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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다큐 - 우주비행사가 숨기고 싶은 인간에 대한 모든 실험
메리 로치 지음, 김혜원 옮김 / 세계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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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문과생인 저는 과학도서만 보면 질색을 합니다. '이거 뭐, 봐봐야 이해할 수 있나' 하고 포기하기 마련인데요.....   

그러던 도중 세계사 서포터즈를 통해 '메리 로치' 라는 작가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우주비행의 이상한 면들만 조사하고 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세상 구석구석 비밀들을 파내는 것을 좋아하는 작가. 그리고 그것을 익살스럽고 재미있게  표현하는 작가. 그 소재가 과학이어서 책의 첫 페이지를 펴면서 망설이긴 했지만, 내가 좋아하지 않는 과학이라서 읽지 않고 넘어가기에는 신기한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있더군요!

 

라는 원제가 우리나라에 와서 '우주 다큐'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는데요. 처음 이 제목을 접했을때 다큐란 말이 들어가면 뭔가 지루해보이지 않을까 했는데 책을 읽어보니 잘 어울리는 제목 같아요. 다큐느낌이 나긴 납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 중 하나는 ... 16개의 주제로 나눠져 있는 이 책에서, 한 주제가 끝나면 이야기의 끝에 다음에 올 주제를 암시해주는 부분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주에서의 배변 (NASA의 화장실 엔지니어들) 편 마지막에는 "NASA는 체격이 더 작고 아담한 사람들을 비행시킴으로써 발사 비용을 절감시키기보다, 더 작고 아담한 소고기 찜과 샌드위치, 케이크를 비행시키는 쪽을 택했다" 하고 우주만찬이라는 다음 주제를 암시하네요. 마치 장면 장면이 이어지는 듯한 부분이 저는 참 좋았습니다.

 

내용으로 들어가자면.. 역시 과학 비전공자(?)인 저는 자극적인 이야기들에 끌렸습니다. 우주비행사를 뽑는 방법부터 우주멀미, 우주에서의 목욕, 뼈 보호, 무중력 섹스, 비상 탈출 등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있는데요.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재치있게 표현한 저자 덕분에 실제로 어이없어 키득키득 웃기도 했어요 ㅋㅋㅋㅋㅋ

 

 

 

우주멀미 (우주비행사의 은밀한 고통)

 

"멀미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대중과 다른 우주비행사들뿐만 아니라 의사들에게 약점을 고백하는 것과 같았어요" - 147p

 

"멀미는 독특한 운동을 할 때, 감각적으로 당혹스러운 운동을 할 때, 혹은 중력 환경이 바뀔 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반응이기 때문에, 우주비행사들은 장기 비행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할 때 그 모든 것을 또다시 겪어야만 한다. 몇 주에서 몇 달을 무중력 상태에서 보내는 동안, 그들의 뇌는 모든 이석 신호를 특정한 방향으로 가속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따라서 머리를 움직이면, 뇌는 몸이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우주비행사 페기 휘트슨은 국제 우주 정거장에서 191일간 임무를 마치고 지상에 돌아온 직후를 이렇게 묘사했다.

'앉았다가 일어섰는데 제가 시속 2만 8,000킬로미터로 세상을 돌 고 있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내 주위를 시속 2만 8,000킬로미터의 속도로 돌고 있었어요' " - 152p

 

 

 

우주에서의 배변 (NASA의 화장실 엔지니어들)

 

"무중력 배설은 전혀 농담의 소재가 아닐뿐더러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다. 배뇨라는 단순한 행위도 중력이 없다면 카테터를 요도에 삽입해야 한다든지, 항공 의무관과 난처한 주제로 무선 상담을 해야만 하는 응급 상황이 발생하기 쉽다. '우주에서의 배변 충동은 지구 상에서의 느낌과 다릅니다'라고 와인스타인은 말한다." -346p

"대변도 똑같아요. 화장실에 가고 싶은 느낌이 들지 않아요." - 346p

 

저와는 달리 과학을 엄청 사랑하는 초등학생 동생에게 '우주에서 똥 싸기' 에 대해서 일러주니 책을 보여달라고 하더군요. 역시나 '똥'이라는 재치있는 소재가 어린 동생에게도 통한 듯. 그치만 재밌는 부분을 읽고선 어렵다고 하는 동생입니다 ㅎㅎㅎ 과학을 좋아하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흥미로운 주제의 부분만을 골라 읽어보게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물론 읽고서 이야기해주는 것이 가장 쉽긴 하겠지만요!

