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것은 싸우는 것이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19년 12월
평점 :
품절



통째로 베끼고 싶은 책. 


흙과 힘들게 싸우면서 손톱이 갈라지고

혈관이 드러난 내 손을 보니

집필에 몰두하는 삶이

얼마나 속세를 벗어난 일인지 통감한다.

언어가 부재한 육체노동 속에야말로

굳건한 진리가 감추어져 있음을 새삼 느끼고

나 자신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p.6


마음껏 한탄해도 좋다. 그러나 체념해서는 안된다.
세상은 어차피 이런 거라고 단정해 버리는 순간
이 나라를 사유하고 국민을 노예로 만들어
실컷 즙을 빨아 먹는 자들의 승리에
가담한 결과가 된다. 학대받는 피해자이면서
어수룩한 가해자가 되는 꼴이다. - P105

속해 있는 회사나 국가에 그렇게까지
감사할 필요는 전혀 없다. 국가는 세금을 빼앗고
기업은 노동력을 착취하기만 할 뿐이다.
고맙다는 인사를 받아야 할 쪽은 오히려 당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비굴하게 구는가. - P98

진정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정치인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이
높은 뜻을 가지고 그 지위에 올랐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을 지지한 이들이 선량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들에게 선동되어 한 표를 던진 결과
탐욕스러운 무리에게 큰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 P96

아무리 이상적인 국가라 할지라도 국가와 국민은
지배자와 노예의 관계로 성립한다. 그리고
국민의 99퍼센트 또는 그 이상이 피억압자로서
일생을 살다 간다. 부단히 노력하고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도 도무지 인생이 풀리지 않는 것을
재능의 결여나 불운 탓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 P91

다시 한번 말한다. 아니, 몇 번이고 말한다.
그것은 민중을 위한 국가가 아니라고.
특정 무리가 불로소득을 독점하기 위한 국가라고.
그들의 호사스러운 생활을 위해 우리가 존재하고
그들의 노예로 살다 일생을 마치는 것이라고.
국가란 헛된 것이라고. - P122

할 말이 있는데 침묵해서는 안 된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된다.
혼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들을 귀를 가진 사람이 거의 없다 하더라도
말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억압받는 국민이야말로 국가의 주인이라고. - P119

적어도 예술에 종사하는 자, 그중에서도
언어와 깊게 관련된 문학인은
개인의 자유를 가장 싫어하는 국가 권력이
선도한 행사 따위에 참가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예술가의 혼을 스스로 팔아넘기는
어리석고 부끄럽기 그지없는 행위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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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들을 쓴 이유리 작가를 좋아한다. 80년대에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었고, 최근에는 양정무의 <난처한> 미술이야기를 7권까지 읽으면서 나름 뿌듯했는데 이 뿌듯함이 완벽하지 않음을 깨우쳐준 게 위의 책들이었다. 그래서 이따금 이유리 작가의 책을 검색하곤 한다. 그의 통렬하고 짜릿한 깨달음이 그리울 때가 종종 있다.


















저자 임승수. 이 작가의 책은 처음 접한다. 궁금하긴 한데 잘 모르니 도서관 희망도서로 위의 책을 신청해서 읽게 되었다. 읽으면서 뒷북치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서야 내 눈에 띄다니.. 이 작가의 책은 그냥 구매해서 봐야겠구나 싶었다. 도서관 희망도서야 다른 누군가가 할 수도 있으니까. 작가가 계속 글을 쓸 수 있게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겠구나, 모처럼 착한 생각을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알았다. 이 분의 아내분이 위의 이유리 작가라는 사실. 


이 책의 좋은 점 세 가지. 

1. 어려운 내용을 쉽고 재밌게 썼다.

2. 언행일치의 글이다. 책상머리에서 나온 글이 아닌 일상의 체험에서 나온 글이다.

3. 잊고 있던 사회주의 감각을 깨우쳐준 점.


