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IN 레드 문 클럽 Red Moon Club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 살림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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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자는 표의문자여서 같은 '음'에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인'에는 '인연 因', '은밀 隱', '음란 淫', '그늘 陰'이 모두 일본어로 '인'이란다.

게다가 영어 <IN>은 그녀의 대표작 <OUT>의 반대편에 있는 자들이 아닌가.

인사이더를 원하는 존재들의 발버둥이 간절하다.

 

여자는 관계를 원하고 남자는 소유를 원한다.(18)

 

<무구한 사람>이라는 소설 속에는 사실 애증에 얽힌 불륜과 다툼으로 가득하다.

 

당신이 죽으면 나는 나설 수 없는 처지이니 장례식에도 갈 수 없네.(362)

 

우리가 서로 사랑한 것은 사실이니 그 흔적은 지울 수 없는 게 아닐까요?

심근경색이나 뇌경색이 일어나면 그리 심각한 정도가 아니었더라도

몸에 흔적이 남지 않습니까?

대체 연애의 흔적은 어디에 남는다는 거죠?(364)

 

당신이 쓴 무구비토가 연애의 흔적 그 자체겠죠.

우스꽝스러우리만치 허둥대는 우리 자체가 바로 연애의 모습인 거죠.

그리고 거기에서 더욱 커다란 고통이 탄생할 테고요.

무구비토는 바로 죽어가는 사람입니다.(374)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어란 연애의 본질이기도 하다고 다마키는 생각했다.

연애는 시간의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은밀하게 변질되어 간다.

부패한다고 표현해도 괜찮을 것이다.

가스가 차서 한꺼번에 폭발한다.

폭발한 뒤에는 두 사람 다 제각각 내동댕이쳐져 주위를 둘러보면

눈앞에 낯설고 거친 들판이 펼쳐진다.(76)

 

은밀한 음행의 <인>

그렇지만 이 소설은 또 그녀의 소설론이기도 하다.

 

진실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소설에 쓰는 바로 그 시점에 그건 픽션이 됩니다.

그걸 알고 있는 작가는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매력적으로, 그리고 재미있게 만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실로 착각할 픽션이 필요한 거죠.

그래서 작품은 모두 픽션입니다. (313)

  

소설이란 사람들의 무의식을 그러모아

이야기라는 시간 축과 리얼리티를 부여해

무의식을 다시 재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274)

 

<아웃>이 살아있는 인물들의 행동이 빚어내는 생동하는 스토리였다면,

<인>은 좀 작위적인 챕터 구성과

소설론에 대한 목소리를 더하려 했던 것이 재미를 덜하게 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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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과 함께 읽는 나쓰메 소세키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6
강상중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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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달 소세키를 즐겨 읽었다.

<그 후> 같은 책은 아직 못 읽었는데,

이 책을 읽는데는 별로 어려움이 없었다.

<그 후>도 읽고 싶어졌다.

 

소세키를 3장으로 설명한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비롯된 소세키의 문명 비판,

군중과 자의식의 시대, 죽음의 그림자는 소세키의 작품 전반을 흐르는 배경이 된다.

 

2장에서는 <산시로, 그후, 문>의 3작품을 전기 3부작으로 부른다.

교양 소설 내지는 입사 소설인 것들인데,

아무래도 젊은이의 그것이어서

육체와 사랑의 문제, 실존적 불안과 시대상을 살핀다.

 

3장의 <마음>이 가장 깊숙하다.

<마음>을 다시 읽어야겠다.

 

지방에서는 여전히 가부장제도가 견고히 존재하였고

그러한 질곡으로부터 해방을 부르짖던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에 소세키는 이미 그 아득한 앞날을,

자유와 독립을 얻은 후의 인간이 맞이할 고독을 응시하고 있었던 것.(127)

 

소세키의 생각이 가장 잘 무르익은 소설이 <마음>인 듯 싶다.

한 십년 전쯤,

스토리 중심으로 그 책을 읽었던 적이 있었다.

스토리는 별게 없었다.

왜 소세키를 연호하는지 몰랐다.

 

이제 근대에서 소세키의 위치가 어느 정도 지점인지를 생각해 보니,

그의 '마음'은 계속 읽어야 할 고전일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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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환의 심판 변호사 미키 할러 시리즈 Mickey Haller series
마이클 코넬리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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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환의 심판과 총알 평결...

멋진 건 전자고 총알처럼 알아듣는 건 후자고...

 

거리의 인간들이

자기들끼리 정의를 실현하려고 사람을 죽이는 사건(540)

 

보슈가 남긴 말이다.

<같은 산의 양면>처럼, 이복 형제는 비슷한 성향을 지닌다.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어. 그냥 간직하는 수밖에.(158)

 

이런 시크한 멋이 좋다.

 

'마법의 총알'은

당신을 감옥에서 꺼내서 집으로 돌아가게 해줄 카드라는 뜻이었다.

