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기의 원작자가 보면 기가 막힐 것 같군요.
그냥 캐릭터 한 두게 도용하면서 꼭 그런 분위기만 띄워놓고...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깊은 느낌은 하나도 못 살렸습니다.

전에 <마지막 황제> 만들었던 감독이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부처 이야기를 그렸다고 해서
기대를 해보았더니 영 유치하더군요.

이번에도 딱 그낌입니다.

기본적으로 서양 제작자들이 동양 문화 이해한다고 주장하지만
아주 얕아서 사탕 발림 같인 모양만 됩니다...

긍정적인 면이라면 성룡, 이연걸을 오랫만에 본다는 점.

그래도 무언가 남겠지 기대해보았는데
쿵후 적당히 섞어서 보여주지만 그냥 그것뿐입니다.

초등학생 아이들 좋아할 정도 수준의 만화영화를 우리의 추억들이
연기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는데 너무 서글프더군요...

차라리 당당한 <황비홍> 아니면 최소한 <로미오 머스트 다이> 수준은 되었어야 하는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Kick the bucket 하면 아마 뒈졌다고 하는 속어라던가. 절대 쓰면 안된다고 가르쳐주던
친절한 영어선생님의 수업이 아직도 생각난다.

Bucket list가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소원리스트라고 하니 무척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기대가 너무 컸는지 정작 영화에서는 마지막 장면까지 와서 아직 다 못 채웠는데 하는
나의 아쉬움 리스트가 남아버렸다.

가장 아쉬웠던 측면은 영화 초중반에 이미 결과가 예측되어버린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 영악해져버린 관객인지 잠시 의심도 가고
인간이 선해져야 한다는 고유의 성선설적인 믿음이
헐리우드 영화 대부분의 바탕에 깔려있지 않냐는 반문도 해보지만
그래도 이 영화의 플롯은 너무나 밋밋해버렸다.

As good as it gets...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제목의 잭 니콜슨 영화에 빗댄다면
As simple as movie plot is... 이보다 더 심플 할 수는 없다...

그래도 마음의 위안을 삼는 부분은
평소에 보기 쉽지 않았던 장면들을 스크린 가득 담아 보여준다는 점
그리고 그 곳에 가보고 싶게 각자의 마음 깊은 곳에 꿈을 심어 주고
오늘 하루를 소중하게 살아가도록 자극한다는 점 등이다.

다 종합해서 놓고 보면 별은 셋 수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한마디로 볼 만 했습니다.
다양한 장르를 잡식하는 제 취향이라 남들이 꼭 동조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새로운 것 없다고 하는데 여러 영화의 짜집기 같은 티도 납니다.
<When Harry met Sally>도 보이고 다른 여러 작품들이 나타납니다.
스토리 또한 제가 다음 장면을 70% 정도는 맞출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꽤 뻔한 구조겠죠.

그럼에도 영화의 구조는 알찹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뻔한 것 같으면서도 사람의 기억에 오래 남는
교훈을 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 또한 찬찬히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좋은 교훈들이 많이 많이 숨어 있습니다.

한가지 예만 들자면 적응하려는 자세가 솔직한 면모 즉 속살을 감추고 고수하려는 자세보다
좋을 때가 있다는 이치입니다.
이는 기업에도 마찬가지인데 다윈이 이야기했듯이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드는 점과 맥이 통합니다.

그 외에도 소소하게 주어지는 즐거움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에 남는 긴 여운을 많이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주변에 널리 권하고 싶네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0-12-23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4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화려한 휴가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아픔인 광주라는 엄숙한 주제를 그려내었다. 리얼리티를 살려서 다루어냈다는 점에서 가장 유사하다고 떠오른 작품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였다. 곤봉이 머리위에 떨어지고 심지어 총알이 쏘아지고 맞은 사람들에게서는 피가 튀며 고통과 슬픔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리얼리티는 잘 갖추었다. <꽃잎>이나 <오아시스>와 같이 이전에 광주를 다룬 작품에 비해 보다 직설적으로 현장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아픔에 공감하고 슬픔을 가슴에 담으면서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게 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그럼 왜 이렇게 무지막지한 폭력이 발생했고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의 희생이 이어져야 했는지에 대해 묻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화려한 휴가에는 이 부분이 빠져있었다.

