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초에 한 신문의 '책읽기 365'에 착안하여 '사회적 독서를 시작해보자'며 나대로의 목록을 제안한 바 있다. 내가 1월의 목록으로 꼽은 책은 네 권이었는데, 지승호의 대담집 <금지를 금지하라>(시대의창, 2006),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알마, 2006), 테리 이글턴의 <우리시대의 비극론>(경성대출판부, 2006), 그리고 김경주의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코리아, 2006)가 그것들이었다.

 

 

 

 

네 권의 책은 각각 네 가지 범주를 고려한 것인데, (1)한국사회에 대한 책, (2)미국과 세계에 관한 책, (3)철학/이론서, (4)문학서, 가 그 범주들이다. 한달이 지나서 돌이켜보니 네 권의 책 모두 구입은 했지만 한권도 완독은 하지 못했다. 나대로 변명이 없는 건 아니나 취지에 스스로가 적극 부응하지 못한 점은 반성할 여지가 있다. 그래도 <금지를 금지하라>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한 꼭지씩을 읽었고,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에서 몇 편의 시를 읽었으며 나대로 이 책들을 '광고'했으니 의미가 없는 건 아니겠다. <우리시대의 비극론> 같은 경우는 좀 '무거운' 책에 들기에 일단은 사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 싶고(사실 복사해둔 원서를 아직 못 찾고 있다).

 

 

 

 

참고로, 어떤 평자는 이글턴의 이 책을 <미학사상>(한신문화사, 1995)과 함께 그의 가장 좋은 책으로 꼽았다(<미학사상>의 원제는 '미적인 것의 이데올로기' 혹은 '미학의 이데올로기' 정도이다. 왜 샤프한 제목을 놔두고 둔감한 제목으로 옮겼는지 모르겠다). 이글턴 버전의 '미학사'인데, 먼로 비어슬리의 <미학사>(이론과실천, 1989), 베르너 융의 '미학사 입문' <미메시스에서 시뮬라시옹까지>(경성대출판부, 2006), 아직 한권이 덜 나온 타타르키비츠의 <미학사1,2>(미술문화, 2006) 등과 같이 읽어볼 수 있겠다.

아무려나 다시 달이 바뀌고 보니 해야 할일들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의 '의무감'에 2월의 목록도 제안하도록 한다. 서재를 즐겨찾으시는 분들 가운데 1% 정도, 즉 10분 정도는 취지에 공감하여 '사회적 독서'에 동참하실지 모르고(적어도 책은 사서 꽂아두실 수 있겠다. 사실은 그게 중요하다) 그 정도라면 나의 '발의'가 무색하진 않겠다. 2월은 날수도 적은지라 좀더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을 골랐다.

 

 

 

 

먼저, '한국사회를 읽자'는 취지로 고른 책은 남재일의 <그러나 개인은 진화한다>(강, 2006). 고종석의 <신성동맹과 함께살기>(개마고원, 2006)에도 눈길이 갔지만, <그러나 개인은 진화한다>의 경우 비교가 안될 만큼 세일즈포인트가 턱없다. 나부터도 한권 사줘야겠다. 가격 대비 분량 빵빵하고, 읽은 분들의 평도 좋다. 소개를 옮기자면, "기자 시절부터 다방면의 글을 써온 남재일의 사회/문화 비평집. 영화를 중심으로 대중문화 작품들을 읽어내려간 글들과 최근의 한국 사회 이슈들에 대한 발언들, 그리고 한대수·최민식·임상수·김훈 등 한국 대중문화를 이끌어가는 인물들과의 인터뷰를 수록했다."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갖는 것은 인터뷰들이다. 지승호 대담집의 경우도 그렇지만, 나는 동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육성을 듣고 싶다.

