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창비시선 394
송경동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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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선이다. 어떤 방향 전환도 없이 곧게 뻗는다. 이 시집을 읽고 이런 생각을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곧게 뻗어 밀고 들어오는 시집은 처음인지, 오랜만인건지 모르겠다. 숨이 막히고 힘이 빠지는, 이 직설적인 시들을 겨우겨우 읽어나갔다.


 그동안 아름다운 시의 문장들을 극찬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내 현실은 그리 고통스럽지 않아서 아름다운 것에 자연스럽게 취해 지냈는데, 그 뒤에 이런 시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철거촌, 공장, 망루, 철 구조물에서 쓴 시들이다. 말 그대로 노동과 저항의 시들이다. 부서지고 밟히고 눈물지으면서도, 그것에 짓눌리지 않으려고 쓴 시들이다. 아마도 이것은 현실이다. 내 일상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만약 발견하더라도 금세 내 일이 아니라고,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외면해버릴.


이제라도

바람에 휙 날려갈 수 있는 가벼운 모자를 하나

찡긋 윙크하며 깔깔깔 웃을 수 있는 즐거운 모자를 하나

한없이 건방져 보이거나 시크해 보이는 모자를 하나

언제라도 표표히 떠날 수 있는 유목민의 모자를 하나 (65쪽, 모자를 쓰고 싶었다)


 이윤과 권력으로 법외에 내몰린 사람들을 위해 이십여 년 동안 거리에서 싸워온 시인은, 올곧은 마음이 속절없이 흔들릴 때가 있다. 파도처럼 끝없이 철썩이고 몰아치는 밤샘 취조실에서 시인은 가장 아프고 서글프다. 사적인 삶이 없다고 말하는 주변인의 말에 뭐라고 답할 기운도 없다. 그런데도 그는 다시 현실로, 거리로 돌아간다. 지금 이 삶이, 짭짤하니 좋다고 한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지하층 바라실'에서 나와 죽지 않기 위해 먹었던 굵고 짭짤한 소금의 맛 ('소금과 나트륨의 차이')을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 읽던 '마지막 잎새' ('마지막 잎새')를 생각한다. 그는 아직 희망을 놓지 않으려 한다.


나는 한국인이다 / 아니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 나는 송경동이다 / 아니 나는 송경동이 아니다 / 나는 피룬이며 파비며 폭이며 세론이며 / 파르빈 악타르다 / 수없이 많은 이름이며 / 수없이 많은 무지이며 아픔이며 고통이며 절망이며 / 치욕이며 구경이며 기다림이며 월담이며 / 다시 쓰러짐이며 다시 일어섬이며 / 국경을 넘어선 폭동이며 연대이며 / 투쟁이며 항쟁이다 (102쪽,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그러나 이 희망은 그가 한국인임을 자각할 때, 이따금 무너져내리곤 한다. 캄보디아와 방글라데시, 중국, 베트남 등에서 비겁한 권력을 휘두르는 한국의 거대 자본 앞에서, 그가 했던 투쟁과 항쟁, 그리고 그의 이름과 정체성에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한국인으로서 한국 땅에서 싸웠던 그는 누구인가. 그리고 또 다른 땅에서 또 다른 이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이들은 누구인가. 책의 중간쯤에 배치된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라는 시에선 참아왔던 모든 감정이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렇게 치닫기까지의 과정은 지금껏 내가 느껴보지 못한 것이기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11쪽, 고귀한 유산
우리가 스스로 선택해 내릴 수 있는
생의 정거장은 의외로 많지 않다

21쪽, 시인과 죄수
부디 내가 더 많은 소환장과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의 주인이 되기를
어떤 위대한 시보다
더 넓고 큰 죄 짓기를 마다하지 않기를

60쪽, 국가, 결격사유서
그런데도 낡지 않는 것은 약속이다 /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살겠다는 약속 / 거기, 우리 모두 부조를 놓고 / 갈비탕 한그릇씩 비우고 왔다는 약속 / 언제 오느냐는 전화 어디냐는 전화 / 아이는 찾았느냐는 전화 그랬다는 전화 / 들어온다 한 지가 언제냐는 전화 / 말없이 종료 버튼을 누르는 전화

