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와 빨강
편혜영 지음 / 창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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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래전 편혜영 작가의 『선의 법칙』 (비교적 최근 소설이다)을 읽고 나서 나는 리뷰에 이렇게 썼다. "어딘가 텁텁한 맛은 있어도, 파국으로 치달아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정도로 어둡지는 않다." 잔잔한 느낌의 소설임에도 왠지 모를 꿉꿉함이 느껴졌었는데 그 꿉꿉함이 견딜만했던 모양이었다. 파국을 그리고 있음에도 살아간다는 느낌을 주어서 희망적이긴 했었다. 그러나 『재와 빨강』을 읽고 나자, 내가 만났던 책이 편혜영 소설의 전부가 아니며 한편으론 그의 새로운 시도였고, 원래 그가 추구하던 것이 바로 이런 문학이었구나 싶었다.

 

 우연히 맨손으로 쥐를 잡는 능력을 인정받게 되어 전염병이 창궐한 국가로 발령 난 주인공. 거리는 쓰레기와 소독약 연기로 매캐하고, 그가 맞는 상황들에는 늘 불운이 감돈다. 본사로 출근하기로 하여 기다렸는데 담당자에게는 연락도 없다. 설상가상으로 아내의 끔찍한 죽음과 그 죽음에 자신이 용의자로 지목되었다는 소식까지 듣게 된다. 그는 결국 길바닥과 지하 하수도까지 내몰린다. 추락의 연속이다.
 주인공의 아내가 왜 죽었는지, 밝혀진 죽음의 시점이 왜 그의 출국 시점과 닿아 있는지, 칼을 쥐는 찰나의 느낌이 왜 익숙하게 남아있는지 소설은 구태여 차례대로 설명하진 않는다. 오로지 주인공이 나락으로 떨어지면서도 꾸역꾸역 살아남으려 애쓰는 광경을 따라갈 뿐이다.

 

 그런데 그의 모습은 어딘가 익숙하지 않은가. 도시에 빠르게 전염병을 퍼뜨리는 더럽고 끔찍한 쥐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는 것 같다. 가장 후미지고 어두운 곳에 들끓는 쥐는 주인공의 인생과 연계되어 끊임없이 등장하는데, 마치 짜인 것처럼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되는 상황 속에서도 그렇다. 쥐는 그에게 때로 살기 위한 방편이 되고, 반대로 또 다른 파국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며, 때로는 궁지에 몰린 인간들보다 차라리 해롭지 않은 존재감을 과시한다. 모든 것들 중에서도 가장 웃기는 건, 주인공이 쥐를 때려죽이는 일을 하게 되면서도, 쥐의 엄청난 생존능력을 본받아 어떻게든 살아간다는 점이다.

 

 소설 전체에 퍼져 있는 불쾌감과 아이러니 속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장면은 일품이다. - 여기서 불쾌감은 소설이 아닌, 소설 속 세계에 깔린 것을 말한다 - 죽음의 냄새 대신, 그의 몸이 소독약과 약품 냄새로 뒤덮인 장면 속에선 오히려 한껏 처참한 기분이 든다. 온 세상에 있는 향기와 독한 냄새를 끼얹는다 할지라도, 그의 몸에 뒤덮인 재와 피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가 기억을 모두 잃어버리지 않는 한.

 

 공중전화에서 그가 아는 모든 이름을 부르는 장면도 비슷한 느낌을 준다. 어떻게든 살아간다 하더라도 자신과 관련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의 생은 허울뿐이다. 구석으로, 구석으로 내몰리면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려 발버둥 치는 모습이, 자신과는 이제 아무 의미 없는 이름들을 부르짖음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과정이 도통 낯설지 않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작가는 왜 이런 소설을 세상에 내보이려 했을까 생각했다. 그것도 무지무지하게 살벌하게까지 써 내려갔는지 궁금했다. 그러다가 현실과 맞닿은 지점이 있을 거란 생각에 약간 소름이 끼쳤다. 부조리한 세계, 인간성의 상실, 추락한 인간의 본성, 끔찍한 전염병이 퍼져도 금방 회복하는 일상성 (혹은 불감증) 등, 그에게 영감을 준 장면들이 진짜 있을 것만 같아서.

