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
김숨 지음 / 현대문학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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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숨 작가는 『L의 운동화』라는 책에서 이렇게 썼다.

 ​"아직까지는 쉰한 분이 살아 계시지만 다들 연세가 있으시니까 한 분 한 분 세상을 떠나시겠지요? 한 분, 한 분 그렇게 세상을 떠나, 한 분밖에 살아 계시지 않는 날이 오겠지요? 단 한 분 밖에 살아 계시지 않는 날이…… 그리고 결국 단 한 분도 살아 계시지 않는 날이 오겠지요? 그분들이 다 돌아가시면 누가 증언을 할까요?"

​그리고 한 달이 지났을까, 잊지 못할, 너무도 오싹했던 '한 명'이라는 제목의 책이 출간되었다. 왠지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잔혹한 역사를 '르포' 형식이 아닌 '소설'로 담는 것은 꽤 민감한 일이다. 소설이라는 틀 너머에 그보다 더 끔찍하고 적나라한 현실이 있고, 건드려야 할 것이 있고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소설가는 모든 것을 알아야 하고, 알고 있는 진실을 허구의 바탕 속에 적당히 녹여내야 한다.

 그리고 상상에는 한계선이 있다. 경험해보지 못한 끔찍한 일은 그 한계선까지의 거리가 매우 짧다. 경험해본 사람을 통해 보고 들은 것만을 상상하고, 더불어 이해할 수 있다. 이를테면 나는 '위안부'라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어떤 영상에서 본, 문신으로 가득한 할머니의 배를 떠올렸다. 너무도 아팠고, 끔찍했고, 죽여버리고, 죽고 싶었던 할머니의 마음을 상상했다. 하지만 그 뒤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그녀가 12살 어린 소녀를 보고 하는 생각들을, 신발을 신을 때마다 발가락에 힘이 들어가는 이유를, 끝끝내 살아 돌아왔어도 자신이 어딜 다녀왔는지 말할 수 없던 상황들을 말이다. 『한 명』이라는 소설은 내가 알지 못했던, 그리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모든 일을, 아주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설명한다.

 "죽을 수가 없어. 내가 죽으면 말할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 (237쪽)

 세월이 흘러 단 한 명밖에 남지 않았을 때를 그리는 '소설의 현재'에는 '그녀'가 살고 있다. 위안소에서 한시도 제 몸뚱이가 아니었던 몸을 끌고 간신히 살아남았다. 참혹한 과거를 잊으려고 노력해도 잊히지 않는다. 제 몸뚱이가 아니었던 몸이, 이제는 과거의 기억을 불러낸다. 그녀는 TV에서 (공식적인) '한 명'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그녀는 증언을 어떻게 하는지도, 하고 싶지도 않으며, 그저 행복하게만 살고 싶어 조용히 삶을 지켜왔다. 그러나 "순덕, 향숙, 명숙 언니, 군자, 복자 언니, 탄실, 장실 언니, 영순, 미옥 언니……."와도 같은 '한 명'의 존재를 이제는 만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때 불현듯 자신의 이름을 찾는다. 강가에서 다슬기를 잡던 열세살 소녀의 이름을…….

 


 굳게 다물어졌던 입을 열고 버스에 오르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지금 살아계신 할머니들이 목소리를 내기까지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생각했다. "모든 걸 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기억했으면 오늘날까지 살지 못했으리라."(151쪽)라고 말하면서도, 지우고 싶은 기억들을 죄다 끄집어낼 수밖에 없는 그녀들의 현실이 끔찍하게 다가왔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일본 정부와의 '불통'과 우리 정부의 괘씸한 처사에도 꿋꿋이 뜻을 표하고 있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존경스럽고, 눈물이 났다.

 이 책의 문장에는 수없이 많은 숫자가 붙어 있다. 이는 뒷페이지의 참고자료와 이어진다. 참고자료에는 작가가 참고한 책들과, 증언한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이것이 정말 현실이냐며, 치를 떨고 경악을 금치 못했던 숫자들이다. 이 숫자와, 기록과 기억의 역사가 잊혀지지 않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이 책이 읽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18쪽,
검푸른 곰팡이가 만발한 담벼락을 집요하게 응시하던 그녀는 한순간 발작적으로 숨을 토한다. 마흔일곱 명이라고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어떻게 한 명밖에 안 남았을까 싶다.
꽃잎이 방사형으로 퍼진 꽃을 그리듯, 두 발을 번갈아가면서 조금씩 옆으로 옮긴다.
그녀가 발을 뗄 때마다 장판지가 슬쩍 들뜬다. 밀크캐러멜 색깔의 장판지는 뾰족한 것에 찍힌 자국, 뜨거운 것에 덴 자국, 밀려 주름진 자국, 날카로운 것에 긁힌 자국 등으로 지저분하다.
한 생을 등지듯, 그녀는 그렇게 창문에서 천천히 돌아선다.

