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사람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것은 사소한 의심에서 시작된다. 의심에, 또 다른 의심이 붙어 크게 불어나 드디어 '확신'이라는 것을 할 때까지 의심을 하는 자는 심각한 불안에 시달린다. 이 불안의 정체는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온다. 그런데 의심을 하는 사람이 이상한 걸까, 아니면 의심을 받는 사람이 이상한 걸까? 그게 아니라면 그가 겪는 상황과 경험들이 이상한 것일까? "이것은 자연스러운가? 그러한가? (「굴 말리크가 기억하는 것」)" 강화길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의심하고 갈등하다가 기어코 비밀의 장막을 걷어내고야 만다. 이를테면 호수 바닥의 기다란 물건을 손으로 더듬거나 ( 「호수―다른 사람」), 참을 수 없는 악취의 그 방을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것과 같은 (「방」).

 

그러나 확인된 실체는 강화길의 소설에서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소설 속 1인칭 화자의 서술을 통해 독자는 주인공의 긴장감을 머금은 채 숨 쉴 틈 없이 그의 발자취를 따른다. 주인공은 의심하는 것에 관한 비밀을 파헤치려 애쓴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우리에게, 작가는 '왜', '어째서'에 집중하게 한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왜 주인공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다. 이러한 장치는 표제작인  「괜찮은 사람」에서 가장 극대화된다. '운 좋게 그런 남자를 만났다'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처럼, 주인공은 참 괜찮아 보이는 남자에게 새로운 면을 자꾸만 발견한다. 연이은 의심, 혹은 착각. "하필이면 그의 손이 닿는 곳에 내가 있었"고, 하필이면 차를 세운 곳이 피에 젖은 도축장이고, 하필이면 말다툼이 벌어질 때 실수로 그는 핸들을 꺾었다. '하필'이라는 말 건너엔 무엇이 있었길래.

 

 '하필'이라는 말은 어쩌면 가장 무서운 말인지도 모르겠다. 이는 여성폭력의 문제와 깊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어떠한 이유도 없이 "상대방이 원했기 때문에" 폭력을 당한 여성들은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입을 다물고, 보복이 두려워 더욱 조심스러워진다. 하필 그곳에 있어서, 하필 누구와 닮아서, 하필 늦은 시간에 밖에 나와 있어서, 하필 짧은 옷을 입어서……. 소설집 『괜찮은 사람』 속에 다뤄진 다양한 여성 폭력의 사례들은 여성들의 이유 모를 불안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숨겨진 것도, 지나치게 드러낸 것도 아닌 작가의 쓰기 방식은 능수능란하다.

 

그 밖에도, 정당함이 무시되는 사회와 그것을 알면서도 온몸을 부딪히는 엄마의 모습을 그린 「당신을 닮은 노래」는 너무나도 공감이 되었다. 마지막에 배치된 「굴 말리크가 기억하는 것」이라는 소설은 폭력과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 멀어지는 두 연인을 그린다. 마치 절정에 올랐다가 사르르 사그라진다. "끔찍한 일이죠. 사랑했던 사람이 불행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온다는 건.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행동한다는 것도 (「굴 말리크가 기억하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 선명한 의도로 그려낸 소설들은 '강화길'의 이름을 분명히 기억하게 한다.

 

 

 

 

 

호수에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강간을 당했다. 두들겨맞았다. 왜냐하면 상대가 원했기 때문이다. 상대가 원했기 때문에 그녀는 원하지 않은 일을 당했다. (…) 그러나 자잘한 돌멩이들이 바닥에 떨어지며 냈던 그 소리에 대해서만, 오직 그 이야기만 사람들의 입에 끈질기게 오르내렸다. 그러니까 조심했어야지. 그랬어야지. 그래. 그랬어야지. 그러게 호수에 왜 갔느냐고? 왜 왔느냐고? (‘호수-다른사람‘中)

