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길 한빛문고 12
이문열 지음, 김동성 그림 / 다림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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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하는 시간을 매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들은 말이 생각난다. 도가 통하면 뜨거운 눈물이 난다고. 어느 분야에서건 그 도가 통하는 순간이 있다고. 명상에서도 그 순간에 자신의 내부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눈물이 있다고 한다. 그런 순간이 바로 하늘을 얻은 기분일까?

우리는 앎에의 끝모를 목마름을 가지고 있다. 알기 위해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누고, 예술작품을 경험하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그러나 앎에의 욕구는 채워지지 않는 밑빠진 독이다. 또한 앎 혹은 인식이란 얼마나 불확실한가. 신기루같은 인식으로 미명을 더듬어가고 있는 게 우리네 삶이 아닐까? 누군가 확실한 인식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있다면 손이라도 꼭 쥐어보고 싶다.

하늘길! 우리가 올라가려고 안간힘 쓰는 하늘이 과연 존재할까? 그저 추상적인 그 단어가 내포하는 것은 진리 또는 진실일 텐데. 그 진리의 꼭대기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하늘의 별과도 같다. 하늘은 존재하지 않고 하늘길만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그 길을 열심히 가는 우리는 단련되고 슬기로와질 것이다. 그리고 어떤 난관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함을 지닐 것이다. 진리를 위해 내딛는 발자국에서 충분한 의미를 건질 수 있을 것이다.

설화에서 그 모티브를 따와 작가가 하나의 판타지 문학으로 승화 시킨 <하늘길>은, 인간이 하늘에 이르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욕심, 거짓 감정, 경험이 빠진 피상적인 책읽기 등이 그것이다. 몸을 피폐하게 하는 찌들린 가난의 원인을 묻기 위해 하늘의 옥황상제를 찾아가는 한 젊은이는 결국 넘치는 복을 받아 부유한 생활을 하지만 또 다시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물질적인 풍요가 채워주지 못한 어떤 갈증은 무엇일까? 그것을 나름대로 생각해 보는 일을 작가는 권하고 있는 것 같다. 진실 그 자체로 나에게도 남에게도 깨어있어야 겠다. 헛된 욕망을 버리고 진솔한 경험으로 나의 인식의 폭을 넓혀야겠다. 하늘보다는 그 길에서 만나는 것들에 인사하며 따스한 시선을 보낼 줄도 알아야겠다. 그래서 나도 뜨거운 눈물로 씻기고 싶다.

김동성이 그린 풍속화풍의 수채화는 서늘한 감동을 준다. 태평스러운 어조와 환상적인 글의 분위기와 잘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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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 날아간 뒤주 왕자
김은숙 지음 / 함께자람(교학사)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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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쟁의 희생양이 되었던 불운한 왕자, 사도세자를 소재로 한 이 책은 역사적인 사실이나 사건의 객관적인 기술보다는 작가의 상상력이 무한히 개입된 역사동화이다.

비유적인 표현이나 작가의 감정이 고조된 묘사가 다소 많아, 오히려 애매하게 와닿은 부분이 적지 않다. 영조 때의 심한 당쟁을 하얀 깃발과 검은 깃발의 비유로 한 것은, 그 시기의 역사적인 사실을 정확한 정보로 설명을 곁들였더라면 더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싶다.

