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황정은 (지은이) | 민음사 | 2010-06-25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남겨진 생각들  

 

 나는 이 소설에 어떤 말을 보태야 할까? 작가마저 그 무거운 뭉치들을 간결하게 풀어놓은 이 소설에, "소설이 나온 것이 그냥 고맙다"고 말하는 평론가님의 말에 뒤이어, 수많은 독자의 감탄 어린 글 다음으로, 어떤 말을 주절주절 달아야 할까? 황정은의 소설은 독특한 느낌, 모호한 느낌, 좋다는 느낌이 차례대로, 쉽사리 정리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까지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 모든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긴 버겁다. '나는 절대로 이런 문장들을, 생각 끄트머리조차 따라 할 수 없겠다'는 경외감이 섞인 자괴감과 더불어.

 

 

 곧 공원으로 바뀌기 위해 철거될 전자상가에 사는 그들에겐 그림자가 뻗어있다. 따라가면 안 돼, 조심해야 해, 되뇌곤 한다. 그림자는 때론 자라면서 일어설 기미를 보이기까지 한다. 아마도 그건 아슬아슬한 삶에 비틀거릴 때 나타날 듯한, 조금 따라가면 끌려갈 수밖에 없는 그런 무시무시한 것.

 두렵지만, 무서운 꿈을 꾸지만, 그들은 딸린 그림자를 뒤로 한 채,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애써 여기며 살아간다. 무정한 현실을 닮은 그림자, 그림자에 묻히지 않기 위해 다른 곳을 보려고 시도하며 담담하게 삶을 살아낸다.

 

 

 같은 상가에서 일하는 '무재'와 '은교', 그들에게 그림자를 없애버릴 시원한 그늘은 '사랑'이다. (단순히 '아름다운 연애소설'이라고 칭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림자의 세계를 파괴할 희망으로 존재하는 것이 이 소설의 '사랑'이기도 하다. '사랑'이라고 딱 잘라, 한 번도 얘기하지는 않지만 짧디짧은 대화의 흐름 속에서 분명히 느껴지는 '선량함'과 '진심'이 은연중에 '사랑'을 가리키고 있다. '무재'와 '은교', 그들은 서로를 의지한다. 일반적인 언어의 통념을 부숴버리는 이상한 말장난 - 이를테면 "가마" (38쪽) 같은 -, "네"라는 무심하고도 짧은 대답 뒤에 숨은 위로의 무게에 그림자의 두려움을 잠시 잊혀둔다. 무거운 어둠과 같은 삶 속, 그들의 대화는 작가의 말 속의 "여전히 난폭한 이 세계에 / 좋아할 수 있는 (것)들"에 공감할 수 있을 만큼의 따뜻함이다.

 '무재'와 '은교' 곁에 존재하는, 또 다른 사람들 - 여 씨 아저씨, 유곤 씨, 오무사 할아버지 - 의 이야기 또한 허투루 지나칠 수 없다. 작가는 세심하게, 또는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무척이나 '선량하게' 그들의 삶을 살포시 드러낸다. 말하자면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감각적인 건물이나 예쁜 골목에서, 수년 전 무너졌을 누군가의 슬픔을, 떠나지 못하고 땅속에 묻혀버린 그들의 마음을 작가는 '볼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그 손길은 거칠지 않고 조심스럽다. 조심스럽고 따뜻해서, '씨발'이 난무하던 『야만적인 앨리스씨』보다도 더욱 처연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이상한 것은, 어두운 잿빛의 그림자로 어두워진 삭막한 세계인데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위로가 된다는 것이다.

 문장 속의 품은 무게 만큼은 무겁지 않은 문장들로 채워진 탓일지도 모르지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함께 '걷고 있는' 그들의 모습 탓이다.

 겹치고 겹친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 조심하면서, 손을 잡고, 노래하면서…….

​은교 씨.

하고 무재 씨가 말했다.

노래할까요. 

 

 

 

Written by. 리니

 

 

나는 냉면을 좋아합니다.

그런가요.

또 무엇을 좋아하나요.

