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봄이 오면 - [할인행사]
류장하 감독, 최민식 외 출연 / 아이비젼엔터테인먼트(쌈지)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초등학교 때 순희라는 친구가 있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녀의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뚱뚱한 아줌마였고 막걸리집을 하고 있었다. 연산동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있던 그 막걸리집은 미닫이 문을 열면 시금털털한 막걸리 냄새가 확 달려들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어린시절부터 그런 냄새가 참 좋았다. 허름한 가게 안에 조그만 살림집이 붙어 있었는데 내 친구 순희는 자신이 손으로 직접 그린 꼬질꼬질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시늉을 하며 놀았다. 별로 넉넉지도 않은 우리집에는 당시 피아노학원을 하는 이모가 강매하다시피 하여 사들인 중고 외제 피아노가 마루에 놓여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으니 순희가 봤을 땐 얼마나 불공평한 세상이었을까.

순희가 여상으로 가면서 우리는 소식이 끊겼다. 10여 년 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여름휴가 때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남포동인가 시내 거리 한복판에서 순희와 마주쳤다. 바이올린 케이스를 손에 들고 있는 미녀.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우리는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레슨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녀는 인근 도시 시향의 정식 단원이었다. 결혼을 하여 아이도 있다고 했다. 여상을 졸업하고 취직, 학비를 마련하여 기어코 음악대학에 진학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도화지를 이어 붙여 만든 피아노 음반으로 피아노를 치던 막걸리집 소녀는 자신의 손으로 어린 시절 자신의 꿈을 성취한 것이다. 그때 나는 직장이랍시고 서울에서 다니곤 있었지만 참으로 어리버리하고 정신을 못 차리는 노처녀였다. 순희의 반짝반짝 윤이 나는 모습과 자신감에 넘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참 초라하게 여겨졌다.

며칠 전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을 비디오로 빌려보았다. 내 친구 순희가 절로 생각나는 영화였다. 극장에 가서 이 영화를 보고 싶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다. 최민식이 주연이라는 점, 지난해 도계중학교 관악부의 다큐멘터리를 텔레비전 '인간극장'으로 재밌게 본 것, 배경이 삼척에서도 한참을 더 들어간 탄광지대라는 것, 겨울에 찍었다는 것 등이 나의 구미를 당겼다.



세 명인가 네 명의 아역배우를 제외하곤 도계중 관악부 아이들이 실제로 출연했다. 그런데 누가 전문배우이고 누가 아닌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으니 이 정도면 성공적인 캐스팅(?)이 아닌가!

현우(최민식 역)는 오케스트라 오디션에서도 떨어지고 오래도록 사귀던 여자친구 연희(김호정 역)에게서도 이별 통보를 받는다. 막막한 심정으로 손을 내밀어 잡은 것이  바로 탄광촌 중학교의 임시교사 자리. 때는 바야흐로 겨울. 깊은 산골의 겨울 풍경이 참으로 고즈넉하면서도 적막하게 펼쳐진다. 그곳에서 수연(장신영)이 운영하는 약국의 불빛만이 제법 따뜻하고 화사한데.

올해 전국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하면 해산해야 하는 위기에 처한 관악부. 현우는 특별히 재능이 뛰어난 것도 아닌 아이들과 어울려 전국대회를 준비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현우가 관악부원 아이 할머니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그 지역 나이트클럽에 트럼펫주자로 취직, 번쩍이는 무대의상을 입고 무대에 선 장면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술집에서 혼자 술마시다가 엄마(윤여정)에게 전화, "엄마, 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 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은 가슴이 찡하다. 나도 가끔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으니......

누구에게나 자신이 인생의 막장에 도달했다고 생각되는 쓸쓸하고 쓸쓸한 순간이 있을 것이다. 더이상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함. 그럴 때 이 영화를 본다고 현우를 만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이 영화는 담담하게 그냥 보여준다. 사람이 사는 골목과 지붕 밑의 고단한 삶과 서글픔을...... 하지만 연이약국 난로 위에 항상 끓고 있는 물주전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잠시 떠오르지 않을까.


