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
김기찬 사진, 황인숙 글 / 샘터사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수잔 손택의 사진에 관하여... 를 읽다 보니,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찍는 것도 사진이 담는 한 장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진은 원래 사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는 자연의 멋진 풍경을 보이는 그대로 남기려고 개발된 것이다. 그렇지만, 사진이 전쟁터에서 파괴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 내는 비판 정신을 발휘하고, 파괴되어가는 가족의 모습을 앨범에 남겨 추억거리로 만들어 주듯이,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을 여과없이 비추어주는 일도 사진의 큰 몫이 되었다. 가난은 물질이 부족해서 생기는 현상이 아니라, 분배에 실패하고 있어서 나타난 결과이므로.

김기찬이란 사진가가 집착한 곳은 바로 골목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의 골목길.

그 골목길 어귀마다 한낮의 햇살을 마중나오는 것들은 강아지들, 노인들과 엄마와 어린애들, 어디 핀들 꽃이 아니랴먄 발리다 만 시멘트 틈사귀를 비집고 나오던 노란 민들레, 그리고 갖가지 풀꽃들... 또, 조금 구김은 가지만 햇살을 받아 환하게 날리던 바지랑대 끝의 빨래들... 그 맵싸한 내음과 살을 콕콕 찌를 듯한 햇살의 따가움이 담긴 감촉들.

골목길 모퉁이마다 하나씩 있던 구멍 가게. 오후가 되면 계란도, 파도, 미원 한 봉지도 사 나르던 가게의 추억. 해가 저물녘, 굴뚝마다 가느다란 연기가 피어 오르고, 골목이란 골목마다 사내 아이들은 뛰어 다니며 전쟁 놀이에 여념이 없고, 계집애들은 조금 평평한 땅을 골라 고무줄을 뛰기도 하고, 땅에 공주를 그리며 환상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다 엄마들이 밥먹으라고 부르는 소리에 골목길은 저녁이 된다.

밤이 되면, 어떤 날은 낮에도 켜 있던 외등 불빛이 빛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엔 밤에도 꺼져 있는 외등의 외로운 불빛을 바라 보며, 자신의 쓸쓸한 그림자를 이끌고 지친 몸들은 연탄가스냄새 가득한 집으로 올라간다. 골목길을 오르는 일은 가쁜 숨을 내뱉으며 한 걸음씩 자기의 무게를 이겨나가는 일이다. 저녁마다 골목길을 오르는 지친 몸뚱이는 시지프의 헛된 노동마냥 힘이 들지만, 저 골목길의 끝에는 저마다의 가정이 된장찌개 냄새와 아랫목에 파묻힌 한 공기 밥그릇을 품고 기다리고 섰지 않는가.
그 골목길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 가족의 수와 서열을 정확히들 알고 있어서 시골의 대가족제도와 비슷하지만, 벽 하나를 공유하며 살아가는 그 사람들은 남의 집 부부 싸움에 날아다니는 악다구니와 울음 소리의 내용을 사실은 공유하지 못하며, 지쳐 잠이 들다.

김기찬 선생의 사진들을 뒤로 하고 황인숙 시인의 골목길 감상들이 늘어섰다.

눈이 많이 내린 다음날 아침이면 연탄을 깨 가면서 조심조심 내려서던 그 골목길.
빼앗길 것이 두려워 담과 문을 치기 보다는, 서로의 남루함을 감추고 싶어 담을 치고 문을 달아 만들어냈던 골목길의 서정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사진들과 글이 여기 있다.

내 나이도 이미 지나가 버린 것들을 추억하는 나이에 들어선 모양이다.
30대는 아직 20대의 청춘에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40대는 이미 50대의 장년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하듯이... 지나간 사진들을 보면서 자꾸 그 담벼락에 낙서된 것들에... 그리고 한여름 동네 아저씨들의 영양을 보충해 주는데 자기 한 몸을 보시했을 그 멍멍이들에... 자꾸 눈길이 가는 것을 보면.

아랫도리에 바지를 입지 않은 꼬마와, 런닝에 반바지 차림으로 문앞에 선 아저씨를 보면, 예전의 골목길이 떠오른다. 길 위에도 지붕이 있지만, 길 아래도 지붕이 있던 그 골목길. 까칠한 담벼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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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6-04-30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나라 경제개발 속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이지만 그들만의 풋풋한 정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을 것 같은 골목길...
골목길이 좋습니다.
이 책 읽어보고 싶네요..
 