 

 


 

우주만찬에 대한 내용과

+ 가장 충격적이었던 '우주에서 맨몸으로 탈출하기' 편 까지

 

"가장 최근의 우주 왕복선 탈출 시스템은 승무원들이 긴 장대에 매달려 선체 밖으로 빠져나와 날개에서 멀리 떨어지게 한다. 은퇴한 항공 우주 엔지니어이자 우주 역사가인 테리 선데이는 이 방법은 우주 왕복선이 일정 고도를 유지하면서 안정 비행을 하고 있는 경우에만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 "그리고 안정 비행을 하고 있다면, 무엇 때문에 굳이 우주왕복선에서 탈출하고 싶겠어요?" -333p

 

 

저는 이 책이 일반적으로 우주여행에 대해서 상상하는 것들과는 달리 우주여행의 이면과 배경, 다소 사소하게 보일 수 있는 것들을 다루었기 때문에, 오히려 저같이 과학과 친하지 않는 사람들이 쉽게 과학을 접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에겐 조금 어려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쉽게 책장을 후다닥 넘길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고 '내가 이 부분을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반면에 흥미로운 부분도 많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 과학에 대한 호기심도 생겼고 새롭게 알게된 것들도 많이 있네요. 아마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생각지 못했던 우주비행의 뒷모습 들을 통해 즐거움을 더욱더 많이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메리로치의 호기심, 우주생활을 실험으로 느낄 수 있는

<우주 다큐> 북 트레일러 영상입니다.

 

http://youtu.be/df-q8J2-vBc

 

"나는 인간 정신의 숭고함을 믿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전쟁, 광신, 탐욕, 쇼핑, 자기중심 주의. 나는 그저 두 손을 모으고 '우리는 할 수 있다'라고 호언장담하는 부류의 인간에게 충동되어 돈을 물 쓰듯 쓰는 터무니없는 과소비에서 빗나간 숭고함을 본다. 그렇다. 돈은 지궁서 더 잘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정부가 비축한 돈이 과연 언제부터 교육과 암 연구에 쓰였을까? 돈은 항상 낭비되기 마련이다. 이제 화성에 좀 써보자. 밖으로 나가서 실컷 놀아보자." - p. 413 by. 메리 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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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패배자 - 한 권으로 읽는 인간 패배의 역사
볼프 슈나이더 지음, 박종대 옮김 / 을유문화사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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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씁쓸하다고 생각되는 단어들 중엔 아마도 '패배'라는 단어도 있을 것 같습니다. '졌다'라는 말보다도 패배라는 말 한마디는 왠지 더 짜증나게 보이는 단어에요. 그런데 이걸 사람에 붙이니까 느낌이 확 오네요. 누군가에게 '넌 패배자야' (사실 이렇게 말하는 건 번역투같지만) 라고 말하면 따라올 그 사람의 반응이 ........... 상상하기도 무서워요....ㅋㅋ 어쨌든 이 책에서는 패배자라는 모욕적인 단어에 '위대한'이라는 말을 붙여 조금은 순화시켜놓았습니다. 그렇지만 모순된 의미를 가지게된, 여전히 강렬한 제목에 끌려서 이 책을 읽게 되었네요. 아무래도 상반되지만 서로 극적인 의미가 붙은 탓인듯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이 패배자라는 칭호를 가지게 되었는지, 위대함이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해졌어요.

