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옆자리 동료와 같은 공간에서 지낸 지 8개월이 되었다. 나이도 비슷하다. 급식을 거부하고 소박한 점심을 함께 먹은 지도 꽤 되었다. 하루도 아프지 않은 날이 없는 통증을 달고 사는지라 틈만 나면 내 옆자리 동료에게 하소연을 하곤 했다. 오늘은 어디가 아프고 어떻다고....미안할 정도였다. 병원이 어떻고 하는 얘기도 귀가 따갑게 읊었다.

 

오늘, 내 옆자리 동료가 그런다. 자기도 가끔 손가락이 아프지만 며칠 지나면 그냥 낫는다며 나도 그런 거 아니냐고 묻는다. 순간 말문이 막혔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하나.

 

내 부어오른 손가락을 볼 때마다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난다. 엄마는 자주 당신의 퉁퉁 부어오른 손가락을 식구들에게 보여주곤 하셨다. 종종 있는 일이고 엄마를 뺀 나머지 식구들은 아프지 않은지라 위로의 말도 별로 건네지 않고 그냥 무심히 듣곤 했다. 기껏해야 병원에 가보시라는 말 정도를 했을 뿐이었을 게다. 그러면 엄마는 더 이상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실망하는 표정을 짓거나 섭섭하다는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그냥 가만히 계셨다. 그게 다였다. 다시 일상이 이어지고, 며칠 후 엄마는 손가락을 보여주시고, 우리는 또 무심히 엄마의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아무데도 아프지 않은 우리는 엄마가 얼마나 아프셨는 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부끄러운 얘기이다.

 

내 가방에 달고 다니는 노란색 세월호 리본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내가 얼마나 타인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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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에 이어 법수치 오두막으로 책을 옮기는 작업을 재개했다. 오두막으로 들어가는 곤란함에 대해선 작년에 글을 올렸었다.

 

http://blog.aladin.co.kr/nama/8646249

 

작년에는 나올 길이 없어 옆집 대문 밑으로 빠져나와야만 했었는데, 올해는 상황이 더욱 가관이다.

 

 

아마도 대문 밑으로 드나드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나보다. 대문 아래쪽에 레이스같은 펜스를 쳐서 대문을 통과하는 자체를 원천적으로 철저하게 차단했다. 개 한 마리 드나들 수 없게 해놓았다.

 

 

 

대문 옆 나무 울타리 역시 철조망을 둘러놓았다. 키가 웬만한 사람이라면 울타리를 타고 넘어갈 수도 있는 통로 아닌 통로였는데 이마저도 주인의 눈에는 가시였나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다른 방도가 있었으니...사진 오른쪽 아래로 가파른 비탈길이 생겨났다. 산나물이나 버섯 채취를 위해 원주민들도 이 길을 이용해야 했기에 임시방편으로 길이 만들어졌고, 역시 원주민들이 민원을 넣어 조만간 이 대문도 철거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확한 측량결과 대문이 들어선 이 땅이 이 집 주인의 땅이 아니었다나.

 

이런 상황에서 옆집을 통과해서 무언가를 옮긴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오른쪽 비탈길로 내려가더라도 고르지 못한 돌무더기 길을 지나고 덤불을 헤치며 200m 이상을 족히 걸어가야 하는데 짐이 없는 빈 몸이어도 쉽지가 않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오른쪽으로 보이는 개울을 건너가야 한다. 물이야 그리 깊지 않아서 무릎이 잠길 정도라지만 바닥에 깔린 돌에 이끼가 껴서 첨범대며 여유있게 건널 수가 없다. 한여름이라면 일부러 물에 빠지는 일도 즐겁겠지만 책 꾸러미 들고 저 개울물을 여러 차례 지날 일을 생각해보면, 저절로 인정머리 없는 옆집주인에게 화가 치밀고야 만다. 책 꾸러미 뿐이랴. 저 원목과 벽돌은 어떻고.

 

 

(2g폰 사진)

 

원목을 속초에서 구입했는데 배달비 7만 원은 따로 였다. 그러면 뭐하나. 언덕에서 개울까지, 개울에서 집까지 100m이상을 날라야 했다. 언덕에서 개울까지는 남편과 내가 합심해서, 개울 건너기는 남편 혼자서, 다시 언덕을 올라가야하는 오두막까지는 작은 손수레에 의지해서 역시 남편과 내가 일일이 옮겼다. 그리고 책은 큰 배낭에 넣어서 수차례 물을 건너고 손수레에 실려 오두막으로 옮겼다. 여기까지가 지난 8월, 1박 2일에 했던 작업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벽돌을 구입했으나 지난 번에 비하면 별 것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으나, 개울물은 한여름의 물이 아니다. 남편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이 개울물을 차마 건널 수가 없어 인정머리 없는 옆집 대문 비탈길로 빙 돌아서 가는 길을 택했다.

