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가다듬어 깔끔하게 엮어간다거나, 훗날 여행할 사람을 위한 배려같은 거, 사진 따위 올리는 거, 안 하기로 한다. 그냥 되는대로 쓰고자 한다, 우선은.(프란시스 자비에르에 관한 책을 읽기전에는 쓰지 않으려고 했다. 일단은 주문을 넣었으니...)

 

한 시절을 주름 잡았던 옛 도시인 말레이시아의 말라카에서 3박 4일을 보냈다. 말라카의 분위기는 중국 운남성의 리장과 인도의 유명 관광지를 반씩 섞어놓은 듯하다. 여기서 잠시 또 혼란스러워진다. 쿠알라룸푸르의 차이나타운이 홍콩과 인도를 합쳐놓은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이런 생각이 여기에 끼어든거다. 하여튼 말레이시아는 이것과 저것이 묘하게 섞여있다보니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여기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말라카에서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더위에 지칠 때쯤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짧은 기간에 영화 두 편을 보기는 아마 난생 처음이지 싶다. 여행이니까 가능한 얘기지만.

 

 

 

 

영어로는 The Great Magician 이다. 위 포스터의 인물 중 가운데 있는 배우가 눈에 많이 익었는데 누군지는 모르겠다. (이런, 양조위도 몰라보다니...2014.7.21) <화양연화>에 나왔던 배우 비슷하기도 한데(약간은 안성기 분위기나 난다), 홍콩 영화를 그닥 즐기지 않는 편이라 이쪽으로는 좀 무지하다.

 

초반무렵, 눈을 지그시 감고 짧고도 강렬한 단잠으로 여행의 피로를 풀고 있는데 어느 순간 옆에 앉아있는 딸내미가 나의 달콤한 단잠을 깨운다. 좀 창피했나?

 

아름다운 장면이 흐르고 있었다.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된 옛 연인 앞에서 펼쳐보이는 환상적인 마술 장면이었다. 한 폭의 여인 그림이 순간순간 바뀌면서 이야기를 엮어나간다. 그저 마술적이라고 밖에는, 동양적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방법이 내겐 없으니...안타깝다. 그 장면을 보여줄 수 없어서.

 

만화같은 영화지만 나름 재미있고 유쾌했다. 이런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상영되면 좋으련만 돈에 눈 먼 사람들이 거기까지 생각하리오.

 

 

 

 

 

영어 제목은 I Love Hong Kong. 이다. 포스터 색깔하며 무슨 캬바레 전단지 같은 이 영화를 뭐 알고 봤으리오. 그런데 좌석이 없어 앞에서 두번째 자리에서 봤을 정도로 현지인들에게는 인기가 있었다. 내용은 전형적인 가족영화라는 것. 역시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에게는 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소재이리라.

 

자막이 세 가지로 나온다. 말레이어, 중국어, 영어. 그런데 영어자막이 너무나 빨리 지나가버린다. 왼쪽에서 읽기 시작하면 반도 못가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버린다. 이 사람들 영어 실력이 이 정도로 상당한 건 물론 아니겠지, 설마.

 

며칠 후, 홍콩에서 이 포스터와 또 마주쳤다. 이 동네(?)에만 흐르는 어떤 분위기가 감지될 것 같다. 헐리우드 영화에 폭 빠져있는 분위기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다.

 

참고로 말레이시아의 영화관람비는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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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홍콩에 여러 번 가게 되었다. 딸아이의 말이, 부산보다 홍콩을 더 자주 가게 되는 것 같단다. 일부러 홍콩에 간 것은 단 한번. 인도 여행 끝이나 말레이시아 여행 끝에 잠깐 들르다보니 홍콩에 자주 가게 되었을 뿐이다. 그리고 홍콩은 무엇보다도 공항에서 시내까지의 접근이 무척 단순하고 옥토퍼스라는 교통카드의 사용이 편리할 뿐더러 넓지 않은 지역에 재미있는 여행 요소가 많아서 여행하기 좋은 곳이다.

 

홍콩에 가게 되면 편리함 때문에 그냥 별 생각없이 한국인이 운영하는 민박을 이용하게 된다. 빌딩의 한 부분을 임대해서 여러 개의 방으로 개조하여 여행자 숙소로 만든 곳이다. 내가 그간 묵었던 곳은 세 곳이었는데 공통점은 아침밥이 제공된다는 것, 방이 비좁다는 것, 실내에서 빨래를 건조한다는 것, 외국인 여성을 가정부로 두고 있다는 것 등이다.