탄광촌의 꽝꽝 얼어붙은 풍경이 좋아서 디카로 한번 찍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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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아이 2004-12-12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 순희님께 이 추천을 바칩니다. (아, 생뚱맞게... ^^)

깍두기 2004-12-12 2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마지막 문단에 추천을....

로드무비 2004-12-12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은아이님. 순희에게 이 영광을 전할까요?(추천 고맙습니다^^)

깍두기님, 님도 가만 보면 좀 질펀한 구석이 있어요. 그죠?

추천 고마워요.^^

날개 2004-12-12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보고싶던 영화였는데...벌써 비디오로 나왔군요.. 빌려봐야겠습니다..^^*

마냐 2004-12-12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졸면서 본 영화가 바로 저랬단 말이군요...쩝. 순희님의 이야기가 훨 감동적이네요...

로드무비 2004-12-13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너무 재밌진 않지만 최민식의 팬이라면

꼭 봐야겠죠? 좀 추레하게 나와요.^^;;

마냐님, 그때 몹시 피곤하셨나 봅니다?^^

밥헬퍼 2004-12-13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에는 겨울에도 흐드러지게 꽃이 피니 다행입니다.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라지만 아무래도 요즘은 덜 추웠으면 좋겠습니다. 여전히 꽃피는 봄을 기다리면서.가져가서 보고 싶은데요.

로드무비 2004-12-13 1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밥헬퍼님. 올 겨울은 좀 덜 추웠으면 좋겠어요.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말이죠.

별 신통찮은 제 글 가져가 주셔서 고맙습니다.^^

icaru 2005-03-16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락 이야기를 읽으러 왔다가... 님의 이 감상평에 너무나 심취해 있다가 갑니다~
 
엄마 마중 - 유년동화
김동성 그림, 이태준 글 / 한길사 / 2004년 9월
구판절판


이태준 글, 김동성 그림의 <엄마 마중>. 아이의 복장이 벌써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태준은 근대 문인 중 박태원과 함께 제가 제일 좋아하는 소설가입니다.

추워서 코가 새빨개진 아이가 혼자 어디론가 가고 있습니다. 어디에 가는 걸까요?

전차정류장입니다. 전차라, 시대 배경을 짐작할 수 있겠죠? 정류장에서 전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겹습니다.

"우리 엄마 안 와요?" "오, 엄마를 기다리는 아가구나." 차장이 전철에서 잠시 내려왔습니다.

전봇대가 있는 골목 풍경.우성의원, 진미국수, 코-니상회......

눈이 내립니다.
엄마는 언제 오실까요?
아이의 코가 빨갛습니다.

아이와 엄마가 손을 잡고 골목을 걷습니다.
저 계단만 오르면 따뜻한 아랫목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의 오른손에는 빨간색 막대사탕이 들려 있군요.

(2005년 2월 8일 이 장면을 뒤늦게 발견하고 넣습니다. 아이와 엄마가 만났다고 알려주신 분이 계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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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12-12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면을 클릭하면 확대된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책 강추입니다.

▶◀소굼 2004-12-12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겹네요...엄마는 만날 수 있으려나?:)얼른 만나야 할텐데..

진주 2004-12-12 1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어릴적엔 엄마 마중 많이 나갔는데요^^

왜 그때 마다 꼭 머리에 스카프를 쓰고 나갔는지 모르겠네요 ㅎㅎㅎ

숨은아이 2004-12-12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속 책장을 펼쳐 짚은 손가락은 누구의 것인가요? ^^ 사진마다 다른 손가락 자세.

날개 2004-12-12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하 손가락인가 봐요..^^ 그림이 굉장히 멋지네요..

로드무비 2004-12-12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굼님, 그러게 아이가 엄마를 빨리 만나야 하는데요.

아이가 너무 귀여워요.^^

새벽별님, 우린 참 비슷한 데가 많아요. 그죠?^^

박찬미님, 반갑습니다.

그러고보니 어릴 땐 엄마들이 겨울에 스카프를 썼잖아요.

부들부들한 실크스카프.^^

숨은아이님, 누구겠어요, 마이 도러지.

사진 찍을 때 조수 노릇 톡톡이 했답니다.^^

날개님, 이 책은 어른인 제가 봐도 너무 좋아요.

