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일기
이승우 지음 / 창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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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년 전 우연히 그의 강연회를 참석하게 되었을 때, 나는 이승우 작가를 이렇게까지 좋아하게 될 줄 몰랐다. 그때는 고작 그의 책 한 권만 읽은 게 다였고, 그의 신작 장편 소설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에 나는 대학생 기자단의 일원으로 참석했을 뿐이었다. 이를테면 어떤 목적 때문에 그를 처음으로 만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자리에서 아주 놀라운 사실을 경험했다. 작가의 이름을 건 강연회에 모인 독자들은 광적일 정도로 '이승우' 문학에 취한 것 같았다. 그의 수없이 많은 작품을 나열하고, 작품에 나온 일부 문장을 읊는 독자들에겐 극진한 존경과 사랑이 느껴졌다. 아주 열띤 광경이었다. 그 시기에 갔던 강연회 중에서 독자들이 동질감과 작가에 대한 애정으로 똘똘 뭉친 모습이 제일 돋보였다. 지금에 와서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런 마니아층에 끼고 싶었다. 나도 그의 문학에 빠져 보고 싶었다.

 ​그때의 내 생각은 누군가를 사랑하기도 전에 사랑하게 될 거라고 선포하는 어처구니없는 말과도 같았다. 그런데, 웃기게도 나는 자연스럽게 그의 문학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한 권을 읽을 때마다 만족감이 충만하게 채워졌다. 그의 문학은 '당연히', 그리고 '무조건'이라는 단어가 언제든 붙었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 한 편의 소설은 그 소설이 탄생하는 순간까지의 그 작가의 삶의 총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결국, 소설가에게 소설이란 '다른 방식으로 쓰는' 일기장과도 같다고 표현한 것인데 이승우의 소설들은 더 비밀스럽게 들어가는 느낌이라 말할 수 있다. 가장 밝히고 싶지 않은, 가장 숨기고 싶은 내밀한 마음들, 이를테면 마음의 짐, 부끄러움, 죄책감, 죄의식과 같은 것들을 아주 샅샅이 긁어내는 것이다. 『오래된 일기』라는 책은 이러한 작가의 특징을 여실히 보여주는 소설들을 담았다. 그래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오래전에 땅속에 깊이 파묻어두었던(33쪽)" 죄의식 같은 것들이 어떤 예기치 못한 일 때문에 분출되고 마는 상황들을 그렸다. 아마도 누구에게나 익숙하지만, 쉽사리 꺼낼 수는 없었던 그런 일들을 일기장 속에 풀어놓은 듯이 말이다. 이는 <오래된 일기>와 <무슨 일이든, 아무 일도>, <실종사례>와 같은 작품에서 강하게 드러난다.


 그러나 눈여겨볼 점은 작가 죄의식의 정체가 조금 특이하다는 점이다. 때로는 자신도 이해할 수 없고, 타인도 의도하지 않은 죄의식이 마음 깊은 곳에 깃든다. "끼어든 것들이 삶을 이룬다. 아니, 애초에 삶이란 게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18쪽)"라는 말처럼, 어느 순간 뜨거운 기운을 감지할 때, 그것에 대응하는 방식들이 이 소설에 아주 다양하게 펼쳐진다. 그리고 <정남진행>이라는 제목의 연작소설 두 편은 작가가 중요한 소재로 내세우는 '죄의식'과 같은 것들을 궁극적으로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용서하는지에 대하여 풀어내기도 했다.


 좋은 문장을 음미하고자 하는 욕구와 이야기적인 재미 (놀라움에 기반을 둔)을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이승우 소설의 특징은 『오래된 일기』 속에도 여전했다. 또한,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는, 이야기 중간중간 '쓰는 행위'에 대한 작가의 깊은 고민이 드러나 있는 ('오래된 일기', '전기수 이야기', '방') 부분들을 포착하는 것이었다. 작가에게 애정이 깊은 독자로서 다락방 깊은 곳에 숨겨놓은 일기장을 꺼내보는 느낌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던 독서였다.

