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둘레를 잰 도서관 사서 - 에라토스테네스 이야기 인문 그림책 3
캐스린 래스키 지음, 임후성 옮김 / 미래아이(미래M&B,미래엠앤비)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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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출판사에서 인문그림책 시리즈로 나온 그림책이다. 책표지에는 어떤 남자가 손바닥에 지구를 가볍게 들고 있다. 이 사람이 누굴까? 여기서 이 그림책에 대한 호기심은 출발한다. 지구둘레를 쟀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의 직업은 도서관 사서, 게다가 아주 오래 전, 2천년 전에 살았던 인물이라는 점이 알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이 그림책은 연령에 따라 감상할 수 있는 영역이 달라 고학년까지도 보면 좋을 듯하다. 과학, 수학, 역사, 인물에 이르기까지 독자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건드린다. 지구 둘레를 재는 과정을 그림과 함께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데 처음 들어보는 용어들도 나오므로 생소하지만 오히려 흥미롭다. 책의 뒷장에 용어설명란으로 한 장을 할애해두었다.

에라토스테네스라는 인물에 대한 아주 적은 기록만으로 작가는 2천년을 훌쩍 넘어 생동감 있게 인물을 그려냈다. 인물의 성격, 특히 어릴 때부터 질문과 호기심이 많고 상상력이 풍부했던 인물, 학문에 대한 열망 같은 것들이 잘 느껴진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사서로 있을 당시 지구 둘레를 재는 큰 일을 하였는데 그 과정을 멋진 그림과 함께 자세히 보여준다. 오렌지와 지구를 대조적으로 그려두고 부채꼴 모양으로 나누어 놓은 그림에서 간단해보이지만 아무도 생각해내지 않은 생각을 한 인물에 대해 호감을 가지게 된다.

작가는 에라토스테네스를 '훌륭한 질문가'로 이름짓는다. 그는 목록을 만드는 일에 열심이었다.  목록은 정보를 모으는 좋은 방법이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돌려보기에도 편리했다. 그리스 역사에서 중대한 일이 일어난 일도 목록으로 만들었는데, 이를 '연대기'라고 한다. 작가는 이런 식으로 객관적인 기록의 중요함도 말하고 있다. 이렇게 기록을 하여도 공란이 있기 마련이다. 그 부분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상상력이라고 생각한다.

이 그림책은 한 인물을 따라가서 그 시대와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 사는 방식 그리고 무한한 호기심과 상상력의 힘을 작가의 멋진 '상상력'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또한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낯선 분위기를 잘 그리고 있는데 전체적으로 폭신하고 톡톡한 질감과 색감이 깊은 인상을 준다. 마치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하여 위대한 인물을 만나고 온 것 같다.

지식은 축적되는 것이다. 지식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고 상상력의 공간도 늘 비워져있기 마련이다. 그곳에 들어가 어떻게 채우느냐는 아이들의 몫이라고, 에라토스테네스처럼 그 질문이 옳든 그르든, 늘 질문을 던져보라고,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어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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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모자 아저씨의 파란 집 세상을 넓게 보는 그림책 1
안느 에르보 지음, 양진희 옮김 / 함께자람(교학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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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우리는 이것을 찾으려 살고 있지만 이것을 잊고 살기가 십상이다. 고민하고 갈등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남의 일에 간섭하고 또 후회한다. 이런 감정의 잦은 소용돌이는 비단 어른들만이 겪는 게 아니라 아이들도 작든 크든 이런 감정들로 속 끓이며 산다고 여겨진다. 이 책의 원제는 <파란 집>이다. 벨기에 그림책작가 안느 에르보는 상당히 철학적인 이야기를 선명한 그림과 시적인 글로 형상화하였다.

빨간 모자 아저씨는 나그네다.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한 곳에 붙박혀 사는 것 같지만 우리는 너도나도 나그네로 태어나 나그네로 살다 간다. 마음도 정신도 어느 한 곳에 있지 못하고 흔들리고 유랑하고 그러면서도 정착을 그리워한다. "바로 여기야!" 로 시작하는 첫 문장이 우리의 그런 바람을 간단히 말해준다.

