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짓기 시간 아이세움 그림책 저학년 11
알폰소 루아노 그림,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글, 서애경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03년 3월
평점 :
절판


 

 요즘은 글짓기라는 말 대신 글쓰기라는 말이 합당하다고 하여 ‘글쓰기’ 라는 말을 많이 쓴다. 글짓기라고 하면 작위적이고 도구적인 느낌이 나고, ‘짓기’보다 ‘쓰기’가 확실히 자연스러운 욕구를 대변하는 것 같은 낱말이긴 하다. 초등학교 때 글'짓기'시간이 종종 있었다. 요즘은 환경 글쓰기 대회 같은 게 많이 열리지만 그때는 ‘반공 글짓기’가 가장 많이 열렸다. ‘반공’이라는 용어 자체도 생소했을 아이들이 써내는 글이란 그저 주입되거나 학습된 내용들을 바탕으로 뻔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글짓기 시간>>이라는 제목은 책내용의 분위기에 잘 맞다. 부정적이라 해도 제목이 주는 향수는 책표지의 그림과 함께 그런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의 지난 현대사와 아주 흡사한 집단의 기억을 상기시키는 내용에 놀랐다. 이런 소재도 그림책의 이야깃감이 되구나. 다시 한 번, 소재의 내적검열이란 장치가 더 무서운 억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책의 소재라고 해서 한정하려 하지 말고 전달하고자 하는 말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를 고민해야 겠다.

 

 이 책에서는 “군부독재",  "반독재”,  “자유로운 나라를 만드는 거야. ” 이런 글들이 표현 그대로 나온다. 특정 나라를 지칭하지도 않고 특정 시대를 지목하지도 않고 특정인물을 지목하는 내용은 더구나 없다. 자유와 인권의 탄압을 소재로 하는 그림책들이 적지 않게 있지만 거의 상징과 은유로 표현되기 때문에 아이들이 주제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모호한 관념만 갖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그림책은 구체적으로 명료한 표현을 쓰고 문제로 바로 들어가게 하므로 아이들과 오히려 쉽게 이야기를 풀 수 있었다. 이런 장점을 안고, 조금은 이르다 싶은 3학년 아이들과 수업을 했다.

 역시나 아이들은 군부독재, 반독재, 이런 용어부터 물어왔다. 이승만부터 전두환까지 너무 복잡하지 않게 이야기를 해주니 무척 놀라는 기색이었고 더욱 관심을 갖는 아이는 눈망울을 빛내며 책상 가까이 몸을 당겼다. 이 책을 아이들의 눈높이로 소화하자면, 우선 ‘독재’라는 단어부터 이해하고 개인의 권리와 자유의사가 짓밟히는 행태가 아이들 주변이나 가정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여지를 함께 토론해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가장 쉽게는 학급토의시간의 예를 들었는데, 안건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음에도 모두 묵살하고 반장은 자신이 좋은 쪽으로 투표도 없이 결정해버리는 경우다. 아이들에게 네가 반장이라면 어떻게 할까, 라는 질문을 던지니 다수가 가야할 방향과 소수의 바람, 모두를 안고 갈 수 있는 현명한 대답들이 나왔다.  기특하게도..

 <글짓기 시간>의 작가는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다. 작년에 91세로 저 세상으로 간 칠레 군부독재의 주역 피노체트, 그의 독재를 피해 아르헨티나와 독일 등지를 떠돌며 작품 활동을 하였고 영화 ‘일 포스티노’의 원작으로 유명한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를 쓴 작가다. 그림책으로 나온 ‘글짓기 시간’은 알베르토 망구엘이 편집한 단편 선집 <신의 첩자들: 압제에 저항하는 이야기>에 실렸던 작품으로, 어린이를 위해 고쳐 쓴 것이라고 한다. 피노체트는 1973년 유혈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당시 칠레 대통령 아옌데를 자살하게 한 장본인이다. 1990년 대통령직을 넘기고 군 총사령관에 머물다 1998년 다시 종신직 상원의원으로 진출했다. 그는 2006년 11월 25일 91세의 생일을 맞아 집권 기간의 ‘정치적 책임’을 인정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그해 12월 10일 심장병이 악화되어 사망하자 칠레 시민들은 산티아고의 거리에 몰려나와 환호했다. 피노체트 집권 시절 고문을 당했던 미첼 바첼레트 칠레 대통령은 장례는 국장으로 치르지 않을 것이며 3일간의 공식 애도기간도 없다,고 밝혔다.(동아일보 2006-12-12)  한편 놀라운 것은, 피노체트 지지자들은 그가 사망한 산티아고 군병원 밖에서 그의 초상화를 내걸고 추모행사를 열었다는 기사내용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박, 전,의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해주었더니 아이들이 경악했다.