82쪽, 법외 인간들을 찬양함
희한한 세상, 모두 기를 쓰고
법 내로 들어가겠다는데
국가가 나서서 모두를 법외에서 살라 한다

150쪽, 아직은 말을 할 수 있는 나에게
말 없는 당신에게가 아니라 / 아직은 말을 할 수 있는 나에게 / 모든 생을 우리에게 주고 가버린 당신에게가 아니라 / 아직은 살날이 많은 저 아이들에게 / 우리는 무어라고 얘기해야 하나 / 샌들과 지갑을 머리맡에 놓고 / 무슨 좋은 꿈을 꾸는지 / 잊을 만하면 키득키득 웃으며 잠꼬대를 하는 / 아이 방을 몇번이나 드나들며 / 세월이 흘러도 양철북처럼 키가 자라지 않는 당신께 / 참 쓸 수 없는 시 한편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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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여성 시인선 :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13
나혜석.에밀리 디킨슨 외 지음, 공진호 엮고옮김 / 아티초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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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제목은 셰익스피어 『맥베스』에서 인용한 구절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첫 장부터 큰 활자로 쓰여있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오. 말하지 않는 큰 슬픔은 무거운 가슴에게 무너지라고 속삭인다오." 세계 여성 시인들의 시를 모아놓은 이 책 속의 누구도 "슬픔에게 언어를 주오"라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잘 맞아떨어지는 제목이 있을까. 슬픔에겐 언어가 특효약인 것을, 슬픔을 부르짖지 못하면 더 지독한 슬픔으로 침잠해져 가는 것을. 이들은 그렇게 슬픔을 언어로 외쳤다. 고통과 괴로움, 자유와 긍지, 때로는 사랑과 배신을 시詩로 적었다.


 또한, 그동안 '한국 시' 뒤켠에 있었던 국내 여성 시인들의 시가 많이 실려 있다는 것이 특히 눈여겨본 점이었다. 내가 한국의 시와 소설을 끊임없이 읽는 이유, 그리고 한국의 근현대 여성 시인들의 시를 보고 쉽사리 책장을 넘기지 못했던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한恨 때문이다. 슬픔이 담긴 언어가 건드리는 특별한 지점이 있다. 이 책에 등장한 시인 '김명순'의 시는 유독 그러하다.

 


조선아 내가 너를 영결(永訣)할 때

개천가에 고꾸라졌던지 들에 피 뽑았던지

죽은 시체에게라도 더 학대해다오.

그래도 부족하거든

이다음에 나 같은 사람이 나더라도

할 수만 있는 대로 또 학대해 보아라.

그러면 서로 미워하는 우리는 영영 작별된다.

이 사나운 곳아 사나운 곳아.

- <유언> 김명순


 '탄실'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근대 최초의 여성 작가 '김명순'의 시를 읊으면 깊은 슬픔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의 삶을 알고 나면 더욱 애처롭다. 기생의 딸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나쁜 피'라는 이름이 따라다녔고, 성폭력을 당해도 그가 방종한 탓이라고 했다. 당시 놀라운 수준이었던 그의 문학보다는 사생활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함께 글을 쓰던 당대 문인들 또한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한국 문학계에서 떠밀린 그는 죽음조차도 외로웠다. 오죽하면 이렇게 외쳤을까.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치 않으며 자유로운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

 김명순의 시를 포함한,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 속의 모든 시는 각기 다른 측면으로 가슴을 울렸고, 오래된 역사와 통념에 가려 남성들과 동등하게 주목받지 못했던 여성 시인들의 글이라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올랐다. 사회와 통념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뒤로 밀려나 있었던 이들의 시를 모아 여성들의 연대를 희망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고 느껴졌다. 라틴 아메리카의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미스트랄'이 했던, "저 여자의 내면에 있는 불은 어떤 것이기에 그녀는 그슬리지도, 연소되지도 않는 걸까?" ('예술' 130쪽) 라는 말처럼, 여성 시인들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타오르고 있는 불빛은 뜨겁고 무엇보다 환하게 (언어로) 피어오른 것 같았다. 이들 각자의 시를 더욱 찾아볼 예정이다. 누구보다도 강하게 빛났던 내면의 불씨들이, 누군가가 읽어줌으로써 다시 활활 피어오르기를 고대한다.