이 책 <위대한 패배자>는 역사 속 패배자들의 패배이유에 맞추어 그들을 분류해 놓았습니다. 영광스러운 패배자들, 왕좌에서 쫓겨난 패배자들, 가까운 사람에게 내몰린 패배자들, 세계적인 명성을 도둑질당한 패배자들 등 종류는 다양합니다. 궁금하여 책을 펼치니 다른 책들보다 조그마한 글씨에 조금은 강의서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어 지루해지는 찰나에 관심있던 인물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재밌는 이야기들도 찾게 되었습니다. (물론 지루한 부분도 있긴 있어요. 집중력 최고 발휘해서 읽으려고 안간힘 썼답니다 ㅎ.ㅎ)

 

 

인상깊었던 패배자들. 

 

 

열대우림의 피투성이 구세주 체 게바라

단두대의 제물이 된 사랑스러운 인간 루이 16세

토마스만의 그늘에 가려 살게 된 하인리히 만

괴테에게 발길질당한 천재 작가 렌츠

사후에 세계를 평정한 탕아 빈센트 반 고흐 

 

 

 

 

 

 

 

 

 

 

 

 

 

 

 

 

 

관심이 있었지만 직접 찾아보기는 힘들었던 사람들에 대해서 알게 되고 평소에는 관심이 없던 (이 이유가 세상에선 패배자였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에 대해서 알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역사속 사실들과 실제로 남긴 말들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답니다. 물론 한 사람의 작가에 의해서 골라내진 패배자들이기 때문에 의견은 달라질 수 있겠으나 사람들의 관심밖에 나게 된 역사 속 인물들에 대해 새로 조명한 점에 대해서는 배우는 입장에서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제목과는 관련이 없지만 공감가는 말들 또한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의 이야기를 군더더기 없이 가장 간결한 언어로 만들어내는 것은 에베레스트 산을 깎아 평지로 만드는 것만큼이나 힘이 든다. 너무 힘에 겨워 펑펑 운 적도 있었다. 문장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심장이 쪼그라질듯이 아팠다. 얼마나 그런 경우가 많았던지! 망할 놈의 문장 같으니! - 이사크 바벨

 

하나의 삶 이상을 살았던 사람은 한 번 이상 죽어야 하는 법이다 - 오스카 와일드

 

대중은 억압의 강도가 줄어들 때 그 억압적인 법을 무너뜨린다. 프랑스인들은 상황이 점점 더 나아질수록 그 상황을 더 견디기 힘들어했다. 혁명을 통해 생겨난 정부는 거의 항상 그 이전의 정부보다 낫다. - 알렉시 토크빌

 
     

 

 

 

 

헨리포드가 한 이 말은 책에 소개된 위대한 패배자들에게 모두 적용되지는 않았네요. 한번의 실패로 패배의 나락으로 빠져든 역사속 인물들도 있으니까요. 다시 영리하게 출발할 수는 있었으나 승리자가 되지는 못했어요. 이들이 실패 후 새롭게 출발해서 승리를 쟁취했다면 '위대한 패배자'가 아니라 '역전의 승리자'가 되어야 했으니까요. 생각해보면 결국 과정에 초점을 맞춘 '위대한'과 결과에 초점을 맞춘 '패배자' 라는 말이 합쳐진건데.. 작가는 위대한이란 단어에 조금 더 힘을 실어준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책의 앞과 뒷부분의 '안티히어로에 대한 예찬'에서 볼 수 있어요.

 

 

 

 

위대한 패배자라는 말은 다소 비꼬는 식의 반어법이 아니라 예찬이었어요.

 

 "승리자로 가득 찬 세상보다 나쁜 것은 없다. 그나마 삶을 참을 만하게 만드는 것은 패배자들이다."

