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 산책
다니구치 지로 지음, 주원일 옮김 / 애니북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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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구치 지로의 산책시리즈를 몇 권 읽었다.

이번엔 에도 산책이다.

 

도쿄가 되기 전의 에도.

주인공은 고산자 김정호처럼

막부의 허락을 겨우 받아가며 걷고 또 걷는 지리학자다.

 

재미있는 것은,

솔개면 솔개, 개미면 개미에 빙의한 시점으로 환상의 세계를 그리기도 한다는 점인데,

드론도 없던 시대를 상상하면,

개미처럼 2차원을 살던 인간에게

상상력을 불어 넣은 시도로 보인다.

 

느릿느릿, 천천히, 찬찬히 걷는 일.

아내와 함께 걸으며

실눈 뜨고 바라보는 에도는

그곳이 어디든, 시대가 어땠든... 푸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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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정반대의 행복 - 너를 만나 시작된 어쿠스틱 라이프
난다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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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학적으로 임신은 이물질이 착상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임신과 육아에 대한 작가의 솔직한 이야기는 흥미롭지만, 책이 무겁고, 가로로 만들 이유도 없었고, 종이가 두꺼울 필요도 없었다. 많이 아쉬운 책... 그렇지만, 아이를 기른다는 일의 황홀한 순간들도 공감하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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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국내 미출간 소설 5
나쓰메 소세키 지음, 박현석 옮김 / 현인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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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은 그냥 센 바람이 아닌데...

제목인 野分(노와케)은 센 바람이란 의미의 태풍이다.

 

1905년의 고양이로소이다 이후, 2년만의 글이다.

그 사이에 도련님과 풀베개를 썼으니 그이 초기작이라 할 만하다.

 

주인공 시라이 도야는

근대 초기의 지식인으로 그려진다.

 

그 제자인 다카야나기는 병약한 염세가이고,

그 친구 나카노는 대범하고 부유한 인물이다.

 

학문을 닦은 사람, 이치를 깨달은 사람은

부자가 돈의 힘으로 세상에 이익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에서

학문으로 또 깨달은 이치로 사회에 행복을 주는 것.

따라서 위치는 다르지만 그들은 도저히 범할 수 없는 지위에

버젓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233)

 

다카야나기 역시 가난하고 병든 몸으로

살아나갈 길이 막막한데,

각혈까지 하게 되니 나카노가 100엔을 변통해 주고,

그것으로 결국 무능한 시라이 도야의 빚을 갚는데...

 

세상은 명문, 부호, 박사, 학자까지 구가하지만,

공정한 인격을 만나고도 지위를 무시하고

금전을 무시하고 혹은 그 학력, 재예를 무시하고

인격 그 자체를 존경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인간의 근본 의의인 인격에 비판의 기준을 두지 않고

그 껍데기인 부속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 한다.(77)

 

초기 작이라 그의 의도가 날것 그대로 드러난다.

인물이랄 것도 없고,

시라이 도야의 목청으로 세상을 야단친다.

 

하얀 나비가, 하얀 꽃에

조그만 날개가, 조그만 꽃에,

     어지럽네, 어지럽네.

기다란 근심은, 기다란 머리에,

어두운 근심은 어두운 머리에

     어지럽네, 어지럽네

덧없이 부는 태풍,

덧없이 사는가, 이 세상에

하얀 나비도, 검은 머리도

     어지럽네, 어지럽네.(135)

 

노래 가사가 등장한다.

이 태풍이란 것에서 제목을 가져온 듯하다.

세상의 덧없이 부는 태풍에

나비도, 꽃도, 인간도 흔들려 어지럽다.

 

가난한 인격들이지만 도야 선생과 야나기의 가난은 다르다.

 

도야 선생이 본 천지는 타인을 위해서 존재하는 천지였다.

다카야나기 준이 본 천지는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천지였다.

타인을 위해서 존재하는 천지이기 때문에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도 원망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천지였기 때문에 자신을 상대해주지 않는 세상을 잔혹하다고 생각했다.

보살피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과

보살핌을 받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은 이 정도로 다르다.

타인을 지도하는 자와

타인에게 의지하는 자는 이 정도로 다르다.(156)

 

다카야나기의 비관은 역사가 깊다.

 

과거를 돌아보면 횡령한 아버지의 죄가 있었고,

미래를 바라보면 병이 있었다.

현재에는 빵을 위해서 하는 필사가 있었다.(170)

 

이런 제자에게 도야의 <외톨이는 숭고한 것>이라는 말은 공허하다.

 

주객은 하나다

주를 떠나 객이 있을 수 없고

객을 떠나 주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주객을 구분하여 물아의 경계를 나누는 것은 생존상의 편의다.

