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펑의 개구쟁이 2
라트 글 그림, 김경화 옮김 / 오월 / 200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권 이미지가 없어서 사진을 찍어 올린다. 어디까지나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산 책이니까.

 

<캄펑의 개구쟁이>는 말레이시아의 화가 라트의 흑백 그림책이다. '캄펑'은 시골이란 뜻인데 그가 태어난 곳은 세계에서 가장 큰 주석 채광지가 있는 마을로 깊은 숲 가운데이다. 주인공 소년이 태어날 때부터 중학교 시험에 합격하여 마을을 떠나기 전까지의 기록인 셈인데 시대 배경은 우리나라로 치면 6,70년대쯤이 될 것이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컴퓨터도 없던 자동차도 아주 귀한 깡촌 시절 이야기다. 내가 읽은 건 <캄펑의 개구쟁이> 1권이고, 시중에는 이미 2권과 함께 <도시의 개구쟁이>까지 나와 있다.

엄마 품에 안겨 있다가 기어다니다가 걸음마를 시작하는 납작코에 뻐드렁니의 아이는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어릴 때 코찔찔이 나와 내 동생의 모습이다. 구체적인 생활로 말레이시아라는 나라와  이슬람이라는 종교에 대해 조금 엿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이리라.

--여섯 살...  사이드 선생님의 첫인상 때문에 나는 앞일이 캄캄하게만 느껴졌다.

--여기가 우리 마을이다. 왼쪽 약국 옆이 우리가 주로 이용하는 요우 아저씨네 가게다. 그리고 그 옆은 포목점인데 이 집 아저씨는 금은방도 겸하고 있었다.

뭐 이런 식의 설명과 함께 요우 아저씨라든지 포목점, 금은방이 있는 골목을 아주 세세하게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준다.


(그림을 자세히 보여주고 싶어 한 컷 찍었는데 너무 흐릿하게 나왔다. 주인공이 세상에 갓 태어났을 때의 방 안 풍경이다. 산파 할머니에게 수고비를 전달하는 아빠, 양말을 신고 누워 산후조리중인 엄마, 모기장 속의 아기...그림이 아주 사실적이면서도 정감있다.)

다른 나라의 결혼식 피로연 풍경이나 반 벌거숭이로 어울려 뛰어노는 아이들의 놀이 모습도 흥미롭지만 이 책에는 제법 재미있는 사건도 나온다. 하객으로 참석한 결혼식 뒤풀이에서 흥을 이기지 못하여 무대에 뛰어올라가 댄서들과 춤을 추었던 아빠가 엄마에게 야단맞는 모습. 한마디로 생활과 풍습을 코믹한 그림으로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는 것이 짧은 글로나마 이 책의 리뷰를 올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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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5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4-11-15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 님, 제가 오해를 했나요?

그렇담 천만다행이고요. 휴~^^


urblue 2004-11-15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정감가는 그림입니다. 요것도 찜! 아셨죠?

로드무비 2004-11-15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헹~~~(심술 주간)

진/우맘 2004-11-15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레이시아라...아이에게 유럽이나 미국 말고 다른 세계의 그림책도 많이 보여주고 싶은데, 찾기가 쉽지 않아요. 보관함에 퐁당!

그리고 저 그림책 표지, 색감이나 분위기가...로드님이 이미지로 쓰는 호텔 바그다드와 비슷하게 느껴져요.^^

진/우맘 2004-11-15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1권 2권이 이어지는 이야기인가요? 아님, 따로따로도 이해가 되는?

로드무비 2004-11-15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 맞아요.

제가 좋아하는 좀 코믹한 그림풍이에요.

우리 주하는 보여주니까 별로 관심을 안 갖더군요. 아무래도 흑백이라......

150여 쪽이고요. 글은 아주 짧고 페이지가 전부 그림입니다.

2권은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도시의 개구쟁이>는 도시로 이사간 이후의

생활이라네요. 이어지는 것이지만 독립적이기도 하죠.

참고가 되었나요?

숨은아이 2004-11-15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찜! 제가 여쭙고 싶었던 걸 진/우맘님이 물어주셨네요.

날개 2004-11-15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까 와서 읽고 갔지만.. 로드무비님이 저 미워하실까봐 다시 왔어요~~

저런 그림 참 좋아합니다.. 그림책이라 이제 사게 될 일은 없을 것 같지만요..ㅎㅎ

몇 컷 정도 더 보고 싶어요..^^*

2004-11-15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4-11-16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님도 이런 그림 좋아하시는군요.