주하 손톱이 너무 길어서 깎아줘야겠네요.^^

마냐 2004-12-12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연령대 상관없는 책인가 봅니다.

hanicare 2004-12-13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이 모성애 운운할 때 마다 나는 짜증이 나곤 합니다. 아이의, 엄마에 대한 절대적 사랑은 왜 못 보는지. 몇 년이나마 한 세계의 자전축이었고 길게 돌이켜보면 일생을 관통하는 중심이 되는 존재가 엄마라는 존재인데. 그 존재가 어린애에게서 받는 것은 다른 존재에게서 받기엔 거의 불가능한, 선명하고 절대적인 사랑이건만.모성애니 어쩌니 하는 말은 생색같은 것.
*혼잣말처럼; 동동이란 아명, 조약돌처럼 채송화처럼 앙징맞더라는.

진/우맘 2004-12-13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그림이.....정말!

뒤에 이을 말을 못 찾겠습니다.TT

로드무비 2004-12-13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 그냥 그림이 너무 좋아서 어른이 들여다보고 있어도 흐뭇하다는

그런 이야기예요.^^

하니케어님, 저도 강요된 모성애는 싫어요.

그런데 아이가 아기일 때 이 아이의 삶이 엄마인 나로부터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생각하니 무섭고 부담스럽더라고요.

좋은 본보기가 될 자신이 없어서...

그냥 친구처럼 싸우며 사는 거죠, 뭐.

훌륭한 엄마가 되겠다는 결심만 안하면 부담스러울 것도 없어요.

그리고 '동동'을 기억하세요?

전 말해놓고도 까먹었는데...^^;;

진/우맘님.

그림이 너무 예뻐서 황홀한 책이에요.^^

urblue 2004-12-13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너무 이뿌네요. 음...

icaru 2004-12-24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김동성...그림...너무 좋아요..

2004-12-24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biseol 2004-12-24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포토리뷰보고 구입결정.. 그런데 로드무비님 질문이요.. 마지막 엄마랑 만나는 장면이 있는건가요? 누구에게 선물하려고 산건데 마지막에 눈만 하염없이 내리는 것만 나온거 같아서요.. 다시 가서 쪽수 맞나 보긴 할텐데 파본은 아닌지 걱정이.. ㅡ.ㅜ

로드무비 2004-12-24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순이 언니님, 님도 좋아해 주시는군요. 그럼요.^^

그리고 .....님, 촌철살인...히히히...고마워요.

그거 제가 좋아하는 말인 거 어찌 아시고......^^

스미레님, 저 책에 엄마의 모습은 끝까지 나타나지 않습니다.

파본 아니네요.^^


biseol 2004-12-27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변 감사합니다~ ^^*

동화사랑 2005-01-28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와 만나는 장면이 있으면 더 좋을거 같아요..괜히 욕심^^
로드무비님이 찍으신 사진 제 개인홈피에 퍼갈께요.
너무 이뻐서요.
사고싶은 동화책이 자꾸만 늘어나네요.

쭌쭌 2005-02-03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펼치고 있는 애기 손가락이 귀엽네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이런 잔잔한 동화가 좋네요. 그림도
서양스타일의 화려한 것도 좋지만 동양미가 왠지 끌리고요.
동화책은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좋은 것 같습니다.

비로그인 2005-02-07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들은 그림을 잘 읽지 못합니다. 대충 보아넘기지요.
이 책에 엄마 등장합니다.
맨 마지막 장에 보면 눈 내리는 골목길에
한 손에 빨간 막대사탕(?)같은 걸 든 아이가
장에 갔다 오는 건지 함지같이 생긴 끈 달린 물건을 든,
보자기를 쓴 엄마하고 같이 손잡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Happy ending! -

비로그인 2005-02-08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하 손가락 이뿌네요. ㅎㅎ

로드무비 2005-02-08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웨이브님, 웬 추천입니까? 혹시 주하 손가락에?ㅎㅎ

cjaesook 님, 님의 방명록에 인사 남겼지만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혹시 그 사실을 알려주려고 급히 방을 만드신 건가요?
그렇다면 더더욱 고맙고요.^^
쭌쭌님도 동화사랑님도 스미레님도 이 포토리뷰를 다시 보시면 좋을 텐데......

