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권김현영 해제 / 문학동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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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두려워질 때가 있었다. 의식 있는 사람이고 싶어하지만 내 속에서 어떤 차별적인 시선이 흘러나올 때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그것을 목격할 때마다 고개를 숙이는 내가 보였다. 여성으로서 여성을 보는 시선이 얼룩질 때도 있었고 누군가가 당하는 차별을 자연스레 방관하고 인정할 때도 있었다. 부끄러웠고 배우고 싶었다. 계속 그렇게 고개를 숙이다 보면, 나 또한 은연중에 당하고 있었던 차별에 대해 당당히 말할 수 없게 될 것이었다. 조용히 억울한 마음을 삭이기보다는 말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자그만 관심의 시작이었다.

 

페미니즘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을 때였다. 바짝 호기심이 일었던 때라 많은 책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정작 걸음마 단계인 나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은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이 책을 발견했다. 멋지게 디자인된 표지와, '엠마 왓슨이 추천한'이라는 카피보다, '모두를 위한'이라는 제목의 수식어가 마음에 들었다. 페미니즘이 남성을 혐오하는 '여성'만의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 책의 주장은 그동안 페미니즘에 대해 의아했던 부분들을 해소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미국의 페미니즘 작가 '벨 훅스'는 어렵고 학문적인 페미니즘 이론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고 너그럽게 받아들일만한 간결하고 쉽게 읽히는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 난무하는 잘못된 정보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카더라와 오해들이 페미니즘의 발전을 저해한다 믿었다. 오랫동안 그러한 책을 찾던 작가는 결국 자신이 원하던 책을 직접 집필했다. "명료하고, 간결하고, 쉽게 읽히는" 페미니즘 입문서를 말이다. 목적은 달성한 것 같다. 책은 놀라울 정도로 재밌게 읽힌다.

 

작가는 일단 페미니즘 정치의 역사와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한 후, 다양한 측면에서 발생한 페미니즘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구별한다. 그 과정에서 임신 선택권, 인종과 젠더, 페미니즘 남성성, 결혼과 육아, 페미니즘 성 정치 등의 쟁점과도 마주하는데, 현대에 와서 이러한 쟁점이 일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다양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만큼이나 다양한 갈래로 뻗어나간 페미니즘 신봉자들에게는 선택과 행동의 기회가 주어졌고, 기존의 잘못된 사회구조에 젖어 있던 사고와 행동을 유지한 채로는 아무리 페미니즘을 외친다 하더라도 성차별주의를 완전히 극복해낼 순 없었다. 지배와 불평등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페미니즘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해졌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페미니즘 사고는 상호 관계와 상호의존의 윤리를 강조함으로써 우리에게 불평등이 초래한 결과를 바꾸고 동시에 지배를 종식할 방법을 제안한다 (262쪽)"고. 또한, 페미니즘은 백인 우월주의와 자본주의, 계급주의, 가부장제와 관련된 문제들을 포함한, 우리를 괴롭혀온 모든 것들에 대항하는 "상호성의 토양을 만드는 우리 사회의 유일한 사회운동(236쪽)"이라고.

 

페미니즘을 둘러싼 온갖 부정적인 소문들을 듣고 '설마'하면서도 믿어본 적이 있는가. 남성과 여성이 욕설을 하고 서로를 비아냥대며 분노를 표출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이 책에 의하면, 페미니즘의 적은 단지 남성이 아니며 성별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기 위하여' 페미니즘을 읽어야 한다. 모두가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는 시작이 바로 여기에 있다.

