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그래피 매거진 7 엄홍길 - 엄홍길 편 - 나는 살아서 돌아왔다, Biograghy Magazine
스리체어스 편집부 엮음 / 스리체어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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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체어스 편집부 (엮은이) | 스리체어스 | 2015-12-22

 

 

 남겨진 생각들

 

 당연한 얘기지만, 세상엔 제각기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속된 말로 '무언가에 미쳐 사는' 사람들도 무척이나 많다. 그 무언가를 개인적인 기준으로 '이해할 수 있음'과 '이해할 수 없음'의 범주로 나눌 수 있다면, 산악인의 경우 '등산'은 전자에 '고산 등정(登頂)'은 후자에 해당한다. 산, 그 자체에 매료되어 취미로 산행하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정상을 오르는 짜릿함을 느끼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혹은 경험하기도 싫은 '고산 등정(登頂)'은 내 기준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나라에 있는 산들보다 몇 배는 더 높은, 세계의 고산들을 온갖 고통과 재해에 맞서 오르는 것은 분명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물론 산을 맨 걸음으로 올라본 적도 없고, 그저 케이블카에 타서 정상으로 곧장 올라가 사진만 찍을 줄 아는 나이니 뭘 알겠는가. '산'이라는 것은 내 일상에서 동떨어진, 가까이할 수 없고 그저 경치로만 존재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러니 산악인들에 대해서도 평소에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었고, 어떤 프로그램에 누군가가 등장하면 반짝 관심을 보이다가 금세 사그라지기 일쑤였다. 그러나 『바이오그래피 매거진』 7호, 엄홍길 편을 읽고 나선 꽤 길게 여운이 남아 있다.

 

 

 

 그동안 정치, 문화, 과학 등 다방면의 인물들을 조명했던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이 이번 호에서는 산악인 '엄홍길'을 주인공으로 삼았다. 영화 『히말라야』의 개봉으로 산악인들의 관심이 살짝 힘을 얻고 있는 찰나였다. 히말라야 14좌를 세계 8번째로 등정한 우리나라 산악인 '엄홍길'을 대표하여, 산악인들의 인생과 다양한 것들을 담았다.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히말라야 14좌, 그리고 위성봉이라 불리는 2좌를 설명하기도 하고, 고산 등반의 상세한 방법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모르는 부분이 많았던 일인만큼,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도 많았다. 산을 오르는 것도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 등정주의와 등로주의로 나뉜다는 것, 비용도 만만찮게 들어간다는 것, 업체로부터 후원을 받는다는 것. 그저 개인적인 도전이라고만 여겼던 등정이 이렇듯 많은 요건을 끼고 있을 줄은 상상을 못 했다.

 

 

 생각했던 것만큼 고난이 가득했던 그의 완등 기록을 살펴보며 상상 속에서 오들오들 떨리는 발을 부여잡고 쉽지 않은 독서를 계속해야 했다. 죽음과 고독, 공포, 그리고 환희, 글로 보는 것보다 더 혹독하고 광포한 산에 '미쳐 사는'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고, 알면 알수록 더욱 이해가 가지 않기도 한다.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은 역시 특유의 서술과 구성으로, '엄홍길'이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를 독자에게 넘기고 있다.

 내가 느낀 그는, 정신력이 무척 강한 사람인 것 같다. 실제로는 순하디순한 사람이지만, 산에 올라가면 다른 사람으로 돌변한다는 동료의 인터뷰를 보고는 그의 성격이 또 다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산에 올라가면, 오로지 신성한 산만 보고 거침없이 오르는 저돌적이고 냉정한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목표에 대한 의지가 무척이나 강한 사람 같기도 하다. 그와 함께한 동료와 셰르파들의 죽음이 여럿 있었다는 사실에 관하여 사람들은 그의 저돌적인 스타일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고산의 상황이란 개인의 안위를 살피기에도 어려운 것이니 절대 다른 이들의 죽음에 그를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영화 <히말라야>의 소재로도 쓰였던 故 박무택 대원의 시신 수습 과정도 상세하게 나와 있다. 개인의 목숨을 부지하기도 힘든, 눈 덮인 고산에서 누군가의 시신을 수습해온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라는데, 그는 해냈다. 대단한 사람이다. 산에서의 그의 모습이 어떠했든, 진심이 담긴 이 숭고한 등반에 고개가 숙여진다.