한마디로 인간적인 그림이죠.

날개님, 저는 제 방 멀리서 보고 북적인다고 친한 사람들이

아는 척도 안해주면 슬퍼요.

그리고 전 이 책들 돈 좀 생기면 다 살 거예요.^^


2004-11-16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5년생 1
키오 시모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0년 5월
평점 :
품절


언젠가 <스위트 딜리버리>를 읽으며 재밌다고 난리를 쳤더니 자명한 산책님이 댓글을 남기셨다. 만화 <5년생>을 읽어보라고. 5년생? 그러고 보니 언젠가 물장구치는 금붕어님이 내게 권해주신 책이다. 홍상수의 영화 같은 만화라고. 나는 욕을 해대면서도 홍상수의 영화를 빼놓지 않고 본다. 왜 사람도 그런 사람 있지 않나. 지긋지긋하게 싫은데도 이상하게 자꾸 신경이 쓰이는 사람. 반대로 너무너무 성실하고 좋은 사람인데 개인적으로 만나보라면 피하고 싶은 사람.

인생은 참 불공평한 것이다.  10여 년 전 어떤 소설가와 커피를 마시며 그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성실함의 안쓰러움과 우스꽝스러움에 대하여. 한마디로 아무 재주 없이  성실하기만 한 사람의 그 진정성이라는 것과 노력이 구차하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그날 심사가 좀 사나웠던 것일까? 그는 유명작가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나의 태도는 더 비열했다. 마치 재능이라는 딴주머니를 차고 있는 사람처럼 수긍할 수 없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다.

<5년생>을 어렵사리 손에 넣었다. 성적이 모자라 한 해 대학을 더 다녀야 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의 아키노와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 사무실에 임시취직한 요시노의 지지부진한 사랑 이야기였다. 다음 대목을 보면 아키노의 성격을 잘 알 수 있다. 어떻게 요시노를 꼬셨냐는 친구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멋대가리없이 대답한다.

"글쎄, 그 당시 그 애도 이런저런 문제가 있었던 것 같았고...대충 얘기하자면 좋은 사람인 척하면서 조금씩 다가갔다고나 할까. 글쎄, 인간이란 뭐 이렇다할 만한 이유 따위 없어도 어느 정도 상황이 만들어지면 그럴 분위기가 돼버리는 게 아닐까?"

요컨대 첫눈에 반한 것도 아니고 운명적인 것도 아니고 어쩌다보니 그런 사이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나는 자신의 사랑을 엄청나게 미화하여 들려주고는 나중에 엄청난 배신감에 치를 떨며 헤어지는 친구들을 예전에 워낙 많이 보았는지라 도리어 주인공의 이런 어처구니없는 진술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아키노는 애인과의 일주일 만의 전화 통화에 이런 낯간지러운 말도 할 줄 안다. (전 5권을 통털어 가장 달콤한 사랑 고백 장면이다.)

"네가 머리를 잘랐다는데 아직 못 보고 있으니......"

요시노는 어떠냐 하면 애인 아키노보다 더 무덤덤하고 메마른 인간이다.

"난 말야. 원래 인간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 상관없는 얘기인지는 몰라도 인권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인권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인간은 특히 싫어."

변호사가 되기 위한 사법공부는 자신에게 별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직장생활과 공부를 병행하는 그녀. 그렇다고 그것을 괴로워하거나 불평을 늘어놓는 것도 아니다. 그녀의 유일한 장점은 속물이 아니라는 것. 유급이나 하고 멋진 삶에 대한 의욕도 도무지 없는 애인 아키노의 삶을 그대로 용인한다. 한마디로 둘은 너무 잘 만났다. 요시노도 그런 점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어느 날 이렇게 말한다.

"솔직하게 말해서 난 네가 너무 보고싶고 너무너무 사랑해서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야. 하지만 그렇게 중요하게 느끼지 않는 이 감정이 내겐 소중하다고나 할까. 아키오의 존재가 가볍게 느껴지는 게 남자에게 정열을 투자할 여유가 없는 내게는 딱 안성맞춤이라고 할 수 있어."

