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을 소개합니다 - 조금은 달라도 행복한 나의 가족 이야기
이윤진 지음, 하의정 그림 / 초록우체통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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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버이날. 어제 우리집 작은딸과 아빠는 또 갈등을 빚었다. 요즘 12살 작은딸이 사춘기 징후를 많이 보이고 있어서 감정을 다뤄주기가 무척 조심스럽다. 아빠와 내가 아이에게 갖는 감정이나 그 표현방식이 같을 수는 없지만 옆에서 보기에 큰딸에게 대는 잣대와는 좀 다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있는그대로 받아들여주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아이는 어젯밤 많이 울다 잤고 아침에 아빠 가슴에 꽃 달아드리고 카드도 드릴 거라고 했던 말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나는 같이 누워 안아주고 많이 다독이고 엄마아빠가 저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음을 주려고 애썼다. 그런데 아침에 아이를 안 깨운 것, 그건 내 실수다. 일찍 출근하는 아빠라, 내가 아침에 일찍 아이를 깨워주기로 했던 건데 오늘이 어버이날이란 것도 난 잊고 아이를 깨우는 걸 깜박했다. 결국 아빠는 아이가 아무 기척이 없으니 섭섭했고(뭘 기대하긴 했나보다^^) 나가면서 한 마디 하길래 그제야 아이를 급히 깨웠다. 왜 늦게 깨웠느냐고 아이는 내게 투덜댔고 엘리베이터는 이미 1층으로 내려가 있었다. 오늘밤에 달아드려도 되겠지? 엄마, 이러며 어젯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아니 정말 다 잊고 아빠를 생각하는 아이가 안쓰러웠다. 아이는 아침에 유난히 맑은 음성으로 내게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집을 나갔다.  

아이가 어른보다 훨씬 마음이 넓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오늘아침에도 그랬다. 자꾸 뭔가 충돌하고 갈등하고 속을 끓이는 게 속상하다. 하지만 예민하고 정 많은 성정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 3학년 때인가, 아이가 쓴 가족을 소개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극히 아이답게도 도식적이었고 아이가 엄마아빠에게 어느정도 마음의 거리를 두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제는 학교에서 우리 부모님의 좋은점을 다섯가지 적어왔다. 그리고 아이가 바라는 점도 다섯가지 적어왔다. 꽤 긍정적이다. 인정하고 기대하고 원하고 바라는 마음이 간단하지만 적혀있었다. 내 가족을 소개한다면, 아이는 어떻게 적을지 궁금해진다. 이 책의 부제처럼 '조금은 달라도 행복한 나의 가족이야기'가 될 수 있을지. 조금은 다르다는 말이 우리집에 적용되기엔 이 책의 경우들과는 다르지만, 모든 가정이 다 조금은 다르지 않을까.

이 책에 소개된 다섯 가족의 이야기는 아프고 쉽지 않지만 훈훈하고 밝게 그려진다. 한부모가정, 조부모가정, 재혼가정, 입양가족, 다문화가정 등이 소개된다. 실제로 주위에서도 날로 늘어나는 가정 형태다. 3학년 3반 아이들의 이야기인데(우리집 작은딸도 2년 전에 3학년3반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잘 모르지만 알고보면 모두 다른 가족구성원이다. 하지만 다시 알고보면 보면 행복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싶다는 소망은 다 같다. 가족의 형태가 달라지고 다양해지고 있는 요즘 '다르다'가 '나쁘다'와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는 아이들의 편견을 깨어주기에 적절한 이야기들이다. 아이들은 편견을 갖기도 쉽지만 그만큼 그걸 깨기도 쉽다. 그걸 깨어주는 몫은 어른들에게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의 작가는 이야기 속 어른들의 무게도 적절히 주고 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아이들과 감정을 나누는 방식도 마음에 든다. 유머와 온기를 잃지 않고 있는 문장과 대사도 좋다. 아이와 다른 아이들, 아이와 가족이 화해하게 되는 이야기가 타당해 보이고 따뜻하다.

주인공 아이들의 아이다운 심리가 이야기속에 잘 녹아서 전개된다는 게 장점이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장 섭섭하고 화가 나기도 하지만 결국 마음 속 진실을 알고 서로 표현하고 안아주는 전개방식도 자연스럽다. 너무 착하지도 너무 나쁘지도 않는, 아이들의 딱 그만큼의 순수하고 선한 마음이 잘 드러난다. 아이들은 참 마음이 넓다.  

