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다른 색깔 - 꿈꾸는 나무 28
스티브 존슨 외 그림, 닥터 수스 글, 김현진 옮김 / 삼성출판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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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그마한 그림책은 알리딘의 어느 서재에서 우연히 얻은 소득이다. 지금의 '나'를 표현해 보라고 하면 어떤 그림으로, 어떤 글귀로, 어떤 색깔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시시각각 변하는 마음자락과 하루하루 달라지는 마음의 색깔을 어떻게 들추어 보여줄 수 있을까? 날마다 눈을 뜨면, 오늘은 어떤 하루가 될까?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또 그렇게 시간이 간다. 이런저런 일로 마음은 여러 가지 색깔의 옷을 입고, 여러 가지 모양의 것이 되어 하늘을 날기도 하고, 땅 속으로 가라 앉기라도 할 것 같은 때도 있다.

마음의 색깔이 달라지면 '나'도 따라 달라진다는 걸 사람들은 알까? 온 몸이 가볍고도 기운차게 발길질하는 빨간색의 날, 푸드덕푸드덕 날개짓하는 파란색의 날, 느려지고 땅 속으로 땅 속으로 가라앉는 것만 같은 갈색의 날, 윙윙윙윙 바쁘게 움직이는 노란색의 날, 모든 게 정지된 것 같은 회색의 날... 주황색의 날에는 서커스의 물개가 된 느낌이라고, 심연의 바다에서 좀더 성숙한 몸짓을 놀리고 있는 초록색의 날...

보라색의 날은 압권이다. '보라색의 날이 되면, 나는 슬퍼져요. 훌쩍훌쩍! 나는 꼬리를 질질 끌며 혼자 걷는답니다.' 그러면서 보라색 공룡이 긴 꼬리를 질질 끌며 어디론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다음날 마음은 행복한 분홍색으로 바뀌어 폴짝 뛰어오른다. 그 다음 날은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검정색의 날이다.

이렇게 마음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는 날은 사실 몇 날일까?
현실적으론 '알록달록 뒤죽박죽'의 날이 더 많겠지. 내가 누구인지, 무엇인지, 어떻게 한가지로 말할 수 있겠나? 그 모든 게 합쳐져 잘 어우러져있는 본래의 모습, 그게 바로 제자리의 '나'이겠지. 아이들 마음 속 다양한 색깔을 잘 어울리는 동물의 형태와 살아있는 의성어, 의태어와 함께, 이토록 풍부한 붓의 터치로 살려내 놓다니. 추상적인 것을 시청각적으로 멋지게 풀어놓은 그림이 아이들 마음을 꾸밈없이 풀어놓은 일기장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혼합색까지 생각하면 더 풍부한 색감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물을 등장시켜 아이들 마음에 빗대어 색과 선의 향연을 베풀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와 절제미가 있고 철학적이며 풍부한 감성이 담긴 글을 쓴 작가 모두 매력적이다. 글과 그림이, 변주의 여지를 주면서, 절묘한 화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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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릭터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48
토미 웅게러 글, 그림 | 장미란 옮김 / 시공주니어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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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미 웅게러의 그림책은 내 꽉 막힌 생각을 여지없이 뒤집고 깨어주는 특별함이 있다. <제랄다와 거인>이 그랬고 <세 강도>가 그랬다. 무섭고 흉칙하다는 느낌을 가지기 쉬운 것들에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정감을 느끼게 한다. 선악과 미추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따스한 시선으로 비틀어준다.

<동물과 대화하는 티피>라는 사진첩의 티피가 생각났다. 야생동물사진촬영을 위해 아프리카 야생의 동물을 따라 카메라렌즈를 들고 다니는 엄마와 아빠를 따라 살았던 티피는 뱀을 목에 두르고 무심에 가까운 순진한 표정으로 있었다. 뱀의 몸에 있는 무늬가 참 예쁘다고도 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악어를 집에서 왜완용으로 기르는 아주머니도 생각난다. 커다란 악어가 침대며 욕조며 마음대로 기어다니고 있었다. 난 글쎄, 좀,...