아, 이런 그녀의 말은 언젠가 내가 어느 남자 앞에서 읊조렸던 말이기도 한 것이다. 나 또한 시시하기 짝이 없는 일상과 연애,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나니 비로소 구체적인 연애에 돌입할 수 있었다. 이렇게 별 볼일없는 저라도 사랑해 주실래요?

'연애가 뭐 별건가?' 시모쿠 키오라는 이 낯선 작가는 나의 18번인 이 대사를 다섯 권의 만화 속에 방백으로 숨겨놓았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같은 만화랄까. (아쉽게도 이 책은 품절이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 영화로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10여 년 전 나와 '구차한 성실성'에 대해 얘기를 나눈 바 있는 소설가는 이렇게 비웃었다.  "영화감독도 분명 작가인데 이건 정말 무시무시한 상상력 결핍의 제목이야. 듣기만 해도 정말 짜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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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4-11-14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 만화는 보고 싶군요. 그런데 요 며칠 바쁘셨어요? 소식이 없어 궁금했어요.

로드무비 2004-11-14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애 둘 코감기 걸려 병원 다니고 밀린 책 좀 읽고 그러고 지냈어요.

반가워요.^^

에레혼 2004-11-14 1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시노, 마음에 드는 캐릭터네요. 실제로 친구나 연인 관계에서는 너무 건조하고 팍팍해서 정이 안 갈지 몰라도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기에는 참 괜찮은 성격 아닐까요....... 특히 "인권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인권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인간은 특히 싫어." 이 대목 120% 공감합니다.

[저도 로드무비님의 근황이 궁금했어요^^, 워낙 북적거리는 방인지라 잠시만 비워 둬도 무슨 일인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지요]

날개 2004-11-14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기대하라시더니, 정말 기대할만 하군요.. 근사합니다..^^* 아직 이 책을 못보았는데, 기회가 되면 꼭 봐야겠습니다..

아이들 감기는 좀 괜찮은가요? 며칠간 재충전을 하셔서 이제 글을 더 열심히 올리실거죠? 후후~

깍두기 2004-11-14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품절책 리뷰는 무효라고 할까봐요. 이렇게 구미가 당기게 해놓고 품절이라 하시면....ㅠ.ㅠ

2004-11-14 22: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4-11-15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일락와인님, 적당한 거리란 얼마를 말하는지 좀 알려주실래요?

전 아직도 그걸 몰라 낭패를 당하고 있습니다.

날개님, 아이들은 누런코 매달고 한 사나흘 지냈어요.

지금은 많이 나았어요. 덕분에...

깍두기님, 이 책은 품절이 아니고 절판인 것 같던데...

그런데 깍두기님이 별로 좋아하실 것 같지 않은 책인데요?

맹한 주인공들, 사건이랄 것 없는 냉수같은 일상...

그래도 보고 싶으시다면 언제 빌려드리리다.

속삭이신 님, 잘 알겠습니다.

호옹이 2012-04-06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키오...인데 댓글들이 2004년 댓글들이네
 
나의 피투성이 연인
정미경 지음 / 민음사 / 200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부턴가 여성 작가들의 소설책을 내 돈 주고 사지 않는다.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원칙이다. 하성란, 조경란, 한 강 등의 신작 소설을 이동하는 시민도서관에서 몇 권인가 빌려 읽긴 했다. 어떤 책은 무지 재미있었다. 그런데  좀처럼 사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인 일일까? 고독과 허무와 절망에 빠져 있는 그 매력적인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더이상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녀들은 참 우아하게도 허우적댄다. 절망할 때조차 포즈를 취한다는 느낌이랄까. 어떤 소설은 분명 재밌게 읽히는데 지갑을 열게 되지는 않는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신경숙과 전경린의 소설은 아예 읽을 수조차 없다. (전경린의 소설을 가지고 변영주 감독이 영화를 만들었을 때 나는 참 의외였고 분했다.)

그런데 며칠 전 오랜만에 읽은 정미경의 소설은 달랐다. 엄살과 과장이 느껴지지 않았으며 자신의 남다른 면모를 주인공을 통해 독자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허영도 없었다.

"씨발, 하기 싫은 것도 해야 되는 게 인생이잖아. 안 그래요?"