바로 여기라고 생각한 곳에 나그네는 집을 짓는다. 파란 하늘 아래, 푸른 바다가 큰 파도 소리를 내는 곳, 그곳에 붉은 해가 쨍쨍하고 날벌레들이 작은 날개를 파닥이는 소리뿐이다. 나그네는 밤을 기다리고 낮을 기다리고 다시 밤을 기다린다. 그리고 비를 기다리고 하늘을 사랑한다. 나그네가 짓는 집은 대단한 재료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돌과 자갈과 조약돌을 쌓고 포개어 지은 후 하얀색 칠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그의 집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의 집을 두고 비웃는 깃털뭉치새들의 코웃음 때문에 나그네는 괴로워한다. 파란색 칠을 해보기도 하고 새 그림을 붙여 집을 멋지게 보이게도 하지만 번번이 놀림만 당한다. 나그네는 점점 이들의 비난이나 조롱을 허허롭게 넘기는 지혜를 배운다. 자신만의 생각이 있고 그것이 소중함을 느낀다. 누구나 생각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고민하는 나그네가 배움을 얻는 대상은 하늘과 바다다. 넓고 푸른 바다는 늘 나그네를 지켜보고 소리없이 웃어준다. 믿고 바라보며 그의 행복을 기원하는 존재다. 드디어 나그네가 하늘을 배경으로 그곳에 높은 지붕의 집을 파랗게 그릴 때 새들은 아무도 놀리지 못한다. 나그네만의 집이 완성되었고 그 집은 자신만의 가치로운 행복이 스며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행복을 찾아 방랑하는 나그네다.

지금 여기가 그 행복의 보금자리임을 또 놓치고 산다. 지금 여기에 하늘을 지붕으로 하는 파란 집 한 채를 지어보자. 행복이란 남들의 기준과 비례하지 않고 세상의 잣대와 비견되지 않음을 이 그림책은 조용히 속삭여준다. 세상의 화려함에 아닌 자연속에서의 소박한 행복, 나만의 작은 만족이 주는 행복, 그러면서도 진하고 기운 찬 '파란' 색의 행복이 멋진 일러스트레이션으로 펼쳐진다.

2학년 아이들과 이 그림책을 함께 보며, 아이들이 끌어내는 생각에 놀랐다. "깃털뭉치새들이 놀리는 말에 신경쓰지 말고 아저씨 생각대로 믿고 사세요." 라고 글을 쓴 아이도 있었고 집짓기 대회에 나가면 1등 하겠다고 쓴 아이도 있었다. 그리고 바다가 친구하자고 부르는 것 같다고 쓴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본능적인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느끼고 내뱉는다. 아이, 어른 모두에게 나름의 생각의 깊이를 줄 수 있는 그림책이다. 빨간모자 아저씨가 지은 파란 집만큼 커다란 판형의 그림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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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이름은김삼순 2006-05-18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의 글을 보고 나니 저도 이 책을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우리는 행복을 찾아 방랑하는 나그네다,,이 한줄이 가슴이 참 와닿아요,,

비로그인 2006-05-19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내 뒤에 누굴까? 1 - 나야 나, 강아지 내 뒤에 누굴까? 1
후쿠다 토시오 지음, 김숙희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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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많이 자란 지금, 이제 걸음마를 시작하거나 아장걸음으로 쫒아다니는 아주 어린 아이들을 보면 새삼 귀엽다. 십여년 전 큰딸아이의 손을 잡고 밖에 나가면 아이는 내가 가려는 방향으로 고분고분 발을 놓아주지 않았다.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 내 손을 잡아당기며 이것도 보고싶고 저것도 보고싶고 호기심으로 눈을 굴렸다. 내 경우만이 아니라, 고맘 때의 아이손을 잡고 길을 걸으면 아이는 한 방향으로 곧장 걸어가는 일이 드물다. 이곳 저곳으로 엄마 손을 끌며 제가 가고 싶은 곳이 많기도 하다. 아이의 눈망울은 쉼없이 굴러다닌다. 아이는 위, 아래로 혹은 앞으로, 뒤로 끊임없이 돌아보고 올려다보며 엄마의 바쁜 마음을 애태우곤 한다.

<내 뒤에 누굴까?>의 시리즈로 첫번째 그림책은 <나야 나, 강아지>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야기를 들려주는 주인공은 강아지다. 아니 강아지 같은 아이다. 글을 소리내어 읽어보면, 아이가 하는 말처럼 짧고 귀여운 토막이 굴러오는 것 같다. 강아지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친근한 동물이다. 강아지의 친구들도 많이 등장한다. 거북이, 고양이, 꼬끼리, 새, 다람쥐, 뱀, 부엉이, 기린, 토끼 그리고 쥐들이다. 이 동물들이 한 곳에 있을 수 있는 개연성은 없지만 어린 아이에게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은 것 같다. 동물친구들을 보며 내 눈은 한 곳에 붙박였다. 똘망똘망한 눈망울이다. 아래를 쳐다볼 때의 눈, 위를 올려다볼 때의 눈, 앞을 볼 때의 눈 그리고 뒤를 힐끗 돌아볼 때의 눈망울이 실감나게 그려져있다. 단순한 모양과 색감이지만 충분하다. 그 눈망울을 따라가다보면 동물친구들을 쫓아가며 숨바꼭질을 하는 기분이다.