 

이번에 묵었던 민박은 유달리 정갈한 곳이었다. 다른 두 곳은 청소도 대충이었고 음식도 그저 그랬는데 이번 민박은 청소, 음식이 모두 만족스러웠다. 이틀째 되는 날은 솔직히 청소는 기대도 하지 않았었다. 다른 곳처럼 대강하거나 내버려두겠지 싶어서 입던 옷도 그냥 침대에 걸쳐놓고 양말도 침대 머리맡에 널어놓고 가방도 구겨진대로 방치해 놓고 외출했다. 그런데 돌아와보니 너무나 말끔히 정돈되어 있어서 놀랍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이럴줄 알았으면 정리해놓고 나가는 거였는데, 싶었다.

 

다음 날 아침, 아침밥을 먹고나서였다. 어젯밤부터 눈물을 글썽거리던 필리핀 출신의 가정부 아주머니가 나를 보더니 울먹거리는데 눈에는 눈물이 그득 고였다. 왜 우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간밤에 한국인 주인이 와서 혼을 내고 갔다고 한단다. 누군가 홈페이지에 그녀가 손님에게 소리를 질렀다는 불평을 했다고 한다. 그녀의 서러운 호소를 들어주었다.

 

그녀가 보여준 그녀의 작은 방에는 침대가 없었다. 침대 자체가 들어갈 방이 아니었다. 아주 작은 공간에 단지 얇은 매트 한장 깔고 자는 방이었고, 그 방마저 누군가에게 주고나면 그녀의 잠자리는 빨래를 널어 말리는 구석진 곳 바닥이라고 한다. 천정에는 빨래 건조대가 걸려있고 바닥에는 냄새 제거를 위해 선풍기 따위가 널려 있는 아주 협소한 공간이다. '그게 네 방이다'라는 소리를 듣는다며 6년간 일한 곳에서 그런 대접을 받고 있다며 그녀는 다시 울먹거린다. 

 

잠깐만 보아도 민박 분위기를 알 수 있었다. 열 개 가까운 방을 운영하고 있는데 관리하는 사람은 그 필리핀 여성 혼자였다. 아침 밥 준비부터 청소, 손님 체크인, 체크아웃 등 모든 일을 혼자서 감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혼자 운영하는 곳 치고는 정말 완벽하게 깨끗한 곳이었다. 웬만한 호텔 수준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빨아널은 양말은 건조대에 걸려 있었고 화장실 바닥은 물기가 닦여져 있었고 소지품 등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민박에서 이런 대접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그래서 당황스러웠고 미안했다.

 

아직 싱글인 이 필리핀 여성은, 하루 중 자기 시간이라고는 잠잘 때 뿐이라며 하루 종일 일, 일, 일, 일 뿐이며 휴일도 없다고 한다. 마치 노예의 하루 같았다. 한국인 주인이 꼬박 챙기는 것은 손님의 숙박 요금이라며 아마도 철저하게 챙기는 것 같았다. 그리고 손님 대부분이 한국인인데도 한국말을 가르쳐주지는 않고 그냥 영어만 사용하란다며 그 부분에도 불만이 쌓여 있었다. 6년간의 분노와 슬픔과 피곤으로 얼굴의 표정이 몹시 상해있었고 아마도 우울증에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아마 내가 그 입장이라도 그랬으리라. 더하면 더했을 터.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작은 민박이었지만 일거리는 상당했다. 살림하는 사람이라면 그 일거리의 정도가 금방 파악이 된다. 하루종일 종종거리며 일을 하지 않으면 그렇게 깨끗하게 유지될 수가 없다. 그래서 미안하고 창피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 하루종일 종종거리며 일을 한 덕분에 누군가는 하루종일 밖에서 맛있는 것 먹고 룰루랄라 놀다 들어와서는 깨끗하고 깔끔하게 치워놓은 방을 보고 콧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을, 그걸 당연한 대우라고 여겼다는 사실을 곰곰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한 돈을 냈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저렇게 뒤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보고는 그게 당연하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맛있게 먹는 아침 밥과 만족스러운 방 청소 뒤에는 보이지 않는 한숨과 눈물이 숨어 있는데 그걸 몇 푼의 돈으로 맞바꾸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여행이 징그러워지기 시작했다.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고, 그 고통을 무시하며 자기 이익만을 노리는 한국인 주인과 내가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게 부끄러웠다.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하루종일 빨래를 했다. 빨래를 건조대에 널면 몇시간 동안은 세제냄새가 온집안에 가라앉아있어 냄새를 견뎌야한다. 냄새가 싫어 헹굼을 여러번해도 냄새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다. 빨래 냄새를 맡으니 다시 그 필리핀 여성의 눈물 범벅 얼굴이 떠올랐다.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은 그 가녀린 몸매와 큰 눈망울이 내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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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이야기 2012-04-20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참 공감가는글이네요.