 

 

​ 이 책을 읽다 보니 뜬금없이 '셰르파'라는 존재에 대해 더욱 마음이 갔다. 기록은 다른 이들에게 넘겨주고, 죽음의 위험 속에서도 무거운 짐을 인 채, 길잡이 역할을 하는 그들. 이름을 남길 수 없는 그들의 족적이 궁금해진다. 셰르파를 소재로 한 책이 어디 없을까, 찾아봐야겠다.

​ 끝으로, 등반을 인생에 비유한 『바이오그래피 매거진』의 서문을 발췌한다. 책의 처음을 장식하고 있는 이 책의 서문은 언제나 가슴을 울린다.

​입학과 졸업, 취업과 승진, 결혼과 출산, 인생의 고비마다 우리는 크고 작은 목표를 세운다. 대체로 일의 형편이나 과정보다는 출발점을 겨냥한다. 우리는 기껏해야 출발하는 장소에 도착하기 위해 애면글면한다. 그리고 정상에 오르면 만사를 작파한다. 언젠가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은 좀처럼 하지 않는다. 여기에 비극이 있다. 정상은 오래 머물 곳이 못 된다. 폭양이 내리쬐고, 바람이 휘몰아치고, 몇 사람이 서 있기도 힘들 만큼 비좁다. 대저 정상은 머물기 위한 곳이 아니라 거쳐 가는 곳이며, 내려가기 위해 올라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입생과 신입사원과 배우자와 부모가 되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정작 어려운 건 성실한 학생과 뛰어난 사원과 훌륭한 배우자와 인자한 부모가 되는 일이다. 다시 산에 빗대자면 정상에서 자격을 득하고 하산길에서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다. 정상 정복이 아니라 오르고 내려가는 과정이 인생길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 Word by Lee Yeondae, Publisher.

 

 

Written By. 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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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앤드루 포터 지음, 김이선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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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루 포터 (지은이), 김이선 (옮긴이) | 21세기북스 | 2011년 3월 | 원제 The Theory of Light and Matter

 

 

 남겨진 생각들  

 

 

 제목을 보면 과학책인 것 같지만, 과학책은 아니다. 그렇다고 과학과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옮긴이에 의하면, '리처드 파인만'의 과학 이론 중 하나인 <양자 전기 역학 : 빛과 물질에 관한 이상한 이론>이란 게 존재했다고 한다. 그 내용은 이렇다. "어느 누구도 빛 입자가 자신의 경로를 선택하는 과정을 알지 못하며, 특정 입자의 경로를 예측할 수 없다." 나는 이 글을 볼 때까지 과학에 해당하는 어떤 지식의 문장이, 인생에 대입할 수 있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을 다루는 소설들은 많다. 살면서 벌어지는 불가피한 우연들, 그것에 대처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많은 소설이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묘사의 방식은 작가마다 문체마다 현저히 다른데, 작가 '앤드류 포터'의 방식은 무척 특이하다. 어두운듯하면서도 온전히 까만색은 아니고, 밝게 빛나고 있지는 않다. 시간이 흘러 지나갔지만,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을 회상하는 방식이 그렇다. 길을 걸어가다 숨겨져 있던 구렁 속으로 빠지듯 아무렇지 않은 일상에서 떠오르는 서늘한 기억들을 (「구멍」), 그와 같이 어떤 사물 혹은 글자로 순간의 선택에 대한 당위성을 찾아갔던 기억 (「코요테」) 을, 작가는 부드러운 손길로 건져낸다.

 후회는 필연적으로 우리 곁에 다가온다. 후회 없는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들은 흘러간 것을 그리워하거나 되돌리고 싶다는 것보다는 그저 응시하고 있다. 누군가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또 다른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도, 얼마만큼의 개입이 필요한 것인지 (「아술」) , 그것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알면서도 행하게 되었던 미련한 모든 일과 자기방어에 대하여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느꼈던 것을 응시하며, 아주 건조한 말투로 그려낸다. 후회가 남은 기억들은 현재에 와서야 아주 큰 타격으로 우리의 일상을 내리친다. "그럴 때마다 발을 디디는 곳을 보지 않았던, 아래쪽에 무엇이 있는지 염두에조차 두지 않았던 우리의 대책 없음에, 우리의 눈먼 행동에 아직도 몸이 떨려온다." (「외출」) 그때는 대단치 않다고 생각했던 모든 순간의 말과 행동들이, 삶에 이면 속에서 툭 하고 발견되는 것이다. 그러한 움직임을 느껴보지 않은 이들은 아마 없을 것이기에, 이 소설들은 마음 속으로 깊이 다가온다.