이 책은 장점이 여럿 보인다. 우선 색채가 주는 안정감이다. 종이도 누르스럼하고 부드러워 눈이 부시지 않고 촉감도 따스하고 도톰하다. 일러스트레이션은 채도를 낮추고 갈색톤과 녹색톤을 주조로 하여 편안한 느낌을 준다. 단순한 윤곽선으로 동물의 특징을 잘 살려 그린 점도 마음에 든다. 첫 장을 펼치면 넓은 땅에 나무 한 그루가 가지를 아름답게 펼치고 서 있다. 튼실해 보이는 나무의 나뭇가지는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하늘을 향해 가슴을 한껏 벌리고 숨을 쉬는 것 같다. 가지에는 연두빛 작은 잎새가 달려 있어 갓피어나는 봄을 느끼게 한다. 마치 여린 잎의 아이들을 연상하게 하는 신선한 그림이다. 이 풍경에는 아직 아무런 동물친구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고요한 새벽, 아직 우리의 친구들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시각이다. 맑은 기운이 스미는 것 같다.

다음 장을 넘기면 순하게 생긴 강아지 한 마리 뒤에 거북이의 머리가 보인다. 둘의 눈망울을 비교해보면 재미나다. 아이에게 보여주면서 "내 뒤에 누굴까?" 라고 물어보며 아이의 대답을 기다려보자. 그러고 나서 책장을 넘기는 식으로 이어가다보면 반가운 동물친구들을 이곳저곳에서 만날 수 있다.  내 뒤에도 있고 앞에도 있고 나무 위에도 있고 땅 아래에도 있다. 앞만 보고 걸어가는 어른들과는 달리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걸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동물의 특징적인 면을 부각하여 그려놓아 인지발달을 도울 수 있겠다. 하지만 고정이미지를 형성하지 않을까, 약간의 고민이 된다.

반복되는 짧은 어구를 써서 아이에게 말하기를 가르치기에도 좋아보인다. 리듬을 살려 밝은 음성으로 들려주고 따라하게 하면 말하기와 함께 단어(동물이름)도 눈으로 익히기 좋아보인다. 마지막 장에 가면 모든 동물들이 한자리에 모여있다. 잘 모르고 있었던 친구들이 서로서로 가까이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처음에 보았던 텅 비어있던 풍경에 동물친구들이 다 모여 단란하고 다정다감한 느낌이 든다. 여기서 다시 한번 '뒤, 앞, 위, 아래'를 가리키며 공간감각과 함께 동물이름을 짚어보면 좋겠다.

그런데 여기서 앞에 나왔던 그림의 동물 위치와 일치하지 않는 게 몇 있어 아쉽다. 크게 중요하지는 않지만, 이왕이면 앞에 그림과 그 위치를 일치하여 그렸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새와 다람쥐의 위치 같은 것이다. 

"새 위에 있는 건 누구지?"

"아, 다람쥐구나"

그런데 마지막 그림에서 다람쥐를 찾아보면 새보다 훨씬 아래에 있는 나뭇가지에 다람쥐가 앉아있다.  그새 다람쥐가 아랫가지로 발발거리며 내려온걸까.^^  분명 앞의 그림에서는 복슬복슬한 다람쥐 꼬리가 새의 머리 위에서 달랑거리는데 말이다. 처음의 이야기를 끝과 통일성 있게 맺음으로써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기를 의도한 것 같아, 이왕이면 이 부분도 맞추었으면, 하는 욕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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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4-29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멋진 서평이네요

sokdagi 2007-08-29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너무 좋아요. 얼른 읽고 싶어 장바구니에 담아가요
 
윙윙 실팽이가 돌아가면
미야가와 히로 지음, 하야시 아키코 그림, 이영준 옮김 / 한림출판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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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슬머리에 매부리 코, 각지고 네모난 턱을 가진 교장선생님은 무척 고집스러워보인다. 선생님이 한 말대로, 남의 말을 잘 안 듣게 생겼다고 할까. 커다란 나무에 한 손을 기대어 짚고 한 손은 허리춤에 올리고선 한 쪽 다리로 서 있는 모습이 더욱 그렇게 보인다. 나무 옆에는 한 아이가 뭔가 재미있어 보이는 것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열중해있다. 이게 실팽이라는 것이다.