 

 

 

73쪽 <녹음> 백국희
소녀의 부끄러움은 오직 붉고 / 그 시절의 꿈만이 가물거린다 //
뻗어가는 찰나는 / 한 점으로 과거와 미래를 이어 . . . //
연홍의 로맨티시즘을 / 초록빛의 현실이 앗았고나


79쪽 <사포의 노래> 크리스티나 로제티
새벽에 한숨짓고, 또 한숨짓네,
찌푸린 하루가 지나갈 때.
저녁에 한숨짓고, 또
한숨짓네, 밤이 잠을 부를 때.
아, 이렇게 슬퍼하고 한숨짓느니, 나 죽어
꿈 없는 죽음의 잠을 자며 날 위해
우는 사람이 없음을 모르는 편이 훨씬 나으리.

110쪽, <‘강이 붉다‘ 곡에 맞춰> 치우 찐
우리는 버릴 것이다,
보석으로 장식된 옷과 기형의 발을.
그리고 언젠가, 하늘 아래 모든 이는
꽃밭의 꽃처럼 피어나는,
훌륭하고 고귀한 아이를 낳는,
아름답고 자유로운 여성을 볼 것이다.

147쪽, <이혼 고백장 - 청구 씨에게> 나혜석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운명이 어찌될지 모릅니다. 속 마디를 지은 운명이 있습니다. 끊을 수 없는 운명의 철쇄이외다. 그러나 너무 비참한 운명은 왕왕 약한 사람으로 하여금 반역케 합니다. 나는 거의 재기할 기분이 없을 만치 때리고 욕하고 저주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필경은 같은 운명의 줄에 얽히어 없어질지라도 필사의 쟁투에 끌리고 애태우고 괴로워하면서 재기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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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보네이션 - 시민X안희정, 경험한 적 없는 나라
안희정 지음 / 스리체어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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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처음 책장을 열고, 이 책을 다 읽은 지는 좀 되었는데 이제야 글을 남긴다. 어려운 책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치 이야기를 이렇게 편안하고 쉽게 받아들인 건 오랜만일 정도였다. 또한, 안희정 지사에 대한 호감도 있었기 때문에 술술 읽어내렸는데, 왠지 모르게 우물쭈물한 감이 있었다. 어지러운 시국이 계속되었고, 민주주의는 추락했으며, 국민의 목소리가 여느 때보다 커졌다. 이 책에서 말하는, 안희정 지사가 꿈꾸는 민주주의는 분명 좋은 민주주의지만 지금의 시점에서 너무 멀리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착잡했다.

 올해 상반기에 읽었던 『바이오그래피 매거진 ISSUE 8』에서 안희정 지사의 삶과 정치,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면, 『콜라보네이션』에서는 보다 더 집중적으로 그의 정치 목표와 기록들을 전한다. 그가 운동권 학생, 국회의원 비서, 노무현 대통령의 파트너, 지금의 충남 도지사까지의 어려운 시간을 거쳐오면서 확립한 '더 좋은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상세히 이야기한다. 그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를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의 제목인  '콜라보네이션 Collabonation'이다. 콜라보네이션은 협력과 국가의 합성어로 국민이 참여해 이끄는 더 좋은 민주주의 사회를 의미하는데, 이 당연한 이야기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 이상하다 느껴질 때쯤, 지금의 현실을 깨닫는다. 국민은 국가의 원동력이고, 헌법에까지 국민주권이 명시되어 있는데, 이는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었다. 안희정 지사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17쪽)"