 

 

 그러나 어딘가 싸한 이야기들이 어둠 속에서 빠져나와 빛나는 어떤 것으로 환기되는 것은 이런 부분들이다. "그 불빛, 자동차,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안다는 그것은." (「폭풍」), 혹은 "돌아왔네", "돌아왔어" (「코요테」)의 대화들 속에서, 툭툭 털어내는 손짓을 우리는 본다.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회상 속에서도, 그때의 기억을 품을지라도 그것에 끔찍해 하며 살아가기에는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흘러가는 시간을 어쩔 수 없음을, 지나간 기억을 바꿀 수는 없음을 인지하고.

 

 

 끊어 읽어도 좋은 '단편'들이지만,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은 처음부터 끝까지 쭉 읽어내도 좋을 것이다. 단편과 단편이 비슷한 부분으로 연결되고, 마지막 문장들은 그저 책을 덮어버릴 순 없게 만드는 진한 여운들이 있다. 이제는 책장에 쏘옥 박혀 있는 그의 신작 장편 『어떤 날들』을 읽어봐도 좋을 듯하다.

 

 

괜찮을 거야.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지만 나는 내 품에 안긴 그녀의 몸이 떨리는 것을 느낀다. 나는 그녀가 아술에 대해, 이제 그 아이에게 벌어질 일에 대해, 그 아이의 부모에 대해 해야할 말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나는 자기 집 부엌에 서 있는 그 아이의 아버지, 전화기 너머로 멀게 들려올 그의 목소리를 상상한다. 괜찮을 거야, 나는 다시 말한다. 그냥 찰과상이야. 그러나 나는 뻣뻣하게 굳어버린 그녀의 척추를, 등의 긴장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렇게 몇 분여를 보낸 후에야 우리는 마침내 뒤돌아 우리의 지나간 행동을 직면한다. (89쪽, 아술)


나는 그 순간, 그제야 우리 사이에 지금껏 말을 넘어선 교감이 존재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나는 그때 그가 너무나 쉽게 나를 이해해버리는 것 같아 화가 났지만, 그가 훗날 내게 그랬다. 만약 내가 정말로 모든 일을 끝내고 싶었다면 자기에게 전화를 하거나 편지를 쓰는 것으로 끝을 보았을 것이라고, 자신의 아파트로 직접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러나 그날 밤 그의 아파트 밖 거리에 서 있을 때 나는 내가 그와의 모든 것을 끝내고 싶어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믿은 것은 그래야 옳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가 내게 그런 물음을 던지고 나를 바라봤을 때 내가 대답하지 않은 것은 고집이거나 고의적인 거부가 아니었다. 그가 그 순간,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보다 나를 더 잘 이해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122쪽,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태너와 내게는 좋은 여름이었다. 최고의 여름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금요일 밤이 오기 전까진 거의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었다. 푹푹 찌는 날씨 탓에 낮에는 집 안에 틀어박혀 공포 영화를 보고 아이스티를 들이부었으며, 밤이면 태너가 모는 트럭을 타고 다니면서 돌아오는 금요일에 할 일을 계획했다. 우리가 시간을, 인생을 허비하고 있다고 부모님들은 말했는데, 그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 싶었다. 내년이면 고등학교 졸업반이 될 터였기 때문에 벌써 우리는, 우리가 별 볼일 없는 정점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자각하고 있었다. 그 여름은, 우리가 아직 용돈을 받고 일자리를 얻지 않아도 될 만큼 어릴 수 있는 마지막 여름이었다. (174쪽, 외출)

잠시 나는, 어린 시절 그곳에 앉아 아버지가 일터에서 돌아오기를 디라디너 지난날의 늦여름 오후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언덕 아래로 아버지의 자동차 전조등 불빛이 보일 때 누나가 미소짓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기쁨처럼 보였다. 그 불빛, 자동차,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안다는 그것은. (251쪽, 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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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읽는 밤
장샤오헝 지음, 이성희 옮김 / 리오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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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샤오헝 (지은이) | 이성희 (옮긴이) | 리오북스 | 2015-12-24

