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의 차이나타운 옆에는 메데르카라는 광장(잔디밭)이 있다. 말레이시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을 때 이 광장에 서있는 100m높이의 국기게양대에 말레이시아 국기를 게양하고 독립을 선언했다는 뜻깊은 곳이다.

 

마침 우리가 찾아간 날이 일요일이라 이 광장에서는 여러가지 행사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주로 청소년 행사가 주를 이루고 있었던 듯하다. 벽화 그리기대회, 족구경기 비슷한 대회, 그러나 아깝게도 하루가 저물어가는 시점이어서 거의 파장 분위기에 가까웠고 이미 행사가 끝난 곳도 여럿 있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열댓 명 정도의 무리가 작은 무대를 둘러싸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한 곳으로 가게 되었다. 무대에 있는 발랄한 모습의 남녀 사회자 두 명이 아주 빠른 말투로 재잘재잘 뭐라고하자 그 열댓 명의 관객은 쭈볏거리며 중앙무대로 나가기 시작했다. 무대라고 하기에는 매우 소박한 공간에 불과하지만.

 

경쾌한 음악이 흐르자 남녀 사회자 두 명은 리듬에 맞춰 군무를 이끌어 나갔다. 관객은 나이와 성별 구분이 무색했고 대부분 동작이 굼뜬 나이 든 아저씨, 아줌마들이었다. 말레이시아 노래인 듯한 곡에 아주 단순한 발 동작이 주를 이루는 춤이었다. 대학 때 배웠던 헛슬 비슷한 춤이었다. 멀찍이 떨어진 자리에서 지켜보자니 절로 흥이 나서 앉은 채로 발 동작을 따라해보았다.

 

한 곡이 끝나고 두번째 곡이 시작되었는데, 짐작이 가겠지만, 깜찍하게도 원더걸스의 Nobody가 흘러나왔다. 외국에서 듣는 애국가가 이 보다 더 반가웠을까. 오동통한 20대 중반의 남자 사회자의 까불거리는 모습이 너무나 유쾌하다. 나도 저들의 무리에 끼어들어서 깜찍한 모습으로 이 유명한 안무를 해보련만, 안타깝게도 이 춤을 추어 본 적이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배워두는 거였는데.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앞으로 동남아에 가시려거든 이미 유행 지난 Nobody 춤 한자락 제대로 배워서 나가시길.

 

이렇게 말레이시아에서 우리의 '자랑스런' K-pop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쇼핑몰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오는 K-pop, 정말 많았다. 그냥 흘려듣고 지나가려해도 딸아이가 자꾸 가르쳐준다. 저건 샤이니, 저건 비스트, 저건 어쩌구 저쩌구. 대부분 내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지 않은 곡들이었다. 심지어는 휴대폰 벨 소리도 K-pop이었다. 물론 이것도 딸아이가 가르쳐주었지만. 이뿐만이 아니었다. 말라카의 어떤 옷가게에선 조용필의 노래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기분이 좀 묘했다. K-pop을 향한 이들의 일방적인 사랑이 좀 지나치고 이상하지 않은가. 음악도 일종의 상품이라는 생각, 씁쓸하다.

 

K-pop에 대한 이들의 사랑에 대한 고마움(?)으로 나도 그들의 대중가요 cd를 한 장 고르기로 했다. 음반 매장에서 직원에게 제일 유명한 말레이시아 가수가 부른 cd를 골라주기를 부탁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나중에 들어보았다. 느낌은, 역시 다문화 국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랍풍이기도 하고 인도풍이기도 하고.

 

말레이시아의 K-pop 사랑,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럽다. 내가 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을 생각해본다. '단일'이어서 모든 기준도 '단일'이어야하는 삶은 매우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왕따라는 것도 결국엔 '단일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 아닐지.

