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글을 읽고 심보선의 <형>이라는 시를 읽기 위해 책을 샀다.

 

 

 

 

 

 

 

 

 

 

 

 

 

 

 

 

누군가가 그랬듯이 나도 이 긴 시를 옮겨본다. 

 

 

                 

 

형은 어쩌면 신부님이 됐을 거야.

오늘 어느 신부님을 만났는데 형 생각이 났어.

나이가 나보다 두 살 많았는데

나한테 자율성이랑 타율성 외에도

신율성이라는 게 있다고 가르쳐줬어.

 

신의 계율에 따라 사는 거래.

 

나는 시율성이라는 것도 있다고 말해줬어.

시의 운율에 따라 사는 거라고.

신부님이 내 말에 웃었어.

웃는 모습이 꼭 형 같았어.

 

형은 분명 선량한 사람이 됐을 거야.

나만큼 아버지를 미워하지 않았을 테고

나보다 어머니를 잘 위로해줬을 거야.

당연히 식구들 중에 맨 마지막으로 잠들었겠지.

문들을 다 닫고.

불들을 다 끄고.

 

형한테는 뭐든 다 고백했을 거야.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사는 게 너무나 무섭다고.

죽고 싶다고.

사실 형이 우리 중에 제일 슬펐을 텐데.

 

그래도 형은 시인은 안 됐을 거야.

두번째로 슬픈 사람이

첫번째로 슬픈 사람을 생각하며 쓰는 게 시니까 말야.

 

이것 봐. 지금 나는 형을 떠올리며 시를 쓰고 있잖아.

그런데 형이 이 시를 봤다면 뭐라고 할까?

너무 감상적이라고 할까?

질문이 지나치게 많다고 할까?

아마도 그냥 말없이 웃었겠지.

아까 그 신부님처럼.

 

시가 아니더라도 난 자주 형을 생각해.

형이 읽지 않았던 책들을 읽고

형이 가지 않았던 곳들을 가고

형이 만나지 않았던 사람들을 만나고

형이 하지 않았던 사랑을 해.

 

형 몫까지 산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이가 들수록 가끔

내가 나보다 두 살 더 늙은 것처럼 느껴져.

 

그럼 죽을 때 두 해 빨리 죽는 거라고 느낄까?

아니면 두 해 늦게 죽는 거라고 느낄까?

그건 그때가 돼봐야 알겠지.

 

그런데 형은 정말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사실 모르는 일이지.

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지 않았으리란 법도 없지.

불행이라는 건 사람을 가리지 않으니까 말야.

 

만약 그랬다면 내가 형보다 더 슬픈 사람이 되고

형은 감옥에서 시를 썼을까?

그것도 그때가 돼봐야 알겠지.

 

형한테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수두룩했는데

결국 하나도 물어보지 못했네.

 

형 때문에 나는 혼자 너무 많은 생각에 빠지는 사람이 됐어.

이것 봐. 지금 나는 새벽까지 잠도 안 자고 시를 쓰고 있잖아.

문들도 다 열어두고.

불들도 다 켜놓고.

 

형, 정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왜 형은 애초부터 없었던 거야?

왜 형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았던 거야?

왜 나는 슬플 때마다 둘째가 되는 거야?

 

형.

응?

 

 

------------

 

 

먹먹해져서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리다가 뚝 멈추고 말았다.

 

왜 형은 애초부터 없었던 거야?

왜 형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았던 거야?

왜 나는 슬플 때마다 둘째가 되는 거야?

 

이 부분에서다. 애초에 없는 형 얘기를 이렇게 쓰다니....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랄까. 한동안 속이 부글거리는 와중에 이런 책도 손에 들고 읽기 시작했다.

 

 

 

 

 

 

 

 

 

 

 

 

 

 

 

 

태초에 지구는 존재하지 않았고 언젠가는 지구라는 행성도 우주에서 사라지리라는 사실을 찬찬히 읽고 있자니 부글대던 속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무서운 얘기인데 이상하게 기분이 차분해지면서 위로가 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언니가 지난 5월 28일에 세상을 떴다. 68세. 50여 년 간 병원과 요양원에서 생을 보내다 마감했다. 언니와 놀았던 기억도, 대화다운 대화를 나눈 적도, 다툰 적도 없다. 병원에서 쓸쓸한 생을 보낸 언니도 억울하지만 나 역시, 우리 오빠들 역시 억울한 세월을 보냈다. 누구도, 그 누구도(하느님 포함) 어떻게 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니....

