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사랑이라니, 그런 말을 잘도 나불대는 입을 보면 나는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고 싶다. 결혼해서 남편이랑 싸움다운 싸움 한 번 해보지 않고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는데도 말이다. 나는 남편이 귀엽고 안쓰럽고 가끔은 무척 좋다. 그런데 열정적인 사랑에 대한 책이나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인지 연애랍시고 사귈 때도, 그리고 결혼해서 몇 년째 함께 살면서도 덤덤하기만 할 뿐 우리가 사랑하는 사이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사랑이라면 좀더 가슴 설레고 눈앞이 아득하고 뭐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밥상머리에서 방귀를 붕붕 껴대는 남편이나 잘 빗지 않아 까치둥우리 머리를 한 아내에게 사랑을 느끼긴 어려운 일이리라.

소설가 이경자의 <할미소에서 생긴 일>이라는 단편집을 아주 오래 전 재미있게 읽었다.  스물아홉 살에 친한 남자 둘과 함께 어울려 술을 퍼마시고 여관에 들어가 두 남자 사이에 누운 주인공의 독백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내 남자를 가지고 싶어졌다." 그런데 나는 '내 남자'라는 그 표현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과연 어떤 남자를 내것으로 하나 차지할 수 있을까? 그런 날은 영원히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작가 자신이라고 짐작되는 그 여주인공은 그 중의 한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잘살았는지 어찌됐는지는 기억이 안 나나 소설가 이경자는 작년인가 올해 남편과 헤어졌다. 몇 개월 전 본인이 <허스토리>에 그 기막힌 스토리를 모두 공개했으니 내가 그에 대해 좀 언급해도 큰 실례는 안되겠지? 밥상머리에서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으르딱딱대더란다. 더이상 너랑 못살겠다고......그리고 집을 나가버렸다나? 나는 마음 한구석에 언제 나에게도 그런 날이 닥칠지 모른다, 생각하며 살고 있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말하고 집을 떠나갈지도......앞으로의 일을 어떻게 알겠는가?

어제 왕가위의 영화 <2046>을 보았다. 매점도 문을 열지 않은 조조의 극장 텅빈 객석. 아아, 내가 너무나 사랑해 마지않는 인생의 순간이다. 예닐 곱 명의 관객은 여기저기 혼자 흩어져 영화를 보았다. 옛날 국도극장에서 <광란의 사랑>을 보았을 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 내 옆옆 자리에 앉았던 여자가 갑자기 몸을 기울이더니 내 어깨를 잡고 마구 흔들었다. "영화 너무 좋죠? 너무 좋죠?" 나도 열정적으로 그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정말 좋죠? 정말?" 왕가위의 영화를 보고 나서 모르는 사람의 어깨를 마구 흔들기엔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너나없이 상대에게 이렇게 묻고 있었다.

 "나를 사랑하긴 했나요?"

조금 신물나는 대사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의 상처에 전전긍긍하고 무엇이 그렇게 엄청난 비밀이라고 쥐도새도 모르게 털어놓을 곳으로 앙코르와트 사원의 석벽이나 구멍을 크게 파낼 수 있는 나무를 찾아 헤맨다. 하긴, 나의 치통은 당신의 십이지장궤양보다 아픈 법이지. 하지만 왕가위는 지난 5년 동안 엄청난 영화를 만들고 있다고 무성한 소문을 뿌리더니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상처와 비밀을 털어놓고 묻어버릴 수 있는 그 구멍을 찾아 그렇게 헤매었더란 말이냐. 꽤 의미심장한 대사인 것처럼 나무옹이는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이나 반복해서 나오는데 사실 나는 좀 어이가 없었다.

이 영화에서 나는 장쯔이가 좋았다. 양조위도, 공리도, 장만옥도, 왕정문도, 유가령도, 기무라 다쿠야도 전부 지나치게 멋만 부리는 것 같고 유령처럼 현실감이 없는데 장쯔이 혼자 웃고 울고 땀냄새와 싸구려 향수 냄새를 풍기며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자유이지만 내 사랑을 막지 말라고 하는 그녀의 대사도 기가 막혔다. 그리고 슬펐다.

그리고 주인공들이 오리엔탈 호텔의 옥상 위에 혼자 슬며시 올라가 네온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제일 좋았다. 그 호젓한 시간이라니!

왕가위는 이 영화에서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잘라 말한다. 타이밍을 놓쳐 한 번 어긋나면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사랑이라고......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시비를 좀 걸고 싶으나 적당한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왕가위의 영화 때문에 사람들이 지나치게 쓸쓸해 하고 심란해 하지 않았으면......하는 생각을 하며 극장을 빠져 나왔다. 왕가위는 이 가을 쓸쓸함이라는 바이러스를 세상에 뿌려놓고 정작 자기는 예쁜 마누라랑 좋아하는 선글래스에 깜장옷만 입고 너무 잘살고 있지 않나. 일단 겉으로만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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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10-20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헥헥!! 숨찹니다. ^^ <서른살의 강>을 읽고 있습니다. 저도 문득 내가 지금 사는 남자를 사랑하고 있나? 그리고 뒤따른 질문은 과연 이 남자가 언제 날 배신할지 몰라~~ 라는 생각도 합니다.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2004-10-20 1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재밌네요..2046을 하고 있군요.극장에서..안 봐야 할 것 같은데요..^^

urblue 2004-10-20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텔 옥상의 그 장면이 제일 좋죠? 그죠? ^^