나릿빛 사진의 추억에 나오는 조폭 똘마니 '컬러 문신'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주인공은 이제 개인병원 엑스레이 기사로 취직하여 자신이 찍은 애인 사진 필름을 사진관에 맡길 정도로 돈을 번다. 인화되어 나온 사진을 보고 그녀가 생각나 모처럼 전화를 걸었는데 그녀의 약혼자가 이를 오해하여 깜장양복 덩치들을 매일 병원으로 보낸다. 그녀의 누드 필름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이미 가위로 잘라 쓰레기통에 넣었는데......그를 협박하기 위해 파견된 컬러문신이 제안한다. 새로 누드 사진을 찍어 필름을 가져다주는 것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결혼이라는 확실하고 공고한(요즘은 그렇지도 않지만) 제도 속으로의 편입을 앞둔 커플의 오만과 불안, 그리고 사랑은커녕 제 목숨 부지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관심 없는 한 청년이 처한 답답한 현실이 가슴을 조여온다.

나는 아직 하기 싫은 일은 요리조리 피하면서 미꾸라지처럼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컬러 문신'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하기 싫은 것도 해야 되는 게 인생이라고? 나도 알지, 그 정도는. 그런데 용케 이때까지는 하기 싫은 일은 피하면서 살 수 있었다. 그런데 앞으로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그게 무섭고 답답하다.)

호텔 유로 1203  부엌에서 언제나 자신을 위해 정체불명의 약초들을 커다란 냄비에 끓이는 일이 유일한 취미인 엄마가 나온다. 나도 요즘 삼백초 물을 끓여먹기 시작했다. 갱년기 여성에게  좋다고 해서.(오죽하면 내가 이러겠는가!)  그건 그렇고 파산지경임에도 명품을 포기하지 못하는 여주인공의 말에 일면 공감이 간다. '생이 이토록 누추한데 거기다 근검절약까지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나의 피투성이 연인  남편의 느닷없는 죽음과 그가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렇게 담담하게 기술할 수 있다니!  울며불며 난리를 치지 않는데도 주인공의 아픔과 환멸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건 멋을 부리는 것과는 다르다. 한마디로 '격'이다. '개인적인 고통을 증언하는 건 스스로 모자라는 사람임을 광고하는 것이다.' 라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성스러운 봄 걸을 때마다 뒤꿈치에 불이 켜지는 야광운동화를 신어보지 못하고 먼길을 떠난 이 작품 속 아이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 온다. 작년 봄, 가지고 있는 돈을 몽땅 털어 라이온 킹 오리지널 야광운동화를 딸아이에게 사주었는데 5만 원 돈을 주고 아이 운동화를 샀다는 죄의식을 일거에 날려 주었다.

비소 여인 나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입가에 희미한 미소조차 띤 채 사람들을 하나하나 해치우는 여주인공이 섬뜩하면서도 너무나 매력적인 캐릭터로 느껴졌다. '마음의 심연(深淵)'이라는 단어가 절로 생각났다.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는다 장석조네를 능가하는 허름한 골목 풍경이라고 한마디로 말하고 싶다. 등장인물이 많은 것도 아니고 단편소설에 불과하지만......그 중에서도 분식집 여자 미옥, 아아 미옥. "사는 것도 지랄맞은데 동화마저 아파야 해? 무조건 해피엔딩이라야 해. 난 우울한 동화 싫어!"라는 그녀의 말은 평소 나의 생각과 좀 다르지만 이 글 속에서라면 무조건 고개를 끄덕여주고 싶다. 미옥은 나를 전율케 했다. 누군가 그녀의 분식집에 들어올 때마다 어릴 때 헤어진 동생을 만난 듯 깜짝 반가워했다는 정 많은 여인이다.

문학평론가 김미현은 '모든 삶이 가짜일 때는 가짜를 견디는 것이 진짜라는 것이다'라는 멋진 말로 이 한 권의 소설집을  정리해 놓았다. 책의 앞날개에 실린 사진을 보니 소설가 서영은과 강석경을 합쳐놓은 듯한 인상의 소설가 정미경. 어둡고 깊은 그의 눈매가 부럽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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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4-11-14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를 누르고 싶지만 이 책을 이미 사버렸으니 추천만 하지요.

로드무비님의 글발에 주인공들이 더 살아나는 것 같구려. 나도 미옥이가 제일 좋았어요. 하지만 정미경은 무조건 해피엔딩이어야 한다고 해놓고 자기 주인공들을 그렇게 어정쩡한 시점에서 정지시켜 버린답니까? 주인공들이 투명의자 자세(애들 벌줄 때 쓰는 자세의 하나로 마치 투명의자에 앉은 것처럼 엉거주춤 앉아서 앞으로 나란히 하는 것)를 하고 정지해 버린 것 같아서 저는 너무 불편했단 말입니다.