이건 끊임없이 계속되는 일종의 제자리 걷기였다. 누구도 이 걷기가 끝나리라고 쉽게 낙관하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이어지리라는 걸 모두 알았기 때문이다. 누구도 자신이 가장 힘들게 살고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 말은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왜냐하면 사실이 아니었으니까. 모두 힘들고, 그래서 모두의 마음은 함께 가난했다. 단지 나만 견딜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불안이었다. (‘괜찮은 사람‘中)

"정말로 가능성이 있는 사람 말이에요, 선생님."
엄마는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자신의 말이 잘못되지도, 이상하지도 않았는데 마치 부끄러워하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엄마는 약간 억울했다. 그래서 더욱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당신을 닮은 노래‘中)

괜찮아 기채야.
지금도 가끔, 은영이 글자를 읽는 척했던 모습이 떠오를 때가 있다.
그러면 무언가 느껴진다.
그걸로 충분하다. (‘눈사람‘中)

나는 잘못 기억하고 있었어요. 왜인 줄 아십니까? 그 마음이 사라지면 평화로울 거라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네. 아니었습니다. 화가 났습니다. 그래요, 분노, 분노입니까? 그것이 다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있었습니다. 파업했지요. 체포되었습니다. 단지 화가 나 있던 것뿐인데 당신들은 내가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그러더군요. 혹시 분노와 용기는 같은 말입니까?
또 하나 못 알아든 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모르겠습니다.
필요 없는 것과, 대신할 것이 있는 것.
둘 다 같은 겁니까? (‘굴 말리크가 기억하는 것‘ 中)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실제로 그 땅에 지하 철도는 존재했다. 그것은 노예 탈출 비밀 조직이었다. 그러나 소설과 달랐던 점은 이 지하철도가 비유적 표현이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역장', '기관사'로 칭했고, 도망 노예들을 '승객', 그들을 숨겨주는 이들의 집을 '역'으로 부르는 등 실제 철도 용어를 은어로 쓰면서 10만 명이 넘는 노예들을 자유로 이끌었다 (346쪽)" 옮긴이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 수많은 노예들이 지하철도라 불리는, 보이지 않는 희망의 길을 통해 그 지긋지긋한 '남부'를 빠져나왔다. 소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는 이러한 실화를 바탕으로, '노예들이 자유를 찾아 떠날 수 있는 숨겨진 철도가 있었다면'이라는 상상에 착안해 쓰였다.

 

그러나 상상은 단지 소설의 흡인력을 높여주는 장치일 뿐이며 그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현실'이었을 끔찍한 광경들이다. 19세기 미국의 인종 문제를 다룬 문학들과 마찬가지로, 책은 문자 바깥에서 생생하게 그려지는 참상들을 드러낸다. 사소한 이유와 주인들의 변덕으로 흑인들은 온갖 신체적 폭력과 정신적 모욕을 당해야 했다. 가격이 매겨지고, 팔려간 곳에서 죽을 때까지 막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자유를 찾아 떠났다가 잡혀온 이들의 끔찍한 죽음을 두 눈으로 본 그들에게는 탈출은 곧 죽음이었다. 혹시나 탈출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거대한 감옥이자 지옥이었던 그곳에선 사시사철 불안에 떨어야 했다.

 

주인공 '코라'라는 한 흑인 소녀의 탈출기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는 코라의 시점만이 아닌 그 땅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죽을 때까지 농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목화밭에서 피 흘리며 죽었던 코라의 할머니 '아자리', 딸을 버리고 탈출했지만 어떻게 잘 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코라의 엄마 '메이블', 코라와 함께 새로운 삶을 갈망했던 '시저', 그리고 노예사냥꾼 '리지웨이'까지. 그들의 목소리는 온 평생 자유를 생각했던, 혹은 자유를 생각하지도 못하고 죽어버린 당시 흑인들의 삶을 재현해낸다. 그나마 큰 용기와 희망을 품었던 소설 속 '코라'의 탈출도 예상한 대로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한고비를 넘어 새롭게 밟은 '역'에선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게 하는 장애물들이 펼쳐진다. 끔찍한 것은 그들을 속이는 가혹한 현실들이다. 평화로운 곳으로 여겨졌던 노스캐롤라이나의 '자유의 숲'은 사실 훼손된 시체들이 끊임없이 걸려 있는 죽음의 길인 것처럼.