앞서 닮았다고 예로 들었던 <라이언일병구하기>에서 스필버그는 3단계 소나타 구조를 보여준다. 빠르게 느리게 다시 빠르게 이렇게 서로 다른 속도의 세 흐름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한다. 먼저 죽음의 잔혹함을 적나라 하게 보인다 다음 왜 이런 죽음이 필요한지를 묻게 만들고 마지막에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주면서 빠르게 매듭을 지어간다.

<화려한 휴가>에서 문제의 발단인 공수부대의 진입과 잔혹한 진압을 보여주는 것은 좋다. 반면 왜 시민들이 봉기하고 그 잔혹한 공수부대에 맞섰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영화에는 중요한 한가지가 빠져있었다. 당시 전남대, 조선대에 모여 있던 학생들에 대해 곤봉이 날아들고 이들이 흩어지면서 주변에 소식을 전했다. 특히 시민들은 호남의 정치인 김대중이 잡혀갔다라는 소식을 알려지고 점차 동요가 확산되었다.

영화는 이 대목을 건너뛰거나 조용히 뽀샵 처리해내었다.
하지만 역사를 공부하려는 사람에게 진실을 제대로 접근하려는 사람들에게 이 대목은 중요하다.
역사는 일련의 흐름을 이루기 때문이다.
80년의 광주라는 사건은 6,70년대 박정희의 개발독재의 마지막이고 80년대라는 전두환의 폭압정치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또 한편의 영화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10.26 하루를 다루어 논란이 많고 상영은 길지 못했던 임상수 감독의 <그 때 그 사람들>이라는 작품이다. 영화는 중앙정보부 안팎의 폭력으로 시작된다. 정보부 밖에서는 박정희를 모셨던 바꾸어 말해서 사랑을 나누었던 여자의 어머니가 권리 주장을 하자 쌍욕을 하면서 정보부로 끌고가 협박을 해대는 박선호의 모습이 나온다. 정보부 안에는 이렇게 박정희를 너무나 사랑한 모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 많은 청년 학생들이 박정희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끌려와 두들겨 맞고 있다.
영화는 시작에서 끝까지 문제의 발단과 해결 모두 폭력만으로 강제되는 구조다.

이어진 박정희를 모신 안가의 술자리에서 차지철은 부산의 학생 데모에 공수부대라는 폭력을 퍼부어 싹 쓸어버리자고 건의한다. 이에 대한 박정희는 묵시적 동의하는데 더 큰 폭력을 막기위해 차라리 내가 이 자리에서 작은 폭력을 행사해 막아버리자는 김재규의 거사가 나온다.
바로 여기서 김재규의 브레이크가 없었다면 광주의 일부는 부산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었을 것이다.

종합해보면 80년 사건을 만든 군사강압적인 체제의 구조와 배경은 박정희에게서 만들어졌고 단지 실행하는 시기와 장소만 조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힘센 사람은 최고로 대우 받고 그들의 힘 앞에서 대부분 정의라고 주장하지 않는 그런 사회구조였다. 군대라는 힘을 장악한 신흥 군벌들은 박정희에게 차지철이 건의하던 방식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었다. 왜? 배운 것이 그것밖에 없었고 매력 또한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 김대중은 이 대목에서 무엇이었을까?

바로 박정희의 지역차별적인 정책에 소외된 호남인들의 희망이었다.