 

 

104쪽,
바닥에 떨어진 칼이 그의 얼굴처럼 굳어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쥐지 않은 손을 여러 번 쥐었다가 폈다. 칼을 쥔 느낌이 익숙하다고 해서, 손에 그런 느낌이 남아 있다고 해서, 손이 그 감각을 고스란히 기억한다고 해서 그가 전처를 찔렀을 리는 없었다. 칼의 손잡이는 대체로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어떤 것이든 일단 쥐면 익숙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나 진위와는 상관없이 칼을 쥐었다 놓는 순간, 낯설고도 익숙한 떨림이 자신을 관통하는 순간, 그는 세계가 칼날만큼이나 차갑고 칼자루만큼이나 울퉁불퉁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104쪽,
바닥에 떨어진 칼이 그의 얼굴처럼 굳어 있었다. 그는 아무것도 쥐지 않은 손을 여러 번 쥐었다가 폈다. 칼을 쥔 느낌이 익숙하다고 해서, 손에 그런 느낌이 남아 있다고 해서, 손이 그 감각을 고스란히 기억한다고 해서 그가 전처를 찔렀을 리는 없었다. 칼의 손잡이는 대체로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어떤 것이든 일단 쥐면 익숙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나 진위와는 상관없이 칼을 쥐었다 놓는 순간, 낯설고도 익숙한 떨림이 자신을 관통하는 순간, 그는 세계가 칼날만큼이나 차갑고 칼자루만큼이나 울퉁불퉁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168쪽,
그 일들로부터 수년이 흐른 지금, 그는 덥고도 더웠지만 계속해서 아내를 안고 싶게 한 파란 날개 선풍기 때문에 울 것 같았다. 건반을 누를 때마다 음이 떨려 좋은 줄도 모르고 들은 쏘나타 때문에, 지붕에 던져올린, 새가 물어갔는지 쥐가 물어갔는지 알 수 없는 부러진 앞니 때문에, 빨간색 매니큐어가 발라진 발톱 때문에 울 것만 같았다. 지나간 생애가 너무나 사소하고 볼품없어서, 그런 인생에 회한이 느껴져서는 아니었다. 사소하고도 사소한 일로 채워진 현실의 시간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234쪽,
좁은 사각형의 유리상자 안에서 그는 공연히 떠오르는 이름들을, 전처의 이름이나 유진의 이름 혹은 자신의 이름을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동전을 넣지 않으면 어떠한 신호음도 떨어지지 않는 수화기는 묵묵히 그가 부르는 이름을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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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작 1 - 간질병의 산을 오르다 세미콜론 그래픽노블
다비드 베 지음, 이세진 옮김 / 세미콜론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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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나는 길거리에서, 공공장소에서, 지하철에서, 가끔 당황스러운 장면을 본 적이 있다. 그 장면은 이랬다. 청소년쯤 되는 아이가 알 수 없는 문장을 소리쳐 말한다. 성인인 듯 보이는 사람이 헤드폰을 낀 채로 옆에 있는 가족들에게 욕을 퍼붓는다. 큰 목소리에 주위 사람들은 다들 시선을 그쪽으로 돌린다. 그러다 '나쁘거나 혹은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 어딘가 '다른' 사람이란 것을 깨닫곤 큰 소리를 애써 귀속에서 줄여가며 외면한다. 이는 단지 주변 사람 뿐만의 모습이 아니다.

 

 그런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순간적으로 주목을 끄는 행동을 할 때, 옆에 있는 가족들의 모습이 항상 놀라웠다. 다른 경우도 있을지 모르나, 내가 본 분들은 모두가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절대로 흥분하지 않았고, 누구보다 침착했다. 손으론 아이를 제지하면서도 표정이 굳거나 인상도 찌푸리지 않았다. 그저 늘 있었던 일인 양 자연스럽게 대처했다. 그 모습이 대단하다고 여겨지면서도, 침착하고 자연스럽게 되기까지의 고난의 시간을 생각하니 마음이 갑갑해졌다.

 

 

 

"나는 그 가짜 스승들, 음성적인 치료법들에 걸었던 희망을 다 토해버리고 싶었다."
 나의 연민과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시선조차 그들에게 고통이 될 거라는 생각은 『발작』이란 책을 보고서 더 깊어졌다. 책은 간질병으로 시시각각 발작을 일으키는 형을 둔 작가의 자전적 그래픽 노블이다. 1970년대 프랑스 사회를 배경으로 간질병이 한 가족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를 회고록 형식으로 담았다. 모든 가족들은 형의 병을 고치기 위해 움직였다. 매크로바이오틱, 침술, 강신술, 수맥 관리, 연금술…… 발작을 멈출 수만 있다면 가릴 것이 없었다. 그러나 발작은 완벽하게 고쳐지지 못했다. 실패, 좌절의 연속이었다. 간질병에 걸린 사람들을 벌레보듯 했던 사회였다. 밖에서 형이 발작을 할 때면, 오히려 가족들은 온갖 비난과 멸시에 시달리곤 했다.