어려운 단어도 없고 술술 잘 읽히는 글이다. 초등 3학년 정도에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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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05-08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고 둘째 따님 맘이 참~ 속상했을거같아요.

프레이야 2009-05-08 19:39   좋아요 0 | URL
네, 요새 계속 다운되어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안 됐어요.
감정의 기복도 심하고 우울해하고 스스로 자신감도 잃는 것 같고 그래요.
엄마는 무조건 늘 자기편이라고 말해줬어요.^^

2009-05-08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09-05-08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고 있노라니, 뭔가 할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꾸자꾸 떠올라요.
아이들이 어른들보다 더 마음이 넓을 때가 있다는 말씀에 공감이 가요. 더 순수하기 때문에 그런가봐요. 이것 저것 연관지어 생각하는 어른들보다요.

프레이야 2009-05-08 19:40   좋아요 0 | URL
계산하지 않고 담백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구요. ^^
 
심청이 무슨 효녀야? 돌개바람 14
이경혜 글, 양경희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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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에 시비를 걸어 재창조한 패러디 동화는 이미 여럿 있다. ‘아기돼지 세 자매’나 ‘늑대가 들려주는 아기돼지 이야기’는 내가 읽은 옛이야기 패러디 동화 중 가장 먼저 만났던 그리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그림동화다.

  

 이런 책은 독서활동에서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생각의 층위가 다양할 수 있다는 말은 옛이야기가 시대에 따른 가치관을 담고 있다해도 그 가치관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읽힐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런 가치관은 아이들의 '자람'에 여러 측면으로 영향력을 줄 수 있다. 옛이야기는 아이들로 하여금 여러가지 생각을 유도하여 적극적으로 텍스트에 가담할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있다. 옛이야기는 더 이상 화석처럼 굳어져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래의 (구전되는) 옛이야기는 그래서  말랑말랑하고, 또 말랑말랑해야 한다. 독후활동으로는 뒷이야기 바꿔쓰기, 중간이야기(특정 상황) 바꿔쓰기, 내가 어느 등장인물이라면?, 가장 마음에 드는(들지않는) 인물은?, 등이 있다.  

 

 옛이야기는 유연하여 힘이 세다. 입말로 전해지는 특성 때문에 이야기의 요모조모가 상당히 확장될 수 있다. 시대적 가치관이나 생활상은 물론 용기나 선함 같은 삶의 기본적인 미덕을 재미난 이야기 속에 녹여 놓은 것도 옛이야기의 힘이다. 이야기를 통해, 낮게 사는 읽는 이 아니 듣는 이는 상상과 모험의 세계로 여행할 수도 있고 힘겨운 현실을 이기며 살아가는 힘을 얻기도 한다. 그렇다면 옛이야기 패러디는 오늘날의 독자에게 제시할 수 있는 비전이 있어야 한다. 틀에 매인 생각 밖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는 것이 옛이야기 패러디의 힘이다.

 <심청이 무슨 효녀야?>는 잘 알려진 우리 옛이야기 다섯 가지를 '다시쓰기' 한 동화집이다. 각 이야기마다 길지 않은 길이로 읽기에 지루함이 없고 이야기가 집약되어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 가치관을 본래의 이야기 속에 무리 없이 녹여놓았다는 점이 장점이다. 작가가 주목한 부분은 인물들의 성격이다. 특히 아이, 여성이라는 약한 자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성격과 행동을 바꿔 놓았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 속에서 그들의 역할을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렇게 이야기는 역동적이고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의 삶과 선택, 생명을 보듬을 줄 아는 따뜻한 심성, 그리고 겉으로 보이는 부분이 아니라 참된 마음과 진실한 행동에 눈길을 보내는 이야기들이다.

 이 동화집으로 재탄생한 옛이야기는 선녀와 나무꾼, 심청전, 우렁각시, 콩쥐팥쥐, 춘향전이다. 옛이야기 속의 가치관이 오늘날의 아이들에게 그대로 읽힐 수는 없다. 읽어도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진부한 선입견의 틀 속에 아이들을 묶어두는 것은 위험하다. 더해지고 빼지면서 구전되어 오던 옛이야기가 문자 속에 갇히면서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 이야기의 틀이 고정되어 온 까닭에 옛이야기의 미덕이 더 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성격으로 각인된 옛이야기 속의 등장인물은 우리의 오래된 친구들이다. 만약 그 친구들이 아직도 살아있다면?, 이라는 가정을 해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나올 것이다.