88쪽,
소녀들은 자신들 몸에 다녀가는 군인들 명수로 일요일인지 알았다. 그곳에는 달력도 없어서 소녀들은 날짜도, 요일도 몰랐다. 모든 날들은, 모르는 날들이었다. 모르는 날들이 흘러가는 동안 소녀들은 폭삭 늙었다.

90쪽,

이제 여기서 죽는가 보다 하면서도, 이런 데 있다가 집에 가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한탄하면서도. 고향집에 돌아가면 뭐라고 말해야 하나 막막할 때가 있었다. 실공장에 있었다고 해야 하나? 비단공장에 있었다고? 아니면 그냥 좋은 공장에.



132쪽,

"저기, 젊은 양반…… 20만 명 중에 2만 명이면…… 10분의 1이 맞지요?"
"20만 명 중에 2만 명이요?"
"20만 명 중에 2만 명이면……"
"20만 명은 뭐고, 2만 명은 뭐래요?
전기검침원이 대답은 않고 도리어 그렇게 물어서 그녀는 당황한다. 그녀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입을 다물어버린다.
"2만 명 뽑는데 20만명이 몰리기라도 했대요? 20만 명이면 웬만한 중소도시 인구하고 맞먹는 숫잔데……."
그녀는 괜히 물었다 싶어 입을 다문다.
"주먹은 왜 그렇게 꼭 쥐고 계세요?"
"다슬기들이 달아날가봐……."

​236쪽,
그녀는 티브이 받침대 서랍을 열고, 그 안에 넣어두었던 백지를 꺼낸다. 반으로 접힌 백지를 펼치자 또박또박 힘을 주어 쓴 글자들이, 억눌려 있던 스프링처럼 앞다투어 튕겨 오른다.
나도 피해자요.
그 한 문장을 쓰기까지 70년이 넘게 걸렸다.
그 문장에 이어서 뭔가 더 쓰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갑자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는 그럴 수만 있다면 말을 하는 대신, 한쪽으로 돌아간 자궁을 꺼내 보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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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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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는 이상야릇한 힘이 있다. 그래서 주체할 수 없이 콸콸 들이붓지만 않는다면야, 술은 적당한 이용가치가 있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노래를 부르며 기쁨을 만끽하게 한다. 누군가에게는 평소에 하지 못할 일들을 기꺼이 하게 만들기도, 자신의 속 깊은 이야기를 부끄러움 없이 꺼내놓게도 한다. 한 잔, 그리고 또 한 잔. 술자리에서는 세상사 많은 희로애락이 펼쳐진다. 취기는 불안을 잠재우고, 가려진 진실을 밝혀내게도 한다. 오직 술이 있어야만 허용될 것 같은 진실한 이야기가 바로 술자리에서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 『안녕 주정뱅이』는 실제로 쓰디쓴 술을 삼키고 삼키면서 들어야 할 것 같은 이야기다. 첫 잔이 가장 독하고, 마지막 잔까지 비릿하다.

 소설은 예상치 못한 순간들과 비밀, 그로 인해 벌어진 결과들을 담는다. ​목적지가 다른 두대의 자동차가 나란히 달리다 같은 휴게소에서 잠깐 들렀다 간 정도('층')의 우연들이 반복된다. 번갯불의 찰나 ('삼인행')처럼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들이 쌓여, 어떤 결과를 불러오고, 그 결과로 이들은 위태로운 일상을 살아간다. 불안을 잊기 위해 사랑에 취하고, 여행길에 취하고, 분노에 기대기도 하며, 오히려 그 기억을 지워버리기도 한다.


 ​인생의 고통을 함께 견디는 「봄밤」의 수환과 영경은 얼마나 처절하고 아름다운가. 「이모」는 살아온 날들의 증오를 이겨내기 위해 얼마나 앓았을까. 이 격렬하고 치열한 이야기는 가슴을 세차게 흔든다. 나머지 이야기도 만만치 않다. 「카메라」와 「실내화 한 켤레」의 소설은 아무렇지 않은 날들을 그리는 것 같지만, 온통 불안으로 가득하다가 마지막이 돼서야 불안과 위험을 한 번에 터뜨려버린다. 당최 끝까지 안심할 수가 없다.