 

 

 남겨진 생각들  

 

 

 제목이 예쁘다. '밤'과 '철학'이라는 단어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속지를 들춰보게 할 멋진 조합이 아닌가. 하루 24시간을 조각조각 내어 빠르게 스쳐 가는 지금의 시대, 얼마 남지 않은 자유시간에 오로지 자신만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철학'할 시간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이 책을 읽음으로써 '밤에 철학을 한다'는 부푼 기대감과 함께, 어렵겠지만 깊이 배우겠다는 마음가짐을 안고 책을 열었다. 그러나 부담감은 금세 사그라졌다. 철학적 개념을 속속들이 설명하며 머리를 쥐어짜게 하는 깊이 있는 철학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인생학'에 가까웠다.

 

 

 '인생학', 흔히들 자기계발서라고 부르는 이런 책들에 대해서 말들이 많지만, 나는 책에서 좋은 것은 뽑아들이려 노력하는 편이다. (좋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성향 자체가 현실에 안주하고 그다지 큰 도전은 하려 들지 않으며, 목표지향적이거나 큰 의지가 없는 편이어서, 정기적으로 자연스럽게 이런 부류의 책들을 집어 드는 습관이 있다. 단지 내가 싫어하는 것은 뜬구름잡기식의 교훈이거나, 비슷한 말을 반복해서 계속 전한다거나 하는 식의 자기계발서인데, 『철학 읽는 밤』은 그런 책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인생학'이지만 '동양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어 나름의 분위기가 있달까.

 

 

 저자 '장샤오헝'은 중국인들의 정신적 스승인 원로학자 '지셴린', 대문호 '루쉰' 등 '북경대학교'를 스쳐 간 인사들의 발언이나 명언들을 중심으로, 구전된 이야기들까지 이 책에서 다양하게 전한다. "당연한 것 아냐?"라고 되물을 수 있는 교훈도 있지만, 동양철학에 기반을 둔 자유롭고 강인한 인생학을 담은 교훈들은 흔들리는 마음을 단단히 잡아주는 것들이 많다. 소박함과 초연함, 평정한 마음, 포부를 향한 꾸준함, 인생의 진리를 설명하는 주옥같은 문장들이 기억에 박혔다. 특히, "태양을 잃었다고 울지 마라, 눈물이 앞을 가려 별을 볼 수 없다"라는 9장의 소제목은 교훈의 의미는 어디서 많이 듣던 것이지만, 표현이 다르니 역시나 오래 담고 싶은 인생의 교훈이 된다.

 반면 아쉬운 점이 있다면, 뜬금없이 서양의 작가, 이야기들이 등장한다거나, "어디에 살던 아무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부분이었다. 그 또한 가르침을 주는 교훈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북경대와 중국을 대표한 '지혜의 보고'를 담고 있는 만큼, 분량이 줄어들더라도 이 중심적인 분위기를 전체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면 더 좋았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12개의 테마로 나뉜, 400장의 꽤 많은 분량을 자랑하고 있는 『철학 읽는 밤』을 매일 몇 장씩 잠이 들기 전에 읽었다. 명사들의 가르침을 전하고, 명언을 설명하는 식의 책으로는 꽤 두꺼운 책이지만 하루를 정리하는 '밤'에 읽으면 무척 좋을 것이다. 특히, 매일이 바빠 자신을 돌아볼 시간도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감동적인 글로 다가올 것이다.

 

 

