비동일자의 구제를 목표로 한다.(p136) <벤야민 & 아도르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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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1 23: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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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2 13: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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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2 21: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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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2 21: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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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2 21: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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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 - 에리히 프롬 진짜 삶을 말하다
에리히 프롬 지음, 라이너 풍크 엮음, 장혜경 옮김 / 나무생각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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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 ~ 1980)은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를 통해 현대인들이 짊어지고 있는 '무기력'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이번 리뷰에서는 자유, 평등, 인간 본성, 사랑 등의 개념을 통해 무력감의 원인을 밝히고 있는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의 본문 내용을 따라가면서 우리의 무기력을 떨쳐버리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1. 평등(平等, Equality)


 오늘날 '평등'의 개념은 과거와는 달라졌다. 과거 평등의 의미가 '인간은 수단이 될 수 없다'는 뜻을 가지는데 반해, 오늘날의 평등의 의미는 타인과 구별되지 않음을 뜻한다. '개인은 개별 존재로서의 의미 대신에 추상적인 존재(전체)로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제 전체로서의 개인(추상화된 개인)이 아닌 개별화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살펴볼 차례다.


 '평등의 개념은 계몽주의 철학에서 절대주의 국가에 저항하며 발전하였다. 이마누엘 칸트( Immanuel Kant, 1724 ~ 1804) 의 말대로 모든 인간은 타인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는 한에서 서로 평등하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계몽주의 철학과 인문주의에서 말하는 평등의 의미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평등을 동일하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같다는 것이 서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이는 것이다.(p30)'


2. 인간의 본성(本性 Human nature)


 인간의 본성은 주어진 부분(상수)과 변화되는 부분(변수)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은 이처럼 규정되지 않았기에, 우리는  스스로 질문하면서 이성과 사랑의 힘을 통해 자신의 본질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해야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우리가 적극적인 '자유'를 통해 행동화될 수 있다.


 '인간의 본질을 만드는 것은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분열을 해결하는 수단인 이 대답들은 인간 본성을 표현하는 다양한 정의를 낳는다. 분열과 불균형은 인간으로서의 인간을 구성하는 근절할 수 없는 부분이다.(p48)'


 '인간의 본성은 원칙일 뿐 아니라 능력이기도 하다. 즉, 인간은 이성과 사랑의 능력을 발전시키는 만큼 자신의 본질에 도달한다... 자신을 자각하고 자신과 자신의 실존적 상황에 대해 진술하는 능력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다. 그리고 바로 그 능력이 인간 본성의 기본 요인이다.(p49)'


3. 자유(自由, Liberty)


 우리가 추구하는 목표인 '자아실현(自我實現)'은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자유의 활동으로 달성가능하며,  적극적인 자유와 자발적인 행동을 통해 개인은 점점 더 성장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적극적인 자유는 현대적 의미의 '평등'과는 달리 개인의 고유함을 인정하고 있어, 타인에 대한 존중의 의미가 여기에 포함된다. 이로부터 적극적 자유는 '사랑'으로 연결된다. 


 '우리는 자아실현이 사고 행위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전인격의 실현을 통해, 모든 감정적 가능성과 지적 가능성이 활발하게 표현될 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적극적 자유는 통합된 전인격의 자발적인 활동에 있다.(p78)'


 '자유는 인간 존엄성의 발견, 혹은 인간 본질 그 자체이다. 그러니까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 유한성으로 인한 장애, 제약, 한계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인간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p61)'


 '자발적 활동은 자아의 온전함을 희생하지 않고도 그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p81)... 모든 자발적 활동에서 개인은 세계를 자기 안으로 받아들인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자아는 온전해지고 더 강해지며 더 탄탄해진다.(p82)'


 '자아실현으로서의 적극적인 자유는 개인의 고유함을 완벽히 긍정한다. 인간은 평등하지만 다르게 태어난다. 이 차이는 태어날 때 물려받은 신체적, 정신적 기질이 다른 탓이며, 거기에는 수많은 상황과 각자의 경험이 추가된다.(p85)'


4. 사랑(愛 Love)


 적극적인 자유는 '나와 다른 사람의 다름'을 인정한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은 다름을 인정하고, 온전하게 받아들이는 방식이기에, 우리는 상처받지 않고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인식할 수 있을 때만 타인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의식적 헌신이 곧 자신의 사적 공간을 포기한다거나 타인의 사적 공간을 침해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랑은 인식이지만, 또 인식이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존중이기도 하다.(p73)


 '사랑하는 방식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이 방식은 인간의 본성을 고려할 때 유일하게 만족을 주는 방식이다. 사랑이란 그 사랑에 관여한 사람들의 온전함과 현실을 둘 다 보존하는 유일한 형태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복종하거나 그에게 권력을 휘두르면서도 "사랑"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사람은 자신의 온전함과 독립이라는 인간의 기본 특성을 상실한다. 진정한 사랑에서는 타인과의 연관성과 자신의 온전함이 보존된다.(p20)'


5. 교육(敎育 Education)


 이러한 '적극적 자유 -> 자발적 활동 -> 진정한 사랑'의 관계가 현대 사회 속에서 자리 잡지 못하는 원인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며, 외부에서 바라는 바를 우리에게 강제하기 때문에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방식은 어렸을 적 '교육'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는 생각과 느낌, 소망은 물론 심지어 감각적 느낌까지도 주관적으로 우리 것이라고 느끼지만, 사실은 외부에서 주입된 것이고, 우리가 실제로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남의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p119)'

 