유혹하는 글쓰기 - 스티븐 킹의 창작론
스티븐 킹 지음, 김진준 옮김 / 김영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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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킹은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 막연하게 알고 있었다.
나도 추리 소설이나 의학 스릴러 같은 책을 좋아는 하는데, 돈 주고 사기도 아깝고, 딱히 빌릴 곳도 잘 없고, 요즘엔 나이가 들면서 그런 종류의 책을 보는 시간을 좀 아깝단 생각도 들고 해서... 여러 이유를 막론하고, 암튼 스티븐 킹의 소설은 읽은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작문 책이 많이 보이기에 도서관에서 검색해서 빌려 봤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우선, 이 책은 작문의 기초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말하고 있는 책이다.
보통 글쓰기 책이라고 한다면,
1. 작문을 왜 하는가?
2. 작문을 잘하기 위한 기본기(다독, 다작, 다상량)
3. 작문을 잘하기 위한 다양한 연습을 통한 기량 습득
4. 퇴고
5. 기타 팁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고, 이런 책은 정말 보기 싫은 고등학교 작문 교과서 같은 책이다.
나도 고등학교 작문 교과서를 많이 읽어 봤지만, 정말 그건 고역이다. 월급받고 읽으라니 읽지, 독서가 아닌 일이다.

스티븐 킹은 우선 자기가 살아온 이야기를 제 멋에 겨워서 축 늘어 지도록 쓰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젤 재밌는 부분이 지 살아온 이야기다.
그 뒤에 롸이팅에 대해서 쬐끔 쓰고 있는데, 거기는 솔직히 작문책이랑 별 다를 것이 없다.
하긴, 다독 다작 다상량 외에 작문의 원리가 뭐 있다는 말이냐.

킹은 자서전을 쓰면서 독자에게 글은 이런 것이다... 하고 자랑한다.
우선, 그의 글은 재미있다. 한 페이지에 재미있는 말이나 이야기가 한 두 개 꼭 등장한다.
이게 잘쓴 글이다. 뿡야!
재미없는 글은 결코 잘쓴 글이 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제1 원리.

그리고, 작문책. '온 롸이팅'이란 제목을 붙인(온이란 전치사는 뭐뭐에 관한 연구 같을 때 쓰는 말이다.) 책에서 지 자서전으로 절반을 차지하는 건 무슨 왕자병이람, 이름이 킹이니 <왕병인가?> 한다면 그의 의도를 제대로 읽지 못한 독자다.

그가 자서전으로 보여주는 글쓰기의 제2 원리는 <잘 아는 것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겪어온 자기 삶 이상으로 잘 아는 세계는 없지 않는가.
의학 스릴러를 쓰는 로빈 쿡은 의사고, 더 펌으로 유명한 그리샴은 변호사였다.
자기가 왜 속된 말들을 잘 드러내는 글을 썼는지... 자서전에 잘 드러난다. 그건 자기 삶이었다.

글을 쓰다 보면, 시간이 잘 안 난다.
그래서 그가 권장하는 사항. 문을 닫아라.
그리고, 글을 다 쓰고 나서 다시 읽기는 정말 어렵다. 퇴고의 어려움.
그래서 그가 권장하는 사항. 이때는 문을 열어라.

작가가 잘 해야 하는 것, 설명, 묘사, 그리고 실감나는 대화의 구술... 이런 것은 상당한 수준의 전문성을 요구한다.

암튼, 글을 쓰고 싶을 땐,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자기 공간을 가지고, 부지런히 써야 한다는 거다.

스티븐 킹이 권하는 글쓰기의 제3 원리. 열심히 읽지 않고는 잘 쓸 수 없다.

재미있게 쓰려고 머리를 굴리고, 이야기가 스스로 굴러가도록 생명력을 부여하며, 자기가 잘 아는 세계에서 이야기하고, 열심히 읽고 써라.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정말 재미있게 하는 사람. 그런 글재주가 부러울 수밖에... 이런 책을 읽다 보면, 글을 잘 쓰는 소질을 타고난 사람을 내가 따라갈 수는 없단 좌절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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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4-25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읽은 책이고 리뷰를 썼던 책이지만 그래도 가져가서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 Philosophy + Film
이왕주 지음 / 효형출판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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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이 철학 교수를 캐스팅했을까? 아니면 이 철학 교수가 영화를 캐스팅했을까?
암튼 캐스팅은 제대로 한 것 같다.