이것저것 좋아하는데요. (…)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 씨를요.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그렇게 되나요. (39쪽)

요즘도 이따금 일어서곤 하는데, 나는 그림자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저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생각하니까 견딜 만해서 말이야. 그게 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가끔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시간이 좀 지나고 보니 그게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맞는 것 같고 말이지. 그림자라는 건 일어서기도 하고 드러눕기도 하고, 그렇잖아? 물론 조금 아슬아슬하기는 하지. 아무것도 아니지만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게 되어 버리면 그때는 끝장이랄까. 끝 간 데 없이 끌려가고 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하여간에 말이지, 라면서 여 씨 아저씨는 서랍 속에서 드라이버를 꺼내 앰프 껍질에 꽂힌 나사를 돌리기 시작했다. (46쪽)

입이랄지, 검은 것 가운데 오목하게 들어간 조그만 구멍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가져와, 가져와, 라고 말하다가 이내 다른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 말은 더는 말이 아니고, 이상한 방식으로 발성되며 발성 자체가 목적인 듯한 미미, 라거나 가가, 하는 소리일 뿐이었습니다. 며칠 전에 버려진 상자 같은 건 벌써 며칠 전에 어딘가로 사라졌으므로 도무지 가져올 수는 없다고 이모가 빌고 내가 빌고 마침내 둘이 엎드려서 빌어도 용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나는 마루에서 어머니와 그녀의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림자는 이때쯤 검디검게 휘어져서 어머니의 몸을 빈틈없이 덮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그걸 모르거나 상관없다는 듯 그림자를 내버려 둔 채로 이따금 입을 벌려 미미, 하고 가가, 하며 그림자의 말을 따라갑니다. (70쪽)

가동에서 길을 잃고 헤맨 적이 있는 나는 그 자리에 공원이 조성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매우 넓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앉아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작았다. 작네요, 라고 멍하게 말하자 무재 씨가 빈 우유갑을 반으로 접으며 생각했던 것보다 좁아서, 놀랐다고 말했다.

여기에 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이야기잖아요.

다 어디로 갔을까요.

하며 잔디밭 너머를 바라보았다. (111쪽)

은교 씨, 나는 특별히 사후에 또 다른 세계가 이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고요, 사람이란 어느 조건을 가지고 어느 상황에서 살아가건, 어느 정도로 공허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인생에도 성질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본래 허망하니, 허망하다며 유난해질 것도 없지 않은가, 하면서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나는 물었다.

이를테면 뒷집에 홀로 사는 할머니가 종이 박스를 줍는 일로 먹고 산다는 것은 애초부터 자연스러운 일일까, 하고.

무재 씨가 말했다.

살다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사정인 걸까, 하고 말이에요. 너무 숱한 것일 뿐, 그게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은 일이었다고 하면, 본래 허망하다고 하는 것보다 더욱 허망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1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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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틸라 요제프 시선 : 일곱 번째 사람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3
아틸라 요제프 지음, 공진호 옮김, 심보선 서문 / 아티초크 / 201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고 나서

 

 책을 덮고 그 여운이 한동안 잊히지 않았다.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한 언어들의 나열, 그 속에 품은 고되지만 아름다운 감정들.

 

 '아틸라 요제프' 시선은 이전에 아티초크에서 출간되었던 '안나 드 노아이유' 시선과 마찬가지로 국내 최초로 우리 곁에 등장하게 되었는데, 그의 이력에서도 그가 내놓은 글에서도 참 고맙고도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틸라 요제프'는 한마디로 말해, 비운의 헝가리 시인이다. 32년이라는 짧은 생애, 가난한 노동자의 집안에서 비참한 현실과 싸우며 지낸 그는 9살 때 처음으로 자살 시도를 했다. 아버지가 떠나가고, 어머니는 병으로 사망했다. 그의 시는 신성모독이나 정치 선동이라는 이유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교사와 일용직 노동자까지, 수많은 직업을 가지며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그러나 그에게는 '시'가 있었다. 그에게 '시'는 살아있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수단이었을까.

