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세어 보아요 마루벌의 좋은 그림책 12
안노 미츠마사 지음 / 마루벌 / 199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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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을 펼치면 아기자기한 모양의 창틀 같은 것이 보인다. 가로로 퍼진 직사각형에 네 각을 안으로 둥글게 살짝 깎아놓은 창문이다. 우리는 이 창문을 통해 밖에 있는 마을 풍경을 한눈에 본다. 숫자 0으로 시작되는 첫 장면엔 백지위에 연한 하늘색이 펼쳐지고 작은 강물이 마을을 세로로 가로질러 구불렁구불렁 흐르고 있다. 그 다음부턴 1에서 12까지 일년 열두 달의 마을 풍경이 차례로 펼쳐진다. 이 그림책은 사계절의 아름다움과 달마다 나눌 수 있는 가지가지 이야기를 그림 속에 담고 있다. 단지 숫자나 사물을 세는 여러가지 종류의 단위들만 인지시키기보다, 아이들이 담고 싶은 이야기를 많이 풀어내게 하면 활용범위가 넓은 그림책이 되겠다.

1월엔 하늘에 해님 하나, 눈 덮힌 전나무 한 그루, 구름 한 조각, 앙상한 가지의 나무 한 그루, 눈길을 밟고 작은 다리를 건너온 이웃 마을의 강아지 한 마리, 눈사람 하나, '1'이라는 숫자가 적힌 깃발 하나, 집 한 채가 있는 마을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창문 틀 왼편에는 정육면체의 블럭을 하나씩 쌓아올리며 수의 양적인 개념을 자연스럽게 시각화한다.

2월엔 눈옷을 벗은 전나무 두 그루, 토끼 두 마리, 아직 다 녹지 않은 눈밭을 뛰노는 아이 두 명, 트럭 두 대, 그 위에 실은 짐도 두 개씩이다. 예배당 시계탑의 시계바늘은 두시를 가리키고 있다. 3월엔 완연한 봄기운을 느낄 수 있는 그림이 보드랍고 따스한 느낌을 준다. 나비 세 마리, 갖가지 꽃도 세 송이씩, 배도 세 척이 더해진다. 4월엔 기찻길을 놓는 일을 하는 어른 두명에 돼지 먹이기, 과일 나르기를 하는 어른 두 명을 합쳐 즐겁게 노동하는 어른이 네 명이고, 강가에서 네 마리의 고기를 잡고 있는 사람들도 네 명이 더해진다. 시계바늘은 예상대로 4시를 가리키고 있다.

5월엔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들을 볼 수 있고 기찻길은 완성되어 강을 가로질러 화물차가 다닌다. 6월엔 싱그러운 풀을 밟으며 놀이에 빠져있는 아이들 여섯 명과 오리 여섯 마리가 더해지고 집과 전나무는 모두 당연히 여섯씩이다. 7월엔 무지개를 볼 수 있다. 일곱가지 색깔의 고운 무지개가 압권이다. 빨래줄에 널려있는 하얀 빨래 일곱 개와 풀을 뜯는 젖소 일곱 마리가 한가로운 여름 풍경을 자아낸다. 8월엔 강 위에 다리가 하나 더 생겨 이웃마을 사람들과 서로 다니기 좋아진다. 강에서 물놀이하는 여덟 명의 아이들이 있고, 하지만 시계는 8시를 가리킨다. 아마도 한낮일텐데... 숫자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더 큰 책이니 조금 눈 감아줘야겠다.

9월엔 하늘을 날아다니는 고추잠자리 아홉 마리, 노란 색 옷을 입은 나무 아홉 그루가 더해진다. 10월엔 단풍 든 나무가 열 그루, 마을을 빙 둘러 울타리를 치고 있는 사람들까지 열 명, 누렇게 익은 들판에서 놀이에 여념없는 아이들도 열 명이다. 11월엔 따뜻한 나라를 찾아 먼 길 떠나는 철새 열한 마리, 다시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 열한 그루, 푸르른 전나무 열한 그루가 있다. 굴렁쇠를 돌리고, 강을 가로질러 실로 꿴 전화로 얘기 나누고,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아이들 열한 명이 있다. 열한 명의 어른들은 겨울을 준비하느라 바쁜 일손을 놀리고 있다.