 <글짓기 시간>의 화자는 열 살 아이 페드로. 갈색 머릿결과 균형잡힌 이목구비가 눈에 띄는 남자아이다. 생일선물로 고무공이 아닌 가죽축구공을 받고 싶은 평범한 아이다. 페드로와 친구들이 어느 날 학교에서 느닷없이 받아든 글짓기 제목은 “우리 식구가 밤마다 하는 일”이다. 검은 안경을 쓰고 군복을 입은 로모대장이 들어와 내어준 이 제목 앞에 페드로와 친구가 고민하는 시간이 길게 이어지고 그들이 속삭이며 나누는 대화는 아이다운 순수함이 배어있다. 그 길고 지루한 시간동안 페드로의 고민하는 마음을 잘 보여주는 건 글보다 그림이다.

 

 다른 좋은 그림책이 그렇듯, 이 그림책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그림의 힘이다. 글은 상당히 자제되어있고 많은 말을 감추고 있다. 군부독재시절, 밤마다 듣는 라디오방송이나 사람들과의 자유로운 이야기도 감시의 눈초리를 의식해야 했듯, 이 책의 글은 늘 누군가의 무서운 눈초리와 밤말을 듣는 쥐새끼를 의식하는 것처럼 아껴서 풀린다. 그런 속사정을 내밀하게 보여주는 그림들이 묵직한 감정을 전한다. 어른들의 고민, 아이들의 불안 그리고 드러내어 말하진 않지만 누구나 느끼고 있는 부당함에 대한 분노, 억눌린 생각과 감정. 착 가라앉은 색감과 세밀한 표정의 묘사 그리고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억압된 분위기가 모든 걸 전달해주고 있다. 체스와 체스판으로 끝낸 마지막 장의 여운은 앞의 그림들과는 사뭇 다르게 절망 속에서도 밝은 기운을 불어준다.  그림은 알폰소 루아노의 작품인데 글의 어조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으면서,  "르포적인 상상력을 펼치고 싶다" 고 말한 그의 염원대로 조화로운 일러스트레이션을 연출했다.

 우리 식구가 밤마다 하는 일!  페드로가 얼마나 영리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인지 확인해 보시기를 권한다. 스프링공책을 부욱 뜯어내어 쓴, 그 애의 글을 읽어볼 때는 마지막 글귀 ‘알림’을 주시하시길...  흐뭇한 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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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7-07-10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보고 감동 받았어요.
박통과 전통시대를 산 사람이라서 그런지 남의 일이 아니게 느껴지니까요.
전 똘이장군 보고 큰 세대거든요^^

프레이야 2007-07-10 13:30   좋아요 0 | URL
정말 남일이 아니라 더욱 공감되었어요. 수니님의 오래전 리뷰도
읽었답니다.^^ 똘이장군ㅎㅎ 이 책 속의 로모대장이 입은 군복에 검은안경,
금색버클이 달린 검정벨트 그리고 총칼.. 이런 것들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지요. 학교담벼락에 적힌 '독재타도'도!!
근데 애정의표시로 추천 안 눌러주심 삐질거야요..

뽀송이 2007-07-10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힘겨운 주제를 열살 아이의 시선으로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해지는 책이군요.^^
책 속에 자연스럽게 흐르는 그림도 궁금합니다.

프레이야 2007-07-10 13:32   좋아요 0 | URL
뽀송이님도 추천 안 눌러주셔서 서운해용~~(저 완전 나대고 있죠?^^)
사실 열살 아이가 보기엔 답답하고 무슨 말인지 모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이런 책은 더욱 어른이 함께 보기를 권해요. 많은 이야기를 아이
눈높이에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생각의 밑거름이 될거에요.
참 좋은 그림책이랍니다.^^

소나무집 2007-07-10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몇 년 전에 읽었는데 다시 한번 보아야겠어요. 좀 어렵긴 하겠지만 이젠 아이가 열 살이니 독재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어보고.

프레이야 2007-07-10 14:02   좋아요 0 | URL
님도 이 그림책을 이미 보신 적 있군요. 전 유월에 처음 보았어요.
그림책의 소재도 그렇지만 전달하는 방식에 자꾸 눈이 가더군요.
말을 할듯 말듯한 글과 사실적이면서도 감정을 절제하는 그림이 여운을
주었어요. 마지막 그림, 체스와 체스판은 다소 희망적으로 보여요.^^
참, 소나무님도 애정의표시 남겨주세요, 꾸욱 이거요^^

씩씩하니 2007-07-10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독서 모임 때문에 몇년 전에 읽었었는데...
님 느낌 읽으니 새롭게 와닿네요...

프레이야 2007-07-10 13:35   좋아요 0 | URL
하니님도 읽으셨군요. 전 이제 알았네요. 이런 좋은 그림책을요..
아이가 한살씩 먹어가면서 일년에 한 번씩 봐도 좋을 것 같아요.
할 이야기도 늘어가겠지요..
님, 애정의표시 꾸욱~ 남겨주시고 가셔야죠..호호..

뽀송이 2007-07-10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
추천하고 갑니다.^^;; 혜경님 넘 귀여워욧!!!