그 아줌마는 대단하네요.

저도 얼마전에 셩완에 민박을 오픈+테스트운영 중인데, 루이아줌마는 위에서 소개하신 분 정반대로 보시면 됩니다.
민박을 새로시작한건 아니구요, 그동안 임대하는 집여러 곳중 일부를 한인관광객들에게 오픈했는데, 다녀가신 분들의 입소문으로 일이 많아지면서 아줌마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울 아줌마는 인도 사람인데요, 마음씨착하고, 정직한편이고, 일은 못하나 음식은 잘하는편. 허나 민박한다는이유로 월급을 두달치요구를 해서 지금은 다른 아줌마를 물색해서 데려오는 중예요.
방청소를 해도 제가 다시해야하고, 제가 검사 안하면, 보이는데만 잘해놓고,그렇다고 저희 집이 더럽거나그롷진 않아요
인태리어가 무지 밝게 되어서 조그만 머리카락도 다보이는 그런 집이예요.
울 아줌마는 혼자서는 방 6개짜리 집을 혼자 청소 못해요. 우리는 조식포함이 아니라서
일도 적어요, 우리식구 밥도 저녁한끼만 채려주면되는데,하루 종일 꿈지락, 그리고 전화 통화..또 통화..또 통화...그러고도 월급 두배.아줌마침대는 손님들침대와 동격인 질좋고 깨끗한 침대.
방이 모자라면, 아둠마는 방의 침대에서, 나는 바닥잠....우린 이래요.

다 위에 소개한 아줌마 같지 않아요. 홍콩엔 노동법이란게 있구요, 그아줌마도 특별 페이를받으면서 불평을 할것이예요. 물론 힘든일이죠. 그 아줌마도 월급 많이 더 받을껍니다.보통월급에 그렇게 많은 일해야한다면, 벌써 노동청에 일러서 다른집에 갔을껄요..
물론 돈만 더준다고 고용인들이 행복해하고 고마워 하진 않습니다.
인격대접을 원하는데, 어떤 가정부들은 인격대우해주면, 주인을 괴롭힙니다.

모든게 양면이 있지만, 그 아줌마는 특히 맘이좋고,일도 열심히 하고, 참을성도 많고 그런 사람 같네요.

그민박집도 딱하네요. 빨래건조기하나면,일이 훨 수월할텐데...
그래서 우리집에 오시는 분들이 그러셨군요.

홍콩원룸텔 잠자리가 뽀솔뽀송하다구요,
이상입니다.다음엔 홍콩섬쪽 민박도 체험해보세요.
 

한겨울의 말레이시아는 스콜이라는 소낙비가 간간히 혹은 새벽부터 쏟아져 내리고, 한나절은 더위에 쩔어 절절매며 돌아다닌다. 덥다. 더워서, 습한 더위 때문에 두번 다시 말레이시아에 오고 싶은 생각을 스스로 접게 만든다.

 

더위 속을 8일간 헤매다가 드디어 홍콩에 오니 여긴 초가을 날씨다. 조금은 센티멘탈해지는 기온이다. 여행이라는 게 이런 묘한 기분을 만끽하는 맛이긴한데, 흠, 쇼핑 천국에서 쇼핑에는 젬병인 내가 할 일이 무엇일까.

 

이렇게 한국을 떠나있으면 생각이 단순해지는 게 좋다. 뒤돌아보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그런데 이제 서서히 뒤돌아볼 일 아니 앞을 향한 일만 남아있다. 이젠 집으로 돌아갈 때다.