 

 

찢어졌나보다 / 이 내 그물이 / 고치려 펼쳐 놓고 / 자세히 살펴보니

언 그물은 / 빛나는 하늘 (34쪽, 그물)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 은도끼가 물푸레나무의 / 잎들을 농락하더라도 / 객관적이고 낙천적으로

나의 심장이 허무의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 / 그 작은 것이 소리 없이 떨고 있는데 / 별들이 서서히 주변으로 몰려들어 / 가만히 구경한다 (69쪽, 희망이 없이)

 

 노동, 땀 흘림, 외로움과 괴로움, '일어나라'는 외침, 자본과 국가에 대한 반항으로 가득 찬 시들. 그 속의 황폐한 감정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시 속에는 그를 이겨내려는 안간힘이 느껴지는 듯하다. 그물은 찢어졌지만 빛나는 하늘 같다며 위안하는 시선, 반짝이는 것들을 보고 "나는 행복하다 (46쪽, 여름의 오후)"라고 말하는 그에게 '시'는 그 속의 것들을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유토피아였을 것이다. "죽여! 짓밟아! 갈겨!" 뒤에 오는 "요즘 세상 참 -" (48쪽, 서리)이라는 문장의 배치 또한 이상하게 마음을 간지럽힌다. 열차에 몸을 던져 자신의 삶을 스스로 끊어버렸던 그에게 삶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지만, 또 다른 세상 (시) 속에서는 "요즘 세상 참-" 하며 웃어넘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음울하고도 서글픈 장면들의 반복, 그러나 그 뒤에 오는 문장들이 있어 전해져오는 고통은 환기된다. 그리고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올라온다.

 

 

 이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지면 / 당신은 일곱 사람으로 묻히리니 - / 젖가슴에 기대어 젖을 물린 사람, / 빈 접시들을 내던지는 사람, / 가난한 사람들이 이기도록 도와주는 사람, / 몸이 부서지도록 일하는 사람, / 밤새도록 달을 바라보는 사람, 그러면 / 세상이 당신의 비석이 될 거예요 - / 당신 자신이 일곱 번째라면. (21쪽, 일곱 번째 사람)

 

그 계층 사람들은 / 친절하지 않았다 / 나는 하루걸러 한 끼 먹는데 / 위궤양은 매일 나를 좀먹는다. / 세상이 돌아가듯 / 나의 위는 휘돌고 / 내 안의 사랑은 연소한다. / 세상은 역겹고 / 전쟁은 토사물. / 우리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 음식이 아닌 비겁한 침묵. / 변화를 주기 위해 스스로를 걷어찬 나는 / 분노하기에 충분한 / 혼란으로 가득한 시대의 시인. (102쪽, 마지막 전투)

 

 어려운 시대다. 어떤 것도 만족스럽지 못한, 답답한 시대다. '아틸라 요제프'의 시대와 지금 우리의 시대가 완벽히 일치될 리는 만무하지만, 페이지를 넘기는 중간중간 강렬하게 치고 들어오는 시어들에 가슴이 턱턱 막히는 것을 보면 그리 좋지만은 않은 지금이다. 그러나 그 강렬한 시어들 속에서도 희망과 인간애가 빛난다는 것, 이 시집을 소중히 남길 수 있는 이유이다. 고통이 넘치지만,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어느새 잔잔히 흐르는 노동가처럼 마음이 울리는 데에 그 이유가 있다. "이 모든 것이 (언젠가는) 그대로 이루어질까"하는 의문을, 혹은 다짐을, 시인은 우리에게 돌린다. '일곱 번째 사람', 당신에게.

 

 

 

 

 

Written by. 리니

동유럽 문학/ 헝가리 시/ 노동, 민중 시/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3 

소장하고 있는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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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코의 발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 스토리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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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책을 읽고 나서

 

 일본소설과 친하지 않은 제가 이 작품에 대해 알게 된 건 '조경란' 작가의 『백화점』에서였습니다. 백화점 구두 매장 안에서, 여성 손님의 발에 구두를 신겨주고 있는 남성 판매원의 모습을 보고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후미코의 발』을 생각했다는 작가.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손님의 발의 극적인 굴곡의 하이힐을 신겨주는 판매원의 모습을 보고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발을 만지는 게 좋은가요? 물어보고 싶다. 싫어도 어쩔 수 없죠. 뭐. 이런 대답이 돌아올 것 같다. 그러나 만약 네, 난 여성의 발을 만지는 것을 좋아합니다, 라고 대답하면 뭐라고 말할까?" (84쪽)