 

쿠알라룸푸르에서는 별로 할 일이 마땅치 않아서 쇼핑몰 구경을 질리도록 했다. 쇼핑을 즐기지도 않으면서, 명품가방을 사는 따위 내 인생에서는 절대로 없을 일이면서, 그래도 쇼핑 자체는 즐거웠다. 우선 무더운 더위를 피할 수 있고, 그림의 떡 같은 상품들이 대부분이지만 어쩌다가 저렴한 개구리 한 마리쯤 손에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개구리. 천리포 수목원의 설립자인 민병갈이라는 분은 평소에 개구리를 좋아해서 다시 태어나면 개구리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는데 이에 감명(?)받은 남편은 이번 여행을 계기로 개구리 수집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구경 중에 구경은 단연 사람 구경이리라.  말레이시아는 다인종 다민족 국가라서 사람들의 모습이 다종다양하다. 피부색깔, 두상 크기, 복장, 헤어스타일 등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기만해도 지루한 줄을 몰랐다. 특히 나를 행복하게 하는 모습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여성들의 키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어쩌다 나 보다 키 작은 여성들을 만나면 가족들이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는 했는데 여기 이 나라에선 완전히 환호성 연발이다. 나 보다 키 작은 여성들을 셀 수도 없기 때문이다. 세상을 널리 돌아다니는 보람이 있다. 세상의 잣대에 마음 약해지거나 주눅들 필요가 없음을 확인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다문화 현상이 가속화되면 이런 폭력적인 잣대가 좀 줄어들까.

 

여기서 잠시 궁금해진 점. 이 나라에는, 수많은 표준이하의 사람들에게 무시할 수 없는 열패감을 안겨주는 표준신장이라는 게 있는지 모르겠다. 있다면 인종별로 분류되어 있을까. 이 정도까지 알아보려면 오래오래 더 머물러야하는데, 아쉽다.

 

 

같은 동양인이라 그런지 말레이시아에서는 우리에게 현지어로 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못 알아듣고 멍한 표정을 지으면 겸연쩍어하며 오히려 외국인이었냐며 씩 웃고는 했다.

 

그러나 홍콩에서는 달랐다. 지난번 홍콩에 왔을 때도 그랬다. 침사추이 번화가에서 어김없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아주머니, 가짜 가방", "아주머니, 짝퉁 시계"를 연발하며 우리를 불러세우곤 했다. 그 많은 동양인들 중에 어떻게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아차리는지 귀신같았다. 한국인을 알아보는 그 기준이 무엇일까? 늘 무언가에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한국인의 특성이 얼굴에 새겨져있는 건 아닐까? 아니면 우리가 짝퉁을 좋아하게 생겼나?

 

하여튼 "가짜"를 좋아하는 국민으로 보인다는 건 무척 쪽 팔리고 부끄러운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가보는 나라일 경우 되도록 첫 숙소로는 우리나라 사람이 운영하는 곳에 묵으려고 한다. 이유는, 외국에서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의 생활이 궁금하고, 새로운 곳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도 외국 생활을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간접적으로나마 그들을 통해 외국에서의 삶을 상상해보곤 한다. 물론 많은 것을 묻고 싶지만 그건 초면에 할 일이 아니어서 그저 가만히 지켜보고 이런저런 상황을 가늠해볼 뿐이다. 짧은 시간의 만남에 불과하지만 그 여운은 남겨진 한 장의 사진보다 훨씬 오래간다.

 

그저그런 표준형의 숙소라면 기억에 남지 않지만 생활의 모습이 드러나는 살림집인 경우에는 기억에 오래 남는다. 여행은 추억을 남겨야하는 법, 오래 유지되는 추억을 위해 나는 기꺼이 한인 민박을 선택한다. 

 

쿠알라룸푸르 역시 별 고민없이 인터넷에 올라와있는 한인 민박으로 정했다. 요금은 좀 비싼 편이었지만 (외국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이 그리웠다. 외곽지역이라 찾아가는 데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다. 낯선 곳에서 길 찾는 걸 두려워하지 않은지 오래되었지만 날은 점점 어두워오고 택시 기사는 엉뚱한 곳에 내려주는 등 생각지도 않게 숙소를 찾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방심한 탓이다.

 

아파트 단지 안에는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수영장이 있었다. 단지내에 수영장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딸아이는 환호성을 지른다. 비록 수영장에 발 한 번 담가보지 못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민박 주인인 청년에게 물었다. "이곳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대개 이런 수준으로 살고 있나요? 마치 뉴질랜드처럼 깨끗하네요."

 

다음날, 말라카로 가기 위해 Selatan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 이건 버스터미널이 아니라 차라리 공항터미널이라고 해야 어울린다. 버스 승하차 시각을 알리는 모니터는 공항의 비행기 이착륙을 알리는 모니터와 똑같고 터미널 건물 구조나 시스템도 공항 터미널과 너무나 흡사하다. 다시 한 번 속으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말레이시아의 생활 수준이 이렇게 높은가?"