로드무비 2004-10-20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스바겐님, 재밌게 읽으셨다니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설마 남자들이 우리같이(?) 좋은 여자들을 배신하려구요.^^
참나님, 이런 분위기파 영환 극장에서 봐야죠. 무슨 말씀이세요.^^
블루님, 저는 인간이 혼자 있는 순간의 그 호젓한 표정이 참 좋습니다.
이 영화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공간이었어요.^^

숨은아이 2004-10-20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닥 좋지 않은 여자라... 좀 걱정될 때도 있습니다. ^^ /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에서 "내 남자" "내 여자"란 말을 들으면 왠지 껄끄러웠는데, 그래서였군요. 이 글 읽으며 생각하게 돼서 좋았습니다.

hanicare 2004-10-20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왕가위의 영화 때문에 사람들이 지나치게 쓸쓸해 하고 심란해 하지 않았으면......하는 생각을 하며 극장을 빠져 나왔다. 왕가위는 이 가을 쓸쓸함이라는 바이러스를 세상에 뿌려놓고 정작 자기는 예쁜 마누라랑 좋아하는 선글래스에 깜장옷만 입고 너무 잘살고 있지 않나. 일단 겉으로만 보면 말이다.
--이 부분이 로드무비님의 글에서 빛을 발합니다. 로드무비님만이 쓸 수 있는 부분이지요.후훗.재미있게 읽고나니 저 영화 본 듯한 착각이 들어요.원 참.


로드무비 2004-10-20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저도 그런 표현 밥맛이었다오. 그래도 내 남자 하나 확보해놓고 나니
편하죠? 도망 안 가도록 잘해주자고요.^^
하니케어님, 님의 몰운대행, 샘실 산책 모두 읽고 멘트는 안 남겼어요.
멘트가 주르르 달리는 게 어색한 격조있는 글들이라고 생각해요.(참, 변명도...^^;)
님의 칭찬이 너무 달콤하군요. 고맙습니다.^^

superfrog 2004-10-20 2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를 사랑하긴 했나요.. 좀이 아니라 많이 신물나죠.. 사랑은 타이밍이다도 마찬가지..
그 신물나는 대사로도 저런 영화를 만들 수 있구나.. 하고 감탄하며 봤어요. 장쯔이가 사랑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뭐 이전 작인 화양연화와 비교해 이러쿵 저러쿵 하기에는 좀 색이 다르긴 하죠.

깍두기 2004-10-20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게 맘에 드는 글이네요. 아, 부러워.혹시 님에게도 천부적인 재능이......?
(스바루를 보고 괴로와하는 건 나 하나로 충분해ㅠ.ㅠ)

하얀마녀 2004-10-20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왕가위 영화랑은 별로 궁합이 안 좋은 듯 합니다. 별로 좋은 걸 못 느끼겠어요. 해피 투게더는 학교 축제 때 영화 동아리에서 보여줘서 봤었는데 20분도 못 보고 그냥 나왔었습니다. 그런데 로드무비님의 리뷰는 정말 끝장나게 좋군요. 추천은 이럴 때 하라고 있는거죠. 흐흐흐흐.

파란여우 2004-10-20 2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의 타이밍을 못 맞추고 지금 이때껏 혼자 늙는 여인네도 있답니다. 언제 타이밍을 잘 맞추는건가요?^^ 페이퍼 끝내주게 잘 쓰셨습니다.

로드무비 2004-10-20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붕어님, 님을 잠깐 안아보고 싶어요. 잠깐만! 힝, 저는 동성 취향은 아니라고요.
깍두기님, 이 글이 되게 좋다니 님이 더 좋아지려고......홍홍홍^^
백발마녀님, 끝장나게 좋다니 그 표현이 저를 잠시 설레게 합니당.(뭐냐? 이 콧소리!)
파란여우님, 사랑의 타이밍은 언제일지 몰라요. 그런데 벼락같이 온답니다.
님은 언제라도 멋진 사랑을 하실 수 있는 분 같아요.^^

진/우맘 2004-10-21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쯔이....연인에서의 그 가늘가늘 이쁜 모습이 어찌 표현되었으려나....아~~ 연인을 마지막으로, 영화 본 지 한 달이 넘었어요...TT

프레이야 2004-10-21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페이퍼 매력적입니다. 내남자, 라는 말 새삼 괜찮은 느낌이네요.^^

마냐 2004-10-21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저두 하니케어님께 동의...마지막이 압권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뭐라해두...전 '2046'만큼은 꼭 극장에서 보렵니다..음화하핫. (전 떨림이 그리워요. 설레임과 멍청한 아픔에 배고파요. 대리만족이라도...)

