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그어가면 읽다가 탐구심에 이끌려 원서를 찾아보았다. 워즈워스 관련 이야기이다.

 

 

 

워즈워스의 '시간의 점'에 대한 설명이다.

 

'이렇게 알프스가 그의 기억 속에 계속 살아남게 되자 워즈워스는 자연 속의 어떤 장면들은 우리와 함께 평생 지속되며, 그 장면이 우리의 의식을 찾아올 때마다 현재의 어려움과 반대되는 그 모습에서 우리는 해방감을 맛보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연 속의 이런한 경험을 "시간의 점"이라고 했다.'  (210쪽)

 

원서를 찾아보았다. 위의 시 원문이다.

 

There are in our existence spots of time

Which with distinct preeminence retain

A fructifying virtue, whence, depressed

By trivial occupations and the round

Of ordinary intercourse, our minds -

Especially the imaginative power -

Are nourished and invisibly repaired.

Such moments chiefly seem to have their date

In our first childfood.

 

The Two - Part Prelude(1799) 라는 시의 일부분인데 이 책에서는 위 사진에도 보이듯이 이렇게 번역했다.

 

우리의 삶에는 시간의 점이 있다.

이 선명하게 두드러지는 점에는

재생의 힘이 있어...

이 힘으로 우리를 파고들어

우리가 높이 있을 땐 더 높이 오를 수 있게 하며

떨어졌을 때는 다시 일으켜 세운다.

 

 

이 시에서 '시간의 점'은 자연 속에 있다기 보다는 주로 어린 시절에서 비롯된다고 하며 시는 계속 어린 시절 에피소드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지막 세 줄, "이 힘으로....일으켜 세운다'는 구절에 해당하는 문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니면 원문이 길어서 다른 부분에 들어가 있을 지도 모른다.

 

뭐랄까. 꿈보다 해몽이랄까. 워즈워스의 시 세계를 압축하여 설명하다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저런 경우 원문과 함께 실어주면 좋겠다. 자기 입맛에 맞게 필요한 부분만 인용하면 독자들은 또 이 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재인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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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 - 혁신의 아이콘 마스다 무네아키 34년간의 비즈니스 인사이트
마스다 무네아키 지음,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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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도서관에 갔다가 장안에 화제가 되고 있는 책이 눈에 띄어서 일단 빌려오긴 했다. 내 생활이 회사 경영, 가게 운영, 사업...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보니 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기왕 읽는 책이니 그럼 관점을 바꿔서 읽어보기로 했다. '만약 내가 사업을 하고 있다면' 으로. 그런데 감정이입이 안 된다. 다시 '만약 내가 사업을 하게 된다면'으로 바꿔보았다. 그랬더니 겨우 한 꼭지가 눈에 들어온다.

 

어떻게 따라 할 것인가

 

평일인 오늘 아침도 다이칸야마 티사이트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인적이 드물던 조용한 주택가가

상업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 다이칸야마 츠타야 서점 역시

3년이 지나니 경쟁회사가 분석을 하고

그 이상의 것을 만들려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흔하고도 당연한 이야기

 

북카페는 마스다가 고객의 기분으로

'경치 좋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 읽는 시간을 즐길 수 있다면 멋지겠다'는 생각에서 탄생했다.

 

한편, 뭔가 돈 되는 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북카페를 찾아내어

똑같이 따라 하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일이 잘 안 되면

'고객의 시선에서 더 멋진 시간을 만들 수 있을까?'

개선을 시도하지만,

후자처럼 단순히 따라만 하는 회사는

'왜 잘 되지 않을까?'

'왜 돈이 벌리지 않을까?'하는 생각뿐이다.

 

그래서 개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집념이 있으면 길을 열린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단지 흉내만 내어 돈을 벌려는 사람 앞에서

길을 열리지 않는다.

 

가게는 손님을 위해 있고

돈벌이는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선인의 가르침을

다이칸야마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떠올렸다.

 

  - 198~199족

 

 

돈을 먼저 생각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짝퉁은 원조를 이기지 못한다...정도로 이해했다. 대충 책장을 넘겼지만 그럼에도 눈여겨볼만한, 인생의 지침이 될 만한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 결국, 불가능한 일에 도전한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 가능하게 되어 성장하지만

가능한 일만 하는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가능한 범위가 넒어지지 않는다.'   -26쪽

 

무엇을 위해 만드는가

.

.

.

이런 이야기가 있다.

