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말도 듣기 좋게 - 만나면 기분 좋아지는 사람의 말하기 비밀
히데시마 후미카 지음, 오성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절판


 

매 순간 예쁜 말을 골라서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닌데도, 긴장감이 넘치는 상황에도 미소와 인사, 칭찬을 건넨다. 일부러 멋진 말을 꾸며서 하지 않는다. 조심스러운 마음과 반가운 마음을 전하는 진심 어린 말에서는 억지를 찾아볼 수 없다. 말은 유독 신중함이 필요하다. 단 한마디의 말에도 어떤 누군가는 기분이 쉽게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고, 과하게 말하자면 인생의 나쁜 기억 중 한 조각이 되어 굳세게 뿌리를 내려있을 수 있다. 오래전의 일이지만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어색함을 지울 수 없는 내 앞에서 친근하게 첫인사를 건네는 누군가의 표정과 말투를.

 

무조건 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쓸 필요는 없지만, 때때로 상대방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같은 말도 듣기 좋게’ 할 수 있는 센스가 필요할 때가 있다. 긍정과 부정, 충고와 거절, 생각보다 꽤 많은 상황에서 쓰이는 대화법을 전해주는 이 책의 저자는 20년간 라디오 DJ와 나레이터로 일해온 사람이다. 한마디로, 사람을 상대로 끊임없는 대화를 하며 살아왔다는 이야기다. 이제는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농담도 여유 있게 주고받는 저자도 남들과의 대화가 어렵고 막막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유학시절 친구의 칭찬 한마디가 ‘즐거운 대화를 만드는 마법의 문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물론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었지만 자신만의 노하우를 하나씩 쌓아나갔다.

 

그가 전해주는 대화법은 유창한 달변가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들어주고 배려할 수 있는 긍정 에너지를 듬뿍 담고 있는 조언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대화부터, 일상적인 대화, 긴장을 푸는 법 등 ‘대화법’이란 주제에서 연상할 수 있는 상황들이 등장한다. 이러한 것들은 책의 내용으로 예상했던 것이니 당연하게 넘어가지만, 그 밖에도 꽤 유용한 팁들이 있다. 부제로 설명을 대신해 이야기해본다면, ‘근거 없는 비난을 튕겨내는 마음 코팅’, ‘아슬아슬한 대화에서 위트 있게 빠져나오는 법’, ‘진심 어린 사과야말로 최고의 대화법’ 등 답답한 대화 상황에서 능수능란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법들이 눈에 띈다. 긍정적인 상황에서 누구나 어떻게든 길을 만들 수 있지만, 부정적인 상황에서 ‘나만의 길’을 만드는 지혜는 꽤 도움이 된다.

 

이 책 한 권을 통해 실생활에서의 대화법을 모두 고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물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의 기분과 성향은 피치 못하게 ‘말’에 새겨지곤 한다. 저자의 긍정 에너지가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영향이 간다면 분명 좋은 일이 아닐까.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특히나 어려운 ‘말버릇’을 가꿔나간 저자의 노하우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언제든 이러한 상황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여유롭게 대처하는 용기가 생기지 않을까.

 

 



52쪽,
매 순간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미소의 간’을 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요리의 간을 맞출 때 먹는 사람의 기호에 맞게 조미료를 적절하게 조절하듯이 최상의 미소를 찾기로 한 것입니다.

 


71쪽,
일부러 멋있는 말이나 어려운 문자를 쓰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은 금세 티가 나기 때문입니다. 느낀 점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이 나를 위해 시간을 투자해주었다는 진심이 전해집니다.

 


102쪽,
이유 없는 악의에는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더라도 감정의 스위치를 차단해버리면 됩니다. ‘마음의 장벽을 쌓는다’란 말은 긍정적인 의미로 잘 쓰이지 않지만,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보이지 않는 벽을 쌓는 일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상대방의 악의를 흡수하지 않기 위한 ‘마음 코팅’입니다.