 


 

29쪽, 오래된 일기

그는 언제나 내 문장의 첫번째 독자였다. 그 독자는 대개 표정으로 말했다. 표정의 변화가 또렷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의 의중을 헤아리기 위해 온 신경을 다 기울여야 했다. 나는 미세한 표정의 변화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고, 마침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다. 어떤 문장은 지우고 어떤 문장은 비틀었다. 그러니까 원하는 대로 한 것은, 사실은 그였다. 내 문장은 자주 그가 원하는 대로 씌어졌다. 독자는 사실상의 작가였다.

​72쪽, 타인의 집

그는 종잡을 수 없는 기분에 빠져들었는데, 그 순간 자기가 걸치고 있는, ‘보석싸우나‘라는 글자가 박힌, 목둘레가 늘어나고 색깔이 누렇게 바랜 티셔츠에 눈길이 갔고, 울컥 치밀어오르는 뜨거운 기운을 참지 못하고 딸꾹질을 했다. 그의 감정상태가 상당히 정확하게 전화기 너머의 그녀에게 전달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157쪽, 실종 사례

여전히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심지어 악수를 할 때도 그랬다. 그나 나나 그것이 서로에 대한 예의이고 배려라고 간주했던 것 같다. 그가 쏟아지는 폭우 속으로 서두르지도 않고 걸어갈 때 나는 잠깐 내 양복 안주머니에 들어 있는 봉투를 떠올렸다. 그의 운동화가 저벅저벅 소리를 냈다. 아니, 그것은 빗물이 내는 소리였던가. 흠뻑 젖은 옷이 달라붙어 드러난 그의 몸은 앙상하고 왜소했다. 나는 쏟아지는 비가 그의 몸을 흐릿하게 지워 없앨 때까지 막연히 서서 바라보았다. 의외로 감정이 평평했다. 무대를 가리는 막처럼 검은 비가 세상을 닫았다. 비로소 그의 빚을 갚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178쪽, 방

나는 비로소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꺼내놓고 전원을 켰다. 이제 글을 쓴다! 글을 이제 쓴다! 선언문을 벽에 붙이는 기분으로 그 말을 몇번이나 했다. 그것은 나 자신을 향한 나의 주문이었다. 나는 이제 링에 올라가라고 종을 치고 있었다. 종소리는 머릿속에서 웅웅거리는데 몸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계속 링 바깥에 머물러 있었다. 역겹거나 친근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역겨우면서 친근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부터 방향제를 뿌리지 않은 까닭이다.


​203쪽, 정남진행(行)

아무리 훌륭한 산 사람도 훌륭하지 않은 죽은 사람에게 떳떳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어떻게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러니까 그 남자는 그냥 흐느껴야 하고, 나는 그냥 내버려두어야 한다. 내가 그의 넋두리 상대가 된 것은 공교로운 일이고, 그것조차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비록 시시하고 늘 삐걱거리는 연애였다 하더라도 그녀와의 1년 남짓한 인연을 감안하면 이 정도는 감당해야 한다고 나는 마음을 다잡아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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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친구
앙꼬 지음 / 창비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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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 책을 순간적으로 마음에 들어서 읽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온통 어두컴컴하고 썩 이쁘지 않은 그림체가 마음에 들어서일 수도 있고, 그와는 반대로 단순한 제목에 끌렸을 수도 있다. 뭐 이유는 언제나 그랬듯이 여러 가지다. 그러나 첫 장을 펼치자마자 "아, 괜히 덤벼들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갑자기 푹 주저앉았다.

 상상치 못한 리얼함을 마주할 땐, 온몸에 주눅이 든다. 책 속 현실에 압도당한다. 상상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만화'는 정도가 더 심하다.

