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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사랑 받기를 허락지 않는다 - 콩나물 팔다 세상을 뜬 경제학사 ㅣ 일제강점기 새로읽기 3
최영숙 지음 / 가갸날 / 2018년 10월
평점 :
최영숙.
1906년 경기도 여주 출생.
1921년 이화여자고보 졸업
1922년 중국 유학
1924년 흥사단 입단
1926년 6월 남경 회문여학교 졸업
스웨덴행
1931년 스톡홀름 대학 졸업(경제학사)
세계만유
인도인 미스터 로와 결혼
귀국
1932년 4월 23일 사망
여기에 실린 최영숙에 대한 글은 1930년대 초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기사와 최영숙의 일기가 주를 이룬다. 지금 읽어보면 다소 투박하고 세련미도 없지만 시대를 감안해서 읽는다면 나름 읽는 맛도 있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관심은 어떤 한 인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보다 '스캔들'에 쏠려있어 읽어나가기에 민망한 부분도 적지 않다. <최영숙 지하 방문기, 명부행 열차를 추격하면서>는 한 인간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희화화하는 과정이 잔인하고도 뻔뻔스럽기까지 하다.
최영숙의 이력만보아도 시대를 많이 앞서간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고학을 하며 스웨덴에서 대학을 다녔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다. 지금도 쉬운 일은 아니니까. 그러니 뭇사람들의 관심과 호기심의 대상이었을 텐데 아깝게도 뜻을 펴보기도 전에 젊은 나이에 태아를 사산하고 그 여파로 죽음에 이르고 만다.
귀국한 이후 제대로 뜻을 펼치기는커녕 가족의 생계를 도맡아야 하는 과정도 눈물겹다.
서대문 밖 교남동 큰 거리에 조그마한 상점을 빌려서 장사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배추포기, 감자, 마른 미역줄기, 미나리단, 콩나물을 만지는 것이 스톡홀름 대학 경제학사 최영숙 양의 일상직업이 되었답니다.
이름없이 스러져간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래도 후대에 이름이 불리워지고 그 짧은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 해도 그 사람의 삶을 헛되었다고만 볼 수는 없겠다. 좀 더 오래살아 자신의 뜻을 펼쳤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스웨덴은 예나 지금이나 부러운 나라임에 틀림없다. 최영숙의 글에도 부러움이 잔뜩 묻어있다.
물론 남녀는 절대평등으로 정치적으로나 경제상으로나 차별이 없습니다. (중략)
무슨 직업에고 조합이 있어서 노동시간 제한과 최저임금 제한이 있는 고로 공장주도 그 세력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중략)
스웨덴 가정의 특색으로 말하면 자유 평등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을 구속하지도 않고, 또 자녀 교육은 일종의 의무로 알아서 교육을 시키지만 그 대가를 얘기하는 일이 없습니다. 자녀를 다 길러서 성인이 되면 분가시켜 독립생활을 하도록 하되, 자녀에게 붙어서 얻어먹겠다는 관념은 조금도 없습니다. 그리고 부모 자식 간에나 부부 간에 절대로 평등입니다.
자식을 노후보험쯤으로 여기는 시대에 이쯤되면 불온(?)하다고 해야 할까. 이런 분이 오래오래 살았더라면 세상이 조금은 변하지 않았을까. 안타까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