 

그러나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죽음을 무릅쓰고 누군가의 자유를 위해 힘써주는 '지하철도' ― 여기선 비유적 표현 ― 의 정의가 존재하고, 어두운 과거를 인식하고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이 있는 한.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가 남겨준 물음은 바로 이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누군가의 자유를 침범하진 않았는가. 그때와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우리는 자유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박진감 넘치는 소설 속의 소중한 메시지가 가슴에 담긴다.


 

82쪽,
여기서 먼 곳, 그렇게 밖에 말해줄 수 없구나. 그 많은 노선이 바뀌는 걸 바로바로 알기는 힘들다. 완행열차, 급행열차, 닫히는 역도 있고, 행선지가 늘어나기도 하고. 문제는 어떤 종착역이 다른 종착역보다 더 마음에 들 수도 있다는 거야. 역이 발각되기도 하고, 노선이 끊기기도 한다. 기차에서 내릴 때까지는 저 위에서 무슨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절대 알 수가 없어.

136쪽,
훔친 땅에서 일하는 훔친 몸들, 그것은 피로 가는 보일러, 멈추지 않는 엔진이었다. 스티븐스가 설명한 수술로 백인은 진정한 의미에서 미래를 훔치기 시작했다고 코라는 생각했다. 당신의 배를 갈라서 피를 뚝뚝 흘리는 미래를 들어내는 것. 누군가의 아기를 뺏어 간다는 건 바로 그런 것 ― 미래를 훔쳐 가는 것이었다. 그들이 이 땅에 있는 동안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 괴롭히고, 훗날 그들의 후손이 더 나은 삶을 살리라는 희망마저 앗아 가버리는 것이었다.



203쪽,
자유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바뀌는 것이었다. 숲을 가까이서 보면 나무들로 빽빽하게만 바깥에서, 텅 빈 초원에서 보면 그 진짜 윤곽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았다. 자유가 된다는 것은 사슬과는 혹은 얼마나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느냐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298쪽,
그 전날 밤 테네시에서, 리지웨이는 코라와 엄마를 미국의 계획의 결함이라고 했다. 그 두 여자가 결함이라면 이 집단은 무엇이란 말인가?

319쪽,
한 가지 착각이 있습니다. 우리가 노예제를 벗어날 수 있다는 착각입니다.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그 상처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팔려 가고, 아버지가 매를 맞고, 여동생이 우두머리나 주인에게 능욕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여러분은 쇠사슬 없이, 멍에 없이, 새로운 가족과 함께 오늘 여기 앉아 있으리라고 생각이나 하셨습니까? 여러분이 아는 모든 것이 자유는 속임수라고 말했습니다 ― 하지만 여러분은 여기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달립니다. 저 밝은 보름달 빛을 따라 안식처를 향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별빛학개론 리토피아포에지 55
윤종환 지음 / 리토피아 / 2017년 2월
평점 :
품절


 

 

어느 날 쪽지가 한통 와 있었다. 목록에 쌓인 많은 쪽지들이 '안녕하세요'로 시작하기 때문에, 어쩌면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뻔했던 쪽지 한 통. 그 속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자신은 젊은 새싹 시인이며 순수한 독자와의 소통이 필요하다는 말. 어투는 수줍지만 강단이 있는 느낌이었다. 겸손한 마음이 드러나면서도 호평과 혹평 모두를 받아들여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러났다. 내가 고르는 책만으로도 요즘은 유독 읽는 시간이 빠듯해 이런 글에 긍정적인 답변을 주지 못하고 있었지만, 이 진심 어린 쪽지를 거부할 수가 없었다.