벽돌을 쌓고 있는 벽돌공에게 어떤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나요?"하고 물었더니

 

A라는 벽돌공은

"벽돌을 쌓고 있습니다"라고 답하고

 

B라는 벽돌공은

"기회를 만들기 위해 벽돌을 쌓고 있습니다"라고 답하고,

 

C라는 벽돌공은

"세계 평화를 위해 꼭 필요한 교회를 짓기 위해

벽돌을 쌓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보기에는 전부 벽돌을 쌓고 있는

벽돌공의 풍경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벽돌공의 의식은 저마다 다르다.                         -179쪽

 

과연 그럴까. C의 벽돌공처럼 시작하다가 결국 A에 만족하고 하루하루 버티는 삶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흠, 내 얘긴가? 하여튼.

 

다음 인용구도 좋다.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의 말이라고 한다.

 

"비관은 기분에 속하지만 낙관은 의지다."                  -408쪽

 

'미래를 개척하려는 의지가 있다면'...'매일매일 긍정적인 요소가 축적되어' 비관적이 될 이유가 줄어들지만, '안이하게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으면 일어나는 현상에 휘둘려 자신은 운이 없다느니, 저렇게 되면 어떡하지, 이렇게 되면 어떡하지 하고' 비관적인 기분에 빠진다.

 

사업하는 사람이 쓴 글이라 자기계발적인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렇게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았으니까 그만큼 성취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여튼, 조금이라도 사업할 생각을 하고 있다면. 돈 먼저 생각하면 안 되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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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빙 미스 노마 - 숨이 붙어 있는 한 재밌게 살고 싶어!
팀, 라미 지음, 고상숙 옮김 / 흐름출판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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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살, 죽음을 앞두고 떠난 일년간의 가족여행. 함께 한 아들내외에게 존경심을, 끝까지 품위를 지켰던 미스노마에게는 부러움을, 요양원에서 삶을 마감하신 엄마에게는 애통함을, 언젠가는 죽을 운명인 우리에게는 웰다임의 희망을..캠핑카 생활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건 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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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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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곳을 우리가 바꿀 수 있고,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다. 주장이라기보다는 어찌보면 당연한 얘기인데 이게 주장이라고 생각되는 건, 옷이나 먹거리와는 달리 집(공간)이라는 건 우리가 쉽게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그저 시류에 맞게 따라가야 하며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학교라는 공간, 집이라는 공간, 공원, 빌딩...이런 건 내가 나서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그저 따라갈 수밖에 없는 거 아니냐, 이런 생각말이다. 주어진대로 그저 따라가는 것이라는 통념에 생각할 틈을 주고 가능성을 보여주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변화시켜야 우리 삶이 조금씩 나아진다고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학교 건축.

 

왜 이 땅의 모든 학생이 똑같은 학교 건물에서 자라고, 전교생이 똑같은 옷을 입어야 하는가? 아이들에게 댜양성 없는 건축 공간을 제공하고서 왜 그들에게 창의적인 생각을 기대하는가? 창의적인 아이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정상적인 아이로 자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아이들을 좀 더 다양성을 받아들일 줄 아는 도전의식 있는 인간으로 키워야 한다. 그러려면 학교 건물은 더 작은 규모로 분동되어야 하고, 그 앞에는 댜양한 모습으로 놀 수 있는 갖가지 모양의 작은 마당과 외부 공간이 있어야 한다....우리 아이들의 학교는 대형 건물보다는 스머프 마을 같은 느낌이 나야 한다... 실내 공간은 풍요로워졌지만 실제로는 학교가 점점 더 교도소와 비슷해졌다.    -51~52쪽

 

내가 다녔던 학교와 근무했던 학교 중에서 가장 좋았던 학교를 하나 꼽으라면 나는 언제든지 내가 다닌 중학교를 꼽는다. 시설로치면 가장 열악한 곳이다. 입학한 날 교실에 들어가니 바닥은 마감이 덜 되어 울퉁불퉁하고, 전기도 안 들어오고, 수돗물도 없고, 화장실이 아닌 변소는 저 바깥에나 있어 뛰어가야 했다. 읍내에는 중학교가 네 개나 있는데 멀쩡한 학교를 비껴가고 그저 이 학교에 배정된 내 운명에 한숨지을 뿐이었다. 이 학교에 배정되었다고 이불 뒤집어쓰고 울어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학교는 또 왜 그렇게 멀던지. 집에서 나오면 버스정류장과 우체국을 지나고, 옆동네에 사는 친구를 기다리고, 밭길과 논길을 지나 산길로 접어들면 이내 공동묘지와 과수원으로 가는 갈림길이 이어지고, 40여 분을 이렇게 걸어 학교에 도착하면 눈을 부릅뜬 선도부가 교문에 서있었다. 하나도 만만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비 오는 날은 더했다. 사물함이라는 단어조차도 없던 시절이라 책가방은 그날 배울 책과 도시락으로 이미 부풀대로 부풀었는데 실내화를 넣은 보조가방(주머니가 아님)을 다른 손으로 들고 있자면 우산을 펴고 걷기가 쉽지 않았다. 어떻게 겨우 균형을 잡고 걸어가지만 꼭 논뚝에서 발길이 막힌다. 빗물 때문에 논뚝에 작은 냇물이 만들어지는데 그걸 건너뛰어야 했다. 다리는 짧지 양손에 든 가방은 무겁지 우산은 들었지...열에 아홉 번은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시뻘건 흙이 묻은 치마를 대강 털고 다시 학교로 향하다보면 발 밑에 밟히는 잡풀 사이로 흐르는 맑은 빗물에 작은 탄성이 터져나온다. 조금 전의 고달픔이 순간 환희로 바뀐다.