결과만을 바라보고 승리만을 추구하는 우리들에게 다시한번 외쳐볼 수 있게 만드는 대목이에요. 어쩜 우리일지도 모르는, 세상에 가득찬 패배자.... 작가는 역사 속 인물 들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위로를 남겨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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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 이병률 여행산문집
이병률 지음 / 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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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좋다, 라는 말은 당신의 색깔이 좋다는 말이며, 당신의 색깔로 돌아가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당신 색깔이 맘에 들지 않는다, 라는 말을 무의식적으로 했을 경우, 당신과 나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지켜야 하는 사이라는 사실과 내 전부를 보이지 않겠다는 결정을 동시에 통보하는 것이다. 색깔이 먼저인 적은 없다. 누군가가 싫어하는 색깔의 옷을 입고 있다고 해서 그를 무조건 싫어할 수 없듯이 서로가 서로의 마음에 어떤 색으로 비치느냐에 따라 내가 아무리 싫어하는 색깔의 옷을 입었더라도 그 기준은 희생될 수 있으며 보정될 수 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데는 방향이 문제인 적은 있어도 색깔이 문제일 수는 없다 (자주 방향과 색깔이 혼동되는 건 사실이다.)

 

 

몇년 전에 서점의 에세이 서가에서 시간을 때우다 이병률 작가의 '끌림' 이란 책을 본 적이 있어요.

그때 예쁜 사진과 좋은 글들에 반해서 살까말까 고민하다가 위시리스트에 넣어놨었는데 딱히 메모해놓지 않아서 잊혀져버렸나봐요. 그 기억속의 '끌림'이란 책이 두번째 편으로 나왔다길래 이번엔 서점에 바로 달려가서 데려왔습니다.  '끌림 두번째 이야기' 이지만 제목은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라고 나왔네요. 좋아요. 에메랄드 빛 표지도 너무 맘에 듭니다.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는 책 표지에도 써있다시피 '여행산문집'입니다. 작가가 여행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들과 시선들을 카메라에 담고 그것들을 엮어놓은 책이에요. 얼마전 여행의 매력을 진하게 느끼고 온 터라 책 속의 여행기록들을 보니 공감과 부러움을 함께 느끼게 되네요.. 세상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느끼고 쓸쓸함도 느낀 그의 흔적들.. 그 기록들은 자유롭게 여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지만 불평은커녕 대리만족의 행복을 저절로 느낄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리고 그 여행스토리든 장소의 소개든 딱딱하게 설명되지 않는다는 게 제일 좋았습니다. 여행하면서 들어간 '평범식당'에서 만난 부부이야기, 공항 건물을 지나자 마자 아바야라는 의상을 벗어던지더라는 아랍 여인들의 이야기, 22살의 부랑자 청년이야기들이 자꾸 기억에 남아요...  

 

여행이란 말을 자꾸 하게 되니까 갑자기 동네 서점에서 여행서적을 며칠에 걸쳐 책 속으로 들어갈 듯이 읽고 있던 아저씨가 생각이 나네요. 여러 나라들의 여행서적을 번갈아 읽고 있던 아저씨. 그 분은 어떤 이유로, 어떤 마음으로 읽고 있었을까 궁금해집니다.

 

 

 

 

 

 

 '스무 살, 카메라의 묘한 생김새에 끌려 중고카메라를 샀고 그 후로 간혹 사진적인 삶을 산다. 사람 속에 있는 것, 그 사람의 냄새를 참지 못하여 자주 먼 길을 떠나며 오래지 않아 돌아와 사람 속에 있다.[YES24 제공]' 

 

작가의 소개처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에서는 세상의 여러 사람들, 그 사람들이 사는 풍경들, 겪고 들은 사랑이야기 그리고 작가 개인의 고민과 생각들이 보여집니다. 그리고 그 시선도 아주 따뜻합니다. 게다가 사진들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절로 좋아지네요. 사진들을 찍고 바로 글귀를 적어나갔는지 아니면 쓴 글에 사진들을 끼워맞췄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진과 글이 오묘하게 어우러져서 슬쩍슬쩍 감성을 건드리는 듯 합니다.

 

 


 

 

"말 한마디가 오래 남을 때가 있다. 다른 사람 귀에는 아무 말도 아니게 들릴 수 있을 텐데 뱅그르 뱅그르 내 마음 한가운데로 떨어지는 말. 한마디 말일 뿐인데 진동이 센 말. 그 말이 나를 뚫고 지나가 내 뒤편의 나무에 가서 꽂힐 것 같은 말이."

