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의 식탁 오늘의 젊은 작가 19
구병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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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결혼에 대해 생각할 때, 도저히 오래 견디기 힘들 거란 생각이 드는 것 중에 하나는 어쭙잖은 공동체 생활이었다.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을 제외하고, 친족 관계를 위해서나 가족 혹은 아이를 위해서 의무감을 우선으로 선택하고 견뎌야 하는 무수한 행동들이 상상되었다.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울며 겨자 먹기로 무언가에 소속되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 어떻게 참고 버틴다 해도 속에서 곪고 있을 스트레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던가. 수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 속에서 어떤 공동체에 소속된다는 건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지만, 세상이 완벽하고 밝게만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작가는 단편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에서 공동체에 대한 환멸을 표현한 바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냉정하리만큼 차가운 무관심만큼이나, 친밀을 가장한 과한 관심 또한 굉장히 무서운 것이었다. 전작에 비해 더 넓어진 그의 장편 <네 이웃의 식탁> 또한 비슷한 의도로 쓰인 것처럼 보인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 아이에게 온 마을이>는 작은 마을인 시골 공동체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반면에, <네 이웃의 식탁>은 조금 특수한 경로로 모이게 된 가족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갈수록 떨어지는 출산율, 치솟는 집값의 대안으로 만들어진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은 세 아이를 낳는 것을 조건으로 도시 외곽 산속에 지어진 열두 세대 규모의 아파트다. 서류와 면접, 추천으로 뽑힌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였고, 거의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는 공간 속에서 그들은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한다. 서로 돕고 의지하자는 처음의 의도는 그들의 거리가 차츰 가까워지면서 변질되기 시작한다. 공동육아, 동반 출근, 부부싸움의 공론화, 과도한 관심과 간섭, 가족과 가족 사이에 얇아도 너무 얇은 벽은 점점 공동체의 허울을 드러낸다.

 

 공동주택에 모인 사람들의 다양한 성향만큼이나 이에 대응하는 사람들의 모습 또한 제각기 다르게 비춰지는데, 여성을 주체로 쓰인 소설의 특성상 소설 속 여자들의 모습에 깊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는 공동체로 인해 자신의 쓸모를 발견하고, 누구는 어떤 이는 한 가족을 챙기기도 벅차 애초부터 공동생활에 발을 뺄 준비를 하고 있다. 어떤 이는 공동체를 통해 힘을 얻으며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어떤 이는 이상한 점을 살피면서도 자신 때문에 일이 틀어질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어떤 이는 이들은 현실에도 다 있는 사람들이라 누구 하나 '비정상'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각자의 상황에 맞게 스스로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온 이들의 모습일 뿐이어서, 이쪽에 공감을 했다가 이쪽이 이해가 되었다가 결국엔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이야기의 긴장감 또한 어마어마하지만, 구병모 작가의 숨도 쉴 수 없이 파고드는 집요한 문체는 소설을 더욱 스릴 넘치게 한다. 촘촘하고 날카로우며, 허점을 잡을 틈 없이 몰아치는 느낌이다. 주택 뒷마당에 을씨년스럽게 놓인 큼지막한 식탁의 이미지는 왠지 폭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 식탁에 앉아 웃음짓고 있는 가족들은 각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출산율과 주거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실마리로 여겨졌던 정부의 '꿈미래실험공동주택'. 무엇도 준비되지 않고, 어떠한 기반도 다져지지 않은 땅 위에서 이 실험은 어쩌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니었을까.

 