12월! 창밖은 온세상이 눈바다! 그 위로 지금도 눈꽃송이가 폴폴 내려오고 있다. 열두 마리 루돌프가 끄는 마차를 타고 오는 산타할아버지는 아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시계는 열두 시를 가리키고 예배당으로 오고 있는 어른도 열두 명, 아이들도 열두 명이다. 그런데 눈옷 입은 전나무가 열한 그루밖에 보이지 않아 갸우뚱하다가 예배당 앞에 화사한 크리스마스트리로 변신하여 서 있는 전나무 한 그루를 찾았다. 전나무를 세어 보라고 했더니 당연히 열두 그루지, 라고 말한 아이가 제 예상을 엎고 크리스마스트리를 발견하곤 기뻐서 소리친다.

'엄마, 우리도 크리스마스트리 얼른 불 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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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 - 우크라이나 민화 내 친구는 그림책
에우게니 M.라쵸프 그림, 배은경 옮김 / 한림출판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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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면 꼭 한번 더 보고 싶은 그림책이 <장갑>이다. 우크라이나의 민화를 그림으로 표현한 이 그림책은 얇은 두께에, 다소 옛스러운 꽃문양으로 둘러싸인 이상한 장갑부터 책표지에서 볼 수 있다. 무슨 장갑 안에 동물들이 들어앉아 있고 사다리에 기둥받침까지, 마치 조그마한 오두막집을 연상하게 한다. 그 아래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 보기만 해도 아주 추운 날씨란 걸 짐작하게 한다.

세계 그림책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걸작으로 평가받는 라초프의 <장갑>은 그림책이 가질 수 있는 미덕을 고루 담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일로 꼽고 싶은 것은 매력적인 그림이다. 손목 부분에 털이 달려있는 가죽장갑(아마도) 한 짝이 이 그림책의 주인공이다. 마치 이 장갑 한 짝은 목숨있는 생물인 것처럼 조금씩 탈바꿈을 하며 자란다. 숲 속 눈길 위에 홀로 떨어진 장갑 한 짝은 어린 아이를 떠올리게 한다. <숲 속에서>나 <또 다시 숲속으로> 또는 <숲 속의 요술물감>에서 처럼 숲에 홀로 들어온 아이는 자신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멋진 판타지의 세계를 경험한다. 그것은 현실에서 모두 감당하진 못하는 자신의 능력이며 관심이며 소망이다.

아이들은 눈이 오면 강아지마냥 팔짝거리며 좋아한다. 추운 겨울 흰 눈이 쌓인 숲 길에 남은 아이는 어떤 상상을 할 수 있을까? 겨울 숲 속에서 생쥐나 개구리를 만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아이의 상상이 미치는 범위는 그런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먹보 생쥐, 팔짝팔짝 개구리, 빠른 발 토끼, 멋쟁이 여우, 잿빛 늑대, 송곳니 멧돼지 그리고 느림보 곰까지... 갈수록 덩치 큰 동물들이 차례로 장갑 안으로 들어온다. 그 때마다 변해가는 장갑은 탄복할 정도다. 널판지로 장갑의 입구를 넓히고, 창문을 만들고 출입문에 종을 달고, 나중에 생쥐는 지붕(?) 위에 올라가기까지 하며 다른 동물들을 위해 자리를 내어준다. 따스한 장갑과 동물들의 마음이 닮았다.

<장갑>의 그림은 생각지도 못한 기발한 착상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충분히 그럼직한 상상을 유도하고 있다. 전혀 거부감이 일지 않고 자연스럽게 매료된다. 멧돼지가 들어가고부턴 장갑의 실밥이 터지고 있다. 꽉 찼다고 엄살을 떨면서도 덩치 큰 곰을 한쪽 구석으로 들어오게 하는, 동물들은 아이의 마음을 꼭 닮아있다.