 

​"우리는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으니 됐지 않냐고. 뭘 더 바라겠냐고 ('봄밤')"

​ 그래도 이들은 다른 사람들처럼 '멀쩡히' 살아있으려고 애쓴다. 비틀비틀 걸음을 온전히 하려 애를 쓰는 주정뱅이처럼 보일지언정, 어떻게든 자신의 일상을 안정시키려 노력한다. 그들에게 연민 어린 시선이 간다. 가장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들은 술자리처럼, 다음날, 그다음 날까지 이들의 이야기에 관한 기억이 또렷하다. 작가는 어떤 삶을 살았길래 이런 소설을 썼을까. 어떤 사랑을 하고, 어떤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을 겪어보았길래…….

 


 



25쪽, <봄밤>

"내가 생각해봤는데 이 비유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시킬 수 있을 것 같아. 분자에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놓고 분모에 그 사람의 나쁜 점을 놓으면 그 사람의 값이 나오는 식이지. 아무리 장점이 많아도 단점이 더 많으면 그 값은 1보다 작고 그 역이면 1보다 크고."
"그러니까 1이 기준인 거네."
수환이 말했다.
"그렇지. 모든 인간은 1보다 크거나 작게 되지."
"당신은 너무 똑똑해서 섹시할 때가 있어."
영경이 씩 웃었다.
"그래? 너무 간헐적이라 탈이지. 그런데 우리는 어떨까? 1이 될까?"

93쪽, <이모>

언제였을까. 그의 자취방에서 과도로 참외를 깎아 쪽을 내고 참외씨를 미세하게 바르며 그의 등허리를 바라보았던 그 봄은, 그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병아리 빛깔의 수채화 같던 그 봄날의 오후는, 그리고 …… 그녀는 현관 구석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장갑 낀 양손을 번갈아 쥐었다 놓았다. 당장이라도 과도를 움켜쥐고 무엇을 찌를 듯이, 장갑 속의 언 손가락들을 바르르 떨게 만드는 이 붉고 어두컴컴한 증오는 무엇인가. 그걸 알 수 없어 그녀는 오른손으로 왼손을 쥐었다 놓고 왼손으로 오른손을 쥐었다 놓았다.

134쪽, <카메라>

"내가 무능해서 그런지 몰라도,"

관희가 고개를 옆으로 늘어뜨렸다.

"나쁜 사람이 되는 건 참 힘이 드는 일이에요, 문정씨."

76쪽, <실내화 한켤레>

그 만남이 행이었는지 불행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떤 불행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만 감지되고 어떤 불행은 지독한 원시의 눈으로만 볼 수 있으며 또 어떤 불행은 어느 각도와 시점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불행은 눈만 돌리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있지만 결코 보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239쪽, <층>

그는 아파트 정면 베란다에 서서 가로등 불빛이 부드럽게 L자를 그리는 차도 너머에 있는 도서관 진입로와 어두운 나무들에 가려진 건물을 내려다보았다. 당신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가. 초추의 양광, 돈데 보이 같은 것 말고, 안톤 슈나크나 띠시 이노오사 같은 것 말고, 이 밤 도서관에서, 까페에서, 연구실에서, 오래전 당신이 살던 이곳보다 훨씬 더 넓은 아파트 거실에서, 당신은 내가 할 수 없는 어떤 낯선 생각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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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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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웠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얼굴이 벌게지는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내 문장도 이렇게 보였을 것 같아서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자칭 독후감이라고 하는, 블로그에 쭉 나열된 리뷰에 나는 정성을 다해왔다. 비공개라면 모르지만, 불특정 다수에 공개되는 글이었다. 한 페이지의 글을 쓸 때, 적으면 몇 시간, 집중이 잘 안 될 때는 오늘은 날이 아니라며 접어두고 하루를 넘기기도 했다. 수정과 검토를 여러 번 했다. 하다가 더는 내 글을 반복해서 읽고 싶지 않을 때 '확인'을 눌렀다. (이렇게 정성을 들이는데 글은 왜 이 모양이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누군가가 교정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쓰다 보면 욕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더 잘 쓰고 싶은 욕심. 유려하고 멋진 문장으로 보이고 싶은 욕심. 그러다 보면 함정에 빠진다. 꾸미고 꾸미다가 기본을 잃는다.

