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정원
조병준 글.사진 / 샨티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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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올 무렵에는 마음이 뒤숭숭해진다. 뭔가 불안하고 우울하고 충동적이고 변덕스러워진다. 이미 겨울은 끝났으니 차라리 여름이 빨리 와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이럴 때 나는 조병준의 책을 읽으면 어수선한 봄 기운을 얼마쯤 다스릴 수 있다.

 

 

어느 해 봄, 나는 이 책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을 읽고 무척 행복했는데 그 행복했던 기운 때문에 봄이 되면 조병준을 떠올리게 되는 것 같다.

 

모처럼 시립도서관에 갔다가 빌리고 싶은 책은 찾아보지도 않고 조병준의 <기쁨의 정원>을 들고왔다.

 

그런데 이 책. 흐흠. 조병준도 이젠 늙어가는구나, 싶다. 문장이 깔끔하지 않고 너스레가 많다. 그가 말하는 '기쁨'은 이제 원숙하고 한 번 걸러진 농익은 기쁨인 것아 웬지 안쓰럽고 짠하다. 젊음은 짧구나. 책에도 나이가 있구나. 너무나 공감이 가는 글이라서 내 속내가 들킨 기분마저 든다.약간 주접스러운(?) 너스레마저 마치 내 것 같은...

 

  최소 1년이라고 호언장담했던 여행은 11개월 만에 끝났다. 엄마 제사 지내고 얼마 후에 날아온 동생의 문자 메시지가 그렇게 만들었다. 큰누나 수술했어. 전화라도 한번 해줘. 바로 여동생에게 전화를 넣었다. 큰 수술 아니라고 했다. 수술 잘 끝나고 회복실에서 쉬고 있다고 했다. 마음 쓸어내리고, 그래, 잘 지내라, 오빠 좀 더 다니다 돌아갈게 말하는 순가, 갑자기 여동생이 끼억끼억 울기 시작했다. 말도 없이 큰소리로 울기만 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그냥 전화기 붙들고 여동생의 통곡에 가까운 울음을 듣기만 하는 수밖에.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었다고 해도 수술은 수술인데, 아무리 남편과 자기자식들이 있다고 해도 그 시간에 어떻게 엄마 아버지 생각이 안 났을까? 아무리 나이 먹어도 우리 모두 끝내 영혼 안에 어린아이가 남아 있는 법인에. 엄마 아버지가 안 계시면 오빠라도 있었으면 그 아프고 힘든 시간, 그래도 조금이나마 덜 외로웠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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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1988년, 떨리는 마음으로 소설가 김동리의 수업을 들었다. 소설작법이라는 세미나 수업이었다. 지극히 수동적인 수업만 듣고 자란터라 세미나라는 수업 자체도 낯설었고 더더군더나 소설작법이라는 강의도 난생 처음이었다. 게다가 우리를 가르칠 교수는 우리나라의 대작가 김동리선생이었다. 여러모로 가슴 떨리는 수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당시 이미 칠순을 넘긴 김동리선생을 바라보는 우리의 설레임은 이내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선생은 고령으로 인해 귀가 어두워 학생들과 소통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큰소리로 외치다시피 해야 겨우 소통이 되니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선생의 말씀도 요령부득이어서 요점이 잘 파악되지 않았다.

 

선생은 우리에게 실습삼아 과제를 내주었다. 아무거나 소재를 정해 한 문장으로 묘사해보라고 했다. 솔직히 나는 지금도 이게 뭔지 모른다. (이러니 글을 못쓰지...) 뭐가 뭔지 모르는 막연한 심정으로 한 문장을 써서 제출했더니 선생 왈, "뭔지 모르겠다." 하신다.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선생의 지도를 받은 내력이라면 내력이다. 학생중에는 이미 등단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쓴 한 문장을 보신 선생은 "참 잘 썼다."라고 하시는데 역시 나는 감도 못잡았다. 뭐가 잘 쓴 글인지 못 쓴 글인지를.

 

기억이 정확한 지는 약간 자신이 없지만, 이 수업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김동리선생의 수업을 학생들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선생의 발언이 문제가 되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시대착오'적인 말씀을 하신 거다. 때는 1988년, 이미 민주화의 열기가 고조되어 글을 써도 5.18과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글을 쓰지 않으면 매섭게 외면 당하는 시절이었다. 대학생 모두가 운동권 학생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축제 때도 검은 복장으로 관을 들고 행진에 참여했다. 특히 글을 쓴다는 문창과 친구들은 매우 철저한 의식화를 요구 당했다. 그런 상황에서 반민주적고 반시대적인 발언을 하는 교수들은 학생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말씀을 잘 못한 죄로 두 분의 교수가 학생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 두 분중의 한 분이 바로 김동리선생이었다. 이후로 이 두 분을 뵐 수 없었고, 나도 한 학기 수강으로 대학에서의 글쓰기 수강을 끝내고 말았다. 글은 누구에게 배워서 습득하는 게 아니고 혼자서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라는 교훈을 되새기면서. 전혀 시도해보지 않은 것보다 시도해보고 후회하는 쪽이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고 자위하면서.