● 46쪽,
무엇보다도 며칠 밤을 도려내 가며 몰아친 작업으로 노그라진 몸과 마음 또한 진짜였다. 그림 작업을 하면서는 이 세상 어딘가에 젖병이나, 간 소고기랑 불린 쌀을 넣고 끓인 이유식이나, 그것을 숭고한 과업이라고 주입시키는 목소리들과, 플라스틱 폐기물이며 공공의 이익을 위한 회의 같은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어떤 장소가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하나의 작업에 일단 마침표를 부실하게나마 찍고 나면, 세상 그 어떤 소음과 음식물 찌꺼기 위에 드러누워서도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 50쪽,
자기가 좀 도와줘요. 여보, 가다가 기름 채워 줘야 해? 그 자리에서 생뚱맞은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면 요진 혼자 비협조적이고 정 없는 이가 될 판이었고, 요진은 자신이 휩쓸리고 있음을 알면서도 어 그러죠 그래요 아니 천만에요 기름은 무슨, 엊저녁에 가득 채웠는걸요, 했다. 차라리 요진 자신이 먼저 합승을 제안했더라면 그리 꺼림한 기분까지는 들지 않았을지도……를 생각하자, 객관적으로 정말 별것 아닌 일인데도 요진은 자신이 고작 선의를 드러내고 보장받기 위한 선후 관계에 집착하는 예민함의 결정체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 82쪽,
아이를 낳아 봐야 진짜 어른이 돼. 그전에는 결혼하고 둘이 잘 살아 봤자 소꿉장난이고. 처음 요진은 그 말들이 저마다 스스로를 향한 격려인 줄 알았다. 출산과 함께 인생의 궤도가 틀어졌고 개성이나 욕망을 삶의 가장자리로 밀어 두는 데 익숙해졌지만 적어도 세상에 값진 생명을 내놓은 생산적인 인간이라는 성취감을 느끼고자 이를 악무는 위안의 제스처인 줄 알았다. 그러나 실상 그 말들은 자기 변호에 가까웠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수치심을 모르는 인간, 모르지 않는다면 그것을 엉성한 뚜껑으로 덮어두거나 나일론사로 봉합하는 인간이 된다는 뜻이었다.



● 128쪽,
데면데면하다 그냥저냥. 정말 그런 걸까. 이 상황이 뭐 좋은 금붙이나 된다고 그렇게 묻고 지나가 버린 다음, 훗날 기회가 닿았을 때 다시 캐내어 더 큰 구멍을 만들고. 그러려고 사는 것 맞나, 부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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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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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여자는 없었다. 분명히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기억에서 사라져, 얼굴과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았다. 전방을 누비며 함께 싸우고 수많은 병사들을 구해냈지만, 전쟁이 끝난 후 돌아온 건 모욕의 말뿐이었다. 승리와 패배, 잔혹한 아픔으로 점철된 전쟁의 역사는 단지 남자들의 것이었다. ‘전쟁’과 ‘여성’이라는 단어를 연상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대개 아이 손을 잡고 피난을 가는 여자들의 모습이나, 끔찍한 고통과 피해를 입거나 죽음 앞에 선 모습들뿐이었다. 이전엔 왜 이상하다 생각지 않았을까. 왜 군복을 입고 싸우던 여군들이나,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적에 대항했던 여자들의 모습을 한 번도 떠올리지 못했을까. 물론 그 ‘수’와 ‘비율’에 있어서 남자에 비해 지극히 일부라는 이유를 들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의문은 따로 있다. 왜 우리가 여자 병사들을 생각하지도 못할 만큼 그들은 언급되지도 않으며, 역사 속에서 송두리째 사라져 버린 것일까.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세계대전 당시 전쟁에 참가했던 여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논픽션이다. 작가 스스로 ‘소설 - 코러스’라고 부르는 장르, ‘목소리 소설’이라 불리는 형식을 택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인터뷰가 이어지고 텍스트는 풍부한 목소리로 다가온다. 작가가 말하기를,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고 어떠한 의도도 없이 감정으로 인해 변해왔을 ‘그때’의 진짜 진실을 읽어내기 위해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고 한다. 작가의 노력 덕분에 인터뷰이의 목소리에 함께 딸려오는 떨림과 어조까지 읽힌다. 울음을 머금고, 때로는 추억을 회상하듯 미소를 짓고, 울컥 올라오는 분노를 참지 못한다. 그들은 그렇게 수십 년을 견뎌왔고, 비로소 이 책을 통해 이름과 전쟁에 참여했던 청춘의 얼굴을 남겼다.

 

“내겐 전쟁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많은 반면, 집사람에겐 전쟁에 대한 감정이 더 많아요.
하지만 언제나 감정이 사실보다 분명하고 강력한 법이지.”