또 하나 알게 된 사실(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


북한에는 '생활총화'라는 독특한 비판 문화가 있는데 '말 그대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계급장 떼고 공적 및 사적 생활에 대해 자아 비판 및 상호 비판을 수행한다'고 한다. 일종의 '반성회'라고 한다. 그래서 어떤 탈북자들은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게 어렵다고 한다. 이를테면, '북한에서는 자기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에게도 잘못이 있으면 스스럼없이 직언하는 게 자연스러운 분위기인데 남한에 와서 북한처럼 하다가 회사에서 계속 잘'린다는 것.


이 책을 읽다보면 총체적인 반성을 하게 된다고나 할까. 나도 한때는 사회주의였다...는 뭐 그런 생각.


이유리/임승수, 이 분들의 글을 계속 읽을 생각에 행복해진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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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3-07-12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처한 미술이야기 일곱권을 완독하셨군요. 정말 뿌듯하시겠어요.
이유리.임승수라는 제목 보고 저는 배우 이름인가 했답니다 ㅋㅋ
임승수님의 책 장바구니 넣고 가요.

nama 2023-07-12 20:12   좋아요 0 | URL
사실은 7편은 몇 페이지 남겨뒀어요. 워낙 술술 읽히는 책이기도 하고요.
이유리님의 책도 좋아요.

1 2023-07-12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런데 왜 김정은 한테는 찍소리도 못하는 걸까요 ? 일단 사적 생활에 대해 계급장 떼고 비판하는 그런 사회는 ,,, 지옥이 딱 떠오르는데, 저자는 이걸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nama 2023-07-12 21:15   좋아요 0 | URL
글쎄요. 저자의 생각에 대해선 직접 읽어보셨으면 하고요.
저는 깊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면도 있구나...하는 정도로 받아들여요.

nama 2023-07-14 14:23   좋아요 0 | URL
그런데 이 책은 읽어보셨나요?
 

여행 전에는 눈을 부릅뜨고 살펴보아도 보이지 않던 책들이, 여행 후에 하나씩 눈에 들어오는 이 신비한 현상. 여행이 주는 선물이겠다. 꼭 고구마나 감자를 캐는 기분이 든다. 뿌리를 들추면 줄줄이 엮여 나온다. 인도네시아 여행은 언제 끝나려나,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책에서 뜻밖의 사실을 발견했다. 시인 박인환이 인도네시아와 인연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박인환 시인은 일제 치하를 거친 한국과 같은 처지에 놓인 인도네시아를 향한 강한 동질감을 노래하였다. 이 시를 읽으면 동시대 인도네시아인과 아픔을 같이하는 그의 시대정신에 놀랍고, 그가 한때 한 해운회사에 입사해 자카르타에 아주 잠깐 머물다 갔으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인도네시아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해박한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때부터 이미 인도네시아 사람과 한국 사람은 애달픈 식민사에 대해 같은 정서를 공유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p.189


인도네시아 인민에게 주는 시(1948)


                                         박인환


동양의 오케스트라

가믈란의 반주악이 들려온다

오 약소민족

우리와 같은 식민지의 인도네시아

삼백 년 동안 너의 자원은

구미 자본주의 국가에 빼앗기고

반면 비참한 희생을 받지 않으면

구라파의 반이나 되는 넓은 땅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가믈란은 미칠 듯이 울었다

네덜란드의 58배나 되는 면적에

네덜란드인은 조금도 갖지 않은 슬픔에

밀시密柹처럼 지니고

육천칠십삼만인 중 한 사람도 빛나는 남십자성은

쳐다보지 못하며 살아왔다

(중략)

네덜란드인은 옛날처럼 도로를 닦고

아세아의 창고에서 임자 없는 사이

보물을 본국으로 끌고만 갔다

(중략)

제국주의의 야만적 제재는

너희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욕

힘 있는 대로 영웅 되어 싸워라

자유와 자기보존을 위해서만이 아니고

야욕과 폭압과 비민주적인 식민정책을 지구에서

부숴내기 위해

반항하는 인도네시아 인민이여

최후의 한 사람까지 싸워라

(중략)



하기야 내가 언제 박인환 시인의 시를 꼼꼼하게 공부했던가. 찾아보니 박인환 시집에서 이 시를 발견할 수 있다.

