 

 

16쪽,
이런 얘기를 하는 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묻는다. 페미니즘에 관해 어떤 책이나 잡지를 읽어봤는가. 페미니즘 담론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가. 페미니즘 활동가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고 나면, 그들이 아는 페미니즘은 십중팔구 누군가에게 전해 들은 것일 뿐이며 페미니즘 운동이 실제로 무엇인지 거기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본 적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98쪽,
베티 프리단은 『여성의 신비』에서 여성이 전업주부로 가정에 속박되고 예속된다고 느끼는 데서 오는 불만을 "이름 없는 문제"라고 이름 붙였다. 이 문제를 여성 전체의 위기인 양 제시했지만 실제로는 소수의 고학력자 백인들의 위기였을 뿐이다. 그들이 가정에 속박될지도 모른다는 위험에 대해 불평할 때, 이 나라의 수많은 여성들은 일터로 향했다.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모든 집안일을 도맡아야 했던 여성 노동자들 중 다수에게 전업주부가 될 권리는 오히려 ‘해방‘처럼 보였을 것이다.

176쪽
남성중심주의만 강조하면 페미니즘 이론가들을 포함한 여성들이 여자가 다양한 형태로 아동을 학대하는 현실을 쉽사리 무시하게 한다. 우리 모두 가부장적 사고에 익숙해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를 지배할 권리가 있으며 어떤 수단으로든 힘없는 사람을 복종하게 만들 수 있다는 지배의 윤리학을 자연스레 받아들일 정도로 사회화되었기 때문이다.

235쪽,
우리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비전의 맥박은 여전히 근본적이고 필연적인 진실과 공명한다. 즉, 지배가 있는 곳에 사랑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페미니즘 사고와 실천은 동반자 관계와 육아를 통한 상호성장과 자아실현의 가치를 강조한다. 누구나 욕구를 존중받고, 누구나 권리를 누리고, 누구든 예속이나 학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관계에 대한 이러한 비전은, 가부장제가 관계의 구조를 지키기 위해 고수하는 모든 것과 반대된다.

260쪽,
페미니즘으로 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배경이 천차만별이므로 각자의 삶에 곧장 말을 건네는 페미니즘 이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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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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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편지를 그대로 엮어 만든 책들은 특별한 구성이나 미사여구 없이도 마음을 자극하는 뭔가가 있다. 나와는 관계없는 시대와, 사람들과,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내 우체통에서 방금 편지를 꺼내와 읽는 것처럼 콩닥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읽게 되는 것이다. 왜일까. 오랜만에 만나본 편지글 형식의 책 『채링크로스 84번지』에도 눈에 띌만한 독특한 문장이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는 없었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이나 책을 주문하는 요청의 편지가 다수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한 리듬으로 주고받은 편지들이다. 그런데도 이 책이 출간된 후 오랫동안 베스트셀러로 남아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뉴욕의 가난한 작가 '헬렌 한프'가 자신이 원하는 책을 찾기 위해 먼 바다를 건너 영국의 채링크로스 헌책방에 편지를 보낸다. 작가의 요구는 고집스럽다. 판본과 장정, 어느 하나 빼놓을 것 없이 까다롭게 책을 고른다. 채링크로스 가에 위치한 마크스 서점은 이 까다로운 고객의 요구에 친절히 응답하고, 이들은 곧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가 선물을 주고받는 친구가 된다. 처음 편지를 나눴던 담당자 '프랭크' 뿐만 아니라, 서점 동료, 이웃집 어르신, 프랭크의 가족들까지 모두 친구가 된다. 바다 건너 먼 거리를 오가는 편지 속에 진득한 우정이 깃든다.

 


한 장의 편지 속에 고스란히 담긴 '마음'은 책을 읽는 독자를 흐뭇하게 한다. 게다가 첫 번째 편지와 마지막 편지에 찍힌 '날짜'를 보면 놀라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1949년부터 1969년. 무려 20년에 걸쳐 편지를 나눈 그들이다. 또한, 가장 궁핍한 시대에도 각자의 장소에서, 각자의 일상을 보내면서, 가끔가다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구해달라는 책을 아직 찾지 못했냐는 장난스러운 핀잔도, 짓궂은 농담도, 편지 속에 수두룩한 책의 제목들도 (물론 다 알지 못하지만) 남다른 재밋거리다. 무엇보다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기에 더 마음이 가는 것도 있겠다.