 '우리의 느낌과 감정 못지 않게 독창적 사고 역시 왜곡된다. 처음부터 우리의 교육은 아이의 독자적 사고를 막고 아이의 머리에 완성된 생각을 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이는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가득한 손으로, 이성으로 세상을 파악하고자 한다. 아이들은 진리를 알고 싶어 한다. 그것이 낯설고 거대한 세상에서 방향을 잡는 가장 확실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들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p93)'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를 통해 저자는 우리가 다른 이들과 다르지 않는 현대적 의미의 '평등'을 추구한 결과, '자유'를 잃어버리게 되었고, 진정한 자신을 찾지 못하게 되면서 현대인들이 '무기력'에 빠졌음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자신 및 사회의 운명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결정적인 힘과 상황을 올바르게 통찰하는 것이다. 무지와 인식의 결핍은 개인을 무력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고, 무력감을 인식하지 않으려고 온갖 망상을 총동원하여 절망적으로 저항해 봤자 개인은 결국 내면적으로 그 무기력을 인식하게 된다.(p180)'


  저자 에리히 프롬에 따르면 결국 현재 상화에 대한 '관찰'로부터 올바른 현실 '인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결과를 바탕으로 '자발적 활동'을 통해 자신과 주변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의 결론이라 하겠다. 이와 같이 <나는 왜 무기력을 되풀이하는가>는 현대인들의 무기력 문제를 정신분석학의 방법으로 원인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처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 우리의 무기력을 완전하게 치유하기에는 다소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구조적인 빈곤의 문제, 사회적인 불평등의 사회적 문제 역시 현대인들에게 많은 무력감을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가 주는 무력감은 사회개혁을 위한 정치행위를 통해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자유, 평등, 우애(自由, 平等, 友愛, Liberte, Egalite, Fraternite)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시대부터 사용된 구호 '자유, 평등, 우애(또는 박애)'는 그러한 면에서 여러가지 의미를 제시한다. 앞서 '자유'와 '평등'이 개인의 무력감을 떨치기 위해 우리가 추구해야할 덕목이라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타파하는 이념으로서 우애(Fraternite)가 실현될 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무력감이 온전히 치유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사진] 자유, 평등, 우애(박애) [출처 : 뉴스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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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8 16: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8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2-08 17: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읽었습니다~^^
요 위의 사진 제가 가지고 있는 ‘레미제라블‘ 표지랑 닮았어요.
이 참에 레미제라블 시도해 봐야겠어요~^^

겨울호랑이 2018-02-08 19:07   좋아요 2 | URL
^^: 「레미제라블」표지하면 어린 코제트 이미지가 떠오르네요. 저는 방대한 양에 도전을 미루고 있습니다만, 양철나무꾼님의 좋은 리뷰 기대해 봅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18-02-08 17: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읽으려고 사놓기만 하고 아직 안 읽은 책인데 겨울호랑이님 리뷰를 읽으니 뭔가 책을 다 읽어버린 느낌이예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2-08 19:09   좋아요 3 | URL
^^: 감사합니다. 다만, 책의 문장과 작은 단락에도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이라 조그만메모수첩님께서 직접 읽으시면 정말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알케 2018-02-08 18: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우애 fraternité라는 번역을 늘 수상쩍게 봅니다. 맥락 상 피지배계층 간의 ‘형제애적 연대˝로
뜻을 새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예전엔 ‘박애‘라는 얼척없는 일본식 번역어로 불렸으니 뭐.
현 시대에선 계급, 계층간 정서적, 물리적 연대 solidarité로 새기는게 맞을 듯합니다

프롬 할배는 60년대 미국 사회당 시절의 글들이 이채롭죠. 프롬 할배에게서 프로이트를 -10
마르크스를 +20하면 좋을텐데....ㅋ

겨울호랑이 2018-02-08 19:12   좋아요 0 | URL
^^: 알케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혁명구호에 ‘박애‘는 좀 어색하지요. 알케님 말씀처럼 ‘형제애적 연대‘ 또는 ‘계급 내 단결‘정도의 의미가 보다 더 적절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에리히 프롬의 다른 저작도 폭 넓게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알케님 글을 읽고 하게 됩니다^^:

[그장소] 2018-02-09 06: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떤 부분에선 그 시대에 이런 통찰이 ? 싶다가 결론에선 맥이 탁 풀린 , 그 시대의 통찰력도 어쩔 수 없구나 싶었던 책였는데요 . 그래도 처음 무기력을 들여다 보게 했다는데 의미가 있다 그랬네요!^^ 잘 읽고 갑니다!^^

겨울호랑이 2018-02-09 08:56   좋아요 2 | URL
^^: 그렇군요.. 저는 대체적으로 프롬의 통찰력에 대해 많이 감탄한 편이었습니다.. 그장소님께서 말씀하신 프롬의 한계에 대해서는 제가 더 깊은 공부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장소] 2018-02-09 12:14   좋아요 2 | URL
시대를 생각하니 , 옛 사람의 통찰에 놀랐던 거더라고요 . 감탄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걸 고민한다는데 놀라운 감탄을 했었고요 . ㅎㅎ이미 예견된 무기력이라 , 알아도 안다는 것 외에 별수 없겠네..그랬어요 . 저 감정이 너무 마이너한 가요~^^?ㅎㅎㅎ

겨울호랑이 2018-02-09 12:35   좋아요 2 | URL
무슨 말씀을... ^^: 그장소님께서 마이너한 감정을 가지고 계실라구요.. 프롬이 1980년에 사망했으니, 아주 옛날 사람도 아니지만, 요즘 우리가 하는 고민이나 문제는 예전부터 있어온 것들이 다수인 것 같습니다. [기출문제]가 중요한 것은 반드시 자격시험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닌것 같네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