 

앙꼬 작가는 자신이 "사회가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청소년기를 보내왔다고 전작에서 밝혀왔고, 그의 다른 책 『삼십 살』과 『열아홉』에서도 자전적 이야기를 솔직하고 위트있게 담아냈다고 한다. 그런데 '앙꼬의 열여섯'을 회상했으리라 짐작하는 『나쁜 친구』는 방금 언급한 두 권의 책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만화는 주인공 '진주'가 경험했던 청소년 시기의 비행을 회상하는 형식이다. 단순한 재미, 부모님에 대한 반항으로 시작된 그의 일탈은 멈추기가 쉽지 않았다. 술, 담배는 물론이고, 가출을 해서 단란주점으로 가서 아르바이트를 시도하기도 했다. '진주'는 뭐든지 능수능란한 친구 '정애'가 마음에 들었다. 모든게 신기하고, 스릴있고, 뭐든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스스로가 어딘지 동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은 들었다. 친구 '정애'의 집에는 매일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문신을 하고, 술을 마시고 화장을 했다. 이혼한 아빠는 폭력이 일상이었다. '진주'는 "언제나 우리 가족의 화목함과 부유함이 부끄러웠다." 나의 행동에 죽일듯 달려드는 아빠가 있었지만, 기도하고 매달리며 기다리는 언니와 엄마가 있었다. 따뜻한 집이 있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이 그땐 부끄러웠는데, 한줄기 희망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만화가가 되어 그럭저럭 벌어먹고 살게 된 '진주'가 우연히 어른이 된 '정애'를 마주치고 난 뒤, 그는 이 모든 경험을 회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돌아갈 곳이 있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잡아준 사람이 있어서 잔인한 세계를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그리고 실제로 상상을 하기도 한다. 단란주점의 언니가, 내가 아닌 '정애'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었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하고.

 

 "난 더이상 그곳에 속해있지 않으니… 재미있던 일은 모두 이야깃거리로 남았다. 그렇지 않은 것들은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고 난 즐거웠다고, 그렇게 살았기에 지금의 내가 된 것이라고 만족했다. 그래서 그날 내가 너를 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결코 만만찮은 스토리와 자전적 요소를 고려할 때, 작가는 이 만화 속에서 자신의 역량을 꽉꽉 녹여낸듯한 느낌이다. (어쩌면 자신이었을) 그들을 질책하거나 힐난하지 않고, 드러내놓고 반성하지 않고, 주저하며 핑계대지도 않으며, 그냥 그대로 조용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만화 한 컷에 담았다. 그가 이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와, 그가 '서른 살'이 되어 '앙꼬'라는 이름을 갖게 되기까지의 어려운 시간들을 담담하게 끌어나갔다.  그의 말하는 방식이 좋아, 어두운 내용에도 불구하고 집중하며 읽어내릴 수 있었다. 앙꼬 작가의 『열아홉』, ​『삼십 살』의 이야기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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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개들의 언덕 - 들개, 유기견, 떠돌이 개... 2년간의 관찰 기록 동물권리선언 시리즈 6
류커샹 지음, 남혜선 옮김 / 책공장더불어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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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도시에선 들개를 보기 힘들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들개들은 보통 교외나 산 근처, 재개발 지역과 길거리를 떠돈다. 그들이 원래부터 자연에서 오랫동안 생존하여 개체 수를 늘려간 것일까? 아니다. 아마도 일부(시골에서 풀어놓고 기르는 개들을 포함한)를 제외하고는 누군가의 반려견이었던 개들이 버려지고, 버려진 개들이 새끼를 낳아 늘어났을 것이다. 그나마 요즘에는 공공 유기견 보호소가 다수 생기고, 민간단체에서도 솔선수범하여 들개 혹은 유기견들을 재입양시키려 애쓰지만, 다수는 안락사 되고야 만다. 게다가 운이 좋지 않다면 개장수에게 팔려가 식용견이라는 이름으로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한다.