 

 그러다가 책을 중간쯤 읽을 때쯤, 문장에 기본(혹은 정석)이 있다는 말이 조금 이상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정확한 문장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기준은 누가 규정한 것인가. 누군가의 문장에는 누군가의 생각을 넘어서 삶이 반영되어 있기에, 그것을 수정한다면 '그것을 쓴 누군가'의 힘은 약해지는 것이 아닌가. 특히 문학에서는. 그러면 문장의 교정은 어디까지여야 할까.

 

 교정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정확한 문장'을 언급하는 것은 이 책의 구성 때문이다. '내가 쓴 글, 내가 다듬는 법'이라는 부제와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라는 제목의 내용은 책 속에서 번갈아 배치된다. 20년 동안 교정 일을 하며 경력을 쌓아온 저자는 교정 일을 하면서 조금 특이한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라며 문장을 다듬는 기준을 묻는 편지였고, 회신과 회신이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저자에게는 자신의 직업을 되돌아볼 특별한 사건이 된 듯하다. 이 편지 '에피소드'와 '문장 교정법'의 내용이 각각 진행되면서, 저자는 '정확한 문장'을 알려주는 동시에 '이상한 문장'과 '정확한 문장'의 경계에 관해 고민한다.

 

 "문장의 시선은 결국 거리를 좁히려는 나의 의지와 당겨지지 않으려는 풍경 사이의 긴장감이 만드는 것 아닐까요. (146쪽)"

 

 이 책을 다 읽은 후의 소감은 '결국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수십 년 동안 교정일을 봐온, 일명 전문가인 저자는 그 긴장감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글을 쓴 사람의 의도와 글을 읽을 사람의 시선을 좋은 간격으로 맞춰주는 것. 그래서 교정은 참 어려운 일이라 생각된다.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는 표현'이란 책 속의 말에, 그동안 썼던 나의 글들이 스르르 스쳐 가며 나를 겁나게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글을 쓸 때마다 이 책의 내용을 떠올려 스스로 괴롭힌다면 좋은 영향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적당히, 가끔 들춰보며 되새기면 충분할 것 같다. 어쨌든 정답이란 없으니까.

 

 

 

36쪽,
꿈은 말하고 있었다. 네 삶은 비단 길이었다가 자갈밭이었다가 다시 비단 길이었다가 자갈밭일 것이다. 아니, 꿈은 이렇게 말했던 것이 아닐까.
삶은 엉덩이다, 알겠느냐?



64쪽,
말하자면 귀에 걸면 귀걸이요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것인데, 이거야말로 반복해 쓰면서 중독되는 데 더없이 좋은 조건이 아닌가. 그래서일까? `대하다`의 활용형인 `대해(서)`나 `대한`만큼 문장 안에 자주 등장하는 낱말도 드물다. 문제는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까지 무슨 장식처럼 덧붙인다는 데 있다.



99쪽,
정답 같은 건 없습니다. 그건 심지어 맞춤법도 마찬가지입니다. 맞춤법이란 그저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만든 규칙일 뿐이죠. 게다가 지금처럼 국가기관이 맞춤법을 통제하는 상황을 생각하면 맞춤법에 그렇게 목을 맬 이유도 없지 싶습니다. 다만 책을 사서 읽는 독자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저는 제가 하는 일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영어로 게이트키퍼라고 하나요. 문지기. 맞습니다. 문지기 역할을 하는 것뿐이죠. 가끔 그런 꿈도 꿉니다. 서점에 진열된 책들이 저마다의 표현법이나 문장 규칙에 따라 쓰인 걸 구경하는 꿈. 멋지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112쪽,
나는 생각했다. 저 문장은 얼마나 이상한 문장일까. 얼마나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 얼마나 이상한 삶들이 얼마나 이상한 내용을 얼마나 이상한 방식으로 표현한 문장일까. 그리고 만일 저 길고 긴 문장을 손본다면 어떤 표기가 맞고 어떤 표기가 그렇지 않은지는 또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떤 표현이 어색하고 어떤 표현이 그렇지 않은지는 또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내가 들어내거나 고치거나 다듬어야 할 것들은 무엇일까. 미처 쓰레기통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바닥을 구르는 쓰레기들일까. 아니면 빨랫줄에서 떨어져 흙이 묻은 빨래들일까. 그것도 아니면 제 어미를 쫓아가지 못하고 뒤처져 울고 있는 고양이 새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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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살해자
윤재성 지음 / 들녘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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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외로움을 없애고 싶었다." (17쪽)
 소설은 현대사회에 뿌리내린 '외로움'을 완벽히 뽑아낼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서 시작된 것 같다. 그런데 대체 이 '외로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디서 어디까지를 외로움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외로움의 증세는 다양할 것이다. 홀로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는 것, 사람들의 관계에 목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갈증을 느끼는 것…… 이런 가벼운 증세도 외로움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나는 평소 '외로움'을 많이 느끼지 않고, 오히려 가끔 찾아오는 '외로움'을 즐기는 사람이라며 자신을 추켜세워왔다. 하지만 종종 느끼는 가벼운 외로움이 진짜 '외로움'일까 하는 의문이 문득 든다. 내게 주어진 모든 소유물과 남아있는 사람들이 없어진다면, 나는 진정 외로움을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무시무시한 상상과 함께 말이다.