 

창가에서 내려다보는 홍콩거리가 너무나 아름답다. 줄 서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처진 어깨마저 아름답게 보인다.

 

즐거움을 만끽하기에는 사실 마음에 걸리는 사람들이 많다. 미안하다. 죄송스럽다. 내가 여행을 잘하는 것이 그 미안함을 잊지 않는 방법임을 참 염치없이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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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1일 투어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태국의 고대도시 아유타야를 가게 되었다. 운전수와 가이드 포함 16명이 미니밴에 타게 되었는데 앞좌석의 보조석에 남편을 앉히면서 vip석 운운하며 가이드가 너스레를 떨었다. 1시간쯤 달렸을까.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있는 어린이용 보조석에 앉아온 남편이 약간의 불만을 호소했다. 운전수 바로 뒷좌석에서 유유자적하던 나는 순간 그 자리가 내 자리임을 간파, 불편을 감수하며 계속 그 자리에 앉아가겠노라는 남편을 설득, 드디어 보조석에 내가 앉게 되었다. 평소 미래형 인간이라며 작은 키 인간의 여러 장점을 누누이 강조해왔던 터라 이런 기회에 내 신체적 조건을 십분 활용하여 다른 키 큰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리라는 야무진 꿈까지 꿔가며...

히치하이킹으로 얻어 탄 경우라면 이런 보조석도 고맙기 그지없는 자리가 될 것이다. 앞 유리에 머리가 닿을 듯 가깝고 목받침대가 없어서 긴장을 풀 수 없다는 점을 빼고는 그래도 엉덩이를 붙일 수 있는 의자임에는 틀림없으니 말이다. 내 옆자리인 조수석에 앉은 태국인 가이드 아저씨가 안전벨트를 매면서 나 한테도 안전벨트를 매라고 권했다면, 혹은 이런 불편한 자리에 앉아가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 한마디라도 했더라면, 아니 나를 가운데 두고 운전수와 가이드가 대화를 나누지 않았더라면(아니 내가 무슨 투명인간이냐고) 나는 내 인내심을 최대한 발휘하며 끝까지 이 자리를 지키면서 타인을 배려한 나 자신을 신통해했을 거다.

“ 내 좌석이 아주 불편하고 위험하다. 당신은 이 좌석에 앉은 내게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한다.” 한마디 쏘아주니 순간 가이드 아저씨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래서 한마디 귀엽게(?) 덧붙였다. “그냥 농담이다.” 잠시 후 아유타야에 도착한 순간, 내 눈에는 이 고대도시의 유적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가이드의 설명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시 이동하기위해 승차가 시작되자 나는 보조석으로 돌아와 앉았다. 이번엔 최대한 웃는 얼굴로 가이드에게 한마디 던졌다. “이번엔 내가 이 자리에 앉지만 다음에는 당신이 이 자리에 앉아라.”, “ok."

그렇게 내가 조수석에 앉게 되자 하는 수 없이 보조석에 앉게 된 가이드 왈, “ 그 자리는 가이드 자리다. 문도 열어드려야 하고 설명도 해야 되기 때문이다.”,“그래? 그 일 내가 하면 된다. 내가 하지 뭐.” 하니까 목에 건 가이드 신분증을 빼는 척한다. 그래 그것도 내게 줘, 하는 눈빛을 보냈다. 완승이다.

조수석에 앉으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전망 시원하지 에어컨 빵빵 나오지.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vip석이지. 하면서도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방콕으로 돌아가기 위해 승차하게 되었을 때는 씩씩거리던 마음도 어느 정도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서 나이로 우열을 가리기로 마음먹고 나이를 물었다. 어라. 나 보다 나이가 많은 57살이란다. 우리 큰오빠가 생각나서 그냥 져주기로 마음먹고 보조석에 앉아서 가는데, 잠은 솔솔 쏟아지는데 머리는 기댈 곳이 없어 사방으로 떨어지고, 전방에서 햇볕은 정면으로 쏘아대고...아, 이 좌석은 아니다! 나는 손님이란 말이다! 우리나라 학생들도 지네들 위험하다고 전세버스의 보조석에는 절대로 앉지 않는단 말이다!