 20년 전 대만에서는 대규모 들개 포획 정책이 이루어졌다. '유기견 추격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몽둥이와 그물망 등을 동원하여 수많은 들개를 포획했다. 도시를 깨끗하게 하기 위함이었을까. 춥고 배고프고 잘 곳 없이 근근이 살아가는 들개들은 힘없이 사람들에게 잡혀 나갔다. 도시에는 누군가의 반려견들만 남았다. 내가 지금 사는 이곳처럼.

 

 저자인 '류커샹'은 2년여간 타이베이에서 사는 들개들을 관찰했고, 그들이 도시 정책으로 사라지기까지의 과정을 낱낱이 기록으로 남겼다. 날 때부터 이름도 없었던 개들은 저자에 의해 '동아, 감자, 삼겹이…' 등의 이름을 얻었다. 누군가가 키우다 버린 개들도 있었다. '단백질'과 '반쪽이'는 표정과 행동 자체에서 좌절이 느껴질 정도로 처절하게 버려진 것 같았다. 저자가 관찰한 12마리의 개들은 각자 나름대로 무리를 짓고 규칙을 지키며 위험한 길거리에서 살아간다. 그 과정에서 짝짓기하여 새끼들도 낳지만, 번번이 잃고 만다. 이미 닳고 닳은 길거리 생활로 가까스로 생존하는 데 익숙해졌지만, 길거리는 위험한 것 천지이기 때문이다. 최고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 사람들의 학대, 추위와 배고픔, 영양실조 등으로 인한 개들의 죽음, 그것을 목격하고 생존한 개들은 눈물을 흘린다. 때론 새끼의 피를 핥으며 슬퍼하는 어미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을 잠시 지은 뒤, 살아남기 위해 자리를 뜬다.


 이 책의 끝은 예상하다시피, 슬프다. 이미 사라진 개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12마리의 개 중 한 마리는 끝이 너무 처참하여 예외적으로 좋은 결말을 지어주었다는 저자의 말만 봐도, 들개들에게 처한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고 끔찍했는지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20년도 더 된, 다른 나라의 이야기는 우리와 전혀 관계없는 것이 아니다. 빠르게 개발되고 변화되는 우리나라에서 지향해야 할 점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원시시대, 그러니까 인간과 개가 아직 이렇게 밀접한 관게가 형성되지 않았을 때, 야생의 수캐가 먹이를 먹는 암캐를 지켜봤을까? 아니면 수캐가 먹이를 입에 물고 돌아가 암캐에게 주었을까? 잡화점 문 앞에서 기다린다는 사실은 이미 암캐가 안에서 뭔가 먹을 걸 얻어올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음을, 게다가 그 먹이가 어떤 사람 손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이미 '문명화'된 행위이며, 도시라는 공간에 사는 시민의 행위이다. 들개는 도시의 시민이다. 사람들이 이 문제를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있을까? 인간이 아닌 동물을 도시의 시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없을까?"


 개들은 도시의 시민일까? 개 뿐만 아니라 세상에 살아가는 동물을 도시의 시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얼마전 기가 막힌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등산객들이 산에 있는 도토리를 하도 주워가서 야생동물의 소중한 먹거리가 줄어들고 있단다. 먹이가 부족해진 동물들은 자연스럽게 산 아래로 내려오고, 동물을 본 사람들은 놀라서 그들을 포획할 것이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될 것이다. 자연은 인간들만의 것이 아니다. 이미 수많은 땅을 점령하고, 마음대로 바꾼 우리는 이제 동물 문제를 생각하고, 그들과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61쪽,

들개 중 흔히 말하는 `떠돌이 개`는 없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일정한 거주지 없이 사는 그런 `떠돌이 개` 말이다. 설사 있다고 해도 대부분 어떤 목적지로 향하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는 경우이다. 그런 경우 아마도 버려진 뒤 얼마 되지 않아 살 만한 곳을 찾아다니고 있는 개일 가능성이 크다. 그게 아니면 어떻게든 집에 찾아가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또 어쩌면 환경파괴로 더는 원래 살던 곳에서 살 수 없게 된 개일 수도 있다.