크릭터는 아프리카에서 파충류를 연구하는 아들이 프랑스의 어머니에게 소포로 배달한 보아뱀이다. 소포포장부터 심상치 않다. 둥글게 말려있는 커다란 뭉치다. 보아뱀은 성질이 순해 비교적 사람과 친해지기 쉽다고 한다. <크릭터>는 선명한 초록색이 책을 온통 차지하고 간간이 보이는 빨간색이 악센트다. 간결한 스케치로 그린 그림에 보색으로 대비되는 두 가지 색상이 보기에도 깨끗하다. 그래서 더욱 뱀이라 징그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겉표지에서부터 뱀이 만드는 갖가지 글자모양과 다른 여러가지 모양들을 보는 것도 재미난다. 남자아이들을 위해 미끄럼틀이 되어주고(놀이를 굳이 남자, 여자로 구분한 건 맘에 좀 들지 않지만), 여자 아이들을 위해 줄넘기를 할 수 있도록 줄이 되어주고, 할머니를 따라 학교에 가선 온갖 알파벳과 숫자를 몸으로 만들어 보여준다.

여섯 살 작은 아이는 혼자 이 그림책을 먼저 보고 나한테 뛰어오더니, 엄마, 참나무를 영어로 뭐라 해?, 라고 물었다. 오크,라고 했더니, 음... 하며 뭔가 알았다는 표정이다. Oak의 첫자 O를 크릭터가 몸으로 만들어 보여준 거다. 아이의 말을 더 듣고 싶어 한마디 더 던졌더니, 크릭터는 참 쓸모가 많고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고 종알댄다. 할머니 집에 몰래 들어와 할머니를 꽁꽁 묶은 도둑을 자기 몸으로 꽁꽁 묶어 잡았다며, 마치 아이 자신의 무용담이라도 되듯 신나하며 떠든다. 처음엔 징그러운 뱀이라며 약간 거부하더니, 금세 크릭터는 아이에게 남다른 친구가 되어버렸다.

눈위를 따라 경쾌한 몸짓으로 기어가는 크릭터는 할머니가 털실로 정성껏 짜준 기다란 털옷을 입고 있다. 침대는 또 얼마나 길다고. 우유병을 물려 아이를 키우듯 하는 할머니의 모습도 웃음을 자아낸다. 뒤에 크릭터 기념동상을 만들고 하는 건 오히려 수선스런 어른들의 오버액션 같아 더 우습다. 작가는 혐오스러운 대상을 과장할 만큼 과장해 뒤집어 보여주어, 우리의 편견이 싹을 새로 틔울 자리를 여지없이 싹 잘라버리려는 것 같다.

자기를 사랑으로 보살피는 대상에게 거의 전적인 지지를 보내며 용감한 행동을 한 크릭터와 아이들을 위해 놀이기구가 되어준 크릭터는 아이들에게 친밀감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것 같다. 엄마가 신나게 잘 안 놀아준다는게 우리 아이의 불만인 걸 내가 알고 있으니, 좀 미안했다. 아이들은 저랑 놀아주는 대상을 제일 좋아하는데 말이다. 엄마도 점수 좀 따려면 에너지를 충전해야겠다. 애완견 대신 장난감 퍼피를 안고 좋아하는 아이 얼굴이 사랑을 먹고 자라는, 천상 욕심꾸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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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 빨간 외투 비룡소의 그림동화 75
애니타 로벨 그림, 해리엣 지퍼트 지음, 엄혜숙 옮김 / 비룡소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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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여자 아이가 입고 서 있는 빨간 외투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나, 이 그림책의 표지만 보면 그런 것들이 마구 궁금해진다. 요즘 아이들은 옷 하나에 그리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아이가 얼마나 많을까 싶지만, 나의 기억만 들추어봐도, 몇가지 기억들이 살아난다. 겨울 교복치마 밑에 입으라고 손뜨게로 짜주신 노란 속바지, 민소매 원피스의 하늘거림, 발등에 가는 끈으로 연결된 검정색 에나멜 구두, 얇은 레이스가 달린 발목까지 오는 하얀 양말의 기억이 그렇다.

