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따로 행복하게 - 3~8세 세계의 걸작 그림책 지크 35
배빗 콜 지음 / 보림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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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이것 아니면 저것, '하나'가 되라고 은근히 강요하는 분위기다. 결혼도 그래서 해야될 것 같아 사랑한다고 믿고 하는 건 아닐까? 이 그림책 속 끝혼식에서 주례사의 물음에 '아뇨!'라고 크게(아마도) 대답하는 엄마 아빠가 인상적이다.

<따로 따로 행복하게>를 처음 본 건 4년전이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이혼율 1위국이라 한다. 하루 평균 220쌍 정도가 이혼을 하고 있다 하니, 용감하다 할지 성급하다 할지, 그런대로 행복하다 믿고 살고 있는 나로선 놀라운 통계다. 이 기발하고 발칙한 그림책의 원제는 'Two of everything'이다. 번역자의 우리말 제목은 배빗 콜이 하고 싶은 말을 잘 풀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성인이면 당연한 듯 거의 누구나 하는 결혼식을 떠올려보았다. 끝혼식의 순서랑 다르지 않다. 형식적으로 해치운다는 느낌으로 치르는 결혼식에 얼마나 많은 책임과 희생과 인내가 긴 세월 따라와야하는지. 쉽게 입술에는 올릴 수 있는 단어 '이혼'이 우리 사회에서 이제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가정의 여러형태 중 하나가 되는 과정으로 - '결혼'처럼 - 받아들여야하나 보다.

한부모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이 그림책은 상황을 다른 각도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슬기와 재치를 선물할 것 같다. 배빗 콜의 다른 그림책에서처럼 그림도 아주 유쾌하고 익살스러워, 심각하게보다는 좀더 가벼운 마음으로 상황을 볼 수 있게 한다. 엄마 아빠가 극도의 성격차이로 싸움을 하는 장면은 영화 '장미의 전쟁'을 방불케하지만, 그것마저도 아이들은 꽤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현명한 해결책을 마련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하니 말이다.

개성과 문화와 가치관이 다는 사람과 사람이 온전히 하나가 된다는 것은 무한한 이해와 양보가 필요하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차라리 둘이어서 더 아름다운 모습일 수 있다면, 굳이 하나를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속표지의, 둘씩 짝지어 있는 자잘한 그림들이 눈을 끈다. 마지막 장면, 부모님도 둘이어서 더 좋고 행복하다는 내용은, 우리 정서로는 파격적이지만, 지금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우리 가족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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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팟이 농장에 갔어요 스팟의 날개책 시리즈 1
에릭 힐 지음 / 프뢰벨(베틀북)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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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팟 시리즈는 꽤 유명한 시리즈 유아그림책 중의 하나인데, 사실 아이에게 사 주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일로 찾은 책방에서 여섯 살 작은 아이가 이 책을 보고 놓질 않는다. 좀 어린 것 아닌가 하는 염려는 잠시, 당장 책장을 넘기며 재미있게 생긴 날개들을 차례로 펼쳤다.

깨끗한 하얀색 바탕에 커다랗게 검정색으로 쓰인 간단한 글귀들이 우선 시선을 확 잡아당긴다. 맑은 원색을 사용한 단순한 윤곽의 그림들도 참 귀엽다. 다음 장을 어서 넘기고 싶을 정도로 호기심을 잔뜩 자극하기도 한다. 우선 아이가 좋아하는 강아지가 주인공이며 게다가 그 강아지는 시종 또래 친구들을 찾고 있다. 아이들이랑 꼭 닮았다. 호기심도 많고 친구를 보면 반가워 어쩔 줄 모른다.

15권의 시리즈 중 아이에게 마음에 드는 걸 고르라고 했더니 8권을 골라 벌써 날개를 펼치느라 정신 없다. 어른의 잣대로 '이 나이엔 이걸 읽어야 돼'가 아니라, 그저 아이가 좋아하는 것으로 고르게 하여 즐거움을 만끽하는 모습을 보는 게, 엄마가 더 즐거울 수 있는 길인 것 같다. 사실 날개책을 넘기면 나도 꽤 신나는 비명이 나온다. 그리고 고롷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강아지라니! 좋아하는 것으로 미피 옆에 스팟을 나란이 앉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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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그림책은 내 친구 2
앤서니 브라운 글 그림, 장미란 옮김 / 논장 / 200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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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은 영국중산층 가정의 고급스럽고 우아한 실내을 들여다보는 흥미와 함께 극도로 섬세하게 그린 사물과 인물을 찬찬히 훑어보는 맛만으로도 최고다. 게다가 앤서니 브라운은 가볍게 스치고 지나가지 못하게 생각거리를 던지고 있어 더욱 신실하게 느껴진다. 내가 그림책을 감상하는 방법 중 하나는 글 따로 그림 따로 보는 것이다. 글을 먼저 읽고 싶어 맘속에선 안달이 나도 일부러 그림만 먼저 보는 맛이 솔솔하다. 그림이 글 이상의 것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터널>에는 이야기책을 좋아하는 여동생과 축구공을 좋아하는 오빠가 등장한다. 앤서니 브라운의 다른 그림책들에서 처럼, 여기서도 여자아이에게 더 힘을 실어주고 있다. 줄거리라면, 동양이든 서양이든 여느 집에서나 날마다 있는 오누이간의 티격태격 말다툼이 숨길 수 없는 형제애가 발휘되면서 어떻게 해결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앤서니 브라운의 특기, '그림 속에 그림 숨겨놓기'를 기억한다면 이 그림책 속에 군데군데 자리하고 있는 '옛이야기'를 놓칠 수 없다. 물론 '옛이야기'는 여동생의 몫이다. 여동생은 책읽기와 공상을 즐기고 밤에 들려오는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하며 다소 내성적인 성품을 지녔다.