시기를 뒤로 해 87년에는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달동네 뒷골목에 올라서서 공명선거 운동을 하다 우연히 노가다 하시는 두 분을 만났다. 누굴 찍겠냐는 물음에 김대중이 낫지 않겠냐고 답했더니 맥주까지 따라주었다.
말투로 짐작해 보건대 고향은 호남, 그 분들의 오늘의 삶은 하루 하루 공사판에서 이어지는 고단함 자체였다. 피곤함 지침 희망 부족함에서 고향은 가족과의 따뜻함이 담겨 있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뿌리 뽑힘을 경험한 그들에게 박정희의 개발정책은 삶을 뒤흔드는 거대한 손이었을 것이고 그 반대에 놓인 김대중은 막연하나마 희망의 건널목이였을 것이다.
잠시 뒤 여의도를 꽉 메운 대중들의 외침을 보면서 옷차림의 다양함도 보았다.

물론 선거에는 여러 어리석음이 함께 했다. 노태우야 그렇다 치더라도 김영삼까지 돌로 환영한 것은 어리석음 그 자체였다. 화면은 쉬지 않고 그 장면들을 잡아내어 전국에 뿌렸고 많은 타 지역 사람들에게서 등돌림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선거에서의 패배는 민주화에 열망을 둔 많은 사람들에게 실망과 환멸을 불러오게 된다.
어떻게 얻은 기회였는데 말이다. 물고문 당해 죽은 종철이가 연대 교정 앞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져간 한열이가 있는데 말이다.

거기에는 분명 욕심은 있었다. 내가 먼저라는 욕심은 나만이 이 난국을 구제할 수 있다는 구세주 신화로 이어진다. 김대중은 카톨릭, 김영삼은 개신교라는 차이가 있지만 예수라는 구세주를 닮으려 했고 각자 재주껏 기도했겠지만 답은 다르게 나왔나 보다.
물론 비난은 김대중이 더 많이 받아야 할 것 같다. 약속도 깨고 나중에는 당도 깼기 떄문이다.

하지만 김대중은 이미 하나의 아이콘이 되어 가고 있었다. 실제 존재하는 정치인 김대중에 대해서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보다는 자기가 바라는 김대중의 이름 뒤에 기대와 소망을 잔뜩 담아서 이상적 모습을 만들어 놓는다.
그 이상에 대해 남들은 동의하지 않고 심지어 조롱하기 까지 한다.
광신도라는 이름으로…

호남사람들의 꿈은 그 벽들을 만나면서 이제 절망이 되어 버린다. 한 걸음 나아가 한이 되고 가슴에 삭혀서 병을 만들어낸다.

유태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들의 가르침 탈무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몸은 하나요 머리가 둘인 아이가 태어났을 떄 과연 이를 둘로 볼 것인가 아니면 하나로 볼 것인가? 이 질문의 답은 한쪽 머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보라는 것이었다. 다른 한쪽 아이가 같이 아파하면 하나로 보고 그렇지 않으면 둘로 보라는 것이다.

한국민에게 과연 이 질문을 던다면 답은 둘로 나올까 아니면 하나로 나올까?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에는 분명 한걸음의 진보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아쉬움이 짙게 남아 있다.
좀 더 리얼하게 지역주의라는 오명을 벗게 만들도록 도전해주었으면 한다. 어설픈 타협이나 가여운 동정이 아니라 보다 당당하게 한민족이 과연 하나였는지를 물어가기를 바랬다. 올리버 스톤 처럼 스탠리 큐브릭 처럼 말이다. 아쉬움 속에서 더 나은 것은 아직 남아 있다고 믿으면서 스크린을 떠났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늘빵 2007-09-06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보지 못했던 부분을 일깨워주어 감사합니다.

상념 2007-09-07 0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번 토요일에 이토록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화려한 휴가'를 봐야겠군요. 87년 달동네 뒷골목에서 공명선거 운동을 하셨다구요. 사마천님은 행동하는 지성이셨군요. 지금도 여전하신지 궁금합니다. 87년이라는 특별한 해가 님을 아니 그때 그 시절을 살던 우리를 잠시동안 그렇게 만든 것일까요? 대학 1학년이었던 저의 과거가 떠오르네요.