주유를 위해 다시 차가 정차를 하게 되었다. 하늘의 뜻이다. 마지막은 조수석이 내 차례다!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다른 사람들이 차에 모두 오르기를 기다리는데 드디어 가이드가 앞문 쪽으로 왔다. “ This time, your turn!"

카오산 거리로 돌아왔다. 숙소로 걸어가면서 딸아이가 말한다.

“앞으로 절대로 엄마한테 대들지 않을게.” 내가 좀 독하긴 독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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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이상 머물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중국의 윈난, 베트남의 사파, 인도의 우띠, 일본의 교토, 터키의 사프란볼루, 스위스의 바젤, 그리고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이 될 것이다. 바젤, 윈난, 교토를 빼면 모두 심심해서 발작을 일으킬 지도 모르지만. 

루앙프라방에서 4일을 머물며 무엇을 했나. 매일 저녁 몽족 야시장 탐색하기, 몽족 마을 트레킹, 슬로보트 타고 동굴 탐사, 라오스 전통 공연 관람, 새벽 탁발 구경, 동네 골목길 누비기 등. 


 

 

 

 

 

 

 

 

 

 

그러나 루앙프라방에서는 무엇보다도 이 솜사나무 주변을 맴돌거나, 게스트하우스 계단에 우두커니 앉아 옆 집 밥짓는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거나, 혹은 옆집 새댁이 애기 목욕시키는 거 지켜보기와 같은 소소한 것들을 해 볼 일이다. 온동네 사람 들으라고 크게 켜놓은 라오스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는 일 또한 나쁘지 않다. 30분만 게스트하우스 계단에 앉아 있어도 동네 사람 다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유명하다는 새벽 탁발도 내게는 그리 뜻있게 다가오지 않았다. 어둠이 채 가시기 전인 새벽 6시. 맨발로 탁발에 나선 스님들의 행렬이 장관을 이룬다하여 스님 보다 많은 관광객들이 주변에 진을 치고 있는 모습도 그렇고, 탁발을 하는 스님들의 얼굴에서 언뜻 언뜻 비치는 무심함과 피곤한 기색도 그렇고, 단체여행객들의 공양 행위 역시 진지해보이지 않았다. 그냥 일상일 뿐이었다. 큰스님을 선두로 맨끝에는 동자승들이 눈을 부비고 뒤따르고 있었는데, 별달리 할 일도 없던 나는(나는 거의 사진을 찍지 않는다.) 그 스님들이 몇 분이나 되나 숫자만 세었을 뿐이었다. 202명 정도가 되었다. 난 왜 이런 엄숙한 행위에 감동을 하지 않는거지?  

한창 여행에 폼을 잡던 시절엔 4박 5일짜리 여행을 위해서도 론리플래닛에서 나온 영문여행안내서를 구입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열흘정도 여행이라도 그냥 국산을 애용하기로 하고 있다. 워낙 다양한 여행안내서가 국내에서 출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여행안내서에서 간과하는 부분이 하나 있음을 가끔 발견하곤 하는데 바로 공연 문화에 대한 소개가 소홀하다는 점이다. 이곳 루앙프라방에서도 그랬다. 

숙소에서 우연히 발견한 론니플래닛판 라오스가이드북을 펼쳐보다가 전통공연을 하는 상설공연관이 있다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멀리 갈 것도 없었다. 바로 왕궁박물관내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도 외국에서는 전통공연 하나쯤은 봐줘야한다는 신념을 품고 있었던지라 즉시 실행에 옮기기로하고 저녁에 있는 공연 예매를 하러 갔다.  

우리의 예술회관 같은 공연장 입구에서 허름한 옷차림을한 늙수그레한 아저씨 한 분이 표를 팔고 있었다. 서너 가지의 등급으로 되어있는 좌석표는 요금 구분이 되어있어서 잠시 망설이고있자니 아저씨가 우리를 공연장으로 안내하며 따라오라한다. 나는 당연 제일 싼 좌석이 눈에 들어오는데 어라, 이게 뭐야 등받이도 없는 빨간색 플라스틱 의자네. 무대와의 거리는 또 왜 그렇게 멀리 떨어뜨려놨는지 절대로 앉아서는 안될 것 같은 세심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아저씨는 우리더러 의자에 앉아보라고 하면서 한등급 한등급 급수를 높여가면서 안내를 했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이런 예매를 하겠는가 싶었다. 나이 든 아저씨의 권유를 못이기는 척하며 두 번째로 비싼 표를 끊겠다고 하니 아저씨의 얼굴이 환하게 빛난다. 그래 라오스의 공연문화 진흥과 발전을 위해 기부하는 셈치자고 생각하니 순간 뿌듯함마저 일었다. 요금도 그렇다. 당시에는 등급에 따라 확연히 구분되어서 차액이 크게 보였지만 이렇게 요금도 제대로 기억 못하는 걸 보니 우리에게는 그렇게 큰 액수라고는 할 수 없는 가격이었다. 

