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형을 모살하고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고
신하가 왕을 죽이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랑하던 연인을 아버지에게 빼앗기고 시름하게 되는 아들,
나이든 신하를 두들겨 패 목숨을 빼앗게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권력을 놓고 벌어지는 다툼
혹은 권력을 활용해서 만들어지는 결과물들이다.

그럼 이 이야기는 새로운 것일까?
절대 아니다. 중국사만 놓고 보아도 시대를 앞과 뒤로 옮겨보면 무수한 사례가 나온다.
삼국지의 조조의 아들 조비가 한나라 왕조를 끊는 것이나
당태종이 동생을 죽이는 것이나
서태후가 아들을 죽이는 것 모두가 다 권력의 다툼이다.

중국만 그러할까?
조선으로 오면 영조가 아들을 죽이고
태종은 동생을 죽였다. (당태종과 비슷하지 않은가?)
한국으로 와서도 쿠데타로 얻어진 권력을 마음껏 행사하다가
측근에 의해 죽게되는 박정희 스토리는 또 어떠한가?
결국 권력이란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추구하여 쟁취하고 이를 누리다가 비극을 맞게 되면 맥베드 이야기가 되고
천수를 누리면 왕자의 출세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들의 세계는 범인들의 세계와 다르다. 한 걸음 물러서면 목숨을 그대로 잃어버리는
냉혹한 세계다.

영화 야연은 기본 스토리 구조를 햄릿에서 차용했다.
갑자기 죽어버린 아버지의 뒤를 동생이 이어서 황제에 오르고
어머니는 그와 재혼을 하게 된다.
아직 황자의 자리에 있지만 아들은 방황하고 아들에 연심이 있던
어머니는 갈등을 보인다.

중국판 햄릿은 이 이야기 구조를 당나라로 옮겨서 전개시킨다.
아버지가 아들의 애인을 빼앗는 장면은 현종과 양귀비의 이야기가 되고
동생이 형수를 취하는 것은 당고종이 아버지의 후궁 측전무후를 부인으로
삼았던 것과 비교된다.
영화 말미에 장쯔이가 여황제에 오르는 것은 더욱 측전무후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렇지만 이야기의 진행을 채워가는 scene 들은 별로 만족스럽지 못하다.
느리게 순간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싸움 장면들을 보면 와호장룡의 쾌감을 살려보려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느림은 어째 만만디로 상징되는 중국의 여유가 느껴지는데
빨리빨리라는 한국적 가치에 익숙한 내눈에는 흡족하지 못했다.

싸움은 과잉이고 그리 감동도 주지 못한다면 다른 측면은 어떨까?
장대한 성의 모습을 외곽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보여주었고
내부도 장대하게 만들어 보여주었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정말 스케일이 크다는 것은 자금성에서도 만리장성에서도 느껴보았지만
이 영화도 새삼 그런 측면을 느끼게 해준 점은 만족스러운 부분이다.
당대의 복식, 춤과 음악을 보여주는 것은 아마 벽화에서 차용한 여러 이미지를  통해서
생동감을 더한 것 같다. 영화에서 칭찬해주고 싶은 부분이다.

와호장룡 비슷한 면은 또 있다. 등장인물의 감정 묘사를 다각도로 시도한다.
모두가 권력다툼에 치중할 때 유일하게 권력과 무관하게 사람 하나를 지극히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 더해서 자신의 목숨을 개의치 않고 연인과 의무를 오가며 고민하는 태자의 모습도
과히 나쁘지는 않다. 마지막에 독배를 마시는 황제의 모습은 무언가 어색하다.
결국 인물 대부분은 공감을 얻지 못하고 만다.

점수를 주자면 C+ 수준. 아쉬움은 많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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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큰 기대를 하고 극장에 들어선 것은 아니지만 꽤 괜찮은 느낌을 갖고 나오게 되었다.