 


"혹, 채링크로스 가 84번지를 지나가게 되거든, 내 대신 입맞춤을 보내주겠어요? 제가 정말 큰 신세를 졌답니다."

 


사실 이제는 시대가 너무 많이 변해버렸다. 편지의 아날로그 감성을 되찾기엔 너무도 편리한 것들이 많이 나왔고, 우리는 편리함에 이미 너무 익숙해졌다. 일일이 한 자 한 자 마음을 다해 편지를 쓰고,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어 발송하는 건 자주 하기엔 매우 번거로운 작업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아주 작고 사소한 핑계를 만들어보고 싶어진다. 읽은 책을 이웃들에게 보내면서 작은 쪽지 하나라도 적어보고, 일부러 인사 한번 더 해보고, 고마움을 전해보고. 비록 20년간의 편지에는 비할 바 못되겠지만 따뜻한 마음이라면 된 것이다.

 

 

50쪽,
저는 속표지에 남긴 글이나 책장 귀퉁이에 적은 글을 참 좋아해요. 누군가 넘겼던 책장을 넘길 때의 그 동지에가 좋고,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글은 언제나 제 마음을 사로잡는답니다.

112쪽,
임대료에 적당한 가격 같은 건 없어요. 그리고 가만히 적당한 가격으로 있어주지도 않고요 - 광고에 뭐라고 떠들던 간에 말이죠. 하긴 이제는 광고라고도 할 수 없죠. 그냥 장삿속이죠.
저는 코앞에서 영어가 겁탈당하는 것을 목격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어요. 미니버 치비가 그랬듯이, 저는 너무 늦게 태어난 거예요.

131쪽,
"당신과, 당신의 그 오래된 영국 책들이란!"
어떤지 아시겠지요. 프랭키? 살아 있는 사람 중 저를 이해하는 사람은 당신뿐이랍니다.

145쪽,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이대로가 나을지도. 너무나 긴 세월 꿈꿔온 여행이죠. 단지 그곳 거리를 보고 싶어서 영국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고요. 오래 전에 아는 사람이 그랬어요. 사람들은 자기네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러 영국에 간다고. 제가, 나는 영국 문학 속의 영국을 찾으러 영국에 가련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더군요. "그렇다면 거기 있어요."
어쩌면 그럴 테고, 또 어쩌면 아닐 테죠. 주위를 둘러보니 한가지만큼은 분명해요. 여기에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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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누이
싱고 지음 / 창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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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의 하얀 공백을 무서워할 때가 있었다. 글자가 빽빽하게 들어찬 책들은 쉽게 읽어내리면서도 빈 공간에 생각을 꽉꽉 채워야 할 것 같은 시집은 손이 잘 가지 않았다. 해석의 부담감은 내가 '시'에 접근하는 것을 늘 어렵게 했다. 이것은 어떤 상황에서 썼고 왜 이렇게 제멋대로 흘러가는지, 왜 갑자기 이런 단어가 튀어나왔으며 아름답다가도 슬픈지 해석해보려 할수록 시는 더 어려워졌다. 그래서 어느 날부턴 일부러 편안하게 시를 읽어보았다. 소설처럼, 에세이처럼, 그저 흘러가는 얘기처럼 자연스럽게.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내 상황과 기분에 따라 마음에 쏘옥 담겨 깊이 읽어지는 시들이 있었다. 물론 한도 끝도 없이 불친절한 시들도 있고 그것도 그들만의 매력이 있겠지만, 분명히 말하고 싶은 것은 시가 다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것.


요즘엔 특히 시를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게 하는 것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원래도 시 에세이, 시화집, 시론집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이 출간되어 있었지만, 종이책에 국한하지 않고 시대에 맞춰 다양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나와 비슷하게, 시라는 장르에 부담감을 가졌던 독자들을 위한 소중한 가이드다. 그중 『시詩누이』 는 듣도 보도 못한 시 웹툰이다. 시와 만화의 조합이라, 독특하고 새롭다.