사도세자의 내면에 촛점을 맞추어, 그의 인간적인 고뇌와 부정을 그리는 마음 그리고 효종의 뜻을 이은 북벌계획에 대한 원대한 꿈 등을 상세히 그린 점이 눈길을 끈다. 임금으로서 갖추어야 할 점 - 백성의 삶을 제대로 알고 백성을 사랑하는 것 - 에 대한 생각으로 고민하는 점도 인간적이다.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흔히 잘못 인식되고 있는 인물을 소재로 그의 인간적인 고뇌와 희망 그리고 올바른 역사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기대를 걸 수 있는 책이다. 다소 지리한 묘사와 너무 잦은 예스러운 어휘들이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 데 곳곳에서 걸리긴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새로운 맛을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뒤주에 갇혀 우주로, 그가 그토록 그리던 원대한 꿈을 안고 그것을 펼칠 수 있는 우주로 날아간 사도세자의 내면을 나름의 해석으로 풍부하게 그린 책이므로, 이 시기의 전후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갖고 보게 하면 아이들이 좀더 편하게 인물에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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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 꿈을 그린 추상화가 어린이미술관 5
임창섭 지음 / 나무숲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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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만 느껴지는 추상화라는 장르를 어린이 미술관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칸딘스키나 몬드리안을 먼저 떠올리기 쉬운 추상화 영역에서, 우리의 화가 김환기의 애잔한 삶과 꿈이 묻어있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대상을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보고 느끼는 나의 감정을 뽑고 뽑아 표현하는 추상화. 그래서 선은 단순해지고 간결해지며, 들여다보면 수도 없이 많은 점들이 그 선을 이루고 있다. 점과 선이 이루어내는 아름다움과 색채의 조화가 빚어내는 어울리지 않는 듯 절묘하게 버무려져 있는 색채의 향연.

눈을 깜박이지 않고 거리를 좀 두고 들여다보며 가만가만 귀 기울이면, 그곳에선 아주 오래된 영원의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우리가 태초에 갖고 있던 꿈들. 그 꿈을 위해 밤하늘 별을 헤며 소망하고 옷깃을 여미는 우리들의 소박한 그러나 영원한 꿈의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사슴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마알간 백자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눈이 시리게 푸른 강에 비쳐 어른대는 둥그런 달빛의 이야기일 수도, 언제나 그곳에 아버지처럼 버티고 있는 산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김환기 화가가 세상을 뜨기 두 달 전쯤에 그렸다는 작품은, 어딘지 엄숙한 분위기에 매료된다. 짙은 색 수많은 별들 사이로 한 곳에서 만나는 여섯 개의 하얀 선, 그리고 위쪽에서 아래로 떨어질 듯 내리꽂히는 형세를 하고 있는 회색의 역삼각형, 그 안에서 빛나고 있는 작은 별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고 화가는 그렸던가? 이별을 예감하고나 있었던 것처럼, 자신의 꿈을 비추는 별과 한 곳에서 만나기나 하려는 듯, 아니면 떨어져 있던 가족들과 만나기라도 하려는 걸까? 마음을 그저 경건하게 모으며 화가의 마음이 되어 간결하게 소박하게 꾸밈없이 살아가기로 마음먹어 본다.

직접 환기미술관에도 가 보고 여러가지 소재의 바탕에 여러가지 재료의 색채도구로 마음을 표현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책 뒤에 친절하게 소개되어 있는 '김환기 선생님처럼 해 보기'가 입맛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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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나라 노루 왕 - 저학년문고 3
서정오 지음, 황성혜 그림 / 일과놀이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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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오 선생의 옛이야기는 남다르다. 구수한 입말로 씌어진 우리 옛이야기가 우선 읽기에 참 편안하다. 읽어도 읽어도 물리지 않고 새롭다. 아이가 엄마에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여 들려달라고 조르는 이유도 이런 것이라 생각한다. 편안하게 잠자리에 누워 엄마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다.

서정오 선생의 이런 입말에는 편안함 못지않게 정이 묻어난다. 우리의 옛이야기를 말하는 목소리로는 그지없이 좋다. 그 속에는 선하고 부지런한 우리 옛사람들이 있고, 나쁜 사람을 골려주는 지혜로운 사람들도 있고, 힘든 생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사는 사람들의 해학과 기지가 펼쳐진다. 그리고 바로 이 책에서처럼, 목숨을 아끼고 사랑하며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순박한 사람들이 있다.