이 아이는 웃고 떠들고 뒹굴며 활달하게 자신을 발산하는 오빠와 곧잘 야단을 치는 엄마 사이에서 남모르게 속앓이를 했을지도 모른다. 이 아이 곁에 늘 능청스럽게, 혹은 필연적인 것처럼 있는 건 옛이야기책과 그 이미지들이다. 겉표지, 속표지에는 물론 이 여자아이의 침실 벽에도 옛이야기 그림액자가 걸려있다. 엄마에게 야단맞고 집에서 잠시 쫓겨나 잡다한 물건들과 난잡한 낙서가 있는 쓰레기장을 뒤로 하고 옛이야기책에 쏙 빠져있는 여자아이는, 입고있는 빛깔 고운 빨간색 더플코트만큼 인상적이다.

오빠가 호기심으로 들어간 터널을 따라들어가 반대편으로 나가보니 고요한 숲이 있고 그곳에서부터 이 아이의 판타지여행은 시작된다. 숲의 나무들이 옛이야기책 속의 온갖 형상들을 하고 튀어나올듯 하다. 여태까지의 액자그림은 이 장면에서 전면을 꽉 채우는 환상적인 그림으로 바뀐다. 온갖 무서운 형상들은 마치 오빠랑 사이좋게 지내지 않은 자신을 잡으러 달려들 듯하다. 채도를 낮춘 초록바탕에, 겁먹은 얼굴로 쌩~하고 도망가는 동작의 느낌이 잘 나타나는, 아이의 빨간 코트가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아이는 드디어 숲을 빠져나오고 돌이 된 오빠를 눈물로 녹인다. 한마음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 오누이가 서로 마주보며 눈웃음 짓고 있는 장면은, 이미 액자그림이 아니라 전면 그림이다. 판타지와 현실이 건강하게 하나되는 장면이다. 마지막 속표지에서도 동생의 옛이야기책과 오빠의 축구공은 함께 붙어 놓여있다.

옛이야기의 힘은 이런 거라 느껴졌다. 옛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사람의 내면에 숨어있는 선과 악을 극명한 대조로 만날 수 있다. 자신의 내면에 자리하고있는 본능적인 악마심리와 공포, 질투 따위, 실제로는 풀어서 살려낼 수 없는 제약들이 옛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건강하게 풀려난다. 열 마디의 설교나 충고보다 아이의 억눌린 감정을 해소해주고 건강하고 밝은 생활로 되돌아오게 하는 힘을, 옛이야기는 갖고 있다. 게다가 아이의 선한 마음 또한 옛이야기를 통해 현실에서 더 빛을 발한다는 건 의심할 나위 없다.

꼬옥 안고 서있는 오누이 주위로 작고 앙증맞은 하얀색 꽃들이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켜고 있는 것같이 밝고 화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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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커트니 비룡소의 그림동화 29
존 버닝햄 글.그림, 고승희 옮김 / 비룡소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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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더더기 없는 글과 여백을 많이 두는 그림 속에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담고 있는 존 버닝햄의 그림책은, 그래서 아이보다 내가 더 좋아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의 과감히 생략한 듯한 처리와 여운이, 책장을 덮고 몇날을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또한 숨기고 싶은 듯 마지막에 살짝 그려놓은 그림이 뭔가를 강하게 말하고 있다.

늘 그렇듯 기대와 호기심으로 이 그림책을 아이와 함께 펼쳤다. 그런데 시종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개가 아니라 아이들의 할머니 할아버지였다. 특히 두 분 할머니들이었다. 젊었을 적의 꽤 아름다웠을 미모는 예순 중반을 접어들면서 눈에 띄게 변해가고 있다. 아이들은 할머니가 놀아주는 걸 아주 좋아한다. 할머니만 보면 뭔가 놀이방식을 들이밀며 놀자고 조른다. 젊은 엄마는 뭐다뭐다 핑계를 대고 잘 놀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작은 아이는 할머니는 요술장이라는 말을 종종 한다. 할머니 손을 거치면 뭐든 뚝딱뚝딱 신기한 게 만들어지고 아이가 원하는 걸 잘도 들어주시기 때문이다.