Sati 2009-09-07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삽화가 참 좋아요. 포토리뷰 덕분에 구입할 듯요. 이태준도 좋아하지만서두요.^^

로드무비 2009-09-07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스투 누르는 것 잊지 마세요.^^
(Sati 님, 이미지가 강렬하면서도 몽환적입니다.)
 

일요일 오후 남편과 영화('귀여워')를 본 곳은 동대문의 한 쇼핑몰 10층의 복합상영관이었다. 영화의 배경은 철거 직전의 청계천 서민아파트. 철거깡패인 정재영이 웃통을 벗고 빤쓰 바람으로 병째 소주를 마시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되었다. 모두 거처를 마련해 떠나고 금방이라도 유령이 나올 것 같은 을씨년스런 그 아파트 빈방에는 노숙자들이 집단혼숙을 하고 있었고 크면 양아치가 될 것이 확실해 보이는 소년들이 불장난을 하며 막 돌아다니고 있었다.

장충동에서 족발을 사가지고 다시 동대문으로 와 청계천을 빠져나오는데 조금 전 영화 속에서 본 그 을씨년스런 풍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청계천 고가는 기둥만 몇 개 남기고 자취가 없었다. 그 휑한 풍경 속에 생업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초라한 일터가 보였다. 폐업비디오 가게들, 헌책방들, 아무도 거들떠볼 것 같지 않은 우중충한 옷가지들을 걸어놓은 옷가게, 하루에 커피 열 잔이나 팔릴까 싶은 다방, 그릇가게, 국수집, 곱창집......

서울시의 호언장담대로 몇 년후 이곳이 복개되어 예전처럼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새들이 지저귈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생계의 방편을 잃어버린, 거처할 곳을 찾지 못한 저 수많은 사람들은 어찌할 것인가.

창밖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며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1천 원짜리 국수를 파는 동네 황학동. 나는 그 국수를 사먹어 본 적은 없지만 대한민국에 천 원짜리 국수를 파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그리고 황학동엔 실제 그 천원짜리 국수 한 그릇으로 하루를 연명하는 수첩장수가 살고 있었다.

그는 삼일아파트의 어엿한 주민으로 아파트 부근 골목에 수첩 몇 권을 펼쳐놓고 하루에 두 권도 좋고 세 권도 좋고 되는 대로 팔아 점심때 국수 한 그릇을 사먹었다. 어떻게 아느냐고? 텔레비전 한 시사프로에 그가 소개된 적이 있다. 특이한 것은 그가 말을 한마디도 않는다는 것. 나는 그에게 매료되어 직접 그를 찾아가 수첩을 몇 권 산 적이 있다. 실제로 그는 말을 한마디도 안했다. 수첩 몇 권이 한번에 팔려 조금 기뻐하는 기색은 보였지만......

어제 아침 한겨레신문에는 보증금 1천만 원이 없어 삼일아파트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그곳에 천막을 치고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는 집만 해도 30가구가 된다니 그 수첩장수 아저씨의 행방이 문득 궁금해졌다. 1천 원짜리 국수가게가 아직 남아 있어 하루 단 한 끼 그의 식사가 해결되고 있는지......

몇 년 전 나는 한 인터넷신문에 '나는 맨얼굴의 청계천이 좋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아주 오랜만에 청계천을 보고 오니 이렇게 되도 않은 글이라도 끄적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몇 자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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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2-09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먹는 한 끼니의 밥이 목구멍에 넘어갈 때 이러한 명제를 생각하면 가슴이 울컥합니다. 세상의 로또를 제가 다 휩쓸고 싶어집니다...

물만두 2004-12-09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

선인장 2004-12-09 18: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서울에 와 처음으로 살게 된 곳이 바로 삼일 아파트였어요. 그리고 3년 동안 황학동에서 서너 군데를 전전했지요. 그래서 저는 곱창도, 순대도, 닭발도 잘 먹는 신기한 여자아이로 자라났고, 중고품을 파는 친구들 집들을 뛰어다니며 노는 극성 맞은 아니가 되었어요. 삼일 아파트 창문으로 바라보는 청계고가가 얼마나 무섭던지, 아직도 그 기억이 생생해요.

