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찡그리거나 궁금해하거나 단정짓는다.

내 염색하지 않은 하얀 머리카락을 두고.

 

팔순이신 우리 이모 같은 분들은 찡그리며 나무란다.

젊은 것이 멋도 낼지 모른다고.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흰머리는 염색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빨강색으로 물들여보면 어떻겠느냐고.

 

산책 중에 만나는 이름 모를 이웃들은

아무도 나를 선생으로 생각지 않는다, 고맙게도.

학교에 근무하다고 하면 으레 급식실이나 청소아줌마로 단정짓는다.

매일 점심을 맛있게 만들어주시는 급식실 아주머니와

늘 화장실을 깨끗하게 하며 검정고시를 준비하시는 청소아주머니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다.

 

한 신입생이 나를 사이에 두고

제 친구에게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해준다.

 

"우리 언니가 그러는데

샘이 머리염색하지 않는 이유는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래."

 

염색의 폐해를 논하며 잠시 환경을 보호하는 척했는데

아이들은 이런 말을 참 잘도 기억한다.

 

이제는 싫건 좋건 환경보호론자로 남는 수밖에.

 

염색을 할까, 말까, 하는 쓰잘데 없는 고민보다

아이들에게 궁금증을 품게 하는 게 낫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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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영화를 볼 때마다 거의 매번 혼자였다. 바쁜 가족들은 시간이 없고, 좀 한가한 친구들은 인도영화에 흥미가 없다. 인도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과 인도영화를 함께 보는 일도 재미없긴 마찬가지. 그러니 혼자 볼 수 밖에.

 

인도 영화를 상영한다는 말에 내용불구, 거리불구, 시간불구하고 함께 보자는 지인이 있어 이 영화만큼은 외롭지 않게 보았는데...약속 시간을 지키기 위해 강남에서 택시를 타고 인천까지 오는 성의가 감격 그 자체였다. 몇년 전 함께 남인도를 여행했었다.

 

이 영화는, 봄베이+할리우드=볼(발)리우드의 전형적인 영화인지라 역시 춤이 있고 노래가 있다. 볼리우드 영화에서 춤과 노래는 사랑의 기쁨이나 슬픔을 주로 표현한다. 기쁨이 넘쳐 흘러 노래가 되고 노래를 부르다보니 춤을 추게 되는 것, 너무나 자연스럽다. 춤은 연인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다보니 적당히 섹시하게 되고, 섹시한 춤을 보다보니 배우에게서 눈을 뗄 수 없게 되고, 그러다보니 영화를 보는 관객은 그 노래와 춤에 자연스럽게 젖어들게 된다.

 

이렇게 잠시 행복한 감정에 빠져 세상 시름을 잊고 있는데 진동으로 해놓은 휴대폰이 계속 울려댄다. 요양원에 계신 엄마가 거셨다. 마음이 약간 불편했지만 좀 울리다가 그치겠지 하고 무시하고 있는데 방금 숨 죽인 진동이 다시 시작된다. 또 엄마였다. 미안하지만 엄마, 나중에 영화 끝나면 전화드릴게, 속으로 뇌이고는 다시 무시. 그런데 또 울린다. 엄마의 집요함에 결국 굴복. 그 넓은 극장 안에 관객이라고는 달랑 다섯 밖에 없으니 전화 받으러 밖에 나가도 남에게 민폐끼칠 일이 없어 좋긴 하다.

 

인도에서 이 영화를 보았더라면 훨씬 더 실감나게 감상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영화와 혼연일체가 된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이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하는데 달랑 다섯 밖에 안 되는 관객으로는 흥이 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관객이 많다고 해서 분위기가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영화를 보며 마치 주인공이 된 양 함께 슬퍼하고 함께 분노하고 함께 흥분하는 모습은 인도인이 아니면 흉내내기도 힘들다. 처음에는 그런 모습의 인도인들이 단순하고 우습게 보이고 덜 세련되게 보였다.

 

그러나 이제는 인도영화 속의 감각적이고도 단순한 표현들이 더욱 진솔하고 솔직하게 여겨져 마음에 와 닿는다. 그것이 인도 영화의 최대의 매력으로 보인다. 제대로 된 신파에 무거운 생각들이 저절로 녹아내리는 기현상을 인도영화에서 체험한다.

 

2013년 2월 17일 덧붙임

학원에서 공부해야 하는  딸아이를 꼬이고 남편을 설득하여  옴샨티옴을 다시 보았다. 난생 처음 같은 영화를 극장에서 두 번 보았으니 기록에 남길 만한 일이다. 두 번씩이나 보는 이유를 생각해본다.

 

1. 우선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행복해진다. 다시 행복해지고 싶었다.

2. 이 재밌는 영화를 혼자 본 게 미안하고 이 행복감을 가족과 함께 나누고 싶었다.

3. 지난 번에 영화를 봤을 때 관객은 다섯 명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인도영화가 앞으로 많이 상영되기 위해서는 관객의 호응도가 높아야 하는데, 조금이나마 일조하고 싶었다. 이번엔 우리 가족 포함 14명 이었다.

4. 지난 번에는 도중에 전화 통화를 하느라고 놓친 부분이 있었으니 그걸 분명하게 다시 봐야한다.

