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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친구
앙꼬 지음 / 창비 / 2012년 8월
평점 :
내가 왜 이 책을 순간적으로 마음에 들어서 읽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온통 어두컴컴하고 썩 이쁘지 않은 그림체가 마음에 들어서일 수도 있고, 그와는 반대로 단순한 제목에 끌렸을 수도 있다. 뭐 이유는 언제나 그랬듯이 여러 가지다. 그러나 첫 장을 펼치자마자 "아, 괜히 덤벼들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이 갑자기 푹 주저앉았다.
상상치 못한 리얼함을 마주할 땐, 온몸에 주눅이 든다. 책 속 현실에 압도당한다. 상상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만화'는 정도가 더 심하다.
앙꼬 작가는 자신이 "사회가 기대하는 것과는 다른" 청소년기를 보내왔다고 전작에서 밝혀왔고, 그의 다른 책 『삼십 살』과 『열아홉』에서도 자전적 이야기를 솔직하고 위트있게 담아냈다고 한다. 그런데 '앙꼬의 열여섯'을 회상했으리라 짐작하는 『나쁜 친구』는 방금 언급한 두 권의 책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
만화는 주인공 '진주'가 경험했던 청소년 시기의 비행을 회상하는 형식이다. 단순한 재미, 부모님에 대한 반항으로 시작된 그의 일탈은 멈추기가 쉽지 않았다. 술, 담배는 물론이고, 가출을 해서 단란주점으로 가서 아르바이트를 시도하기도 했다. '진주'는 뭐든지 능수능란한 친구 '정애'가 마음에 들었다. 모든게 신기하고, 스릴있고, 뭐든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스스로가 어딘지 동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은 들었다. 친구 '정애'의 집에는 매일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문신을 하고, 술을 마시고 화장을 했다. 이혼한 아빠는 폭력이 일상이었다. '진주'는 "언제나 우리 가족의 화목함과 부유함이 부끄러웠다." 나의 행동에 죽일듯 달려드는 아빠가 있었지만, 기도하고 매달리며 기다리는 언니와 엄마가 있었다. 따뜻한 집이 있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들이 그땐 부끄러웠는데, 한줄기 희망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만화가가 되어 그럭저럭 벌어먹고 살게 된 '진주'가 우연히 어른이 된 '정애'를 마주치고 난 뒤, 그는 이 모든 경험을 회상했을 것이다. 그리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돌아갈 곳이 있어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잡아준 사람이 있어서 잔인한 세계를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그리고 실제로 상상을 하기도 한다. 단란주점의 언니가, 내가 아닌 '정애'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었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하고.
"난 더이상 그곳에 속해있지 않으니… 재미있던 일은 모두 이야깃거리로 남았다. 그렇지 않은 것들은 기억 속에서 지워버렸고 난 즐거웠다고, 그렇게 살았기에 지금의 내가 된 것이라고 만족했다. 그래서 그날 내가 너를 봤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결코 만만찮은 스토리와 자전적 요소를 고려할 때, 작가는 이 만화 속에서 자신의 역량을 꽉꽉 녹여낸듯한 느낌이다. (어쩌면 자신이었을) 그들을 질책하거나 힐난하지 않고, 드러내놓고 반성하지 않고, 주저하며 핑계대지도 않으며, 그냥 그대로 조용히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택했다. 그리고 만화 한 컷에 담았다. 그가 이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와, 그가 '서른 살'이 되어 '앙꼬'라는 이름을 갖게 되기까지의 어려운 시간들을 담담하게 끌어나갔다. 그의 말하는 방식이 좋아, 어두운 내용에도 불구하고 집중하며 읽어내릴 수 있었다. 앙꼬 작가의 『열아홉』, 『삼십 살』의 이야기도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