로드무비 2004-11-14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때로는 현실이 소설보다 더 냉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소설을 읽으며 위로받고 싶은 생각은 없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펼쳐 보여주는 것이 좋아요.

미옥에 관해서라면 나도 너무 안타까웠지만......

깍두기님, 추천 고마워요.

반딧불,, 2004-11-14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줄에 동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최근에 산 책은 거의 없고, 전경린과 신경숙을 읽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니, 봄에 보시니 참 좋았다를 급한 마음에 사서 읽은 것 빼고는

제 돈으로 소설책을 사서 읽지 않는군요.

소설을 그리 좋아했었는데 어쩐 일인지^^;;;

사 줘야 하는데 말입니다.

어느 날 보니, 제 책은 거의 없고, 아이들 책만 있습니다.

로드무비 2004-11-14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자신을 위해서도 뭘 해주지 않으면 안 돼요.

그것이 남들 눈에는 아무리 쓰잘데기없는 것이라도.

그런데 이 리뷰에 내가 읽지 않는 작가들 이름을 밝힌 것이 좀 찝찝하네요.

이니셜로 처리할까요?

반딧불,, 2004-11-14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가끔 객관적 글쓰기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부텀 리뷰도 페이퍼도 못올리게 되었지요ㅠㅠ

stella.K 2004-11-14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그렇찮아도, 어제 오프 모임에 갔다가 저 깍두기님으로부터 말씀하신 책 선물 받았어요. 제가 베르나르의 <나무>를 드렸거든요. 물론 결국 책 바꿔 보기가 됐지만 기분 좋더라구요. 로드무비님에 재미있다니 솔깃해집니다. 빨리 읽어봐야 할텐데, 책은 쌓여만가고 무엇부터 읽어야할지 난감합니다.^^

로드무비 2004-11-14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나의 피투성이 연인부터 읽으세요.^^

kleinsusun 2004-11-14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느 때 부턴가 로드무비님과 같은 증세를 갖게 되었어요.

신경숙, 전경린 같은 여자 소설가 책을 돈 주고 사기 싫더라구요.

더 솔직히 말하면 돈주고 읽으라 해도, 누가 저를 감금하고 읽으라고 해도 읽기 싫은 기분이예요. '취재' 없이 쓴, 주인공들의 직업은 맨날 출판사 직원, 잡지사 기자, 방송국 작가 등등(모두 자전적인 부분).울고 짜고 감상적이고 상한 감정을 주저리 주저리...

오랜만에 여자 작가의 소설을 돈주고 샀어요.

정이현의 소설.

로드무비님의 리뷰를 읽으니 <나의 피투성이 연인>을 읽고 싶군요.

저랑 같은 증상을 앓고 있다니....반갑습니다.ㅋㅋ

에레혼 2004-11-14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의 물흐르듯 자연스러우면서도 콕콕 찌르는 글맛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리뷰네요. 마치 바로 옆에 앉아서 방금 막 읽고 난 책을 조분조분 얘기해 주는 듯한 느낌...... 잘 읽었고, 추천 드립니다!

로드무비 2004-11-15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여성작가들을 모두 싸잡아 얘기한 것이 조금 걸리네요.

좋아하는 작가도 몇 있거든요.

정이현 씨가 맡고 있는 한겨레신문 영화 코너 재밌게 읽고 있어요.

신경숙도 씨네21에 한동안 글 참 재밌게 썼잖아요.

그런데 소설은 왜 읽히지가 않는지......

수선님은 젊은 분이어서 그런지 확실하고 명쾌하시군요.^^

새벽별님, 제 의견 참고하다 좋은 책 놓치면 어떡한답니까? 헤헤

라일락와인님, 저의 리뷰는 평이 아니고 순전히 저의 느낌입니다.

저는 누군가의 글을 평할 만한 주변머리가 없거든요.

추천 고맙습니다.^^

하이드 2004-11-29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보관함에 넣어놓고 잊고 있었던 책인데, 꼭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하이드 2004-11-29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전경린 책은 두권밖에 안 읽어봤지만, 변영주 감독의 '밀애' 였던가요 ? 영화는 참 잘 봤었는데, 이 영화에 대해서는 참 호오가 극단적입니다.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후배가 자꾸 내 허리를 감으며 안겨왔다.