심술 2007-09-08 0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빈 줄 없애는 법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조금 바빠서 며칠 지나 이제야 글 올립니다. 전 잘 있구요 사마천님도 건강하세요.

사마천 2007-09-08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열심히 읽어주셨군요 도움이 되었다니 반갑습니다
상념님/ 행동하는 지성은 아니고 고민하는 학생이었죠. 과찬해주시면 솔직히 쪽팔립니다 ^^
심술님/ 네 님도 건강하세요

perky 2007-09-13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깊이 있는 글을 쓰시는 사마천님을 제가 존경하지 않을수가 없다니까요. 87년도에 초등학생 4학년이었던 저는,그 시대의 절박성을 님처럼 생생하게 체험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이런 글을 통해서나마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사마천 2007-09-13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우차우님/ 깊이 있다고 해주시니 과찬입니다. 남과는 다르게 이 문제에 대해 고민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은 좀 더 보완하고 싶네요. 항상 격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가 점점 커져가네요. 무럭무럭 씩씩하고 호기심 많게... ^^
 

잔잔하게 흐르는 영화다.
<오만과 편견>을 생각하면 느낌이 비슷할 것 같다.
오만과 편견의 흐름이 신분의 인습과 진정한 사랑의 갈들이었다면
이 작품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미스 포터는 그림을 좋아하고 상상력이 풍부해서 의인화된 토끼를 비롯한 각종 동물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어내었다. 그 과정에서 당시 과년한 처녀들에게 주어진 결혼의 의무는 옆으로
내쳐놓았는데 부모들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자가 밖을 나가는데 유모의 동행이 필요했고 발걸음 닿지 못하게 막힌 많은 공간이 있는 시대였기에
스스로 벌어서 자립한다는 포터의 의지는 쉬운 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작품은 적절한 조력자를 만나 출판되어 결국 대박의 길로 다다렀다.
오늘날 해리 포터 만큼이나 큰 대박이었다고 보여진다.
참고로 영화를 보고 집으로 와서 화장실 벽을 보니 미스 포터의 작품 둘이 붙어있었다.
발 미끄러지지 않게 붙이는 스티커의 도안이 바로 포터의 그림들이었다.
하여간 당대의 풍경으로 잠시 돌아가면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 나오는 구절이 하나 떠오른다.

산책하는 어느 귀족 가문의 어머니와 딸이 나누는 대화다.
딸, "A씨 가족이 지나가네요 우리와 사귀려고 미친듯이 갈망한다고 하네요."
어머니, "안돼 우리는 우리와 사귀려고 덤비는 가족은 사용한다. 우리가 정말 사귀어야 할
사람들은 우리가 미치도록 사귀고 싶어 하는 가족이 되어야 한다."

딱 그런 처지였다. 포터의 집안은 빠른 속도의 신분상승으로 귀족의 지위를 꿰어찼다.
덕분에 자신들이 막 벗어난 중산층 즉 gentry들과는 별로 어울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원래 신분의 차별 내지 인종의 차별은 그 계층의 가장 아래단에서 가장 심하다.
미국에서도 백인 중에 가진 것이 딱 하나 백인이라는 사실 자체 밖에 없는 사람들이 가장
인종 차별이 심하다.

이런 사회적 풍경을 하나 하나 드러내면서 우리들에게 웃음을 유도하고 교훈을 주면서
자연으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막대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자연 그대로를 사서 우리에게
남겨준 선구적인 마음이 잔잔하게 여운을 남긴다.

다른 작품에 비해서 여주인공의 역할이 훨씬 크다 보니 관객도 여자분들이 많았다.
영화 끝나고 박수 소리가 그렇게 크지 않았지만 자신의 목표를 뚜렷이 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 그녀의 삶은 그만한 아름다움을 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