 

고속도로의 차량들은 대부분 해외 수입차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도로도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고 도로변으로는 온통 팜트리와 야자나무숲으로 가도가도 팜트리와 야자나무뿐이었다. 좀 특이한 게 있다면 우리나라에서럼 위협적인 대형 화물차량들을 거의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이곳의 주력 산업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라카에서의 첫날은 고민끝에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Hotel Puri로 정했다. 정원이 아름다운 깔끔한 호텔답게 우리가 보통 애용하는 게스트하우스 수준보다는 높았다. 인도에서의 5,000원짜리 숙소도 별 불평없는 딸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괜찮아?" 딱 하루만 이런 곳에서 자보기로 했다. 이런 그럴듯한 숙소에서도 분명 잠을 잤었다는 사실을 두고두고 울궈먹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다음 날 이 호텔의 반 값에 해당하는 저렴한 게스트하우스로 옮겼다. 창문이 하나도 없는 방이다. 화장실인 줄 알았는데 샤워만 할 수 있는 말 그대로인 bathroom은 그저그랬으나 에어컨 하나는 시원하게 작동되고 있었다. 덕분에 남편이 냉방병에 걸리고 말았다. 창문 하나 없는 감방 같은 방은 폐쇄공포증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튿날은 문단속은 커녕 문을 빠끔히 열어놓고 자야했다. 감옥체험이 이럴까 싶었다.

 

말라카에서 3일 보내고 다시 돌아온 쿠알라룸푸르에서는 일단 도심 지역의 번화한 곳에 숙소를 잡기로 했다. 이름하여 부킷 빈탕. Replica Inn이라는 깔끔한 곳이었다. 가까운 곳에 쇼핑몰이 몰려 있었다. 택시 잡기도 편하고 환전소도 많고 밥 먹을 곳도 다양하게 널려 있었다. 시내 투어하기에 특히 쇼핑하기에는 매우 적절한 곳이었다.

 

이틀을 그곳에서 보내고 이번엔 차이나타운으로 숙소를 옮겼다.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 눈에 익은 듯한 거리가 우리를 반겼다. 아, 어디더라. 방콕의 카오산거리(여행자거리) 같기도 하고 델리의 찬드니초크(재래시장) 같기도 했다. 건물은 대개 우중충하고 도로변이나 보도블록은 몹시 지저분하고 더러웠다. 그러나 숙소(4인실)는 저렴했다. 하루에 100RM(링깃, 1링깃은 약 390원 정도)

 

이제야 쿠알라룸푸르가 조금씩 파악되기 시작했다. '뉴질랜드 같네요'라는 내 말에 민박주인이 왜 웃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인자 2012-02-29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내는 왜 민박 직원이 떠오를까? 오늘 전화가 왔어 위대한 탄생 일산 생방송에 초대한다고,,,,, 가고 싶당,,,,, 여행도 가고 싶당,,,,,하고픈 걸 한다는 것 참 감사한 일이지? 화선아, 너는 증말 인생 잘 사는거양^^
 

여행에서 먹는 것과 잠자는 것 빼면 뭐가 남을까, 싶을 정도로 이번 여행은 먹기와 잠자기에 충실했다. 우선 먹는 얘기부터 해야겠다.

 

딸아이가 어렸을 땐 여행에 제일 어려운 게 먹는 문제였다. 현지 음식을 잘 먹지 못하기 때문에 배낭에는 늘 누룽지와 라면, 고추장, 전기코펠을 챙겨넣었다. 10일~30일 분량의 식량을 마련하기 위해서 여행 전  수 개월 전부터 누룽지를 굽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딸아이가 10대 중반을 넘어선 지금, 그동안의 노력(?) 덕택에 딸아이는 고수를 넣은 음식을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 아직도 남편은 고수에 인상을 쓰지만 말이다. 아이가 어른보다 새로운 것을 쉽게 받아들인다는 예증이 될까. 아니면 향이 있는 음식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다국적인 내 입맛과 취향을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일까.

 

다국적인 입맛과 달리 나나 남편이나 평소에 먹는 것을 그리 탐하는 편이 아니다. 맛집을 찾아 다니는 일 따위, 차라리 경멸하는 입장이다. 텔레비전의 맛집 기행 관련 프로그램은 질색이다. 그냥 대충 먹으면 되었지 저렇게 극성를 떨까 싶다.