 

 

 이 책의 시리즈(옛이야기 딴지걸기1, 2)는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문자의 틀에서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꿈틀거리게 한다. 불변의 미덕은 살리면서 오늘날의 바람직한 가치관을 이야기속에 풀어놓았다. 예상을 뒤엎는 사건 전개와 결말 그리고 매력적인 인물들의 생생한 묘사가 미더운 주제의식과 더불어 흥미롭게 읽힌다. 간소한 흑백 삽화는 이야기의 수수한 미덕을 살려주어 좋다.

초등 중학년 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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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5-01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경혜님의 글이군요. 발상의 전환을 맛볼수 있는 책~ 이런 시도가 참 좋아요.^^

프레이야 2008-05-01 17:27   좋아요 0 | URL
기발하면서도 뿌듯한 전환이었어요.
네, 어느날 내가 죽었습니다,의 그 작가요^^

짱꿀라 2008-05-01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효녀 심청이, 참 오랜만에 듣습니다. 옛이야기가 실린 이런 동화집이 많이 아이들에게 읽어야 할텐데......

프레이야 2008-05-01 17:28   좋아요 0 | URL
심청전에선 뺑덕어미의 역할과 성격을 확 빠꿔놓았는데
참 좋다싶었어요. 재미있어요.

글샘 2008-05-01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경혜 님 글 좋아하는데요...

프레이야 2008-05-01 17:28   좋아요 0 | URL
그죠 글샘님^^

네꼬 2008-05-01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혜경님께 별 다섯 개를 받다니. 믿음을 가지고 읽어 보겠어요. 고맙습니다. : )

프레이야 2008-05-01 17:30   좋아요 0 | URL
믿음에 제가 배신을 때리게 되면 안 되는데용 ㅎㅎ
작가가 두딸을 생각해서인지 특히 여성인물들의 재창조 부분이 많고, 또
마음에 들었어요. 특히 뺑덕어멈과 춘향이 그리고 우렁각시의 역할이요.

사마천 2008-05-02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아무리 효도라지만 이건 마치 열녀문 세워주다보니 며느리에게 죽으로 강요하게 되는 사이비 종교(성리학)와 같은 병폐를 만들어냅니다. 재고가 필요하죠 ^^

프레이야 2008-05-02 09:52   좋아요 0 | URL
가치관이 시대에 따라 변한다지만 그래도 기본은 잊지 않고 전개된
기발한 이야기였어요. 효도나 결혼의 의미, 외모에 대한 선입견을
재고해볼 수 있었어요. 사마천님 봄날 잘 지내시지요?^^
 
한심한 친구들의 묘기 돌개바람 13
모카 지음, 김주열 옮김, 카트린 르베이롤 그림 / 바람의아이들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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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년을 마치고 새 학년을 맞이하는 이 즈음이면 아이들의 마음 속에 가장 관심거리로 자리하는 게 있다. 어떤 친구가 한 반이 되고 어떤 친구가 어느 반으로 떨어져갔는지. 작은 아이는 올해 4학년이 된다. 같은 반에서 좋아하는 여자친구 한 명이 같은 반이 되었다고 좋아하면서 개구쟁이 삼총사 남학생도 같은 반이 되었다고 은근히 꺼려하는 눈치다. 친했던 친구들과 헤어지고 다른 반이 되면 금세 또 그 반에서 친구를 사귀고 어울려 지내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한심한 친구들의 묘기>는 프랑스 어린이책을 번역한 것이다. 1-3학년 정도의 아이들에게 권한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데에 힘이 드는 아이들이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가 어려운 아이들에게 쉽고 편안하게 읽힐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서커스 단원인 아이를 주인공으로 해서 자신이 스스로 선택할 수 없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에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과정도 재미있다. 자연스레 어울려 노는 것이 바로 그들의 묘기임을 알게 되어 자신감이 불끈 생기는 것도 바람직하다.