영화의 시작은 주한미군에 의한 독극물 방류사건이다. 시체실에 쓰이던 포르말린 약품을 한강에
그냥 방류해버린다. 아무런 절차적 고려 없이 자기 나라가 아니라고 그냥 버린다.

그리고 한참 세월이 지난 다음 놀이 하러 온 사람들 위로 갑자기 뛰어오른 괴물에 의해 송강호의 어린 딸이 납치당하고 만다. 이렇게 죽은 줄 알고 슬퍼했지만 살아있다는 신호가 휴대폰으로 전해지자 딸을 구하기 위해 온 가족이 나선다.
느릿 느릿 움직이는 할아버지가 갑자기 빨리지고, 양궁 선수권 동메달리스트인 고모, 운동권 학생 출신의
작은 아버지는 꽤 강한 팀이지만 꾸벅 꾸벅 조는 송강호는 어디에 써야할까?
가족들이 똘똘 뭉쳐 싸우러 나가는데 가만 보니 경찰은 군대는 언론은 과학자는 다 어디 갔나
의문이 들었다. 이 대목에서 갑자기 미군은 괴물과 관련된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이야기한다.
덕분에 경찰과 군대는 뒤로 빠지고 의료진들이 나서서 송강호를 놓고 감시를 시작한다.
그리고 경찰은 딸에게서 전화를 받았으니 휴대폰 위치추적을 해달라는 송강호에게 미친놈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바이러스 감염의 결과물이라고 치부해버린다. 어 도대체 어느 나라 경찰이지 하는 의문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가만 다시 생각해보니 미국은 분명 괴물을 탄생시킨 원인을 제공한 것 같다. 과학적 상식이 통하든
안 통하든 영화는 그렇게 진행된다. 그런데 이를 놓고 다시 확대시켜서 괴물이 정말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지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채 사방을 준계엄 상태로 만들고 다시 여기에 생화학 실험을 전개한다.
머리를 스치고 가는 생각 하나는 이건 이라크 전에 대한 야유가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후세인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내는데 미국은 막대한 기여를 했다. 막 회교혁명을 수행한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많은 무기를 대주면서 싸움을 부추겼고 전쟁에 질 것 같자 생화학 무기까지 지원해준다.
그러더니 쿠웨이트 전쟁 이후 갑자기 돌변해서 후세인은 악마의 화신이 되어버렸고
이라크에 있는 화생방 무기를 찾자고 또 한번의 전쟁까지 시작해버렸다.

정말 괴물은 누구일까? 한강에서 툭 튀어나온 에일리언 같은 존재도 괴물이지만 그 괴물을 활용해서
더 많은 압박을 강요하는 존재도 괴물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 괴물의 뜻에 조금도 거스르지 않고 시종 추종하는 한국의 경찰과 군대,언론의 모습도
또 하나의 괴물인지 모른다.

반면 문제를 붙들고 끝까지 고통을 겪으면서 해결에 나서는 것은 작은 시민 가족 하나와 약간의 옹호자일 뿐이다. 이들은 거대한 시련 속에서 고통을 겪지만 아무도 제대로 도와주지 못하는 것에 더욱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다. 마치 IMF 이후 밀려오는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파도에서 단 하나의 구명보트에 매달려 헤쳐나가게 된 가족들의 모습과 비슷하다. 사회는 그냥 뿔뿔이 흩어져버렸고 국가에게도 사회에게도 복지시스템에도 기댈 수 없이 그냥 홀로 존재하게 될 따름이다.

국가는 그냥 방해만이라도 좀 덜 해주었으면 좋을 따름이다. 약해진 몸에 더욱 강해진 방역시스템을 거치라고 하지 않나, 조금 먹고 살려고 하면 세금이니 각종 기부금 뜯어가려고 하지 않나, 참 이 대목에서 노무현이 증세 이야기하자 TV 뉴스에 나온 어느 월급장이 가장 말씀이 정말 이 정권은 월급 수령자들의 얇은 봉투를 철저하게 뜯어가려는 존재인 것 같다는 한탄이 떠올랐다.