우선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보았을 것 같은 영화를 소재로 삼았다.
나는 그중 안 본 것도 많지만, 슈렉, 매트릭스 등을 철학의 소재로 삼은 것은 잘 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리고, 영화를 못봤을 사람을 위해, 또는 나처럼 졸면서 비디오로 봐서 줄거리가 가물가물한 관객을 위해,
줄거리를 쌈빡하게 정리해 준 것도 선생님다운 일이었다.
그리고는 철학적인 분석을 곁들였는데, 이것도 제법 읽을 만 하다.
물론 철학적인 구도가 지나치게 <이분법적>인 면은 <철학>이란 놈이 원래 밥맛이라서 그런 것이고.
철학이란 따지는 학문인데, 따지는 넘 치고 밥맛 아닌 놈 없다.

그런데도, 책을 읽어나갈수록 마음에 드는 것은,
제법 어려운 낱말들을 참 쉽게 설명한다는 거다.
<숭고>가 절망, 불쾌, 고통,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정서들을 통과해서 도달하게 되는 안도감, 쾌적함, 쾌감, 기쁨의 정서를 뜻한다고 하는 설명은 내가 본 어떤 비평가들의 설명보다 쉬웠다. 그 예로 슈렉을 든 것도 탁월하다.

요즘 워낙 학력 인플레가 심해서 어떨지는 몰라도, 고등학교 윤리를 배웠을 정도 수준이라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에피스테메, 아뷔투스 같은 생소한 낱말들이 나오지만 독자를 위해 충분히 설명을 깔고 있다.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그리고 나서 또, 덤으로 얻게 되는 세상 읽기는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보너스>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이왕주란 작가에게 이렇게 칭찬을 늘어놓고는 있지만, 내심 한켠에선 그에게 아쉬움이 남는다.
그가 서양, 중국의 철학 뿐만 아니라, 한국어의 구사에도 소질을 가졌더라면... 하는 아쉬움.
그는 포스트 모던한 시대의 <유목민적 지식의 조합>에 분명 성공하고 있지만,
이 책에서 서양 철학자들의 <명제> 말고, 주역 같은 동양 철학이나 한국 철학에 따른 분석도 맛보여주었으면 금상첨화가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

13쪽의 범부필부는 아무래도 요상스런 낱말같다. 필부필부는 들어 봤어도...
27쪽의 파란곡절도 희한한 말이다. 파란만장과 우여곡절을 짬뽕하셨나? 아니면 '파란 우여'님한테 홀렸나?ㅋㅋㅋ (86쪽의 배게는 베개의 오타라고 귀엽게 봐 준다손 치고,)
95쪽의 순간der Augenblick은 눈 Augen 을 한번 감았다 뜨는 blicken 그 사이에 흐르는 아주 짧은 시간을 뜻하는 독일어라고 하는데... 아니, 한자로 瞬間을 찾아 보시면, '눈 깜박일 순, 사이 간'이라고 친절하게 나와 있을 텐데... 그러면 눈 깜박일 사이라는 설명이 더 쉬울텐데... 굳이 독일어까지 들이대시면... 아니되옵니다.
그가 쓰는 한자 성어는 어딘지 어색한 것이 많다. 전선에서 죽음과 삶의 백척간두에 놓인 전사들(312쪽.)...에서 백척간두란 풍전등화와도 같이 위태롭다는 뜻의 한자 성어인데, 여기서는 '기로'나 '갈림길'이 어울린다. 죽음의 백척간두는 말이 좀 되지만, 삶의 백척간두란... 헐~이기 때문이다.

참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필자가 이런 실수를 저지르는 것을 보고 아쉬워서 푸념하는 말이다.

그가 디 아더스에서 한 말...

중동... 에 대해 헷갈린 후,,, 이런 사실을 알게 되고서, 처음 떠올린 것은 소박한 분노, 즉 꺾인 자존심에 대한 반감이었다. 하지만 방향이나 명칭 등은 차라리 사소한 것이다. 나중에 여기에는 훨씬 더 심각한 문제들이 엮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곧 역사, 사회, 지리 등 텍스트를 채우고 있는 내용들조차 깡그리 힘있는 유럽 중심의 시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여기에 철학을 더 덧붙이고 싶다.ㅠㅠ 이 책이 철학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워낙 정신적인 비중이 크기도 하고...)
우리에게 명백히 서쪽인 방향을 동쪽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처럼 역사, 종교에 대한 지식들도 우리와 상관없이 그들이 이해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논리틀들을 그대로 옮겨와서 배우고 가르치고 시험에 출제하고 답을 쓰며 따라해야 했으니 말이다.(이 책에 등장한 서양 중심의 철학자들은 그들의 개념으로 논지를 전개함이 더 적절했으리라고 애써 위안하자. -.-;;; 그저 따라해야 했던 것은 아니라고...)
이 관행은 바뀔 수 없는 것인가. 이제 우리 관점에서 방향도 정하고, 시각도 정해서 우리의 체취와 지문이 묻어나는 내용들을 우리의 언어로 우리 식으로 말해 볼 수는 없을까?(84쪽)

