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데생 - 사코 게이스케의 여행
노로 쿠니노부 지음, 송태욱 옮김 / 저녁의책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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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로 구니노보(1937~1980)라는 낯선 작가의 소설. 어쩌다 무료 일본영화를 접할 때의 기대감, 딱 그만큼의 기대를 안고 읽었다. 어차피 빌린 책, 읽다말면 그뿐, 그랬는데 끝까지 읽었다.

 

고서점 주인인 스물여섯 살의 게이스케, 책을 매개로 한 그의 소소한 여행이 이 책의 내용이다. 시시한 이야기로군, 하면서 읽다보면 저절로 빠져들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소설이다.

 

약간의 아쉬움 같은 여운까지 남을 줄이야. 긴 겨울밤, 난롯가에 앉아서 읽는 듯한 고졸한 외로움 같은 소설. 좋다.

 

 

오후 세 시까지 게이스케는 교토 시내를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녔다. 헉슬리가 교토의 거리를 "쇠퇴한 광산 마을 같다"고 평한 것은 언제쯤의 일이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미로 같은 도쿄의 거리에 익숙한 케이스케에게 바둑판처럼 말끔하게 구획된 교토의 거리는 늘 그렇듯이 기분 좋은 질서감을 동반한 자극을 주었다. '이런 거리에서는 거짓말을 하기도 쉽지 않아'라고 게이스케는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교토 거리. '거짓말을 하기도 쉽지 않은'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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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8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08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계 예술마을로 떠나다 - 잃어버린 두근거림을 찾아
천우연 지음 / 남해의봄날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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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꼭 클릭시켜야 하나? 작가로선 최선을 다해 만든 책을 독자가 그저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별을 하나씩 깎아내리는 행위는 작가에 대한 모독일 수도 있다. 어떤 책에 대한 평가를 별 몇 개로 단순화시키는 건 잔인하다. 모든 평가가 그렇듯.)

 

동네에 새로 들어선 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와서 구입했다. 새로 생긴 서점은 협동조합으로 만들어지고, 운영되는 이른바 '복합문화공간'을 자부하는 곳이다. 강연도 열리고 공연도 열리는 곳이다. 우리 동네에 이런 곳이 생기다니, 이곳을 떠올리면 애향심이 저절로 생긴다고나 할까. 웬만하면 인터넷 서점 대신 이곳에서 책을 사고 싶다. 알라딘이야 나 하나 빠진다고 눈 하나 깜빡하지 않겠지만 이곳은 나 같은 사람이 모여야 살아남는다. 이 막중한 책임감.

 

그나저나 이 책. 서른셋의 나이에 하던 일을 멈추고 세계 예술마을 여행길에 올랐다는 건...음, 칭찬할 만한 일이다. 당찬 모습에 절로 감탄이 나온다. 비록 그 길지 않은 회사생활에 염증을 느꼈다는 건, 내 입장에서 보면 좀 간지럽지만.

 

스코틀랜드 모니아이브

덴마크 보른홀름

미국 미네소타

멕시코 오악사카

 

이 네 곳에서 일 년 동안 생활하며 경험한 것을 풀어놓았다. 책 내용은 아주 밝다. 저자 역시 매우 밝은 성격의 소유자일 것 같다. 게다가 매우 모범적인 생각을 모범적인 문체로 써내려갔다. 어떤 부분은 교과서의 글을 읽는 기분도 들었다. 지극히 범생이스럽다.

 

글 중 덴마크의 보른홀름에서 살짝 마음이 흔들렸다. 나도 따라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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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여행가, 작가, 학자의 자질을 고루 갖춘 분이다. 지금 시대에도 탐험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는 여행가이면서, 입심이 뛰어난 이야기꾼이면서, 쉬지 않고 공부하는 학자이기도 하다. 이름하여 '여행하는 인문학자'이다.

 

한겨레 신문에 실린 이 분의 글 한 토막.

 

죽기 직전의 두려움에 잠긴 그 검은 눈동자는 어둠 속의 타이가처럼 한없이 깊었다. 순록은 말보다 오히려 먼저 길들여졌다고 한다. 시베리아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던, 아니 인간의 삶 전체를 부양하던 위대한 존재의 가는 길을 지켜보는 것은 행복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고기를 먹지 않는다면 모르되, 기어이 먹겠다면 도축에서 손질까지 한 번쯤 목격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으리라. 살고 싶어하는 모두의 본성을 외면한 채 뒤에 숨어서 닭 가슴살의 열량과 암송아지 스테이크 맛을 논하는 이중적인 삶, 앎과 감정과 행동이 갈라진 삶을 치료하고자 한다면.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826554.html#csidxb6222a79f32895aad76efa37d3ebd65

 

목소리는 분명하고 확고하다. '이중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단호한 말이다. 그래서 멋지다.

 

이 여행기는 나 자신을 위한 일기나 감상문이 아니다. 작가로서 나는 배울 거리가 없는 책을 출판하는 것은 독자와 나무에 대한 예의가 아님을 믿고 있다.