생각해보면, 돈과 권력에 휘둘리는 세태가 새삼 놀라운 것도 아니다. 권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사회 시스템 안에서 권력자에게 빌붙어 아부하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세상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이익을 주는 사람과 교제하기를 원한다. 만약 내가 부귀영화를 누린다면 내 집 앞은 내게 조금이라도 연줄을 대보려는 사람들로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룰테지만, 반대로 내가 곤궁하고 초라해지면 사람들은 자연히 나를 멀리하려 할테다. 내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 부담이요, 짐이 되기 때문이다. 이 모든 원리를 이해한다면 이 세상의 세태를 담담하게 대할 수 있을 것이다. 타인의 잘못된 모습 때문에 내 인생의 아름다운 색채를 잃어버릴 필요 없다. 야박한 세상사와 인간의 본성에 너무 집착하지 말길. 인생은 훨씬 더 간단하고 홀가분한 것이니 말이다. (52쪽)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소박한 생활이란 물질적으로 빈궁한 생활, 즉 근근이 끼니나 때우고 잘 먹지도, 잘 입지 못하는 생활일 것이다. 그러나 사실 소박한 삶과 빈궁한 삶은 완전히 다른 뜻이다. 빈궁한 생활이 열악한 생존 환경에서 물질적으로 가난한 삶을 사는 것을 뜻한다면, 소박한 삶은 양호한 생존 환경에서 삶의 본질을 부단히 지켜나가는 삶을 뜻한다. `박朴`이란 꾸밈없음을 말하고, `소素`는 간단하다는 뜻이다. 꾸밈이 없고 간단한 것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모습이 아닐까. (76쪽)

초연함이란 영예와 모욕에 크게 반응하지 않는 태연함과 대변함이며, 온갖 고난을 겪은 후 얻게 되는 성숙함과 침착함이고, 또한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평정한 마음이다. 담담하다는 것은 명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명리를 여유롭고 유연한 태도로 관망하며 그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이를 얻고, 또 필요할 경우 집착하지 않고 이를 내려놓을 수 있는 모습이다. 오직 이런 마음을 가질 때만 명리에 끌려다니는 법 없이, 자유로이 세상을 유영할 수 있다. (117쪽)

포부는 낯선 지역을 항해하는 항선을 비추는 밝은 등이고, 칠흙같은 깊은 밤을 밝히는 별빛이며, 아름다운 인생을 그려내는 섬세한 붓이다. 이상과 목표와 진취적인 기상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분투해야 할 명확한 목표가 있다.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으로 나아갈 용기와 신념을 얻으려면 먼저 인생의 목표와 포부를 가져야 한다. (2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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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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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지은이) | 푸른책들 | 2004-06-21

 

 

 

남겨진 생각들  

 

 

 작은 유진은 그때의 일을 모두 잊었다.

 큰 유진은 그때의 일을 똑똑히 기억한다.

 작은 유진의 부모는, 아이의 몸을 벅벅 문지르며 기억을 씻겼다.

 큰 유진의 부모는 "사랑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번번이 다독였다.

 

 

 유치원에서 일어난 큰 사건을 함께 겪었던 '유진'과 '유진'. 그들이 중학생이 되어 같은 교실에서 만났을 때, 그들의 부모가 각각의 방식대로 묻어둔 기억은 괘씸하게도 다시 떠오르기 시작한다. 둘에게 그때의 기억은 결코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을 '소름 끼치는 기억'이지만, 떠오른 기억에 대한 대처는 그 둘이 확연히 다르다. 기억을 온전히 보전하고 있던 '큰 유진'은 담담히 이야기한다. '작은 유진'은 '큰 유진'의 이야기를 듣고, 조각조각 나뉜 기억에 괴로워한다.

 

 나무의 옹이가 뭐더냐? 몸뚱이에 난 생채기가 아문 흉터여. 그런 옹이를 가슴에 안구 사는 한이 있어두 다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162쪽)

 날카로운 것에 베여 상처가 나면 딱지가 생긴다. 흉한 딱지가 보기 싫어 자꾸 긁고 떼다 보면 더 선명한 흉터가 생긴다. 『유진과 유진』은 (나쁜) '기억'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상처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유진과 유진, 그들의 부모는 자식의 상처를 어떻게든 잊게 해주려 안간힘을 썼고, 그 방법은 확연히 달랐다. 아마도 부모들은 서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달랐다. 한쪽은 미숙했고, 한쪽은 성숙했다. 무조건 잊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음을, 알고 있는 탓이었다.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시간은 기억의 정착제가 아니라 용해제다". 기억과 시간이 만나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큰 작용이 일어난다. 기억은 시간에 의해 잊히기도 왜곡되기도 한다. 스스로 자각하지 못할 정도로. 하지만 두 소설은, 꼭꼭 묻어둔 판도라의 상자는 언젠가 틈이 벌어지게 마련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 틈으로 들어가 스스로 왜곡해 묻어둔 기억을 마주하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의 주인공 '토니', 그리고 어떻게든 묻어둔 기억을 '큰 유진'에게서 발견하는 『유진과 유진』 속 '작은 유진'의 배신감은 무척이나 컸을 것이다. 그러나 『유진과 유진』에서 중요한 점은 '배신감'이 어느 쪽으로 향하느냐는 것이다. 사건 당시, '유진이'들은 사리분별이 부족한 어린아이였고, 기억을 묻은 주체는 '부모'였다. 이 소설이, 단지 '청소년 소설'에만 머무르지 않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사랑해, 네 잘못이 아니야.". 이 시대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해야하는 말은 이것이 아닐까?