 

여름엔 하교 길이 고무줄 길이다. 친구들과 산길을 걷다가 나무 그늘에 쉬면 그대로 시간이 흘러버린다. 다른 동네에 사는 친구들과 함께 걷다보면 집으로 가는 길은 더욱 멀어진다. 허구헌날 그랬다. 나도 그랬고 내 친구들도 그랬다. 한 학년에 두 개 학급, 전부 6학급이었던 작은 학교라서 우리는 우리가 몇 반이었는지 따지지도 않았다. 3년 간 섞이다보니 모두가 친구가 되었다. 선생님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교장선생님은 한문을 가르치셨고, 교감선생님은 도덕을 가르치셨다. 대부분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선생님들은 우리들처럼 푸르렀다. 그런 환경에서 공부한 우리는 창의적인 인간이 되지는 못했을지라도 자연이 주는 기쁨을 알았고 친구관계의 소중함과 선생님들을 향한 고마움을 간직할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

 

그러니까 학교는 시설이 중요한 게 아니다. 시설보다 중요한 건 학교를 둘러싼 자연 환경이다. 에어컨 나오는 시원한 교실보다 뭣모르고 뛰어놀 수 있는 작은 숲이 필요한 곳이다.

 

 

공원.

 

도시 내에서 내 소유의 공간이 부족한 사람들은 머무를 공간을 찾아다닌다. 그래서 사람들이 주말마다 산에 가는 것이다. 왜냐하면 도심 속에는 정주할 공간이 없어서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녹지 공원은 경사져 있다는 점이다. 경사졌다는 것은 앉아 있지 못하고 계속 이동해야 하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경사면 때문에 산은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그러니 서울 주변에 아무리 좋은 산이 많아도 우리는 공적인 정주 공간에 목이 마른 것이다. 공공의 정주 공간이 사라지니 우리가 공간을 점유하려면 사적으로 돈을 내야 하는 사회가 되었다. 카페를 비롯해 비디오방, 노래방, 찜질방도 마찬가지다. 모텔이 가장 재미있다.   -101쪽

 

얼마 전에 청양의 고운식물원과 광릉 숲에 다녀왔다. 둘 다 멋진 곳인데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특히나 런던의 큐 가든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큐 가든이 월등하다는 생각에 혹 내가 사대주의에 빠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들었다. 그러다 이 글을 읽고 알았다. 고운식물원이나 광릉 숲은 둘 다 '경사져 있다는 점이다'. 계속 이동해야 하는 공간이다. 그러니 목이 마른 것이다. 큐 가든은 넓은 잔디밭에 들어가도, 들어가서 뒹굴어도, 낮잠을 자도 되는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다. 물론 광릉 숲은 보존 숲이어서 일반적인 공원과 의미가 다르겠지만 말이다.

 

우리 동네에는 산책하기 좋은 코스로 산과 생태공원이 있다. 나는 산을 좋아하지만 우리 동네 뒷산엔 오르지 않고 주로 생태공원에 가는 걸 좋아한다. 그 이유가 궁금했었다. 산은 경사졌고 생태공원은 끝에서 다른 쪽 끝이 보이는 평지이다. 생태공원을 거닌다고 딱히 벤치나 정자에서 쉬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생태공원에 끌리는 건 언제든지 앉아서 쉴 수 있는 정주 공간이기 때문이리라. 그 가능성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런 의미에서 공원은 대로변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이 간다.