 


120쪽,
대화 상대방을 관찰하고 대화하기에 적절한 타이밍을 생각하는 습관만 들인다면 이 세상은 이야깃거리로 가득합니다. 평소와 같은 귀갓길에도 남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저 사람에게 말을 건다면 어떤 주제가 좋을까 여러 가지 상상을 하면서 주변을 살펴보면 어떨까요. 이야깃거리는 물론이고 사물을 보는 시각도 넓어질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
비프케 로렌츠 지음, 서유리 옮김 / 레드박스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시간여행 이야기가 매력적인 건, 인생의 불확실성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선택’의 순간들을 조금 더 세심하게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선택의 순간들은 우리의 인생에서 수만 개, 아니 셀 수도 없는 무한의 갈림길을 마주치는 것과 같다. 어떠한 선택은 때론 행복과 엄청난 쾌감을, 어떠한 선택은 우리를 무너지게 만드는 좌절과 슬픔을 주기도 하는데, 이런 선택의 순간을 내 손으로 다시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 행복할까, 아니면 불행할까. 소설 <당신의 과거를 지워드립니다>는 엄연히 말해서 이제껏 보아왔던 시간여행의 스토리와는 조금 다르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나쁜 부분을 ‘수정’할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판타지를 담고 있다.

 

게다가 주인공인 찰리는 온갖 수치스러운 기억들과 트라우마를 안고 제멋대로 살아가면서, 최근엔 기대를 품고 간 동창회에서 첫사랑 남자에게 이용까지 당해 엄청난 망신을 당한 참이다. 아마도 많은 독자들이 말로는 뱉지 않아도 잠깐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 차라리 바꾸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결국, 더 이상 찌질이로 살고 싶지 않다며 과거를 바꿔주겠다는 사람을 찾아간 찰리는 자신의 지우고 싶은 기억들 몇 가지를 없애버리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선택은 늘 다른 선택과, 다른 상황과 연계되어 있지 않은가. 찰리가 사는 세상은 완전히 바뀌어버린다. 온갖 호화로운 일상, 꿈에 그리던 모습들이 눈앞에 펼쳐져 기쁘면서도 어딘가 시원치 않은 구석들이 존재한다. 왜일까.

 

과거의 선택을 후회하거나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누구에게나 수치스러운 기억 하나쯤은 있으니까. 나쁜 과거는 불현듯 찾아와 기억의 주인을 괴롭힌다. 전혀 그것과 상관없는 생각을 하다가도 반짝 떠오를 때는 얼마나 야속한지. 부끄러운 기억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기분 좋은 생각으로 나쁜 기억을 없애버리려고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지워지지 않고 기억도 생생하다. 그러나 소설은 아마도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과거를 뼈저리게 후회하고 없애버리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책임질 일은 책임지고, 만약 과거로 인해 무엇인가 틀어졌다 하더라도 다시 좋은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것. 결국 과거를 받아들이고, 현재와 미래를 더 잘 살아가는 것이 작가가 생각하는 ‘행복’이다.

 

소설의 구성과 주제는 다소 식상한 부분이 있지만, 꽤 많은 분량 안에서 흐트러지지 않고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한 그 전달 방식이 누구나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에 이 소설이 많은 사랑을 받은 게 아닌가 생각된다. 영화의 장면이 바뀌는 듯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소설 속에선 주인공이 가장 사랑하는 노래 가사까지 담겨, 다양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오랫동안 스테디셀러로 사랑을 받은 이유를 알게 되었고, 새롭게 옷을 입고 재출간한 책이 이 책을 모르는 또 다른 사람에게 현재의 행복을 찾아줄 수 있기를 바란다.

 

 


34쪽,
게오르크 아저씨가 팀에게서 동창회 주소록을 빼앗아 고이 접은 다음 편지 봉투에 넣어 나에게 전해주었다. 게오르크 아저씨는 지금 내 심정이 어떨지 눈치챈 모양이었다. 사실 나는 예전에 같이 학교를 다녔던 동창생들이 어떻게 살고 있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다들 성공해서 탄탄대로를 달리든 말든 나만 가만 내버려두면 그만이었다. 그런데도 왜 갑자기 이렇게 기분이 꿀꿀할까?

 

129쪽,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문득 다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는 마술이나 마법 따위는 믿지 않는다. 심지어 오늘의 운세도 믿지 않아 아예 읽지 않는 사람이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그럴 수 있다면? 나는 이런 생각을 집어치웠다. 이런 생각 자체가 말이 안 된다! 그네에 앉아 있는 아이가 또다시 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나도 다섯 살 때는 저렇게 귀여웠을 것이다. 만약 그럴 수 있다면? 단지 내가 믿지 않기 때문에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리는 거라면?