프레이야 2007-07-10 19:00   좋아요 0 | URL
뽀송이님, 복 받으실거에요.. 하하하..
저녁식사 준비는 다 하셨어요?

nada 2007-07-10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여기도 페드롭니껴. 요즘 알라딘에 페드로 신드롬이~~
우리 식구는 밤마다 혜경을 묵독합니다.ㄷㄷㄷ

프레이야 2007-07-10 21:46   좋아요 0 | URL
ㅎㅎㅎ 꽃양배추님, 우리 형제로서 경전을 보러 오셨군요, 아멘..
우리 식구가 밤마다 하는 일~ ^^
체셔님의 재기발랄함으로 유쾌해요!
근데 페드로신드롬은 뭐에요?? 아, 알아냈어요. 교주님 페이퍼에..

비로그인 2007-07-10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접하게 되었을 때는 새로운 반응으로 표현하지요
감탄사 또는 행동으로 말이예요
아~핫 오~저런 이런일이...눈망울 초롱초롱 글쿠나 혹은(글쩍글쩍^^a)
도장밥 꾹꾹 눌러 추천하고갑니다 꾸욱~♡

2007-07-10 2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풀꽃선생 2015-01-09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풀꽃입니다. 딸애가 고3이라 시험을 마치고 지난 주에 같이 서점에 갔어요. 어렸을 때 보던 그림책 이야기를 하며 오래 앉아 그림책만 읽다 오자고 해서요. 훗날 님의 따님들도 그러지 않을까요. 또 딸들이 아기를 낳아 그림책을 읽어줄 때가 되면 3대가 머리를 맞대고 그 옛날 같이 그림책 읽던 시절을 떠올리지 않을까요... 좋은 글들 감사드려요. 오랜만에 서재에서 좋은 책 정보 얻어갑니다.

프레이야 2015-01-10 00:17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올해 따님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이 그림책을 지난 주에 보셨나요? 아님 보실 계획인지요. 딸아이와 함께요.
참 좋은 그림책이죠.
저는 아이들 어릴 적에 샀던 그림책들, 거의 다 갖고 있어요.
저도 가끔 들춰보고 마음에 즐거움과 위로가 된답니다. 아이랑 함께 읽던 시절도 가끔 생각이 나요.
올 한 해도 행복한 날들 되시길요^^

 
엄마 마중 - 유년동화
김동성 그림, 이태준 글 / 한길사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조바위(여자가 쓰는 것이긴 하지만) 쓰고 검정 고무신에 저고리 고름 질끈 한쪽으로 묶은 아가. 둥글넙적한 얼굴에 펑퍼짐한 콧잔등, 옴팍 패인 검정콩 만한 두 눈 그리고 앙다문 조그마한 입. 그림책의 주인공이다. 네살 정도나 되었을까. 아가의 양볼과 콧끝이 새빨개져선 얼어있다. 날씨가 무척 차가운가 보다. 그래도 솜바지가 넉넉해 보인다.

이태준은 30년대에 동화와 유년동화를 많이 썼고 경성 보육 학교에서 동화쓰는 법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 그림책에 담긴 글은 1938년 간행된 '조선아동문학전집'을 원전으로 하였다고 한다. 이태준 문장의 간결함과 섬세함, 진한 인간애가 이 짧은 글 속에서도 잘 나타난다. 게다가 김동성 화가의 그림이 넘치지 않는 조화를 이루어낸다.

아마도 장사 나간 엄마를 혼자서 기다리던 아가는 엄마가 돌아올 시각 쯤에 집을 나선다. 엄마는 분명 꼼짝 말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했을 텐데. 속지를 넘기면 기와지붕집들이 나즈막하고도 빽빽히 들어선 마을의 하늘 위로 전봇대의 전선이 이리저리 금을 긋고 있다. 어느집 장독대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크고 작은 장독들도 보이고 좁은 골목길엔 가로등이 기우뚱 매달려 있다. 전선에 닿을 듯 말 듯 마른나뭇가지들이 하늘로 뻗어있고 뛰놀던 아이들도 모두 집에 들어가 저녁밥을 먹는지, 마을은 온통 고요함게 젖어있다. 한 장을 넘기면 우리의 '아가'가 아장아장 걸어간다. '엄마마중' 가는 길이다.