 

 사실, 쪽지 얘기를 빼고서라도 이 책을 읽어볼 이유는 충분하긴 했다. 짧은 글과 감성 글, 그리고 시時의 경계가 허물어져 누구나 자유롭게 시를 따라 쓰는 지금. 하루에도 몇 건씩 SNS에 올라오는 사진 속엔 예쁜 그림과 캘리그라피 등으로 편집해 꾸민 글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조금 더 고뇌하고, 조금 더 뼈를 깎는 노력으로, 잡다하게 꾸밀만한 것들을 벗어던지고, 단지 글로만 승부하는 젊은 시인의 시들은 어디에 있는가. 궁금해도 정보가 없다. 한 발짝 뒤에 물러나 서 있는, 시는 어렵다는 편견 속에서 독자를 필요로 하는 젊은 시인의 시를 읽어보고 싶었다.

 

당신과 머문 곳을 별이라 할 때
별과 별을 연결하는 선은
우리가 걸어온 길입니다
캄캄한 은하 저 너머에는
수만 개의 .과 .이 -으로 이어져 빛이 납니다 (59쪽, 점과 선의 밤하늘)

 

 '별빛학개론'이라는 제목처럼 감성적인 이미지의 시가 많았다. 특히,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마음과 마음이 주고받는 일들을 ('벽이 못에게') 누구에게나 애틋한 관계인 가족들의 모습을 ('김밥 단무지') 표현하는 따뜻한 그림이 돋보였다. 작은 존재들과 소외받는 이들을 위한 시, 기억해야 할 사람들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추모 시 또한 실려 있는데, 이 책의 마지막에 실린 '그대라는 바다를 품고'는 응급환자 구조를 위해 출항했다가 순직한 故 오진석 경감의 추모시라고 한다. 별과 별, 점과 선을 말하는 시인의 모습처럼 따스한 시선이 느껴졌다.

 

뜨겁게 끌어안는 듯 가슴에
시집을 품고 잠들겠노라
그러면 꿈에
가장 아름다운 은유가 날 반길 터이니,
그 뜻을 음미하며
나와 그 사람과, 또 나의 글이 하나가 되겠노라 (33쪽, 한 시인의 고백)

 

 대부분의 시들이 '감성'과 '공감'을 매개로 독자와의 소통을 청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래서 이 시들은 많은 독자들에게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대학생활을 하는 청년으로서 주변의 사물들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연상하고 고심해 쓴 것 같은 풋풋한 시들도 있고, 세태를 풍자하거나 깊은 감정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털어버리는 것 같은 시들도 있었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고 싶은 건 시를 잘 안다고 하기엔 어려운, 단지 시와 책을 사랑하는 일반 독자의 마음에 박힌 문장들이 여럿 있었다는 것. 아직 젊은 새싹 시인이 무럭무럭 자라나, 깊게 무르익기를 기대하고 응원한다.

 

17쪽, 번역하는 남자
다른 곳에서 태어나
다르게 살아온 두 식물성 객체
번역된 글과 주제 하나로 결합되는 밤
서로를 비틀며 자라나는 줄기
결말로 갈수록 짙어지는 활자 향기

55쪽, 사랑니 · 1
누구나 하나씩은 갖고 있는 망치
고통을 박제하는 방법으로
힘껏 두더지 머리를 내려치지만
흔들리는 것은 그 밤처럼 고요했던 기억
더욱 더뎌지는 두더지의 진도//
밖으로 튀어나와
응어리진 것을 토할 때, 아파도 된다며
망치질을 포기하는 게 이기는 게임
마취는 빨리 풀려야 한다