 소설의 후반부, 같은 기억을 공유한 '유진과 유진'은 '건우 엄마'를 이야기하면서 따뜻한 손을 맞잡는다. 표리부동한 인간들에게 분노하고, 아픔을 승화시키며 이 둘이 함께 걸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이들의 입장, 그리고 부모들의 입장, 기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청소년 소설'이라는 장르에 맞게 담담히 풀어낸 『유진과 유진』. 내가 읽어본 최고의 청소년 소설이다.


 

다음날, 난 그 일을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자존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누군가 날 도와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말해 보았자, `네 잘못이야`라는 대답을 듣게 될 것 같았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전부터 그랬다. 초등 학교, 아니 더 전인 것 같다. 그때부터 내 편은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를 지키는 방법은, 엘리베이터의 괴물처럼 더 강력한 것을 상상하거나, 공부 잘하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전교 1등도 나를 지켜주는 완벽한 방패나, 갑옷은 되지 못하는 것 같다. (53쪽)

나는 그 날 밤, 엄마와 아빠에게 그 이야기를 다시 해야 했다. 엄마가 울음을 터뜨리며 나를 안았고, 아빠는 주먹으로 벽을 쳤다. 그때 내 기분은 …… 슬프고 무서우면서도 달콤했던 것 같다. 세 살짜리 동생한테 엄마 아빠의 사랑과 관심을 빼앗긴 채 외로움에 떨던 때였으므로, 엄마 품에 안긴 채 울음 섞인 사랑 고백을 듣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었다.

"사랑해, 사랑해. 엄마가 우리 유진이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거 알지?" (73쪽)

"니가 그 일을 기억 못 해서, 느이 식구들은 영영 그러길 바랬지만 나는 내내 걱정이었다. 늙어서 노망난 것도 아닌데 파릇파릇하니 자라는 것이 지가 겪은 일을 기억 못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단다. 다 알구, 그러구선 이겨내야지. 나무의 옹이가 뭐더냐? 몸뚱이에 난 생채기가 아문 흉터여. 그런 옹이를 가슴에 안구 사는 한이 있어두 다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외할머니가 내 등판을 쓸었다. 갑자기 내 몸 군데군데 상처가 난 것처럼 여겨졌다. 엄마가 살갗이 벗겨지도록 내 몸을 닦았던 건 그 상처를 없애기 위해서였을까? (162쪽)


건우엄마가 했다는 말을 할 때 작은유진이는 내 손을 꽉 잡았었다. 그 손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엄마의 분노보다도 소라가 껴안아 줬을 때보다도 진정으로 위로 받는 느낌이 들었다. 이 아이는 또 다른 나인 것만 같다. 나는 작은 유진이의 손을 찾아 잡았다. 조그맣고 말랑말랑한 손의 느낌이 좋았다. 나는 그 애의 머리 위에 뺨을 기대었다. 우리가 서로에게 기대어 잠을 잘 수 있는 것, 이것만은 잘못된 일 같지도 후회스럽지도 않았다. 나는 아슴푸레한 새벽잠 속으로 빠져 들었다. (241쪽)

나는 못을 두드리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엄마에게 달려들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엄마는 허깨비처럼 내가 흔드는 대로 흐느적거렸다. 어하면 그대로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엄마에게 떨어진 나는, 이겼으면서도 눈두덩이가 찢어져 바닥에 누운 상대편을 볼 수 없고, 입이 부어 터져 승리의 기쁨을 말할 수 없는 권투선수 같은 기분이 돼 간신히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곤 침대 속으로 들어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썼다. 그제서야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주 오래 묵은 것 같은 슬픔이 실 꾸러미 풀리듯 끝도 없이 울음 속에 섞여 들었다. 그리고 나는 잠이 들었다. (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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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0
이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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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녜프 (지은이) | 이항재 (옮긴이) | 민음사 | 2003-07-05 | 원제 Первая любовь (1860년)