그리고 두번째 '미국을 알자'란 취지로 염두에 두었던 것은 엠마뉘엘 토드의 <제국의 몰락>(까치글방, 2003)인데, 어느새 품절이다(책은 그나마 사둔 게 다행이군). 그래서 다시 고른 책은 '악동 감독 케빈 스미스의 미국 문화 뒤집기'란 부제를 가진 <순결한 할리우드>(media2.0, 2006). 이미 읽으신 분들도 많을 책인데, 원제는 'Silent Bob Speaks'(2005)이고,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와 제작자를 끌어들이는 시나리오를 쓰는 영화감독, 미국 인디영화계의 총아 '케빈 스미스'의 에세이. 재기발랄하고 유쾌한 문체로 미국 대중문화계의 이면을 파헤친다. 지은이가 할리우드에서 보고, 듣고, 소화시킨 미국 문화의 모든 것을 밀도있게 담아낸 책이다." 물론 나의 취지는 미국문화의 한복판에서 그가 던지는 '육성'을 들어보자는 것이다. 목차에서 나의 관심을 끄는 꼭지는 데이빗 린치의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지젝의 <부정성과 함께 머물기>의 출간이 다소 지연되는 바람에 무주공산이 된 철학/이론 파트에서는 로버트 니스벳의 <보수주의>(이후, 2007)를 골랐다. 하도 여기저기서 보수주의를 떠들어대고 있으므로 보수주의가 정말 뭔지 좀 알아둘 필요가 있겠다. '신보수주의의 창시자'로도 불린다는 니스벳의 이 책은 (얇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보수주의를 가장 잘 정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보수주의 개론서"라고 평가되는 모양이다. "과연 보수주의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서 그것을 실체를 찾을 수 있는가? 저명한 보수주의 사회학자인 로버트 니스벳이 정치적 집단주의와 근본적 개인주의를 공격하는 보수주의의 본질을 명쾌하게 분석한다"니까 일독해봄 직하다. 원서의 표지를 보니 부제는 '꿈과 현실'.

그리고 끝으로 문학서로는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열린책들, 2007)을 고른다. 모더니즘에 대해서 공부도 해둬야 하고, 막간을 이용해 안 읽어둔 고전도 읽어둘 겸. 이미 여러 종의 번역서가 나와 있으므로 판본은 임의로 고르실 수 있겠다(기억에 학부시절엔 삼중당문고 정도가 유일했었다.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실실거리며 감상을 전해주던 친구가 생각난다. 버지니아 울프처럼 세상을 떠났다).

잔소리 같은 소개를 보태자면, "20세기 문학사에서 제임스 조이스와 함께 이른바 '의식의 흐름'이라는 실험적인 서술 기법을 발전시킨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대표작. 섬세하고 아름다운 필치와 비범한 지성과 창조력이 결합된 장편소설이다." 그래도 300쪽이 안되는 분량이니 분량으로만 치자면 '만만한' 작품이다.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주연의 영화 <댈러웨이 부인>(1997)이 작년 가을에 개봉되기도 했었다. 겸사겸사 봐두면 좋겠다...

07. 02.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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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1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2-01 09:59   좋아요 0 | URL
**님/ 네. 안 그래도 부지런하시단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구내서점에서 구매할까 했는데, 보내주시면 잘 읽어보겠습니다.^^

paviana 2007-02-01 10:16   좋아요 0 | URL
사놓고 베고만 자는 책들이 너무 많은데, 님의 말씀 들으니 위안이 되는군요.ㅎㅎ

짱꿀라 2007-02-01 10:43   좋아요 0 | URL
로쟈님, 정말로 이곳에 들어오면 책잔치가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답니다. 어찌 그렇게 책 소개를 잘 해주시는지 매일 감탄하고 갑니다. 좋은 정보 가지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로쟈 2007-02-01 10:46   좋아요 0 | URL
paviana님/ 아시다시피 책의 용도야 다양하지요.^^
santa님/ 별로 돈 드는 잔치도 아닌 걸요.^^

biosculp 2007-02-01 10:48   좋아요 0 | URL
보수주의와 더불어 나온 자유주의는 사서 책장에 진열해 두었습니다.
근래 서점가서 헉소리 나는 느낌을 받은것은 열린책들에서 나온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새로운 판본입니다. 아 사고 싶다라는 지름신의 충동을 일으켰는데 하드커버도 나온다니 비교해보고 가격만 적당하면 다른책들 접어두고 사려고 합니다.

동대장 2007-02-01 10:54   좋아요 0 | URL
2월 책 중에 한권 읽어볼랍니다. 참 바지런 하시네요.
항상 좋은 정보에 감사드려요.....

수유 2007-02-01 10:58   좋아요 0 | URL
"너는 꽂아두기 위해서 책을 사지? " 동생이 늘 제게 하는 말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당장 읽기보단 꽂아두는 책이 훨씬 많습니디만,. 그러나 사지 않을 수 없을 뿐더러 언젠가는 손에서 읽을 날이 옵니다..