 

 

 

어린 나이였던 피에르프랑스와 (필명 다비드 베)는 형의 발작을 보고 느꼈던 모든 것들을 숨겨두다, 훗날 그림으로 표현하였고 이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당시에는 장난스럽고 웃기는 모습으로 감췄던 속마음은 『발작』에서 무서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표현되었다. 책은 온갖 것들이 복잡하게 섞인 머릿속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숨김없이 그려낸 듯 보인다. 꿈속의 환상, 형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나쁜 마음, 가족들이 겪었던 고통들, 그가 만화가를 꿈꾸면서 읽었던 책들이 모두 들어있었다. "나의 갑옷은 밤이다." 라는 그의 독백처럼, 마음속 어두운 구석에 모든 감정을 토해놓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 꺼내놓은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온갖 치료법과 병을 나아지게 할 것들을 찾아 나섰던 가족들의 끝도 결국 내가 목격했던 사람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결국 고립된 곳에 머무르고, 병에 순응하고, 어쩔 수 없이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살아가기까지의 여정은 참으로 복잡한 마음이 들게 했다.

 

 

 

"나의 개명은 입장을 표명하는 하나의 방식이 됐다. 나는 속되고 천박한 카우보이들에게 맞서는 눈부신 인디언들의 편에 섰다. 나는 살찐 나치들에게 맞서는 말라빠진 유대인들의 편에 섰다."

 

 작가의 불안하고 격앙된 감정들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책은, 다소 읽기에 불편하기도 했다.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생각들을 그대로 풀어놓았으니 어찌 보면 참 불친절하다고 생각될 지경이었다. 그러나 순간 페이지를 멈추고 한참을 바라보게 한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표현들, 한 세기의 역사까지 아우르는 독특한 서술 덕분에 불친절한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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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한국사 : 현대편 쟁점 한국사
박태균 외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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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가 역사를 등한시했던 지난날처럼, 내게도 역사는 '과거의 기록'이라는 사전적인 의미에서만 머무르곤 했다. 학생 때는 연표를 작성해 외우는 역사가 너무도 재미가 없었고, 성인이 돼서도 가끔 흥미를 느끼는 주제가 생길 때만 종종 들춰보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근, 대한민국 역사의 큰 획을 그은 사건들이 일어나자, 그 의미는 보다 폭넓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선조들의 빛나는 영광과 쓰디쓴 실패, 모두가 오늘날의 우리에게 교훈을 주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끊임없는 대화(E. H Carr)'라고 했다. 백번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말이다.

 

 "역사는 하나의 교과서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0명의 역사가가 있다면 10개의 관점이 있을 수 있다." (7쪽, 기획의 말 - 한명기)


 역사라는 분야야말로 다양한 시각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쓰인 것들을 두루 읽어야 한다. 역사적 사실에 너무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 면에서 『쟁점 한국사』라는 책은 남다른 장점이 있는데, 한국사의 핵심 쟁점이라 할 주제들에 대한 다양한 역사학자들의 글을 모았다는 점이다. 지은이의 이름에는 역사학자 각각의 이름이 있지만, 국정 교과서 논쟁으로 떠들썩할 당시 창비 학당에서 열린 강의를 통해 시민들과 토론했던 내용을 토대로 묶었기에 좋게 말해 시민들이 참여한 책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가까운 역사인 '현대편'에는 관심 있는 시대였던 만큼 흥미로운 사실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주제별로 깊이 공부해본 적이 없어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부끄럽게 마주하기도 했다. '한국전쟁에서의 민간인 희생자들 수가 엄청난 규모였다'는 점, '베트남 전쟁 이후, 수많은 외화에도 불구하고 부실기업이 늘어났다'는 점, '민주화 운동 속에서 도시 하층민들이 선두에 서서 가장 많은 피를 흘리고, 어린아이들도 참여해서 부모 형제들을 위해 운동을 했다는 점' 등,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았다.