 

138쪽,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우리의 인생은 수백만, 수천만 개의 다양한 가능성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무한히 많은 숫자 조합이 가능한 숫자 자물쇠처럼 말이죠. 우리가 왼쪽으로 가면 오른쪽으로 갔을 때와 전혀 다른 인생이 펼쳐지는 거죠. 출근을 단 5분만 늦게 했어도 우리의 남은 인생에 평생 영향을 미쳤을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372쪽,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내가 결국 입을 뗐다.
“뭔가가 빠진 느낌이에요.”
게오르크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아신다고요?”
아저씨는 조용히 웃었다. 그러더니 내 손을 꽉 잡고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어떤 일들은 바로 우리 코앞에 너무 가까이 있어서 우리가 걸려 넘어져도 못 알아차리는 경우가 있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자 지음 / 첫눈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아무리 바쁘고 팍팍한 일상이라도 주변을 서서히 둘러볼 수 있는 순간은 온다. 길거리에서 잠시 시간이 남아 머무를 때, 지하철과 버스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릴 때, 카페에서 잠시 딴생각을 할 때. 티 나지 않게 사람들의 모습을 살짝씩 들여다본다. 약속시간에 늦은 듯 헐레벌떡 뛰고 있는 사람, 군복을 입고 있는 남자친구를 배웅하는 사람, 전단지를 돌리고 있는 사람, 무거운 배낭과 딱딱한 안경을 쓰고 어딘가로 걸어가는 사람. 모든 사람들의 모습은 평범하지만 자못 특이하게도 보인다. 북적한 도시의 공간 속에서 서로의 긴 숨 ― 일상의 내음 ―이 섞여 알아차리기 힘들 뿐.

모자를 좋아하고, 모자라서 그렇다는 짧은 소개 이외에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없는, 필명 모자 작가의 글도 비슷한 모습이다. 뭐든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고 언뜻 보면 매우 평범해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무척 특이하기도 하다 (표지도 그렇다. 그냥 제목만 떡하니 쓰여있는데 거의 파격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편집이라서). 작가는 <숨>이라는 책에서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이 품은 이야기를 꺼내 보인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 혹은 그녀라고만 불리지만, 이야기는 어찌나 풍부한지. 어떤 사람은 이별을 하고, 어떤 사람은 지나간 추억을 회상하고, 어떤 사람은 시큰거리는 배를 안고 추위 속에서 넘어지고,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기억하며 ‘인연’을 생각한다. 특유의 감성적인 문체 때문에 이들의 모습은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숨’이라는 제목의 의미는 뚜렷이 나타나있지는 않지만, 다양한 역할과 직업과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린다는 점에서 나는 ‘각자의 일상, 혹은 일생’의 은유적 표현일 거라고 나름대로 생각해본다. 읽다 보니 이전에 만났던 ‘양귀자’ 작가의 인물 소설이 떠올랐는데, <숨>의 정보를 보니 에세이 분류에 속해 있다. 이 책이 흥미로운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너무나 소설 같지만, 에세이 같기도 한 독특한 책. 게다가 잠깐씩 시로 쓰인 이야기도 등장하기도 한다. 그와 그녀, 그들의 이야기가 사실인지 허구인지 확실히 알 순 없으나, 작가의 눈은 꽤 깊고 따뜻하다는 것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나와는 다른 상황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여느 때보다 혹독했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다가오고 있다. 혹독한 추위, 그리고 삶이 온통 겨울이었던 사람들도 조금이라도 따뜻해지기를


17쪽, <초콜릿 장식>
아니, 그냥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짝을 버린 신발 한 짝이 갈 수 있는 곳은 고작 여기구나. 버려지는 것도 버리고 떠난 것도 결국에는 마찬가지겠구나. 얼룩지고 찢기고 외로워지는구나. 한 켤레의 신발은 헤어진 후에도 서로를 닮았겠구나.

69쪽, <예전에는 경비원이 아니었을>
마음을 지키려고 경비 일을 한다니 말이 안 되지. 상처받는 일을 하면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딱딱해진다는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야. 그런데 내가 경비원이 되고 싶었던가. 하긴, 예전에 다니던 회사도 그냥 다녀야 하니까 다녔지. 그땐 다들 그랬으니까. 그래도 예전에는 사는 게 그럭저럭 재밌을 때도 많았던 것 같은데.

87쪽, <그믐밤, 제페토는 없었다>
유모차에 담긴 어떤 이의 삶은, 그믐에 기대어 종이를 그러모으는 것으로 결말을 맞이해야만 하는가. 그녀는 흩어지는 삶을 대신할 용도로 폐지를 주웠는가. 진정 담고자 했던 세상은 어디로 갔는가. 폐품이 대신 차지해버린 삶의 자리를 언제고 감당해야만 하는 건가. 그녀의 유모차는, 그녀에게 휴식인가 족쇄인가. 생의 끝자락에 다다른 자의 단막은 심오하였고 나는 어느 것도 추측할 수 없었다.