Runa 2007-02-01 11:21   좋아요 0 | URL
부지런하신 로쟈님의 사회적 독서목록, 저도 참조하고 싶네요.
한편의 불순한 생각, 독서에 국한되지 않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로쟈님의 공적 생각은 어떨까? 예를 들면 긴급조치관련 문제 같은.. 아침에 좃선을 보니 괜히 시비 걸고 싶은 기분이네요.
그건 글쿠, 열린책들에서 댈러웨이 부인은 또 언제 나왔데요?
솔출판사의 울프 전집을 통해서 봤었는데. 그때 참 좋은 기획이다 싶었는데 그닥 빛을 못 본 것 같아 약간 안타까운 기억이..

드팀전 2007-02-01 13:36   좋아요 0 | URL
<순결한 헐리우드>는 왠지 발칙할 것 같아서 눈여겨 봤지만 ..지금은...
전 산 책은 반드시 읽자는 주의여서...3-4권 이상 쌓이면 불안해집니다.대개 5만원 맞추기 위해 함께 주문하다보면 좀 쌓이는데..하여간 쌓이면 마음이 않좋습니다.그래서 미리 사기는 잘 하지 않는 편이지요..책을 많이 않봐서 그런가 봅니다.

로쟈 2007-02-01 13:49   좋아요 0 | URL
biosculp님/ 도스토예프스키는 새로 나온 장정이 더 맘에 들더군요. 전은 이전의 판본들을 두 종 다 갖고 있어서...
동대장님/ 동참해주셔서 감사.^^
수유님/ 보석들 모으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horasin님/ 저는 좃선을 보지 않습니다. 다른 페이퍼들에서 이미 피력해놓은 바 있지만 저는 '정치적인 말'들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자칭 보수니 진보니 하는 '말들'이 아니라 그의 생활이고 일상이라고 봅니다. 대학 강단에서 진보적 이념을 늘어놓는 건 쉬운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대학이란 제도 자체가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언론이나 종교도 마찬가지구요... 그리고 울프, 책이 독자와 만나기 위해서는 그냥 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독자들도 나름 게으르기 때문에...
드팀전님/ 그런 뒷맛까지도 '미국적'인 게 아닐까요... 그리고, 제가 (3-4권만 쌓이면 불안해지는) 그런 아빠라면 딸아이가 너무 좋아할 거 같습니다.^^

수유 2007-02-01 16:31   좋아요 0 | URL
모을수 있다면야 보석도 모으고 싶군요 --;;

로쟈 2007-02-01 16:32   좋아요 0 | URL
책을 보기를 보석같이 하시면...

2007-02-01 17: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바 2007-02-01 18:00   좋아요 0 | URL
부득이하게 지젝의 책이 선정되지 못한 게 못내 아쉽습니다.^^1월 말에 출간된다고 해서 계속 기다렸는데 말입니다. 로쟈님이 출간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주실 거라고 믿고 있겠습니다.

로쟈 2007-02-01 18:23   좋아요 0 | URL
**님/ 섭섭이라니요. 저도 빨리 책을 내서 신세를 갚아야겠습니다.^^;
에바님/ 다음주에는 나올 거라고 하네요...

2007-02-01 2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2-01 21:07   좋아요 0 | URL
**님/ 지나친 말씀이시구요.^^ '뚜렷한 목소리'가 저는 때로 진정한 정치적 행위에 대한 가림막이 아닌가란 생각을 합니다. 중요한 건 '정치'가 아니라 '정치성'(정치적인 것)이고 이건 두루 편재하는 것 아닐까요? 따라서, 저는 매일, 매순간 아주 적극적으로 정치적인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우리는 한시도 그로부터 면제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이해해주시면 되겠습니다...

마늘빵 2007-02-01 23:53   좋아요 0 | URL
로쟈님 보면 참 분야가 넓으세요. 저는 시는 봐도 모르겠어요. -_-

로쟈 2007-02-02 00:04   좋아요 0 | URL
고종석의 <언어의 속살>만 따라 읽으셔도 웬만한 시집들은 읽은 게 되는데요...
 