 

대로변은 접근성이 좋아 공원으로 남겨지지 않고 대개 개발된다. 반면 블록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급한 경사지여서 공원으로 남겨진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서울의 공원들은 대부분 블록의 안쪽에 숨겨져 있다. 비유하자면 고속도로 휴게소는 보통 도로에 접해 있는데, 지금 우리의 공원은 마치 휴게소가 고속도로에서 출구로 나가서 한참 들어가야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공원들이 대로변에만 접해 있어도, 도시경관이 좋아지고 더 많은 사람이 걷고 싶어 하는 도시가 될 것이다. 공원 면적을 늘리면 좋겠지만, 만약 그럴 수 없다면 공원을 적절히 배치하여 쓰임새와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공원은 블록 안쪽에 숨겨 놓기보다는 유동 인구가 많은 대로변에 배치해야 한다.  -289~290

 

 

이런 구체적인 생각을 해야 한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생각을 해야 변할 수 있다. 런던의 하이드 파크는 도심 한가운데 대로변에 있다. 그것도 부러운데 넓기까지 하다. 그렇게 유지될 수 있는 건 런던 시민들의 의식 때문이라는 것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사이버 공간.

 

고성능 휴대폰 카메라는 우리의 공간을 바꾸었다. 휴대폰 카메라 덕분에 우리 모두는 콘텐츠 제작자가 되었다. 과거에는 어느 동네 몇 평짜리 집에 살고 어느 차를 모느냐로 자신을 드러냈다. 곧 내 소유물의 스펙이 나를 드러내는 전부였다면 지금은 SNS에 올리는, 내가 방문한 카페의 사진과 여행 간 호텔의 사진으로 내 공간을 만들어서 나를 표현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나는 내가 소유한 공간으로 대변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소비한 공간으로 대변된다.(중략) 내가 제작한 디지털 자료로 만든 나의 사이버공간이 나를 대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계속애서 자신이 간 맛집과 여행지와 자신이 읽은 책을 포스팅한다.   -324

 

 

알라딘 서재에 글과 사진을 올리고 서평을 쓰는 행위는 결국 '나를 대변하는 것이다'.라는 것. 끊임없이 부정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사는 곳이 아파트다보니 '공간'에 대한 목마름을 이런 식으로 해소하는 지도 모르겠다.

 

 

 

글을 끝내기 전에 재밌는 부분을 추가한다.

 

(에전에) 영궁은 집안에 있는 난로의 개수를 이용해 세금을 매겼다. 난로가 많으면 세금도 많이 징수했다. 하지만 난로는 집안에 들어가야 숫자를 셀 수 있었기 때문에 세금을 징수하기에는 여간 불편한 방법이 아니었다. 그래서 영국은 1696년부터 난로세를 폐지하고 창문세를 도입했다. 유리창은 제작하기 비싸기 때문에 집에 창문이 많으면 부자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유리창의 숫자에 따라 세금을 징수했는데, 여섯 개까지는 면세였고, 일곱 개부터 차등적으로 중과세를 매겼다. 이러한 제도는 주택세가 나오기까지 150년 동안 시행되었다. 창문세를 시행하던 시기에는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창문을 없애고 벽으로 만드는 일도 생겨났다. 창문이 없으니 채광과 통풍이 안 되어 위생이 나빠지고 전염병이 돌기도 했다. 또한 시민들은 햇볕을 받지 못해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255

 

영국이 처음부터 선진국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위로가 된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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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 도시를 보는 열다섯 가지 인문적 시선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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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깨끗이 읽는다. 밑줄을 긋지도 않고 여간해서는 모서리를 접지도 않는다. 기껏해야 포스트잇 정도를 얌전하게 사용할 뿐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마음이 바뀌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연필로 밑줄을 긋고 싶어졌다. 다음은 연필 세례를 받는 구절들이다. 연필 긋기 노동이 들어간 글, 혼자 읽기가 아깝잖은가.

 

볼 수 있는 사람은 권력을 갖게 되고, 보지 못하고 보이기만 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지배를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렇듯 남이 자신을 보지 못하면서 동시에 나는 다른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상황을 즐기기도 한다. 다는 말로 관음증 혹은 보이어리즘(Voyeurism)이라고 하는데(중략)우리의 일상생활에는 이 같은 관음증이 넘쳐 난다.     -77쪽

 

학교에 대한 언급에 꽤 공감이 갔다.