 

 

 그러나 이 소설 속에서 다뤄지는 외로움은 내가 상상하던 정도를 넘어선 무게를 갖고 있다. 이것이 '진짜' 외로움과 고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구들과 술 한 잔, 아무도 없는 옥상에서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나서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완전히 다른 외로움. 이미 닳고 닳아진, 묵직한 순간들이 돌처럼 얹힌 아주 지긋지긋한 외로움. 아마도 내가 전혀 겪어보지 않았을 지독한 외로움이 책을 온통 감싸고 있다.

 

 

 이런 외로움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최후의 수단이 소설에 등장하는 '외로움 살해자'다. 살해자라는 이름 때문에 판타지나 스릴러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것은 (소설 속) 현대 사회에 새롭게 생겨난 '직업'이다. 엄청난 경쟁률로 뽑힌 그들은 외로움으로 고통받는 고객들과 시간을 보낸다. 회사에서 제공된 정보를 바탕으로, 더 깊숙한 곳에 있는 고객의 마음을 캐낸다. 외로움이 발생하고, 그것이 커지고, 손쓸 수 없을 정도가 된 지점들을 파악하고 위로한다. 성공률은 높은 편이다. 간혹 고객의 외로움에 전염되는 살해자가 있기는 해도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외로움 살해자'를 '카사노바' 혹은 '애인 대행' 서비스라고 힐난하기도 하지만, 고객들은 그들을 필요로 한다. 고객에게 그들은 썩은 동아줄이라 해도, 마지막 구원자이기 때문이다.

 

 

 양날의 검이자, 고객에겐 구원인 '외로움 살해자'의 세계. 소설은 '우수 외살자'와 반송된 (한번 서비스를 신청했다가 실패한) '의뢰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외로움의 본질에 관해 추적하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느끼는 외로움은 어디서부터 왔을까. 어떤 경험에서, 어떤 경로로 그에게 찾아왔을까. 외로움은 '외로움 살해'라는 시스템으로 정말 소멸할 수 있을까. 손쓸 수 없는 외로움이란 존재할까. 건드리지 않아야 할 외로움도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수많은 질문이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을 맴돌게 된다. 그러다가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다음에는, 이 세상 자체가 외로움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벼운 외로움일지라도, 그것을 잊기 위해 안간힘을 써도 공허함이 밀려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거라며.

 

 

 찝찝하고 끈적이는 외로움을 책 속에서 온몸으로 겪고 나니, 조금은 피로하고 힘이 들었다. 그러나 외로움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풀어낸 이 책이 마음에 들었다. 개인적인 바람은 지독한 외로움으로 허덕이는 사람들이 있다면, 약간의 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소소한 것들 - 조금씩 모이면 '외로움'이라는 것을 짓누를 수 있는 - 이 들어갈 수 있는 아주 약간의 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라게 되었다.

 

 



171쪽,
"저는 그럴 수 없어요. 지금을 버티기도 힘드니까. 끝을 떠올린 순간 연애나 사랑, 삶의 모든 의미는 허무하게 퇴색돼버려요. 그래서 저는 매일같이 생각을 지워서 현실을 살아갔어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내가 나의 존재마저 지워버릴 걸 알면서도."
미는 잠깐 말을 멈췄다. 필은 앞자리의 대리기사가 귀를 기울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안경 낀 눈이 룸미러에 비치는 중이었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해요. 사랑의 유한성만큼 가혹한 게 또 있을까 하는. 그건 하루를 살기 위해 일 년 치 독약을 삼키는 짓이에요."
필은 외로움살해자로서 답했다.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어가는 생물입니다. 우리가 사는 땅 위에 영원한 것은 없어요."
"하지만 외로움은 영원해요. 죽음이란 완성에 이르기 전에는."