형태를 떠나 색이 있을 수 없고

색을 떠나 형태가 있을 수 없는데

굳이 개별화하는 편의,

착상을 떠나서 기교가 있을 수 없고

기교를 떠나서 착상이 있을 수 없음에도 잠시 두 가지를 따로 보는 것의 편의와 같은 것이다.

일단 이런 구별을 두면 우리는 하나의 미로에 들어간다.

그러나 생존은 인생의 목적이기 때문에 생존에 편리한 이 미로에는

더욱 깊이 들어갈 뿐, 나오기는 어렵다는 느낌이다.(189)

 

다카나야기는 그래서 기가 죽는다.

 

혼자라는 사실을 불쾌하게 생각해요.

불쾌하다면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나오면 될 걸,

더욱 움츠러들기만 해요.(190)

 

<숭고한 외톨이>가 되지 못하는 다카나야기.

한자로 높을 고, 버들 류를 쓰니, 高柳

뜻은 높지만, 버들가지처럼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상징이다.

 

과거를 돌아보는 사람은 반백의 노인입니다.

젊은 사람에게는 돌아볼 과거가 없습니다.

앞길에 커다른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은 과거를 돌아보며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시대는 젊은 시대입니다.(220)

 

소세키의 안에서 다카나야기라는 염세적 병자와

가난하지만 초월하여 근대를 받아들이는 도야의 정신이 혼란을 일으키는 시기의 작품이리라.

마치 태풍 앞의 나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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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의 낭독회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권영주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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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이야기들이 연관성 없게 늘어서 있다.

특별한 주제를 공유하고 있지도 않고,

유사한 상황이 설정되지도 않는다.

단편 소설집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모두 인질들이 남긴 하나의 이야기라는 것이 동일한 조건이다.

그들은 모두 죽었다.

그리고 보면 인간은 모두 죽는다.

변함없다.

 

마음 속에 따스한 시간을 회상하는 일도 의미있지 않을까 싶다.

 

2002년 월드컵의 응원 장면들이 아직도 선하다.

폴란드를 2:0으로 이기고, 미국과 비기고, 포르투갈에게 1:0으로 이겨 16강에 가고,

이탈리아와 싸울 때 안정환이 골든골을 넣었고,

스페인과는 홍명보의 승부차기로 4강을 간다.

 

아마 박항서 팀의 베트남이 느낄 감동이 그러할 것이다.

잊히기 힘든 스토리가 인생에는 있다.

꿈과 같기도 하고 믿기 힘들기도 하지만,

오래 남는 이야기에는 감동이 있다.

 

B 담화실의 이야기는 참 좋았다.

겨울잠쥐 인형도 좋았다.

 

삶에서는 따스한 이야기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지어낸 이야기에 감동하는 순간도 있을 수 있다.

 

잔잔한 감동을 느끼기에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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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인문학 캘리그라피
이규복 지음 / 이서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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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없는 그림책이란 재미있는 말도 있듯,

이 책에는 한 편의 캘리그라피도 없다.

 

동양 고전에서 캘리그라피와 연관된 말들을 찾아둔 것인데,

찬찬히 고전을 음미하는 맛은 좋다.

하지만, 캘리그라피의 의도와는 다르기도 하다.

 

동양은 붓이라는 도구 덕분에

글씨가 의미 전달 이외에 예술이 된 특이성을 지닌다.

글씨 공부가 서법을 넘어서 예술의 경지에 가면 서예가 되고,

이 책의 의도처럼 도의 경지를 얻으면 서도가 되는 것.

 

공부요시 재법외...

글씨 공부 외에 다른 공부를 통해 난관을 헤쳐나가야 한다.

법외지공

글씨 공부의 요지는 글시 공부 밖에 있다.(186)

 

서법을 넘어선 서도의 경지를 뜻하는 말이다.

정신을 담지 못한 예술로서의 임서는 수준 미달이란 깨우침.

 

득심응수 得心應手

마음에 따라 손이 응해야 한다(36)

 

겨우 선생님의 체본을 본따는 임서의 수준에서는 감히 할 수 없는 수준이다.

구상화를 거쳐야 추상화의 수준에 들어가듯이,

마음의 흐름에 따라 자유자재한 글씨가 나오는 경지까지를 원한다.

 

그렇지만, 그나저나 손글씨 쓸 일이 점점 줄어드는 시대,

캘리그라피는 꾸미기 글씨 정도로 전락하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먹을 갈면서 묵향에 잠기고

한 시간 먹 갈아 한 시간 쓰는 시간을 내기 쉽지 않은 시절이니...

 

그나저나 이 책에 캘리그라피 작품이 하나도 없다는 것엔 실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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