 시민과 국가, 정부와 관료, 복지, 환경, 외교에 대한 안희정의 생각들을 아울러 다루는 이 책은,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그의 '대선 출사표'와도 같다. 현재 대한민국의 문제를 비판하고, 자신만의 소신으로 해결책을 말하는 안희정의 모습은 자신감 있고 확고하다. 그러나 단지 그 해결책들이 신뢰 가능할지라도, "이루어질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가 추구하는 민주주의로 향하는 길은 세상을 크게 변혁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이런 엄청난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냐고. 그때마다 나는 답한다. 똑똑한 지도자 혼자서 끌고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엄두가 안 나는 것이다. 국민과 시대는 이미 준비되어 있다. (…) 국민과 함께라면 못할 것이 없다." (350쪽)


 이 책의 표지에는 안희정의 이름만 쓰여있는 것이 아니다. 지은이 이름이 와야 할 곳에는 시민이라는 단어가 함께 쓰여 있다. (시민 X 안희정)

 또한 책 속에는 그가 틈틈이 남긴 (『콜라보네이션』 의 내용과 맞물리는) 메모들이 꽤 많이 수록되어 있다. 결코, 허투루 나온 이야기들이 아닌, 직접 생각하고 구상한 내용이라는 진정성을 보여주기에 이 책에 나온 그의 계획들에 동참하고 싶어진다. 시민에 대한 애정과 그가 꿈꾸는 세상을 일단은 믿어보고 싶다.


 

50쪽,
제도와 지도자의 능력이 정치 수준을 결정한다. 이 믿음으로 올라와야 한다. 어떤 경우든 대중의 의식과 민도를 탓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자로서 어떻게 제도를 설계할 것이냐, 하는 관점에 서 있어야 한다. 나는 지방 자치야말로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넘어야 할 다음 단계임을 믿는다.

73쪽,
많은 정치인이 선거 때마다 ‘내가 해 줄게‘라고 얘기하고, 공약과 표가 교환되면서 정부 조직에 부담을 주고 있다. 다리 놔 줄게, 복지 정책 해 줄게, 그 ‘해 줄게‘라는 말은 국가와 주권자를 주인과 손님으로 나누는 단어다. 정부가 내 것이라면 마치 선물을 받듯 공약을 받을 일이 아니다. 재원이 어디인지 따져 묻고 국가 재정의 효율적 지출을 고민해야 한다. ‘정부는 민의 것이다‘라는 생각을 확고히 다지기 위한 노력이 정부 혁신을 향한 나의 첫 번째 출발점이다.

118쪽,
우리 사회가 나라는 존재와 이 경이로운 세상에 지적 호기심을 가지도록 자극해 본 적이 있을까. 모든 자극을 봉쇄하고 ‘무조건 외워서 풀어‘ 수준에 머물러 있지는 않을까.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얻은 열등감과 상처 입은 자존심 외에 나답게 내 인생을 살아야지, 하는 긍지와 자부심을 일깨워 준 일이 있을까. 이런 상태로는 활력이 생기지 않는다.

295쪽,
국가 지도자는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국가 정책이 가져올 고통과 희생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정책 목표가 거룩하고 고상하기 때문에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 짓밟히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사실상 반민주적인 리더십이다.
거대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서 국민을 동원하던 시대는 끝났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전통적인 지지 기반의 정치 성향에 기초해서 5천만 국민의 실질적 이익이 무엇이냐는 토론을 방해하고 있다. 더 나은 길을 못 보도록 눈을 가리고 있다.

298쪽,
정치 지도자의 유일한 목표는 5천만 국민의 안녕과 시민이 땀 흘려 일구어 놓은 소중한 재산을 지키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첩첩이 다가오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부터 세계적인 경제 위기, 저출산, 고령화, 양극화, 민주주의의 위기까지 어느 하나 만만한 문제가 없다.
독립을 쟁취했던 선열처럼,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루어냈던 앞선 세대처럼 우리도 주어진 시대적 과제를 풀어내야 한다. 진보나 보수의 어떤 이데올로기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수호하는 목표보다 중요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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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기완을 만났다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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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엔 그냥 문장 한 줄이었다. 한 시사 주간지에 L이 고백했다고 쓰인. 그것이 그녀를 브뤼쎌로 이끌었다.