로드무비 2004-10-21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우맘님, 이 영화 꼭 보세요.
장쯔이가 무지 예뻐요. 그녀의 팬이라면.
배혜경님, 매력적인 페이퍼라고 해주셔서 기뻐요.^^
마냐님, 떨림과 설레임, 멍청한 아픔......저도 무지 좋아해요.
그 속에서 홍야홍야 정신 못 차리는 것.^^

플레져 2004-10-21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영화를 보고 왔어요.
우리들, 여섯 명만 객석을 차지 하고 있었죠. 그래서 더 떨렸는데...
추억은 눈물을 부른다~ 도 있지요.
왕가위, 말 많아 진 것 같아요.
영화보기 전에 이 글 먼저 읽었으면 기대 더 많이 해서 로드무비님께 괜한 화풀이 할 뻔 했네요. 영화보다 더 맛있는 글!! 추천~ (당근이쥐~ ^^)

로드무비 2004-10-22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호호.
조조로 영화 자주 봐야겠어요.
얼마나 행복하던지......
맛있는 글, 이라는 맛있는 표현...감사해요.^^

릴케 현상 2004-10-23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막차를 탔는지 모르겠지만 여하간 추천하고...
이 글이 맘에 들었어요. 저는 영화를 '즐긴다'기보다 '봐 주지 뭐' 하는 편이어서 영화에 늘 관대하면서 늘 인색하답니다. 그래서 이런 정서가 묻어나는 영화평을 보는 걸로 만족해 버리곤 해요. 제가 이 영화를 안 보면 로드무비님 때문이라는 뜻-_-

로드무비 2004-10-24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명한 산책님, 추천과 댓글에 막차는 없답니다.
이 글이 마음에 드셨다니 기뻐요.^^
 

드라마나 영화들을 보면 부자 아빠 덕분에 잘 먹고 잘살던 여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진 아빠나 사업의 실패로  하루아침에 가난뱅이로 전락하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나온다. 가까이는 이은주가 주인공인<불새>라는 드라마가 그랬다.

최고급 브랜드만 걸치고 손에 물 한 방울 묻히고 살지 않다가 산동네 단칸방이나 지하셋방으로 쫓겨온  우아한  여주인공들은 형편이 달라지자 갑자기 사람이 달라진 듯 팔을 걷어붙이고 생활전선에 나선다. 그리고 그녀들은 허름한 옷을 입고 노점상이나 파출부를 하더라도 군계일학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그동안 부자로 살았던 것은 결코 허튼 것이 아니었다는 걸 증명해 주는 듯. 귀한 태생은 숨길 수 없다는 듯......

마찬가지로 드라마 속에서 묘사되는 벼락부자들은 어떻게 운좋게 돈은 거머쥐었는지 모르나 그 천박한 태생은 감출 수 없다는 식으로 보석을 주렁주렁 매달고 최고급 브랜드의 옷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나온다. 드라마니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는 물론, 시청자니 관객들도 어릴 때 읽었던 천편일률적인 동화의 영향에서 아직 벗어나려면 한참이나 멀었다.

두 친구가 생각난다. 중학교 때 친구 A. 독수리전축이 집에 있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던 시절 그 친구네 집엔 일제 황금빛 파이오니어가 거실 중앙에 떠억하니 있었고 그때 벌써 일본 <스크린>을 구독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잇단 사업실패로 산동네 두 칸짜리 낡은 전세로 이사갔는데 자신과 동생 둘이 함께 쓰는 방의 천장과 벽을 스크린지에서 뜯어낸 좋아하는 배우들의 사진과 기사로 전부 도배해 버렸다. 나는 이상하게 그 현실과 유리된 듯한 이상한 방이 너무 좋아 버스를 두 번 갈아타면서도 자주 놀러갔다.

등록금이 없어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그 친구는 조그만 사무실에 용케 취직이 되더라도 두 달을 채우지 못했으니 한마디로 사장님과의 가치관의 차이가 너무나 컸다. 쥐꼬리만한 월급을 준답시고 온갖 허드렛일을 시키는 무식하고 볼품없는 사장을 견디지 못했고, 그 사장은 또 사장대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주제에 너무나 도도하고 우아한 내 친구를 견디지 못했던 것이다. 친구는 돈이 좀 생기면 꼭 읽고 싶었던 책과 갖고 싶었던 가수의 테이프와(일제 파이오니어는 단칸방으로 이사할 때 결국 팔아치웠다 꽤 비싼 값을 받고...) 우표와 편지지를 한 무더기 샀다. 그것이 당분간 자신을 버티게 해줄 비상식량이라는 것이다.

B는 사회 친구.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끼리 어울릴 기회가 많았는데 나중에 어쩌다보니 아주 친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이 친구는 예전에 아주 잘살았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그 당시 박봉임에도 불구하고 닥스 오리지널 백을 들었고 계절이 바뀌면 메이커 옷을 큰맘먹고 장만했다. 언제인가 내가 아는 후배에게 500만 원인가를 한달만 쓰겠다고 빌려가서는 1년이 지나도록 갚지 않으면서 여전히 술값은 앞장서서 내고 메이커 옷을 사는 것도 여전했다. 나는 그 친구의 모습이 몰락한 부자의 격 있는 생활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 여겨 마음 한구석으로 존경하기까지 했다. '부자로 살던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라고까지 생각했다.(어디까지나 나의 쫀쫀함과 비교하여 그랬다는 말이니 오해 없길 바란다.)

그런데 그 멋진 이미지를 와르르 구기는 사건이 생겼다. 아버지와의 충돌로 임시로 집을 나온 이 친구, 옷들을 미처 챙겨 나오지 못했나보다. 우리 집에 와서 대성통곡을 하는데,

"엉엉, 내가 모래내 시장 구루마에서 3000원짜리 티를 다 사 입고......"