129쪽, <결국 그녀는 네버랜드로 떠났다>
그녀는 쉬는 시간이면 화장실로 달려가 얼굴을 씻었다. 볼이 빨개질 정도로 얼굴을 문지르다가 종이 치고 나서야 교실로 돌아왔다. 친구 몇이 괜찮은지 물어보는 바람에 괜찮아진 줄 알았던 마음이 다시 괜찮지 않아졌다. 아직도 엄마의 이름이 얼굴에 남아서 친구들이 물어보는 걸 테니까.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친구들이 엄마의 이름을 잊어버릴지 알 수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여행하며 영어한다 - 기초 필수 회화패턴 100
강다흔 지음 / 키출판사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원래 영어 회화를 유창하게 하진 못했었지만, 관련 없는 일을 하고 나이도 들어가면서 영어를 쓰는 일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러다 보니 두려움은 더 커지고, 어쩌다 외국인을 만나면 목소리는 수그러들기 일쑤였는데, 영어권으로 여행을 하게 된다면 내가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지 당황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아주 유창하게는 아니지만 자신 있게 영어를 말하고 있는 할머니를 보았다. 많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배우고 하나라도 더 말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어르신을 보니 영어는 자신감, 그리고 반복해서 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화사한 표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나는 여행하며 영어한다>는 저자가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실제로 외국인과 한 대화를 모아 ‘필수 회화패턴’을 중심으로 엮은 책이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그가 깨달은 것은 진짜 여행 상황에서 필요한 영어는 그동안 여행영어 책에서 본 정석, 영어회화가 아니라, “저 중국인 아닌데요” 뭐 이런 말, 아니면 “가방을 통째로 잃어버려서 경찰서에서 진술해야 하고, 외국과는 한국인의 나이 계산법을 설명하는” ‘실전 여행영어’였다. 그리고 모든 상황에서 쓰일 수 있는 영어를 다 습득하고 외울 수 없으니, 패턴으로 설명했다.

 

“왜냐하면 나는 혼자 여행하는 자유 여행가였기 때문에. 가이드를 따라가도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기 때문에. 여행자는 듣다가 영어를 배운다. 남들하고 말하다가 영어를 배운다. 그저 닥치는 대로 말하다가 배운 영어패턴에 단어만 바꿔가며 쓴다.” (11쪽)

 

 

 

100가지의 패턴을, 저자가 직접 영어를 사용했던 상황 속 대화와 응용할 수 있는 문장들을 통해 배운다. 직접 읽어보니 정말 의외의 상황들이면서도, 진짜 벌어질 수 있는 상황들, 만약 벌어진다면 결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상황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저자는 여행지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하며  ‘문화재 혹은 기념비를 왜 밟으면 안 되는지’, ‘홈스테이를 바꿔줄 수 있는지’, ‘분실물을 찾을 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추천하는 여행지가 있는지’ 와 같은 실전 영어 회화를 사용했다. 패턴의 난이도는 그렇게 어렵지 않지만 페이지마다 단어의 설명과 tip이 꼼꼼하게 설명되어 있어 영어 왕초보도 무난하게 학습할 수 있을 듯하다.

 

 

 

100개의 패턴이 완료된 책 뒤쪽 부록에는 해외에 나가는 10가지 방법을 설명한 페이지와, 상황별 여행영어 100 (이건 여행영어 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패턴과 유사하다), 외국인 친구들과 우정 쌓는 5가지 방법도 소개되어 있다. 이 책만 천천히 연습하면 정말로 요리조리 잘 써먹을 수 있을 정도.