 

 

요즘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인물, 김평우가 김동리선생 아들이라고 한다. 1945년생이니 70세가 넘었다. 아버지인 김동리선생은 나이 70대에 시대착오적인 발언으로 강단에서 물러났다. 나이 들었다고 함부로 말하면 안되십니다. 귀가 어둡다고 자기 할 만한 하면 안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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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3-12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러니까 김동리 선생이 부친, 손소희 소설가가 모친이군요.
김동리의 등신불을 읽고 그야말로 소름끼칠 만큼 충격과 감동을 받기도 했었는데 말입니다.
나이 들어도, 귀가 어두워도, 정신만은 깨어있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책 많이 읽는다고 되는 것도 아닌 것 같고, 공부를 많이 한다고 되는것도 아닌 것 같네요 휴...

nama 2017-03-12 21:19   좋아요 0 | URL
모친이 손소희 소설가인지는 모르겠어요. 김동리 선생은 세 번 결혼했으니까요. 물론 세 번째인 서영은 소설가는 아니겠지요. 88년 당시엔 서영은과의 관계가 입에 오르내렸어요.

나이들수록 마음 공부를 해야 하는데 쉽지 않지요. 나이 먹는 게 두려워져요.
 

 

 

 

부끄러움도 염치도 없는 그녀지만 그래도 양심상 스스로 물러나주기를 고대하고 고대했다.

기대와 기다림에 진저리나서 내가 대신 나가주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하마터면 내가 직장을 그만둘 뻔했다, 화가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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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03-10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러기를 기대했었지요. 처음이자 마지막 기대였는데, 역시나 더군요.

이제 판결은 내렸고, 당연한 결과이지만 너무나 다행입니다.

nama 2017-03-10 13:19   좋아요 0 | URL
판결과정을 지켜보는 내내 가슴을 졸였답니다.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어요.
일말의 인간다운 모습을 남겼더라면...서로 공감이 되는 인간다움이요.
 

 

 

인상쓰지 말자. 주름만 생긴다.

 

명랑한 표정 짓자. 웃다보면 웃을 일이 생길 터.

 

작은 그림이라도 시작하자. 미대 갈 뻔 했다고 뻥만 치지 말고.

 

책을 가려서 읽자. 책이라고 다 책이 아니다.

 

홧김에 하는, 책 지르는 짓을 삼가자. 이젠 책에 대한 안목이 생길 때가 되지 않았나.

 

과잉진료에 흔들리지 말자. 정직한 의사를 존경하자.

 

통증을 완화하는 주사에 엄격해지자. 주사파에 끼어들 필요가 없다.

 

온당하다면 휴직을 적극적으로 밀고나가자. 노세노세 젊어서 노세.

 

베풀자. 정 안 되면 마음만으로라도 넉넉하게. 말도 살짝 예쁘게.

 

반찬은 되도록 사 먹지 말자. 사 먹는 반찬은 처음엔 맛있지만 끝까지 못 먹고 버리고야 만다.

 

출근 시간을 늦추자. 한 시간 일찍 왔다고 누가 상주는 것도 아니다.

 

신문 좀 제대로 읽자. 토요일 오전에 몰아서 읽는 신문, 차라리 주간지를 보던가.

 

딸과 남편에게 밥을 시키자. 생존을 위한 밥짓기가 필요할 터.

 

아이들에게 엄격해지자. 엄격해야 교사생활이 편하다.

 

동네가게에서 물건을 사자. 서로에게 단골이 되어야 살 맛이 난다.

 

눈을 똑바로 뜨고 마음을 제대로 쓰자. 내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녹색평론 정기구독자가 되자.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애쓰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자.

 

친구들에게 깜짝 선물을 하자. 친구 덕에 사람답게 살고 있는 거다.

 

알라딘 이웃 서재의 <좋아요>에 웬만하면 숫자를 보태자. 그분들도 이웃이다.

 

앞 집 부자의 흡연에 발끈하지 말자. 흡연도 권리다. 세금까지 무겁게 내고 있다.