청계고가가 사라진다는 소식을 듣고, 아주 오랫만에 황학동에 간 적이 있어요. 살던 집들 대부분은 없어졌지만, 골목 안 제일 마지막으로 살았던 집이 어엿한 3층 건물이 되어 있더군요. 괜히 주인집을 찾아들어가, 혹시 그 때 그 주인 아줌마가 아닌가 묻고 싶었더랬어요. 그 아줌마 아들이 가수 인순이씨의 운전기사였는데 말이지요...

비루하고 가난한 청계천 8가, 그리고 황학동, 청계고가의 날선 차들. 그 곳이 저에겐 늘 서울이에요.

날개 2004-12-09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계천을 안 가본지가 한참되었습니다.. 갈 기회는 있었지만 그 휑할 풍경이 보고 싶지 않아 피하는지도 모르겠네요..

추천 날립니다~

깍두기 2004-12-09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첩장수를 테레비에서 보고 직접 찾아가는 행동이야말로 로드무비님다운 행동....^^

로드무비 2004-12-09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꼭 로또 1등으로 당첨되시길......^^

선인장님, 님의 댓글 한 개의 페이퍼로 저는 읽었습니다.

추천은 어디다 하죠?^^

그 골목을 뛰어다니는 꼬마선인장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봤습니다.

예쁘네요.^^

날개님, 전 청계천이 좋아요. 그래서 지금의 모습 보니 마음이 아픕디다.

깍두기님, 그렇게 생각하세요?^^


2004-12-09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얀마녀 2004-12-09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끄적이지 않고는 견딜수 없다는 그 마음, 어째 제 마음도 짠해지네요...

kleinsusun 2004-12-10 08: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은 삶을 참 적극적으로 사는 것 같아요.

TV에서 본 수첩장사를 직접 찾아가는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정말 삶에 대한 사랑, 열정, 호기심으로 가득 찬 것 같아요. 아름다운 로드무비님!

비발~* 2004-12-10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대체 어디가신걸까... ;;

조선인 2004-12-10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황학동에 나갈 기회를 만들어야겠네요.

2004-12-10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水巖 2004-12-11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벤트 끝내신뒤 뵐 수 가 없군요. 이벤트가 힘이들어 몸살이라도 나신걸가요?

담이 오셨다더니 아직도 몸 쓰기가 불편한 걸가요? 어디서 무슨 기사를 본것 같은데.

로드무비 2004-12-11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암님, 이벤트 재밌게 했는데 몸살은요.

담은 깨끗이 지나갔어요.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수선님, 하얀마녀님, 조선인님, 고맙습니다.^^

그리고 속삭여주신 님, 접수했습니다.^^
 
편집자 분투기
정은숙 지음 / 바다출판사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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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고은의 어느 시에 등장했던 '민음사 미스 문'이 그토록 부러웠던 시절이 있었다. (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분명 그런 시가 있었다.) 내가 흠모하는 시인과 직접 만나 고양이나 개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라니! 백수로 하릴없이 시민도서관이나 들락이던 시절 서울의 출판사 편집실은 내게 꿈의 요새였다.



그런데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내가 좋아하는 그 출판사(민음사는 아님)의 편집부 직원이 되어 있었다. 꿈같은 일이었다. 어느 날 아침 영업부 직원이 소설가 이제하 선생의 인지에 도장을 찍고 있길래 사무실에 오시느냐고 물었더니 교보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한다. 나는 사장의 허락도 받지 않고 인지를 가로채어 교보로 갔다. 교보문고 내에 커피숍도 있고 스파게티집도 있던 먼먼 시절의 일이다. 이제하 선생과 커피숍에 마주앉아 벌벌 떠는 손으로 커피를 마시는데 '지금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사무실로 돌아가 사장에게 엄청 깨졌지만......



사람은 참 간사한 동물이다. 자신의 꿈을 이루어놓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딱 뗀다. 두 달도 지나지 않아 나는 말도 안되는 원고의 교정을 보면서 투덜대기 시작했으며 1년을 조금 넘기고 사표를 냈다.