우는 친구를 열심히 위로하고 격려하던 나, 그 순간 짜증이 치솟았다.

"아니 자기는 3000원짜리 티 사 입으면 안되는 사람이야? 3000원짜리 티 입는 사람은 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거냐고!"

꼭 그것이 계기가 된 건 아니겠지만 그 친구와 나는 지금 연락이 끊겼다. 자신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으면서 대학 나오지 않은 사람을 경멸하고 자신이 얼마나 부유하게 살았는지를 입만 열면 되새김질하는 그가 어느 순간부터 지겨웠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지겨워하는 것을 눈치챘을 테고......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부자로 살다가 몰락한 사람, 물론 안됐다.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하지만 한번도 부자였던 적이 없는 사람, 부유한 생활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좀더 맛있고 고급스런 음식도 먹어보고 좋은 옷도 한번쯤 걸쳐보고 돈 걱정 안하는 쾌적한 여행을 경험해 보기를 나는 바란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데서 너무 부자였던 주인공 위주로 옹야옹야하는 걸 보면 나는 짜증이 난다. 경제적인 거든 문화적인 거든 좀더 골고루 누리고 사는 공평한 사회가 되기를 나는 바란다. 원하는 사람에게 적어도 기회가 한 번은 주어지는......지금 이 사회처럼 철저하게 봉쇄되고 되물림되는 것이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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깍두기 2004-10-14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돈 안갚았다는 부분이 제일 짜증나는군요......

물만두 2004-10-14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돈은 돌고 돌아 돈이라 하지 않습니까... 돈 좀 돌았으면 합니다... 있는 사람에게서 없는 사람에게로...

urblue 2004-10-14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천원짜리 티셔츠에 만원짜리 바지 입고도 잘만 삽니다만.
많은 돈으로 이런 거 저런 거 누리는게 자랑이 되지 않는 곳이었으면 합니다, 내가 사는 이 곳이.

마태우스 2004-10-14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삶의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서 추천!

sooninara 2004-10-14 1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만원짜리 바지 잘 입고 사는데..
드라마에선 작가들이 너무 단순하고 쉽게 쓰는것 같아요..매번 디자이너나 재벌이세..
혈연의 비밀..부자와 가난한자..흠...

하얀마녀 2004-10-14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잠이 늘기는 쉬워도 줄이기는 어려운 것처럼 씀씀이도 그렇더군요.
드라마는 거의 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습니다만 불새가 그런 설정이었나봐요?

로드무비 2004-10-14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어설픈 생각을 충동적으로 적어나간 글이라 올려놓고 조금 찜찜했는데
친절한 답글 달아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마태우스님 특히 헤헤...추천 고맙습니다. 꾸벅(_ _)

선인장 2004-10-14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 때 아버지 사업이 망했어요. 그 전에도 아주 부자 축에 끼지 않았던 덕분인지, 우리 형제들은 비교적 잘 적응을 했지요. 살던 빌라 팔고, 그 빌라 지하에 있는 셋방에 살면서도 우리는 매일 낄낄거렸어요. 매일매일 얼굴 맞대고 살던 사람들이라 더 챙피했을 법도 한데, 연탄도 꾸러 다니고, 밥도 얻어 먹으러 다니고, 공동 세면장에서 만나도 싱글싱글 인사도 잘 하고... 그 지하 구석방까지 친구들을 잘도 끌어들였었는데... 너무 어려서 그랬을까요?

로드무비 2004-10-14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 많은 것이 유일한 자부심인 부자들이 문제인 거지요. 나름대로 나누려 애쓰며
겸손하게 사는 부자들도 있지 않겠습니까.
선인장님, 저는 아주 부자인 친구와 아주 가난한 친구 둘 다에게 선망을 느껴 본 적이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문학적으로다가......
저는 항상 딱 중간의 형편 정도에 머물렀거든요. 제 생각에...
진짜 부자는 자신이 가난해져도 신세 한탄하지 않고 여전히 잘사는 사람들일 거예요.
선인장님 형제처럼......^^

숨은아이 2004-10-14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른 살이 넘도록 빈대로 살아왔지요. 그러다 어느 순간 동무에게 밥을 사고, 후배에게 술을 살(한 달에 5만원 이내. ^^) 수 있게 되자 그게 그렇게 좋더군요.

로드무비 2004-10-14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저도 친구들에게 그랬어요.'그래도 큰소리치며 얻어먹었어요.
나중에 열 배로 갚아줄 거라고.
그러다 서울로 줄행랑을 놓았지만...ㅎㅎㅎ
꼭 그 친구들에게 갚아야 한다고 생각 안해요.
인생은 돌고도는 것이니까요.^^

내가없는 이 안 2004-10-14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가면서 집안의 돈 분량이 눈에 보이더군요.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 점점 쇠락해가는 느낌이 들었죠. 그것도 뭐 엄청 부자에서도 아니고 그냥저냥 먹고살 만하다, 에서 조금씩 가라앉는. 사실은 그 바톤을 자식에게 또 자식에게 물려주는 게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이겠죠...
 
아따맘마 1
케라 에이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친구하고 싶은 여인을 만났다.  아따맘마와 이 만화를 그린 에이코 케라. 책 맨 뒷장에 있는 작가의 프로필을 소개하면 이렇다.

1962년 도쿄에서 태어남. 철이 남들에 비해 늦게 들었고 아무 생각 없이 소녀기를 지내고 나니 현재의 내가 됨.