 

화는 짧게, 반성은 깊게, 친절은 성심으로, 탄수화물은 적게, 물은 자주 마시자.

 

 

 

 

2016년아 빨리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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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12-31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ma님, 새해인사 드리러 왔어요.
2016년 연말도 이제 세 시간 정도 남고, 곧 정유년이 됩니다.
올해도 좋은 시간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해요.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따뜻한 연말, 희망 가득한 새해를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맞으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nama 2016-12-31 22:15   좋아요 1 | URL
늘 부지런히 이웃을 방문하고 상냥한 말씀 남겨주시는 서니데이님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덜 외로웠습니다.
저도,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나와같다면 2016-12-31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같은 분 또 있군요 ㅋ
저도 신문을 못 읽으면 차곡차곡 챙겨놔요.. 그리고 토요일 오전 햇살을 누리며 몰아서 봐요.. 그것도 월요일부터 순서대로~
새해 소망하는 일들을 행복한 과정안에서 이뤄가시기를..

nama 2017-01-01 09:47   좋아요 0 | URL
하, 저도 토요일 오전 햇살을 누리며 신문을 보는데요. 커피도 천천히 마시면서요. 근데 저는 신문을 펼칠 때 맨 뒷장부터 시작해요. 칼럼 먼저 읽고 정치면은 맨 나중에 봐요. 님은 어떠신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lanca 2017-01-01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2017년 계획 적어봤는데 nama님 목록을 보니 저는 너무 추상적이라 현실성이 없었네요. 다시 고쳐봐야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nama 2017-01-01 09:50   좋아요 0 | URL
새해 목표를 처음 적어봤어요. 적다보니 평소의 생활이 드러나고 작은 다짐 같은 것이 생기네요. 지키지 못할 것도 눈에 띄는데 노력해야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7-01-01 2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01 23: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신이 살고 싶은대로 사는 사람을 보면 부럽고 초라해지는 느낌, 이렇게 인생이 끝나겠지 하는 쓸쓸함. 잠시나마 제 멋대로(?) 인생을 사는 사람을 보는 것으로 그 쓸쓸함을 달래본다.

 

 

 

 

 

 

 

 

 

 

 

 

 

 

 

이 책은 완독할 마음이 없다. 영혼이 자유로운 저자의 생각 몇 줄 읽는 것으로 만족한다. 저자가 직접 그려넣은 삽화를 들여다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런 사람을 친구로 두면 참 즐겁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당돌한 인생철학이 하나 있었다.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말자. 왜 먼 미래 때문에 소중한 현재를 낭비하나? 그냥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살피고, 주변 시선일랑 싹 무시하고 하는 일을 즐기자. 학원에서 몇 년 앞을 예습하던 징글징글한 동년배들에 대한 반감의 표시였을까? 뭐가 됐든 나는 동물이 좋고, 좋은 게 당연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었다. 적성 검사의 장래 희망을 묻는 칸에는 늘 동물학자라, 서명하듯이 적어 내곤 했었다. 그리고는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았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는 뭘 들고 다니는 것을 싫어했다. (중략) 지금까지도 나는 가방 없이 다니며, 가방을 둘러싼 온갖 수요와 공급의 난리통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 사람이다. 세상을 경험하는 데 거치적거리는 사진기도 나에겐 도저히 소지하고 다니기 어려운 물건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사진을 찍는 순간 그 포착이 삶을 풍성하게 해 주기는커녕 그로 인해 오히려 세상과의 만남이 변질되고 경험치가 감쇠된다.(중략) 동영상이나 기타 디지털 기기는 거의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나와 무관하다. 이토록 막무가내인 나이지만 글과 그림이라는 고전적인 기록 매체에 대해서는 무한히 호의적이다.

 

진짜 숲, 진짜 야생동물을 삶 속에 들여놓는 경험은 비가역적인 효과를 발휘한다. 절대로 그 경험을 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이다. 원시림의 실재성과 근원성에 대한 감을 획득한 이상 도시의 편의보다는 결여가 먼저 눈에 띈다. 그래서 사는 게 어려워지기도 한다. 대신에 자연을 감상하고 음미하는 새로운 시점을 얻게 된다. 가령 야생 동물을 한 편의 시로 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음식 남기는 것을 보지 못하는 성격이다. 아니 성격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생활 철학이다. 먹을 수 있고 소화할 수도 있는 유기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뼈저리게 경험한 탓이다. 음식이 넘쳐 나는 도시에 사는 이에겐 먹을거리가 잉여 자원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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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31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12-31 2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