 

 

 

남겨진 생각들  

 

 고통을 수반하는 황홀함, 첫사랑

 첫, 이라는 수식어는 풋풋함과 황홀함을 동시에 선물한다. 그리고 고통 또한 수반한다. 그런데도 '첫'이 아름답고 아련한 것은, 지나온 시간 속에서 어떤 기억보다도 강렬한 추억과 잔상으로 남기 때문이다. <첫사랑>이라는 작품이 주인공 '블라지미르'의 회상으로 시작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의 나이 열여섯, '청춘의 용솟음치는 삶의 기쁨이 싹트기 시작할 때 (13쪽)' 한 여자를 만났다. 운명이었던 것 같았다. 연상의 여인인 '지나이다'는 자신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고, 그의 불 끓는 열정을 장난으로 되받아칠 만큼 당돌한 여자였다. 그의 사랑은 마치 복종이었다. 사랑에 빠지면 온 우주가 나를 위해 돌아가는 것 같다고 했던가. 마치 그 꼴이었다. 그녀를 사랑할수록 그는 어린애처럼 작아졌다. 하지만 그 고통에도, 연모하는 감정은 점점 뜨거워져만 갔다.

 어린 사랑은 고통과 실패로 얼룩진다. 첫사랑이 사라지는 것은 청춘의 증표가 사라지는 것이기에, 그녀의 부재는 모든 것이 바스러져 버린 고통이다. 하지만 청춘이라는 시기는 되려 그 사랑을 배움의 기회로 바꿀, 당돌함을 선물하기도 한다. 어쩌면 뻔하디뻔한 사랑 이야기라 치부할 수 있는 이 이야기가 감동을 주는 건 서정적인 작가의 문체와 우수 어린 청춘의 고백이 가슴 깊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랑은 언제나 고통이다, 귀족의 보금자리

 

 인물의 역사를 설명하는 장대한 서술이 주를 이루면서, <첫사랑>에서 좋았던 서정적인 문장들은 가끔 톡 쏘는 양념처럼 튀어나온다. 그리고 소설 속 등장하는 '사랑'도 앞의 작품에서 등장한 '사랑'의 강렬함과 쌍벽을 이룰 만큼의 인상을 남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랑'이 자랐고, '작품'도 자랐다. <귀족의 보금자리>에서는 작가가 더 깊은 내면을 끌어낸 느낌이랄까. 당대 러시아의 귀족사회를 대변하는 한 가정을 등장시키며, (당시에는 가능했던) 친척 간의 사랑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진지한 대화 속 인간의 속성을 파악하게 하는 무거운 작품이다. 당대 러시아의 귀족사회를 통해 슬라브주의자와 서구주의자의 대립, 러시아라는 작가의 모국에 대한 애정과 이상을 진하게 풀어내며, '사랑' 또한 그 역사와 맞물려 성숙한 전개로 드러내고 있다. 현실과 현재의 감정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라브레츠키', 몸에 배어버린 관습과 윤리를 벗어던지지 못하는 순수하고 올곧은 인물 '리자'. 그들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는 다소 지겹게까지 여겨지는 러시아 특유의 장황한 서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어내리게 하는 힘이 되었다.“젊어서 사랑을 하든 나이 들어서 사랑을 하든 고통은 수반되기 마련이다.” <첫사랑>의 풋풋하고도 강렬한 사랑 이야기를 반전시키는 듯한 작품의 배치가 묘하게 느껴진다.

 지배와 억압에 바스라져버린 사랑, 무무

 <무무>는 세 작품 중에 가장 담백하고 침착한 듯 보이나, 가장 슬픈 절규를 담고 있어 마지막까지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벙어리이자 귀머거리 농노 '게라심'과 그가 애정을 주었던 강아지 '무무'. 한 번 사랑에 실패한 그에게, 위로와 의지와 더 큰 사랑을 주었던 '무무'는 그의 모든 것이었다. 하지만 '농노제도'라는 비참한 현실,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여지주의 횡포로 인해, 그 사랑은 바스러져 버린다. 현실에 굴복하여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랑 이야기 중에서 <무무>는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큰 감정을 내보이고 있었던 작품이다. 지배와 억압에 대한 울분과 증오를 이렇듯 조용하고 담백하게 다룰 수 있을까. 가슴 아픈 사랑에 대처하는 가장 성숙한 모습이라고까지 여겨져, 오래도록 그 잔향이 깊게 남을 것만 같다.