보는이의 시선이 아가의 종종걸음을 따라 횡으로 간다. 누르스름한 바탕에 간결하면서도 힘있는 선으로 그려놓은 그림이 마치 박수근의 그림을 연상하게 한다. 세심한 동양화풍의 그림으로 유명한 김동성님의 그림이 작가의 소박한 글과 잘 어울린다. 전차를 기다리는 곳으로 '낑'하고 올라서는 아가의 엉덩이에 잔뜩 힘이 들어가 높은 곳으로 오르려는 작은 몸통의 움직임이 살아있다. 아가의 짧은 다리로는 좀 높은 안전지대인가 보다. 낑낑대는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이 그림책의 미덕은 간결하게 절제되어있는 글 속에 다 드러나지 않은 아가의 심리와 안타까운 마음을, 그림이 자세하게 읽어내어 표현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전차정류소에서 엄마가 타고 내릴 전차를 기다리며 땅에 금을 긋고 있는 아가, 전차가 올 때마다 갸웃하고 차장더러 "우리 엄마 안 와요?" 하고 묻는 조바심 난 아가, 전차정류소 팻말 기둥에 매달려 지루해죽겠다는 듯 몸을 당기고 있는 아가, '땡땡' 하면서 지나가버리는 전차의 꽁무니를 빤히 쳐다보며 섭섭해하는 아가의 모습 같은 데서, 조림국물이 졸아들듯 바짝바짝 타는 아가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거리에 어둠이 희뿌옇게 내리기 시작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발걸음을 재촉하는 시간, 아가는 세상에 뎅그러니 홀로 남은 기분이다. '코만 새빨개서 가만히 서 있' 다. 오동통하니 홍시처럼 붉은 볼, 터질듯한 옆모습이 불쌍하다기보다 어쩜 그리 예쁜지.

눈오는 해거름의 하늘, 무슨 색일까, 얼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그림책에서 화가는 의외의, 노란연두빛으로 세상을 채색했다. 어쩌면 이 해 겨울 아가가 맞는 첫눈인지도 모른다. 눈송이가 퍼져있는 노란연두 하늘의 색감이 너무 고와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그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가의 눈에 눈송이보다 몇배는 더 기다려지는 엄마의 얼굴이 고이는 것 같다. 온세상이 금세 눈천지가 되었다. 마을 기와지붕 위에도 소복히 눈이 쌓이고 아가의 두볼과 코는 더 새빨개졌지만 세번째 전차차장 아저씨가 시킨 대로 자리를 뜨지 않고 그대로 서서 엄마를 기다린다. 마지막 장면(뒤속지)의 그 아름답고 포근한 풍경이란!  김동성의 풍경은 언제나 엄마품처럼 넓고 온기가 있다. 아가는 엄마의 손에 매달려 좁은 골목길 낮은 돌계단을 올라가고 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도시의 산동네 쯤에 사는 아가와 엄마는 뽀드득 눈을 밟으며 따뜻한 아랫목이 기다리는 집으로 가고 있다.

아가의 오른손에 무언가가 쥐어져있다. 짧은 막대에 빨간 물체가 달려있는데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가 없다. 무엇일까. 오래도록 추운 데서 엄마를 기다린 착한 아가의 손에 엄마가 쥐어 준 선물이 궁금하다. 아가를 내려다보는 젊은 엄마의 뒷태와 옆모습이 곱디곱다. 엄마를 만난 아가가 더 행복할까? 마중 나온 아가의 고사리손을 잡고 걷는 엄마가 더 행복할까?  아가의 손을 잡고 걸어본 사람이라면 알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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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1-04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님 고마워요. 마음이 참 맑아지는 그림책이에요^^
아가의 얼굴이 어찌 사랑스러운지요.

밥헬퍼 2007-01-04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람되지만, 예전에 제가 이 글 원문을 하나 올려놓은 것이 있는데요. 여기에 덧붙여도 되겠지요? 제가 아주 감명깊게 읽었던 동화거든요. 다시한번 읽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어린이창비 2003.가을 통권3호 188쪽/"권희선,이태준 동화에 나타난 아이와 엄마의 관계"

엄마 마중
이 태 준
추워서 코가 새빨간 아가가 아장아장 전차 정류장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낑 하고 안전지대에 올라섰습니다.
이내 전차가 왔습니다. 아가는 갸웃하고 차장더러 물었습니다.
"우리 엄마 안 오?"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
하고 차장은 '땡땡'하면서 지나갔습니다.
또 전차가 왔습니다. 아가는 또 갸웃하고 차장더러 물었습니다.
"우리 엄마 안 오?"
"너희 엄마를 내가 아니?"
하고 이 차장도 '땡땡'하면서 지나갔습니다.
그 다음 전차가 또 왔습니다. 아가는 또 갸웃하고 차장더러 물었습니다.
"우리 엄마 안 오?"
"오! 엄마를 기다리는 아가구나."
하고 이번 차장은 내려와서
"다칠라. 너희 엄마 오시도록 한 군데만 가만히 섰거라. 응?"
하고 갔습니다.
아가는 바람이 불어도 꼼짝 안 하고, 전차가 와도 다시는 묻지도 않고, 코만 새빨개서 가만히 서 있습니다.
출전:조선아동문학전집(조선일보사, 1938)

씩씩하니 2007-01-04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참 감동적으로 가슴 찡하니 읽었드랬어요...요 책 얘기하다가 친구랑,,아주 심오한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새삼 떠오르네요~

프레이야 2007-01-04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헬퍼님/ 원문 감사합니다. 세번째 차장의 따스한 마음도 찡해요^^
새해에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씩씩하니님/ 아가와 엄마, 심오한 대화가 궁금해지네요^^