'아무도 안 데려가는' 늙고 지저분한 똥개가 떠돌이 개가 된 것은, 아마도 젊은 부부들이 집에 함께 사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 아닐까? 커트니가 어느 날 끌고 들어온 여행가방에 적힌 세계 곳곳의 도시 이름과 새로운 집에서 식구들이랑 같이 지내면서도 갖가지 집안 일과 아이돌보기까지 하는 모습이 내 맘을 편하게 하지 않았다. 집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젊은 부부의 눈치를 살피며 집안 일을 하고 아이까지 키운다. 우리 아파트 공원에는 이른 아침이면 할머니들이 나오셔서 정답게 이야기꽃을 피우는 장면을 매일 볼 수 있다. 커트니가 공원에 나가서 다른 개들을 만나기도 하는 모습이 그 고요한 풍경과 닮았다.

우리도 세월이 더 가면 늙어가겠지. 손자손녀들에게라면 끔벅하시는 네분 할머니 할아버지. 깨끗하고 예쁘고 편리한 것만 찾는 젊은 엄마아빠. 내 아이들과 내 집이 제일 소중하듯 그 뿌리를 잊지 말아야겠다. 결국 우리를 이만큼 자라게 한 건 그 분들이 실어주신 정신적인 힘이라 생각된다. 조용히 자식들을 위해 늘 기도하시고 어려울 때면 용기와 지혜를 주시는 분들이다.

'개를 잃어버렸어요. 우리 커트니는요, 나이가 아주 많고요, 눈썹도 굉장히 진해요. 바이올린도 켤 줄 알고요, 저녁밥도 진짜 맛있게 지을 수 있어요. 또, 마술놀이를 하면서 아기랑 놀아 주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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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 베틀북 그림책 13
프리드리히 헤헬만 그림, 미하엘 엔데 글, 문성원 옮김 / 베틀북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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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여섯살 난 큰 아이를 데리고 빛그림 연극을 본 적이 있다. '피터와 늑대'라는 유명한 곡을 빛그림 연극으로 연출한 것이었다. 하얀 장막 뒤에서 움직이는 여러가지 그림자는 때론 실제보다 과장되기도 하고 때론 축소되기도 하면서 변화무쌍한 눈속임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 모든 그림자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빛이 있어야 했다. 빛과 그림자는 한 몸이었다. 하지만 그림자는 빛보다 엄청 큰 덩치로 나를 덮치려고도 하며 막연한 공포심을 조장하기도 했다. 세상을 은유로 해석하며 의미를 찾아가는 유일한 생명체, 우리 사람이 발휘할 수 있는 상상력의 힘이 그 단순한 윤곽에서 나오고 있었다.

막연함. 예순 중반을 향하고 있는 어머니는 이 단어를 가끔 내뱉으신다. 매사에 정확하고 자신만만하셨던 어머니가 세상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모든 걸 받아들이는 쪽으로 인생관을 바꾸신지도 어언 10년이 되었다. 물질도, 자식도, 젊음도 당신이 계획하고 꿈꾸셨던 대로 되지 않지만, 그저 앞으로 살아가실 길도 막연하다 하시지만, 오늘도 어머니는 열심히 먹을 갈고 붓을 잡아 마음을 가다듬어 글을 쓰신다. 어머니의 살아온 삶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린다. 오늘도 수용적으로 변한 어머니의 태도가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을 보고, 삶의 양면을 생각했다. 이 세상의 양면을 생각했다. 내가 빛의 편에 서 있다면, 그것도 인생의 반을 넘어선 시각에 서 있다면, 나의 그림자는 더 긴 형상을 하고 나의 발끝을 따라다닐 것이다. 생의 모든 떠도는 그림자들, 내가 빛이 있는 곳에 서 있게 해주는 모든 그림자들을 끌어안아야 한다. 죽음이라는 최후의 그림자까지 흔쾌히 받아들이는 오필리아의 자글자글한 얼굴이 빛으로 화사하다. 외롭고 덧없는 그림자들의 향연은 찬란한 빛의 향연으로 승화되었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나에겐 아직도 힘든 과제다. 그것은 내 안에 '나'를 버리고 넉넉한 자리를 많이도 만들어 두어야 한다는 걸 뜻한다. 어머니처럼 오필리아처럼. 인생은 연극이 아니라, 빛그림 연극이라고 고쳐 말하고 싶다. 덧없는 그림자들끼리 아웅다웅하다가 먼 나라에서 빛으로 부활할런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의 그림들을 천천히 넘겨보면, 삶이 무엇으로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인지, 오필리아의 목소리만큼 작은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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