221쪽,
"보통은 1개월에서 2개월, 많게는 3개월, 서비스를 연장한다면 반년가량. 그 기간이 끝나면 우린 사라집니다. 고객의 옆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두세 달에 불과해요. 우리가 필사적으로 고객을 파악하고, 원인을 찾아내고, 외로움을 없애려드는 이유도 그겁니다. 그들이 전화를 걸어 온 순간부터 모래시계는 흘러내리기 때문에."



265쪽,
그는 주의 깊게 유도신문을 시도했다.
"죽는다는 뜻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한데요."
"말 그대로예요.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 더 이상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 남겨질 누군가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심는 것."
미는 거기서 말을 잠시 멈췄다. 검은 동공은 허공에 멎었다. 그녀는 필을 보면서 필 뒤의 어떤 것을 함께 보는 중이었다.
"우리는 왜, 살아남지 않으면 사랑조차 할 수 없는 존재들일까요"




290쪽
"그럼 무엇을 기대했습니까? 지금이 2116년이고, 외로움살해자들이 최첨단 주사액과 미래형 권총으로 고독을 제거하는 줄 알았나요? 그런 것은 현실에 없습니다. 외로움 제거는 우물 청소나 다름없어요. 더 깊고 오래된 때일수록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오직 수작업으로만 이끼를 닦아내야 하는, 고여 있는 유독가스에 중독되지 않길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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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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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입학식에 참여한, 눈에 띄게 자그마한 아이는 힘도 없고 억세 보이지도 않았다. 통통한 볼살에도 불구하고 팔다리는 가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부터 흙 밟고 여기저기 노다니기보다는 집에서 인형을 가지고 놀거나, 만약 밖에 나간다 하더라도 친구들과 역할놀이를 하는 적이 많았다. 성향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뛰어다니고, 흙을 묻히며 선머슴처럼 노는 법을 몰랐다. 기본적으로 겁이 많았다. 나이가 먹고, 기적적으로 키와 몸이 커지면서 모든 것을 배워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딱 하나 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달리기'였다. 기록을 재고, 여럿이서 달리는 '체육대회'의 50미터 달리기 종목은 고역이었다. 키가 크고, 살이 붙어도, 스피드와 힘은 좋아지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달렸는데, 손등에는 도장하나 찍힐 날이 없었다. 순백색의 띠를 허리에 감는 멋진 광경은 한참 앞에서 벌어졌다.

 

 이것은 부끄럽지만 나의 이야기다. 이러한 기억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달리기와 관련된 책을 고르게 된 일은 놀랍고 또 놀라운 일이다. '하루키'라는 이름이 없었다면 고르지 않았을 것이고, 여느 때와 같이 느낌에 따라 책장에서 지금의 상황에 가장 적절할 듯한, 그리고 즉흥적인 기분으로 책을 집어 들었을 뿐이었다. 어쨌든 나는 달리기를 매우 기피한다. 아, 어쩔 수 없이 달리거나, 잠깐 기분이 좋아 달리는 것, 가끔 반려견과 조깅 정도 하는 것은 제외하고 말이다. 기록을 재거나, 기록을 재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마음속에 '목표' 같은 것이 설정되는 레이스는 굳이 도전하지 않는다. 그런데 웃기게도 이 책을 읽으니 묘한 궁금증이 든다. 끝까지 달리고 난 뒤의 "모든 걸 다 털어내 버린 듯한 상쾌함(22쪽)" 이 궁금하다. 이를 악물고 달려도 가질 수 없던 손등의 도장을, 한 번쯤 찍혀보기 위해서 매일 저녁 달리기 연습을 했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었을는지도 궁금하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제목만큼 책에는 풍성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달리기를 하면서 느끼는 감정, 기록과 안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마음, 몸의 성장과 마음의 변화까지, '달리기'라는 테마로 말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들이 들어있다고 볼 수 있다. 하와이, 뉴욕, 도쿄, 케임브리지, 홋카이도를 넘어, 아테네에 가서 마라톤 풀코스를 달리기도 하면서, 그는 계절을 보내고 체감한다. 너무나 멋진 일이다. 걸을 때는 볼 수 없는, 걸을 때는 전혀 신경 쓰지 않던 모든 생각들이 머리속을 메울 것이다.