 

나는 줄곧 겁에 질려 무엇인가를 기다렸다. 그리고 모든 것에 놀라움을 느끼면서 무엇인가에 대해 계속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치 아침놀이 물들었을 때 종루 주위를 나는 제비 떼처럼, 공상은 언제나 같은 환상의 주위를 빠르게 맴돌면서 장난치는 것이었다. 나는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슬픔에 젖기도 하고, 어떤 때는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노래처럼 경쾌한 시나 황혼의 아름다움이 자아낸 눈물과 우수를 통해, 청춘의 용솟음치는 삶의 기쁨이 마치 봄풀처럼 파릇차릇 싹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13쪽, 첫사랑)

오, 청춘이여! 청춘이여! 그대는 아무것도 걸릴 것이 없다. 그대는 마치 우주의 온갖 보물을 차지하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우수도 그대에게는 위로가 되고, 슬픔조차도 그대에게는 잘 어울린다. 그대는 자신감이 넘쳐흐르며 대담무쌍하다. 그대는 "보아라, 사람들아! 나는 혼자서 살아간다."라고 말하지만, 그대의 좋은 시절도 흘러가고, 흔적도 없이 무수히 사라져 버린다. 그러면 그대의 모든 것은 태양 아래 밀랍처럼, 눈처럼 녹아 없어져 버린다……. 어쩌면 그대가 지닌 매력의 모든 비밀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능성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대의 힘을 다른 무엇을 위해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바람에 흩날려 보내는, 바로 그런 점에 있는지도 모른다. (120쪽, 첫사랑)

사방에서 정적이 그를 감싸고 있고, 태양은 잔잔한 푸른 하늘에서 조용히 떠가고, 구름도 조용히 흘러간다. 구름은 자기가 어디로, 왜 흘러가는지 알고 있는 듯싶다. 바로 이 시각에 지상의 다른 장소에서는 생활이 들끓고 사람들은 서두르며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있는데, 여기서는 똑같은 생활이 늪의 풀 위를 흐르는 물처럼 소리 없이 흐르고 있었다. 라브레츠키는 저녁때까지도 이 지나가는, 흘러가는 생활에 대한 관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지나간 날에 대한 애수는 그의 마음 속에서 봄날의 눈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그는 이처럼 깊고 강렬하게 고향을 느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229쪽, 귀족의 보금자리)

내가 숭배하곤 했던 모든 것을 불태워버렸고, 불태우곤 했던 모든 것을 숭배했노라…….

그러고 나서 그는 말에 채찍질을 가하여 집까지 내달렸다. 말에서 내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감사의 미소를 짓고 마지막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용한 밤, 부드러운 밤이 언덕과 골짜기에 깃들어 있었다. 멀리 밤의 향기로운 심연에서, 하늘인지 땅인지 모를 그 어딘가에서 평온하고 부드러운 온기가 흘러나왔다. (267쪽, 귀족의 보금자리)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모스크바에 데려올 때부터 길을 눈여겨보아 두었다. 여지주가 그를 데려온 시골에서 큰길까지는 약 25킬로미터 정도의 거리였다. 그는 큰 길을 따라 굳건하고 용감하게, 절망적이면서도 기쁜 단호한 마음으로 걸어갔다. 그는 가슴을 활짝 펴고, 두 눈으로 열심히 똑바로 앞을 응시하며 계속 걸었다. 그는 늙은 어머니가 고향에서 자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타향의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방황한 자기를 어머니가 고향 집으로 부르기라도 하듯이 서둘러 걸어갔다……. 이제 막 시작된 여름밤은 고요하고 따스했다. 태양이 지는 쪽에서는 아직도 하얀 하늘 언저리가 사라져 가는 하루의 마지막 반사광으로 엷은 홍조를 띠고 있었고, 그 반대쪽에서는 푸른 잿빛 어스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쪽에서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수백 마리의 메추리들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빙빙 날고 있었고, 흰눈썹뜸부기들이 앞 다투어 서로를 부르고 있었다……. (440쪽, 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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