 

 마치 꼬인 실처럼 지금까지도 엮여있는, 결코 떼놓고 볼 수 없는 역사들도 있었다. 미국의 신탁통치,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유신, 민주화 운동 같은 주제들 속에는 현재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소중한 교훈들이 가득했다. 국제적 관계 속에서 강자들은 약자를 늘 오랫동안 억압해왔고 약자는 항상 소극적인 면모로 일관했다. 약자는 때로 강자가 되기도 했고, 그런 과거는 기억 속에서 지워갔다. 국내적으로 강자들 또한 마찬가지 행동을 취했지만, 약자들은 피를 흘리고 싸워가며 국민이 국가의 주인임을 소리 내 외쳤다.

 

 우리는 역사적 순간을 걷고 있고, 아직은 출발점에 서 있다. 과거의 역사적 순간은 개개인의 관점을 정해주는 소중한 경험이 되고, 그런 소중한 경험을 통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지금도 계속해서 쓰여지고 있다.

 

"만약 그날 도청에 남았던 분들이 드라마 「시그널」처럼 지금 우리에게 무전을 걸어와 일제 35년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이고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뭐라 답해야 할까? 여전히 지금과 같은 현실이 계속되어 대통령은 유신잔당 정도가 아니라 유신공주가 하고 있고, 젊은이들은 헬조선 흙수저에 신음하고, 자라나는 아이들의 꿈은 정규직인 나라라면, 그때 그분들이 도청에 남는 게 맞았을까? 유신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광주도 끝나지 않았다. 역사는 끊임없이 다시 씌어져야 한다. 1980년 광주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응답하라, 2017!" (178쪽, 유신, 두 번째 내란 - 한홍구)

 

 

53쪽, 해방과 분단의 현대사 다시 읽기 - 정병준
전후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역사 분쟁, 영토 분쟁을 벌일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천황이나 일본국가 · 국민 전체가 아닌 전쟁을 일으킨 일본군, 일본 군부와 정치 지도자 일부만이 그 책임을 짊어지게 된 것이다. (…) 역사적 맥락에서 보자면, 일본은 국가 전체가 전쟁 책임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성하고 확인할 수 있는 국제적 프로세스를 거치지 못했다. 일본으로서는 전쟁의 참화를 국제적 규범 속에서 직시하지 못하고, 단지 일본의 패전으로만 기억하는 역사적 비극이 발생하게 되었다.

114쪽, 박정희와 미국, 이승만과 미국 - 홍석률
강자들은 약자를 항상 비합리적이고, 감정적이고, 충동적인 사람들로 묘사해왔다. 과거 제국주의 국가의 사람들이 식민지 사람들을, 백인이 흑인을, 남성이 여성을 항상 이러한 방식으로 이야기했다. 약자들은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대응할 능력이 없기에, 강자에 의해 항상 주의 깊게 관리되어야 할 존재로 묘사된다. 그럼으로써 강자가 약자에게 영향력을 발휘하고, 이들을 관리하는 것이 합리화되는 것이다.

162쪽, 유신, 두 번째 내란 - 한홍구
이 사건을 33년이 지난 후에 무죄라고 하니 어쩌면 좋을까. 솔직히 그때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들이 억울하게 죽었다고 생각한 국민은 극히 소수였다. 다들 빨갱이를 미리 적발해서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거나 대공 요원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우리가 하재완과 같은 골목에 살지 않았을 뿐이지, 우리 모두 그의 아들을 묶었던 새끼줄 한 자락을 잡고 다닌 셈이다. 과거사 문제에 대해 모두 화해 이야기를 한다. 화해, 참 좋은 말이다. 그러나 가해자와 피해자의 화해를 말하기 전에 구경꾼들은 억울한 피해자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250쪽, 민주화의 숨은 주역을 찾아서 - 오제연
한국 민주화의 역사 속에는 학생들의 헌신적인 노력 외에도 많은 시민들의 피와 땀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하지만 기록을 남기고 역사를 쓰는 사람들이 대개 엘리트들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학생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한 면이 있다. 이 과정에서 은연중에 도시 하층민 등 일반 시민의 역할이 축소 · 은폐되거나 주변화되었다. 이제라도 우리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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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쇳물 쓰지 마라
제페토 지음 / 수오서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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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았던 겨울, 밝은 새해를 맞아 집어 든 것이 이 책이었다. 너무 무겁게 고민하는 책은 싫어, 그래도 따뜻했음 좋겠어. 이런 생각으로 그동안 읽어볼까 고심했던 책을 읽기로 했다. 댓글 시인에 관해선 이야기만 들었지 실제로 인터넷 기사에 올린 시를 읽어보진 못했다. 인터넷 기사와 시詩. 그 만남이 낯설고 어색했지만, "그 쇳물 쓰지 마라"라는 한 문장이 그동안 마음에 들어왔던 시들만큼이나 잊히지 않았다.