'언니, 나 오늘 언니 집에 가서 밤새워 술마시며 얘기 나누고 싶어."

"나는 오늘 피곤해서 그럴 기분 아니거든. 다음에......"

그녀는 내가 마음에 두고 있던 남자의 약혼녀였고 그 남자는 독일에 공부를 하러 가고 없었다.

어쩌다 그녀와 빔 벤더스의 영화 '베를린 천사의 詩'를 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1993년 봄, 우리는 마로니에공원 벤치에서 만나 근처의 영화관에 갔다.

공중곡예를 하는 소녀에게 반한 천사 다니엘이 천사직을 포기하고 이 땅에 내려와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였다. 

'중요한 것은 탄력성'이라는 대사가 지금까지 생각난다. 나도 공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극장에서 나오니 밤이었다.

우리는 어느 건물 꼭대기의 호프집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그 아이는 대학을 갓 졸업하고 어느 극단에서 공연 기획 쪽 일을 배우고 있었다.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에 나보다 15센티미터쯤 컸다. 젊음과 미모로 보면 비교도 할 수 없는......

맥주를 피쳐로 시켜 세 통째인가 먹고 일어나려는데 웨이터가 맥주 500cc 두 개를 가져왔다.

그날 그 꼭대기 맥주집엔 손님이 거의 없었는데  맞은편  끝 테이블의 남자손님이 가져다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 일은 처음이라 가슴이 두근거렸다.

"잘 먹을게요!" 하는 눈인사를 보내는데 그들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곤 그만이었다.

참 쿨한 남자들도 다 있지.

상기된 얼굴로 공짜술을 마시고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녀가 속삭였다.

"언니, 나는 저 남자들이 맥주 한잔 사줬답시고 우리를 따라와 치근치근거릴까봐 걱정했다. 언니는?"

"나는 저 남자들이 우리를 따라나오지 않으니 섭섭해 죽겠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테이블로 갈 수도 없고.

싱거운 자슥들......"

내 말은 진심이었다.

아마 그들은 영화 얘기 책 얘기를 신나게 나누는 저쪽 테이블의 여성들에게 맥주 500cc만큼의 호의를

느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지금 생각해도 상쾌한 기억이다.

그녀는 이후 독일에서 돌아온 그 남자와 파혼했고 다른 사람이랑 결혼, 지금은 가수가 되었다고 들었다.

두어 달 전 그녀의 이름을 느림님이 올려놓으신 노래들 중에서 발견했다.

제기랄 서른 살이라니, 하는 노래였다.

1993년 봄, 나는 그날  감색 땡땡이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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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 2004-11-09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베를린 천사의 시에 대한 독특한 추억이 계시네요^^;;

로드무비 2004-11-09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노님, 조금 전 님의 방에서 베를린 천사의 시 CE를 구경하고

문득 생각나서 썼어요. 잘했죠?^^

그런데 날려버릴까봐 서둘러 썼더니 글이 엉망이네요.^^;;

물만두 2004-11-09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시절 저는 검정 땡땡이 원피스를 입었었지요. 아주 짧은... 속에 땡땡이 반바지도 있었답니다^^

oldhand 2004-11-09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전에 쓰신 영화를 보고 나서 포장마차에서 잔으로 사서 마신 소주이야기도 그렇고(영화가 아니었나? -_-a), 영화와 술에 관련된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많네요. ^_^

진/우맘 2004-11-09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의 기억 속 그 사람들은.....로드무비님이 부여한 독특한 향기가 있습니다.

나도 일이십년 후, 누군가에게 이런식으로 추억되고 싶어요.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친한 사람, 안 친한 사람, 그런 거 말고, 그냥 글 좋은 이의 기억 한자락으로.

로드무비 2004-11-09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땡땡이 원피스 한 벌 없었던 사람은 없겠죠?

그런데 속에 땡땡이 반바지도 입으셨다니 강적이십니다.

올드핸드님, 좋은 영화 보고 나오면 호프 집으로 직행하는 건 저의 버릇인데요?