곰이 들어가 장갑이 터졌을까? 라초프는 여기서 장갑의 변신을 멈추고, 원래의 장갑 한 짝으로 불현듯 돌아간다. 꿈틀꿈틀 움직이고 있는 장갑을 보고 할아버지보다 앞장 서서 달려온 강아지가 멍멍멍 짖고, 동물들은 장갑을 빠져 나와 숲 속으로 도망갔기 때문이다. 강아지가 짖는 소리는 판타지의 세계에서 현실로 돌아오게 하는 종소리같다. 재치있게 끝내는 마지막 장이, 판타지의 달콤함과 자유로움을 못내 아쉬워하게 만들어, 자꾸 <장갑>을 보고 싶게한다. 날마다 자라는 오동통하고 인정 많은 그 아이를 자꾸 보고 싶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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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나무 풀빛 그림 아이 15
숀 탠 글 그림, 김경연 옮김 / 풀빛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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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 탠이란 호주그림책 작가는 <잃어버린 것>에서 먼저 만났다. 낯설고 기이한 그림의 마력에 몸을 떨며 그의 다른 작품을 찾다가 <빨간 나무>를 구입한 건 작년이다. 난 보랏빛을 좋아한다. <빨간 나무>의 표지는 그런 보랏빛이다. 종이배 위에 우울한 얼굴을 내밀고 앉아있는 여자아이는 물 위에 떠있는 빨간 나뭇잎 한 장을 바라만 보고 있다. 아니, 발견하지 못한 채 눈을 감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빨간 나뭇잎은 처음부터 아이의 방에, 침대 머리맡 액자 속에 들어있다. 아직은 그걸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아이는 실컷 앓고 나서 그걸 찾는 눈을 뜨는 걸까! 빨간 나무는 언제나 내 안에 있었다, 라고 작가는 그림의 복선을 깔고 있다.

이 그림책을 여섯 살 작은 아이랑 함께 보고 읽었다. 아이와 내가 다른 세대의 눈으로 보는 이 한 권의 그림책은 나이를 초월한, 인간의 마음 가장 밑바닥에 깔려있는 어쩔 수 없는 열병과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을 증명해주었다. 다 보고 난 뒤, '빨간 나무는 뭘까?' 나의 이런 물음에, 아이의 고 조그만 입에서 희망이란 말이 서스름없이 튀어나오는 걸 보고 목소리가 떨릴 정도로 기뻤다. 어른의 잣대는 녹슬고 우그러져있는 지도 모르겠다. 투명하고 반듯한 아이의 눈은 어둠과 몰이해와 절망과 그 모든 낙담 속에서도 언제나처럼 빨간 빛을 발하고 있는 나뭇잎 한 장을 어렵지않게 발견하는 것 같다.

도시의 우울한 시멘트빛, 귀머거리 기계 같은 세상, 불운은 한꺼번에 터지고, 후회라는 자물쇠로 나를 걸어잠그고 그냥 지나쳐가는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기만 하는 바보같은 나, 내가 누군지, 내가 있는 곳은 어딘지도 모르는 채, 희망의 조각 하나 줍지 못하고 하루가 끝나가는 날... 그때 문득 바로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 바로바로 빨간 나무. 마지막 장면에서 '밝고 빛나는 모습으로, 내가 바라던 바로 그 모습으로' 크게 자라있는 빨간 나무는 만지면 빨간색이 손에 그대로 묻어날 것처럼 광채가 난다. 시종 일관 펼쳐진 채도가 낮은 글과 그림들 속에 있어 그 빛이 더욱 눈부신다.

이 그림책은 나의 고정관념 중의 하나를 뒤집어준 책이다. 그림책이라면 떠올리는 그림과 색채, 내용과 주제까지, 대담하고 깊은 내면의 그림들이랄 수 있다. 스쳐지나가는 무의식의 단상들, 존재함이란 이유만으로 가지는 내면의 모호한 이미지들을 <빨간 나무>는 손에 잡힐 듯 그리고 있다. 신문을 오려붙이기도 하고, 크고 작은 액자그림에, 글은 아주 적다. 글자의 크기나 배열도 그림의 힘을 더 살려준다.