서커스 단원은 3년 단위로 옮겨다니기 때문에 친구를 사귀어 마음을 주면 헤어질 때 마음이 아파서 친구 사귀기를 꺼린다고 한다. 1년 단위로 학년이 바뀌어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야하는 아이들의 형편보다는 조금 낫다고 할까. 학교생활을 서커스 생활에 대입해 보면 좀 생동감이 나는 것도 같지만 주어진 테두리 안에서 주어진 묘기를 보여줘야하는 생활이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는 것도 이해된다. 동물친구든 이성친구든 친구에게 마음을 주고 함께 있어주는 게 최고의 친구일텐데, 그게 어려운 형편에 놓인다면? 

그래도 너무 낙담하지 말라고 전한다. 만남은 헤어짐을 동반하고 그게 살아가는 일이라고 말하며 우선 마음을 여는 일에 아까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건 예전의 친구를 배반하는 게 아니라고 안심시킨다. 전혀 '한심하지 않은' 친구들의 묘기 아닌 묘기가 펼쳐지는 이 책은 '바람의아이들'에서 나온 돌개바람 시리즈 13권이다. 얇고 가볍게 쥘 수 있는 크기의 유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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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을 물리치는 기사가 되는 법] 서평단 알림
용을 물리치는 기사가 되는 법 작은거인 14
오카다 준 지음, 김난주 옮김 / 국민서관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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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초등학교 졸업을 하고 중학생 교복을 맞추던 오래 전의 그때가 아스름하다. 영화 ‘스윙걸즈’에서 여고생들이 입고나온 검은색 세일러복이 당시 우리들의 교복이었다. 무릎길이의 플리츠 스커트에 상의의 세일러 깃에는 두 줄의 흰색 선이 산뜻했던 교복이다. 일제의 잔재이긴 하지만 당시 입을 때에는 꽤 우쭐한 기분으로 입었다. 입학 당시는 커서 우장 같은 교복이 졸업할 무렵엔 딱 맞았던 기억도 새록새록 난다. 문제는 초등 졸업을 앞둔 무렵과 중학 입학 전까지의 어정쩡한 시간에 대한 기억이다. 그것은 세일러교복만큼 산뜻하지도 선명하지도 않다. 무료하고 황당하고 불안했던 기억으로만 어렴풋하다.

 <용을 물리치는 기사가 되는 법>에서는 딱 그 즈음의 시기를 보내야하는 두 명의 남녀학생이 등장한다. 아이에서 청소년으로 넘어가는 사춘기의 시절, 뭔가 알 것도 같고 모르는 건 더 많은 세상, 새로운 환경과 사람에 대한 두려움, 잡다한 꿈은 있으나 명쾌하지는 않고, 아예 꿈이 없거나 그리고 이성 친구에게 생기는 ‘어색하고 서먹한 감정과 긴장과 가식으로 뭉쳐진(p91)’ 묘령의 감정으로 혼란스러운 시절이다. 하지만 그런 감정을 배반하는 건지 그때의 일상 사건이란 얼마나 단순하였던가. 뭔가 신나는 일이라도 일어나면 좋겠는데 눈을 뜨면 여지없이 그 기대를 깨고도 남을 정도로 단조롭고 지루하게 이어졌던 것이다.

 그런 일상을 대변하듯, 이 책은 인물의 구도나 사건이 간결하고 전제적으로 내용의 군더더기가 없다. 선명한 플롯과 명료한 대화의 힘이 종결부까지 이어지고 여운은 오래간다. 세월이 지날수록 분명해지는 오래된 날들의 기억처럼. 오카다 준은 생활 속의 판타지를 그려내는 재주가 놀랍다. 그가 그리는 판타지는 ‘미끄럼틀 아래’에서건 ‘빈 교실’에서건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화려한 판타지 스토리나 기상천외한 모험담을 기대한다면 기쁘게 실망할 준비를 하는 게 낫다. 그렇다면 그럴싸한 기사는 과연 나올까?

 생활 속 판타지는 식사 후 깨무는 한 알의 박하사탕 같은 것이다.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을 살면서 살만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혼자 꾸는 꿈과 그것으로 인한 희열이 타인에게도 전해질 때이다. 그리고 교감될 때이다. 이 작가는 모자랄 수밖에 없는 인물들의 내면에 숨어있는 모험에 대한 기대감과 자신의 한계를 넘고 싶은 갈망을 잘 이해하며, 해결해 줄 방법을 고심한다. 그에 무기가 되어주는 건 주위에 널려있는 소도구들(후추병, 연필깎이, 삼각자 등...)과 어느 순간 눈앞에 나타난 묘한 환상의 경험이다. 그건 자신들이 갈망해오던 것의 현신이 아니고 무엇인가.