모든 증거들을 도미노처럼 무너뜨리거나

모든 배심원들의 마음에 합리적인 의심을 확고하고 영속적으로 심어줄 증거나 증인을 숨기고 있다는 뜻.(184)

 

속물 변호사 미키 할러가 우연히 거머쥔 사건 덩어리들은 좀 어수선하다.

그렇지만 그의 변호 실력은 역시 깔끔했고,

복심을 찾아가면서 읽는 재미는 우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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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팔기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3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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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듭지어진 것은 표면적인 것뿐.

그래서 당신을 형식만 앞세우는 여자라고 하는 거야.

세상에 매듭지어지는 일은 거의 없어.

한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다만 여러 가지 형태로 변하니까

남들도 자신도 알수 없을 뿐.(287)

 

표지에 각인된 글이다.

제목은 왜 '도초', 한눈팔기일까?

정이현의 글에서 '길가의 풀' 같은 생이라고도 하는데...

자기의 삶은 글쓰기라든가에 열중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한탄일지도 모르겠다.

결혼 생활이나, 이 책의 주된 소재인 돈과 인간사에 얽힌 복잡하고 지저분한 일상들은

늘 돈버는 기계로서의 나를 요구한다.

마치 안 벌면 '벌레'가 된다는 듯이.

삶은 한눈팔 수 밖에 없는 것인 듯...

 

일은 결코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목적지에 한 발 다가서면 목적지는 다시 그에게서 한 발 멀어졌다.(73)

 

결혼 생활에서는 딸만 계속 태어난다.

자신도 어려서 양아들 노릇을 하던 스토리가 이야기 중에 나오지만...

실제 그의 사진을 보면 딸들만 줄줄이다.

 

제 머리가 나쁠지도 모르지만

알맹이도 없는 텅빈 이론에 굴복당하는 것은 싫어요.(260)

 

저런 것들이 계속 태어나서 결국 어떻게 되는 거지?(229)

 

겐조는 작은 살덩어리가 지금의 아내처럼 커질 미래를 상상했다.

그건 먼 훗날의 일이었다.

하지만 도중에 생명의 끈이 끊어지지 않는한 언젠가 반드시 올 것이다.

"인간의 운명은 쉽게 끝나지 않는 거로군."(233)

 

'배짱이 없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대변하던 산시로처럼

여기서도 그런 의식이 나온다.

 

만만한 사람이다.

겐조는 남이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화가 치밀었다.(220)

 

나의 나이가 되기 전 소세키는 죽는다.

삶에 대한 의문이 평생 있었을 것이다.

병원치레가 흔하던 그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계속 두려웠을 것이다.

이 소설을 쓰고 곧 그는 죽는다.

 

나는 묵묵히 조금씩 자살하는 거다.

딱하다고 말해주는 사람 하나 없다.(195)

 

앓고 있는 누나를 보는 겐조의 시선.

소세키의 작품에 깔려있는 죽음에 대한 관조가 느껴진다.

 

인간은 평소 미래만 보며 살아가다가도

그 미래가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어떤 위험 때문에 돌연 막혀버려

이제 끝장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지면

갑자기 눈을 돌려 과거를 돌아보게 된다는 것.

그래서 모든 과거의 경험이 한꺼번에 의식에 떠오란다는 거.(133)

 

앙리 베르그송의 '이미지들의 존속에 대하여'에서 얻은 생각이라 한다.

 

나는 결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냉혹한 사람이 아니야.

단지 내가 갖고 있는 따뜻한 애정을

밖으로 보낼 수 없게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는 거지.(67)

 

아내와도 소통할 수 없었던 고독한 남자의 왜소한 그림자가 실루엣으로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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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창비시선 417
장석남 지음 / 창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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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남의 사고는

조금씩 조금씩 번짐이지.

 

배를 매며가 그렇듯,

이 시집에서는

모닥불이,

꽃이,

그리고... 고대가 번지지.

 

그의 古代는 일부러 한자로 쓰고 있지만,

어찌 보면 '접때'나 '곧'의 의미인 '고대'로 나는 자꾸 읽고 있지.

 

입춘, 동지, 오후 세 시...

봄과 가을, 세한... 그리고 명년 봄...

 

쉰이 넘어가면서

악기를 한가지 새로 배워야겠다는 발심을 하지.

가뿐한 것으로,

혼을 닮은 것으로,

어깨 위 빛 같은 무게로...

 

나이가 들면

개두릅을 데치거나

모과를 자르는 일처럼

먹는 일에도 무심할 수 없는 게지.

 

그저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한 해가 가고

절기가 무심결에 지나는 것이 삶인 것을

'고대' 있던 일이라도 기억해 두려는 듯,

쓰고 또 쓰는 게지.

 

그러노라면

한소식을 들을지도 모르는 게지만,

짧은 시 형식으로 만나는 장석남은

지나치게 무겁지 않지만, 생각을 살포시 내려놓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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