 

 

평소에 tv를 보지 않기에 <우리들의 블루스> 시리즈를 넷플릭스로 몰아서 보았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눈이 시뻘개졌다. 은희, 선아, 영옥이 얘기를 합치면 내 얘기가 되는구나, 생각이 드니 더욱 서러워졌다. 그래도 극중 영옥이만큼 경제적인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월남한 부모님은 나머지 자식들을 미더워하지 못해 언니의 병원비를 끝까지 책임지셨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에도.

불쌍한 나의 부모님.

 

 

그간 여러 권의 책을 손에 들었다 놨다.

 

 

 

 

 

 

 

 

 

 

 

 

 

 

 

작가가 아일랜드 출신이라는 사실만 기억하고 싶다. 매끈한 소설은 끝까지 읽히지 않는다.

 

 

 

 

 

 

 

 

 

 

 

 

 

 

 

 

남에게 읽히는 글은 무엇인가, 를 생각하게 하는 책.

 

 

 

 

 

 

 

 

 

 

 

 

 

 

 

 

<엔드 오브 타임>을 읽고 이 책을 읽으면 안 되는 거였다.

 

 

 

 

 

 

 

 

 

 

 

 

 

 

 

 

여행 고수들도 많은데......

 

 

 

 

 

 

 

 

 

 

 

 

 

 

 

읽다보니 읽었던 책이었다.

 

 

 

 

 

 

 

 

 

 

 

 

 

 

 

 

목소리 큰 왕언니의 일침 같은 책

 

 

 

 

 

 

 

 

 

 

 

 

 

 

 

 

내가 욕심낼 책이 아니었다. 관심도 거의 없고.

 

 

 

 

 

 

 

 

 

 

 

 

 

 

 

 

힘을 좀 빼면 더 좋지 않을까 싶은.

 

 

 

 

 

 

 

 

 

 

 

 

 

 

 

숨통이 트였다. 벌써 내용은 가물거리지만, 작가의 유쾌한 글에서 기운을 얻었다.

 

 

몇 권 더 집어들었었는데....되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2-06-19 14: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19 1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  나는 의사선생님을 잘 믿는 편이다. 일년마다 위내시경을 받아야한다고 해서 오늘 숙제를 했다. 수면내시경으로. 혈액검사, 소변검사, 심전도 등을 함께 했는데 비용이 137,800원 나왔다. 약간 한숨이 나왔다. 또 일년마다 받으라는 담낭초음파를 예약하고 있는데 정산을 다시 해야 한단다. 가보니 좀전의 결제를 취소하고 새로 결제를 한다고 한다. 43,900원으로 바뀌었단다. 예? 했더니 '중증질환'이어서 그렇단다. 반가운 마음에 헤헤 웃음을 흘리면서 '고마워요'라고 했는데 중증질환이 고마운 건가...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 엇그제 세탁기에 삶은 행주를 헹구기 위해 세탁세제 투여기능을 해제한 줄도 모르고 빨래를 돌렸다. 세제 한 방울 넣지 않고 순전히 물빨래를 한 셈이다. 벌써 한두번이 아니어서 이젠 한숨도 안 나온다. 세제를 넣지 않았는데도 앞자락의 음식물 흘린 부분이 깜쪽같이 사라졌다. 한숨을 쉴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일부러야 세제를 안 넣을 수 없지만 종종 깜박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세수할 때 비누를 사용하지 않아도 얼굴에는 물길의 흔적이 남는다. 빨래도 그렇다.

 

 

- 어렸을 때 아버지와 라디오로 판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아버지가 적이 감탄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 저도 판소리 배워볼까요?" 했더니 아버지는 조용히 입을 다무셨다. 하라는 말씀도, 하지 말라는 말씀도 없이. 가당치도 않은 얘기에 아버지는 속으로 한숨을 쉬셨겠지. 아마도.

 

 

 

 

이제서야 생애 처음으로 판소리 완창을 들었다. 270분 동안 펼쳐지는 심청가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공연이었다. 런던과 뉴욕에서 보았던 몇 편의 뮤지컬은 그저 장난이라고나 할까. 한마디로 비교불가. 뮤지컬을 보면서 저러다가 피 토하고 쓰러지지는 않을까 염려한 적은 없었으니까. 서양의 뮤지컬과 닮은 점은 가사 전달이 어렵다는 것. 예전에 셰익스피어 고향인 스트레포드 어폰 에이본에서 보았던 연극 <한 여름밤의 꿈>을 생각하면 지금도 창피한데 글쎄 한마디도 못알아들었다는 것. 나중에 영국 출신의 원어민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자신도 못 알아듣는다고 해서 조금 위안을 받았다. 이번 완창 심청가를 1/3이나 알아들었을까. (더군다나 내 왼쪽 청력은 청신경이 30% 정도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우리말이 영어처럼 세계의 언어가 되었다면 판소리는 대단한 공연예술로 사랑 받았을 텐데...