춤추는인생. 2007-01-04 17: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 이런 멋진 리뷰 써주실것만 같았어요... 차마 실력없는 제가 글로 쓰지 못한말들을 님께서 다 해주시다니... 감사해요.님.^^

프레이야 2007-01-06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흘끗 보고 넘기기엔 뭔가 아까운 그림책, 맞아요.
이런 그림책을 안겨주신 *****님이 고맙지 뭐랍니까.^^

춤추는인생님/ 고마워요^^

향기로운 2007-01-09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읽고는 너무 좋아서 리뷰를 꼭 쓰고 싶었는데.. 책 자체가 워낙 글도 적은데다 그림이 주는 감동이 더해서 그냥 멍해 있었는데..^^ 배혜경님의 리뷰를 보니 그 감동이 다시 새록새록 느껴지네요^^ 근데, 엄마 마음과 달리 우리 애기들은 한 번 읽고는 무심하네요. 자주자주 보면 좋겠는데.. 요즘 만화삼매경에 빠진 것 같아요... 에휴~^^;;

프레이야 2007-01-09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향기로운님/ 아가들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네요. 아이들은 눈을 확 사로잡는 그림이나 솔깃해지는 글귀가 아니면 좀 심드렁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전 이 수수하고 소박한그림책, 아가보다는 엄마가 보면 더 좋아할 것 같더군요. ^-^

2007-01-15 14: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마천 2007-01-18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책의 감성이 잘 전달되는 좋은 리뷰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남겨주시기를

뽀송이 2007-01-18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리뷰를 따라 놀러 왔어요~^^
혜경님의...
"이 그림책의 미덕은 간결하게 절제되어있는 글 속에 다 드러나지 않은 아가의 심리와 안타까운 마음을, 그림이 자세하게 읽어내어 표현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라는 감상평이 마음에 와 닿네요~^^*
좋은 리뷰 계속~ 기대할께요~^.~

프레이야 2007-01-18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마천님/ 늘 감사합니다.^^
뽀송이님/ 추천리뷰였던가요? ^^ 고맙습니다...

네꼬 2007-01-25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고 또 보아도 좋은 그림책이 있지요. 오랫동안 제 책상 위에 두고 보고 또 보았던 책이네요. ((댓글을 따라 슬쩍 넘어와 봤더니, 아니, 이렇게 재미난 책들이!!))

프레이야 2007-01-25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주고양이님/ 이미 여러번 보셨군요. 전 이번에 첨 봤어요. 좋은 분의 선물로요.
이런 그림책 보면 단순하고 간결한 글과 깨끗한 그림이 마음을 순화해 주어요.^^

최상철 2007-02-15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책이 때로는 말로 표현되지 않은 감동을 선사해주는데요.
이 책 역시 저도 그런 감동을 많이 맛보았답니다. ^^

프레이야 2007-02-15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철님, 반갑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 맞아요. 기쁘고 맑은 기운..

readersu 2007-02-26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2년전인가 출판단지에서 하는 책잔치에 한길사 갔다가 조카 사주고 읽으면서 어찌나 좋았던지...지난 주에 다시 읽고선 리뷰를 써 볼까 했는데..배혜경님의 리뷰를 보니..와우~ 전 포기하렵니다.하하..멋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

프레이야 2007-02-26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eadersu님/ 2년전에 보셨군요. 참 좋은 책이에요. 반갑습니다.^^
 
프로코피예프의 피터와 늑대 음악 그림 동화 시리즈 1
에릭 바튀 그림,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작곡, 김하연 옮김 / 베틀북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피터와 늑대>를 처음 알게 된 때는 한참 해를 거슬러간다. 큰딸이 여섯 살 때였나 싶다. 그땐 조수미가 들려주는 음반으로 들었는데 조수미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와 오케스트라의 협주, 그리고 낱낱의 악기들이 표현해내는 개성 있는 음색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미래출판사에서 나온 그림책으로 일러스트레이션이 판화로 된 특이한 그림책을 만났고 이번에 베틀북에서 나온 ‘클래식 음악과 아름다운 그림책의 만남’ 시리즈의 첫편을 보게 되었다.


이 그림책의 가장 큰 장점은 오디오 CD가 첨부되어 있다는 점이다. 음악을 들으며 그림책을 볼 수 있으니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다. 게다가 일러스트레이션이 강렬한 인상을 주며 환상적인 색감으로 보는 즐거움에 푹 빠져들게 한다. 에릭 바튀라는 프랑스의 일러스터레이터는 이력이 특이하게도 법학과 경제학 전공이다. 등장인물을 작게 그리는 게 특징이라고 하는데 그럼으로써 배경을 아주 넓게 드러내어 보여 시각적으로 시원한 느낌을 준다.