 

 "그 쇳물 쓰지 말고 / 맘씨 좋은 조각가 불러 / 살았을 적 얼굴 흙으로 빚고 / 쇳물 부어 빗물에 식거든 / 정성으로 다듬어 / 정문 앞에 세워주게." (25쪽, 그 쇳물 쓰지 마라)


  용광로에 빠져 흔적 없이 사망한 20대 청년에게 남긴 시는 이랬다. 안타깝게 스러진 청년의 몸이 녹아있는 그 쇳물을 다듬고 조각상을 만들어, 엄마가 만질 수 있게라도 해주라는 시인의 탄식이었다. 단지 그것으로 허무하게 가버린 청춘의 넋을 위로할 순 없지만, 그거라도 해달라는 애통한 마음이 담겼다. 이 시를 읽고 연민 없이 단숨에 책장을 넘겨버릴 사람은 없으리라.


 표제작인 <그 쇳물 쓰지 마라>를 비롯하여, 많은 시들이 시인의 연민 어린 따뜻한 시선으로 탄생되었다. 그리고 시가 수록된 페이지 옆에는 그가 댓글을 남긴 기사가 함께 실려 있다. 어떤 시는 기사 없이 내용을 판단할 수 있으며 오히려 기사가 없이도 좋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지만, 시의 자유로운 감상 가능성을 차치하고서라도 이 시집에서 기사가 주는 의미는 무척이나 크다. 수많은 기사를 읽고, 어떤 누군가가 볼 거라고 확신할 순 없어도 끊임없이 사색하고 시를 남겼던 '댓글시인 제페토'라는 시인의 존재. 그리고 삭막한 인터넷 세상에서 누구나 쉽게 시를 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경험의 선물. 특히나 가장 큰 장점은 수많은 인터넷 기사들에 가려 수면 위로 드러나지 못했던 소식들도 시인이 발견해 독자들에게 전해줬다는 것이다.


 짐작건대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이 대개 슬프거나 안타까운 소식들을 담고 있을 거라 생각하여 은연중에 피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안타까운 죽음들, 부조리한 현실 등 어두운 이야기도 있으나, 풍경에 대한 감탄과 힘찬 희망을 담은 이야기도 많다. 특히 아무리 어두운 이야기여도 시인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작은 불빛을 기어코 찾아낸다는 점이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정하게 다독이고, 딛고 일어설 힘을 찾는 시인의 모습이 따뜻하다. 이는 그가 남긴 서문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전해오는 봄꽃 소식과, 가뭄을 끝내는 비 소식과, 축복처럼 내리는 첫눈 소식과, 황금빛 물든 억새밭 풍경과, 불편한 몸으로 힘들여 일군 소금을 이웃에게 베푼 염전의 성자와, 생명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사지로 들어간 소방관들에 관한 보도를 보면서, 앞서 느낀 혐오와 절망은 적잖이 민망한 것이 되었고, 다시 살아갈 명분과 희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5쪽, 서문 - 풍선을 위로하는 바늘의 손길처럼 모서리를 둥글게 깎는 목수의 마음처럼)

 


 

37쪽, 이름 모를 친구에게
하필 당신 나와 같은 나이냐
전깃줄에라도 매달렸어야지
없는 날개를 냈어야지
누구는 이십 층서도 살았다던데
구 미터는 살았어야지
어떻게든 살았어야지



75쪽, 여생
잠시 헤어지는 것일 뿐 / 다시 만날 것을 믿자//
붐비는 종로 거리에서 / 결혼 앞둔 카센터 청년의 콩팥으로 / 동갑내기 소녀의 심장으로 / 붙임성 좋은 할머니의 췌장으로



95쪽, 다리 위에서
한번 더 기회를 주는 일. / 강물과 / 택시와 / 둔치에 앉은 연인과 / 도시와 / 붉어지는 하늘과 / 별과 / 우주와 / 이발사를 웃게 하는 정수리의 사마귀와 / 쓸 만한 유머 감각과 / 조곤조곤한 목소리와 / 대단한 주량과 / 악의 없는 거짓말과 / 이제껏 보고 들은 모든 것들과 / 가슴속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앓는 꿈들이 / 사라지지 않도록 허물뿐인 날들에 / 눈 한 번 감아주는 일.