주로 오마이뉴스에 책동네 서평을 쓰고 있는 시민기자 정민호씨의 에세이집 <산티아고 가는 길>(에세이, 2007)이 출간됐다. 알라딘 동네 상주민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소식일 테지만, 오마이뉴스에 동료기자의 서평이 게재되었기에 옮겨놓는다. 한때 알라딘에도 '중복' 연재되었던지라 나도 멋진 사진들과 에세이들을 (다는 읽지 못했지만) 접해본 기억이 있다. '젊음이 좋긴 좋은 거구나'란 생각을 갖게 만들었던, 그래서 약간은 질투마저 느끼게 했던 에세이들인데, 책으로 만나는 감회는 또 색다를지 모르겠다. '산티아고'가 스페인 지명이라는 것밖에 모르지만 '젊음'과 동행할 수 있다는 게 또 얼마나 멋진 일인가(물론 고생은 젊은이만 하면 된다). 김현자 기자의 서평기사와 함께 박스 인터뷰도 같이 옮겨놓는다.

오마이뉴스(07. 01. 30)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세상을 만나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규칙 같은 건 없다. 대신 자기 조절이 필요하다. 얼마나 걸을지 알아서 판단해서 적당한 곳에 있는 알베르게에 머물러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몸이 좋다고 무리해서 걷는 것도 경계해야 하고 아무것도 모른 채 계획세운대로만 하겠다고 무리하게 몸을 놀리는 것도 위험하다. 이 길은 하루에 끝나는 것도 아니거니와 산티아고에 간 뒤에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알고 배려하는 것이다."

언뜻 평범한 이 부분을 읽다가 멈추어 섰다. 나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앞서가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곁눈질하고 부러워하면서 조바심을 낸 나머지 지나친 욕심을 종종 부리는 나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에. 나는 나의 삶을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가? 우리 삶이 그런 것처럼 산티아고 가는 길에는 정해둔 규칙이 없다. 다만 걸을 뿐이다. 산티아고 성당을 향하여! 함께 걷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 누구의 발걸음도 나의 것이 될 수 없다. 끝까지 걸어가는 것도 중간에 포기하고 주저앉는 것도 자기 몫일뿐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는 다른 사람이 가는 길만을 기준으로 삼고 있지 않는가!



<산티아고 가는 길>은 최근 한 달 새에 가장 재미있게 읽은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오마이뉴스>에 서평을 쓰고 있는 정민호 시민기자. '보디랭귀지만 믿고 떠난 여행'이란 제목으로 지난해(10~11월) <오마이뉴스>에 실렸던 산티아고 여행기 22꼭지를 책으로 묶은 것이다.

저자가 배운 외국어는 프랑스어가 전부. 그마저도 가물가물 하단다. 그야말로 가장 절박한 만국 공통어인 보디랭귀지만 믿고 떠난 여행이다. 그런데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들의 언어로 함께 걸어가는 그 길, 산티아고 순례자의 800km가 아름답고 생생하게 펼쳐진다. 게다가 저자에게 외국여행은 처음인 아마추어인지라 여행에서 당연히 갖추어야 하는 준비물까지 빠뜨리고 만다. 도시에서 걸어 보았자 얼마나 걸었을까. 그 걸로는 턱도 없지. 그러니 한 달로 안 되는 빠듯한 일정으로 800km를 걸으려면 다리에 물집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잖아?

그런데 저자는 비상약품은커녕 작은 손전등하나도 준비하지 않아 여러 사람이 곤한 잠을 자고 있는 '알베르게(여행자들의 숙소)'에서 라이터 불에 의지하여 한밤중의 급한 볼일을 보거나 동트기 전 어두컴컴한 미명 속에 짐을 싸서 알베르게를 나서기도 한다. 그래서 무모하고 불편해 보이는 여행이다. 하지만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와 가치관이 전혀 다른 사람들끼리 이른바 드림팀을 만들만큼 산티아고 가는 길이 감동스럽게 펼쳐진다. 매일 걸아야만 하는 30km에 달하는 여정을 동행하고 서로 격려하면서 그들은 그렇게 걷고 있다. 단지 몇 시간, 단지 몇 마디를 나누었을 뿐인 그들이 같은 길을 함께 간다는 이유만으로 끈끈한 관계가 되고 있다.

