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야 1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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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백야행을 잇는 그의 필생 역작이라 소문을 들었으나

이 책을 쉽게 구해볼 수 없었는데, 우연히 도서관에서 만났다.

아직 못읽은 '레몬'도 찾아보니 대출중이긴 한데 도서관에 있다.


히가시노게이고의 장점은 술술 읽힌다는 것이다.

술술 읽히려면 

인물이 너무 복잡하지 않아야 하고,

그 인물의 행보가 단선적이어야 한다.

이 소설에서 인물은 많이 등장하지만,

남녀 주인공이 처음부터 등장하고, 그들의 행적을 중심으로 

나머지는 모두 주변인물들이어서 집중하기 좋다.


오사카 출신인 그에게 1995년 1월 한신 대지진은 큰 충격이었으리라.

그리고 같은 해 3월 도쿄의 사린 가스 사건 역시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래서 이 소설의 배경은 한신 대지진의 고베에서 도쿄로 펼쳐진다.


우리는 밤길을 걸을 수밖에 없어.

설사 주변이 낮처럼 밝더라도 그건 가짜야.

그런 건 이제 포기할 수밖에 없어.(1권 309)


신카이 미후유의 말이다.

마사야는 기술자로 미후유에게 사로잡혀 범죄에 끼어든다.


미후유는 엄청난 여자다.

자기 목적을 위해서라면

누구든 용서하지 않는다.

누가 불행해지건 전혀 상관하지 않겠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2권 52)


요즘 나오는 그의 작품이 좀 시들해 지려했는데,

이 대작은 히가시노게이고의 두뇌 게임이

얼마나 정교하고 그의 문체가 술술 읽히도록 잘 짜여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오래되어 절판되었으니 이제 새판이 나올 때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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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와 소세키 왕복 서간집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수필비평선집
나쓰메 소세키.마사오카 시키 지음, 박지영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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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복한 서간치고는

소세키의 것이 많이 남아있다.

소세키가 이사를 많이 다니고, 영국도 오가면서 시키의 글들이 줄었으리라.

 

35세에 요절한 시키.

늘 아픈 시키에게 소세키의 걱정들이 잘 전달된다.

그러면서도 '레토릭보다는 아이디어'라는 의지가 굳다.

 

수세미꽃 피고

객담에 목이 막힌

부처로구나

 

객담이 한 말

수세미물도 이제

소용없어라

 

엊그저께의

수세미물도 이젠

그만 받았네

 

시키의 마지막 시다.

레토릭도 없고, 아이디어도 없다.

서른 다섯의 죽음은 '그만'이다.

 

생명이 쉰을 넘기지 못하는 일이 흔하던 시절,

젊은 날이 오히려 더욱 치열했을 것임을 느끼게 하는 편지들이다.

 

아픈 권정생을 걱정하는 이오덕의 마음과도 같다.

 

달은 동쪽에

자네는 지금쯤엔

자고 있을까(196)

 

남녀의 연애보다 진한 우정이다.

 

바야흐로 짙은 안개가 창에 몰려들어

서재는 낮에도 어두운데

시곗바늘이 1시를 가리키려 하니

자꾸 배를 쓰다듬으며 먹을 것을 생각하네.(338)

 

이것이 소세키가 시키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다.

영국의 짧은 낮을 전달하는 이야기다.

 

다음해 1902년 시키의 부고를 들은 소세키의 글.

아프다.

 

쓰쓰소데로

따라가지도 못한

가을날 운구

 

피워서 올릴

향불도 하나 없이

저무는 가을

 

연무 자욱한

도시에 떠도는가

그림자처럼

 

귀뚜리 소리

옛일을 그리면서

돌아가야지

 

부르지 않은

억새밭에 혼자서

돌아온 사람(344)

 

시키의 죽음 앞에

쓰쓰소데(서양의 좁은 소매옷)로

오지도 못하는 막막함이 우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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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암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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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되는대로 빌려온 소세키가 마지막 권이다.

아직 태풍, 그후, 한눈팔기는 덜 본 상태인데,

이 두꺼운 책의 마지막이  -미완-이라니...

 

소세키의 제목은 가볍다.

그렇지만 전개되면서 그 제목에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게 된다.

명암은 빛과 그림자인데,

빛이 있어서 어두운 부분도 생기는 것이고,

야누스처럼 뗄 수 없는 개념이다.

 

부부도 이와 같고, 연인도 그와 같다.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고, 빛이 흐리면 어두움도 연하다.

 

표지에 적힌 구절은 앞부분에서 등장하는 푸앵카레의 이야기다.

 

우연한 사건이라는 건

원인이 너무 복잡해서 도무지 짐작이 안 될 때 쓰는 말.(19)

 

산다는 일은 이런 우연의 연속이다.

소설의 플롯은 그런 우연들에서 필연적 귀결을 찾아내려 들지만,

삶은 그렇지도 않다.

그런 어느 날, 실 끊기듯 툭, 끊길 수 있는 게 삶이다.