이 그림책은 실제로 있었던 일을 아름답게 살려 놓았다. 일러스트레이터는 유태인 핍박을 피해 도미한 여성그림책작가이다. 개구리와 두꺼비 시리즈로 기억되는 아놀드 로벨의 부인이란다. <안나의 빨간 외투>는 전쟁의 폐허를 보여주는 뿌연 그림으로 시작한다. 물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다친 사람들이 거리에 뒹굴고 먹을 것도 없고, 온통 '없음'이라는 단어만이 판을 치는 세상에 안나와 엄마는 황량한 가슴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불행할 것 같다.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나와 아이들이지만, 이런 극한 상황을 이해하기엔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 그리 부족하진 않다.

그러나 불행할 것만 같은 안나와 엄마는 행복을 가꾸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기다림! 작은 소망을 가슴 속에 안고 키우며 설레며 기다리는 마음! 겨울이 되어 안나는 거울 앞에서 파란 외투를 입어보지만, 쑥쑥 자라는 아이에게 그 외투는 작기도 하고 따스해 보이지도 않는다. 이런 때 엄마라면 얼른 넉넉하고 따뜻한 외투를 장만해주고 싶어진다. 안나의 엄마는 안나에게 썩 괜찮은 외투를 장만해주려고, 가지고 있는 귀중한 물건들을 팔 생각까지 하며 사람들을 찾아간다.

그러나 양털을 깎기 위해 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은 엄마가 처음 들은 말이다. 아무래도 올 겨울은 작은 외투를 억지로 끼어입고 보내야 할 것 같다. 이듬해 봄, 양털을 얻고 여름엔 산딸기를 얻어 실을 염색하고 그리고 옷을 짜고... 꼬박 사계절을 보내고 여섯 개의 귀여운 단추가 달린 빨간 외투가 완성된다. 다른 아이도 입고 있는 똑같은 외투가 아니라, '안나를 위한 빨간 외투'라고 특별하게 적힌 푯말과 함께 쇼윈도우에 걸려있는 외투는 한 면을 꽉 채우게 눈에 확 들어온다. 빨간 색상이 참으로 곱다. 아이의 소망과 엄마의 사랑, 다른 어른들의 배려가, 오래 기다렸다 받은 선물의 값을 무한대로 하는 것 같다.

안나는 빨간 외투를 입고 서 있는 자기의 모습을 두고두고 잊지 못하겠다. 난 어릴 적 엄마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조그만 양철 함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분홍색 플라스틱 손잡이가 위에 달렸고 직사각형의 함에 파스텔톤 그림이 있는 건데, 그리 비싸거나 화려한 건 아니지만, 엄마의 애정이 담긴 작은 선물이다. 크리스마스면 으레 하는 선물, 백화점에 가면 온통 똑같은 형형색색 근사한 선물들보다 아이에게 잊지 못할 특별한 기억을 주는 선물을 하고 싶다. 그 선물의 이름은 '기다림과 사랑'이다.