전체적인 풍경과 하나의 분위기로 좌우하는 공간의 색조가 이야기 진행에 따른 인물의 감정과 정서를 잘 표현하고 있다. 한가한 권태로움, 긴장과 환희 같은 감정의 곡선과 시간의 추이를 색감으로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상세하게 그리기보다 절제되고 단순화한 선으로 사물의 윤곽을 그리고, 대신 땅과 하늘은 광활하게 그려놓았다. 거친 붓자국이 보이는 것도 같다. 색감 자체도 깊이가 있어서 보고 있으면 대자연 앞에 선 것처럼 뭉클해진다. 장면마다 땅과 하늘이 맞닿은 지평선과 단순한 타원 형태를 띠는 몇 그루 혹은 한 그루의 나무, 그리고 둥그런 호수와 대낮의 시뻘건 태양, 아스름한 핑크빛의 해거름 태양 혹은 달. 이렇게 자연의 사물들을 보는 이의 마음속에 조용히 가라앉힌다. 그래서 자그마하게 그린 인물들은 모두 풍경 속에 어우러져 두드러지지 않으면서 하나의 풍경이 된다. 특히 내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장면마다 빠지지 않는 길고 평온한 ‘지평선’이었다.


이 그림책은 기존의 <피터와 늑대>보다 음악적인 면에 조금 더 비중을 둔다. 오디오를 통해 각각의 등장인물을 상징하는 악기의 음색을 들을 수 있기도 하지만 왼쪽 장에는 길지않은 글과 함께 각 인물을 상징하는 악기를 그려놓고 악보를 그려놓았다. 글과 악보와 악기의 색깔은 바로 옆 오른쪽에 있는 일러스트레이션의 전체적 색감에 맞추어(초록, 빨강, 파랑, 황금빛 등) 일치해두어서 오케스트라의 협음처럼 전체적으로 안정되고 조화로운 인상을 준다. 예를 들어 피터가 등장하면 바이얼린 등의 현악기, 작은 새가 등장하면 플루트의 가늘고 맑은 음색이 따라나온다. 2학년 정도의 어린이라도 악보 보기를 즐기는 아이라면 무척 관심 있게 볼 것이다. 실제로 피아노를 쳐보았다며 신기해하곤 했다. 프로코피예프라는 러시아 작곡가가 어린이를 위한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는 이야기에도 눈을 똘망거렸다.


생명을 함부로 죽이지 않고 용감하며 재치 있는 피터와 꾀많은 작은 새의 활약을 보는 것만으로도 유쾌하다. 그런데 2학년 아이들은 CD를 한 번에 듣고 앉아있질 못하고 너무 길다는 반응을 보였다. 틀어두고 다른 걸 하면서 듣도록 하던지 어른이 함께 앉아 책을 보며 듣는 것도 괜찮겠다. 아직도 꽥꽥거리고 있는, 늑대 뱃속의 오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늑대는 사냥꾼들에 의해 동물원에 잘 갔을까? ^^ 이런 질문도 던져보시면 재미있는 대답이 나올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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씩씩하니 2007-01-03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수미꺼루,,하나 지르고 싶은 마음이 바로 생겨요...
울 애들 좋아할꺼 같애요,,,저두..ㅎㅎㅎ

프레이야 2007-01-03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씩씩하니님, 조수미의 CD, 듣기에 참 좋아요. 목소리가 어찌 새소리 같은지요.^^

해적오리 2007-01-03 2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좋을 거 같아요. 우... 책값에 시집밑천 다 날라가요...

행복희망꿈 2007-01-03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희 아이들도 태교 CD에 있던 음악을 들려주었더니 무척 좋아하더군요. 소리를 들으면서 참 신기해 하더라구요. 저도 이 책 보관함에 담아두어야 겠네요.

프레이야 2007-01-04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희망꿈님/ 태교음악으로 좋을 듯해요. 내가 들어 즐거우면 아이한테도 좋다고들 하지요. ^^

해적님/ 그러게요. 사고 싶은 책들은 많고...^^

속삭님/ 아침운동 하셨군요. 건강을 위해 아자아자...
그래도 넘 추운데 ㅜㅜ
'마음의 풍금'이란 글귀가 좋으네요.

앨런 2007-01-06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아름다운 책방 신세를 지는 앨런입니다. 님의 책방을 종종 기웃거리고 있답니다.새해 건강과 웃음이 가득가득 하시길.

프레이야 2007-01-06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앨런님/ 오랜 만이에요. 감사합니다.^^
 
오늘이 - 한국 대표 애니메이션 그림책 1
이성강 지음 / 문공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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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성강 감독은 2004년에 앙시 페스티벌에서 이미 ‘마리이야기’로 장편 부분 대상을 수상했다. <오늘이>는 2004년 자그레브 애니메이션 영화제 특별상을 비롯하여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전문가들의 극찬을 받은 작품이다. 그 애니메이션이 그림책으로 재탄생되었다.


<오늘이>는 제주도의 계절 근원 신화, 원천강 본풀이를 재구성한 이야기이지만 신화와는 조금 다른 해석을 하여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오늘이를 통해 성장과 회귀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인간의 욕심과 행복의 근원도 생각할 수 있게 한다.