그 해 코엑스에서 열린 도서전시회에서 고은 시인도 소설가 이청준도 직접 볼 수 있었다. <만인보>를 1에서 5권까지 사서 두 권에 사인을 받았는데 독자들을 대하는 시인의 태도가 좀 짜증스럽고 건성건성이어서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이청준 선생은 한 시간 후에 있는 자신의 강연회에 사람이 아무도 안오면 어쩌나 진심으로 걱정을 하고 계셨다. 우리 사장과 그런 말씀을 나누고 계시길래 "그럴 리가 있나요?" 했더니 나보고 가지 말고 꼭 머리수를 채워 달라신다. 나는 살아가는 데 자신감도 좋지만 기고만장한 사람보다는 수줍은 사람을 선호하는지라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강연을 무사히 마친 이 사람좋은 소설가는 고맙다며 내게 신작소설집을 주겠다고 하시더니 멋지게 서명하여 며칠 후 우편으로 보내주셨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키작은 자유인>이 바로 그 책이다.



출판사 편집부 직원으로 밥을 먹고 살았던 그 1년 몇 개월은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의 황금기였다. 월급은 쥐꼬리만했고 일은 해도해도 끝이 없었다. 어렵사리 새책이 한 권 나오면 아바이순대 같은 집에서 회식을 하고 다음날은 다시 새벽부터 기어나와야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이라면 환장을 하는 아이였지만 책을 만드는 기술적인 일은 별로 재미가 없었다.사장도 그런 나의 성향을 눈치챘는지 디자인 쪽이나 제작 쪽 일엔 관여하게 하지 않고 원고를 고르는 일, 다듬는 일, 보도자료를 쓰는 일 등에 나를 부려먹었다. 나는 그런 주제에도 잘난 척은 엄청 했다. 가령 이런 일. 황동규 시인과 말씀을 나누던  사장님이 나를 부른다. "소설가 손창섭 선생 근황을 혹시 알고 있소?" "저 일본에 계신 걸로 아는데요." 그리곤 우쭐우쭐하며 사장실을 나오는 것이다. 무슨 엄청난 정보를 줬다고......



시인이자 도서출판 마음산책의 대표인 정은숙 씨의 <편집자 분투기>를 재밌게 읽었다. 출판편집자로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20년. 그녀의 아이디어로 이 세상에 나와 사람들의 심금을 건드리는 책만 해도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박영택의 <예술가로 산다는 것>, 조은의 <벼랑에서 살다>, 구효서의 <인생은 지나간다> 등 우선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책만 해도 여러 권이다.



자신은 성공적인  기획자이면서 출판사들의 기획 만능 추세를 비판하며 기획, 편집, 디자인, 제작, 홍보 등 출판과 관련된 모든 과정을 자신의 노하우를 곁들여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그뿐인가, 책이란 무엇이며 편집자는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철학과 자세까지......한마디로 나만의 안테나로 세상을 읽되 균형감각과 미세조종술까지 획득하라는 것이다. 이게 참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만......



어느 날  시인 조은의 사직동 한옥집에 놀러갔다가 그 골목과 고졸한 방안 풍경을 보고 사진과 곁들인 멋진 책을 머리속에 떠올렸다니, 그리하여 그렇게 예쁜 책 <벼랑에서 살다>가 세상에 나왔다니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기획 실패 사례까지 적나라하게 공개하고 있다.



책을 탁 덮으며 나는 희미한 부끄러움과 질투를 동시에 느꼈다. 이것은 내게 좀해서 찾아오지 않는 감정이라 나도 조금 놀랐는데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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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巖 2004-12-08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만 읽다보니 로드무비 글같은데 위를 보니 이름이 틀리는군요. 옛날 출판사 시대 생각이 납니다.

stella.K 2004-12-08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책을 좋아하는 거랑, 책을 만드는 거랑 다르긴 한가 보죠? 리뷰가 재밌어요. 바람구두님이 퍼오시는 송인소식이 이 사람이 쓴 거였군요. 읽어보고 싶어요. 일단 보관함에 넣어요.^^

로드무비 2004-12-08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암님도 출판사를 직접 운영하셨다고 했죠?