"시라는 장르가 너무 권위적이고 장벽이 높아졌어요.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면 시집 산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시집을 읽는 걸 별종이라고 생각하거나 마니악한 취미라고만 생각하지, 시집이 소비재가 될 수 있다는 차원까지 안 가더라고요. 문학이 소수를 위한 향유물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다양하게 누리는 것도 문학의 권리라고 생각해요. 결과물이 어떤지는 각각 평가가 있겠죠." (작가 인터뷰 중에서)


 <싱고,라고 불렀다>라는 시집을 쓴 시인 신미나가 직접 그림을 그리고 말을 붙였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시를 편안하게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인은 이런 웹툰을 구상했다고 한다. '싱고'라는 이름의 작가 캐릭터와, 이제는 할아버지가 된 반려묘 '이응옹'이 함께 만화 속에 등장한다. 다분히 일상적인 고민들과 추억들을 담았고 가끔은 진지한 고민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시인은 함께 읽기 좋은 시를 에피소드의 끝에 소개한다. 언뜻 보기엔 그리 특별할 것 없는 구성과 연결이지만, 털어놓은 생각들이 그저 시인만의 것은 아니어서.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가는 독자들의 것들과 퍽 다르지 않아 이 만화는 시인의 바람대로 아주 깊게- 읽힌다.


왠지 모를 막막함을 주듯 툭- 던져진 시집을 읽기 전에 워밍업으로 읽으면 참 좋을 것이다. 시인이 조심스레 털어놓은 생각을 발판 삼아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 시에 가까이 다가가다 보면, 어느새 시에 대한 두려움이 떨쳐져 마음에 드는 시집을 집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그 연결 속에서 좋은 시를 함께 읽기를 바라는 시인의 다정함이 느껴진다는 게 특별하다. 기분 좋은 책이다.



 

- 마음이란 게 하나의 색으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다른 색을 보려 하지 않는다 / 한 사람의 마음 속으로 얼마나 깊이 들어가야 / 우리는 그 사람이 가진 고유색을 볼 수 있을까

- 다른 이와 주파수를 맞추며 사는 건 쉽지 않다 / 주는 이는 선물이라 생각하지만 / 받는 사람은 부담스러울 때 / 친해지고 싶어서 건넨 농담이 / 지나고 보면 무례했다 싶을 때 / 적정선을 넘으면 ‘뚜뚜뚜‘ 울리면서 내 감정의 컨디션을 알려주는 센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언제부터였을까요 / 타인의 진정성에 추를 달아 얼마나 묵직한지 재보고 남들은 어떤 가면을 썼는지 의심하는 일로 감정을 낭비했던 날이 / 어른이 된다는 건 감정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게 아니라 세련되게 감추는 거라고 믿게 된 것이

- 위로도 성급하면 체하게 된다 / 마음에 수분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게 그 어떤 말보다 따뜻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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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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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에 표지 사진을 띄워놓고 며칠째 멍 때리며 시간을 보냈고, 이제는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너무 좋아서 오히려 쓰기 머뭇거려진다고 하면 될까. 좋은 정도를 어떤 말로 어떻게 전달해야 될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전에 읽었던 황정은 작가의 『백의 그림자』 생각이 났다. 전체적인 인상으론 두 소설이 비슷하게 좋았는데, 순간순간 멈춰읽은 부분들을 생각하자면 내게는 『계속해보겠습니다』가 더 강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그리 강렬하지도 않고 담담한데 무언가 콕콕 찌르는듯한 인물의 대사 한 줄이 아로새겨지는 순간들. 그것을 생각하자면.

 

소라, 나나, 나기. 세 인물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담담한 어조지만 고백이라 할 수 있는 깊은 말들을 꺼내놓는다. 소라와 나나는 자매, 나기는 옆집에 살던 가족 같은 친구(오라버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함께 해온 사이로 굳이 무엇인가를 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며 살아간다.