 

그렇게 해서 집에 있는 책을 저렇게 옮겨놨다. 옮겨놓고 보니 몇 권을 빼놓고는 아까운 책이 별로 없어서 누군가 집어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기왕이면 좀 더 좋은 책을 많이 구입해야겠다는 새로운 다짐까지 생겨났다. 물론 저 책의 3~4 배 정도가 아직도 남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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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음력 생일에 익숙하다. 음력 날짜를 따지는 일이 전혀 낯설지 않다.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새 세대인 딸아이의 생일은 양력으로 쇤다. 어떤 이유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그렇다보니 내가 태어난 정확한 양력 날짜가 궁금했다. 해마다 음력으로 따져서 알아내는 양력 날짜가 아니라 바로 내가 태어난, 정확한 서기0000년 00월 00일 하는 날짜 말이다. 그래서 내가 사용하는 2g폰을 이용해서 날짜 검색에 들어갔다.

 

 

 

오른쪽 하단에 표기된 오늘의 음력일은 7월 29일이다. 손가락 하나로 빨간 사각형을 움직이면 과거를 나타내는 위와, 미래를 가리키는 아래로 무한정 날짜와 달과 연도가 바뀐다. 그래서 끝까지 가보았다. 음력 날짜가 표기되는 과거의 시작일과 음력 날짜가 끝나는 미래의 마지막 날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음력 날짜 표기 시작 일: 1900년 1월1일

*음력 날짜 표기 마지막 날: 2040년 12월 31일

 

이 휴대폰에는 무려 140년 간의 음력 날짜가 입력되어 있었다. 덧붙이자면 1900년 1월 1일 이전이나 2040년 12월 31일 이후에는 그냥 양력 날짜만 나오지 음력 날짜는 더 이상 표기되지 않는다. 그런데 음력 날짜 표기가 끝나는 날을 2040년으로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때즘 되면 더 이상 음력 날짜를 따지는 따위의 일을 하지 않게 될까? 아니다. 더 이상 이런 고물 같은 휴대폰이 사용되지 않을  것이다.

 

손가락 한 마디로 140여 년을 넘나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여 분 남짓. 해보시라. 해보면 알겠지만 멀미가 난다. 과거의 온갖 역사적인 사건과 관련된 숫자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가는 듯하지만 제각각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면 멀미 기운이 느껴진다. 이상 야릇한 경험이다. 2g폰으로 이런 경험이 가능하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 그래서 난 아직도 2g폰이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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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0-02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는 비가 많이 왔는데, 오늘은 날씨가 좋은 것 같아요.
명절 앞두고 인사드리러 왔어요.
nama님, 즐겁고 좋은 추석연휴 보내세요.^^


nama 2017-10-04 19:45   좋아요 1 | URL
여기저기 다녀오다보니 인사가 늦었어요.
서니데이님도 건강하고 즐거운 연휴 보내시기 바랍니다.^^
 

 

 

 

출근길. 동네 중학생들이 하나 둘 캐리어를 끌고 학교로 향하는 아침. 알록달록 사복 차림에 달그락달그락 캐리어 바퀴 소리, 수학여행을 떠나는구나. 15층쯤 되는 창문을 열고 젊은 엄마가 큰 목소리로 외친다.

 

"**야, 사랑해."

 

아침 풍경에 가슴이 울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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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17-05-18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날 이후 가끔 방에서 자고 있던 아이에게 가서 얼굴 한번 만져보고 나오곤 했어요.
저도 울컥하네요. ㅠㅠ

nama 2017-05-18 16:24   좋아요 1 | URL
사람들 가슴마다 절대로 뽑힐 수 없는 못 하나씩 박혀있지요.
 

 

 

깊은 산 속, 높은 곳에서 자생하는 병풍취. '산나물의 여왕'이라는 별명대로 맛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나 할까. 상큼하고, 향취가 남다른 것이 고기와 함께 먹으면 고기맛을 못 느낄 정도여서 딸아이는 고기 먹을 때 상추와 깻잎은 먹어도 병풍취는 먹지 않는다. 저 길다란 줄기를 살짝 껍질을 벗겨서 딸아이게 건네주면 냉큼 받아서 아작아작 잘 씹어 먹는다. 맛만 좋을 뿐인가. 크기는 엄청 커서 봄나물의 대왕급쯤 된다. 말하자면 크기는 대왕급, 맛은 여왕급이다.

 

병풍취를 산에서 채취하는 일은 언감생심. 현지인인 지인이 채취하여 냉장고에 고이 보관해둔 것을 선뜻 우리에게 주는 바람에 맛보게 되었다. 우리가 귀한 대접을 받은 것이다. 가을에 송이와 능이가 최고라면 봄엔 단연 병풍취가 최고다. 그간 강원도 오지을 오가며 얻어듣고 얻어먹은 경험에 따르면 그렇다는 말이다.

 

병풍취는 봄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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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5-07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병풍취의 봄 맛. 궁금하네요..^^

nama 2017-05-07 22:21   좋아요 0 | URL
제가 먹은 봄 나물 중 최고라는 의미지요.^^ 반하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