봉준호를 비롯해 영화계에 있어서 괴물은 무엇일까? 스크린쿼터 폐지를 밀어 붙이는 놈현과 그 일당인지도 모른다. 영화 속의 한심한 경찰과 수사대, 언론 등을 보면 아마 맞는 것 같다. 비싼 세금 내주면 그 돈으로 불쌍한 전경들 동원해서 미국이 효능도 입증되지 않는 생화학 무기 마구 퍼 붓는 실험장을 보호하는데 투입시킨다. 강대국의 논리에 대한 비판 능력도 없고 권위만 존재하며 제대로 대화할 용의도 하지 않는 정부, 그런게 바로 영화가 보여주려는 또 하나의 괴물인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영화속의 괴물은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러 나오니 플랫폼 위의 동영상에서는 광고판 속의 FTA 찬양 광고물이 열심히 돌아간다. 저것도 다 내 세금의 일부인데.

영화속 괴물을 피 하고 나오니 또 하나의 괴물이 눈에 띄고 있다.
영화의 가족들 처럼 우리도 지혜와 용기와 기술을 모두 합쳐야 그 괴물을 물리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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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고생하며 일한 보람으로 사장 바로 아래단계인 Vice President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회사가 갑자기 무너져버린다. 쌓아놓았던 퇴직연금도 회사 주식에 물려 있어서 함께 무너지고 만다. 집에 돌아오니 자신의 말을 믿고 아내는 직장을 그만두었고 이곳 저곳 벌려 놓은 돈들어갈 곳들은 밀려온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방법은 도둑질이라 좀 치졸하다. 한참을 헤메다가 마침내 도달한 결론이 전 CEO를 털자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유머를 깔려고 노력했지만 인물들 하나 하나의 개성은 약한 편이다. 동기도 선명하지 못하고 행동 또한 부자연스럽다. 문제의 제기에서 해결까지 이르는 과정을 보면 중간에서 겪는 가족의 고통 부분이 과도하게 길다. 반대로 해결 부분은 너무 신속하게 끝나버려 재미가 덜하다.

작품의 배경은 엔론 사태다. 신경제에 맞도록 신 사업모델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엔론은 자신들의 기법을 여기저기 설파하고 다녔다. 덕분에 한국에도 SK에서 합작사 SK엔론을 만들었고 모전력도 유사하게 상품 거래소를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적 가치를 늘리지 못한 주식의 상승은 거품일 뿐이다. 허세를 유지하기 위해 회계적 조작이 엄청나게 필요했다. 재무제표는 도저히 알기 어렵게 꾸몄는데 핵심은 자회사를 손해를 보내고 이를 감추는 것이었다. 영화에 나온 주인공의 회사 또한 거의 같은 모델을 취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들이 무너지기 직전에 많은 주식을 팔아 거금을 챙겼고 회사는 한번에 도산해버리고 만다.
미국의 퇴직금 제도는 개인책임으로 401K라는 형태를 통해 원하는 방법으로 투자할 수 있다. 엔론의 비도덕성은 퇴직금 자체를 자사주 매입에 적극 권유했다는 점이다. 주인공의 비참한 현실 또한 그런 결과물이다.

사회가 보여주는 양극화는 한쪽에는 산정상에 자리 잡은 전망 좋은 집을 다른 한쪽에는 바닥에서 하루 하루 먹거리를 구하는 가난한 멕시코 이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불법체류 단속 나온 단속반의 폭력에의해 국경 너머로 끌려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 미국이 원래 누구 땅이었지 하는 물음이 든다. 인디언 아니면 멕시코, 글쎄 바다 건너온 청교도들이 차지한 것은 얼마 되지도 않는 공간이었는데 말이다.