 

한번은 딸아이가 어렸을 때 이런 말을 했다. "우리도 다른 집처럼 평범하게 훼밀리레스토랑에 가서 스테이크 같은 것 먹으면 안돼?" 뭐가 평범한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 기준이 애매하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식구끼리 스테이크를 먹어 본 적이 없으니, 하여튼 우리는 분명 평범한 사람들은 아닐 터이다.

 

그러니 여행안내서를 읽어도 '맛집 찾아 삼십리' 따위의 얘기는 거의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러면 먹는 재미 빼고 뭔 재미로 여행다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에 대한 대답은 앞으로 가보지 못한 땅을 한참 더 다녀본 뒤에나 할 수 있겠지 싶다. 먹는 것 빼고도 세상은 무지무지 재밌고 신기한 것 투성이니까.

 

이렇게 먹는 것에 초연한 우리에게도 말레이시아는 단연 '음식의 천국'이었다. 다양한 음식의 배경에는 또한 다양한 인구 구성- 말레이인 60%, 중국인 30%, 인도인 !0%-이 그 원인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수세기 동안 네덜란드, 포루투갈, 영국, 일본의 식민지를 거쳐오면서 삶의 양태에도 많은 영향을 주고 받았을 것이다.

 

8박 9일 동안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와 역사 도시인 말라카에 머물면서 한번도 같은 음식을 먹은 적이 없었으니 우리는 본의 아니게 어느 새 식도락가가 되어있었다. (딱 한 번 있긴 했다. red bean soup 라는 말레이시아식 팥죽을 남편이 좋아해서 두 번 먹어보긴 했다. 비교하자면 우리나라의 팥죽보다 훨씬 공이 덜 들어간 음식이어서 그냥 푹 삶아서 설탕이나 꿀을 넣어 간을 하면 되는 간단한 음식이다.)

 

여행 가기 전에 읽었던 박종현의 <말레이시아>에도 이런 표현이 나온다. '말레이시아에 살면서 쿠알라룸푸르 음식점에서 파는 음식을 종류별로 먹으려면 일년으로는 부족할 정도이다.' 이럴 정도이니 우리같은 '맛집 혐오가'(?)도 단 며칠 동안 머물면서 온갖 다종다양한 음식에 눈이 휘둥그레지며 세 끼 꼬박 챙겨먹고도 늘 입맛을 다실 수밖에. 게다가 음식 값은 대체로 저렴한 편이었다.

 

인상적인 음식 얘기 한 가지. 말라카에는 역사적인 도시답게 음식도 혼혈(?) 음식이 많았다. 다양함에 맞춰 이름도 많았다. 하루종일 줄 서서 먹는 음식점도 여러 군데였다. 한 끼 먹자고 긴 줄에 서는 일, 별로 해본 적이 없는 우리였다. 그러나 조그마한 동네에서 3일씩이나 묵으며 유명한 곳에서 한 끼도 먹지 않는 일은, 그렇게 무심 초탈하게 지내기에는, 사실 할 일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작정하고 새벽같이 찾아간 음식점이 있었다. 이른 아침 식당 문을 열기도 전이었는데 이미 여러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들도 우리처럼 벼르고 별러 왔을 터이다. 며칠 전부터 눈에 띄어 식욕과 호기심을 자극하던 chicken rice ball을 드디어 먹게 되었다. 유달리 우리 테이블만 주문을 늦게 받는 것 같다며 초조해하고 있을 때 퉁퉁한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얼마나 벼르던 음식이더냐, 얼마나 맛있으면 사람들로 늘 붐비더냐, 그래 우리가 먹어주마.

 

탁구공보다 작은 크기여서 먹어도 얼마 안 될것 같다며 chicken rice ball 30개를 주문하고 더불어 반찬으로 채소요리 한 가지와 바베큐 돼지고기 한 접시를 시켰다. 음식을 기다리며 옆 테이블을 보니 보통  chicken rice ball 을 한 사람당 5개 정도 먹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에고, 우리는 세 사람인데.

 

하여튼 다 먹어치웠다. 주먹밥 모양의 chicken rice ball 이 딱히 맛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약간 특이했을 뿐 기억에 남을 만한 맛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쨌거나 우리는 아니 남편은 음식에 대한 예의를 최대한 지키려고 애썼고 그 예의를 지키는 일은 음식을 남김없이 먹는 일이었다.