76쪽,

자신의 상태를 알기라도 했던 건지 마지막 숨을 몰아쉬기 전 흙구덩이 밖으로 나와 구덩이 옆 얼마 멀지 않은 곳에 몸을 가로뉘었다. 유동나무 잎이 아래로 쉼 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동물에게는 가족에게 폐 끼치지 않고 혼자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본능이라도 있는 것일까.

100쪽,

무화과와 청어는 아마도 버려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악의적으로 쫓겨난 것 같지도 않고. 심리적으로도 잘 적응하고 있는 듯 보인다. 악랄한 방식으로 버려진 개들, 이를테면 차 안에 있다가 주인에게 떠밀려 버려졌다거나 심하게 욕을 먹고 쫓겨났다거나 차 타고 멀리 가서 버려지는 바람에 기력이 다 빠질 때까지 떠나는 주인의 차를 죽어라 뒤쫓아 간 끝에 결국 버려진 개들은 심각할 정도의 좌절을 겪게 되고 자기 자신은 물론 사람에게, 심지어 앞으로의 삶 전체에 자신감을 잃게 된다. 버려진 뒤 아예 넋이 나가 버린 반쪽이와 단백질이 바로 이런 예이다.


126쪽,

들개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자. 그들은 절대 야생에서 오지 않았다. 인류가 사는 세상은 사실 그들의 세상이기도 하다. 야생의 형태로 살았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시에서 사람에게 버림받아 어쩔 수 없이 막다른 길에 이른 것이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동물의 도시 생존권을 인정하지 않은 채, 계속해서 그들을 죽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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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그래피 매거진 8.5 승효상 - 승효상 편 - 짓다
승효상.스리체어스 편집부 지음 / 스리체어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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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이 이번호를 기점으로 개편되었다. 판형은 작아졌고 띠지에 있었던 인물의 얼굴은 작아진 표지로 옮겨갔다. 종이의 재질, 그에 담긴 내용과 구성도 조금씩 달라졌다. 여덟 권의 매거진을 출간한 뒤, 독자들의 의견을 수용하여 여러 불편한 점들을 개선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작아진 판형은 아쉽고 (매거진을 읽는 색다른 느낌이 사라졌다), 단출하나 깔끔한 표지는 마음에 들고, 어디있는지 찾을 수 없었던 이 책의 부제가 책 뒷면에 새겨진 것은 좋았다. 그런데 이번호는 주인공의 요구사항 때문에 구성과 내용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다. 편집과 인터뷰어의 개입을 최대한 제한하였고, 디자인과 구성은 최소화했다. 출판사 측에서도 아쉬운 면이 많아 출간을 주저하다 8.5라는 숫자를 붙여 세상에 내보냈다고 한다.


 매거진을 다 읽을 때쯤 승효상 건축가의 저서인 『빈자의 미학』이 20주년 기념판으로 재출간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의 이름과 '빈자의 미학'은 동의어와 같다고 한다. 삶과 철학을 온전히 담은 저서가 재출간될 줄 알았다면, 매거진의 구성은 조금 달라졌을까? 조금 다른 각도로, 톡톡 튀는 형식으로 그의 삶을 바라보고 평할 수 있었다면 더 재밌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여러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담긴 내용을 무시할 순 없었다. 한 인물의 삶과 메시지를 아주 충실하게 담아냈고, 조금 더 가벼워진 형식 속에서 한 인물의 역사를 꼼꼼히 다뤘다. 그의 저서 『지문』과 『빈자의 미학』 일부가 책에 실려있기도 했는데 이는 짧은 구절이지만 건축가가 지닌 고집과 철학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에게 건축은 예술이 아니라 인문학이다. 건축가의 욕망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그 속을 걸을 사람들의 삶을 생각하고 그 속을 채울 모든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저는 건축가는 예술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건축가는 사회의 물음에 대답해 주는 사람이에요. 삶에 관한 사람들의 요구에 대응해주는 사람이에요. 그러니 땅에 따라 건축이 바뀔 수밖에 없죠. 그 땅의 조건에 맞춰서 하는 게 건축이에요. (…) 공간을 설계하는 일은 우리가 사는 방법을 설계하는 일과 마찬가지예요. 건축가는 남의 집을 짓는 이들이니 타인의 삶을 그만큼 잘 알아야 하죠. 그래야 남의 삶을 조직할 수 있으니까요. 결국 건축을 잘하려면 남이 어떻게 사는지 공부해야 합니다." (119-120쪽)