 

백만 명이 넘었던 소녀 병사, 그리고 책에서 목소리를 전하는 200명의 소녀였던 병사들이 전해주는 전쟁 이야기는 지금껏 들어왔던 것들과 확연히 다르다. 적의 전투기를 격추시키고, 총탄을 뚫고 기어가 육중한 몸의 부상병을 수없이 많이 구해내고,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던 그날의 경험을 담담하게 말한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또다른,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한다. 전장에서 터진 첫 생리의 기억, 포로를 연민했던 기억, 바닥에 깔린 시체를 바라보던 기억, 적의 포로가 되어버린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아야 했던 기억, 어떤 여자가 임신한 몸으로 팔에 지뢰를 안고 달려가던 기억……. 너무도 적나라하게 재현된 전쟁의 민낯으로 이 책이 여러 번 검열을 당했다고 하니, 승리와 공훈을 우선적으로 전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꽤나 불쾌한 기록이었으리라. 그리고 이러한 검열은, 전쟁이 끝난 후 여자들이 당해야만 했던 냉대와 무관심, 모욕과도 같은 것이었으리라.

 

“용서하는게 쉬웠을거라 생각해? 당연히 그들의 눈물을 보고 싶었지.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기까지 나는 수십년이 걸렸어.”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다. 아군과 적군, 남자들이 뒤엉켜 홀린 듯이 서로를 죽이던 날. 포로가 된 독일 소년에게 빵을 건네주던 날. 생식기가 훼손된 독일 여자들을 발견했던 날. 적에 대한 혐오로 불타오르는 마음과, 생명을 가치있게 여기는 마음이 충돌했던 그날. 여자들은 그렇게 두 개의 본성과 싸우곤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담담히 넘어가야 하는 전장 속에서 그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전쟁은 사람을 이리도 비참하게 만든다.

 

얼마 전 우연히 한국전쟁 여성 의용군과 관련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전쟁이 일어났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군 입대를 자원한 여자들이 가히 삼천 명에 육박했고, 우여곡절 끝에 500명의 여성 의용군이 탄생했다는 사실이었다. 큼지막한 군복을 접어 입고 남자들과 함께 가혹한 훈련을 받고 전장을 누비던 여성들. 여군이라는 개념 자체가 어색했던 당시 사람들에게 그들은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으며,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결혼과 취업을 위해 오히려 여군 경력을 숨겨야 했다. 그들의 역사는 어디에 있는가. 여성 의용군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우리가 듣지 못한 ‘목소리’들은 또 어디에 있는가. 그 목소리를 들을 날이 올까.

 

 

 


바로 그곳, 따스한 사람의 목소리, 과거가 생생히 반추되는 그 목소리 속에 원초적인 삶의 기쁨이 감춰져 있고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삶의 비극이 담겨 있다. 삶의 혼돈과 욕망이. 삶의 유일함과 불가해함이. 목소리 속에 이 모든 것들이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진짜 원본들이. 나는 우리의 감정들로 사원을 세운다…… 우리의 염원과 환멸로. 동경들로. 존재했지만 언제 슬그머니 사라져버릴지 모르는 것들로.

그들의 울음과 비명을 극화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안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의 울음과 비명이 아닌, 극화 자체가 더 중요해질 테니까. 삶 대신 문학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릴 테니까. 이 일이 워낙 그렇다. 그렇게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우리는 너무 이른 나이에 전쟁터로 갔어. 아직 어린애나 다름없었는데. 얼마나 어렸으면 전쟁중에 키가 다 자랐을까.

역사는 앞으로도 수백 년은 더 ‘그건 대체 무엇이었을까?’라며 고민하겠지. 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 어디에서 왔을까? 상상을 한번 해봐. 임신한 여자가 지뢰를 안고 가는 장면을.

전쟁영화를 봐도 사실이 아니고 책을 읽어도 사실이 아닌 거야. 그러니까, 그게 달라…… 뭔가가 달라. 그렇다고 전쟁을 직접 겪은 내가 이야기하면 정확하냐. 그것도 아니거든. 전쟁은 그렇게 끔찍하지도 그렇게 아름답지도 않았어. 때론 전쟁터에서 맞는 아침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아? 전투가 있는 날 아침이면 …… 주위를 보며 생각했지. ‘어쩌면 아침을 맞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일지 몰라. 아, 세상은 이렇게도 아름다운데…… 공기도 …… 햇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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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 나이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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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설을 읽을 때마다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힘이 쭉 빠져 있는 듯 연약하고 섬세한 듯 보이면서도, 굳세고 강인한 면이 조금씩 드러난다. 꾸밈없는 문장 속에서도 단어 하나하나가 은은하게 빛난다. 독서의 폭이 넓지 않아 편협한 감상일지도 모르겠으나, 이번 소설 또한 그동안 읽었던 일본 소설들의 느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 평범함과 익숙함,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야기가 과장되지 않은 문장을 통해 편안하게 스며든다.