 

인도의 라다크 지방 여행 후에는 몸의 신경 세포가 교란되는 듯한 후유증을 남겨 힘들었는데, 이번 말레이시아 여행은 영양 과잉으로 몸의 혈관 하나하나에 기름이 낀 듯한 포만감 짙은 후유증을 남겼다. 과연 말레이시아는 음식의 천국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대학 탐방이 아닌 대학 구경이다. 구체적인 계획이나 일정이 있었던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외국에 나간 김에 대학 구경을 껴넣었을 뿐이다. 딸아이를 위한 짓이라고 우리 부부는 신이나서 추진했지만 정작 딸아이는 시큰둥하기만 했다. 가뜩이나 고등학교 입학을 코 앞에 둔 상태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주눅이 든 아이에게는 이런 짓거리들이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생각하면 삶의 모든 흥미가 사라질 판에 대학 그것도 외국 대학이라니.

 

그렇게해서 찾아간 말레야 대학. 택시 기사가 묻는다. 어떤 college에서 내리겠느냐고. 알 수가 있나. 대강 내리고보니 대학 캠퍼스가 너무나 넓다. 날씨는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무덥다. 정보 하나 없이 무턱대고 찾아왔으니...서울에 있는 대부분의 대학 캠퍼스는 중첩된 건물 숲이건만 이곳은 그야말로 넓은 그것도 드넓은 땅에 자리잡고 있다. 이정표도 인색하기 짝이 없고 돌아다니는 대학생도 겨우 한둘 볼까말까다.

 

그래도 우연히 도서관 건물이 눈에 띄었다. 무작정 들어가서 잠시 더위를 식혀가며 눈치를 살펴보았다. 이곳 대학생들 공부하는 것도 보고 서가도 보고 싶었지만 입구에서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신분증은 말할 것도 없고 여학생 가방 검사까지 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왔으니 그래도 구경은 해야지, 하는데 딸아이는 재미없는 표정을 지으며 그냥 가자고 한다. 그럴 수야 없지.

 

정복을 입은 직원에게 말을 붙였다. "저기 있는 우리 딸이 언젠가는 이 대학에서 공부할지도 모른다. 한 번 도서관 구경을 할 수 있겠느나?" 들어갈 수는 있다는 데, 반바지 차람으로는 안된단다. 반바지를 입은 남편과 딸아이는 안되고 할 수 없이 긴바지를 입은 나만 들어가게 되었는데, 나만 살겠다고 하는 모양 같아 이내 멈칫거리다가 그냥 돌아나와버렸다. 하릴없이 택시 타고 돌아오면서 하는 남편의 말 " 그래도 하나는 알게 되었네. 말라야 대학 도서관은 반바지 차림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는 거야."

 

꿈을 심어주고자 찾은 외국 대학에서 딸아이에게 각인시킨 것은 무엇이었을까. 다녀서는 안될 대학? 절대로 다니고 싶지 않은 대학?

 

그래서 대학 한군데를 더 가보았다. 이번엔 홍콩으로 넘어와서 홍콩대학에 갔다. 역시 좁은 땅에 지은 대학답게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눈에 익숙한 풍경이다. 서울스럽다고나 할까. 대학 캠퍼스가 한 눈에 들어오고 오고가는 학생들의 옷차림이 수수하고 평범하니 딸아이도 조금씩 흥미를 보인다. 수능을 보지 않고 외국에서 공부하는 방법도 있다는 말에 관심을 보이는 것같아 애초에 못을 박는다. 일단 한국에서 대학을 입학한 후에 유학을 생각하라고. 힘든 길이지만 남들이 하는 만큼의 고생은 해봐야한다고. 왜 그런 생각이 안 들겠는가. 좀 더 쉬운 길이 있다면 그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나라의 학교교육에 찌들어가는 딸아이를 바라보면서, 꿈을 불어넣어주고 싶었고,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고, 열린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대학을 향한 앞으로의 3년이 전부가 아님을, 세상은 그것보다 훨씬 넓다는 것을, 남들보다 1~2년 뒤떨어지는 것에 겁먹지 말기를, 어렸을 때 무작정 하는 공부보다 어느 정도 성인이 되어 확실한 목표를 찾았을 때 공부에 매달려도 결코 늦는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가뜩이나 대학 구경에 부담을 느끼는 아이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딸아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길을 모색할 때, 부모인 우리가 보여준 이런 그림들이 문득 어느 순간에 힘이 되고 자극이 되고 방향이 된다면 좋겠다. 대학 구경 하나 가지고 너무 큰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