실팽이는 종이로 둥근 모양, 네모 모양을 잘라 만들어 색을 칠하고 무늬를 그려넣어 만든다. 가운데에 구멍 두 개를 뚫고 실을 그 구멍으로 통과하게 하여 묶는다. 양손가락에 가로로 걸고 윙윙 돌려서 실을 팽팽하게 한 뒤 약간 느슨하게 하기를 반복하면 팽이는 윙윙 돌아간다. 그런데 종이가 얇으면 잘 돌아가지 않아서 단추를 이용하여도 되고 문구점에 가니 '타이어 팽이'라는 이름으로 이백원짜리 완구가 만들어져 나와 있었다. 이왕이면 종이로 만들어 돌리면 좋겠지만 잘 안 될 때는 이것으로 대체하여도 좋겠다. 이 팽이는 윙윙 돌아가면서 휘파람 소리를 내기도 해서 아이들이 신나게 생각하였다. 나는 잘 못 돌리겠던데 아이는 고수였다. 윙윙 휘파람소리까지 나며 잘 돌아가는 팽이를 보며 만족해했다.

이 책의 글은 초등학교 교사를 지낸 사람이고 그림은 유명한 하야시 아키코이다. '단풍나무 초등학교' 라던지 창호나 상희 같은 우리 이름을 친근하게 지어 번역해두었다. 까다로워보이는 교장선생님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자연의 놀이를 함께 하며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려하는 마음이 처음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실팽이 4개를 손가락과 발가락을 이용하여 돌리는 그림을 보면 무척이나 천진해보인다. 아이들의 세계에 들어가 함께 즐기며 웃고 싶은 마음을 점차 엿볼 수 있다. 교장선생님은 신발을 벗고 양말까지 벗어두고 발가락에 실을 걸어 바닥에 퍼질러 앉아서 실팽이를 돌리고 있다. 아이들은 이 모습에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실팽이돌리기 연습을 한다. 

하지만 모든 아이가 다 그런 건 아니다. 교장선생님이 내린 어려운 미션을 잘 이루어내지 못하겠다고 생각한 상희가 한 행동은 깜찍하다. 실팽이를 던져버리고 새로운 놀이를 찾아 들로 나간 상희는 민들레인형을 만들어 교장선생님의 방에 갖다놓는다. 물론 선생님께 드리는 선물이 아니라 '나는 이런 것도 할 수 있어요' 라며 선생님께 자랑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감목걸이, 죽마타기, 지장보살놀이, 나뭇개비 붙이기, 완두콩 꼬투리 피리 불기 같은 것으로 교장선생님을 놀라게 한다. 이렇게 아이들 스스로 자연의 놀이를 찾아 이것저것 해 보게 하려는 게 선생님의 의도였지만, 선생님은 정말 흐뭇해하는 눈치다.

이제 교장선생님은 아이들로부터 숙제 하나를 얻었다. 완두콩 꼬투리 피리 불기다. 지금은 잘 안 되지만 열심히 연습을 하는 선생님의 볼이 터질 듯하다. 전체적으로 초록과 황토빛이 도는 그림들이 자연의 향기를 느끼게 한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톤의 그림과 친근하게 들리는 이야기글이 잘 맞아 웃음이 배어있는 한 편의 좋은 그림책이다. 아이들처럼 놀이를 만들어내는 상상력과 창의력이 우물 속으로 묻혀버리는 것 같은 어른들에게도 이 그림책을 권하고 싶다. 흙냄새, 풀냄새가 어디선가 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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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06-03-30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추억의 학교라는 이탈리아 소설을 읽었는데요.
저런 자연 속의 선생님이 사라지는 것 같아서 좀 아쉬웠습니다.^^

프레이야 2006-03-31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저 그림책은 2학년 아이들과 함께 보았어요. 저도 자연속의 어른이 되지 못하고 있어 미안하더군요. 이게 아닌데 싶어요..
 
빗자루의 보은 - 초등학생 그림책 6
크리스 반 알스버그 글 그림, 서애경 옮김 / 달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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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처럼 긴 판형의 그림책은 책꽂이에 꽂기에 키가 맞지 않아 따로 두는 경우가 많다. <빗자루의 보은>은 그런 점에서도 독특하지만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일러스트레이션이 확연히 변별적이다. 석판화 같은 느낌을 주어 자세히 들여다보았는데, 알고 보니 조각을 전공한 화가답게 석필로 섬세하게 그린 것이었다. 진회색과 갈색톤의 색감이 전체적으로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주며 한 장씩 액자에 담아둔 것 처럼 멋진 꿈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1학년 아이들과 함께 보았는데 좀 무서웠다고 말한 아이도 있었다. 검은 망토를 둘러 온몸을 감싸고 죽은듯이 누워있는 마녀의 콧날과 입술선이 매혹적이다. 빗자루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임이 유연하다.