평범한 일상에서는 꿈도 꾸지 못할 감동이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펼쳐진다. 그래서 산티아고 가는 길은 아름답다. 애초부터 아름다웠던 길은 아니었다.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에 만들어진 길이 있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길이 되었다. 예수의 제자 야곱이 복음을 전파하러 가던 길이 순례자의 길, 즉 산티아고 가는 길이 되었단다. 저자는 각국에서 온 순례자들과 함께 산티아고 가는 길의 여정에서 인생의 참뜻과 인간이 인간에게 제일 아름다울 수 있는 인간애를 배우고 있다. 저자는 그 감동을 22편의 에세이로 전하고 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여행 에세이지만 산티아고 가는 길의 풍경보다 그 길을 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그들의 마음과 배려, 아름다움. 그렇게 만나는 세상(삶).

"산티아고 성당을 향해 손을 흔들어본다. 내 가방 끈 고쳐주던 프랑스 할머니들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부엔 카미노! 산티아고 가는 길, 무모한 여행은 끝났지만, 인생이라는 길은 계속된다. 이제부터 이 길에서 배운 것을 내가 가는 길에서 꼭 실천하리라. 부엔 카미노! 내가 미처 걷지 못한 길을 다시 걷기 위하여 올 때, 이 다짐이 무색하지 않도록 앞으로도 열심히 걸어야겠다.

산티아고, 고마워, 다시 올 때까지 무사하게 있어라!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나를 위하여,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이미 걸었던 사람들과 앞으로 걸을 사람들을 위하여. 부엔 카미노! 웃으며 돌아섰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끝났지만, 아직 가야할 길은 많으니까 다시 힘을 내야 한다. 신발 끈을 고치고 다시 걷는다. 무모한 여행은 계속되는 것이다." -산티아고 가는 길 맺는 글


<오마이뉴스>에 서평을 함께 쓰면서 동지애 같은 것을 느끼고 있던 터라, 저자의 스페인여행 소식은 한마디도 부러움뿐이었다. 여행지가 외국이라는 것이나 한 달 가까운 날들이라는 것은 둘째고 잠시 일상을 접고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스페인? 산티아고? 그런데 왜 하필 산티아고야? 아마존이나 아프리카도 좋지 않을까? 아님 쿠바?...그런데 대체 사람들은 왜 산티아고에 가고 싶어 하는 걸까?'

이런 궁금증과 함께 스페인어를 모르고 영어도 그다지 신통치 않은 실력으로 보디랭귀지만 믿고 떠나는 무모한 젊음이라니. '모든 것이 부럽다!' 솔직히 그랬다. 한 달? 이젠 돌아오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어느 날부터 '산티아고 가는 길'에 대한 저자의 여행기가 <오마이뉴스>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생생한 여행기를 읽으며 책으로 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뜻밖에 날아든 기념품 <산티아고 가는 길>이었다.

책을 모두 읽고나자, 여행을 떠난다고 했을 때 느꼈던 그 부러움은 더 커졌고 산티아고 가는 길은 나의 꿈이 되기도 했다. 문학 속에서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자들을 더러 만났지만 단 한 번도 꿈꾼 적 없는 산티아고였는데 말이다. 몇 년 후, 내 아이들과 꼭 함께 가고 싶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는 우리들이 가야 할 세상과 삶이 그대로 압축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아름다움을 더 많이 나누려면 영어를 더 배워야겠지만.

"언제부턴가 제 삶과 관련된 고민 몇 가지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끙끙대보았자 풀리지 않을 고민들. 그래서 무작정 걷고 싶었고, 걸으면서 생각하면 고민이 풀릴 거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시작한 여행이었습니다. 국토종단도 떠올랐지만 내 성격으론 중간에 핑계를 대고 돌아올 것이 뻔하고. 때문에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자!' 고 생각했고 그렇게 가게 된 곳이 산티아고였습니다.

산티아고를 처음 만난 것은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통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막연히 알고 있는 정도였지요. 그런데 외국여행을 하자 마음먹었을 때 문득 <온 더 로드>에서 읽은 글귀가 떠올랐습니다. '왜 꿈만 꾸는가. 한번은 떠나야 한다. 떠나는 건 일상을 버리는 게 아니다. 돌아와 더 잘 살기 위해서다' 결국 이 글귀 때문에 산티아고로 갔는데 지금 가장 행복하고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역시 가길 잘했습니다."

