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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칼을 거두고 평화를 그려라 - 반전과 평화의 미술
박홍규 지음 / 아트북스 / 2003년 11월
평점 :
절판
리뷰를 몇 자 적어 보려고 이 책을 검색하니 사회에서 한 권, 예술에서 한 권이 검색된다.
이 책의 소재는 예술이고, 주제는 사회적인 것이니 그럴 만도 하다.
저자 박홍규는 사건을 중심으로 파고 들기 보다는 사람을 중심으로 파고 들기 좋아하는 사람인 듯 하다.
그가 독특하게 평전 형식의 글을 많이 쓴 것도 그런 성향을 잘 드러낸 것 같아 보인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반전 이미지들에 대한 평가를 내린 것이다. 그 목차는 아래와 같은데...
자크 칼로|전쟁의 비참과 불행
프란시스코 데 고야|나는 보았고, 내 그림은 비명을 지른다
오노레 도미에|권력자에게는 비수 같은 풍자, 가난한 자들에게는 연민과 위로
19세기 반전화|제국주의의 그늘과 치욕
케테 콜비츠|선한 사마리아의 여인, 인류의 어머니
조르주 루오|신앙인이자 고통받는 인간, 화가이자 장인
나치와 반전화|내 조국을 고발한다! 나치와 '퇴폐화가'들
멕시코혁명과 반전화|인류의 양심에 박힌 가시 스페인시민전쟁을 증언한 화가들
제2차세계대전과 반전화|예술을 통한 레지스탕스
20세기 후반 반전과 평화의 미술|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인물들을 중심으로 쓰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19세기와 20세기의 각 시대에 비친 반전 작가들을 간단하게 살펴보는 구성이다.
칼로의 망원 렌즈를 대는 시점과 고야의 줌렌즈를 당기는 시점은 상당히 다른 느낌을 준다.
파시스트 국가같이 인간성을 파괴하는 집단을 비판하고 저항하는 일은 조국을 사랑하는 자의 의무(25)라고 하는 작가는 알사스 출신의 칼로를 통해 "대부분 독일어를 사용하는 알사스 지방 주민들에게 프랑스어를 강제한 역사의 왜곡"일 따름인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고야의 국가 폭력이란 <거인>에게서 달아나기 바쁜 사람들도 안타깝지만, 전쟁 - 기계로 전락한 얼굴없는 폭력 조직으로서의 국가와 권력에 반대되는 피해자 민중을 클로즈업하는 그림들도 읽어 준다.
3등열차란 그림에서 투박한 손과 거칠고 튼튼한 얼굴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민중의 빈곤을 잘 드러낸 오노레 도미에의 그림도 인상적이다.
내가 자주 보던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부르주아 승리 찬양에 머묾을 아쉬워한다.
베레시차긴의 <전쟁 예찬>은 해골들의 간단한 삼각구도로 피라미드를 이룬 형태인데 평생을 반전화를 그렸다고 한다. 한국 미술의 반공주의는 다른 장르보다 강해서 친미, 친불적이어서 장님 코끼리 만지기 식이란 저자의 말이 이해가 간다.
어머니 화가 케테 콜비츠나 칼로, 고야 등이 <판화>에 매이는 이유가 궁금했는데 이 책에서 알게 되었다. E이 비싸 부자들만이 소유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할 수 없던 인쇄 상태가 나쁘던 당시로서는 유화에 비해 판화가 훨씬 유리했던 것이란다. 이 책의 표지화인 '독일 어린이들이 굶고 있다.'는 참전 아들 피터의 죽음을 겪고 그린 그림들이다. 전쟁으로 아들을 잃은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씨앗들이 짓이겨져서는 안 된다.>는 그런 마음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림으로나마 아이들을 억세게 감싸안은 어머니들의 의지를 그린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인 루오는 굵은 붓선에서 넘쳐나는 감성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 중 <올바른 사람은 백단나무처럼 자기를 찍는 도끼에 향기를 풍긴다>는 말은 인상적이다.
반전화라면 피카소를 뺄 수 없는데, 외면적 감각을 부정하고 내면적 지성을 강조하는 그림들로 유명하다. 게르니카는 너무도 유명하고 <한반도의 학살>은 관념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샤갈의 <전쟁>은 전쟁조차도 평화로워보여 삶과 죽음의 몽환적 표현은 사람들을 위무해 주며,
르네 마그리트의 <기억>은 관통상을 입은 비너스를 그려 전쟁의 충격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국 전쟁은 각종 보도에서도 소외되었듯 반전 미술에서도 소외된 조용한 아침의 전쟁이었으나,
베트남 전쟁은 각종 매체를 타게 된다. 미라이 학살 그림 위에 And babies?(그럼 아기들은요?) 하는 기자의 질문에 And babies.(아기들도 죽였어요.)하는 군인의 대답이 붙은 그림 한 장은 가슴을 콱 막는다.
핵폭탄이 전쟁 억지력이라는 억지스런 주장은 이제 우습고, 자기들의 수만 발의 핵폭탄은 평화를 위한 것이지만 이라크와 북한의 조그만 움직임은 악의 축이 되는 미친나라 미국의 광기는 전쟁을 전자게임화하여 양심을 잠들게 하고 있다.
반전의 이미지를 읽는 일은 <모든 전쟁은 나쁘다>는 것을 가르치는 일이다. 미국은 군대를 살인자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억지로 전쟁을 끊임없이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주장은 이것이다.
<가장 정당한 전쟁보다 부당한 평화가 훨씬 낫다>는 것.
일본어에서 <양키->라는 외래어가 있다. 가타카나로 쓰는데, 이건 양키 미국인을 뜻하는 게 아니다. 못된 놈, 나쁜 놈, 양아치란 의미로 양키-를 쓴다. 핵폭탄을 맞았으니 그런 용례가 나올 법도 하다. 양키는 고홈이 아니라 지구를 떠나야 할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