그분이 쓰신 그대로.... 그대로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분이 다음 번엔 꼭 그렇게 하시길 간절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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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4-23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말미에도 오타인지 인쇄 잘못인지 몇 군데 눈에 거슬리긴 했어요
그렇다고 설마 파란우여라고 했을까요?..후후후
 
조선과 그 예술
야나기 무네요시 지음, 이길진 옮김 / 신구문화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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柳宗悅, 일본사람이다. 야나기 무네요시.
한국 미술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면,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
한국의 미를 '비애의 미'라고 비하했다고 식민 사관에 사로잡혔다고 욕듣던 인물.
과연 이 책을 읽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한국인들은 안 읽으면서 욕한다고 홍세화 선생이 말했다. 한겨레 안 보는 사람들이 한겨레 욕한다고. 이 책도 읽지 않고 욕하는 이들도 많으리라.)

식민 본국 일본인으로서 조선을 몇 번 방문해 보고, 조선의 민예품에 반해서 민예박물관을 만들려고 전국을 뛰어다닌 사람.

내 생각으론 그가 미술사학자도 아니고, '조선과 그 예술'을 내던 때가 1922년 34세의 젊은 청년이었기 때문에, 조선을 몇 번 방문한 경험만으로 한국의 미에는 이런 특성이 있다고 내세운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기 쉬운 일이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 보면, 야나기 무네요시는 우선 1920년대 일본 지식인들에게 유행한 '사해 동포주의'와 '실용적 학문'에 관심을 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시라카바(白樺)의 동인의 특징이다.
그의 글에 드러난 논지는 '일본인들이 심하다. 몰지각하다.'는 정도의 느슨한 시각이 들어있지만,
그의 성급한 일반화가 식민 사관에 사로잡힌 편견이 아님은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구체성을 획득하는 장면을 많이 접할 수 있다.

조선을 알기 위해서는 장날을 보는 것이 지름길임을 알고, 조선의 민예품을 보면서 감탄, 또 감탄하는 식민 사관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는 반야심경에 나오는 말을 인용하면서 '거리낌이 없어 공포가 없다.'는 말로 조선 민화의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러운 미를 잘 표현하고 있다. 상당한 관심과 애정이 담겨있다고 보인다.

그의 애정은 민예와 그 작자를 통하여 단일한 전통을 가진 민족으로서의 조선을 <발견>해 내게 된다.
그래서 그는 한국인들에게도 일본의 횡포를 전하려 한다.

어느 민족이 다른 민족을 동화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은 20세기의 오늘을 사는 사람에게는 의문에 속하는 문제의 하나입니다. 병탄이란 위압적인 수단은 말할 나위도 없고 평화적 정책으로 동화가 가능하리라는 것도 세계의 역사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또 오늘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면 긍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일본과 같이 내부적 모순을 가지고 불완전한 극한 상태에 있는 자가 남을 개화시키겠다고 한다면 이를 누가 믿을 것입니까? 우리가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한국은 위대한 아름다움을 낳은 나라이고 위대한 아름다움을 가진 민중이 살고 있는 나라라는 사실...

일본의 동포여, 칼로 일어난 자는 칼로써 망하는 법, 군국주의를 어서 파기하라. 인륜을 짓밟는다면 세계는 일본의 적이 되고, 멸망하는 것은 조선이 아니라 바로 일본...

이런 말들을 읽으면 마치 강직한 독립 투사의 변호같지 않은가?

세계 예술에 있어서 훌륭한 위치를 차지하는 조선의 명예를 보존하는 것이 일본의 인도라고는 하지만, 그는 인간으로서의 일본인에게 큰 희망을 품고 있다. 이런 부분은 정치의 맹목에 대한 착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조선의 공예가들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으나 놀라운 미적 직관의 소유자로서 독특한 조선만의 고유미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하는 안목이나,
조용하고 쓸쓸한 마음을 흐르듯 길고 길게 내리는 곡선이 연연하고 끝없이 호소하는 듯한 아름다움을 나타낸다는 부분은 상당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혹자는 그가 조선의 반도적 특성에서 나온 비애미로서의 아름다움을 조선을 폄하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지만, 꽃병이 없고 어린이의 장난감이 없고 음악이 슬프다는 그의 논지를 보면 재치가 돋보이는 것이라고도 할 만하다.