 

뚝, 꿍딱, 따다닥, 쿵쿵...고수의 북소리가 그렇게나 아름답고 한 세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소리꾼과 주거니 받거니하는 맛도 각별하지만 그 자체로도 한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듯했다. 소리꾼 없는 고수만의 북소리는 가능한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 읽은 책 중에서

 

 

 

 

 

 

 

 

 

 

 

 

 

 

 

내용도 내용이지만 글쓰기에 관한 책으로 읽었다. 에세이의 지평을 넓혀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자기계발서로 읽혀서 실망할 뻔했으나 사실을 토대로 한 픽션으로 읽힐 정도로 숨이 막혔다.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소설을 쓴다면 이런 소설을 쓰고 싶었는데....나의 꿈을 빼앗긴 소설. 역시 소설은 문체 읽는 맛...을 선호한다면 잘근잘근 씹어가며 페이지를 넘기게 되는 책. 문장에 매료되어 저절로 한숨이 나오는 책. 이런 책을 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읽었는데 내내 후회를 했다. 이런 책을 안 사면 어떤 책을 사려고...그 돈 아껴서 뭐하려고....

 

184쪽

  "멋지군, 자네도 비상용, 그 아가씨도 비상용. 자네 인생 전체도 하나의 커다란 비상용이군. 내가 자네보다 더 많이 아는 척하진 않겠지만, 자네 인생에서 진짜는 논문밖에 없어. 근데 누가 알겠어? 그 논문이 다를 것들보다 훨씬 더 기만적인 비상용일지. 이해가 안 가는군. 솔직히 말해서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본 수아레."

  따다다다다.

  그 말을 남기고 그는 갔다.

  나는 그가 왜 그렇게 화를 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나의 세계에서 그도 비상용이라는 잠정적인 지위를 획득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던 것이지도 모르겠다. 비상용 삶이 넘쳐나는 비상용 도시에서 피어나는 비상용 우정.

 

 

 

 

 

 

 

 

 

 

 

 

 

 

 

 

 

 아주아주아주 야무진 잡지. 김진해, 신형철, 이라영. 이 세 분만 실렸어도 충분히 만족했을 터. 한겨레의 믿음직한 구석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잡지.

 

 

 

- 도서관에서 빌렸으나 빌린 걸 후회하며 읽게 되는 책으로는, 이런 책은 사야지....

 

 

 

 

 

 

 

 

 

 

 

 

 

 

 

 

 

 

 

 

 

 

 

 

 

 

 

 

 

 

 

- 삼천포로 빠져서 이내 흥미를 잃게 된 책으로는

 

 

 

 

 

 

 

 

 

 

 

 

 

 

 

 

한 나라에 대한 여행기는 비판보다는 애정이 실린 글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인도는.

그리고 다른 사람이 쓴 책은 되도록 적게 인용하고.... 여행은 체험.

 

 

 

- 원하던 실물을 접했으나 이내 관심이 시들어버린 책

 

 

 

 

 

 

 

 

 

 

 

 

 

 

 

몇 개월 동안 이 책을 빌리고자 틈틈이 대출 확인 작업에 들어가서 결국 내 손에 넣었으나, 그 지난한 접선 과정에 비해 막상 책을 몇 쪽 못 읽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인연이 아닌가보다.

 

 

 

 

 

 

 

 

 

 

 

 

 

 

 

 

마음(정신)을 다루는 책은 케바케라서 딱히 잘 읽히지 않는다. 마음의 풍경은 천차만별. 도움이 될까 읽어보지만 당신은 당신의 문제, 내 문제는 따로....이런 식.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2-05-13 21: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마님이 열독 하신 책들
2022년에 만난 책들중 맘에 쏘옥 들었던 책들입니다.

한겨레 21 잡지 스물 한명의 작가 인터뷰 정말 재밌게 읽어서
담번에도 요런 기획물을 원할 정도 ^ㅅ^

nama 2022-05-13 21:48   좋아요 1 | URL
한겨레 21의 이런 기획, 정말 야무지지요. 열 권의 책 부럽잖은 한 권의 잡지를 보면서 글을 쓰는 것도 이래야되지 싶어요. 심장에 박히는 한 문장에 대한 열망.
 