<노루나라 노루왕>에는 아주 작은 목숨이라도 가볍게 여기지 않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것은 남을 보살피고 도우려는 마음에서 나온다. 그리고 동물의 목숨까지도 함부로 하지 않고 귀하게 여기는 소박함이 결국 복을 가져온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교훈이 큰 목소리로 말하는 것은 아니고, 이야기가 재미있어 빠져들어 읽다보면 그런 말을 하는 것이라 눈치챌 수 있다. 가령 개미의 목숨을 살리려고 엉성하게 석 새 짚신을 만들어 신고 다니는 한 농사꾼의 이야기는 과장되고 우스꽝스럽게 보일 지 모르지만, 그만큼 순박함을 느낄 수 있어 좋다. 나에 대한 계산은 없고 상대만 생각한 행동이다. 어리석게 보이지만, 미물들이 갚는 은혜로 보상 받는 주인공들을 보며 안도할 수 있다.

어느 목숨이든, 목숨은 모두 귀한 것이라고... 석 새 짚신의 교훈이 식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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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랑 달릴 거야 꿈꿈이의 자연학교 1
손정혜 지음, 김정한 그림 / 느림보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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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 이야기이다. 그것도 요즘 많이 키우는 청거북 이야기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마리 길러볼까 생각중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 그게 그리 쉽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0년까지도 산다는 청거북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돌보려면 여간 정성을 기울여야 될 게 아닐 성 싶다.

하지만 이 책은 동물 이야기가 아니다. 열등감에 시달리는 주인공 아이가 그것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키우는 이야기이다. 겨례는 100미터 달리기를 45초에 하는 느림보이다. 그래서 놀림을 당하고 늘 풀이 죽어 있다. 교실에서 동물관찰을 했던 거북을 느림보라는 이유로 겨례가 떠맡게 되면서 일은 시작된다.

무심하게 내버려 두었던 두마리의 거북에게 온 정성을 쏟는 사람은 겨례가 아니라, 세 들어 사는 한 학년 아래의 훈이이다. 맞벌이 부모 밑에서 할머니와 늘 심심한 생활을 하며 외로움을 타는 2학년 훈이는 두마리의 거북에게 이름도 지어주고 영양가 있는 먹이를 준다. 뿐만 아니라, 목욕, 수조 청소, 일광욕 등 세세하게 신경쓰고 돌보는 일을 아무도 모르게 담당한다.

기분 좋은 거북이 속으로 생각하는 대사가 말주머니에 나오는 것이 재미있다. 훈이와 거북은 서로 마음을 주고 받으며 좋은 관계를 맺고 사랑을 주고 받는다. 거북이 달리기 대회에서 두 마리의 거북, 별이와 달이가 훈이를 주인으로 알아보고 어기적거리며 달려오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정성으로 사랑을 쏟는 대상에 정을 주고 매달리는 것이다. 신기하다.

훈이가 거북을 이렇게 잘 돌볼 수 있었던 것은, 겨례 반 이이들이 쓴 관찰일기 덕분이다. 반 아이들 한명한명이 각각 다른 글씨체로 또박또박 적어내려간 관찰일기를 엿보는 재미가 솔솔하다. 거기서 새롭게 알게 되는 '거북 키우기' 정보 또한 유익하다.

뒤늦게 자신이 거북에게 너무 신경을 안 쓴 것을 깨달은 겨례는 이제 조금씩 변화해 간다. 거북에게 정성도 보이고, 무엇보다 느림보라는 불명예를 벗기 위해 달리기 연습에 들어간다. 거북이도 다음 번 달리기 대회를 위해 달리기 연습에 들어가고, 겨례는
자신의 꿈인 비밀 경찰이 되기 위해서는 달리기를 잘 해야 된다. 끝까지 자신의 꿈의 자리를 아무에게도 내놓지 않고 버티는 모습이 애교스럽다. 이런 겨례도 언젠가는 어른이 되어 느림의 미학을 예찬하고 있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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