<빗자루의 보은>의 원제는 <Widow's Broom>이다. 번역된 제목은 빗자루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듯한데 원제는 과수댁에 좀더 힘이 실리는 느낌이다. 원작자의 문장인지 번역문장의 힘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문장이 단정하고 어휘수준도 적당히 낯설면서 적절하다. '교교한' 이라는 단어는 저학년에게 좀 어려울 것 같지만 새로운 단어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전체적으로는, 비약하지 않고 한 걸음씩 놓는 징검다리처럼 문장의 흐름이 매끄러워서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게 한다.

제목을 약간 바꾸어 쓴 역자의 의도를 생각해보니, 저학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은혜에 대한 보답이라는 미덕에 촛점을 맞추려는 것인가싶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일러스트레이션과 차분한 문장, 그리고 보은이라는 미덕으로도 이 그림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하지만 연령에 따라 조금 더 숨은 이야기를 발전시켜 생각을 나누어도 좋겠다.

원제를 보면 작가는 과수댁에 애정을 두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과수댁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지혜로운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늙고 홀로 된 과수댁은 오래되어 별 신통력이 없어 보이는 마녀의 빗자루와 동일시된다. 낡아서 잘 날지도 못하는 빗자루를 마녀가 버리고 혼자 가버렸듯이 과수댁은 마을의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도 아니고 별달리 눈에 띄는 존재도 아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과수댁은 별다를 것 없는 빗자루를 박대하지 않고 거둔다. 또한 처음 보는 광경이나 생경한 대상에 대하여도 마음을 열고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는 점이다. 자신과 다르다고 놀라지도 않고 내치지도 않는다. 무심한 듯한 이런 행동은 모든 대상이 품고 있는 나름의 신통력에 대한 믿음으로 보인다. 무심함은 최고경지의 미덕이 아닐까.

어느 날부터 별별 것을 다 도와주는 빗자루를 보고 마침내 한 남자가 길길이 뛴다. 자기보다 더욱 유능해보이는 사람이 된 과수댁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한다. 남자가 빗자루에게 가하는 저주의 마음과 그 빗자루를 소유하고 있는 과수댁에 대한 질시의 정도가 다르지 않다. 재산과 아들과 그 외 모든 것을 가진 듯한 남자는 가진 것이 없고 소외된 빗자루와 과수댁을 박해하려 든다. 요물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그것을 화형에 처할 방도를 궁리한다. 마녀사냥이라도 하려는 계략이다. 현대식으로 풀자면 소외층에 대한 핍박이다.

여기서, 과수댁이 불의에 대항하는 방식은 소극적으로 보이지만 알고보면 사려 깊고 통쾌하다.  이 인정 많고 지혜로운 과수댁은 가짜 빗자루와 하얀 페인트 외투를 이용하여 위기를 모면한다. 그리고 욕심많고 배타적이며 위압적인 남자들을 쫓아낸다. 전혀 드러나게 싸우지 않고 ''평화적으로'' 이긴다. 혼자 조용히 앉아 눈을 감고 빗자루가 들려주는 피아노곡을 감상하는 얼굴에 세상과 관계에 대한 넓고 깊은 통찰이 배어있다. 

멋진 글과 그림, 재미와 상상, 두근거림과 낯설음 그리고 진지한 생각까지 던져주는 <빗자루의 보은>을 그린 크리스 반 알스버그는 아래와 같은 말을 했다. 작품에 대한 진지한 열정과 자신감 그리고 책임있는 작가의식이 느껴져 더욱 마음에 든다.

 - 내 작품 중에서 어떤 것을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때마다 전 "다음에 나올 작품을 가장 좋아합니다." 라고 대답하지요. 적어도 제 다음 작품이 그 전 작품보다는 조금은 나아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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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 2006-02-22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스버그도 설명이 필요없죠. 그 오만함까지도 사랑하게 되는 작가.
이 책 진작에 보았는데 아직이라며 접었는데 혜경님 리뷰는 넘 땡기는걸요^^
일단 보관함에 넣고....

프레이야 2006-02-23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전 이 작가의 그림책을 이번에 처음 만났어요. 매력적이에요^^

반딧불,, 2006-02-23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이런. 이 작가 얼마나 매력적인데요.
얼렁 찾아서 보셔요. 반하실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