'아무 생각 없이 지내다 보니 현재의 내가 되어 있었다'는 작가의 담담한 독백이 마음에 든다. 투니버스에서 절찬리에 방영되고 있다는  이 애니메이션을 나는 아직 한 번도 보지 않았다. 지난주 알라딘의 신간만화 소개 코너에서 이런 만화가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표지를 보는 순간 필이 팍 꽂히는 것이 아닌가! 세상 살아가는 요령은 아직 전무하다시피 한 나이지만 책이나 영화는 한눈에 필이 온다. 그리고 그것은  기대를 벗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이 만화는 서른두 가지의 에피소드와 '아따맘마 낙서장'이라고 하여 엄청 웃기는 서른 두 컷의 장면이 올 컬러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심각한 척 어설프게 인생을 논하려고 하지 않고 이렇게 단순하고 소소하게 일상을 잡아주는 만화나 영화가 좋다. 미모나 재능이 뛰어나서 만나는 사람마다 무릎을 꿇게 만드는 그런 따분하고 비현실적인 주인공이 아니라, 경품에 목을 매고, 미장원 갔다 와서 머리가 제대로 안 나왔다고 화를 내고, 자기가 벗어놓은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팬티스타킹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는 아따맘마 같은 허름한 주인공이 좋다.

중학생인 아들(오동동)과 고등학생인 딸(오아리)과 만년계장쯤 되어보이는 후줄근한 샐러리맨 남편과 조그만 집에서 알콩달콩 때로는 티격태격 살아가는 사십줄의 아줌마 아따맘마.

우리 엄마는 진짜 말을 이상하게 한다.(...)엄마는 머스타드, 와사비, 양념장, 타바스코 전부를 매운 소스라고 부른다. "아리야, 매운 소스 가져와!" "어떤 거?" "그러니까 찌릿한 거!" '타바스코군...'(아리의 혼잣말)

아따맘마와 나의 공통점은 셀 수도 없다. 티백은 두 번 사용하는 것, 팬티나 양말을 버릴 때는 새까매질 때까지 주위를 닦은 다음 버리는 것, 남의 구두를 밟은 채로 자기 구두를 찾는 것, 화장실 휴지가 떨어지기 전에 한 통을 갖다놔야 안심이 되는 것, 벗어놓은 스타킹이나 티셔츠의 엄청난 크기에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 빳빳한 새돈은 쓰지 않고 깊숙이 넣어두는 것, 강 같은 야외로 나가면 젊었을 적 피가 끓어올라 어쩔 줄 모르는 것......

알뜰한 살림꾼 흉내는 내는데 야무진 구석이 없고 실수투성이인 이 뚱보 아줌마가 나는 참 좋다. 그의 어리숙한 남편과 아이들도.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우리집 이야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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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4-10-10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가끔 투니버스에서 이 만화 봅니다만, 저는 재미를 못 느끼겠더라구요.

로드무비 2004-10-10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쓰기엔 굉장히 곤란한 만화로군요. 이렇다할 만한 스토리가 없다보니......
그래도 저는 아무 생각없는 이 만화가 마음에 쏙 듭니다.
바로 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깍두기 2004-10-10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투니버스에서 봤는데...한 2분 정도?^^ 우리집 애들은 좋아해요. 저는 애니메이션 보다는 만화책이 좋고 영화보다는 책이 좋더라고요. 그러니 이 만화가 재밌을 것도 같은데....로드무비님의 추천도 있으니....^^

깍두기 2004-10-10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저는 이것만 같군요. 남의 구두를 밟은 채로 내 구두 찾는 것.....

로드무비 2004-10-10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마음도 좋으셔.
이런 리뷰랄 것 없는 리뷰에 추천씩이나.^^;;;
빨리 치카님 방으로 갑세다. 이러다 이벤트 놓칠라.^^

깍두기 2004-10-10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 내가 추천했다고 누가 그래요?

내가없는 이 안 2004-10-10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따맘마와 님의 공통점 중에 저도 하나 건졌어요.
빳빳한 새돈은 쓰지 않고 깊숙이 넣어두는 것. ^^

깍두기 2004-10-10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새 제목이 바뀌어서 또 들어와 봤잖아요!^^

불량 2004-10-11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따맘마 정말 재밌게 보고 있어요..^^

날개 2004-10-11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애니로만 봤습니다... 우리 아이들이랑 저는 아주 열심히 본답니다.. ^^*

마냐 2004-10-11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 아따맘마 마음에 듭니다.

로드무비 2004-10-12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통명랑가족만화가 좋아요.
꺼벙이, 꺼실이 오누이 같은 주인공이 나오는 만화...^^

비로그인 2004-10-13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만화 꼭 봐야겠어요.^^ 그리고 친구로 만들어 버릴래요 ^^;;

로드무비 2004-10-14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니님, 꼭 그러세요.^^

김선민 2005-05-28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안에 올컬러인가요?
 

