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쪽

 

아랍 격언에 인류는 세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

움직일 수 없는 사람과 움직일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움직이는 사람.

 

 

옮겨쓰다 보니 장난끼가 발동한다.

 

밥을 먹을 수 없는 사람과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밥 먹는 사람.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과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책 읽는 사람.

친절을 베풀 수 없는 사람과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친절을 베푸는 사람.

생각할 수 없는 사람과 생각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생각하는 사람.

말할 수 없는 사람과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말하는 사람.

글을 쓸 수 없는 사람과 글을 쓸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사람과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

걸을 수 없는 사람과 걸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걷는 사람.

.

.

 

 

'...할 수 있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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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6 23: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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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7 08: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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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쓸까 망설였다. 말을 아껴야겠다 싶어 간단히 여기에 적는다. 굳이 기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안 읽은 줄 알고 또 읽을까봐. 지난번에 그랬었다. 이 분의 다음 책,

 

 

 

 

 

 

 

 

 

 

 

 

 

 

이 책을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왔는데 읽다보니 언젠가 읽은 책이고 심지어는 구입한 적도 있는 책이었다. 아무리 이 분의 책을 좋아해도 그렇지 읽은 것도 모르고 또 집어들었으니...요즘은 이렇게 읽은 책을 다시 집어드는 경우가 점점 늘어난다. 김민식, 김점선의 책들.... 지난번엔 지인과 함께 박희경시인이 운영하는 시집전문서점에 갔었다. 지인이 선물이라며 책 한 권 골라보라고 하여 시집 한 권을 골랐는데 집에 와서 서가를 보니 떡하니 꽂혀 있었다. 이정록 시인의 책이었다.

 

'단어나 사람 이름이 생각나지 않고 입안에서만 빙빙 도는 현상'을 '설단현상(Tip - of - the - tongue Phenomeno)이라고 한다는데 (-225쪽), 작가님, 그렇다면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은 줄도 모르고 또 읽는 현상은 무엇이라고 하나요? 작가님의 책에는 재미있는 전문용어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지라 한번 물어봤어요.~~

 

요즘은 책에서 한 문장이라도 기억하고자 한다. 그 똘똘한 한 문장이나마 심장에 제대로 박히면 같은 책을 (모르고) 두 번 읽는 실수는 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고른 문장.

 

 

타인은 언제나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를 되뇌어야 배신당하지 않는다. 타인의 '다른 생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이들은 항상 자기 생각만을 강요한다. 그리고 나중에 꼭 그런다. "정말 믿었던 이가 등에 칼을 꽂았다"고. 그러나 '등에 칼을 꽂는다'는 표현도 함부로 쓰는 거 아니다.........                           -28쪽

 

여기에서 '타인'은 남편이나 아내, 부모, 자식, 절친.... 모두 해당된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라는 노랫가사도 있으니 나 아닌 사람은 모두 타인이라고 볼 수 밖에.

 

 

하여튼 김정운의 책을 읽다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어딘가 시원하면서도 틈틈이 접하는 전문용어 덕분에 조금 유식해지는 것도 같고. 간지러운 아재 개그마저 귀엽고.

 

두어 군데 포스트잇을 붙이며 읽었는데 이제야 내가 왜 처음에 리뷰를 쓰려고 덤볐는지를 발견했다. (이건 건망증?)

 

지금 내 삶이 지루하고 형편없이 느껴진다면, 지금의 내 관점을 기준으로 하는 인지 체계가 그 시효를 다했다는 뜻이다. 내 삶에 그 어떤 감탄도 없이, 그저 한탄만 나온다면 내 관점을 아주 긴급하게 상대화시킬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중략) 멀리 봐야 한다. 자주 올려다봐야 한다. '저녁노을 앞에서의 하염없음'과 같은 공간적 오리엔테이션의 변화는 긍정적인 심리적 변화를 동반한다. (중략) 구체적 맥락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는 인간의 추상적 사고와 창조적 문제 해결 능력은 '먼 곳', '높은 곳'을 조망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래서 인간은 복잡한 문제가 생기면 눈을 위로 치켜뜨며 생각하는 거다. -221~222쪽

 

구체적인 예. 나는 현재 고등학교 1학년. 공부를 잘 하고 싶지만 잘 안 된다. 마음만 앞서고 조바심만 생기고 성적도 시원찮다. 그럴 때는 내가 3학년이 되었다고 생각해본다. 1학년 때 그렇게 어려웠던 부분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그 3학년의 마음으로 현재의 1학년인 나를 들여다본다. 3학년이 된 심정으로 현재의 1학년인 나를 내려다보면 그 불안이나 초조함, 어리둥절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다니는 동생을 보는 것처럼 자신의 어리숙함이 눈에 들어오는 거다. 3학년이라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거다. 그렇게 자신을 상대화시키면 '긍정적인 심리적 변화'를 일으킨다. 공부에도 능률이 오른다. 내가 예전에 학생이었을 때 스스로를 다독이던 방법이 이와 비슷했다.