 

 그러나, '달리기'라는 단어 하나로 이 책을 설명해야 한다면 조금 아쉬울 수 있는데, 역자 후기에서 언급했다시피 이 책은 "하루키 최초의, 어쩌면 최후의 (라고 썼지만 최근 출간된 책으로 이 말은 취소되었다) 회고록" 이라서다. 소설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이거니와, 달리기라는 취미와 가장 잘 어우러질 수 있는 '음악'도 이 책에선 빠질 수 없다. 찰스 강변에서 함께 달리는 포니테일을 한 대학생들의 빛나는 모습을 보는 작가는 자신의 청춘을 회상하기도 한다.

 

 의외의, 전혀 예상하지 못 했던 감동이 밀려온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259쪽)"라는 묘비명을 쓰고 싶다는 작가는 한때 취미였던 '달리기'를 인생 전체로 밀어 넣는다. 그의 사회성은 '달리기'로 인해 길러졌다. 집중력과 지속력은 근육의 발달과 함께 몸에 배어 들었다."나라는 작은 존재 의의(171쪽)"는 '달리기'로 인한 통증이 되새겨주었다. 더 왈가왈부하지 않더라도, 그에게 '달리기'는 '작가 하루키'라는 이름과도 같고, 실명 '무라카미 하루키'와도 같다. 그러니 진심 어린 이 책에, 달리기를 싫어하던 사람까지도 매료될 수밖에 없던 것이다.

 

 

36쪽
나는 달려가면서 그저 달리려 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원칙적으로는 공백 속을 달리고 있다. 거꾸로 말해 공백을 획득하기 위해서 달리고 있다, 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공백 속에서도 그 순간순간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온다. 당연한 일이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진정한 공백 같은 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정신은 진공을 포용할 만큼 강하지 않고, 또 한결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해도 달리고 있는 나의 정신 속에 스며들어 오는 그와 같은 생각(상념)은 어디까지나 공백의 종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내용이 아닌, 공백성을 축으로 해서 성립된 생각인 것이다.




122쪽
매일 책상 앞에 앉아서 의식을 한 곳에 집중하는 훈련을 계속하면, 집중력과 지속력은 자연히 몸에 배게 된다. 이것은 앞서 쓴 근육의 훈련 과정과 비슷하다. 매일 쉬지 않고 계속 써나가며 의식을 집중해 일을 하는 것이, 자기라는 사람에게 필요한 일이라는 정보를 신체 시스템에 계속해서 전하고 확실하게 기억시켜 놓아야 한다. 그리고 조금씩, 그 수치를 살짝 올려간다. 이것은 매일 조깅을 계속함으로써 근육을 강화하고 러너로서의 체형을 만들어가는 것과 같은 종류의 작업이다. 자극하고 지속한다. 또 자극하고 지속한다. 물론 이 작업에는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만큼의 보답은 있다.

145쪽
나의 인생에도 그런 빛나는 날들이 존재했었을까? 그렇다, 조금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그때 내가 긴 포니테일을 갖고 있었다 해도 그것은 그녀들의 포니테일만큼 자랑스럽게 흔들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당시의 내 다리는 지금 그녀들의 다리만큼 힘차게 지면을 박차고 나아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그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것이리라.

171쪽
`나는 인간이 아니다. 하나의 순수한 기계다. 기계니까 아무것도 느낄 필요가 없다. 오로지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이 말을 머릿속에서 만트라처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글자 그대로 `기계적`으로 반복한다. 그리하여 자기가 감지하는 세계를 되도록 좁게 한정하려고 애쓴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겨우 3미터 앞의 지면으로, 그보다 앞은 알 수 없다. 내가 당면한 세계는 기껏해야 3미터 앞에서 끝나고 있다. 그 앞의 일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하늘도, 바람도, 풀도, 그 풀을 먹는 소들도, 구경꾼도, 성원도, 호수도, 소설도, 진실도, 과거도, 기억도, 나에게 있어서는 더 이상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물인 것이다. 여기서부터 3미터 앞의 지점까지 다리를 움직인다 - 그것만이 나라고 하는 인간의, 아니 아니지, 나라고 하는 기계의 작은 존재 의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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