  "브뤼쎌에 갈지도 모르겠어요. (…) 거기, 만나야 할 사람이 있을 것 같아요.(13쪽)."  확고한 결심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끌려들어 간다는 어투도 아닌, 어딘지 모르게 애매한 말로 그녀는 말했다. 그리곤 단지 마음속에서만 '그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결심했다.

 

 이니셜 L, 무국적자, 난민, 불법체류자, 탈북자, 이방인 혹은 외톨이…… 그것이 '로기완'이라는 사내에게 붙은 이름들이었다. 생존을 위해 북한 국경을 넘고, 어머니까지 잃어 그 목숨값을 들고 벨기에라는 생소한 나라에 밀입국했다. 자신의 존재도, 길거리의 풍경들도 확연히 다른 그곳을 거닐었다. 떠돌고 떠돌다가 어디론가 흘러갔다.

 정체 모를 연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자에겐 과하도록 진한 감정이었다. 그녀에게 특히나 연민이란 별것 아닌 감정이었기에 이상했다. 그녀는 형편이 안 좋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찍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고통을 글로 전달하는 프로그램의 메인 작가였고, 연민은 습관처럼 흘러가는 감정이었다. 그런 그녀가, 로기완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프로그램에서 만나 남다른 인연을 맺은 '윤주'라는 소녀를 생각하며, 옛 연인과의 기억을 떠올리며, 로기완의 흔적을 밟기 위해 찾아간 곳에서 또 하나의 외로운 사람을 만나기도 하면서. 그녀는 어느새 L이 걷던 그 길을 걷고 있었다. 그 길을 걸으면서 L을 기억했다. 브뤼쎌에 와서 첫 끼를 먹던, 자신이 살고 있던 곳과는 확연히 다른 사람들의 모습과 시선들을 보던, 몸살을 앓고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에게 저항하던, 울음 짓던, 처음으로 미소를 보이던 L을. 그를 의식하다 보니 어느새 자신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나와 타인의 인생 반경은 똑같을 수가 없기에, 그를 이해하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힘내"라는 말은 때로는 공감한다는 말보다 '너의 말을 잘 들었지만 해줄 말이 없어 미안해'라는 의미로도 쓰이기도 한다. 아파하는 타인의 모든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진짜 마음을 알지 못한다. 이해하지 못하니 쉽사리 연민하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의 인생으로 들어가 어떻게든 그를 이해하고 연민하고자 하는 노력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것은 『로기완을 만났다』 라는 이야기처럼 누군가의 인생을 추적하는 일일지도, 누군가가 남긴 일을 이어가는 일일지도, 아니면 그냥 깊은 대화를 하거나,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모습으로도 이야기될 수 있다. 위태롭고 유약하며 비틀거리는  『로기완을 만났다』 속의 사람들을 보고 연민을 느끼고, 어느새 주인공이 로기완을 보고 느꼈던 감정을 따라 하고 있는 내 모습도 아마도 그런 일의 연장선이 아닐까. 타인의 생生을 파고들기로 결심하는 것과 수많은 삶을 담은 문학을 읽는 것은 그 성격이 닮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한 정을 품고 있기에 나는 여전히 책을 읽는다.

 

 

 

13쪽,

고개를 들었다. 내 시선은 그의 피로하고 괴로운 듯한 얼굴을 벗어나 조금은 어두침침한 편집실 전체로 나아갔고, 이내 그 안에 깃들어 있던 우리의 친밀했던 숨소리와 목소리까지 담아냈다. 순간, 모든 것을 화면처럼 남게 하는 인간의 기억 구조가 싫어졌다. 그래서 잊고 싶지 않은 것도 잊고 싶은 것과 함께 드러날 수밖에 없는, 볼륨을 줄여놓아도 고스란히 소리까지 재생되고 마는 그 체계적인 기억의 구조가.

57쪽,

박이 빌려준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슈트케이스를 현관 앞에 세워두고는 그대로 거실 창가에 놓인 책상 앞에 앉는다. 가방에서 로의 일기를 꺼내 이번만큼은 행간의 의미,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여백까지 꿰뚫는 독서를 해보겠다고 다짐한다. 섣불리 연민하지 않기 위하여, 텍스트 외부에서 서성이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내부로 스며들어가 스스로에 대한 가혹한 고통과 뒤섞인 진짜 연민이란 감정을 느껴보기 위해서.