 

 

너무너무 공감가서 철렁했던 이 말.

 

 


 


 

 

"나도 나 스스로를 M사이즈라고 여기는 적이 많다. 옷도, 사람도 실제로는 L이어야 하지만 때로 XL이겠지만 나는 나를 M이라는 상태로 놓아둔다. 나는 이세상에서 나란 존재가 눈에 띄지 않는 게, 그 상태가 감사하다. 평범이란 말보다 큰 말이 세상에 또 있을까."

 

 평범함을 추구하는 그,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써내려가려고 글을 썼는데 덜컥 그 길에 접어들었다는 작가. 페이지도 목차도 없는 여행산문집을 쓰는 작가. 리뷰를 쓰다보니 그의 시집도 읽고 싶어지네요. 시인 이병률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도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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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건 사랑이야기
자크 스테른베르그 지음, 권수연 옮김 / 세계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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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크 스테른베르크 (Jacques Sternberg). 벨기에 국적의 폴란드계 유대인 작가가 쓴 사랑에 관한 콩트집인데요. 특이한 점은 프랑스어로 책을 쓴다고 하는 것이네요. 책의 제목이 로맨스소설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한.. 약간은 애매한 제목에 끌려서 읽게 되었답니다. 이 책을 읽고나니 몇달 전 <다른 남자>라는 사랑에 관한 단편집을 본 것이 떠오릅니다. <더 리더>의 작가인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책이었어요. 그 당시 제가 리뷰를 쓸 때 부제를 '사랑에 관한 여섯가지 고찰'이라고 붙였었는데요. ' 그 책이 저에게 '이런 것도 사랑이구나'하는 생각을 주었다면 이번엔 '사랑이 도대체 뭐야?!'하고 의문이 들게하는 책입니다. 이 두 권의 책은 각기 다른 방법으로 사랑의 여러 단면을 보여주고 있어요.

 

40여개의 아주 짧은 이야기로 구성된 이 책은 콩트라는 단어의 뜻과 같이 발칙한 유머, 기지를 발휘하는 작가의 센스도 엿볼 수 있고 가끔은 따뜻한 이야기들도 보입니다. 사실 콩트로 시작해서 콩트로 끝나는 모음집이기 때문에 정말 재미있는 편도 있었고, 보다가 훅 하고 어이없게 끝나버리는 편도 간혹 있었고 노골적인 장면으로 약간 민망해지는 부분도 있었어요. 하지만 전 읽고나서 '참 이 책은 사람들의 사랑에 관한 수닷거리 같다' 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우리 일상 속에서 한 순간에 지나가는 설레임, 아픔을 불러오는 것들,  배신과 거짓말, 쓸쓸함과 무관심 그리고 행복을 포함한 모든 감정들이 담겨진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간혹 사람들은 가슴 속에 무언가 남겨두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 괜찮아' 하는 것처럼 우스갯소리로 얘기하곤 하잖아요? 딱 그 장면이 떠오르더라구요. 제목의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끔은 우스워도, 허무해도, 슬프거나 기뻐도, 망상 속 이야기 같아도 '그렇지만 이건 사랑이야기'라는 것을요.   

 


 

가장 좋게 보았던 세밀한 감정묘사.

 

 

"... 내 희망은 이내 산산조각이 났다. 내 온몸이 굳은 기계로, 뇌는 물렁물렁한 스펀지로 퇴화하는 느낌이었다. 내가 일어섰음에도 여자는 자리에 못박힌 듯 앉아 있었다. 문은 이미 열렸다. 나는 뒤를 돌아 여자에게 마지막 눈길을 던졌다. 명백한 의심, 거대한 무력감에 빠진 그녀가 내게 실망에서 비롯된 샐쭉한 표정을 지어보이고 있었다. 그녀의 펼쳐진 양손이 순간, 위로 쳐들리며 짙은 회한의 감정을 표현했다. 굳어버린 몸으로 목청 높인 소리보다 더 아프게 '왜?!'를 외치는 그녀처럼, 아주 천천히, 그토록 슬프게" - 노선 (Le trajet) 편