- 산티아고 여행의 의미? 여행 후 달라진 점은?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에 세상이 무섭지가 않더라고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혼자서 산티아고에 갔다 왔는데...'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마음이 편해지고 자신감도 붙고 힘이 나거든요. 얼마 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회사에 면접을 볼 때도, 입사하여 일을 배우면서도 그랬죠. 일종의 든든한 부적 같은 거랄까. 아, 무섭지 않다는 것보다는 여유로워졌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 여행 중 가장 힘들었던 것과 좋았던 것은.
"물집의 고통이 심했을 때, 다른 사람들이 나 때문에 늦게 걷게 만드는 것 같아서 민망하기도 하고 고마우면서도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최소한 걷기 여행 준비라도 했어야 하는데. 손전등이나 비상약품 등을 준비하지 않은 준비부족으로 인해 생겼던 일들이 힘들고 불편했습니다. 산티아고를 생각하면 모두 다 좋아요. 지금도 가끔씩 순례자 여권을 보거든요. 그러면 지나간 길들이 다 보이는데 왜 이리 웃음이 나오는지... 정말 그 길이 다 좋네요. 그래서 저는 5년 후에 또 가려고 한답니다. 5년차에 휴가가 한 달 주어지거든요. 그때는 영어를 더 자유롭게 구사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 산티아고 가는 길을 꿈꾸는 분들에게 꼭 하고픈 말은?
"두려워하지 말자. 바로 그것이겠지요. 사실은 아까 저녁 먹을 때도 친구한테 그 말을 하고 왔어요. 이것저것 다 따지면 끝이 없고 갈 수도 없는 것 같고... 그냥 자신을 가지고 일단 떠나고 보자. 돌아와서 더 잘살기 위해!"



혼자 걷는 여자들도 많을 만큼 산티아고 가는 길은 안전하다는 것이 그의 귀띔이다. 매일 20~30km를 걷고 공동 숙소에서 잠을 자고, 이국 사람들과 낯선 시간들을 떠듬떠듬 말을 나누며 어울리면서 언제 이 많은 글들을 썼을까? 틈틈이 메모해 와서 정리하였다고. 산티아고에 가려고 마음먹고 정보를 찾아보았는데 자료가 너무 부족하더란다. 그래서 더 많이 알리고 싶은 마음에 <산티아고 가는 길>을 썼고 책으로 묶어냈단다. "더 하고 싶은 말이 없는가?"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한다.

"글쎄요. 제가 좋아졌어요. 전에 보다 훨씬 강해졌고 삶에 대한 구체적인 애정과 자신감이기 생겼어요. 가끔씩 생각해요. 내가 정말 어떻게 그렇게 많이 걸을 수 있었고 많은 고통들을 참아 낼 수 있었는지를! 그런데 정말 했더라고요. 제 힘으로. 그래서 제가 자랑스러워요."
 
07. 0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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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07-01-31 11:04   좋아요 0 | URL
오, 제목만 보고 김남희씨의 책 이야기하시는건가 생각했답니다. 새로운 책이군요. 저도 산티아고. 한 번 걸어보고 싶다 꿈꾸게 되던데(이놈의 게으름을 생각하면 그저 꿈일 뿐이겠지만;).. 이 책, 궁금해지네요. ^^

paviana 2007-01-31 11:10   좋아요 0 | URL
로쟈님의 유머에 점점 중독되는거 같아요.
에구 정군님이 다시 생각나네요.흑흑흑

나비80 2007-01-31 12:55   좋아요 0 | URL
몇 부분 올려놓으신 것만 봤는데도 사진이 참 좋네요. 글도 재밌을 것 같아요. 저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열망이 솟는데요. 뿅~~!!

stella.K 2007-01-31 13:55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문득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현자 씨는 동료기자지만, 전 순수 독자란 입장에서...^^

비연 2007-01-31 15:59   좋아요 0 | URL
예전에 정군님 서재에 산티아고에 대한 글들 열심히 보았었는데....
책으로 써도 좋겠다 싶었는데 정말 나온 모양이군요!
서재에 계속 계셨더라면(항상 ~면..은 뒷북이지만..ㅠㅠ) 축하한다는 메세지라도 남길 수 있을텐데 말이죠. 쩌업. 그래도, 이렇게라도 소식 전해주시니 다행~^^

로쟈 2007-02-01 00:01   좋아요 0 | URL
다들 반가워하시는 걸로 보아 정군님이 인세를 좀 챙기실지도 모르겠네요. 사실 리뷰 좀 쓰는 것보다야...
 