주인공의 푸념도 재미있는데 집을 팔면 아이가 기가 죽고 나아가 친구들 모임이 껴주지 않기 때문에 공부를 못한다. 그렇게 되면 좋은 대학을 못가고 나중에 변변한 인생을 살지못한다는 일련의 도식을 풀어 놓는다. 아마 그게 삶의 진리일 것이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약간의 돈이라도 생기면 집을 사는데 2000년 이후의 미국 금리 하락은 이들에게 축복이었다. 그 결과 만들어진 집값 상승이 다시 소비 호조를 부르고 아시아권의막대한 수출 흑자를 만들어낸 세계적 순환까지 이어진다.

반면 미국 자본주의 첨병이었던 소수의 CEO들은 그럴듯한 비즈니스 모델로 주주들을 잘 꼬시는데 능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 머리를 빌려주는 역할을 수행한 것이 최고의 컨설팅사라는 맥킨지의 사업이었고 하버드를 비롯한 MBA 출신들이 막대하게 포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업이란 땀이 흘려야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거래의 규칙 몇개를 바꾸는 것으로 거대한 가치가 만들어진다는 사고 방식은 허용되지 않는다. 잠시 속일 수 있어도 계속 속일 수는 없다. 그 문제점은 미국이 주도한 IT, 통신, 에너지 거래 등 각종 분야에서 연달아 발생한다.

주주 위주의 자본주의로 가는 것이 무조건 정답은 아니다. 어느 하나의 가치만 절대적으로 강조될 경우 그동안 여러 측면을 고려하면서 만들어진 질서가 흔들린다. 주식가격이 오르면 모든게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해버리는 것이야말로 힘이 곧 정의다라는 서부 카우보이 시절의 논리와 다를게 없다. 이 영화에서 보듯이 기업에는 얼마간 그가 뿌리로 하고 있는 사회에 대해 책임을 다할 의무가 있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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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원갑을 보고 황비홍과 많이 비교가 되었다.
같이 중국 청조 말기 시대 격변기에 활약한 정통무예가 였고
중국민족주의를 고양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찍 죽는 바람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인물이다.

이 작품을 보고 느낀점은 삶이 짧았기에 마지막 마무리가 아쉬움이 남는다는 점이다.
아버지가 굳이 싸움을 가르치려 하지 않았기에 독학해야 했던 어린시절을 소개하고
본격적으로 무예를 하는 청년시대에 자신감을 늘리다가 대결에서 상대를 죽이고 무예가 결코 가족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을 알게 해주는 깨달음으로 자기 수양을 하게 된다.
마지막은 종파를 불문하고 대동단결을 강조하며 서양에 맞서되 무조건적인 배척이 아니라
정정당당한 대결을 통해 민족 모두의 자신감을 살려가는 것이었다.

아쉬운 점은 스토리가 단조롭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물들의 행동 또한 상당히 정형적이라
특별히 개성강한 인물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반면 무술 장면은 신경을 많이 썼는데 연기도 촬영도 좋아서
K1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즐거운 마음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단 결과를 알기에 흥미는 떨어지겠지만.

다 보고 느낀 점은 이연결이 주연한 진시황 시대를 다룬 <영웅>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외세의 거친 파도를 넘기 위해 단결해야 한다는 이 작품의 메시지를 좋아할 사람은
영웅에서 진시황을 시대정신으로 치켜세운 중국공산당이 아닐까?

영화 전반을 평가하자면 중간정도에서 약간 더 주는 수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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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oxov 2006-04-01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이연걸의 은퇴작인가요?^^

사마천 2006-04-01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술영화로는 은퇴지만 다른 영화에서는 계속 나올 것 같습니다.