무엇인가를 제대로 안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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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수준이지만 이마저도 하지 않으면 시간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어제는 수다스러운 지인을 만났다. 그가 정의한 수다의 의미는, 무엇을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순간을 즐겁게 보내는 것, 굳이 기억할 필요도 없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서로 유쾌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도 귀에 쟁쟁한 그의 수다를 떠올리면 아직도 피로가 몰려온다. 그의 수다는 자신에게 흔적을 남기지 않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어떤 방식으로든 진한 흔적을 남길 것이다. 그렇다. 나는 수다를 되새기는 사람이다. 수다에 서투른 사람이다. 타인의 수다를 듣는 능력에 한계치가 얇은 사람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이런 성향은 바뀌지 않을 터이다. 나는 왜 수다에 약한가? 


각설하고.


심보선. 사회학자로서의 글보다 시인으로서의 글이 마음에 와닿는다.


















  시를 쓸 때, 나는 '타자'가 됨으로써, 내가 쓸 수 없는 것을 쓴다. 혹은 내가 쓸 수 없는 것을 씀으로써 타자가 된다. 김수영이 '딴사람'이라고 부른 타자 말이다. 이때 타자는 사회적으로 주변부에 위치한 약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이때 타자는 소수자라고도 불릴 수 있는데, 이 소수자는 상식의 세계에서, 우리가 소위 '위대함'이나 '정당성'이라는 관념과 감각으로 구축한 말과 행위의 질서에서 목소리와 이미지를 박탈당한 모든 존재를 일컫는다. 요컨대 시는 "침묵하고 있던 돌이 드디어 말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발견하고 발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쓰기의 '타자 되기'는 일종의 모험이며, 해방이다. 단언컨대, '타자 되기'는 우연하게, 손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그것은 주의력과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자신에게 할당되고 강요되는 정체성과 이력을 거슬러서, 기쁨과 슬픔 사이의 동요를 견디며, 쓰기와 살기를 수행해야 한다.                           - p.134



  나는 시라는 말 만들기 놀이를 통해 주어진 삶 말고 또다른 삶을 제작해왔다. 시 때문에 나는 두 개의 삶을 살게 됐다. 첫번째 삶은 정체가 뚜렷하지만 나를 구속하는 삶, 두번째 삶은 정체를 알 수 없지만 나를 자유롭게 하는 삶. 어쩌면 시 때문에 나는 첫번째 삶을 더 싫어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 p.169



---시는 "침묵하고 있던 돌이 드디어 말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발견하고 발명한다. 

---시 때문에 나는 첫번째 삶을 더 싫어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단 두 문장으로도 심장을 떨리게 하는 시인, 심보선.



  좌파이건 우파이건, 보수 아버지건 진보 자식이건, 전쟁에 관해서는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다. 그것은 모두 전쟁이라는 비극의 생존자라는 사실이다. 아버지가 가까스로 살아남았으니 자식도 가까스로 태어난 셈이다.        -p. 57



---아버지가 가까스로 살아남았으니 자식도 가까스로 태어난 셈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나의 부모가 만나서 짝이 될 확률이 전무하기에 나는 절대로 태어나지 못했을 터. 나는 이 사실에 늘 전율했다. 나 같은 사람에게 딱 들어맞는 기막힌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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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3-04-17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참 좋았어요.

nama 2023-04-17 20:18   좋아요 0 | URL
이 책에 대한 정보 없이 지은이만 보고 샀는데 역시 잘한 선택이었어요.
 
생활 속의 보왕삼매론
김현준 지음 / 효림 / 201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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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세상살이에 고난 없기를 바라지 말라./친구를 사귀되 내가 이롭기를 바라지 말라.........마음이 어두울 때 찾게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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