5. 인터넷동영상에서 본 샤룩칸의 <고통의 디스코>부분이 제대로 나오는지 확인해야 한다. 눈을 부릅뜨고 지켜 보았으나 이 부분은 잘려져 나갔다. 아쉽다. 왜 지네들 마음대로 잘라버리나... 

 

인도영화의 특징이라면 권선징악,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무언가와 닮지 않았나? 바로 우리나라의 고전소설이다. 고등학교 때 담임샘이었던 국어선생님의 설명이 지금도 떠오른다.

 

권선징악과 해피엔딩. 우리네 삶도 이렇게 단순하게 흐르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죄 지은 놈은 벌 받고 착한 사람은 행복하게 사는 것, 이건 인류의 오래된 꿈, 이라기 보다는 그냥 살아가는 상식이었을텐데 이게 제대로 실현된 적이 없었기에 예나 지금이나 이런 소박한 주제에 끌리게 되는 게 아닐까? 

 

예복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우리의 한복과는 달리 인도의 전통여성복인 사리는 지금도 평상복, 일상복으로 그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것처럼, 아마도 이 고전적인 주제인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이 인도영화의 주제로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도 같은 이치가 아닐지 모르겠다.

 

고전소설의 현대 버전인 인도영화. 착한 사람이 결국은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믿음이 실현되고, 화려한 춤과 노래가 흐르고. 평생 한번 만나보기 힘든 미녀와 잘생긴 배우들이 나를 즐겁게 하는 곳. 천국이 있다면 이런 게 천국이 아닐까. 그래서 가난에 찌든 인도 사람들은 오늘도 영화를 보며 삶의 시름을 잠시나마 달래고 있을 터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ymuNkKuToao&feature=share&list=SPE8F7D06525FE369B

 

width="560" height="315" src="//www.youtube.com/embed/ymuNkKuToao?list=PLE8F7D06525FE369B" frameborder="0" allowfullscr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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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 넘은 노모가 요양원에 계신다. 어제는 보름만에 엄마를 뵈러 갔다.

 

날이 날이니 만큼 투표 얘기가 나왔는데, 엄마가 투표를 하셨다는 거다. 엉? 어떻게?

 

부재자 신고를 한 것도 아니었는데 엄마가 요양원에 계신 걸 어떻게 알았는지 주민등록이 되어있는 큰오빠한테 필요한 서류 등을 요구하더란다.

 

이 빈틈없는 행정이라니.....나라가 노인들을 이렇게 보살피고 있었다니...

 

우리 형제들은 모두 초록은 동색이었다는 것을 들으신 엄마 왈,

 

 "2번은 이름이 뭐냐?"

 

우리 엄마는 당신만 홍일점이라는 사실을 아시고 매우 서운해 하셨다.

 

우리 엄마도 투표하실 거라는 생각을 왜 진작 못했는지...

 

우리 엄마는 당신만 홍일점이라는 사실 보다도 아무도 2번 이름을 말해주지 않은 사실에 더 서운해하셨을 지도 모른다.

 

혹 옆 침대에 계신, 나라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할머니들은 알고 계셨을까?

 

엄마, 무시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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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유신공주는 양공주 문제엔 관심이 없었다'라는 제목의 글로 한겨레신문에 실린 한홍구의 글이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63197.html

 

그중의 몇 구절

 

 

기지촌 문제는 그 피해자가 수십만이고, 수혜자도 특정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데다 너무나 뚜렷하게 현재진행형이다. 기지촌 정화운동을 통해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사실상의 공창제를 운영하면서 힘없는 여성들의 몸뚱이를 담보로 국가안보와 외화벌이를 동시에 해결하고자 했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이 '불편한 진실'을 내 친구들만이라도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우리는 바로 그 기지촌을 고향으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TV의 <나가수>에 출연한 모가수도 고향이 나와 같은 동네여서 그 가수가 나온 고등학교를 검색해보았다. 역시 내 짐작이 맞았다. 물론 나는 그 고등학교를 나오지는 않았지만, 어쨌건 그 가수에게서 내 고향 냄새가 났다.

 

 

 

이 시인 역시 내 고향 출신이다.

 

지난 봄, 작년에 함께 근무했던 캐나다원어민이 한국에 여행왔다며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잠깐 들렀었다. 뭔가 주고 싶은데 줄 게 마땅치않아서 마침 책꽂이에 있던 이 시집을 주었다. 이 캐나다선생은 매우 호기심이 강하고 열정적인데 한글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주면서 좀 망설이긴 했지만 똑똑한 만큼 똑부러지게 읽고 있으리라.

 

 

 

 

 

 

안동이나 전주 같은 그윽한 동네를 고향으로 둔 친구들을 나는 아직도 부러워하지만, 내 고향이 기지촌 근처라는 사실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내게서도 <나가수>의 그 모가수 같은 분위기가 감지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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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달력은 눈치보며 얻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눈치 대신 작품성있는 달력을 구입하고는 했는데 올해는 좀 더 뜻있는 달력을 구입하게 되었다. 널리널리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이 달력을 구입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물론 나는 이 단체와는 실오라기 만큼의 관련도 없다. 며칠 전 한겨레 신문의 조그만 구석에 달랑 실렸던 웹주소 때문이었다. 원래 구석을 좋아하다보니 구석은 구석을 알아보는 건지...

 

http://www.choisoh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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