한잔의여유 2006-04-09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터뷰를 자세히 본다면 무술영화도 황비홍,곽원갑같은 정통무술영화만 안찍는다는 것으로 아는데요.키스 오브 드래곤이나 더 원 같은 영화는 계속 나올 것 같네요.장르로 본다면 앞으로도 액션영화같은 무술영화는 나올 것 같습니다.기자들이 타이틀을 이상하게 뽑네요.은퇴작이라니 하는 것을 봐서는 역시나 신문기사나 여러가지를 이치에 맞게 생각하면서 봐야한다고 봅니다.^^

사마천 2006-04-10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토님/ 자세히 보지는 못했는데 한번 기대해보죠. 하긴 무술 그만큼 잘하는 배우치고 그만두기는 쉽지 않겠죠. 대역을 안쓰면서 정통무술배우로서 계속 연기하기는 어려움도 있고. 한살 한살 배우와 같이 늙어가는 우리 관객들도...

sayonara 2006-04-12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아쉬운 점은... '황비홍' 1,2편에서 볼 수 있었던 리드미컬한 리듬감같은... 그런 액션의 감흥을 느낄 수 없다는 점... 역시 서극은 '홍콩의 스필버그'였던가... -ㅗ-;

사마천 2006-04-12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도대체가 영화에서 무언가 진정한 맛이 빠진 것 같더군요.
 

산뜻하고 잔잔한 영화다. 워낙 유명한 제인 오스틴의 원작을 가지고 만든 작품이라 스토리는 탄탄하다.
단 소설로 제법 되는 분량을 압축시켜 스크린에 담다 보니 인물들의 묘사에 필요한 장면들은 아무래도 부족하다. 원작이 1800년대 초반 영국에서 작가의 주변에 실존했던 세계를 묘사했는데 특히 심리적인 부분을 잘 다루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그런 면모들을 살리려고 감독은 여러가지 노력을 한다.

주인공 리지의 약간 도발적인 말투를 고려해서 배우의 외모를 선정했다고 보여진다. 당대 사회는 여자들에게 꽉 짜인 규범을 부여했다. 여자는 결혼이 지상의 과제고 이를 위해서 요조숙녀로서 갖은 기예를 닦고 얌전히 집에 틀어박혀야 한다. 때 되면 사교계에 나와서 얌전을 떨고 돈많고 신분 좋은 남자를 잘 찍어야 한다. 이런 딸들을 위해 막대한 지참금을 지불해야 하는 부모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돈돈돈. 어디에도 돈 이야기 뿐이다. 남자들은 수입이 얼마인지를 가지고 평가 받고 여자들은 반대로 가져갈 수 있는 지참금에 의해 평가 받는다. 하지만 아쉽게도 리지의 집은 아예 딸에게는 상속권도 없고 덕분에 지참금도 거의 없게 되니 최악의 상황이다. 얼굴은 조금 이쁘다고 하지만 나이도 이제 꽉 찼다. 20대 후반의 나이는 아마 지금도 노처녀 취급을 받을 것인데 당시라면 어떠했을까 굳이 어렵게 상상해보지 않아도 뻔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꿈이 있다. 자신의 개성을 포기하지 않고 진정한 사랑을 기대하는 것이다. 안락함은 충분히 보장되는 교구 목사님의 사모님이 되는 것도 가볍게 제껴버린다. 덕분에 어머니와 의절(?)하게 되지만 이게 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걸 보여주는게 작가의 의도다. 영화 장면을 찬찬히 살펴보면 청혼을 과감히 거절하고 도망가는 리지와 쫓아가는 어머니의 장면에서는 뒤뚱뒤뚱 걸어가는 오리의 모습이 보이고 아버지를 만날 때 하늘을 날아다니는 백조의 모습이 비추는데 이를  보고 내 머리에 미운오리새끼가 떠 올랐다면 너무 오버인가?
리지가 원하는 것은 결코 돈과 지위는 아니었다. 오히려 진정한 사랑을 갈망했기에 그녀에게 남다른 인연이 다가올 기회가 된 것이다.
그녀의 강점 중 하나는 독서에 대한 열정이다. 저자의 모습이 얼마간 오러랩되는 이미지인데 밀란 쿤데라의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나오는 테레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독서는 남과 다르다는 표식이 된다. 아마 알라딘의 서재달인들이 반가와할 대목일 것 같다. 어쨌든 독서의 결과는 우선 자기 가치관의 확립이다. 견고한 기반을 바탕으로 그녀는 상대가 누구든 자신의 의지를 강하게 표현할 수 있다. 모두가 요조숙녀인척 할 때 당당하고 생동감 있는 그녀의 모습은 군계일학으로 보일수도 있다. 물론 역으로 어머니의 눈에는 주제 넘는 천방지축이지만. 어차피 그녀의 진정한 가치를 알아 볼 수 있는 존재는 단 한사람이면 충분하니까. 
하지만 그녀에게도 약점은 있다. 의견이 분명하지만 그 의견을 확립할 때까지 너무 빨리 나간다. 덕분에 상대방에 대한 견해를 빨리 확립하는데 때로 그 믿음이 틀릴 수도 있다. 오만한 다이시에 대한 그녀의 견해가 편견으로 밝혀지는 과정이 바로 소설의 백미다.