 

 

 책 속에는 두 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탐미주의(耽美主義 : 유미주의라고도 부릅니다)의 거장이라 알려진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후미코의 발』, 그리고 일본의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한다는 '다야마 가타이'의 『소녀병』입니다. 먼저, 『후미코의 발』은 젊은 화가 지망생 '우노'가, 노인 '인쿄'와 그의 첩 '후미코'를 관찰하며 고백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서술 속에서, 제가 처음으로 만나보는 낯선 시선이 등장하지요. 화자인 '우노'가 '인쿄'의 집을 방문하게 되면서, '후미코'를 발견하는 순간 주체할 수 없이 그 여자 자체에 매료되고 맙니다. 그리고 그 여자의 모든 것들을 지나치게 집요한 시선으로 바라보지요. '후미코'의 실루엣, 정취, 눈, 코, 입, 속눈썹, 자세에서 나오는 그녀의 기분까지 샅샅이 훑어갑니다. 그렇게 그녀를 관찰하다 보니 재미있는 점을 발견하지요. 노인이자 남편인 '인쿄'의 시선 또한 자신과 비슷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 남자로 태어나 살기보다는, 이렇듯 아름다운 뒤꿈치가 되어 후미코의 발 뒤에 붙을 수 있다면 그쪽이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후미코의 발뒤꿈치에 밟히는 다다미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의 생명과 후미코의 발뒤꿈치 중 이 세상에서 어느 쪽이 더 존귀하냐고 묻는다면 저는 일언지하에 후자 쪽이 존귀하다고 대답할 겁니다. 후미코의 뒤꿈치를 위해서라면 저는 기꺼이 죽을 수 있습니다. (45쪽, 후미코의 발)

 

 

 그들의 '후미코'를 바라보는 감정은, 사랑보다는 끈질긴 숭배입니다. 정신학적 용어로 '페티쉬'(성적 페티시즘)이죠. 그녀의 발에 밟히며 죽고 싶다는 두 남자의 병폐를, '뿌리깊은 성정性情'을, 그 에로틱한 바라봄을 작가는 강한 인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여자의 몸 한 부분에, 성적으로 지배당하며 고백하며 서술하는 글이, 누군가를 발가벗기는 듯한 불쾌함까지 느끼게 할 정도인데, 왜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이 '악마주의'라고까지 불리는지 짐작할 만합니다. 무서운 점은 이 작품이 1919년에 쓰였다는 사실이지요.

 

 

 그다음에 등장하는 『소녀병 少女病』은 전의 이야기와 비슷한 듯 다릅니다. 전차 안에서 아름다운 소녀들을 감상하고 아름다운 신체시를 쓰는 '스기다'. 그의 탐미 대상은 '소녀'이며 『후미코의 발』과 마찬가지로 숭배의 시선을 보내지만, 속까지 훑어내는 그 시선과는 조금 다릅니다. 시각적으로 존재하는 아름다운 욕망의 대상인 '소녀'를 단지, 감상적으로만 그려내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속되고 너저분한 세상에 저렇게 고운 처녀가 있을까"하는 그의 독백에서도 드러나듯이, 작가는 혹독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그의 시선을 미화합니다. 그 시선 속에는 청춘에 대한 갈망, 나이듦에 대한 호젓함이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죠. 이런 주제와 관련해서, 자연스럽게 『은교』도 떠오르더군요.