 

쓰다와 오노부라는 부부는 친한 듯 하지만 잘 융화되지 않는 면이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다.

 

오노부는 지금의 쓰다에게 만족하고 있지 않았다.

미래의 자신도 고모처럼 기름기가 빠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그것이 자신의 미래에 가로놓인 필연적인 운명이라면

언제까지고 현재의 광택을 유지하고픈 오노부는 언젠가 한번 슬픈 타격을 입어야 했다.

여자다움이 사라져버렸는데 여전히 여자로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젊은 그녀에게는 참으로 끔찍한 생존으로 여겨졌다.(179)

 

그녀의 속셈은 알 수 없다.

남편이 치질 수술로 병원에 입원했는데도 태연스레 고모부집엘 가곤 한다.

 

일본에서 태어났는데

쌀밥을 먹을 수 없다니 정말 불행하지?(180)

 

고모부는 당뇨라서 그렇다

이토가 암살당하는 사회상도 잠시 등장하고,

나중에 쓰다가 기요코를 만난 온천의 도코노마에도 한국 꽃이 놓여 있다.

그들에게는 일상이지만,

조선인들에게는 고난이던 시절 이야기...

 

인생이란 그런 속에서 우연과 우연이 복잡하게 얽히는 셈판이다.

 

오라버니는 올케언니를 소중히 여기지만,

그 밖에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있어요.(304)

 

순정 소설과 가정 소설이 교차되는 지점.

병문안온 여동생 오히데와 쓰다의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되는 오노부.

 

신문 연재 소설인 만큼 연속극적 요소가 많다.

 

남자한테는 세상에 있는 다른 여자들은 마른풀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는 거.

그보다는 좋아하는 여자가 세상에 얼마든지 있는 가운데

언니를 제일 좋아해주는 것이

정말 사랑받는다는 의미.(391)

 

오히데의 입을 통해 하는 이야기는 작가의 목소리에 가깝다.

남자들에게는 아내를 제일 좋아해주기만 하면

세상에 얼마든지 좋아하는 여자를 만들 수도 있다~는 내용.

 

하기는, 둘만의 뜨거운 사랑은 낭만주의 시대에서야 비로소 시작된 것이고,

근대의 목소리에는 '안나 카레니나'처럼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입장과 달리,

남성들의 삶의 양태는 낭만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다.

 

아니, 근대 이후에는 가정 밖에서 오히려 낭만적 사랑을 추구하는 경향도 짙어지고 있으니...

오노부에게 가정의 평안은 전부일지 모르지만,

쓰다는 자유를 향해 눈을 뜬다.

 

되려고 하건 말건 지금이 너는 자유다.

자유는 어디까지나 행복한 것이다.

그 대신 어디까지나 매듭지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어딘가 부족한 것이다.

너의 미래는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

너의 과거에 있었던 한 줄기 불가사의보다

몇 배의 불가사의를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불가사의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이 생각한 대로의 것을 미래에 요구하며

지금의 자유를 내던지려고 하는 너는 바보인가 영리한 사람인가?(532)

 

가문의 결합이던 중세의 봉건적 결혼관이

근대에 오면서 갈등을 겪는다.

개인의 자유와 결혼의 단단함 사이의 마찰음은

끝없는 허구적 스토리의 산모가 아닌가.

 

그런 모든 것을 '명암'이란 제목으로 풀어나가던 작가가

결국 지병으로 쉰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인생 만사가

이 책 표지에 적힌 것처럼 말로 풀어내기에는 너무 복잡한 우연이 많다.

그래서 재미있기도 하고,

그래서 허무하기도 한 것이

삶의 양면이다.

 

밝음과 어둠으로 감각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인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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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아이야, 가라 1 밀리언셀러 클럽 46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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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ne, baby, gone...를 어떻게 하면 '가라, 아이야, 가라'로 해석할 수 있는 건지...

 

오늘 뉴스에 대구 여중생 자매가 실종되었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걱정을 했는데, 춘천에서 20대 남성이 데리고 있었다 한다.

사정이야 모르겠지만 돌아왔다니 안심이다.

 

실종에 대한 이야기다.

아이가 실종되었는데, 신고한 사람이 부모가 아니다.

부모같지 않은 부모에 대한 고발도 있다.

 

세상은 침대와 다르다.

세상은 벽돌처럼 차갑고 가시처럼 날카롭다.

자궁 속의 접합포자로 시작해 태아로 진화하고 출산이라는 20세기의 마지막 기적의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온 괴물들, 신생아들의 눈먼 울음소리는

그들의 일그러지고 질곡된 삶을 예언이라도 하듯 처절하기만 하다.

얼마나 많은 연인들이 이런 식의 둥지와 침대에서 우리와 같은 포만감을 느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괴물을 만들어 냈을까.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을 만들어 냈을까.(259)

 

그 여잔 매일 아이를 고문한 거야.

매질과 강간이 아닌 무관심으로 말이지.