 

"무슨 대답을 해야 할까? 그리고 무슨 생각을 해야 할까? 나는 그냥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가 내 곁에서 왜 그토록 느긋해지는지, 그녀가 왜 자신의 처지에 대한 말은 한마디도 없이 마치 우리가 이미 오래 전부터 이 만남을 계획이라도 했던 양 나를 그녀의 하루 속으로 끌어들였는지, 나로선 잘 알 수가 없었다 " - 거짓말 (Le mensonge) 편

 

 


 

"250쪽이 넘는 장편소설을 쓰는 건 어지간한 재능만 있는 작가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270편의 콩트를 써야 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건 리듬이 아니라 영감이다. 즉 270가지의 아이디어가 필요한 것이다. " - 자크 스테른베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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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좀비 습격사건 휴먼앤북스 뉴에이지 문학선 3
구현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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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엄청나게 재밌는 좀비물을 발견했네요. 작가 이름은 생소한데... 조금 가볍게 오락성으로 읽을만한 이북을 찾다가 이 책을 발견했어요. <대학로 좀비 습격사건> 표지부터가 무서운 좀비떼들을 상상케 하는데요. 역시 글로 읽어서 그런지 공포는 시각적인 것들보단 덜하지만 스릴감과 속도감있게 이야기를 이끌어내주는 작가의 솜씨는 대단했던 것 같아요.

 

이야기는 좀비의 갑작스러운 발생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역시 그들의 세력이 확장되어갑니다. 장소는 대학로.

그리고 좀비의 발생과 관계된 그들, 정치인들, 일상적인 사람들 (택배기사, 연지, 콜걸, 뚱보) , 경감과 형사 기자 등 많은 사람들이 얽혀서 이야기는 흘러갑니다.

 

 

 그는 다시 한 번 문제의 동영상을 재생시켰다. 지지직, 하는 소음이 나면서 적외선 카메라가 야간모드로 촬영한 녹색 화면이 모니터를 메웠다. 여자가 좀비에게 물리고, 좀비가 된 여자가 카메라맨을 물고, 물린 카메라맨이 좀비로 변하는 5분 분량의 동양상. 이게, 가짜가 아니란 말이지. 그럼 도대체 저것들은 뭐지? 신종 독극물인가? 바이러스? 도대체 살인 동기가 뭐야?

 

이 책에서 신선한 충격을 느꼈던 장면은 여기서입니다. ↓

 

 남자가 연지의 낡은 스탠드를 들어올려 그대로 여자의 머리통을 갈겼다. 한때 미래와 비전과 사랑을 공유했던 여자의 머리통이 남자의 노골적인 구타로 모로 꺾였다. 그 모습에 남자가 또 한번 비명을 질렀다. 머리가 꺾였는데도 여자는 계속 몸을 움직이며 죄책감과 공포에 휩싸여 몸을 가누지 못하는 남자를 덮쳤고, 그의 목덜미를 정확하게 물어뜯었다. 연지는 남자의 얼굴이 여자의 얼굴처럼 변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방금 전의 다툼을 깡그리 잊고 다시 친밀한 커플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좀비가 물고 변해가고 같은 좀비가 생기는 '전염'의 모습이 재미있게 표현되있네요. 그밖에도 호피팬티를 입은 좀비, 목걸이 좀비 등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들도 그려집니다. 정치인들을 풍자하는 모습도 보였고 ..

그냥 재미로 보기에는 놀거리들이 너무나 가득한 좀비소설이었어요. 장면들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표현이 잘 되어 있었고 속도감도 있는게, 꼭 영화로 만들어도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소설이었어요. 만약 영화로 만들게 되도 식상한 좀비영화는 안될 것 같아요. '모체' 와 '복제'라는 엄청난 소재가 숨겨져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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