 

 

 작가가 다른 이 작품을 2편만 묶은 것이 처음에는 의아했습니다. 두 작품에 비슷한 면모가 있긴 하더라도, 연관되는 다른 작품들과 묶어 조금 더 묵직한 울림을 주는 한 권의 책으로 만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하지만 읽어보니 두 작품만으로 시간을 보내기에 충분하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 여성의 아름다움을 탐하는 묘사와 여운은 무척이나 커서 두 작품 다 큰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탐닉, 비슷한 시선을 다루면서도 서로 다른 선상에서 충돌하지 않는 주제의식을 드러내고 있어 좋은 조합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Written by. 리니

일본 소설/ 단편 소설집/ 탐미주의, 자연주의 소설

소장하고 있는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여자는 그 빈집에 올라가려고 툇마루에 앉아 진흙으로 더러워진 오른발을 손수건으로 닦아내고 있었습니다. 상반신을 획 왼쪽으로 기울여 거의 쓰러질 듯 비스듬히 된 몸체를 가느다란 한 팔로 겨우 지탱하며, 왼발의 발톱 끝으로 살포시 땅을 밟으면서 오른쪽 다리를 `<자` 형태로 구부려 오른 손으로 그 발바닥을 닦고 있는 자세, 그 자세는 옛날 유명한 우키요에 화가가 여자의 매끄러운 몸매 변화에 얼마나 예민한 관찰을 했으며, 얼마만큼 깊은 흥미를 갖고 있었는가를 증명하기에 충분할 만큼 놀라울 정도로 교묘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제가 특히 감탄한 것은 여자의 유연하고 나긋나긋한 손발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구부러져 있는데, 그저 쓸데없이 구부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예민한 힘의 균형이 전신에 가늘게 퍼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30쪽, 후미코의 발)

이렇게 말씀드리면 제가 설명하려고 애쓰는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선생님께서는 대강 아셨겠지요? 아름다운 모습을 한 여인이 수양버들처럼 팔다리를 느슨히 풀고 멍청히 멈춰 서 있거나 흐트러져 잠든 모습도 정취가 있습니다만, 이 그림처럼 전신을 굽이굽이 완만하게 구부리며 채찍처럼 탄력성을 표현해야 할 곳을 그 특유의 아름다움을 손상시키지 않고 그린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거기에는 `유연함`과 동시에 `강직함`이 있으며, `긴장감` 속에 `섬세함`이 있으며, `움직임`의 이면에 `우약함`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소리를 쥐어짜며 목구멍이 찢어져라 쉴새없이 지저귀는 꾀꼬리의 필사적인 귀여움이 나타나 있습니다. (33쪽, 후미코의 발)

어쨌든 재미있지 않나? 스스로도 건전하다고 자처하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인정받던 사람이 지금 와서는 불건전도 이만저만이 아니니 말이야. 퇴폐의 표본으로 전락한 것은 본능을 업신여겼기 때문이야. 너희들은 내가 항시 본능 만능설에 사로잡혀 있다고 공격하지만, 인간의 본능은 무시할 수 없는 거라구. 본능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은 생존할 수 없어. (79쪽, 소녀병)

`서풍에 휘날리는 누런 먼지…… 외롭다. 외롭다. 왠지 오늘은 더욱 외롭고 괴롭다. 아무리 아름다운 소녀의 머리 향기가 그립다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사랑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또 사랑 할 수 있다 한들 아름다운 새를 유혹할 수 있는 날개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87쪽, 소녀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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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드 노아이유 시선 : 사랑 사랑 뱅뱅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2
안나 드 노아이유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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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랑 사랑 뱅뱅』 안나 드 노아이유 / 아티초크

한낮에 작렬하는 태양 같은 '사랑의 시'​

 

 

 

 

  책을 읽고 나서

 