91쪽,

로는 조금 걷다가 멈춰섰고 다시 걷다가 주저앉았다. 수없이 불운을 짐작해온 자의 어깨는 끊임없이 나를 슬프게 했다. 그러나 그 슬픔은 가능성으로만 존재하던 가상의 슬픔이었기에 마음의 밑바닥까지 닿지는 않았었다. 그 짐작이 현실이 되었을 때 좌절할 수밖에 없는 사람의 뒷모습은 어느새 구체적인 슬픔으로 바뀌어 내 가슴에 얹어진다. 힘겹게 몸을 일으킨 로가 다급하게 어디론가 휘적휘적 걸어가고 있다.







113쪽,

파이프오르간 연주가 끝날 때까지 상상 속 로의 눈물은 닿을 듯 닿지 않는다. 너와 내가 타인인 이상 현재의 사간과 느낌을 오해와 오차 없이 나눠가질 수는 없다는 불변의 진리는 자주 나를 괴롭혔지만 가끔은 위안도 되었다. 나의 한계에 대해서 적어도 나만은 침묵할 자격이 있다는 믿음은 그러나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3년 전, 내가 앉아 있는 바로 이 자리에서 어깨를 잔뜩 옹송그린 모습으로 온몸을 떨며 오열했을 로의 모습을 상상의 영역에 남겨둔 채, 나는 끝내 젖지 않은 내 메마른 얼굴을 한 손으로 거칠게 쓸어내린다.

166쪽,

존재 자체가 불법인 사람에게 미래는 선택할 수 있는 패가 아니다. 선택하지 않았는데도 선택되어버린 길을 가야 한다는 단순한 의무만이 있을 뿐이다. 매순간 불안해하면서, 사소한 기쁨은 포기하기도 하면서, 절대적으로 안전하지는 않으나 절대적으로 위험한 길보다는 무언가 하나라도 더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을 가고, 걷고, 결국엔 살아남아야 한다는 빈약하지만 회피할 수 없는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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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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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82년생 김지영도 아닌, 그보다 더 나은(게 맞는지 줄곧 의심하지만) 시대에 태어난 '여자'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넘어갔던 일들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일들을 회상했다.


 ​우리 엄마는 기가 막히는 시집살이를 했다.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고 했다. 이 기가 막힌 시집살이는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분가를 하고, 늦둥이 아들을 낳자 놀랍게도 완화되었다. 가부장적인 제도에 익숙했던 우리 가족의 남자들은 엄마의 일들을 방관했다.

 내가 초등학생 때는 여자아이들의 목을 조르는 장난을 하는 남자아이가 있었고, 어떤 수업 시간에는 50대 남자 선생님이 얇은 막대기를 가지고 다니면서 여학생들의 가슴 속으로 집어넣곤 했다. 그것을 넣어서 마음을 알아본다는 황당무계한 말을 지껄였다. 성희롱의 범주에 들어간다는 사실도 몰랐던 아이들은 그를 학교에 찌르지 않았다.

 대학생이 되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술 취한 할아버지가 며칠에 걸쳐 계산대에 와서 말을 걸어 경찰에 신고했더니, 찾아온 경찰은 "그냥 이야기를 받아주면 되잖아"라고 이야기했다. 손을 덜덜 떨며 전화를 걸었던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민망해졌다.

 그 밖에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구구절절 말할 필요 없이 한마디로 이야기하고 싶다. "나도 겪고, 보았다"고.