석굴암에 대한 연구, 광화문을 파괴하는 데 따른 아픔, 생활 속의 교졸함과 담담함이 담긴 조선의 도자기 등은 뛰어난 기록이다.
정치는 예술에 대해서까지 무례해서는 안 된다. 예술을 침해하는 따위의 힘을 삼가라. 나는 죄짓는 자 모두를 대신하여 사과하고 싶다는 태도는 그의 진지한 태도를 보여준다.

알지 못하고 욕하는 것, 그것이 편견이다.
읽지 않고 비판하는 것, 그것이 무지다.
과거, 오만과 편견에 휩싸인 일본에 당한 우리가, 지금 오만과 편견에 휩싸여 올바른 <생활의 발견>에 실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요즘 EEZ를 둘러싼 긴장감 도는 뉴스를 보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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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 열화당 미술책방 23
오주석 지음 / 열화당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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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은 김홍도를 특히 사랑했다. 편애라고 해도 그분도 인정하실 것이다.

그렇지만, 김홍도의 그림을 전격적으로 모아둔 이 책을 보면 ‘어찌 김홍도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김홍도는 집안 내력으로는 화원이 될 수 있는 배경이 일절 발견되지 않는다.

집안의 세업으로 그림에 종사해 온 여타 화원과 달리 순전히 자신의 천분과 실력만으로 화원 세계로 진입한 작가인 것이다.


그리고 김홍도의 화가로서의 세계는 정조 임금이 사랑과 불가분의 관계다.
정조 임금 가는 곳에 김홍도는 늘 기록자로서 따라다닌 셈이다.

그러다 보니 그림의 종류도 국왕 행차에서부터, 각종 풍속도, 무예도보통지의 예화, 용주사의 탱화까지 걸치지 않은 곳이 없다. 그야말로 조선의 모든 분야를 통달한 화가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그의 서당, 씨름 같은 풍속화는 오히려 그의 대표작이라기 보다는 그로키에 가까운 작품이다.


선비로서의 김홍도, 그리고 시, 서, 악에 두루 능통했던 김홍도를 이처럼 잘 드러낸 책을 찾아 보긴 힘들 것이다. 그만큼 오주석은 김홍도에 천착한다.


이 책을 접하면서 아쉬운 점은, 오주석의 말발이 이 책에선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주석의 <그림 읽어주기>는 얼마나 쫀득쫀득한 입말의 맛이 살아있는가. 그림을 부분부분 확대해 가면서 그림을 읽어주는 오주석의 독특한 책맛이 없는 것은 이 책이 열화당 미술책방의 시리즈로 나온 것이어서 편집자의 의도가 강하게 들어간 것이라 많이 아쉽긴 하지만, 김홍도의 그림 세계를 전망하는 일은 분명 즐거운 일이었다.

23,000원이란 값은 이 책을 사기에는 분명히 비싼 가격이다. 그리고 오주석이란 이름을 보고 사서는 안 되는 책이 이 책이다. 그렇지만 나처럼 빌려서, 그의 가계도 같은 재미없는 부분은 휘리릭 넘기고, 그림에 대한 이야기나 한시를 감상하기에는 아름다운 책이다.

조선 시대 사람들은 풍류를 아는 사람들이었지 않은가.


그의 여러 화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마상 청앵도의 화제 한 수.


어여쁜 여인이 꽃 아래서

천 가지 가락으로 생황을 부나

운치있는 선비가 술잔 앞에

밀감 한 쌍을 올려 놓았나

어지럽다 저 황금빛 베틀 북이

수양버들 물가를 오고 가더니

안개와 비를 이끌어다

봄 강에 고운 깁을 짰구나!


이 책에서 처음 만난 <염불서승도> p.240는 그 서느러운 스님의 뒷모습이 정말 매력적이어서 한 장 확대복사해서 책상 아래 넣어 두었다. 스님의 뒷모습을 만날 때마다, 에밀레 종소리를 마음 속에 울릴 일이다.




그리고, 사람은 골똘히 생각하는 것이 눈에 자주 밟히는 법인가.

법정 스님의 책을 읽으면서, 말을 삼갈 것을 마음에 두었던 탓인지... 이 책에서 유독 눈에 띄는 그림은 <신언인도> p.99 였다. 말을 삼가는 사람의 그림.

조전비(예서의 하나)체로 쓰인 화제도 멋들어지지만, 차분하게 두 손을 모은 그림이 단아하다. 화제에 ‘이는 옛날 말을 삼가는 이의 그림이다. 말을 삼가 말을 많이 하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말이,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하던 시조를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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