 

...새로 지어지는 대부분의 학교들은 아파트 단지와 함께 설립이 되는데, 일반적인 토지이용계획을 하시는 기술자들은 그저 통상적으로 학교를 사거리 코너에 배치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자동차의 접근성을 고려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무엇보다도 자동차 소음이 많은 곳에 운동장 소음이 있는 학교를 두어서 주거 단지을 조용한 내부에 만들려는 생각이 큰 듯하다. 하지만 의도가 정말 잘못된 단지 계획이다.(중략) 유럽의 광장 주변에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다. 우리나라 학교 운동장 주변으로 그런 상점들이 들어선다면 운동장을 광장처럼 사용하면서 학교 중심의 공동체 형성과 학교의 보안 문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85~86

 

우리 동네 초등학교 앞 구멍가게는 보기에 안타까울 정도로 상호가 자주 바뀐다. 그럴 때마다 먹고 사는 일의 고단함에 한숨을 쉬곤 한다. 마치 내 일처럼. 학교의 보안을 위해 학교 운동장 주변에 상점들이 쭈~욱 들어서서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공동체가 형성된다면 이는 두 마리가 아니라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흔히 얼마나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사람인가로 그 사람의 권력을 측정한다....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면적이 아니라 체적으로 그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 한 집이 천장 높이 2.5미터에 30평대 아파트에 살고, 다른 사람이 천장 높이 4미터에 20평대 주택에 산다고 생각해 보자. 면적으로 따지면 30평 아파트가 더 큰 집이지만, 체적으로 따지면 20평에 4미터 천장 높이 주택이 더 큰 집이다. 필자는 주택을 디자인할 때 건축주에게 항상 경사진 천장과 복층 공간을 넣으라고 권한다.   -93

 

아파트는 아무리 넓어도 아파트 구조가 주는 평면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숨을 곳도 없고 오르 내림도 없는 한낱 종이 위에 그려진 평면도에서 꼼지락거리는 느낌이다. 아파트를 한번도 분양 받은 적이 없는, 아파트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나는 이 '경사진 천장과 복층 공간'이 있는 주택이 마냥 부러울 뿐이다.

 

남대문은 재료가 오래된 나무이기 때문에 문화재가 아니라 그 건축물을 만든 생각이 문화재인 것이고, 그 생각을 기념하기 위해서 결과물인 남대문을 문화재로 지정한 것이다. 따라서 오리지널 남대문이 불타 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오래된 나무가 불에 탔다고 통곡하면서 울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다.       -116

 

'생각을 기념'하기 위해서. 멋진 말이다.

 

2009년부터 5만 원권 지페에 신사임당이 들어갔다. 겉보기에는 그림도 잘 그리는 현모양처 문화인이 선정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필자 생각에는 신사임당이 이율곡을 낳아서 전국 수석을 시킨 어머니라는 프로필이 없었다면 선정되지 않았을 것 같다.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낸 어머니가 추앙받는 사회적 분위기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학원이 아파트 상가를 빼곡히 채운 주변 상황이나 5만 원권 위의 신사임당이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137

 

백 번 양보해서 '현모양처 문화인'도 웃기기는 마찬가지다. 어머니는 현모양처, 그럼 아버지는?

 

공간은 실질적인 물리량이라기보다는 결국 기억이다. 우리가 몇 년을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어떠한 추억을 만들어 냈느냐가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때문에 우리에게 다양하게 기억되는 공간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이벤트 별로 각기 다른 공간으로 각기 다른 기억의 서랍들 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서 우리의 머릿속에서 실제 크기보다 더 크게 인식된다.     -195

 

그래서 '물리적 공간의 체험이 다양한' 천장 높고 마당이 있는 집이 좋다는 얘기이다.

 

우리가 천장고가 높은 종교 건축에 들어가면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상상을 하게 된다. 같은 원리로 사무 공간에서도 빈 공간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창의적인 생각이 더 쉽게 나오는 것이다. 그 비어 있는 공간이 우리의 사고가 숨 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준다.    -223

 

컴퓨터 모니터와 마주한 사무 공간에서 비어 있는 공간을 감히 꿈꾼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건축물이 아니라 장소이다.   -280

 

사람 같다. 사람도 장소에 어울려야 한다. 본인을 위해서건, 타인을 위해서건. 어떤 장소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게 진로탐색이다.

 

니슈케에 의하면 미국처럼 공간이 넓은 곳에서는 시간 거리를 줄이는 쪽으로 건축이 발달하고, 일본같이 공간이 협소한 곳에서는 시간을 지연시켜서 공간을 심리적으로 커 보이게 한다고 한다.     -290

 

건축물은 자연의 겉모습을 모방해서는 안 된다. 대신 그 본질을 모방해야 한다.    -316

 

 

 

이 책의 후속편이 나왔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이번엔 뒷북 치지 말고 제 때에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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