<안나의 빨간 외투>는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얼른 손에 넣고 싶어 참지 못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두근두근 기다렸다 얻는 커다란 기쁨을 보여준다. 그 기쁨은 무르익혀서 얻은 달디 단 맛이다. 어릴 적 잊지못할 특별한 기억을 이렇게 감동적으로 되살려 놓은 이 한 권의 그림책으로 마음의 풍요를 맛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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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를 위한 내 마음 그리스도의 집
신은재 그림, 로버트 멍어 외 글, 혜인이와 아빠 옮김 / IVP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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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에 이사를 온 이후로 아이들과 난 교회를 제대로 다지지 않고 있다. 게으른 탓일 게다. 사실 내가 교회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시댁 어른들로 인해서이다. 종교가 없었던 친정에서의 생활과는 달리 일요일이면 늦잠도 자지 못하고 교회에 끌려(?) 가곤 했었다. 아직도 난 마음에 불이 붙지 못하고 어정정한, 아니 낙제생이다. 내가 이 지경이니 두 아이들도 그렇게 잘 가던 주일학교를 아예 다니지 않고 일요일 아침이면 다소 느긋하게(?)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것 같다. 3년전 큰아이가 처음 주일학교에 다니기 시작할 때만 해도 어찌 그리 열심이던지, 보기에도 참 좋았는데... 요즘은 일요일 하루만이라도 늦잠을 자고 싶다는 핑계를 대며 안 가려고 하고, 작은 아이도 전염되어 그냥 가기 싫다고 한다. 아마 같이 다닐 만한 친구가 없어서도 그런 것 같다.

서재여행을 하다 건강맘님의 리뷰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어린이를 위한 것으로 되어있지만, 오히려 내가 더 보고 싶어서 구입했다. 어른들에게 한 어느 날의 설교를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로 엮은 것이라 한다. 그래서 머릿 속에 쏙쏙 들어오는 쉬운 말씀으로, 설교가 아니라 그냥 동화 한 편으로 다가온다. 주인공 여자아이는 큰아이와 같은 나이 4학년이다. 이 아이의 마음에 그리스도를 위한 집을 흔쾌히 내어주기까지, 평범한 일상에서 빚어지는 아이다운 사소한 갈등과 심리가 포근한 그림과 함께 자상하게 펼쳐진다.

낙재생 신앙인이지만,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위험할 때나 절망적일 때나, 언제나 곁에 있는 높으신 분의 존재를 믿는다. 그런데 내 마음 속에 주인공 여자아이의 상자처럼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상자는 없는지, 생각해본다. 아이는 그 분 앞에 이 상자의 뚜껑을 열어보이고 용서를 받는 순간, 마음 속에 쏙 들어오시는 그 분의 존재가 삶의 든든한 길잡이가 된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더라도 내 마음은 튼실한 그 분의 집이란 걸 잊지않겠다. 우리 아이들의 마음에도 이런 믿음이 자리하면 좋겠다.

요즘 학원이다 공부다 여러가지로 바쁘게 다니는 큰아이를 바라보면 안쓰럽기도 하다. 수학문제랑 씨름하느라 그렇게 좋아하는 책 읽기 시간을 많이 못 가지는 아이를 볼 때마다,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으로 종내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 오늘은 아이가 돌아오면 꼬옥 안아주고 이 책을 슬며시 건네야겠다. 아니, 잠자리에서 읽어주는 것도 좋겠다.

신은재님의 그림은 아이의 예쁜 얼굴이 돋보이고 전체적으로 포근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주어 좋아한다. 하지만 이 그림책에서는 글과 그림이 조화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아쉬웠다. 글의 내용 모두를 그림으로 담기가 다소 무리가 되는 부분이 있어 그랬겠지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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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쥐의 깜짝 마술 - 꿈꾸는 나무 12
줄리 비바스 그림, 멤 폭스 글, 강현희 옮김 / 삼성출판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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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쥐의 깜짝 마술>은 읽기 컨설턴트로 유명한 호주 출신의 Mem Fox가 글을 쓴 첫번째 그림책이라 하여 얼른 손이 갔다. 책 읽어주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저자가 쓴 이야기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잠자리에 들어 입말로 들려주면 좋은 정도의 분량으로 되어있다. 이야기의 전개는 옛날, 그리 멀지 않은 옛날, 로 시작하여 길지 않지만, 어떤 놀라운 사건이 생기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심하다가 우연히도 해결책을 찾게 되는 식이다. 그 과정에서, 상대의 처지에서 마음을 헤아릴줄도 알게 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스토리를 들으며 집중할 수 있는 힘도 생길 수 있겠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깊은 숲 속에 사는 주머니쥐, 허시는 포스 할머니와 함께 산다. 포스 할머니는 신기한 마술을 부려 허시를 재미있게 해 준다. 어느 날, 할머니는 허시를 투명쥐로 만드는데, 이 장면의 그림이 최고로 예쁘다. 할머니가 양손으로 흩뿌리는 색색의 마술가루는 별모양으로 떨어지다가 가루로 바스러지며 내린다. 그 가루를 맞는 허시는 점점 투명쥐로 변해간다. 위험한 동물들을 쉽게 피할 수 있게 하려고 할머니는 그렇게 한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싶은 허시는 할머니에게 부탁을 하고, 허시의 모습을 되돌리는 방법을 미처 알아놓지 않은 할머니는 무척 슬퍼보인다. 여기서, 실망감을 감추고 할머니를 오히려 위로하는 허시가 기특하다.