65쪽, 달팽이가 달팽이인 이유
묵묵히 걷는 이를 무심코 밟지 않기를,
부지런한 느림보에 은총이 있기를,
가장 낮은 것도 지킬 것이 있다

143쪽, 떡
사람의 발은 모두 떡이다
뛰지 않으면 금방 말라버리고
걷지 않으면 딱딱하게 굳는다
출근길에 구두를 신는 아버지
그의 발은 질은 시루떡이고
설거지하는 오색버선의 어머니
그녀의 발은 무지개떡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느 때보다 민주주의 이슈가 불거진 요즘. 어둠과 죽음, 폭력은 조금이나마 걷혀졌으나, 권력과 법과 힘 있는 자들의 농간들은 쉬이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불과 몇 달 전, 특검 한가운데에 울려 퍼졌던 억울한 외침을 기억해본다. "여기는 더 이상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 자신의 죄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아주 당당하게 말하던 최순실. 그 모습을 보고 분노를 담아 욕설을 퍼붓는 사람들이 있었고, 혀를 끌끌 차며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뒤편에, 40년 전 재판정 앞에서 '민주주의'를 외쳤던 한 여자를 추억하는 사람도 있었다.

 

"독재정권 물러가라! 민주주의 쟁취하자!" 교도관이 영초언니의 입을 틀어막았고, 언니는 거세게 발버둥 쳤다. 우리에게 다가오려는 가족들은 교도관과 법원 경비들에게 차단당했고, 가족들은 격렬하게 항의하고 소리치며 몸부림쳤다. 아비규환, 아수라장이었다. (199쪽)

 

 너무도 다른 '민주주의'라는 단어의 어감과, 두 상황과 두 시대의 간극이 이 책을 나오게 했다. <오마이뉴스> 편집장이자 제주 올레길로 잘 알려져 있는 언론인 서명숙은 학생운동을 함께 했던 '천영초'라는 이름을 세상에 더 많이 알리기로 결심했다. 제주에서 태어나 박정희 키드로 자랐던 저자가 학생운동에 참여하게 되고 결국 감옥생활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중심에는 좋은 세상을 위해 누구보다 열렬히 싸웠던 영초언니가 있었다. '담배를 가르쳐준 나쁜 언니'이자 부조리한 일이라면 기꺼이 나섰던 그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환멸을 받고, 불운의 사고로 어린아이가 되기까지의 일들을 저자 서명숙의 시선으로 담았다.

 

 혹독했던 유신정권 아래, 거리에선 최루탄과 곤봉, 발길질이 난무하고, 사람들은 독재에 신음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그런 사회에서 평안하게 대학생활을 하는 것은 허울뿐임을 알고 있었다. 저자는 대학에서 '행동하는 양심' 영초언니를 만나 새로운 세상을 알아갔다. 도서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책들을 영초언니의 집에서 읽고, 전태일의 가장 큰 소망은 '자신들을 도와줄 법을 아는, 대학을 나온 친구(51쪽)'였다는 사실을 듣고 야학에 참여하기도 했다. 몇백 장에 이르는 유인물을 직접 등사하여 세상에 뿌리고 시위를 했다. 영초언니에게 붙은 감시를 통해 '산천초목사건'으로 구치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학생을 보호해야 하는 학교는 보란 듯이 제적 처리를 했다.

 

 특히, 책 속에서 가장 마음을 흔들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가라열'이라는 고려대 여학생들의 모임이었다. 지독한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튀는 행동'을 하는 여성들은 몰매를 맞는 시대였다. 영초언니는 <동일방직 똥물 사건>을 비롯한 여성 노동자들의 삶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의논을 통해 만들어진 이 모임에선 여성들이 모여 자유롭게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었다. 열정적이며 진취적인 청춘이었다.

 

'영초언니'라는 제목 속에는 그때 거리에 나갔던 많은 사람들의 이름까지 담겨 있다. 연약한 외모로 '짭새'들의 아지트를 박살냈던 혜자언니, "여자들끼리 술먹고 담배를 피우는 주제에(123쪽)"라는 옆테이블 남자에게 막걸리를 부은 순자라는 이름과, 엄주웅, 문화 형, 그리고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수많은 학생들과 시민들과 노동자들…… 그 그리운 이름들. 영화 <택시운전사>의 화면 속 스쳐 지나간 모든 사람들의 희생과 도움이 값진 것이었던 것처럼, <영초언니>를 통해 본 그때 그 시절의 사람들도 무척이나 눈부시다. 기억해야겠다. 감사한 마음으로, 잊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으로.