 

 

 

 

 건축가 승효상을 필두로 (이로재에서) 지어진 건축물들의 수는 상당했다. 이전에는 그의 이름조차 몰랐으니, 길을 걸으면서 스쳐간 건축물들도 여럿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건축 설계와 도시 계획은 다르지 않다는 일념 하에, 도시의 장소를 잇고 공간을 구성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파주 출판단지도 그가 구성하고 만들었단다. 현재는 퇴임하였지만 서울 총괄 건축가로도 일했다. 그는 "좋은 도시는 도시의 어느 곳에 떨어져도 일부만으로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도시"라는 발터 벤야민의 말을 인용하며 바른 건축과 바른 도시에 대해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서울의 건축적 지향점은 '메타시티'라 한다. "내적인 질의 함양을 위한 도시, 연대하는 도시, 공존하는 도시" (148쪽)를 추구한다.

 

 


​ 뒷페이지에 실려 있는 『빈자의 미학』을 읽으면서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빈곤하지만 아름다운 무대장치, 처절한 고독이 만들어낸 추사 김정희의 글씨체, 가난하지만 삶을 나누고 공존하는 서울의 달동네와 같은 영감이 모여 확고한 철학을 만들어냈다. 『빈자의 미학』에선 이러한 것들에 대해, 건축과 삶, 승효상이라는 인물에 대해 더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고,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은 그의 책을 접하기 전 기본이 되는 지식들을 접할 수 있다. 그에게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들에게도 매력을 주기에 충분하다. 늘 그랬듯이.

 


 "침묵의 벽. 비록 소박하고 하찮은 재료로 보잘 것 없이 서 있지만, 그 벽은 적어도, 본질의 문제를 안으며 중심을 상실하지 않는,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건축가들이 쌓은 벽이며 결단코 쉽게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시대 우리의 건축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 (191쪽, 『빈자의 미학』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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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가게
너대니얼 호손 외 지음, 최주언 옮김 / 몽실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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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엔 (내 기준에서) 꽤나 심각한 독서 슬럼프를 겪었다. 책을 잡고 있어도 제대로 읽히지 않고 글자만 그대로 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중단한 책도 여러 권이었다. 소파 팔걸이와 테이블에는 중간만 보고 놓아버린 책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아무리 취미라 하더라도 개인적으로는 큰 보람을 갖고 있는 독서 활동이라, 이대로 꾸역꾸역 읽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중단해버려야 하는지 혼자서 심각한 고민을 했다. 결국엔 9월은 '조금 느렸던 달'로 남겨두고 다음 달의 첫날, 활기차게 독서를 시작하기로 했다. 10월의 첫 책은 그래서 더더욱 중요했다. 조건은 이랬다. 첫 번째, 재밌어서 끝까지 읽어내릴 수 있는 책. 두 번째, 너무 무겁거나 가볍지 않은 책. 산뜻하게 읽힌다면 두말할 나위 없다는 것. 이에 눈에 딱 들어온 책은 『마술가게』였다.


 ​호기심을 자극하는 샛노란 표지의 이 책에는 총 여섯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굵직한 SF 작품을 남긴 '허버트 조지 웰스, 『지킬 박사와 하이드』를 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등 이름과 저서를 연결해 들으면 "아-" 하고 무릎을 칠만한 익숙한 작가들이다. 그러나 작품들은 아주 생소하다. 보통 유명한 고전 동화를 읽으면 어릴 때 자투리 글을 읽어본 것 같은, 아니면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묘한 기시감이 느껴질 때가 많은데,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개인적으로 처음 만나본 이야기여서 설레는 마음이었다.