 소설의 시작은 신선하다. 어느 날 주인공인 ‘사야카’에게 도착한 편지에는 ‘그 집 마당에 귀중한 무언가가 묻혀 있다. 실례가 안된다면 마당의 흙을 파도 될까요’라는 조심스러운 메시지가 적혀 있다. 알고 보니 메시지를 보낸 이는 첫사랑의 주인공이자, 젊음과 청춘이라는 삶 속을 온통 채우고 있던 ‘이치로’. 그를 추억하기 위해서는 행복한 기억과 끔찍한 사고의 기억을 동시에 떠올려야 하지만, 사야카는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다. 자신을 믿어주고 포용해주는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병으로 죽어간 친구이자 남편 ‘사토루’ (그와 부부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다), 그가 꼭 자신의 일부로 남기고 싶어 했던 사랑하는 딸 ‘미치루’,  사야카에게 “친구로만 있어준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라고 말하는 시어머니와 시아버지, 가족이라는 이름들. 그들이 있어 사야카의 새로운 한 걸음은 절대로 두렵지 않다.

 <서커스 나이트>는 굉장히 신기한 소설이다. 발리의 신비스러운 분위기와 일본 신사의 풍경, 사이코메트리 (사물을 만지면 기억을 알 수 있는 능력)와 신성한 믿음들이 배경을 이루고 있어 특이한 인상을 지닌다. 그런데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소재와 배경 속에서 오히려 일상적이고 편안한 이야기가 두드러진다. 특히 사람과 사람의 마음과 대사들. 우리를 살 수 있게 만드는 따뜻한 마음들이 돋보인다. 어떤 사람이 어떤 사람을 온 힘을 다해 도우고, 어떤 사람이 소중한 말을 누군가에게 건네주고, 얼마나 소중한 마음들이 왔다갔다하고 있을까.

 

“할 수도 있잖아, 앞으로.”
“앞으로.”란 얼마나 좋은 말인지 생각하면서. (292쪽)

 

 가끔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인연을 보이지 않은 끈으로 이을 수 있다면 우리 모두는 정말 모두가 이어져 있을 거라고. 수많은 끈들이 우리를 묶어주고 있을 거라고. 이 소설을 읽으면 이런 상상이 마냥 터무니없는 것은 아닐 거라고 다시 생각하게 된다. 솔직히 말해 책의 분량에 비해 이야기의 흐름이 고요하고 잔잔하게 흘러가서, 느린 템포에 허우적대는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읽고 나선 이런 예쁜 마음과 대사들이 기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러모로 신기한 소설이었다.

 



● 28쪽,
사람의 손이 사람의 손을 그렇게 꼭 감싸 쥐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었다.
가장 부드러운 것을 소중하게 옮기는 듯한 그런 몸짓을 그는 의식이 없는 와중에도 미치루에게 해 주었다. 그런 순간마다 미치루에게 전해진 사토루의 힘을 나는 전부 보았다.

● 115쪽,
공간이 좍 좁아지면서 흐물흐물한 것이 밀려왔다. 뭔지 모르겠지만 기억의 기척 같은 것, 소용돌이치는 뭔가가. 그 소용돌이가 사토루를 잃은 나, 아기를 낳은 적이 있는 나의 마음과 강렬하게 공명했다.



● 178쪽,
정말 굉장하지, 사는 힘이. 그런 작은 일을 떠올리면 행복해진단다. ‘어머니, 이거 공항에서 사 왔는데, 살아날 수 있을까요? 힘들까요? 보통 식물은 검역에 걸리는데, 공항에서 산 나무는 괜찮다고 해서 가져왔는데.’ 그러면서 마카다미아 초콜릿이랑 같이 꺼냈어. 그 아이가 가방에서 꺼낸, 라벨이 구깃구깃해진 히비스커스도, 그때 그 웃음도 나는 꼭 품고 살 거야. 살아 있는 한 언제나 이 가슴에 꼭 안고.