 

지금은? 히말라야쯤 가야 저 '높은 곳'이 된다. 어제 포스팅한 프랑스나 독일의 핏빛 같은 아침노을쯤 되어야 마음이 조금 흔들린다. 마음이 고이고 생각이 굳으면 늙는 건데.... 그래서 가끔씩은 이런 책을 읽어줘야 한다.

 

우주선을 타고 먼 우주에서 처음 지구를 바라본 우주 비행사들은 지구에 귀환한 후 인생관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관점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를 가리켜 미국의 작가 프랭크 화이트Frank White는 '조망 효과Overvies Effect'라고 했다.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찰스 임스Charles Eames와 레이 임스Ray Eames부부가 만든 <10의 제곱수Powers of Ten>라는 9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보면 우주 비행사와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220쪽

 

바로 '조망 효과'다. 내가 나를 내려다보는 것.

 

 

잘 기억해야지. 두 번 읽지 않기 위해서.

 

 

앗, 빠뜨릴 뻔 했다. 전혀 똘똘하지 않아서 기억에 남을 것 같은 문장도 있다.

 

아내는 2주일에 한 번 정도 내려와 '현미밥'을 끼니별로 냉장고에 넣어둔다. 당뇨 때문이다.  -225쪽

 

왜들 그러시나. 한국 남성들은 밥도 못해먹나. 우리 큰오빠도 올케가 여행갔을 때는 끼니별로 밥을 해놓고 간 걸 먹는다더니만...현미밥, 그거 전기밥솥에 그냥 하면 됩니다요.

 

 

 

 

***** <10의 제곱수Powers of Ten>는 유튜브로 볼 수 있다. 좋은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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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둘이서 여행을 떠난다. 둘이서는 많은 대화를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제삼자의 이야기를 하는데다 꽤 많은 시간을 쓴다. 그 부분이 제일 안 좋다. 혼자 가면 안 될 것 같아서겠지만 정말이지 혼자 가면 안 되는 것일까. 혼자라서 닥치는 현실의 이런저런 문제가 아닌 혼자서 직면하는 고독 앞에서의 자신 없음이 무서운 것이다. -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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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 이 분 칼럼을 신문에서 읽을 때마다 깜짝 놀라곤 한다. 살아있는 정신이야, 하고. 그래서 읽게 된 책이다.

 

고독에 대한 통찰을 읽어보는데 loneliness 와 solitude를 이렇게 구분했다.

 

loneliness는 비자발적이고, 공간적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속한 사회, 자신이 살아가야할 세상에서 속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온 존재를 가리키는 말이지요. solitude는 다릅니다. (중략) 모든 것을 불신하고 깨뜨리며 오직 자신을 신뢰하는 적극적이고 강인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186 

 

물론 이 분이 강조하는 건 solitude이다. 주장은 계속 이어진다.

 

저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의미에서의 고독이 우리 사회에도 훨씬 더 주목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었어요. 사회의 쏠림이나 대세, 흐름에서 벗어나서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과 입장과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자세, 이것이 제가 집중하는 '고독'의 의미입니다. 바로 그런 고독이야말로 우리 시대에 참으로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187

 

결국, 고독하다는 건 주체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개인성의 확보와 다르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 개인성은 사회나 국가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지요. 혼자서 사고하고, 혼자서 행동하고,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힘을 갖는 게 고독입니다. 그런데 사회와 국가는 그런 개인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고, 기본적으로 흡수하고 동화하려는 경향을 띠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저는 고독을 기본적으로 저항이라고 생각해요. 저항을 위해서 고독하는 것이지, 저항의 의미없이 그냥 고립된 삶을 산다는 것은 다소 무의미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195

 

 

읽다보면 '그래, 맞는 말씀이야.'하고 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는 지당한 말씀이라 그저 밑줄만 긋는다.

 

 

그런 체면 문화는 한국인이라면 다 알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 체면 차림에서 과시욕이 생겨난다고 봐요. 제가 보기엔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들 자기가 시시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지나친 자기 존대랄까요. 자기 스스로 자기를 높이고 내세우는 그런 문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217

 

 

이 책에서 딱 한 문장을 고른다면 바로 이 문장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들 자기가 시시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무슨 일을 하다가도, 무슨 생각을 하다가도 나는 이 '시시하다'라는 표현에 사로잡히곤 했다. 누군가에게 섭섭한 생각을 하다가도 이 말을 떠올렸고, 내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우게 될 때도 이 말을 떠올렸다. '내가 시시하구나.'하고. 딱히 내 자존심이나 자긍심 따위를 거론할 필요가 없을 때에도 여지없이 이 말이 떠오르곤 했다. 일거수일투족 마저 심히 시시해졌다고나 할까. 모처럼 겸손하고 고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loneliness로 보내는 명절 연휴이다보니 그 시시함의 깊이는 가늠할 수조차 없다. 시시함의 바닥을 치고 진정한 solitude 를 향해야겠다. 더 시시해지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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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먹는엔지니어 2020-01-28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참 잘 쓰시는것 같아요. 제목이 눈에 들어와 글을 읽었는데 다시책으로 님의 필력에 반하고 갑니다. ^^

nama 2020-01-28 11:39   좋아요 0 | URL
혹 박홍규 교수님의 글을 제 글로 오독하신 건 아니지요? 필력이라니....언감생심입니다.^^
 

 

오늘은 술을 부르는 옛 시가 유독 눈에 띈다.