 작품은 전체적으로 판타지 동화의 느낌이었다. 새롭고 신선하며, 알듯 모를듯한 기분이 좋았다. 책 속에 펼쳐진 예쁜 일러스트가 아니더라도 글 속의 환상적인 이미지를 눈앞에 그려낼 수도 있었다. 온갖 신기한 것들의 천국인 '마술가게', 내 앞에 나타난다면 어쩔 수 없이 손잡이를 당길 것만 같은 '초록문', 딱하디 딱한 '페더탑', 그리고 옥색 바다와 목소리 섬의 진기한 풍경……. 동화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름답고 감성을 자극하지만, ​그저 아름답기만 한 느낌이면 아쉬울지도 모른다. 그래서 각각의 작품은 미스터리하고 약간은 오싹한 기분까지 선사한다. 마지막까지 맘을 졸이게 하고, 그 마지막을 접했을 땐 비로소 한숨을 푹 내쉬게도 하는 스릴있는 이야기들이랄까. 특히나 재밌게 읽었던 <눈먼자들의 나라>는 인생의 중요한 선택에 발목을 잡을 '고정관념'에 대하여, 아주 강렬한 인상으로 전해주기도 한다. <초록문>은 어린 시절과 환상에 대한 진한 노스텔지어를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작가의 작품들이지만 비슷한 분위기로 묶여, 바쁜 일상 속에 동심과 환상의 세계에 푹 빠지게 해주는 책 『마술가게』. 그저 그렇고 뻔한 이야기거나 권선징악의 교훈만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상상과 여운을 맛볼 수 있었다. 특이하고 진한 여운을 주는 매력적인 동화들이었다.

 

 

 


65쪽, 마술가게

마술 점원이 "얏!"이라고 말하니 녀석도 "얏!"이라고 외쳤다. 하지만 나는 다른 것들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이곳이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기묘한지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었다. 말하자면 여기는 기묘함으로 점철된 곳이었다. 설치물에도, 천장에도, 바닥에도, 아무렇게나 놓인 의자에도 약간 기묘함이 묻어 있었다. 똑바로 쳐다보고 있지 않을 때면 삐딱하게 움직이면서 내 등 뒤로 조용히 자리뺏기놀이를 하는 것 같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천장돌림띠는 가면을 쓴 뱀 모양이었는데, 가면은 순전히 석고로 만들어졌다기에는 너무 표정이 생생했다.

79쪽, 초록문

어릴 적 기억이 계속 재생됐다. 월리스는 그 문을 보자마자 첫눈에 특이한 감정을, 이끌림을, 가서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다. 그리고 동시에 이 이끌림에 굴복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거나 잘못된 처사라는 확신이 분명히 들었다. 월리스는 기억이 요상한 마술을 부린 게 아닌 이상, 저 문이 닫혀 있지 않으며 마음만 먹으면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게 참으로 신기하다고 주장했다.

149쪽, 눈먼 자들의 나라

그녀는 시각이 가장 시적인 환상이라고 생각했고, 누녜스가 별과 산, 백색광을 켜 놓은 듯한 그녀의 사랑스러운 아름다움을 설명해 줄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탐닉하며 들었다. 이 말들을 믿지도 않고 완전히 이해하지도 못했지만 묘하게 기쁨을 느꼈고, 이런 모습을 보고 누녜스는 그녀가 완전히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183쪽, 얀 강가의 한가한 나날

존재하는 모든 신에게 바치네.

신은 무엇이든 들으시리.

키잡이가 기도하고, 고요가 흘렀다. 선원들은 잠을 청하려고 몸을 뉘였다. 고요함은 짙어졌다가 얀 강이 가볍게 뱃머리에 와 닿을 때만 살짝 깨졌다. 강에 사는 짐승이 이따금 기침을 할 때도 있었다. 고요함의 물결, 물결과 고요함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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