 

 『82년생 김지영』은 대한민국 사회의 여성 차별로 인해 미쳐버린 여자의 이야기를 르포 형식으로 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부터, '맘충'이라는 이야기를 듣기까지의 결혼 생활까지, '김지영'이라는 여자가 겪은 모든 이야기를 순서대로 해나간다. 그러다 보니 대한민국 여자들이 느낄 수 있는 차별이 모두 모였다. 믿을 수 없고, 소름 끼치고, 화나고 어이없는 일들의 연속이어서, 진짜 이 모든 것들을 겪은 사람이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책을 끝까지 읽으며 내가 모르고 당했던 차별의 장면들을 기억해내면서, 이 책의 목적은 우리나라의 여자들 모두가 '김지영' 씨 같은 우울한 삶을 살고 있다고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김지영 씨가 겪었던 수많은 차별의 일부, 혹은 단 한 가지라도 겪어보거나 목격한 사람들에게 이 부조리한 세상을 인지하게 해주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80년대, 산아 제한정책이 펼쳐지고 여아 낙태가 빈번했던 시대. 소설 속 주인공의 일부이고 전체였던 '김지영 씨들'은 많이도 울었을 것이고, 그나마 페미니즘이란 것이 조금씩 대두하기 시작한 지금도, 여전히 울고 있을 것이다. 소설의 끝, 화자이자 남자인 정신과 전문의는 김지영 씨의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하는 세상이 있다"고. 그러나 뒤이어 그는 자신의 병원에 있는 여직원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을 내뱉는다. 결국, 자신과 관계없는 다른 여자들에게는 은연중에 폭력적인 시선을 보이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변화는 너무나 빠르고, 법과 제도가 바뀌어도 사람들의 가치관은 느린 걸음이다. 소설 속에서와, 현실에서, 이 차별을 인지하고 바로 잡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지만, 그것에만 희망을 걸기에는 이 사회가 많이 부족한 듯한 느낌이다. 여성을 바라보는 각자의 시선들이 조금 더 부드러워지기를 바란다.

 


 


25쪽,

할머니의 억양과 눈빛, 고개의 각도와 어깨의 높이, 내쉬고 들이쉬는 숨까지 모두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말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최대한 표현하자면, ‘감히‘ 귀한 내 손자 것에 욕심을 내? 하는 느낌이었다. 남동생과 남동생의 몫은 소중하고 귀해서 아무나 함부로 손대서는 안 되고, 김지영 씨는 그 ‘아무‘보다도 못한 존재인 듯했다. 언니도 비슷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68쪽,

어머니가 여자에게 연락해 택시비라도, 작은 선물이라도, 안 된다면 커피 한잔과 귤 한 봉지라도 전하고 싶다고 했지만 여자는 끝까지 거절했다. 김지영 씨가 직접 인사해야겠다 싶어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여자는 다행이라며 대뜸 학생 잘못이 아니에요, 했다. 세상에는 이상한 남자가 너무 많고, 자신도 많이 겪었다고, 이상한 그들이 문제지 학생은 잘못한 게 없다는 여자의 말을 듣는데 김지영 씨는 갑자기 눈물이 났다. 꺽꺽 울음을 삼키느라 아무 대답도 못하는 김지영 씨에게 전화기 너머의 여자가 덧붙였다.

"근데, 세상에는 좋은 남자가 더 많아요."

(…) 여자가 그렇게 말해 주지 않았다면 아마도 오랫동안 그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132쪽,

"아직은 아빠 성을 따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긴 하지. 엄마 성을 따랐다고 하면 무슨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겠지. 설명하고 정정하고 확인해야 할 일도 많이 생기겠지."

김지영 씨의 말에 정대현 씨는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손으로 ‘아니요‘ 칸에 표시를 하는 김지영 씨의 마음이 왠지 헛헛했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마음가짐이 달라진다는 정대현 씨의 말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법이나 제도가 가치관을 바꾸는 것일까, 가치관이 법과 제도를 견인하는 것일까.

​165쪽,

"그 커피 1500원이었어. 그 사람들도 같은 커피 마셨으니까 얼만지 알았을 거야. 오빠, 나 1500원짜리 커피 한잔 마실 자격도 없어? 아니, 1500원 아니라 1500만 원이라도 그래. 내 남편이 번 돈으로 내가 뭘 사든 그건 우리 가족 일이잖아. 내가 오빠 돈을 훔친 것도 아니잖아. 죽을 만큼 아프면서 아이를 낳았고, 내 생활도, 일도, 꿈도, 내 인생, 나 자신을 전부 포기하고 아이를 키웠어. 그랬더니 벌레가 됐어. 난 이제 어떻게 해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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