 

 

오마르 카이얌의 <루바이야트>가 늘 내 몸 속에 흐르고 있었다, 는 과장이고 늘 궁금했었다.  제대로 된 책에 대한 열망이 있었는데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새 책을 읽기 전에 기존에 번역된 책을 보면, 피츠제럴드의 영역본을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그럭저럭 갈증을 달랠 수 있었다. 몇 편 읽어보면,

 

 

 

 

 

 

 

 

 

 

 

 

 

 

 

 

30

어디서 왔는가, 어디로 가나?

부질없는 것일랑 묻지 말게나

한 잔, 또 한 잔, 금단의 술

덧없는 인생을 잊게 해주리

 

54

이런 노력, 저런 논쟁, 시간을 낭비 말라

부질없는 추구야 허망하기 짝이 없다

쓴맛 나는 열매 먹고 슬픔 참느니

잘 익은 포도주로 즐거워하라

 

59

포도주의 절대 논리 ----- 그 앞에서

그 많은 세상 교파 무안당하네

포도주는 최고의 연금술사, 잠깐 사이

납덩이 인생을 황금으로 바꾸누나 

 

 

우선'로버이(루바이)'의 뜻. 4행시라고 불리는 로버이는 페르시아 고전문학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시형으로 1행, 2행, 4행은 각운이 같고, 3행의 각운은 비교적 자유로운 시 형식으로 로버이여트는 로버이의 복수형이라고 한다.

 

 

다음은 새로 나온 책.

 

 

 

 

 

 

 

 

 

 

 

 

 

 

 

 

 

오마르 카이얌 → 오마르 하이염

루바이야트 → 로버이여트

 

명칭이 이렇게 바뀐 건 페르시아 원전을 번역하면서 원음에 가깝게 쓴 것이라고 하는데, 입에 붙으려면 시간이 걸릴 듯하다. 워낙 '오마르 카이얌, 루바이야트'가 입에 배었다.

 

 

42

내게 말들 하지, 술 취한 자는 지옥 간다고

허나 그릇된 말이니 마음 둘 필요 없지

사랑하는 자, 술 마시는 자가 지옥 간다면

내일은 빈 손바닥 같은 천국 보게 될 것이리라

 

64

우리가 없더라도 세상은 존재할 것이며

우리는 이름도 흔적도 남지 않을 것이네

이전에 우리 없었어도 아무 이상 없었듯

이후에 우리 없더라도 그러할 것이니라

 

93

나 마음에서 학문을 멀리한 적 결코 없었네

명명백백 밝혀지지 않은 비밀 많지 않았네

나 일흔두 해 동안 밤낮으로 생각해보니

아무것도 명확하지 않았음이 명확해졌네

 

116

하이염이여, 술에 취했다면 즐기거라

달처럼 고운 이와 함께 있다면 즐기거라

세상사 그 끝은 무無인 것이니라

너 지금 존재하지만 없는 것과 같으니, 즐기거라

 

 

대강 페이지를 넘기며 몇 편 읽어보는데도 가슴이 설레인다. 허무주의 같기도 하고, 권주가 같기도 한 시들이 눈에 쏙쏙 박힌다. 세상 다 산 것 같은 노인의 주사 같은 시에서는 시큼한 술 냄새도 나는 듯하다. 그러나 알고보면 이 시를 쓴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1048년 생.20대 중반에 이스파한에서 천문학과 수학을 연구. 이후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달력의 모체가 되는 잘릴리력을 완성하고 유클리드 기하학 연구와 2차 방정식의 기하학적, 대수학적 해법, 3차 방정식의 기하학적 해법 등을 발표하여 당대 최고의 학자로서 명성을 쌓음....1131년에 사망.

 

이런 양반이 권주가를 즐겨 읊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술 얘기가 나왔으니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도 한번 읽고가야겠다. 

 

 

 

 

한 잔 먹새 그려 또 한 잔 먹새 그려. 꽃을 꺾어 술잔 수를 세면서 한없이 먹세 그려.

이 몸이 죽은 후에는 지게 위에 거적을 덮어 꽁꽁 졸라 묶여 (무덤으로) 실려 가거나, 곱게 꾸민 상여를 타고 수많은 사람들이 울며 따라가거나, 억새풀, 속새풀, 떡갈나무, 버드나무가 우거진 숲에 한 번 가기만 하면 누런 해와 흰 달이 뜨고, 가랑비와 함박눈이 내리며, 솔 솔 바람이 불 때 그 누가 한 잔 먹자고 하겠는가?

하물며 무덤 위에 원숭이가 놀러 와 휘파람을 불 때 뉘우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번역 출처:http://blog.daum.net/hogeol44/5045 )

 

 

대학 때 부전공으로 들었던 국문과의 <가사문학> 시간에 배웠는데 다른 건 다 잊고 유독 이 시만 머리에 남았다. 나도 한때는 술에 쩔기도 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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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0 18: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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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1 07: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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