 '안나 드 노아이유'라는 이름을 책에선가 어디선가 한 번쯤은 본 것 같은데 (아니면 아이유라는 이름의 착각일 수도), 현재 인터넷 서점을 기준으로 출간된 책은 '아티초크'의 시선 『사랑 사랑 뱅뱅』이 전부다. 그러나 내가 만약 이 빈티지 시선을 번호별로 모으지 않았더라면, 이 책은 사지 않았을 것이다. 왠지 모를 여성적인 향기를 폴폴 풍기고 있는 표지와 '사랑의 시'라는 카피, 그리고 첫 느낌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리즈를 모으고 있던 덕분에 '다행히' 읽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했던 큰 착각을 바꿔놓을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사랑의 시'가 단순히 여성적이거나 꽃처럼 아름답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 신파적인 느낌일 거로 생각했던 나의 착각은, 아마도 작가인 '노아이유' 백작 부인에 대한 편견이었을 것이다. 여성이라면 이런 시를 썼겠더라는 은연중의 암시, 더군다나 나는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편견은 작가인 '노아이유'가 가장 싫어했던 것이겠지. 그는 수많은 사랑의 시를 남기면서 베스트셀러가 된 <무수한 가슴>으로 수상자로 지명이 되었으나, 전원 남성으로 이루어진 심사위원으로 인해 수상 탈락을 하게 된 아픈 기억이 있다. 그리고 그는 '페미나 상'을 창설했다. 12인의 여성작가로 구성된 프랑스의 문학상, 이름은 Femina 여성적인 이름을 달았으나 남성에게도 수상 되는 문학상이다. 진지한 문학을 주류로 했던 당시 문단에서, 여성의 본질에 주목한 노아이유의 시는 하찮은 것으로 취급받았지만, 꿋꿋이 자신만의 사랑 노래를 만들어나간 그의 배짱이 대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허무다, 우주는 허무다 / 마음과 감각으로 그 허무를 감지한 사람에게 / 그것은 수수께끼가 아니다 / 파란 많은 위험한 인생 / 음산하고 게걸스러운 땅속의 영원한 잠// 허무다, 어디를 보아도 허무하고 우스꽝스럽다 / 사방에 가슴을 모독하는 것들뿐이다 / 운명의 신은 인간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 방패가 없는 인간의 고결함에 창을 던진다 // 그 모든 끔찍한 고통 속 / 도취적 사랑의 원천은 너밖에 없다 / 벨벳 가면을 쓴 작은 신 / 닳고 닳았으면서 순수한 너, 달고도 쓴 너 / 잔인하면서 온화한 위로자 / 그 이름 사랑이여. (64쪽, CLXXV) 

 

 사랑은 어쩌면 대단히 아름다운 것이 아닐 수도, 대단히 아름다운 것일 수도 있다. 정열적이며 격렬한 광란의 그 감정을, 노아이유는 끈질기게 자신의 시에서 형상화해내고 있다. 그의 사랑에의 도취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면서도, 허무감을 반복하는 그의 입을 통해 그 강렬함은 더욱더 커 보이게 만든다. 노아이유의 '사랑의 시'는 속삭임이 아니라 울부짖는 절규의 느낌이다. 그의 감정에 공감하며 읽어나가다가 터져 오르는 그의 감정에 북받친다. 사랑, 나와 너, 존재에의 자각, 허무, 죽음으로 이어지는 그의 시는 상상했던 『사랑 사랑 뱅뱅』의 이미지와 달라서 뜻밖의 큰 충격을 준다. 한낮에 작렬하는 뜨거운 태양과도 같은 '안나 드 노아이유'의 시선 『사랑 사랑 뱅뱅』에서처럼, '세상이 우리 없이는 안 돌아갈'것 같은 크나큰 도취의 사랑은 언젠가 만날 수는 있을까?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을 이제 두 권째 보고 있는데, 또다시 비슷한 느낌의 리뷰를 남기고 있다. 첫 이미지와 너무나 달라서, 착각을 뒤집어 놓았다는 반성의 리뷰랄까. 이게 시든, 소설이든,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것은 참 즐거운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 문학이라는 점은 나에게 더없이 반가운 일이고.

 

  

 

 

 

Written by. 리니

프랑스 시/사랑의 시/ 국내 초역/ 아티초크 빈티지 시선 2

소장하고 있는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새들은 훨훨 완벽한 자태로 날아오르고 / 푸르른 하늘에 만물이 / 빨려 들어가는 듯하던 그 시절 / 우리는 상상의 날개를 펴 떨리는 손으로 / 향기를, 공기를, 수평선을, 파도를 잡아보았지 // 우리는 그때 고독한 승리자였는데 / 가슴속 깊은 곳에 흐르는 강물을 느끼고 / 정상에서 새벽을 마시고 숭고한 기분을 주는 / 말할 수 없이 성스러운 느낌을 맛보았는데 / 욕망은 담대한 독수리처럼 / 은빛 둥근 선을 그리며 태양을 향했지! / 우리는 사색에 잠겼지 / 세상이 우리 없이는 안 돌아갈 줄 알았는데 (19쪽, 눈부심)