그림책의 주제로 맞을까?, 하는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난 어른이고 아이고 밝게만 보이는 사람을 믿지않는다. 사유의 깊이도 내면의 솔직함도 없어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밝게 살려고 노력하고 남에게 웃는 얼굴로 대하는 건 미덕 중에서도 미덕이지만, 자신을 속이기까지 하는 밝음보다는, 차라리 고민하고 앓고 내 보이고 치유받는 것이 솔직한 모습이라 생각된다. 아이들도 우울하고 절망하고 소외감을 느낀다. 그런 아이들에게 희망이란 빨간 나무는 늘 그랬던 것처럼 바로 너 앞에서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게하고 진정으로 기쁘게 해 주고 싶다. 그리고 그 빨간 나무를 광채가 나게 크게 키워 주위의 모든 이들에게 '밝고 빛나는 모습으로' 빛을 발하며 우뚝 서게 하는 건 자신의 몫이란 걸 느끼면 좋겠다. 그렇게 깊은 눈빛으로 자신과 주변을 바라보는 사람이면 좋겠다.

어쩌면 이 그림책은 인생을 먼저 살고 있지만 어떨 땐 아이보다 소심하고 좁은 마음으로 웅크리고 있는 어른에게 더 권하고 싶다. 절망이란 주관적이고 때론 사소함에서도 대책 없이 온다. 그래서 난 그림책이 좋다. 0세에서 100세까지 볼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아이와 함께 보며 웃고 울고 종알대다 문득 탁 치고 들어오는 무언가를 감지하는 순간의 희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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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피 아저씨의 뱃놀이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53
존 버닝햄 글, 그림 | 이주령 옮김 / 시공주니어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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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은 너무 유명한 탓에 오히려 한동안 꽂아두었는데 오늘 작은 아이가 마음 내키는대로 뽑아 들고 나온 그림책이라, 함께 보며 새삼 즐거웠다. 존 버닝햄의 그림책은 볼 때마다 다른 느낌으로 와 닿고, 보이지 않던 것이 다시 보이는 매력이 있다. <검피 아저씨의 뱃놀이>도 그의 여느 그림책에서 볼 수 있는 장점이 부각되어 낯설지 않게 보였다. 여유로운 느낌을 주는 여백의 아름다움과 느긋함이 우선 자극적이지 않아 편안하다. 강렬함과 자극적인 것들이 힘을 발하는 것 같은 요즘, 이런 그림책들은 첫 눈길보다는 여러번의 눈길을 더할수록 은근한 아름다움을 풍긴다. 어눌한 말투로 뚜벅뚜벅 이어가는 글귀는, 반복되는 구절들에 리듬을 싣고 유쾌하게 다가온다.

아이와 역할극을 하는 식으로 대화글을 던지고 받으면 좋겠다. 꼬마들의 대사와 동물의 대사를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낭낭하게 울린다. 난 잔뜩 목에 힘을 주고 아저씨의 대사를 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목에 준 힘을 빼고 부드럽게 해야 더 어울리지 싶다. 왜냐하면 검피 아저씨는 아이들의 부산함과 분탕질에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화도 내지 않는, 가슴 넉넉한 아저씨이기 때문이다.

검피 아저씨의 입가에 잡힐듯 말듯 머물러 있는 희미한 웃음이 마음을 푸근하게 한다. 그저 뭐든 받아줄 것 같고 마냥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모르는 척 눈 감아줄 것 같은 넉넉한 가슴을 가진 사람, 버릇 없이 굴어도 조금은 안심이 되는 인자한 눈웃음을 가진 사람. 그런 검피 아저씨는 아이들에게, 동물들에게(결국 동물들은 아이들의 또다른 모습으로 비친다) 의미있는 타인이다. '의미있는 타인'이라는 말은 들은지 몇년이 되었다. 난 이 말이 담고 있는 모든 의미가 참 좋았다. 그리곤 그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내게 의미있는 타인은 누구였으며, 난 다른 사람에게 의미있는 타인이 되는지... 돌아보았다.

아이들에게 부모는 첫번째의 세상이며 세상 전부이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제2의 세상과 만나고 부대끼며 많은 사람을 만난다. 부모가 아닌 다른 사람, 혈연관계가 아닌 다른 사람의 눈과 혀에서 자아를 발견하고, '나'에 대한 존중감도 좌절감도 맛보며, 삶의 보이지않는 길도 어렴풋이 더듬어간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에서처럼 지식의 맛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재산을 물려주시는 선생님도 있고, <모네의 정원에서>에 나오는 블룸 할아버지 같은 분도 있다. 이 할아버지는 주인공 여자아이를 모네의 그림세계로 이끌어주시는 아파트 위층에 사는 이웃이다.