 

- 그런데도 때때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순자의 전심전력보다는 애자의 전심전력이 완전한 것은 아닐까. 남몰래 이렇게 생각하고는 하는 나나는 아무래도, 애자와 가장 닮은 천성을 지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심전력, 그러므로 나나는 그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154쪽)

 

셋의 고백이 모두가 소중하지만, 서사로 따지자면 중심에 있는 것은 나나의 고백이다. 나나는 임신을 하고, 소라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눈치채고, 나기는 그들에게 생겨나는 자그만 균열들을 지켜보며 과거를 회상한다. 나나의 임신이 그리 큰 균열이 될만한 것이냐 묻는다면 그것이 혼전임신인 것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애자'라고 부르는 나나와 소라의 어머니와 얽혀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허무에 빠져버리고 아이들도 제대로 돌보지 않았던 애자. 사랑이 넘치는 이름이었던 애자는 어느 순간부터 '아무래도 좋을 것'들로만 세상을 채우고, 마치 인생이 중단된 것처럼 살았었다.

 

"엄마가 되는 것은 애자가 되는 것"이라는 말을 꺼내던 소라와, "애자와 같은 전심전력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는 나나는 변해가기 시작한다. 태어나고 싶다고 열심히 꿈을 보내오는 뱃속의 아이를 통해 계속해보리라, 다짐한다.

 

그리 밝지 않은 세계에 놓여있는 그들이지만, 작가가 만들어낸 언어들이 처연한 그들의 세계를 덮고, 계속해서 살아가리라 다짐하는 모습은 우울함을 씻는다. 또한, 썩은 떡을 먹고 있던 아이들에게 "이 떡이 맛있으니 아줌마네 밥과 바꿔 먹자"며 끝까지 삼키던 나기의 엄마 순자, 아픔이 있지만 자매를 보듬는 나기의 모습은 '어쨌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큰 힘이 된다. 책의 제목이 '계속하겠습니다'가 아닌 '계속해보겠습니다'인 것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찮고 무의미해 보일지 모르지만 작은 시도와 희망이 담겨 있으므로. 멸종이 아니라 어쨌든 '살아가고' 있으므로.

 

 

12쪽,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
살아가려면 세계를 그런 것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 좋다고 애자는 말한다.

26쪽,
어, 할 새가 있었을까? 어, 할 새도 없었을까? 누구도 모르지, 그 빈틈없는 회전 사이에서 시간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흘렀는지도 몰라. 어쩌면 어, 만으로는 부족할 정도로 긴 순간이었는지도 몰라. 어, 만으로는 부족해서 어어어어어 그렇게 한동안 이어지고도 부족할 만큼, 그건 긴 순간이었는지도 몰라. 길고 길어 누구의 생각보다도 긴, 이윽고 그가 그 틈을 다 통과했을 때 그건 더는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거야. 모습도 아닌거야.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그런 모습이 되고 만 거야. 그렇게 될 뿐. 인간은 그렇게 될 뿐.

104쪽,
사랑에 관해서라면 그 정도의 감정이 적당하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윽고 괜찮아지는 정도. 헤어지더라도 배신을 당하더라도 어느 한쪽이 불시에 사라지더라도 이윽고 괜찮아, 라고 할 수 있는 정도. 그 정도가 좋습니다.

119쪽,
집으로 모세씨를 불러들여 소라에게 소개한다는 것은 나나의 세계에서 가장 연한 부분을 모세씨와 만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나기 오라버니만이 접근하고 접촉할 수 있던 그 세계를, 금주씨의 죽음과 이미 상당히 죽어버린 애자와 뒤틀림이 담긴 세계를 열어 보인다는 의미입니다. 나나의 내면에서 그 부분은 잠잠한 듯 보여도 끊임없이 떨고 진동하는 곳, 가장 민감한 비늘이 돋는 곳.