그러면 공연은?  너무나 화려한 공연 문화에 눈을 버릴대로 버린 우리네 같은 관광객에게는 소박한 옛시절을 떠올리게 한다고나 할까. 그러나 성의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는 나름대로의 자부심 같은 것도 엿볼 수 있었다. 부디 자존심을 잃지 않기를 바랐다. 그런데 우리나라 여행자들은 이런데 안 와보고 다들 어디에 있나? 이곳 루앙프라방의 여행자들을 크게 나누어보면 두 분류가 되는데, 서양인이냐 아니면 한국인이냐, 할 정도로 우리나라 여행자들이 많은데 이런 공연장에 우리 넷과 한 명의 아가씨 밖에 없다니 이건 분명 국내산 가이드북의 한계 때문일 게다. 

야시장은 매일 밤, 누구 말처럼 마술처럼 펼쳐졌다가 마술처럼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끝나버린다.  몽족이 손수 만든 공예품도 있고 주변 나라에서 수입해온 물건도 있는데, 재밌는 건 며칠 전 인사동에 나갔다가 몽족들이 팔고 있는 똑같은 스카프를 발견했다는 거다. 그 스카프는 방콕 카오산 거리에도 걸려 있었다. 하여튼 물건 가격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르는 우리는 그 가격이 바가지인지도 모르고 그냥 깎는 척하다가 사왔다는 거다. 

그 야시장에는 서적 코너도 있었는데, "라오스 어린이에게 책을 선물하세요. 라오스 어린이들은 너무 가난하여 책을 전혀 읽어보지 못하거나 한 권의 책도 가져보지 못한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책을 선물해주세요. 호텔의 웨이터에게도 팁 대신 책을 주세요."라는 포스터가 눈길을 끌었다. 낮에 몽족 마을에 갔을 때 볼펜을 뿌리다시피한 게 살짝 마음에 걸려서 모처럼 좋은 일 좀 하자고 의견을 모으고 하루 방 값에 해당하는 가격 만큼 책을 구입했다. 그래야 4권이지만.  

그 중 한 권은 거리에서 악기를 들고 있던 한 할아버지에게 돌아갔다. 할아버지가 들고 있던 악기는 우리의 해금과 너무나 비슷하게 생겨서, 반가운 마음에 할아버지의 연주도 청해 듣고 악기도 만져보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해금보다 활이 훨씬 부드럽고 소리도 경쾌하고 크게 울려나왔다. 의사소통만 되었더라면 좀 더 연주를 들어보는 거였는데, 아쉬웠다. 

해금 한두 번 만져봤다고 이제 어디가면 해금만 눈에 들어온다. 중국, 홍콩, 베트남, 라오스...또 어디에 있을까. 이곳 루앙프라방에서는 거지도 해금을 연주하며 구걸하고 있었다. 서양 바이올린의 원조가 해금류의 악기라는데...

아침밥을 두 번 해결했던 식당이 있다. 깔끔하고 세련되게 생긴 주인아주머니가 인상적이었는데 음식 역시 깔끔하고 맛있었다. 그런데 이 식당은 매일 오전 6시에 문을 열어 오후 2시 30분 까지만 영업을 하고는 문을 닫는다. 참 신선한 충격이라고나 할까. 세련이라는 단어는 이럴 때 써야 어울릴 것 같다. 

모퉁이에서 5,000kip하는 과일주스를 팔던 젊은 부부의 미소가 그립다. 허구헌날 주스를 팔면서 그렇게 환하고 착한 순정의 미소를 지을 수 있다니. 아침부터 밤까지 노점에서 바게뜨와 커피를 파는 젊은 몽족  부부의 미소도 그랬었는데. 그들은 분명 우리가 잃어버린 그 무엇을 간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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