내 첫번째 펜팔 친구는 80년대 중반 우체국에 근무하는 시인 지망생이었다. 부산일보에 실린 그녀의 시가 너무 좋아 어느 날 나는 우체국으로 엽서를 보냈다. 내가 막 대학을 졸업하고 백수로 시립도서관이나 재개봉관을 들락거릴 때의 일이다. 제깍 답장이 왔고 우리는 한 5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우리는 나중에 아주 친해져 서로의 집을 들락거리기도 했다. 그녀는 가난 때문에 여상을 졸업하자마자 공무원 시험을 치르고 도망치듯 결혼을 했는데  그 결혼생활이 평탄치 않았다. 외롭고 가난한 그녀의 시가 어느 날 내 심경을 건드렸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이혼을 한 그녀가 우리 집 근처로 이사까지 왔는데 덜컥 내가 취직이 되어 상경해 버리는 바람에 나로서는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 두번째 펜팔 친구는 카이스트에서 박사 과정을 밟던 초등학교 동창 녀석이었다. 긴 백수 생활에 지쳐갈 때쯤 우연히 연락처를 알게 되어 편지질을 시작했다. 녀석은 과학도임에도(?) 글을 아주 잘 썼다. 나는 성적이나 뭐로 보나 그 아이하고 어울릴 만한 그 무엇이 없었는데 초등학교 때 함께 백일장 같은 데 학교 대표로 뽑혀 다닌 기억이 있어 편지질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이 두 펜팔 친구는 내가 상경하면서 서서히 연락이 뜸해지다가 지금은 아주 소식이 끊겼다.(초등학교 동창은 그 무렵 고향에 내려가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되었다.)

 세번째 펜팔 친구는  함께 자취하던 내 사촌동생의 고향친구였는데 서울에 올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집에 와서 사나흘 머물다 갔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영국에 공부하러 가 있는 몇 해 동안 나에게 편지를 보내왔다. 나도 그의 편지 요청에 응했다. 답장을 안 쓸 수 없는 아름다운 편지였으니까. (그런 편지가 있다.)  너무 예민하고 수줍어서 저래 갖고 앞으로 한 남자의 몫을 제대로 수행하며 인생을 살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켐브리지에서 박사학위를 따가지고 와서 어디 연구원으로 들어가 잘산다. 나의 염려는 기우였던 것이다.(로드무비야, 남 걱정말고 너나 잘살아, 제발!) 그는 귀국인사로 나에게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두툼한 사진집 한 권을 선물해 주었다. "누나 이건 필독이에요, 필독!" 하면서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를 앵기기도 했는데 아직까지 안 읽고 그대로 책꽂이에 꽂혀 있다.

네번째 펜팔 친구는 90년, 장기수후원회에서 하도 편지쓰기를 권장하여 말지(신상기록과 명단이 실렸다)를 꺼내어 펼쳐놓고 고른(?) 광주교도소에 복역중인 한 장기수 선생님이었다. 유독 마음이 끌리는 분( 좀 웃기는 말이지만)이 있어 전우익 선생의 책을 사서 간단한 자기 소개와 함께 편지를 보냈다. 지금 생각해도 나는 좋은 펜팔 친구는 아니었다. 마음을 활짝 열어놓고 편지를 쓰진 않았으니까. 나는 철저하게 그분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려고 했다. 한마디로 상대를 배려한답시고 오만방자했던 것이다. 외로울 땐 외로워요라고 쓰는 게 당연한데 나는 끝까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자신의 이념을 지키기 위해 30년이 넘는 세월을 손바닥만한 방에 갇혀 지내는 분께 외롭다느니 괴롭다느니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인다는 건 모욕이라고 생각했다. 사진작가 최민식의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이 나왔을 때 당장 사서 보내드렸더니 너무너무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시를 짓고 서화에도 능한 선비 같은 분이었다.

97년인가,  98년 이 분은 출옥하셨다. 그 전 해 연애에 정신이 팔려 나는 편지 보내는 일을 소홀히 했다. 아이를 낳고 그 소식을 올렸더니 얼마나 기뻐해 주셨는지.  나의 네번째 펜팔 친구를 실제로 본 건 그의 결혼식장. 출옥하자마자 독신의 한 전문직 여성의 마음을 나꿔챈 것이다.  유능하기도 하시지! 얼마나 사람들이 많이 몰려왔는지 우리 부부는 아이를 안고 그 하객들과 취재진 사이를 돌파할 수가 없었다. 인사 드리는 것을 포기하고 우리는 근처 지하식당에 마련된 피로연장에서 맛있게 밥을 먹고 돌아왔다. 그리고 작년 김동원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송환>에서 나의 펜팔 친구를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분은 칠순이 가까운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활기차고 멋진 모습이었다. 나는 흐뭇한 마음으로 극장을 빠져나왔다.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 서울 친구의 편지를 읽는다'로 시작되는 소설가 이제하가 고등학교 때 썼다는 시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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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굼 2004-10-08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그냥 흐뭇해지네요: )

로드무비 2004-10-08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절반쯤 쓰다가 졸려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 마저 쓴 페이퍼랍니다.
소굼님, 고맙습니다.^^

깍두기 2004-10-08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웬지 부럽다.

에레혼 2004-10-08 1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더니, 로드무비님은 어찌 이리 좋은 벗과 지인들을 많이 보듬고 있는지...... 님의 그 따뜻한 품과 깊은 속이 아름답네요!
역시 재산 중에 진짜 재산은 '사람'일 터... 님은 참 부자십니다!