(음, 앞으론 술 이야길 좀 자제해야겠군요^^;;)

진우맘님, 제 추억 속 사람들을 예쁘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10년 뒤 진우맘님에 대한 글을 제가 쓸지 또 어떻게 알겠습니까요?^^

깍두기 2004-11-09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오늘 라디오에서 서른살 어쩌구 하는 노래를 들었는데.....그게 그 노래일까요?^^

파란여우 2004-11-09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땡이 원피스는 이제 작아져서 더 이상 못입습니다. 예? 제 몸이 비대해진것이 아니냐구요? 그렇게 아픈데 찌르시면 안됩니다...흑.. 영화에 대한 수채화 같은 추억이십니다.^^

로드무비 2004-11-09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그 노래 첫 소절이 제기랄~이던가요?

그러면 맞습니다.^^

파란여우님, 아니 님같이 새초롬한 미인이 엄살을 떠시면 어떡합니까요!


릴케 현상 2004-11-10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의 기억은 사진집으로 만들어야겠네요. 죽기 전에 많이 써놓으세요^^

로드무비 2004-11-10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기 전에......네.^^
 

약 한 달 전에 사둔 후루야 미노루의 만화 <두더지>를 이제서야 꺼내들었다. 별 대수로울 것 없는 이 대사가 문득 가슴을 친다.

--어른은 힘든 거야. 얌전히 살아가도 여러 가지 일이 생겨.

열흘 전쯤 새벽 두 시에 나는 갑자기 불안하고 답답해서 집을 뛰쳐나가 동네의 한 맥주집에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고  그 다음날 휴일, 남편은 무슨 모임 사람들과 어울려 족구를 하다가 누군가의 헛발길질에 앞니를 심하게 다쳤다. 여러 날째 나는 죽을 끓여대고 있고 며칠 후에는 치과에 뭉텅이돈을 갖다바쳐야 한다.

울적한 얼굴로 컴퓨터 앞에  앉아  하하호호 ^^ 이모티콘을 남발하며 댓글을 쓰고......어른은 이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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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4-11-08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들죠 흑흑

반딧불,, 2004-11-08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이어서 힘들까요??

사람이어서 힘들까요?

물만두 2004-11-08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이어서에 한표요^^

로드무비 2004-11-08 1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명한산책님, 흑흑.

반딧불님, 저는 사는 게 부담스러워요. 어릴 때부터......
물만두님, 투표를 꼭 해야 하나요?
그럼 저는 어른에 한 표. 흑흑.

날개 2004-11-08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은 힘든겁니다.. ㅜ.ㅠ 이렇게 댓글을 달아대는 누군가도 잡다한 어떤 일들에 머리를 싸매고 있는지도...

chika 2004-11-08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은 어른이어서 힘들고 애들은 애들이어서 힘들고...

전 그닥 힘들지 않아서 힘들다...고 하면 돌맞을까요? ㅡ.ㅡ

힘내세요-!

하얀마녀 2004-11-08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덧 어른이 돼있더군요. 몸만 어른이 된건 아닌지. ㅜㅜ

내가없는 이 안 2004-11-08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부분이 너무 마음에 와닿아서요... 위로해드리고 싶어서요... <울적한 얼굴로 컴퓨터 앞에 앉아 하하호호 ^^ 이모티콘을 남발하며 댓글을 쓰고...>

로드무비 2004-11-08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이 남기신 글을 읽으니 상대적이고도 절대적인...뭐 그런 제목이 떠오르네요.

어떤 이가 봤을 땐 내가 형편없는 엄살꾼으로 보일 수 있을 거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상처와 문제를 끌어안고 살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런 말을 주절거리는 것조차 부끄럽게 여겨집니다.

한마디씩 위로해주셔서 고맙습니다요.

치카님, 하얀마녀님, 내가 없는 이안님......


잉크냄새 2004-11-08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터팬처럼 살수는 없잖아요. 다들 멋지구리한 어른들이십니다.^^

숨은아이 2004-11-08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얌전히 살아가도 여러 가지 일이 생겨... 얌전히 살아가도.. 하지만 인생은 뜻밖에 선물도 주니까요. 그렇죠...?

진/우맘 2004-11-09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는 더 힘들지 않아요? 기를 쓰고 애를 써도 여러 가지 일이 생기잖아요.^^

로드무비 2004-11-09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숨은아이님, 진우맘님.

그래도 어른이 더 불쌍한 것 같아요.

아이들에겐 미래라도 있다지만 하릴없이 늙어가는 어른은

속으로 삭일 뿐 도리가 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