행복과 권태는 / 밤을 여행하는 두 줄기 강물처럼 / 꿈꾸며 무모하게 흘러가 / 쓰라린 인생의 바다에서 길을 잃는다 //

마음이 아플 때나 / 사랑을 할 때는 왜 / 언제나 그 어느 쪽도 / 일시적이 아닌 것처럼 보일까 (59쪽, CXIX)


신중하고 견고하게 지어진 벽이 /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우리를 / 갈라 놓는다. 인간의 행과 불행은 / 우리의 은신처에 이르지 못한다. / 아! 죽음이 빨리 왔으면, / 너의 무릎에 머리를 비비대면서 / 나는 극단적이고 신속한 운명을 애타게 기다린다. / 나의 사랑은 네가 모두 담을 수 없을 만큼 큰데! / 나의 도취는 무덤처럼 / 우리 둘을 한데 넣고 밀봉한다. / 그 무시무시한 순간은 / 너무나 정염에 불타고 아름다워 / 창문이 새벽빛으로 서서히 물들며 잠을 깨는 순간 / 나는 존재하기를 멈추는 듯하다. (69쪽, 나는 깨어 있을 때 너를 금한다.)


그것은 있었지만 영원 속으로 사라졌고 /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 그것을 알기에 / 상실과 갈망의 우주인 나는 / 나에게 지친다 //

너의 부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 나는 헛되이 / 망각, 희망, 무의식을 추구한다. (79쪽, 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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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틴 씨
다비드 넬로 지음, 최이슬기 옮김 / 김영사on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책을 읽고 나서

 

 어느 날 '네, 아니오'를 사용하지 않는 언어적 금기를 정해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기계적인 업무 속에서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외치는 바틀비의 모습도 어쩌면 자신만의 (의지에 따른 게 아닐지라도) 법칙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루틴 씨'는 달랐다. '바틀비'가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고' 선언할 때 그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고 절망과 우울함이 가득했다면, '루틴 씨'의 일상이 아무리 지루하다 하더라도 행복을 찾을만한 소지가 있었다. 그에게는 자신을 걱정하는 아내와 자식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사랑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그가 갑자기 이상한 법칙을 정했느냐 하면, 단순히 '일상을 탈출하고 싶은 욕망'이었다. 그의 직업은 호텔리어, 한순간 몰아쳤다가 계절이 바뀌면 떠나는 여행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기가 부지기수였다. 반복되는 일상과 추워진 날씨는 그에게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무언가가 삶을 슬프게 만들고 있다"고 느끼게 했다. 우리에게 어느 순간 우울함과 무기력증이 찾아오는 것처럼, '루틴 씨'의 마음도 그러했다. 어쨌든 이러한 복합적인 이유로 그는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만의 지침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절대로 '응'이나 '네'라는 단어를 말하지 않겠다. '맞다', '그래', '오케이' 같은 '긍정'에 해당하는 대체어도 절대로 쓰지 않겠다.

맞는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겠다. (25쪽) 

 