비로그인 2004-10-08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장기수 할아버지의 인터뷰 자리에서 덩달아 이야기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는데,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서늘함이 느껴졌었지요.
지금의 북한의 실상을 알고나서는 어떤지 몰라도 "우리 공화국정부는 남한보다 도덕적인 우월함을 지니고 있다"는 요지의 자부감은 가슴을 울렸지요. 어떤 신념이 사람을 혼자서 수십년간을 감옥에서 버티도록 만드는지, 거인의 서늘함이었어요. 인상적입니다.
아마도 그 때 당시의 인민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북한이었던 것 같은데, 확실히 전쟁의 경험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놓았던 것 같아요.
그 외엔 유연성과 융통성이 있는 대화를 하시는 분이었죠.
개인적으론 저도 나라와 국가에 대해서 그런 자부심을 지닌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 싶어요.

로드무비님은 참...

urblue 2004-10-08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야 이 페이퍼를 봤네요. 이런 일은 추억이 되는 걸까요.

(로드무비야, 남 걱정말고 너나 잘살아, 제발!) 님의 유머는 가공할 수준이라니까요. ^^

내가없는 이 안 2004-10-08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이 멋진 이야기를 의도적으로 가볍게 처리하셨어요. ^^
근사한 펜팔친구가 있었던 님이 너무 부럽습니다.

水巖 2004-10-08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 따듯해지는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나의 펜팔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잉크냄새 2004-10-08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중한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계시네요.

선인장 2004-10-08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로드무비님 편지 받고 싶어요!!!!

마냐 2004-10-08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편지 잊고 산지 오래인데...오늘 벌써 두개의 페이퍼가 확 앵기네요...으으..로드무비님 이야긴 그래도 훨씬 따뜻하고 좋습니다. ^^

밥헬퍼 2004-10-08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억을 따뜻하게 기억하도록 도와주는 글입니다. 저도 편지를 주고받았던 사람들을 다시 생각하게 말입니다. 

청솔 그늘에 앉아

                   이제하 시/이제하 곡/장순아 노래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

서울 친구의 편지를 읽는다

보라빛 노을을 가슴에 안았다고 해도 좋아

혹은 하얀 햇볕 깔린

어느 도서관 뒤뜰이라고 해도 좋아

당신의 깨끗한 손을 잡고

아늑한 얘기가 하고 싶어

아니 그냥 당신의 그 맑은 눈을 들여다보며

마구 눈물을 글썽이고 싶어


아아 밀물처럼 온몸을 스며흐르는

피곤하고 피곤한 그리움이여


청솔 푸른 그늘에 앉아

서울 친구의 편지를 읽는다


엔리꼬 2004-10-08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펜팔친구가 있었다.
중삐리 때였다.
당시 유명했던 음악 잡지인 '음악세계' 맨뒤 펜팔란을 통해 만났다.
우연히 이름도 나와 같았다.
함께 듀란듀란을 좋아했다.
글씨를 너무 이쁘게 잘 썼다.
시골 살던 나는 그가 산다는 서울 홍은동에 대한 환상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과 더불어 그에 대한 환상도 커져갔다.

그 뒤로 몇년이 흘러 난 서울로 이사했다..
홍은동에 가보았다.
환상은 깨졌다.

그렇지만 그때의 그 홍은동 중삐리 여인에 대한 환상은 아직까지도 남아있다.

분위기 맞지 않게 좀 깨는 글 올려 죄송합니다. ^^ 갑자기 펜팔 하니 그녀가 생각나서리...

oldhand 2004-10-08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주옥같은 글입니다.
장기수 선생님과의 인연은 마치 <완전한 만남>의 한 꼭지를 보는 것 같아요.
메마른 제 영혼에 단비를 내려 주시는 군요. 흑흑.

2004-10-08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4-10-08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4-10-08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암님, 그리고 여러 분 말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제 이 페이퍼에서 음악이 들리는데 다른 분들 귀에도 들리시나요?
밥헬퍼님께 고맙다는 말씀 전합니다.
펜팔 친구,라는 옛 추억을 건드려봤습니다.
멀어진 사람들이 사무치게 그리운 계절 아니겠습니까.
한 말씀 한 말씀 잘 들었고요.
고맙습니다.^^


릴케 현상 2004-10-08 1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감동적이네요
펜팔 같은 거 나도 해 봤으면 좋았겠다 싶네요^^

숨은아이 2004-10-09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환"에서 본 기억이 나요. 아름다운 추억 부럽습니다. 노래 들려주시는 밥헬퍼님께도 감사.
 
호박과 마요네즈
나나난 키리코 지음, 문미영 옮김 / 하이북스 / 2000년 11월
평점 :
절판


<호박과 마요네즈>는 몇 년 전 홍대 앞의 만화서점에서 살까 말까 한참을 망설였던 책이다. 어쩌다 이 책이 눈에 띄었는데 제목이 먼저 눈길을 끌었고 꺼내어보니 푸른빛 심플한 표지도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왜 나는 이 책을 책꽂이에 도로 꽂았을까? 작가의 이름이 낯설었고 의심을 품고 보니 책표지가 너무 심심했던 것이다. 지워질 듯 가느다란 선으로 무심한 표정의 아가씨를 하나 달랑 그려놓았는데 세상에나, 그게 다였다. 주인공이 입은 티셔츠에 무늬 하나 그려놓지 않은 만화가 다 있다니!