 

사람에게는 각자의 일이 있어야 한다. 젊으나 늙으나 여자나 남자나. 홀로 있는 시간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기대게 되는 순간 불화의 싹이 움트기 시작한다. 무료함은 애정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심심하다고 애정에 기대면 애정은 매정으로 변한다. 오랜만에 이곳에 들어와 이런 말을 하는 이유.... 은퇴하면 겪는 일이다. 그러니 늙어 죽을 때까지 홀로 있고, 홀로 할 수 있는 일을 개발해야 한다. 이런 말이 내 입에서 이렇게 빨리 나오게 될 줄이야. 잠깐입니다.^^

 

집 구석구석에 쌓이는 책이 번거롭고 흉칙해서 도서관에 열심히 드나들었다.(요즘엔 이런저런 물건을 하나하나 버리는 게 일이다.) 돈 주고 사기 아까운 책들을 마음대로 빌릴 수 있어서 좋은데, 마음에 드는 책을 빌리고 나면 갈등이 생긴다. 그래도 이건 사야되지 않을까? 흥! 언제 다시 읽겠다고! 책은 널려 있지만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다음을 기약'하는 일은 만들지 말자며 조용히 마음을 접는다. 늘 일기를 쓰지만 다시 읽지는 않는다던 올리버 색스의 말이 떠오른다. 읽기도 한번으로, 쓰기도 한번으로. 다만 여운을 남기는 몇 권에 대해서 작은 기록을 남길 뿐이다.

 

 

 

 

 

 

 

 

 

 

 

 

 

 

 

 

이 책을 쓴 두 저자의 공통점. 징집을 피하기 위해 한 사람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한 사람은 미국에서 영국으로 갔다는 점이다. 징집을 회피했다고 영원히 모국에서 배제당하지 않았다는 점도 같다. 올리버 색스는 뉴욕과 런던을 넘나들며 책을 출판했고 제이 파리니는 미국에서 교수로 재직중이다. '부동시'라는 해괴한 사유로 군면제된 사람은 한 국가의 지도자가 되고, 국적을 바꿔가며 징집을 회피한 어느 가수는 무릎 꿇고 읍소해도 끝내 모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상황을 어찌 이해해야 하는지.

 

각설하고.

 

<온 더 무브>에서 인상적인 부분.

 

* '삶의 마지막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이 고마운 생각이게 하라' - W.H.Auden.

  (Let your last thoughts all be thanks.)

   이 말을 인용한 올리버 색스는 이런 말도 했다.

 

" Wystan's mind and heart came closer and closer in the course of his life, until thinking and thanking became one and the same."(Wystan은 바로 Auden)

 

 thinking과 thanking 이 하나가 되었다고라...

 

* p. 79~80  '런던으로 돌아와 의대에 다니던 시절에 마이클 형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고 더 큰 힘이 되어줄 수 있었을 텐데. 그래야 했는데. 형하고 외출해 맛난 것도 사 먹고 영화도 보고 연극도 보고 음악회도 가고(형 혼자서는 절대로 하지 못한 그런 일들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하지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는 부끄러움(나를 그렇게 필요로 했는데 곁에 있어주지 못한 나쁜 동생이었다는 죄스러움)이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마음에 복받쳐 오른다.'

 

정신질환을 앓았던 형에 대한 미안함을 평생 떨칠 수 없었던 색스의 슬픔을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이 부분은 읽고 또 읽어도 눈물이 핑돈다.

 

<보르헤스와 나>

p.128. "나는 더 이상 체면을 차려야 할 이유가 없어. 노년이 되면 좋은 점 중 하나지. 어떤 것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지."

 

p.202. "시간은 정말로 존재하는 것일까?" 그는 물었다. "그렇지 않네." 그는 자문자답했다. 그러고는 쇼펜하우어를 인용했다. "그 어떤 사람도 과거에 산 적이 없으며, 미래헤도 절대 살지 않을 것이다. 현재만이 모든 생명의 형식이다." 그러고 나서 보르헤스는 어느 불교 학자의 말을 인용했다. "삶은 생각이 지속하는 동안만 지속한다."

 

p.233. "아, 트라팔가 전투, 맞아. 사격수가 옆 배의 돛대 뒤에 숨어서 비겁하게 그를 저격했지. 그렇게 총을 맞고 죽어가던 넬슨 제독을 생각해 보게. 넬슨은 중위에게 말했다지. '하지 중위, 내가 총에 맞았네. 척추뼈가 으스러졌어. 이제 나는 죽을 거야.' 그리고 한 시간도 안 되어 그는 죽으면서 이렇게 말했지. '최소한 나는 내 할 일은 다했네.'"

 

p241. "나도 괴물일세. 자네도 괴물이야. 마음속에 네시나 그렌델을 품고 살아가지 않는 사람은 없어. 우리는 한밤중이면 어두운 물속에서 수영을 하지. 나는 떨면서 잠에서 깨어난다네. 자네는 그렇지 않나?"

 

모두 보르헤스의 말이다.

 

 '삶의 마지막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이 고마운 생각'이기는 아무리해도 불가능할 것 같으니 '최소한 나는 내 할 일은 다했네' 하면서 죽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생각.

 

이 책에서 보르헤스가 언급했던 책을 찾아본다.