185쪽, 부두에 생각을 매며
그러니 일상은 일상대로 / 가든 말든 놓아두되 / 우리만은 / 배가 출항했던 그날의 부두를 떠나지 말고 / 도통 이해되지 않는 일들과 / 수상한 사람들에 관하여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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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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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결말은 몇 줄에 걸쳐 걸작 내에서도 걸작이다. 대단원을 이루는 행들에서 나는 싸움을 포기하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울었다."

 프랑스의 작가 '장 도르메송'이 남긴 이 말은 책을 고르는데 큰 역할을 했으나 100퍼센트 믿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소설의 끝을 맞이했을 때 나는 그제야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마지막 한 줄을 손바닥으로 가린 채, 영화 속에서 충격적인 장면이나 반전이 나올 때마다 들려오던 강렬한 사운드를 상상하며 들춘 그 문장은 압권이었다. 과장이 아니었다.

 ​그리곤 다시 홀린 듯이 첫 페이지로 돌아와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파악하려 애썼다. 그러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이 책의 첫 문장과 끝 문장, 그 속에 엮어진 이야기는 완벽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동급생』이라는 책의 제목은 내 안에 더욱 깊이 각인되었다.


 소설은 유대인 소년 '한스 슈바르츠'가 "내 가장 큰 행복과 가장 큰 절망의 원천이 될 그 소년"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소년이었던 한스는 새롭게 전학을 온 귀족 소년 '콘라딘 폰 호엔펠스'와 운명적으로 서로가 맞는 친구라는 걸 직감하며 우정을 키워나간다. 독일의 아름다운 고장 슈바벤에서 그들은 청춘을 즐기고, 문학과 예술, 철학 등을 몽상한다. 비록 나치 시대였지만, 그들은 꿈을 꿔가는 소년일 뿐이었다. 어른들의 이데올로기는 중요한 일이 아니며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위기가 닥치고, 한스는 고민하기 시작한다. 왜 아버지가 콘라딘을 만나자마자 자신에게는 전혀 보인 적 없는 비굴한 태도와 극존칭을 쓰는지. 왜 콘라딘은 집에 가족들이 없을 때만 자신을 부르는지. 이러한 의문은 그리 심각한 고민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소년 대 소년이 아닌, 가족과 가족, 뒤이어 혈통의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이어지자 소설에는 내내 불안감과 위기가 감돈다.

 

​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더한 아름다움으로 존재했던 동급생 둘의 우정은 이 모든 갈등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 심한 유대인 탄압 속에서 대피해 '살아남은' 한스는 놀라운 사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 한스가 읽고, 내가 읽고, 수많은 독자가 읽고 비통해 마지않은 한 줄이며, 두 소년이 했던 대화들, 뿌리깊게 박힌 이념들, 속수무책으로 흘렀던 세월과 비극을 상상케 하는 엄청난 한 줄이다. 나는 절대로 이 한 줄을, 소년들의 우정을, 비극적인 역사에 수그러졌던 사람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38쪽,
<내가 그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친구>라고 쓰기 전에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뒤에도 나는 이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으며 내가 친구를 위해 - 그야말로 기뻐하며 -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믿는다.

62쪽,
정치는 어른인 사람들의 관심사였고 우리에게는 우리 나름대로 풀어야 할 문제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기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삶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을지 배우는 것이었고 이것은 삶에 어떤 목적이 있는지, 과연 있기나 한지, 또 이 놀랍고 헤아릴 수 없는 우주에서 인간의 조건이 무엇일지 알아내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히틀러니 무솔리니니 하는 덧없고 우스꽝스러운 인물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진정하고도 영원한 의의라는 문제가 있었다.

​ 81쪽,
내가 알고 있던 것은 여기가 시작도 끝도 없는 내 나라, 내 집이며,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붉은 머리가 아니라 검은 머리로 태어났다는 사실만큼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뿐이었다. 첫째로 우리는 슈바벤 사람이었고 그다음은 독일인이었고 그다음이 유대인이었다. 내가 그 외에 달리 어떻게 느낄 수 있었을까?

111쪽,
마침내 그들을 보았을 때는 달아나고 싶어졌다. 유대인 아이의 본능적인 직감으로 볼 때, 채 몇 분도 못 가서 내 심장에 들어박히게 될 단검은 피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고통은 피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무슨 이유로 친구를 잃는 위험을 무릅써야 할까? 무슨 이유로 의심이 잠으로 달래지게 놓아두는 대신 증거를 요구해야 할까? 하지만 나는 달아날 용기도 없어서 고통에 대비해 마음을 단단히 먹고 떨리는 심정으로 기둥을 버팀목 삼아 기대어 서서 처형당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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