● 273쪽,
별거 아닌 일이 얼마나 대단한지.
일상이야말로 멋진 것, 평범함이야말로 존엄한 것, 여러 가지 말이 있지만, 나는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특별한 하루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확고하게 쌓아 올린 토대가 반드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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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 번식장에서 보호소까지, 버려진 개들에 관한 르포
하재영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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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울 여의도 근처에서 육견협회의 생존권 시위가 있었다. 나는 이 소식을 언제나처럼 뉴스 기사로 접했다. 사진에서는 시위에 동원된 여섯 마리의 개들이 제 몸보다 작은 철창에 끼어있는듯 어정쩡한 자세로 쭈그려 앉아 있었다. 비가 한참이나 내리던 날이었다. 사방이 뚫린 철창 속에서 개들은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고함과 난동을 부리는 현장 속에서 비까지 맞으며 고통을 받고 있었다. 개들을 구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동물보호단체 사람들도 곁에 있었지만, 약하디 약한 동물보호법에 쓰인 한 줄 (긴급 격리 조치) 조차 실행하지 않는 처참한 현실 앞에서 개들을 다시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개들은 아마 더욱 끔찍한 곳으로 갈 것이다. 소란스러운 거리와 수많은 군중들에게 둘러싸인 환경보다 더욱 끔찍하고, 죽음의 냄새가 풍기는 곳으로.

“집단 수용소 사진들이 보여주는 것은 연합군이 진군해 들어갔던 바로 그 순간뿐이다. 어떤 장소에 대해 전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곳이 삶의 공간이었던 사람뿐이다.”(82쪽)

종종 SNS를 통해 유기견과 식용견, 번식견의 삶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본다. 자꾸 찾아보니 추천 데이터로 뜨는지 더 자주 보게 된다. 내 개가 부드러운 흙과 잔디를 밟고 하수구 철망에 발이 끼지 않으려고 길을 돌아가거나 점프를 할 때, 평생을 철망 위에서 온 힘을 다하여 버텨야 하는 개들이 있다. 내 개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깨끗한 패드에 배변을 할 때, 평생 물 한 모금 없이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그 자리에서 배변을 해결해야만 하는 개들이 있다. 그러나 내가 사진과 영상과 이야기들로, 단편적으로 접한 것들 너머엔 순간 너머의 ‘삶’이 있을 것이다. 그곳에 있지 않은 누구도 그 삶을 완벽히 알 수 없다. 이 책에서는 종종 이와 관련한 홀로코스트를 연상시키는 문장들이 등장하는데, 인간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모습 또한 그러하지만 철창에 구겨져 이용을 당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동물의 삶 또한 다를 것이 없어 보이기에 전혀 연관 없는 것이라 보이지 않는다. 책의 제목이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이라는 나치 관련 소설과 유사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대한민국에 사는 개들의 현실을 신랄하게 꼬집은 르포 형식의 책이다. 개 산업 구조 위에 놓여 다양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개를 살리려는 사람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통해 현실의 문제를 파악한다. 사람에게 이용당하기 위해 태어나 사람에게 버림받는 개들의 끝은 참혹하다. 강간과 불법 수술이 만연한 번식장, 새끼들의 운명이 결정되는 경매장, 고통에 힘겨워하는 동물을 보조금 때문에 방치하는 보호소, 피의 냄새가 진동하는 도살장…… 매일 수많은 개들이 죽고 수많은 개들이 상상도 못할 속도로 생산된다. 작가는 바로 이 시스템 자체가 모든 것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저 동물들을 인간의 영역으로 데려온 이들이 다름 아닌 우리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 우리의 시스템 안에서 동물들이 어떤 일을 겪는지 이야기하는 일, 그들에게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질문하는 일이 오로지 우리의 의지에 달려 있는 것이다.” (289쪽)

이런 이야기를 하면 늘 득달같이 달려드는 사람들이 있다. “닭은 불쌍하지 않아? 소는?” 그럼 “당신은 채식만 해야겠네”라고 힐난하는 말들. 작가는 이 세계의 모순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고 싸워 얻은 결론을 침착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거대한 공장 사육으로 수많은 동물들이 고통받는 현실 속에서 굳이 종 하나를 추가해야 하는가, 이것이 생명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일까. 그리고 작가 스스로에게도 던졌을 질문을 던진다. 이 막막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데는 어떤 자격도 필요치 않으며, 완벽하게 실천할 수 없다고 해서 단 하나의 도움과 실천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작가는 재차 강조한다. 우리는 유리 상자 속 예쁜 강아지 너머 처참한 삶을 살아가는 개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쉽게 사지 말아야 하고,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우리의 삶은 온갖 동물의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



<덧붙이고 싶은 말>

+ 보호소 안의 안락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편안한 안락사가 아니다. 자연사 또한 말그대로의 자연사가 아니다.