매일같이 아이한테 조금씩 독약을 먹인 거라고.

그렇게 아이의 정신을 고갈시켰어.

독한 여자. 그 여잔 독약이야.(113)

 

생각없이 아이를 낳고, 방치하는데,

친권은 부모에게 준다.

 

켄지와 제나로 시리즈인데,

잔혹한 만큼 재미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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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건 흔들리기 때문이야
김제동.김창완.조수미.이현세.최재천 외 41인 지음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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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들은 이제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다.

돌이켜보면, 아주 가난했던 나라에서 방황했던 어린 시절을 겪었고,

젊은 시절, 세상은 캄캄해서 뭘 해야할는지도 몰랐지만,

어느덧 나이가 들고 보니 자기가 하는 일에서 '운 좋게' 무언가가 되어있는 사람들이다.

조수미 같은 예고, 예대, 예술가 인생을 사는 사람은 오히려 예외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그래서 별로 도움이 안 될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이효리가 '뭔가 될 필요는 없어.'라고 해주는 한마디에 더 공감할는지도...

뭐, 이효리도 뭔가 된 어른이긴 하지만...

 

별은 흔들리기 때문에 빛나는 게 아니다.

'나'가 그렇게 보기 때문인데, 세상 만사 참 주관적이다.

 

나이 쉰이 넘은 나도 '지천명'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어려서 성적이 우연히 좋았고 사범대를 나와서 교사가 되었지만,

'죽어도 좋을 나이' 지천명인데도, 삶이 뭔지 모르겠다.

아니, 이젠 몰라도 좋다~는 느낌이다.

 

열다섯, 스물은 불안해도 그 당시 '좋을 때다~'는 말을 들으면서 이해하지 못한 것이 있었고,

지금도 나는 충분히 '좋을 때'를 살고 있다.

 

좌절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좌절을 자기를 괴롭히는 구실로 삼는 것이 부끄러운 것.(29)

 

그런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한 말은, 아이들이 어찌 들을지 모르겠다.

참 갈수록 어려운 시대다.

 

십대 시절엔 구름 밑의 비만 보지 말고

구름 위의 태양을 볼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구름 위에 태양이 빛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길...(34)

 

정말 태양이 있을까? 매일 구름이 껴 있는데도... 짙은 먹구름인데도... 휴~

 

시력을 잃은 '이동우'에게 루게릭 환자가 '안구 기증'을 하려 했다 한다.

 

나는 하나 잃었을 뿐 아홉 가지는 멀쩡한 사람인데...(50)

 

한 면만 보는 것은 이렇다.

 

삶의 힘겨움이

다소 오래 지속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기 인생의 '꽉 막힌 동굴'이 아니라,

'지나가는 터널'임을 기억해 주었으면...(59)

 

그럴 것이다.

인생 극장, 이것이 인생이다~ 같은 데 나오는 사람들의 고난은

극복이 힘들 만큼 먹구름이다.

꽉 막힌 동굴에 천근만근 어려운 일이 겹친다.

그러나 지나고 웃을 날도 있으리라는 희망이 그런 프로그램을 만든다.

그치만, 그런 프로그램 보면서 더 좌절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지적도가 1천 2백분의 1 축척으로 작성될 때

1밀리미터 정도 잘못 그어졌고,

실제 건축에서는 1천2백배의 오차가 생겨,

건물이 도로를 0.5~2.5미터나

침범하여 건물들을 철거했답니다.

보상 비용이 20억을 넘어서...(122)

 

그렇다. 청소년기는 축척이 적용된 지도와 비슷하다.

조금 엇나가면 회복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요즘 새정부에서 '고교 학점제'를 검토한다 한다.

아~ 좀 걱정이다.

쓰레기 치우는 데 열심이던 정부가,

의욕적으로 하는 일이 좀 전국민적인 호응을 얻었으면 좋으련만,

많은 시설과 투자, 인프라가 필요한 고교 학점제만 건드리면,

기본적인 대학 서열, 사회의 불균등은 그대로인데,

학교는 또다시 공황 상태를 경험해야 하는 것이나 아닌지... 우려스럽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되지도 않을 경쟁을 반복하고,

만점자가 뉴스거리로 나는 세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교사의 전문성을 위해서도 학점제는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과연 얼마나 멀리 보고 까는 포석인지가 걱정이다.

 

남보다 못한 자신이 아니라

오늘 자신에게 주어진 힘과 시간을 완전히 사용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가장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이 세상에 고유한 생명으로 보내졌기 때문에...(182)

 

김제동이 어떤 프로그램에서 청소년을 위로해 준 일이 있다.

어설픈 위로는 위로가 안 된다.

십대들을 위한 쪽지는 진심으로 청소년들을 위로하기 위한 쪽지였다.

 

누군가는, 글 한 구절로도 평생을 살 힘을 얻었을 수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프면 환자라는 개그처럼,

흔들려서 별이 빛나는 게 아니라,

별을 바라볼 때 비로소 별이 빛나는 걸 알게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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