160쪽,
잊지 마. 내가 이렇게 아플 수 있으면 남도 이렇게 아플 수 있다는 거. 제대로 연결해서 생각해야 해. 그런데 이렇게 연결하는 것은 의외로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닐지도 몰라. 오히려 그런 것쯤 없는 셈으로 여기며 지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는 정도인지도 몰라. 그러니까 기억해두지 않으면 안돼. 안 그러면 잊어먹게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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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D 2017-07-16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아서 머뭇거리셨다는 말씀에 ‘아핫!‘했습니다.
전 왜그런지 너무 완벽하게 맘에들었던 책들은 리뷰를 거의 쓰지 못해요. 마치 제 못난 리뷰가 그 책의 감동을 축소시킬 것이 염려되서랄까요.^^ 머뭇거리신 리뷰 꼼꼼하게 잘 읽고 좋아요 누르고 갑니다^^ 잘 읽어용 :)

시읽는리니 2017-08-05 03:07   좋아요 0 | URL
공감해요. 그래서 더 어렵게 읽었고, 어렵게 쓴 리뷰에요. 좋은 마음을 제대로 전달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ㅎㅎㅎ 꼼꼼하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리제님 :)
 
삶의 한가운데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
루이제 린저 지음, 박찬일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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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가 쓴 소설에는, 그의 자전적 체험이 필히 들어갈 것이라 여긴다. 손톱만큼이든 넘칠 정도로 그득한 한 바가지의 경험이든 글쓴이의 삶과 삶에서 느낀 생각들과 어떤 연유에서 '무엇을 쓰리라 구상하는' 생각까지 자전적 요소라 볼 수 있다면, 소설과 글쓴이의 삶이 전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독자는 책을 통해 작가의 삶 일부를 받아들인다. 때로는 아주 작은 끄트머리를, 때로는 비스듬히 살짝 스치는 정도로 만난다. 그러나, 마치 삶 전체를 끌어다 놓은 것 같은 자전적 소설을 읽을 땐 왠지 조금 힘겨울 때가 있다. (나는 이런 이유로 헤세의 작품을 사랑하면서도, 읽을 땐 폭삭 늙는 느낌이다) 삶의 정중앙을 뚫는 소설의 방식 때문이다.


  바로, 이 소설이 그랬다. 표지에 수록된 작가 루이제 린저의 눈빛, 입꼬리, 자잘한 주름살은 범상치 않은 아우라를 풍겼고, '삶의 한가운데'라는 제목과 만난 첫인상은 무척이나 강렬했다. 글의 형식 또한 독특했다. 주인공 '니나'의 언니인 '마르그레트'가 오랜 세월을 거친 후에 만나 편지와 일기장을 읽는다. 일기장 속에는 평생에 걸쳐 '니나'를 사랑한 '슈타인'의 절절한 사랑이 담겨있지만, 작가는 그의 시선을 통해 '니나'라는 인물과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전한다. 독일을 넘어,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열광해마지않았던, 작가의 분신과도 같았던 인물. 그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때로는 냉정하며, 엄청난 고집과 객기를 부리는 성격이며, 자유를 갈망하며 세상의 부조리에 치를 떤다. 우연과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다. 실패도 여러 번 반복되고 나치에 맞서 싸우다 투옥되기도 하며, 여러 번 고통을 겪으며 자살을 기도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어떤 고생을 해도 얼굴엔 생기가 넘친다. 도대체 이 얼굴에 감도는 생기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대부분의 문학작품들이 그렇듯이, 『삶의 한가운데』 속 '니나'도 시대와 결부되지 않을 수 없다. 한차례 전쟁이 휩쓸고 간 세계, 사람들의 희망과 용기는 참담하게 말라붙었고 젊은이들도 허무주의에 빠져들었다. 온갖 좌절을 경험하면서도, 새로운 곳으로 떠나 "잘 살고 있다"라고 편지를 전해준 '니나'의 삶은 과연 신드롬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 자유를 갈망하고 체제에 굴복하지 않았던 모습은 (당시 독일 평단에선 작품을 미치광이로 표현했다고 한다), 맥없이 인생을 포기하려 했던 이들에게 더한 인상을 남겨주었을 것이다. 내게는 '니나'라는 캐릭터가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만큼의 큰 인상은 아니었으며, 오히려 시종일관 날카롭거나 신경쇠약처럼 여겨지기도 했지만 그의 당당한 발언과 확고한 자의식에는 순간순간 멈칫하며 놀랍게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하지 못한 나를 합리화하려는 속마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에서 주인공인 '니나'라는 인물만 유독 강조된 감은 있으나, 소설 속 다양한 이들의 모습을 관찰하는 것도 재미가 있다고 덧붙이고 싶다. 니나를 동경했던 '슈타인'의 마음, 니나의 전남편 '퍼시',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를 읽고 있는 평범하게 현실에 적응하고 살아가는 '마르그레트'의 모습. 중요한 것은 소설 속에서 다뤄진 다양한 인물의 삶이 작가가 가진 인생관과 대비되는 의미로 쓰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각각의 생이 있고, 우리는 그 생의 주인이 되어 살아가며 모든 것에 부딪혀봐야 한다는 작가의 인생관에 따르면, 어쩌면 니나에게 끈질기게 구애했던 '슈타인'의 삶도 그리 나쁜 삶은 아니었을지도.