문득 사람들이 먹는 음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할머니는 허시를 등에 태우고 자전거 음식여행을 떠난다. 할머니 주머니쥐가 신고 있는 하얀 스니커즈가 노란 자전거의 맵시 못지않게 날렵하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이것저것 먹으며 허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고, 일곱 번째 도시에서는 초콜릿 케이크를 먹는다. 드디어 성공! 너무 신나 다음날 아침까지 둘은 춤을 춘다. 주머니 쥐 두마리의 털북숭이 꼬리가 아주 율동적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라, 시간은 일 년이 흘러 허시의 생일날이다. 할머니가 허시와 친구들을 위해 마련한 선물은 다름아닌, 바로 그 음식들이다. 허시의 모습을 제대로 찾아준 그 음식들, 샌드위치, 생크림케이크, 초콜릿 케이크. 모두 함께 나누어 먹는 모습에서 할머니의 넉넉한 마음과 아이를 생각하는 자상한 마음이 느껴져, 아이는 충만감과 안정감을 그대로 가지고 꿈나라로 갈 수 있겠다. 게다가 자기를 그렇게 끔찍히 아끼고 위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느낄 수 있을테니 말이다.

핵가족이라 조부모님과 함께 살지는 않지만, 아이들은 할머니가 오시는 날이나, 할머니 댁에 가는 날이면 참 좋아한다. 엄마나 아빠보다 허용적이고 넉넉하게 포용해주시는 할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면 정서적으로도 푸근함을 맛본다. 평일에는 두 분 할머니와 전화로 자주 이야기한다. 종알종알 엮어내는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할머니는 참 기뻐하신다. 그런 관계를 지켜보는 난 한 발 물러서며 흐뭇해한다. 사실 아이는 할머니와의 이런저런 대화로(사실 아이가 주로 말하지만) 말을 빨리, 잘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역시 아이들이 좋아하는 맛은 달콤한 맛인가 보다.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이 기분을 얼마나 좋게하는지! 그래서 난 가끔 초콜릿이 듬뿍 묻은 케이크나 도넛이 먹고 싶다. <주머니쥐의 깜짝마술>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할머니, 사랑스럽고 귀엽게 그린 동물들, 마술 그리고 달콤하고 맛있는 먹거리를 등장시켜, 아이뿐 아니라 어른의 구미도 한껏 끌어당긴다.

이 조그마한 그림책에 매료되는 이유는 사실 글보다 그림이다. 하얀 바탕에 맑게 그린 수채화의 색감이 퍽 맑고 곱다. 혀를 날름거리는 뱀까지도 이리 고운 색을 하고 있으니... 현란하지 않으면서도 화사하고 세밀하게 묻어나는 색이다. 포인트는 할머니 주머니쥐가 입고 있는 별무늬의 보라색 앞치마다. 신비스런 분위기를 주는 보라색은 마술 앞치마의 색깔로 적절한 것 같다.

마술 앞치마가 있다면 아이는 무얼 해 보고 싶을까?
아이가 지금 원하는 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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