그림책 <오늘이>에는 VCD가 부록으로 들어있어서 1학년 아이와 함께 재생하여 보았다. 17분정도의 애니메이션으로 장면의 전개가 빠르고 이야기전개에도 박자감이 느껴져 전체적으로 율동적이다. 애니메이션과 그림책 모두 낮고 깊은 색감을 주로 하여 사람의 무의식의 세계나 꿈속의 세계 혹은 전생의 장면을 상상하는 것 같이 환상적이다. 무게감이 느껴지는 녹색톤과 잿빛톤에 밤하늘처럼 진한 잉크색의 색감이 신비롭다. 그러다 인물이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동글동글 귀염성스러운 윤곽과 밝은 색감을 곁들여 보는 이가 지루하지 않게 한다. 아이들을 눈높이로 한다는 점에서도 이렇게 밝고 고운 색감과 무게감 있는 진지한 색감을 동시에 쓴 점이 좋아 보인다. 배경의 아스라함과는 대조적으로 등장인물은 눈에 띄는 색상으로 도드라지게 그려놓았는데, 특히 여의주를 너무 많이 갖고 있어 승천하지 못하는 욕심꾸러기 이무기가 어찌나 귀엽게 그려졌는지, 마치 아기공룡둘리에 나오는 둘리엄마 같기도 하여 재미있다. 오늘이와 매일이가 머리를 부딪히며 만나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난다.


이무기가 그렇게 움켜쥐고 있던 여의주를 다 버리고 위험에 처한 오늘이를 구해주는 장면은 감동적이다. 이무기가 드디어 용이 되어 하늘로 오르고 입에서 내뿜는 불로 얼어붙었던 원천강을 녹이는 장면은 스펙타클하다. 원천강은 바다 한 가운데 있는 섬이다. 그 섬은 우리의 근원적인 고향이지 뿌리다. 신화에서는 오늘이가 계절의 시작을 알리는 선녀가 되는 것으로 맺지만 여기에서는 그냥 원천강으로 돌아가 아름다운 학, 야아와 재회하여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것으로 끝난다. 아이들의 정서에 훨씬 안정감을 주는 행복한 그림이다.


일러스트레이션의 미덕을 한껏 발휘한 그림책 <오늘이>는 한국 대표 애니메이션 그림책 시리즈의 첫 권이다. 그림책에서는 만화의 장면처럼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데 면의 크기를 일정하게 하지 않고 변이를 주어 보는 즐거움을 더했다. 다양한 면의 분할과 적절하게 절제된 글귀가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에 버금가는 독특한 경험을 안겨준다.


그림책 <오늘이>는 한국 대표 애니메이션 그림책 시리즈의 첫 권이다. 국내 시장의 열악한 사정으로 독자들에게 선도 못 보이고 사라지는 우수한 애니메이션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렇게 주옥같은 그림책은 아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멋진 판타지의 경험을 할 수 있는 그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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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봄 여름 가을 겨울 - 감성 발달을 위한 사계절 그림책
린리쥔 지음, 린리치 그림, 린리치웅 미술편집, 심봉희 옮김 / 베틀북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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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출생의 세자매가 글과 그림, 기획과 편집을 맡아 보석같은 그림책이 나왔다. 감성발달을 위한 사계절 그림책이라는 부제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이 책의 미덕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그림과 시적인 글에 있다. 우선 일러스터레이션을 보는 순간 단번에 유혹된다. 너무나 섬세하고 따뜻하며 맑고 풍부하다. 생태적으로도 정확한 세밀화를 그렸을뿐만 아니라 상상력이 가미된 그림도 아름답고 수채화풍의 풍경 그림은 아주 맑은 기억을 들추어준다. 색감이 손에 묻어날 것처럼 선명하며 신선하다.

아버님은 간혹 중국의 세자매가 나오는 영화에 대하여 이야기 하신다. 내가 두 자매를 키우고 있는 걸 빗대어 딸 하나를 더 낳아 훌륭한 세자매를 배출해보라는, 어찌 들으면 우습기도 한 말씀을 하시곤 했다. 이 그림책을 낳은 세자매는 '나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서정적인 글과 그림으로 잘 그려냈다.

나래이션 격인 주인공 아이는 그림속 어느 곳에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목소리만으로 그 아이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아이를 숨겨놓아, 그 아이는 철저히 내가 될 수 있고 또다른 아이인 '너'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다더 계절마다 느껴지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들 수 있게 했다. 대신 아이의 모습을 상상해보게 하고 성품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소품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때그때 변하는 아이의 살아있는 표정이 마음 속에 그려진다.