 

 

 

 

 

 

 

 

 

 

 

 

 

 

 

 

p.107  "소설의 역사에서 유일하게 완벽한 소설이지."

         "태평양 어느 섬에 갇힌 도망자, 살인자. 시간은 해체되고 현실도 해체되죠." 알래스테어가 말했다.

         "독자도 보이지 않게 되지. 심지어 독자 스스로에게도. 이야기만이 살아있을 뿐이야. 그래, 사라지는 건 작가의 운명이기도 한거야." 

 

 

 

 

 

 

 

 

 

 

 

 

 

 

 

p.112  "공간이 부풀어 오르다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한까지 확대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시간의 무한한 확장에 비할 수는 없었다. 나는 하룻밤 사이에 70년, 아니 100년을 산 것 같은 기분이었다."

 

 

 

 

 

 

 

 

 

 

 

 

 

 

p.132  "나는 <베오울프>를 사랑해. 그래서 북해를 좋아하는 거야. 베오울프는 갑옷을 입고 허리에 큰 칼을 차고 수영을 하지. 아홉 마리의 괴물이 그를 바다 밑으로 끌고가. 베오울프는 하나씩 다 죽여버리지. 쉭쉭! 주변으로 퍼지는 핏물을 상상해 보게. 베오울프는 탈진해서 핀란드로 쓸려가지."

 

나는 대학 때 이 책을 읽긴 읽었으나 이해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고, 그 후 영화로도 봤으나 역시 이해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는....

 

------------------

 

p.135 "저는 아무 생각이 없을 때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남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대부분 아무 생각이 없긴 하지만요."

  "젊은 남자의 운명이야. 집중력이 제한되는 것 말이야. 내가 눈이 멀어서 갖게 된 몇 안 되는 이점 중 하나는 발기의 대상에 시선을 더 이상 고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일세. 이제 나는 내면을 본다네. 물론 그 내면에는 산도 있고 위험한 절벽도 있지만."

  "'아, 정신이여, 정신에는 산도 있고 폭포 절벽도 있다네.'"나는 제라드 맨리 홉킨스의 유명한 시를 인용하면서 말했다. 보르헤스가 나를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렁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찾아본 제라도 맨리 홉킨스.

 

 

 

 

 

 

 

 

 

 

 

 

 

 

큰글씨 책으로 나와 있다.

 

 

 

 

검색해보니, 예전에 뮤지엄 산에서 찍었던 요것이 '제라드 맨리 홉킨스를 위하여'라고 한다. 이 시인의 '황조롱이 새'라는 시에서 영감을 얻었다나. 하여튼 퍼즐 맞추는 기분.

 

 

-------------------

 

p.110  "그래! 그리고 주세페 자네가 스페인어를 할 줄 안다면 레오폴도 루고네스도 추천하겠네. 예수회의 역사에 대한 그의 책을 먼저 읽게. 얼마나 걸작인지! 하지만 요즘 누가 루고네스를 읽나? 그는 내 젊은 시절의 영웅이었지. 시인 겸 번역가, 신학자, 역사학자, 에세이스트, 극작가, 소설가였지. 요즘 그렇게 많은 장르를 다 쓸 줄 아는 작가가 누가 있겠나?"

 

그래서 찾아 본 레오폴도 루고네스의 책

 

 

 

 

 

 

 

 

 

 

 

 

 

 

 

 

----------------

 

p.109  "미국에서는 아예 읽히는 게 거의 없지." 보르헤스가 말했다. "나는 자네 나라를 여행한 적이 있지. 강연하려고. 예를 들면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에 있는 하버드 대학에 말이야. 나는 항상 학생들에게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라고 말하지. 스티븐슨, 체스터턴, 웰스, 그리고 치디옥 티지본. 이제 시인이 나왔구먼."

  알래스테어가 눈썹을 치켜떴다. "티치본을요?"

  보르헤스는 우리의 관심에 표정이 밝아졌다. " 그 시인은 사실 단 한 편의 시만 썼네. '애가'라는 시지. 자기 자신을 위한 애가야. 그는 엘리자베스 여왕을 시해할지도 모른다는 혐의로 런던의 탑에 갇혔어. 그가 천주교 신자였다는 사실을 기억하게나. 그가 갇힌 건 스코틀랜드의 메리 1세 여왕을 왕좌에 앉히려는 배빙턴 음모사건의 일부였어. 그 시는 가장 완벽한 시야.

 

내 청춘의 전성기는 근심거리로 뒤덮여 있을 뿐,

내 기쁨의 연회에는 그저 고통 한 접시밖에,

내 작물의 수확은 가라지밭에서일 뿐,

내 모든 선(善)은 수확의 헛된 희망일 뿐,

대낮이 지나가지만 나는 태양을 볼 수 없고,

나는 지금 살아있지만 이제 내 인생은 끝났구나.