"우리는 생의 의미를 알려고 했어요. 그래서는 안 되는 거죠. 만약 의미를 묻게 되면 그 의미는 결코 체험할 수 없게 돼요. 의미에 대해 묻지 않는 자만이 그 의미가 뭔지 알아요. (319쪽)"


  왜인지 모르겠지만, 양귀자의 소설 속 문장이 떠올랐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라는 말이. 고정된 인생의 진리는 없으며 스스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만들어나가야된다는 공통적 의미가 두 소설에 담겨 있다.

 

 



65쪽,
온갖 아름다움이란 것이 일시적이고 다만 얼마 동안 빌려온 것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 그리고 우리가 인간들 틈이나 나무와 극장과 신문 사이에 있으면서도 마치 차가운 달 표면에 앉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독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은 누구나 다 우울하지.



71쪽,
아주 낮게 니나는 덧붙였다. 여기에는 법칙이 있고, 저기에는 삶이 있다는 식은 정말 끔찍해. 우리가 하는 것은 반대인데, 우리가 삶을 극복하면 좀 더 높은 삶을 얻는다는 것이 사실일까?



77쪽,
자기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수백 개의 서로 다른 자아가 보여. 어느 것도 진정한 자아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수백 개의 자아를 다 합친 것이 진정한 자아인 것 같기도 하고, 모든 게 미정이야.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 사실은 이 여러 자아 가운데 하나의 자아만을, 미리 정해져 있는 특정한 하나의 자아만을 선택할 수 있을 뿐이지만.

100쪽,
나는 저기 서 있는 니나를 보았다. 창백했고 잠을 못 잔 얼굴이었다. 걱정 때문에 손질도 못한 얼굴, 절망적이고 침울한 얼굴이었다. 그렇지만 생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폭풍우에 의해 약간 손상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깊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바람을 안고 가는 배와 같았다. 이 배를 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 배는 원하는 곳에 도착하거나, 아니면 어딘가 자기의 행운을 잡을 수 있는 새로운 대륙의 새로운 해안을 가게 되리라고 믿을 것이다. 니나의 절망이 진정에 와 닿고 나의 가슴을 후벼팔지라도 내가 이것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가 이런 데 있는 것이 아닐지.



349쪽,
당신은 행복한가요? 그렇지 않아요. 행복이 무엇인지 당신은 전혀 몰라요. 그러나 나는 행복해요. 나는 당신이 나의 인생을 당신 인생처럼 만들려고 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요. 당신의 인생은 마치 일요일을 망쳐버리는 재미없고 어려운 학교 숙제 같아요. 얼마든지 나를 부박하다고 생각하세요. 아마 삶에 대한 당신의 불안이 삶을 사랑하는 내 방식보다 더 부박할지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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