+ 개시장은 오로지 현금장사다. 그리고 간이과세자다. 연간 6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간이과세자라는 건 어떤 것을 의미하는가? 그들의 생존권은 허구다. 쓰레기를 먹이면서 온갖 끔찍한 방법으로 도살하며 월 수천만원의 돈을 버는 그들은 생존권을 논할 자격이 없다.

+ 개고기의 항생제 잔류치는 최고도, 세균과 바이러스가 득실댄다고 한다. 우리는 개고기의 위해요소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더러운 환경에 자라고 도살되며 같은 동족의 내장이나 고기까지 먹은 개들의 고기가 어떤 위해요소가 있는지 알 수 없다. 전세계의 개 식용 인구가 소수이니 만큼 데이터도 소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먹고 싶은가?


● 52쪽,
동물에 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의식주와 같은 기본적인 생활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일이다. 사람들은 익숙한 삶의 방식을 재고하기보단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의 모순을 찾아 위선자라고 비난하고 싶어한다. 동물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평범했던 일상이 딜레마로 전환되는 일이다. 나를 위선자라고 비난하는 외부의 적인 아닌 스스로의 모순과 싸우는 일이다.

● 79쪽,
그 모견은 이미 삶을 포기한 상태였어요. 내가 자기를 들어올리든 물속에 집어넣든 아무 반응도 없었어요. 온몸이 축 처진 채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게 있기만 했어요. 숨만 붙어 있을 뿐 어떤 움직임도, 최소한의 반응도 없었어요. 시체를 만지는 기분이었어요. 더이상 살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게 너무나도 명확하게 느껴졌어요. 아, 개도, 동물도 극한 상황에서는 차라리 죽고 싶어하는구나. 사람이면 벌써 자살했을 거예요.

● 118쪽,
제가 번식장에서 봤던 어떤 어미는 새끼를 지키려다 못해 도로 뱃속에 집어넣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어요. 그런 모견들이 허다해요.

● 149쪽,
동물에 대한 연민을 낮잡아보는 사람들이 많잖아. 우리가 구하는 게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라는 이유로, 응원은 고사하고 비난을 받을때도 있잖아. 나도 인터넷에서 그런 댓글 많이 봐. 개새끼들 도와줄 여력 있으면 사람이나 도와주라고. 불쌍한 사람도 많은데 개새끼가 대수냐고.
하지만 사람이든 동물이든 누군가를 위해 자기 인생을 걸어본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아. 여기 돕지 말고 저기 도와라, 얘를 구하지 말고 쟤를 구해라, 그런 소리는 누구도 구해본 적 없고 누구도 살려본 적 없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야.

● 226쪽,
누군가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고 전제한 뒤 이 세상에는 ‘더 고통 받는 동물’과 ‘덜 고통받는 동물’이 있다고, 그러므로 모든 동물을 ‘더 고통받는 동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런 평등은 아무 가치도 없다. 그것은 모든 동물을 고통의 수레바퀴에 밀어넣으려는 궤변일 뿐이다.