용은 혼자 있을 때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둘 이상이 있을 때 나타나는 용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필요악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것은 때로는 귀엽기도 하다. 책 속에 그려진 전형적인 용의 그림처럼 어쩐지 때려잡기엔 왠지 안타깝기도 한 그런 존재다. 낯선 환경과 낯선 인간관계가 우리에게 가하는 압력은 개인차가 있지만 누구나에게 스트레스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 중에서도 제안할 만한 건, 상대에게 먼저 베푸는 배려의 손길과 다가가는 용기다. 극복하는 자에게만 영광의 시간은 찾아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혼자보다 둘이면 쉽지 않은가. 이 책은 그런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놓았다.

 중간중간에 고딕체로 격언 같은 구절들을 대화로 심어놓았는데 다소 문어체 같다는 느낌은 들어도 이야기를 읽는데 방해꾼이 될 정도는 아니다. 오히려 '기사'라는 중세적인 분위기의 단어와 잘 어울려 고풍스러운 목소리를 낸다. 또한 초등 5-6학년 정도의 아이들이 이야기 전체의 은유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등장인물로 내세운 two-top으로 남학생과 여학생의 무게를 어느 한 쪽에도 두지 않고 정서적 역할에 균형잡힌 안배를 한 점도 돋보인다. 책의 두께나 활자의 크기로는 4학년 이상이면 무리없지만 내용의 두께로는 고학년에 적합하다. 이 책의 삽화는, 대개의 판타지 이야기가 자랑삼아 내세우는 현란함을 배제한 것과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물체만 단순하게 그려놓고 독자로 하여금 상상을 더 하게 만드는 효과를 준다. 일상의 판타지를 즐겨보라. 세상과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힘든 시간 중에서도 즐거움을 찾는 눈과 두려움을 쫓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오카다 준에 의하면, 남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보는 아량에서 출발한다.

 우리에게 완성은 없다. 15년 후 그들은 다시 만난다.
 “그래 용을 물리치는 기사가 되었니?” 
 “응, 돼 가고 있어.”
 나는 썩 괜찮은 대답이라고 생각했다. (p93) 
 

결미가 마음에 든다. 우리는 오늘도 ‘돼 가고 있’다. 그것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이다.
그리고 그것이면 족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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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08-01-20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딸이 좋아할 만함 이야기네요~.ㅎㅎㅎ
근데 저는 그럭저럭 되가구 있어,,,,라는 말은 싫어해요~.ㅎㅎ

프레이야 2008-01-21 07:49   좋아요 0 | URL
ㅎㅎ '그럭저럭'은 아니고 그냥 '돼 가고 있어'에요.
철학적인 아이라면 좋아할 만한 이야기에요.
화려한 스토리는 결코 아니구요. ^^
(그리고, 님, 보낸건요.. 그냥 제맘이에요.ㅋㅋ)
받아주삼~

네꼬 2008-01-21 0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활 속 판타지는 식사 후 깨무는 한 알의 박하사탕 같은 것이다.

아. 이토록 적절한 비유라니. 제 생활 속에는 어떤 판타지가 숨어 있을까요? 그런 걸 잊지 말고 살자고 다짐해보는 아침입니다. (나름 뭉클한 기분이 되어 쓴 건데 쓰고 보니까 교과서에 있는 말 같아요. 제가 그렇죠 뭐. 킁-)

프레이야 2008-01-21 09:10   좋아요 0 | URL
네꼬냥 굿모닝~~~
저도 오늘 아침 박하사탕 한 알 깨물고 나설래요^^
교과서에 있는 말이 진부한 것 같아도 오래 묵혀서 공감을 얻는 말이니
나쁘진 않지요.ㅎㅎ 뭉클^^ 네꼬 님, 오늘 여긴 비가 와요.
거긴 눈이 많이 오진 않았는지요?
 
울타리를 넘어서 베틀북 창작동화 7
황선미 지음, 한병호 그림 / 베틀북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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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암시하듯 ‘울타리’는 물리적이라기보다 사람들 마음속의 장애물을 말한다. 이 책은 4편의 단편동화가 묶인 것인데 황선미 작가의 예전 동화와 신작이 함께 있다. 예를 들어 ‘앵초의 노란집’과 ‘괭이 할아버지’ 같은 것은 오래 전 작품이다.