예전 아날로그적인 출판사 편집실 분위기 참 좋았어요.

가끔 그때가 그리워요.^^

깍두기 2004-12-08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 근무.....시켜주면 힘들고 능력없어서 사흘도 못하겠지만 여전히 제 머릿속의 꿈의 직업이어요^^

갈대 2004-12-08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저 지금 이 책 보고 있어요. 이쪽에 관심이 있는지라, 그런데 솔직히 재미는 별로 없네요^^;

로드무비 2004-12-08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 출판사를 하나 차리시죠?^^

갈대님, 출판인들에게나 재밌겠죠.

몇몇 에피소드가 재미난 것 빼면 그리 꽉찬 책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플레져 2004-12-08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보다 로드무비님의 지난날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습니다.

음음...책보다 더 좋은 리뷰...^^

추천이어요, 저 또한!

sandcat 2004-12-08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과지*성사에 들어가서 시 교정만 보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더랬죠.

시야 뭐 교정 볼 것도 없는 거겠지만.

로드무비 2004-12-08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제 글은 리뷴지 페이펀지 구분이 잘 안 가죠?

전 앞으로도 그렇게 쓸 거예요. 추천 감솨!^^

샌드캣님, 저도 그런 꿈을 꾼 적이 있죠.

그런데 시 교정 보기보다 까다로워요. 아심시롱.^^


호랑녀 2004-12-08 1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줄 알았다가 마지막 발령이 안나서... 결국 백수로 몇 달을 지내야 했던 시절... 결혼하고 회사를 그만 두었던 시절... 몇 번 출판사에 발을 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이 닿지 않더군요.

가끔 출판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면, 가슴 한켠이 쓸쓸해지면서 부럽습니다. 낼모레가 마흔인데... 아직두요.

kleinsusun 2004-12-08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편집자 분투기> 재미있게 읽었어요.

<편집자 분투기>를 읽고 쓴 독서일기를 마음산책 게시판에 올렸는데, 정대표님이 리플에 '인상 깊은 독후감'이라는 평을....ㅋㅋ

이 책 읽고 < 벼랑에 살다> 도 읽었거든요.

조은의 산문집. 최근 읽은 그 많은 글들 중에 가장 솔직한 글이었어요. 강추!!!

니르바나 2004-12-08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 고 은 선생에게 섭섭했던 마음일랑 접어두세요. 로드무비님

독자들은 작가에게 환상을 가지고 대하지만 소위 인기가 있는 작가의 반열에 들어서면 그 분들도 인간인데 모든 독자에게 항상 여일할 수 있겠습니까?

많은 좋은 작가들을 만나셨던 흥분이 님에게는 지금도 남아 있으니까요.

'키작은 자유인', '벼랑에서 살다', '인생은 지나간다'

저도 감동으로 읽던 책들입니다.

갈수록 로드무비님과 함께 읽은 책들이 느는 기쁨을 누가 알겠습니까?

브리즈 2004-12-11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 님의 지난날이 선연히 떠오르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정은숙은 편집자로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시인으로서 좋게 읽은 적은 없어서 책에 대한 기대는 별로 없는데, 로드무비 님의 이야기는 너무 재미있는데요. ㅊㅊ합니다. ^^..

로드무비 2004-12-11 17: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게야 댓글을 답니다. 죄송!;;

호랑녀님, 저는 도서관에서 근무하셨다는 님이 부럽습니다.

낼모레가 마흔이라니 역시 부러워요.;;

수선님, 벼랑에 살다 정말 재밌죠? 이 책은 세 번이나 샀어요.

그나저나 마음산책 홈페이지 한번도 안 가봤는데

수선님 글 읽으러 한번 가볼까요?

니르바나님, 그냥 그랬다는 거지 섭섭하기까지야 하겠습니까.