● 247쪽,
사람들은 인육이 아닌 이상, 먹는 것 가지고 뭐라 하면 불쾌해합니다. 저도 압니다. 음식은 복잡한 문제입니다. 문화, 습관, 그것을 함께 먹었던 사람들과의 기억, 그밖에도 많은 것이 들러붙어 있지요. 하지만 꼭 그것만은 아닙니다. 사람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 모든 동물은 먹어도 된다, 사람만 안 먹으면 된다, 이런 생각도 있는 거예요. 하지만 그게 인간 말고는 다 잡아 죽이자는 말과 뭐가 다릅니까? 그게 다른 종을 대하는 우리의 도덕입니까? 인간은, 우리는, 그래도 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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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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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그 속에 꼬깃꼬깃 채워진 기억들은 처음엔 말랑했던 마음을 점차로 굳어져 버리게 만든다. 크고 작고, 얼마나 더 슬프고 힘들고 하는 것들은 속도의 차이일 뿐. 굳어진 마음을 부여잡고 억지로 미소를 띠며 오늘을 견디고 또 견디는 건 다 똑같다. 그렇게 굳어져 버린 마음은 마음으로 푼다. 누군가와 만나고 같은 처지로 위안을 받으며 때로는 쓸데없는 이야기들로 시간을 채우고 마음은 말랑해지게 만드는 일. 누군가와 공유하는 게 상처라는 것은 슬프지만, 그것을 함께 견딜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마음으로 마음을 만지작거릴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경애(敬愛)의 마음>에는 유독 마음이 쓰이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제목은 ‘경애’이지만 느닷없이 초반부터 ‘상수’가 먼저 등장하고, 상수는 상상력 넘치고 무모하고 또 정이 많은 인물이고, 그는 또 경애를 만나고 경애는 상수만큼이나 좋은 사람이고, 그들이 같은 공간에서 만나고 추억하는 많은 인물들이 이상하게 마음에 들어오는 소설이다. 그중 가장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인물은 단연 경애와 상수인데, 둘이 가지고 있는 기억의 접점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마음이 포개어지는 과정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경애와 상수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소중한 사람인 E를 잃었고, 소중한 사람을 온전히 떠나보내지 못한 채 마음을 걸어 잠갔다. 그렇게 수많은 오늘을 버텨온 그들은 서로가 서로인지를 모른 채 ‘언니는 죄가 없다’라는 연애 상담 페이지에서 인연을 이어나갔고, 일터에서 만나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다. 경애는 시종일관 담담하고 차분하다. 상수는  다소 유머스러울 정도로 무모하고 우직한 면이 있다. 평범하지 않은 그들의 만남에는 진심이 있어 잔잔하게 마음에 폭 잠긴다.

두 마음의 파동 이외에도, 소설은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쌓여 있다. 욕심 때문에 모두를 죽게 만든 화재사건의 트라우마에 대하여, 용서와 회개의 의미에 대하여, 부당함을 지적하면 또다시 부당함으로 일관하는 기업의 횡포에 대하여, 여성의 연대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 그리고 그 모든 일들에서 절대로 폐기되지 말아야 하는 마음에 관하여.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많은 말을 삼키고 내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위로받을 것이다. 소설 속 경애와 상수의 시선을 따라가며 그들이 했던 것처럼, 소설 속의 이야기와 내가 사는 현실의 접점을 찾아가면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나는 항상 같은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여러 소중한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엄청나게 대단하고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사소한 기억과 만남과 한마디의 말들. 모두가 ‘마음’이 담긴 것이었다.




● 24쪽,
누구를 인정하기 위해서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는 없어. 사는 건 시소의 문제가 아니라 그네의 문제 같은 거니까. 각자 발을 굴러서 그냥 최대로 공중을 느끼다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내려오는 거야. 서로가 서로의 옆에서 그저 각자의 그네를 밀어내는 거야.

● 92쪽,
어느날 시장에 갔다가 옥수수가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경애는 이삼일에 한번씩 나가서 옥수수를 사왔다. 옥수수의 힘센 잎들, 동물의 것처럼 부드러운 수염, 그리고 아주 꽉 차오른 알갱이들을 보고 있으면 창으로 문득 들어오는 밤바람을 느끼듯 어떤 환기가 들면서 산다, 라는 말이 생각나곤 했다. 경애가 이방에서 하릴없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동안에도 여전히 저 밖에는 ‘산다’라는 것이 있어서 수많은 것들이 생장하며 싸우며 견디고 있다는 것.

● 172쪽,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강변북로를 혼자 달려 돌아올 수 있잖습니까. 건강하세요. 잘 먹고요, 고기도 좋지만 가끔은 야채를, 아니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매뉴얼이에요.

● 217쪽,
우리는 같은 사람들이었을까. 그러니까 누워서 종일 음악만 듣다가 먼저 배고픈 사람이 일어나 라면을 끓였던 스무살 시절의 우리와, 한강에서 오리배를 보고 있던 지난 계절의 우리는 같은 사람이었을까. 각자 다른 차를 타고 강변북로를 달렸던 그 밤의 우리가 같았을까. 어쩌면 손상된 것이 아닐까. 제대로 봉인되어 있던 것을 뜯어서 엉망으로 만든 것이 아닐까.

● 305쪽,
지하상가를 지나다 노숙하는 여자와 아기를 보았을 때 경애가 무심코 했던 불행이라는 언급을 정정하던 E는 그때 겨우 열여덟의 소년이었다. 그런 깊이를 가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반복된 현실과의 충돌이 있었을까. 마치 운석이 수없이 충돌해 만들어진 달의 크리에이터처럼 일상의 어떤 일들이 E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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