 황선미는 내가 특별한 애정을 갖는 작가다. 그는 ‘늘 푸른 자전거’에 대한 나의 (알라딘에 올린) 리뷰를 읽고 메일을 보내주었다. 아버지에 대한 골 깊은 애정이 진실 되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충실한 작가에 대한 믿음에 감동했다. 여러 해 전 내가 어린이 독서지도와 관련하여 공부를 할 때 한 어린이서점에서는 독자들 가까이에 앉아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을 들려주었는데 영민한 눈동자를 빛내며 그린지대의 아파트 단지화와 어린이 도서관의 부족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동화 밖에서나 안에서나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힘은 생활과 동떨어지지 않은 건전함과 아이들의 마음을 먼저 읽어주려는 자상함에서 나온다.

 이 책에 담긴 4개의 이야기도 작가 특유의 생활동화다. 이야기의 발단은 언제나처럼 소소하다. 집이나 학교, 동네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작은 일을 그냥 넘기지 않고 이야기의 소재로 끌어온다. 표제인 ‘울타리를 넘어서’에서는 실제의 울타리를 등장시키지만 나머지 3개의 이야기에는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쌓은 마음속 울타리를 내세운다. 이야기는 친구 사이의 울타리와 이웃 사이의 울타리로 나뉜다. 좀 더 세부적으로는 주인공 아이들이 동물이나 노인에 대해 갖는 편견의 울타리도 들고 나온다. 물론 아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어른들의 탓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 울타리를 넘는 과정이 일상의 이야기 속에서 수수하니 펼쳐진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하는 작가의 방식은 과장되지 않으면서 세밀하다. 툭 흘리듯 하는 대사나 비유적으로 배치한 소재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3학년 아이들과 함께 읽었다. 부담없이 잘 읽어냈다. 아이들이 친구와의 관계에서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울타리뿐만 아니라 이상하게 보였던 이웃과도 어떻게 마음의 울타리를 허무는지, 소박한 이야기의 힘이 크다. 예전의 작품 둘은 조금 도식적인 결말이지만 요즘 판타지적인 이야기가 많다못해 황당한 내용의 동화도 있는데 비해 일상 속에서 소박한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꾸밈없는 이야기가 은근한 힘을 발휘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관계맺기에 서툰 나는 이런 동화를 아이들과 함께 읽을 때면 내 마음의 울타리부터 허물고 먼저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고 어느 서재주인처럼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자기 생을 사랑하는 길은 울타리를 허물고 먼저 다가서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아이들은 그런 점에서 어른들보다 낫다.

 

 삽화는 '황소와 도깨비'등의 그림책에서 소박하고 정감 가는 그림을 그려준 한병호 님이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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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1-08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관심있는 작가의 새 작품 찾아 읽기를 잘 해야 하는데, 저는 예전의 작품들만 뒤적이고 있어요. 어제 어머니독서회 첫 토론회로 황선미작가 읽기라서 '들키고 싶은 비밀, 나쁜 어린이표, 일기 감추는 날'등을 이야기 했어요.
님의 서재에서 새 책 알고 저도 울타리 허물아야겠다 생각하며 등교합니다. 감사^^

프레이야 2008-01-08 15:29   좋아요 0 | URL
독서회를 이끄시느라 늘 좋은 책을 찾고 눈과 마음을 열어두시는
오기언냐, 존경해요. 이 책은 저학년용 동화로 읽기에 좋아요.
2-3학년 정도^^

비로그인 2008-01-08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는 천천히 마음속을 여는 것이 보여요.
그것이 황선미 작가에게도 전달된 것이겠지요.
작가에게서 직접 메일을 받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요?
님의 리뷰는 멋지고, 황홀하다기보다
머릿속으로 사악~ 스며듭니다.

프레이야 2008-01-08 15:30   좋아요 0 | URL
황선미작가는 정말 한마디 한마디를 어찌나 정성스레 내뱉던지
듣고 있자니 마음이 깨끗해지는 느낌이었어요.
말처럼 글도 그렇구요. 승연 님, 늘 칭찬에 힘이 납니다.^^
내일 우체국 갈거에요^^

2008-01-08 0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08-01-09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선미, 저도 좋아합니다.
찾아 읽을게요.

프레이야 2008-01-09 16:39   좋아요 0 | URL
그죠? 이야기마다 어찌나 다 마음에 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