이런 만화 처음 본다. 대부분의 여성 만화가들은 주인공의 옷에 심혈을 기울인다. 독특한 디자인이며 무늬며 어떤 때 보면 유명 패션디자이너 저리 가라이다. 모르긴 몰라도 만화를 그리다가 패션 디자이너로 전업한 만화가도 찾아보면 몇 명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나난 키리코의 <호박과 마요네즈>에는 패션이 없다. 주인공들을 홀랑 벗겨 내보낼 수 없으니까 최소한의 선으로 의상을 지정한다고 할까. 단추라도 몇 개 달아주면 감지덕지일 정도이니 나는 작가의 그런 드라이한 점이 몹시 마음에 들었다.

<호박과 마요네즈>라는 제목도 따지고 보면 홍상수의 영화 제목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식이다. 이 작가는 '일상' 속의 사랑을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담담하게 읊조리고 있는데 우리가 슈퍼에 가서 호박 한 덩이와 마요네즈를 집어들 듯 무심하고 태평한 얼굴이다. 주인공들은 20대의 젊은이들인데 젊음의 열정은커녕 세상에 태어나 악다구니라고는 써본 적이 없는 듯 체념한 얼굴로 살아간다.

여주인공 미호, 하루종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우리 식으로 쉽게 표현해서--봉지쌀과 연탄 두 개를 간신히 사들고 집에 돌아왔더니 집은 정신없이 어질러져 있고 동거하는 남자친구는 머리에 까치집을 짓고 빈둥거리고 있다. 시간제 아르바이트로는 생활비가 턱없이 모자라 남자친구 몰래 술집에까지 나가는 처지이다.  "난 오늘 하루종일 일하고 왔는데 넌 집에서 하루종일 뭐했어?" 참다못한 미호의 입에서 나오는 외마디 비명이다.  "네가 하고 싶은 그 음악 때문에 나까지 내돌려지고 있는 것 아냐!"그러나 그 목소리는 높지 않고 낮다. 음악을 하느라 돈도 벌지 못하고 여자친구에게 얹혀 사는 세이도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한다. "자신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남한테 편승하려 하지 마!" 이쯤 되면 이미 그들의 사랑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호는 결국 길에서 우연히 만난 야비하기 짝이 없는 전 애인 하기오와 새로 사랑을 시작한다. 그런데 글쎄 그런 것도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랑이 시들고 지루하고 구차한 일상만 남을 때 사람들은 무엇으로 자신의 사랑을 지켜낼까?  나나난 키리코의 <호박과 마요네즈>는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등장인물들--몇 되지도 않는--의 입을 통해 아무렇지도 않은 듯 툭툭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냉큼 받아서 적고 싶을 만큼 군더더기가 없다.

'우리들의 이 흔해빠진 일상은 실은 아주 망가지기 쉬워서 끝내 잃어버리지 않는 건 기적이다.'

<호박과 마요네즈>의 마지막 내레이션이다. 그렇다. 어찌 보면 시시하기 짝이 없는 누추한 나의 일상이나 사랑도 안간힘을 통해 기적적으로 쟁취한 평화이며 로맨스인 것이다. 새삼스러운 그 깨달음이 얼마나 반가운지......이 만화를 읽어본 사람들은 다 안다.

 

(#바람구두님 이벤트 때 느림님이 강력 추천하셔서 이 만화를 구입해 읽게 됐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어쩐지 여주인공 미호의 얼굴과 자취방에 자꾸 느림님 이미지가 겹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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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4-10-01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이것도 빌려주시면 어떨지?
그런데 홍대 앞에 만화서점은 어디 있나요?

superfrog 2004-10-01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박과 마요네즈 보셨으니 이제 <블루>와 <워터>를 추천합니다..^^

로드무비 2004-10-01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님, 바꿔볼 책 하나씩 메모해 놓읍시다.^^
홍대앞 한양툰크는 동교동 농협에서 꺾어져 한참 들어가는 골목에 숨어 있는데
그집 사이트 들어가서 찾으시오. 길치한테 길을 묻다니! 그런데 그집 호박 이 책은
품절입디다.
금붕어님, 위의 것들도 나나난 키리코 것인가요?
그리고 저번에 말씀하신 <5년생>은 혹시 어디 파는지 알고 계시나요?

superfrog 2004-10-01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루와 워터는 키리코 나나난 작품이 맞구요, 5년생은 예전에 산 것들인데 혹시 홍대앞 가시면 어느 구석에선가 찾으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에레혼 2004-10-01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읽고 싶어요
표지 그림만으로도 '내 과'라는 필이 오네요...^^
이것도 줄서기 할까요?

로드무비 2004-10-01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붕어님, 재주껏 구해 볼게요.
라일락와인님, 나중에 읽으셔요.^^
표지그림만으론 내 과가 아닌데...전 좀 구질구질해요, 사람이...아주 마음에 듭디다!

2004-10-01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저자 이름이 마음에 드는군요. 나나난 키리코..

날개 2004-10-01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저는 요 책을 오래전에 읽었습니다.. 아주 건조한 느낌이었는데..^^;;
한때, 이 책이 대유행해서 막 품절나고, 결국엔 해적 출판사에서 재판이 나오는 사태도 발생했었죠..

내가없는 이 안 2004-10-02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시한 일상도 안간힘으로 쟁취한 평화란 말... 격려해주는 듯한 말이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