 

 

 

 

53쪽,
"유치환의 시 「깃발」처럼 명숙이 네가 남겨두고 간 빨래를 깨끗이 빨아서 마당 빨랫줄에 가지런히 널어놓고 보니 네가 너무나 보고 싶다. 네 빨래 펄럭이고 내 그리움도 펄럭이고……"
아마 연인에게서도 이런 애틋한 엽서를 받긴 힘들 것이다.
뿌리 뽑힌 채 이식된 것 같은 낯설고 삭막한 서울에서의 삶, 철저하게 ‘기브 앤 테이크‘로 일관하는 듯한 도시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 붙일 곳 없어 서성대던 나였다. 그런 내게 언니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주었다. 나는 물 만난 고기처럼, 오랜만에 햇볕을 쪼인 화초처럼 쑥쑥 자랐다.

79쪽,
"한꺼번에 다 잡혀들어가는 게 능사는 아니야. 남아서 뒷바라지할 사람도 필요하고, 다음에 데모할 사람도 있어야지. 차례차례……"
먼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인지, 도망치는 자의 비겁한 자기변호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눈앞에서 남학생들이 마치 비료포대처럼 질질 끌려가고, 팔이 뒤로 꺾인 채 닭장차에 집어던져지는 걸 보면서도 어찌 이리 침착하고 차분하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104쪽,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엄주웅이 사랑한 대상은 ‘서명숙‘이라는 특정한 여학생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 암울한 시대에 불의한 국가권력과 감히 맞장을 뜨려는 자가 끊어내야 하는, 포기해야 하는, 남겨두고 떠나야만 하는, 그 모든 그리운 것들의 한 조각이었는지도 모른다.

256쪽,
모두들 돌아가고 난 뒤 그제서야 아이를 꽉 끌어안으니 갑갑한지 품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쳤다. "끄으윽 엉엉……" 둑이 터지듯 참았던 울음이 쏟아져내렸다. 그 공포스럽던 순간이 이렇게 무탈하게 지나가다니. 허탈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다시는 절대로 영초언니와 엮이지 말아야지‘ 결심했다. 그 한낮의 해프닝을 계기로 나는 나 자신을 더욱더 소시민적인 삶 안에 가둬놓았다.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그날까지 더 가열하게 싸우겠노라‘고 구치소 앞에서 선언했듯이 가파른 투쟁의 길로 걸어들어가는 영초언니와는 점점 멀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눅눅했던 여름이 지났다. 날짜로, 입추(立秋)를 보내고 나니 믿기지 않게도 시원한 바람이 줄곧 불어온다. 여름이 싫은 건 눅눅함에서 오는 짜증 때문. 언제 이것들이 사라질까 싶었더니 이제야 서서히 얌전해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생각해보면 사실 모든 일들이 그랬다. 울음이 터져 나올 정도로 분노했던, 참을 수 없이 싫었던, 얼굴 빨개지도록 부끄러웠던, 시간 한 토막을 딱 뽑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슬펐던 모든 것들을 우리는 지나쳐간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지 모른대도 멀뚱멀뚱 걷고는 있다. 김애란의 소설 속 인물들 또한 그러한 지점들을 지나치고 있는데, 그보다 훨씬 더 깊고, 온 힘을 다하여 빠져나와야 할 정도로 가파르다. 대부분의 단편들이 상실과 부재에 대해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잃고, 무언가를 잃고, 탄탄히 흘러가던 삶의 중간이 뚝 끊어지는 일들을.