님과 읽은 책이 겹쳐지니 기분이 좋습니다.^^

브리즈님, 재밌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정은숙 씨 시는 별로였어요.
ㅊㅊ 고마워요.^^

2004-12-22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4-12-22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그럼 복순이 언니도?^^
 
십시일反 - 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박재동 외 지음 / 창비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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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숨은아이님의 어떤 페이퍼에 나는 이런 댓글을 달았다. "나는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살고는 있습니다만......" 이 말은 사실이다.  살아가는 일이 아직 어색하게 여겨지고 너무나 게으른 나머지 의로운 일에 앞장선다거나 남을 돕는 일에 적극적인 편은 아니지만 서명이 필요한 경우 등 머리수를 채우는 정도의 일, 후원금을 얼마간 내는 정도의 최소한의 인간의 도리는 하고 살아가려고 한다. 그것이 내게는 십시일반의 정신인 것이다. 어떤 이가 보기엔 이런 나의 태도가 몹시 비겁하고 가소로워 보이겠지.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다.


<십시일反>은 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없는 세상에 대한 청사진이랄까, 보고서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했다고 하면 너무나 형식적이고 딱딱한 내용일 것이라 오해하기 쉬운데 의외로 구석구석 이 세상의 가려운 곳까지 시원하게 긁어주고 있다. 빈부격차, 노동, 교육,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성적 소수자 문제 등 그 시선이 뻗치치 않은 곳이 없다고 하면 너무 과장일까?


이 재미있는 기획에 참여한 작가들은 박재동, 손문상, 유승하, 이우일, 이희재, 장경섭, 조남준, 최호철, 홍승우, 홍윤표로 자신이 포착한 이 사회의 차별을 자신의 만화에 꼼꼼하게 담고 있다.


손문상 씨의 '최종합격'이란 에피소드를 소개하면 이렇다.


xx주식회사 신입사원 최종면접 현장. 여섯 명의 최종후보가 억지미소를 짓고 앉아 있다. "4번... 부모님이 아직 월세 살아요?"(탈락) "1번, 출신대가 본굡니까 분굡니까?"(탈락) "2번...잉? 야간이넷!"(탈락) "6번...결혼란을 안 썼네요? 기혼? 미혼?"(이 여성도 탈락) "두 분은 입사 성적도 좋고 출신성분, 학력 다 좋은데...두 분 다 아버님이 공직에...(한 후보의 아버지는 교직에, 한 후보의 아버지는 의원...) 김의원님 잘 계시죠?"(최종합격 3번!)


딸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나의 경우 조남준의 에피소드 '누렁이 1'이 특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60평 이상 아파트인 1단지에 사는 아이와 40평 이상인 2단지, 20평 이상인 3단지에 사는 한 학교 아이들의 생일파티 이야기였다. 아파트 평수에 따라 친구를 맺고 생일파티에 초대하고 하는 것이 결정된다는 건 어느 먼 천박하고 악독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의 이야기일 것이다. 우리와는 상관이 없는......나는 끝까지 그렇게 믿고 싶다.


자신은 꽤나 상식적이고 공평하고 자유로운 인간이라고 자위하며 사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십시일反>을 읽어나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가슴 찔리고 눈물이 솟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울고 있는 아이나 노인, 장애인이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나의 무관심이 무관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사회적인 폭력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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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4-12-06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여름에 본 건데도 기억이 가물가물...느낌만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래서 리뷰를 써야하는건데.

숨은아이 2004-12-06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관심이 무관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사회적인 폭력으로 연결된다..., 그렇지요, 정말.

하얀마녀 2004-12-06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좋은 책이 있었군요. 이래서 서재질을 멈출 수 없습니다. ^^

플레져 2004-12-06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은 숨어있는 책 잘 골라내셔요. 정말 친하게 지내야 한다니깐...^^:; 잘 읽고, 추천해요!

chika 2004-12-06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오늘에야 이 책을 보관함에 집어넣었는데, 로드무비님은 리뷰를 쓰셨군요.(리뷰는 잘 안읽었답니다. 책 읽고나서 리뷰볼래요~ ^^)

미완성 2004-12-07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래저래 서재질하면서 느는 건 보관함이요 요통이요 변비입니다 ㅜ_ㅜ

추천!

깍두기 2004-12-08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또 언제 쓰셨나요? 이제서야 들여다봅니다. 십시일반.....괜히 가슴 한켠이 뭉클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