그리고 영어 책에서 놓칠 수 없는 mp3 파일도 책 앞쪽에 인쇄된 qr코드를 통해 들을 수 있다. 원어민 발음을 통해 실전 상황에서 듣고 말하는 연습을 해볼 수 있다. 또한 스토리마다 저자가 직접 연주한 피아노 (무려 자작곡!) 배경음악 또한 수록되어 있어서 함께 즐겁게 공부할 수 있다. 상황별 패턴이나 부록, 피아노 파일 등을 보니 서문에서 언급했던 ‘말문이 막히는 여행자를 도와주고 싶었다’는 저자의 세심한 마음이 다시금 느껴진다. 가볍지만 들어갈 것 쏙쏙 다 들어가 있는 영어책으로 올해는 자신감 있게 영어하며 여행할 수 있기를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39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렸을 때의 일들이 모두 세세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그러나 뭉뚱그려 생각해보면 나는 속 썩이는 딸은 아니었어도, 매사에 무관심한 딸이었던 것 같다. 고마움은 알았지만 표현하지 못했고, 미안함을 말하는 것도 얼마나 어려웠는지. 부모님의 표정과 말을 읽어내지 못했고, 만약 읽어낸다 하더라도 진심으로 받아들일 생각을 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실, 이런 일들이 결코 나한테만 일어났던 일은 아닐 것이다. 청소년기, 정도와 상황의 차이는 있어도 우리는 누구나 이런 어려운 시기를 보낸다.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족’이란 존재가 참을 수 없이 어렵고 혼란해지는 시절.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억울하게 늙기만 하는 건가, 정말 좋은 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걸까. 다행히 있긴 있더라고. 그게 뭐냐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는 거야.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쩌면 그 시간 동안 다른 사람의 마음을, 감정을 이해하려고 연습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라는 제목의 소설 속에서 이런 성장의 시간들을 재미있게 표현하는데, 바로 이 구절이다. 이제 어른이 되었고 그런 시절이 완벽하게 끝나버린 것 같진 않지만, 가족과의 관계 속에서 감정을 생각하는 일은 꽤 늘었다. ‘감정을 이해하려고 연습하는 시간’. 아마도 그 연습의 시간들은, 내가 지금의 부모님 나이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이어지지 않을까.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편지로만 쓴 소설이다. 2016년에 사는 은유라는 소녀가 아빠의 제안으로 1년 뒤의 자신에게 편지를 쓰게 되는데, 이 편지는 우연히 1982년에 사는 (동명의) 은유라는 소녀에게 닿게 된다는 이야기. 두 소녀 모두 이 믿기 힘든 시간여행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장차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흥미로운 점은 현재의 시간보다 과거의 시간이 더욱 빠르게 흘러간다는 것. 현재의 ‘은유’가 편지를 쓰고 부치는 동안, 과거의 ‘은유’의 시간은 부리나케 흘러간다. 어느새 과거의 ‘은유’는 현재의 ‘은유’보다 더 많은 세월을 산 ‘언니’가 되어 있다.

 

현재를 사는 은유는, 아빠는 절대로 말해주지 않는 엄마의 존재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다. 과거의 시간이 빠르게 흐르고, 현재의 시간이 천천히 머물러 있다면, 대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는 엄마라는 존재를 찾는데 힘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둘은 약간의 힌트를 나누고, 점점 엄마의 정체에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그들의 시간도 점점 가까워진다. 시간이 맞닿는 지점에서 둘은 어떻게 만나게 될까.

 

마냥 귀여운 시간여행 소설인 줄 알았는데, 마지막 몇 페이지를 들추는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제목은, 바로 이런 의미였구나, 시간을 이렇게 설정한 이유가 있었구나, 하고. 가족이라는 미묘한 관계 속에서 버둥거리는, 가장 예민한 시기에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동시에, 부모님의 마음 또한 놓치지 않는다. 누구나 겪지만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을 침착하고 담백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이 꾸밈없고 순수한 소설이 주는 감동은 의외로 어마어마하다.

 

 

101쪽,
막상 언니에게 아빠에 대해 말해 주려고 하니까 내가 얼마나 아빠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는지 놀랄 정도야. 아빠만 나한테 노관심인 줄 알았더니 나도 만만치 않았나 봐. 서로에 대해 이렇게 관심이 없는데 우린 어쩌자고 아빠와 딸이 된걸까.

146쪽,
하여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가족이라고 해서 네가 원하는 모습대로 네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란 뜻이야. 어쩌면 가족이라는 존재는 더 많이, 더 자주 이해해야 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르지.

167쪽,
사실 언니 편지를 보고 나니까 혼란스럽긴 해. 만약 언니가 찾은 엄마가 내가 그리워하고 궁금해했던 엄마의 모습이 아니면 어쩌지? 내가 원하던 엄마의 모습이 아니어서 실망해야 하는 걸까? 잘 모르겠어.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드는 거야. 나는 엄마가 꿈꾸던 딸의 모습일까…….

219쪽,
있잖아 언니, 아빠랑 나랑 같은 일직선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어. 양끝에서 서로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데, 내가 달리기를 멈춰 버린 거야, 그리곤 투덜거리는 거지. 아빠는 왜 더 빨리 달려오지 않는 거야. 왜 이렇게 멀리 있는 거야. 나는 투덜대기만 하고 달리기를 멈춰 버렸어. 아빠는 내가 달리지 않는 만큼 더 많이 달려와야 했어. 길이 그렇게 멀어졌는데 한 번도 투덜대지 않고 나만 보면서 묵묵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