 

그래서 찾아 본 원문.

 

Elegy

 

My prime of youth is but a frost of cares,

My feast of joy is but a dish of pain,

My crop of corn is but a field of tares,

And all my good is but vain hope of gain:

The day is past, and yet I saw no sun,

And now I live, and now my life is done.

 

My tale was heard and yet it was not told,

My fruit is fallen, and yet my leaves are green,

My youth is spent and yet I am not old,

I saw the world and yet I was not seen:

My thread is cut and yet it is not spun,

And now I live, and now my life is done.

 

I sought my death and found it in my womb,

I looked for life and saw it was a shade,

I trod the earth and knew it was my tomb,

And now I die, and now I was but made:

My glass is full, and now my glass is run,

And now I live, and now my life is done.

 

 

각운이 a,b,a,b,c,c 로 입에 척척 달라붙는 맛이 있다. '내 젊음은 지나갔지만 나는 아직 늙지 않았고'.......

 

 

 

 

 

 

 

 

 

 

 

 

 

 

 

 

 

왼쪽은 구매하고, 오른쪽은 희망도서로 신청해서 도서관에서 구매하게 한 책. 담배보다는 커피 마시는 게 내 취향인 듯....

 

 

 

 

 

 

 

 

 

 

 

 

 

 

 

 

 

책 먼저 읽다가 넷플릭스로 영화 보고 다시 책 마저 읽었다. 책에 비해 영화는 생략이 많아서 좀 무뚝뚝하게 여겨졌다. 필히 책을 보시기를.

 

p.68

"....피터, 남들이 하는 말을 절대로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남들은 너의 깊은 속을 절대로 모르니까."

"남들이 뭐라고 하든 마음에 담아 두지 않을게요."

"하지만 피터, 말을 꼭 그런 식으로 할 필요는 없단다. 남의 말을 아예 귀담아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그런 사람은, 보통 모질게 자라서 모진 사람이 되게 마련이거든. 넌 상냥한 사람이 되어야 해, 상냥한 사람이 넌 어쩌면 남들한테 큰 해를 입히는 사람이 될지도 몰라. 왜냐면 넌 강하니까. 너 상냥함이 뭔지 아니, 피터?"

"잘 모르겠어요, 아버지."

"그래, 그럼 가르쳐주마. 상냥함이란 너를 사랑하는 사람이나 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앞길에 놓인 걸림돌을 치우려고 애쓰는 거란다."

"그런 뭔지 알겠어요."

조니는 다시 입술을 물었다. "피너, 난 이때껏 걸림돌 같은 거였단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이 편하구나. 잘 알아들어 줘서 고맙다. 자, 이제 그만 가 봐야겠다."

 

 

p.341

"음, 네 손으로 편하게 해줘라." 필이 명령했다. "제일 빠른 방법은 모가지를 비트는 거야. 우습지, 안 그래? 그렇게 배짱이 두둑하지만 않았어도 다치는 일은 없었을 거 아냐."

"세상의 이치를 보여 주는 것 같네요." 피터가 말했다.

그러니까 이 꼬맹이는 철학자 나부랭이였던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필은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내 생각엔 앞일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걸 보여 주는 것 같은데."

 

 

이런 대화를 나누는 부분은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피터의 아버지는 아예 등장하지도 않는다. 영화만 보면, "자, 이제 그만 가 봐야겠다." 이 대사가 얼마나 섬뜩한 말인지를 알 수 없다.

"내 생각엔 앞일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걸 보여 주는 것 같은데."라는 대사가 자기의 운명을 암시한다는 것도 알 수 없다. 독자에게 힌트를 주는 이런 말들을 읽는 맛이란....

 

 

오늘은 여기까지....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22-03-16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마 님 은퇴라시니 그동안 열심히 일한 만큼 이제 많이 쉬면서 또 좋은 시간 엮으시길 바랍니다. 잠깐인 거 맞는 것 같아요 ^^
페이퍼 보다 몇몇 겹치는 것들이 있어 반갑습니다. 특히 원주 뮤지엄산의. 저 붉은 조형물이 그런 것이었군요. 몰랐어요. 홉킨스 시집 찜해 갑니다.