아, 이런 사람을 만나면 좋겠다. 내가 또 이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 검피 아저씨는 이런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좀이 쑤셔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는 아이들을 배에 모두 태우고 강으로 뱃놀이를 가는 이웃 아저씨는, 자신의 자상한 당부도 들은둥마는둥 일을 저지르고 마는 녀석들과 함께 즐기는 눈치다. 감정을 드러내는 글귀도 표정도 별로 없고, 겉으로 보이는 사실과 들리는 얘기들만 적혀있는 글이 그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상상하게도 한다. 검피 아저씨는 아마도 녀석들과 함께 자신의 어린시절 추억 속으로 흠뻑 빠져, 자신을 또 그렇게 받아준 의미있는 타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되갚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존 버닝햄의 글은 그렇게, 그림이 주는 여백 못지않게 행간에서 상상의 여백을 넉넉히 남기고 있어 더욱 맘에 든다.

들녘을 가로질러 아저씨의 집으로 돌아가는 일행의 모습이 담긴 장면은, 단순한 색과 선이지만 거친 붓자국으로 덧칠해놓은 하늘이 쏜살같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하루도, 한달도, 일년도... 아저씨의 유년도, 그리고 아이들의 자람도. 모두가 둘러앉아 차를 마시는 마지막 장면에서, 난 금방 발견하지 못한 걸 아이가 말했다. 남자아이는 화난 얼굴이라고. 친구랑 배 위에서 싸운 일로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나보다, 라고 말했더니 왜 싸웠을까?, 하며 아이는 눈을 깜박였다. 옆에 앉은 양은 놀란 눈을 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고 보니 여자아이나 검피 아저씨의 표정과 남자아이의 표정이 사뭇 다르다. 아이들도 앞 장면에서보다 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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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 아이 안젤리카 비룡소의 그림동화 70
폴 젤린스키 그림, 앤 이삭스 지음, 서애경 옮김 / 비룡소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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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은 유럽연합군에 의해 1814년 엘바섬으로 귀양 간 나폴레옹이 엘바섬을 탈출하여 군사를 일으켰지만 벨기에의 워털루에서 웰링턴 장군에게 패한 해이다. 이 전투는 나폴레옹의 마지막 전투가 되고 나폴레옹은 1821년 유배지인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죽는다.

우연의 일치인지 의도된 년도인지, 1815년 8월1일은 안젤리카가 태어난 날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여자아이 안젤리카는 미국 테네시주에서 이 날 태어났단다. 힘도 세고 용감하고 재치있는 여자아이 안젤리카는 동네에서 일어나는 위급한 상황도 구해주는 '늪의 천사'이다. 크지도 않고 힘도 세지 않아 억울했던 경험이 있는 여자아이라면, 이 커다란 그림책을 펼쳐 드는 순간 굉장한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겠다.

나무결이 고스란히 살아나있는 종이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갈색조의 채색이 자연스럽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 내용은 아이들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과장되어있어 계속 탄성이 터져나온다. 도끼를 들고 뚝딱뚝딱 오두막을 만드는 두살 안젤리카의 모습도 그렇고 엄청나게 덩치 큰 곰과 벌이는 사생결단의 전투는 하늘과 땅의 전쟁을 방불케한다. 회오리바람자락을 잡아 꼬아서 밧줄을 만들고 하늘로 매다꽂은 곰의 자국이 큰곰자리 별자리가 되는, 약간은 황당하달 수 있는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아이들 눈으로 보면 놀라움 그 자체이다. 나의 막힌 상상력의 물꼬도 터주어 함께 신나는 경험을 했다.

안젤리카는 그렇게 힘도 세고 통도 크고 마음도 넓고 재치도 있다. 동네의 남자들이 제 힘만 믿고 덤비다 곰에게 당한 갖가지 그림도 재미있다. 이불이나 꿰메고 음식이나 만들지, 라며 비아냥거리던 남자들이 안젤리카가 잡은 곰으로 만든 음식으로 잔치를 벌이게 될 줄은 몰랐지.

작가는 이 그림책을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내에게 헌사한다고 하였다. 작가는 아마도 어머니와 아내의 큰 힘에 감사하는 마음을 대신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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