 

위의 책은 적어도 '나무에 대한 예의'는 지킨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재밌고, 알차고, 유익하다. 읽는 내내 감탄했다. 아, 모든 걸 갖춘 책이야, 하고 거듭 감탄했다. 여행기 한번 써보고 싶은 분은 이 책 먼저 읽어야 할 듯. 겸손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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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8-01-15 0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의 이름이 눈에 많이 익은데 어디서 제가 그분의 글을 읽었는지 모르겠네요. 결론은 이 책을 곧 구입하겠다는 것!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인용해주신 글을 보니 읽어보지 않을 수 없어요.

nama 2018-01-15 09:25   좋아요 0 | URL
이 저자, 책 많이 쓰셨어요. 올 겨울엔 이 저자의 책을 몽땅 읽어볼까 생각중이에요.
 

 

 

 

 

 

 

 

 

 

 

 

 

 

 

이런 황당한 일이...오랜만에 정성 들여 길게 썼더니 저장버튼을 누르려는 순간 획 날아가버렸다. 평소 하던 대로 살아야지 뭘 또 새롭게 하겠다고...쯧쯧... 같은 글을 기억을 되살려 쓰기도 싫고 이 책에서 베끼고 싶은 부분만 적어본다. 원래 의도는 이게 아니었는데...

 

  환자를 상담할 때 치료에 가장 효과가 있는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치료자와 환자 사이의 정서적인 애착관계다. '공감'이란 치료자가 환자의 경험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느끼는 것을 말한다. 이는 '동감'과는 다르다. 동감은 치료자가 환자와 정서적인 객관적 거리 없이 환자의 감정에 치료자 자신도 빠져버리는 것을 말한다. (중략)

  치료자가 공감의 감정을 유지하면서 환자에 대해, 환자의 주변 환경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 환자에게는 변화가 일어난다.(중략)

  이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우리를 둘러싼 대상들과 관계를 맺을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상대에게 진심으로 공감을 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친구가 속상한 일이 있을 때 형식적으로 맞장구만 쳐주는 것은 아닌지, 회사에서 상사에게 받는 분노를 쏟아내는 남편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남편의 분노를 모두 흡수한 채 그날부터 불면과 소화불량으로 고생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자. 그랬다면 그것은 진심으로 공감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공감이란 바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이해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건강하고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유지해갈 수 있다.

 

 

  우리는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가끔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일들 속에서 무료함을 느끼고 있다면 가끔씩 억누르고 있던 자신의 충동에 몸을 맡기고 시도해보라는 것이다. 이런 시도를 해보아야 우리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비로소 발견하게 된다.

  (중략) 하나의 도구를 몇십 년 동안 계속 사용하면 마모되어 고장나는 것이 당연한 데도 우리는 그 익숙함을 바꾸려하지 않는다. 바로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변화는 진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필요조건이다.(중략)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고 생각하면 평생 변화할 수 없다. 주변 환경이 달라질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화병이 나거나 우울증으로 남은 여생을 불행하게 보낼 수도 있다. 변화할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다 해도 내 생각이 변하면 된다. 내 생각이 변하고 다르게 행동하면 주변 환경과 조건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한 번만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라.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간절히 원하게 될 것, 그것을 지금 하라!"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죽음과 죽어감>의 저자)

 

 

한 해의 마지막 날, 변화를 모색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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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2-31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a님, 새해인사 드리러왔습니다.
내일이면 2018년이예요.
올해도 좋은 이야기와 다정한 인사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에는 가정과 하시는 일에 좋은 일들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건강하고, 기분 좋은 날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nama 2017-12-31 19:40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뜻하신 일이 순조롭게 풀리길 기원합니다.
이웃이 편해야 내가 편하고 세상이 편해지니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이슬란드가 새로운 여행지로 뜨고 있는가보다. 주변에서도 이미 아이슬란드에 다녀온 사람들이 늘기 시작하고, 아이슬란드를 목표로 공부에 들어간 사람도 있다. 아이슬란드 여행기도 곧잘 눈에 띈다. 이렇게 아이슬란드에 눈독을 들이고 있으면 언젠가 가게 되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이 책을 손에 집었는데...

 

이 책은 여행기도 아니고 가이드북도 아니다. 아이슬란드에서 살아봐서 아이슬란드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쓴 책이라서 주로 저자가 아는 사람들 얘기가 많이 나온다. 저자에게는 뜻 깊은 내용이겠으나 그게 이 책의 한계이다. 즐거운 수다를 들어주는 기분이랄까. 독자들은 저자의 친구가 아니다. 친구들에게나 들려줌직한 내용이라 해서 뭐 의미가 덜한 건 아닌데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든다. 책 말미에 나온 여행담도 그저 책을 쓰기 위해 다녀온 것 같아서 박진감이나 새로움이 덜 하다.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책을 쓰는 것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한 얘기에서 감동을 받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그 행복이 다른 사람에게는 싱겁게 보이기도 한다. 내가 삐뚤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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