 그리고 이 법칙을 수행하지 못한다면 발틱 해에 1천 크로나(한화 15만 원 가량) 세 장을 던져버리겠다고 다짐했다. 이 우스꽝 스러운 언어적 금기는 어느 순간 하나씩 하나씩 늘어나기 시작했고, '루틴 씨'는 '아니오'와 '나'라는 일인칭을 전혀 말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어딘지 모르게 장난스럽지만 제법 진지한 그의 도전은 주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지만, 결국엔 '행복'에 대해 시사하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 자신만의 남다른 철학 또는 규칙을 정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린 날 걷던 보도블록의 한 색깔을 정해서 밟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장난부터, 오늘부터 다이어트를 위해 작은 접시에 먹겠다는 작심삼일의 포부와 책장 속의 책을 진열하는 자신만의 방식까지……. 그 모든 것들은 사소해 보였지만, 어쩌면 우리에게 정해진 기로를 비트는 작은 표지판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난이 너무 심해서는 안 되겠지!) 그 기로는 직진으로 갈 수도 있고, 좌회전, 우회전할 수도 있으며, 어쩌면 뜻밖의 상황으로 유턴해서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게 할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일상에 허덕이는 현대인들은 바쁜 시간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으려 애쓰며 살아간다. 주말을 이용해 데이트하고, 친구와 정기적으로 만나 스트레스를 풀고, 이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자신만의 취미를 생성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일상탈출을 위한 시도지만, 어디에서도 행복을 찾을 수 없다면 조금 더 비틀어보는 것은 어떨까? '매주 월요일에는 빨간 구두를 신는다', '매일 11시 55분에 향초를 켠다'와 같은 엉뚱한 법칙으로 일상의 반전을 시도해보자. 중요한 건 두려워하지 말 것, 그리고 진지하게 수행할 것. '루틴 씨'처럼 말이다.

 

 

 

 

 

Written by. 리니

스페인 소설/ 중남미 문학/ 청소년 소설/ 언어적 금기/ 독특한 소설 

소장하고 있는 책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루틴 씨는 시간 날 때마다 단어를 가지고 놀거나 말장난을 하거나 쌍둥이에게 농담하는 것을 좋아했다. 젊었을 때에는 `말을 먹어버린 남자`라는 제목의 연극 대본을 한 편 쓴 적도 있었다. 어쩌면 바로 그 대본에 대한 추억이 그의 삶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어 넣은 것인지도 모른다. 루틴 씨는 지침서를 꺼내어 아래에 추가로 적어 내려갔다.

지금 이 순간부터 절대로 `응`이나 `네`라는 단어를 말하지 않겠다. `맞아`, `그래`, `오케이` 같은 `긍정`에 해당하는 대체어도 절대로 쓰지 않겠다. 맞는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겠다.

그는 이거면 그의 일상에 새롭고 흥미로운 상황이 생길 거라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25쪽)

이런 모든 도전에도 루틴 씨는 여전히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아니, 자신의 삶이 그렇게 많이 바뀌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해서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얼굴을 보고, 같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루틴 씨에게는 새로운 삶을 위한 지침서에 넣을, 더 대담하고 새로운 방안이 필요했다. 루틴 씨는 침대에서 살그머니 일어나 다시 책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 (...)

자신의 새로운 삶을 위한 계획을 하나 더 추가한 후, 루틴 씨는 침대에 들어와 곧 단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날 밤 그는 꿈에서 `응`이라고 세 번이나 말하고 무려 구천 크로나를 잃어버렸다. 그건 악몽에 가까웠다. (32쪽)


"아빠, 잘 하세요, 네? 우리가 지켜보고 있을게요." 토르가 말했다.

"무엇보다 이상한 말은 하지 마세요, 안 그러면 아빠를 정신병원에 가둘지도 몰라요." 마그나르가 충고했다.

"페트루스는 최선을 다할 거야." 루틴 씨는 쌍둥이에게 대답하며 어쩌면 마그나르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되고 보니, 그는 빈 맥주병에 삼천 크로나를 넣어서 발틱 해에 던져야 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걸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는 인생 전부를 걸고 있었다. 하지만 루틴 씨는 약속은 꼭 지키는 사람이었기에, 그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나가겠다고 약속한 이상 그는 꼭 그렇게 해야만 했다. (87쪽)

"누가 저 병을 발견할까요?" 마그나르가 말을 꺼냈다.

"누가 되었든 얼마나 놀랄지 상상이 가요?" 토르가 말했다.

"어쩌면 돈이 든 병을 주운 사람에게는 새로운 삶이 시작될 수도 있겠지." 루틴 씨가 말했다.

"그게 좋은 일일까요, 나쁜 일일까요?" 사스키아가 남편에게 물었다.

"모르겠어요, 사스키아.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요. 누구에게든 약간의 운은 언제나 필요한 거니까……." (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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