2022-03-16 14: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3-16 15: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jeje 2022-03-16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mama님 덕분에 저는 퍼즐을 찾았습니다. 뮤지엄산의 저 작품에 그런 배경이 있었군요!
저도 오랜만에 사진을 찾아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퍼즐을 맞추는 일이 남았습니다 ㅎㅎ

nama 2022-03-16 17:55   좋아요 1 | URL
겨우 퍼즐을 맞추었더니 홉킨스의 <황조롱이>라는 시가 숙제로 남았습니다.ㅎ

라로 2022-03-16 2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 너무 좋아요!! ˝삶은 생각이 지속하는 동안만 지속한다.˝라는 보르헤스의 말을 저도 요즘 환자들을 보며 생각해요. 제가 간호사이면서도 너무 매정한 것 같지만, 기구에 의존해 생명을 부지하는 환자들을 보면 이렇게까지 하고서 살아야 하나? 그런 생각을 너무 자주 해서 요즘 괴로워요. 하지만, 그들 덕분에 저는 제 삶을 유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인생은 참 오묘합니다.

nama 2022-03-17 08:27   좋아요 0 | URL
참 어려운 문제예요.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상황이요. 누구나 피할 수 없는 문제인데...
라로님 글에서 늘 에너지를 얻고 있어요. 잘 이겨내실거예요~~
 
아파트먼트
테디 웨인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깜짝깜짝 놀라면서 책장을 넘긴 책. 이유는,

- 대학원 과정은 아니지만 학사 편입으로 문예창작학과에서 공부를 해봤다는 것.

- 주인공들이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를 좋아한다는 사실. 대학 때 원고지 80장을 작성해야 하는 졸업논문으로 이 소설을 선택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래서인지 이 소설은 내게 의미가 크다는 것.

- 취업 후, 잠시 적을 두었던 문창과에서 알게 된 동료를 내 아파트로 불러들여 몇 개월간 동거했다는 것.


그러니 마치 내 얘기인양 읽게 되었다. 와우.... 내가 쓸 뻔한 소설을 누가 먼저 써버렸군, 은 물론 아니고 그저 한구절한구절 눈에 불을 켜고 읽게 되었다고나 할까. 소설 속의 합평회에서 한 작품을 두고 이를 잡듯 집요하게 따지고 파고드는 것처럼. 실제로 문창과에서 이루어졌던 창작세미나 수업이 그랬었다. 특히 등단한 학생의 작품을 잘근잘근 씹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연하게 떠오른다. 등단은 선망의 대상이었으므로.


"그쪽 소설 보니까 어떤 책 생각나는지 알아요? <와인즈버그, 오하이오> 읽어봤어요?"

"네." 그가 말했다. "굉장히 좋아했는데."

"거기서 영향받은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내 생각이 맞나?"

"허." 그가 말했다. "그런 생각은 못 해봤는데요. 아마 무의식적으로 스며들었나 보네."

                                                                    -49쪽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 졸업논문이란 게 그저 리포트를 길게 쓴 정도에 불과했지만 당시는 오랜 시간을 두고 고민한 결과물이었다. 수업 시간에 배운 적이 없는 이 소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혼자만 알고 있다는 자만심을 충족시켜주는 소설이었다. 논문 제목에 '소외'라는 단어를 붙였었는데 나의 대학 생활이 꽤나 외롭고 쓸쓸해서였을 것이다.


벽장문이 삐걱거리며 조금 열렸고, 부드러운 털이 내 팔을 스치며 정전기가 이는 게 느껴졌다. "셔우드" 종이 뭉치를 내려놓으며 내가 말했다. 등뼈의 울퉁불퉁하게 솟은 부분을, 턱 밑을, 두 귀 사이를 쓰다듬어주자 녀석은 두 눈을 감고 턱을 만족스럽게 늘어뜨렸고......

                                                 - 300 `~ 301쪽(마지막 페이지)


고양이 이름 "셔우드".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를 쓴 작가 이름이 셔우드 앤더슨이다. 마지막 페이지까지 미소짓게 한다.


"그건 숨길 수가 없었지." 그가 말했다. "MFA가 뭐의 약자냐고 묻길래 순수예술 석사과정 Master of Kine Arts이라고 했더니, 그걸 '자위하는 호모 예술 Masturbating Fag Art'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더라."             -59쪽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학생들은 이렇게 바꿔 불렀으니. '중간대학교 요술대학 문제창작학과"라고.


성적으로든 플라토닉하게든, 처음으로 누군가의 집에서 자고 나면 두 사람 모두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을 더 편하게, 동시에 더 불편하게 느끼게 된다. 함께 친밀감의 울타리를 뛰어넘지만 뒤이어 적나라한 아침 빛 속에서 서로를 보게 되는 것이다.     -65쪽


취업 후 얻은 아파트가 썰렁해서 문창과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를 불러들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재밌지도 덜 외롭지도 않았지만 누군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이 친구는 잘 생기고 인기 절정의 문학청년을 애인으로 두었는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집으로 전화를 걸어댔다. 당시는 90년대 초반으로 휴대폰이 보급되기 전이었다. 매일 걸려오는 전화에 질려서 결국 이 친구를 집에서 내보내게 되었는데.....낭만적이고 전형적인 문학청년인 그와 나는 모르는 사이가 아니었다. 같은 수업을 들었으니까. 차라리 서로 몰랐다면 어땠을까.