봄에 발견한 새집, 그 새집 안에는 새 대신 꿀벌들이 둥지를 틀고, '봄이 왔나요?' 하고 묻는 것처럼 생긴 연한 고사리도 봄에 만난 친구다. 아침 햇볕을 즐기고 있는 무당벌레를 소개하는 대목에서도 생태학적인 면과 함께 시적이면 다정다감한 말투를 잊지 않는다. 새싹을 기다리며 씨앗을 심었지만 조바심만 나는 아이에게 엄마가 들려주는 한 마디는 아이를 자라게 한다. 그건 바로 한 가지가 빠졌기 때문이라는데 바로 '인내심'이라지. 민들레는 토끼 몫으로 남겨두라는 엄마의 말을 듣고 민들레를 동물들에게 양보하겠다는 아이의 마음은 또 얼마나 예쁜지.

여름이면 여러가지 종류의 나비들을 관찰한다. 민들레 홀씨를 불며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림으로 그려진 아이의 소원이란 게 정말 깜찍하다. 거창한 게 아니라 말하자면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과 아이스크림 같은 것이다. 아이의 보물상자를 들여다보면 아이가 대자연 속의 보물찾기를 얼마나 재미있어하는지 알 수 있다. 솔방울, 열매들, 조개껍질들, 조약돌, 깃털 한 장, 몽당연필까지 아이들의 마음이 어쩜 이리 아가자기하게 담겨있는지. 바닷가 소라껍질을 귀에 대고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는 감성과 상상력까지 갖춘 아이가 사랑스럽다.

가을이면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바람은 차가워지고 나무는 옷을 갈아입는다. 갖가지 버섯들을 발견하고 독버섯도 세밀하게 관찰한다. 도토리를 모으는 다람쥐를 만날 수 있다. 도토리를 숨겨두고 잊어버리는 다람쥐를 엄마는 이해한다. 잘 잊어버린다는 공통점을 꼭 집어낸 게 유머러스하다. 숨겨두고 못 찾아먹은 열매에서 싹이 나고 작은 나무로 성장할 수도 있다는 점이 신기하기도 하다. 그 꼬마나무가 귀여운 다람쥐에게 보낸 감사의 편지도 따스하다. 숲속 우체국 소인이 찍힌 그 편지에는 "내가 자라거든 열매를 아주 많이 선물할 테니까, 꼭 나를 찾아와야 해!" 라고 적어두어 생명의 순환과함께 나누는 것의 미덕까지 느끼게 해준다.

겨울이면 강에 찾아온 겨울철새를 관찰할 수 있다. 가을에 모아둔 자연의 보물을 가지고 예쁜 화관을 만들어 추운 겨울밤을 따뜻하게 보낸다. 화관이 정말 아름답다. 붉고 푸른 열매들의 색감이 풍성하다. 맑은 겨울날, 먹을 것을 찾아다니고 옮기느라 바쁜 개미들의 행렬도 놓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의 푸근한 기억과 함께 아이는 아이다운 상상의 세계로 마술빗자루를 타고 날아간다. 신비한 자연 속의 여행을 하고 싶어하는 아이를 태워줄 마술빗자루는 마른가지와 솔잎만 있으면 가능하다.

마지막 장, 마술빗자루를 타고 이야기가 스물거리는 무채색의 겨울숲을 날아오르는 아이를 어떻게 그려놓아나 꼭 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귀염둥이가 내지르는 호이~ 호이~ 기합소리도 들어보시길... 아이는 다람쥐, 토끼, 고양이, 나비, 강아지, 꿀벌, 고니 한 마리도 될 수 있다. 끝까지 주인공아이 얼굴이 나오지 않아서 보는 이가 그 아이가 될 수 있게 여백을 둔다.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어디로든 날아갈 수 있게 해주는 마술빗자루를 타고 자연의 신비로운 세계로 호이~호이~~  생태그림책이면서도 한권의 풍경화집 같기도 하고 사진집 같기도 한 이 그림책을 덮는 순간 마음이 참 풍성해지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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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 2006-08-27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마술빗자루 타고 동화 속 세상으로 가고 싶네용
호이~ 호이~
오늘은 '작은아씨들'한테 가 볼까나~~~~~~

바람돌이 2006-08-27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아름다운 그림책이네요. 우리 아이도 좋아하겠어요.

프레이야 2006-08-27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1학년 아이와 함께 보았는데요.. 정말 아름다운 그림책이에요. 보면서 엄마랑 함께 나눌 이야깃거리도 아주 많지요.

비자림님, 호이~호이~ 해보니까 정말 기분이 좋아지죠. 가볍게 날아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 몸무게 땜에 아니되려나..ㅎㅎ

속삭님, 마법에 걸리면 신나겠죠..^^

푸훗 2006-09-11 2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림동화책을 참 좋아해요. 가끔 구입하기도 하고 친구들을 협박해 책을 얻어 내는데 이 그림책도 참 좋을 것 같네요. 요즘엔 유리 슐레비츠에 완전 빠져서 그의 그림책을 보며 마음을 가다듬고 있어요. ^_^

프레이야 2006-09-11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훗님, 유리 슐레비츠의 그림책을 보면 마음이 차분해져요. 저도 마음결을 다듬고 싶으면 그림책을 보는데 글도 그림도 좋은 그림책이 참 많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