 

"웃는 것, 또 웃는 것. 무슨 일이 있더라도 웃는 것. 그리하여 영원히 절대로 죽지 않을 것처럼 구는 것." ('침묵의 미래' 133쪽)

 

 왠지 모르게 눅눅함이 깃들어 있음에도 시원해 보이던 표지에 취해 읽은 단편들 속에서, 상실을 맞이하는 건 눅눅한 여름날에 읽기엔 꽤 힘든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오싹할 정도로 춥기까지 해서 낯설은 감정이었다. 소설은 첫 단편 <입동>부터 너무 가혹했다(다른 책에서 이미 읽은 것인데도). 아이의 죽음과 새롭게 얻은 집 사이에서 도저히 우뚝 설 수 없는 부부의 모습을 다뤘다. 그를 시작으로 죽음, 이별, 소멸, 실패, 온갖 어두운 것들이 밀려들었다. 너무 우울해서 책을 잠깐 덮었다. 누군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럴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었던 이유는 뒤로 갈수록 어두운 것들보다는 적응과 이해, 용서와 같은 '다시' 걸어가기 위한 것들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상실이란 배경 속에 사는 '그쯤의 어른'들의 모습을 이렇게 잘 묘사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이를테면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바깥을 인식하고 이를 악무는 것 ('건너편'), 버스 창문에 비친 내 얼굴 속에 담긴 과거를 보는 것 ('풍경의 쓸모'), 슬픔 대신 무의미한 일상에 기대는 것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과 같은. 작가는 '그쯤의 어른'들이 위기와 상실을 겪고 마치 관성처럼 꿋꿋이 해내고 다시 돌아오는 모습들을 아주 적확하게 그려내고, 파장이 큰 이야기 속에서 또한 정말 그럴듯한 문장으로 중심을 잡는다. 이런 조화로움 때문일까. 참을 수 없이 우울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김애란의 소설을 찾는 건.

 

 작가의 전작인 <비행운>을 읽었을 때 서른을 상상했던 나는 이제 그쯤에 와있고, 또다시 언제 올까 싶은 김애란의 소설 주인공들은 이제, 아이에게 '이해는 품이 드는 일'이라고 설명하는 ('가리는 손') 어른이 되어 있다. 그의 다음 소설은 어떨까. 뭐가 됐든 작가는 우리에게 닥친 위기들을, 어디로 걸어갈지 고민하는 모습들을 묵묵히 그리고 있을 것만 같다.

 

 

20쪽, <입동>
그러니까 어제와 같은 하루, 아주 긴 하루. 아내 말대로라면 ‘다 엉망이 되어버린‘ 하루를. 가끔은 사람들이 ‘시간‘이라 부르는 뭔가가 ‘빨리 감기‘한 필름마냥 스쳐가는 기분이 들었다.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한. 점점 그 폭을 좁혀 소용돌이를 만든 뒤 우리 가족을 삼키려는 것처럼 보였다. 꽃이 피고 바람이 부는 이유도, 눈이 녹고 새순이 돋는 까닭도 모두 그 때문인 것 같았다. 시간이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편드는 듯했다.

99쪽, <건너편>
당시 이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도화 혼자 어른이 돼가는 과정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일이었다. 도화의 말투와 표정, 화제가 변하는 걸, 도화의 세계가 점점 커져가는 걸, 그 확장의 힘이 자신을 밀어내는 걸 감내하는 거였다. 게다가 도화는 국가가 인증하고 보증하는 시민이었다. 반면 자기는 뭐랄까,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애매한 성인이었다. 이 사회의 구성원이되 아직 시민은 아닌 것 같은 사람이었다.

173쪽, <풍경의 쓸모>
강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 종종 버스 창문에 얼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나왔다. 어떤 사건 후 뭔가 간명하게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을 불만족스럼게 요약하고 나면 특히 그랬다. ‘그 일‘이후 나는 내 인상이 미묘하게 바뀐 걸 알았다. 그럴 땐 정말 내가 내 과거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화는, 배치는 지금도 진행중이었다.

266쪽,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그 순간 남편이 무얼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가. 당신을 보낸 뒤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