소설의 맥은 신데렐라에서 온다. 분명 영국은 지금도 신분이 나뉘어진 나라다. 귀족은 귀족대로 서민은 서민대로 자신의 문화를 유지한다. 반명 혁명의 전통을 가진 프랑스나 비스마르크에서 히틀러까지 국가사회주의 전통을 가진 독일은 이러한 차별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런 나라에서 지참금 없는 나이든 노처녀가 영주가문과 결혼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센세이널 한 뉴스다. 사회가 나뉘어 있는 한 그 경향은 꺽이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한국 드라마의 적어도 80% 이상이 신데렐라 이야기인 것을 보면.

어쨌든 이 작품의 가치는 등장 인물의 심리에 대한 치밀한 묘사다. 연애편지에 담긴 글귀 하나 하나가 표현하는 심리의 변화, 무도회를 비롯한 수 많은 만남을 통해 이리저리 뒤바뀌어 가는 젊은 연인들의 마음을 읽어가는 작업은 꽤 재미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잡자 날을 새워가면서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옛날 작품이라 해도 공감이 가고 여운이 오래 남는다.
그래서 후속타가 이어지는데  에서 여주인공 맥 라이언은 이 책을 수십번 읽었다고 한다. 그 영화 또한 기본 골격은 오만과 편견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 나왔던 후아유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이렇게 뻔히 결말을 아는 소설을 가지고 만든 영화를 볼 필요가 있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모르는 소리 아무리 상상력이 풍부하고 독서가 넓은 사람의 머리속에도 당대의 풍습을 넓은 대지와 아름다운 성곽에 담아 내기는 어려울 따름이다. 영화는 그렇게 시각적인 면을 통해 독자의 상상을 교정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 작품은 거기에 더해서 클래식의 선율과 우리가 교육받은 미국식 영어와는 다른 말투에서 오는 거리감까지 선사해준다.

굳이 영화에 더해서 사족을 달자면 마지막에 두 연인이 보여주는 사랑놀음은 원작에는 없다. 원작은 사랑은 여전히 형식적인 모습들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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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6-03-25 0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멕 라이언 나오는 영화 이름이 안 보이네요. 안녕하세요? 가끔 들어와 님의 날카로운 식견에 감탄하고 돌아가던 독잡니다. 앞으로는 가끔 질문도 하겠습니다.

사마천 2006-03-25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ou've got mail인데 썼다고 기억합니다만 없네요. 쩝.
심술님 반갑습니다. 종종 뵐께요.

릴케 현상 2006-03-27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보고 싶네요

사마천 2006-03-27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소 같은 영화입니다. 영국의 대지와 고풍스러운 건물들, 그리고 착하고 바쁜 젊은 연인들 ^^

릴케 현상 2006-03-28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봤삼^^ 동의

사마천 2006-03-28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제가 결국 영화 보시게 만들었군요. 축하드립니다. 늘 즐거운 시간이 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