잠시 동거했던 이 친구는 몇 년 후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고 책도 몇 권 세상에 내놓았다. 그 문학청년은 다른 여성을 만나서 아들 하나를 두었지만 그녀와도 헤어졌고 몇 년 후 홀로 살고 있는 집에서 돌연사로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가 쓴 책 한 권이 내 책장에 꽂혀있다. 이 무슨 소설같은 이야기인지...


빌리가 내 안에서 다른 누구도 움직이게 한 적 없는 무언가를, 깔끔하게 정의된 범주에는 들어맞지 않는 무언가, 내가 명료하게 표현할 엄두를 낼 수 없었던 무언가를 건드려 움직이게 했다는 것을. 비록 이런 각각의 경험은, 누구나의 외로움과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특정 범주에 넣기 불가능한 독특한 것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라고 - 타인의 경계가 그려내는 특별한 윤곽선은 우리 자신의 그것과 충돌하고, 남은 평생 동안 사라지지 않을 커다란 구멍을 남긴다 - 지금의 나는 생각하지만 말이다.           -287쪽


서로의 외로움을 정확히 알아본 사람은 서로에게 특별한 사람이 된다. '특정 범주에 넣기 불가능한 독특한' 경험은 '남은 평생 동안 사라지지 않을 커다란 구멍을 남긴다.' 우정이자 사랑, 그 이상일 수 있는 어떤 특별한 감정을 말하고자 한 소설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물로 받은 세 권 빼고, 세 곳의 도서관을 드나들면서 열심히 날랐던 책들이다. 물론 모두 완독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어차피 빌린 책이라 미련없이 가차없이 읽지 않은 책도 부지기수다. 이들 중 세 권은 소장하기 위해서 구입했다. 그 세 권 중 단연 한 권을 뽑으라면........맨 밑에 있어요~~~





































































































































































               

   









2021.12.09. 이후 빌린 책
























바로 이 책.

장대한 인도 종교사를 한 호흡으로 꿰뚫는 역저라는 생각이 든다. 시야가 확 트이고 눈이 밝아진 기분이 드는 책이다. 

















힌두교의 역사는 저렇게 깊고 높은 세계관으로 사람들을 어떻게 착취하고 지배하고 소외시켰는지를 보여 준다. 사실, 역사 속에서, 구체적인 물질 상황의 변화 속에서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규정하는 맥락은 종교에 따라 다르지 않다. 힌두교에서 그 기준이 상대적으로 해석 가능하고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기독교의 그것과 달리 보이고 더 자연적이거나 인간적인 것으로 보일 뿐, 결국은 항상 가진 자, 정의를 규정하는 자, 권력을 쥔 자를 위하는 방향이라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것이 곧 힌두교의 도덕과 법이 만들어 낸 역사의 해석이다.......모든 종교는 권력이고, 그 권력은 인민을 종복으로 다루는 것이다. 진리 추구와 공동체 질서를 둘러싼 힌두교의 역사는 이를 여실히 보여 준다. 진리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다. 진리 자체가 없다. 그런 것은 그 어떤 종교에도 없다. 당연히 힌두교에도 없다. 그런 게 있었다면 그것은 이미 종교가 아니다.....힌두교사를 익힌다는 것은 '스승들'이 추구한 지혜를 찾는 것이 아니다. 지혜라고 하는 외피가 둘러진 역사의 변화 속에서 서로 죽고 죽이고 뺏고 뺏기고 속고 속이는 그 저잣거리의 길을 되새겨 보는 것이다.

                                                           -406~407쪽


어디 힌두교 뿐이랴. 





올해의 교훈


책은 빌려 보는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21-12-07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와 16권이 겹쳐요. 그 중 읽은 것은 한 4권 되는 것 같고요. 빌려 읽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사서,,,,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일인 반성; 그런데 저 중에 좋으셨던 세 권 중 나머지 두 권도 궁금해요. 😅

nama 2021-12-07 17:07   좋아요 0 | URL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아플 때 먹는 카스테라(우리집 전통^^) 같고, 정희진의 <편협하게 읽고 치열하게 쓴다>는 각성제 같아서 구입했어요. 달거나 쓴 맛이지요. <시녀이야기>와 <증언들>도 좋은데 글쎄요... 두 번 읽을 것 같지는 않아요. 김도훈의 <우리 이제 낭만을 이야기합시다>는 패션에 관심이 많은 남자분의 글이 인상적이었어요. 자기 색깔이 분명해서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