지난주 출간된 책 중에 <기억 - 제3제국의 중심에 서서>(마티, 2007)가 '리콜'에 들어갔다는 소식은 접했는데(작년말에는 그린비출판사가 <자본주의 역사강의>를 리콜한 바 있다), 내일자 한국일보에 자초지종에 관한 인터뷰 기사가 실렸기에 옮겨온다. 거의 1,0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에 가격 또한 상당해서 감히 손에 들어보지도 못했던 책이었다. 그런 만큼 구입자들에게 '의미있는 책'이었을 텐데, 출판사측에서는 이런 점도 고려한 듯하다. 가장 바람직한 건 물론 한번에 신뢰할 수 있는 책을 내는 것이지만, 차선의 방책은 책에 문제가 있을 경우에 '책임'을 지는 태도이겠다. 신뢰할 수 없는 책들을 내고선 입 닦는 태도가 가장 나쁘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알고 보니 '마티'는 1인 출판사인데, 어려운 결정을 내리고 손해를 감수한 대표의 결단에 격려를 보낸다(사실 '30여 개의 오자'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출판사들 적지 않다).      

한국일보(07. 01. 31) ‘마티’ 정희경 사장 “오자 30여개… 다시 찍기로"

정희경(30)씨는 <마티>라는 1인 출판사의 사장이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젊은 출판사 대표이고, 마티는, 1인 출판사로는 유일하게 인문서적만 내는 곳이다. 그는 2005년 4월 출판 등록한 이래 지금껏 17종의 책을 냈고, 그 책들을 찾는 이들이 적으나마 꾸준히 있고, 타산 앞세워 단 한 권도 절판하지 않았다는 점을 자랑스러워 한다(*출간된 지 2-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절판된 책들 적지 않다).

가장 최근에 낸 책이 나치 독일의 군수장관을 지낸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의 회고록 <기억-제3제국의 중심에 서서>(957쪽ㆍ3만7,000원)이다. 그런데, 출간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이 책을 그 스스로 절판 시켰다. “오자가 30여 개나 돼 독자에 대한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했”고 그래서 “수정판을 찍어 구매자에게 다시 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여유가 있나 보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라고 한다. 돈 안 되는 인문서만 고집하는 것도 그렇고, 이번 결정도 무모해보이기 때문이다. “그럴 땐 ‘땅이 좀 있어요’라고 말하고 웃어줘요. 문을 닫네 마네 하는 판인데 말이죠.”(*실제로 땅 밑천으로 책장사하는 출판사들이 많다고 한다.) 

-그 정도로 손실이 큰가.

“들인(일) 돈만 쳐서 약 2,500만원 정도 돼요. 제 책은 초판 2,000부를 1년 안에 소화하기도 쉽지 않거든요. 재판 찍으려면 또 목돈 들고, 그 돈 회수하려면 더 오래 기다려야 하고…. ‘투자- 회수- 재투자’의 아슬아슬한 균형에 이처럼 치명적인 변수가 터진 거잖아요.”

-대안은 없었나. 가령, 정오표를 따로 낸다든가.

“이틀 동안 고민도 하고, 조언도 구했어요. 그런데 내용상의 오류가 아니라 단순 오ㆍ탈자가 대부분이에요. 마티 이미지에는 그런 오자가 더 치명적일 수 있거든요. 후회하진 않아요.”(그는 ‘오프 더 레코드’를 조건으로 이번 사태의 경위를 설명했는데, 그 역시 어이 없는 피해자였다. 그렇다고 책임이 경감되지는 않는다. 피해자이자 책임자인 당사자는 이중의 고통, 곧 피해의 상처와 책임의 하중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아마도 편집/교정을 외주에 맡겼던 모양이다.) 

-어떻게 할 생각인가.

“제가 사는 오피스텔 보증금(2,000만원)을 빼기로 했어요. 사무실(보증금 500만원)은 빼봐야 별 도움이 안 되거든요. 현재 진행중인 책만도 10종이 넘고, 집필이나 번역이 거의 마무리된 것도 있어요.”

대학 96학번인 그는 수습 월급 150만원의 대기업에 취직했다가 4개월 만에 월급 50만원 주는 출판사로 이직했다. “기업 안에서 나 자신을 찾을 수 없어서”였다. 하지만 자신의 취향과 역량을 오롯이 책에 반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더라고 했다. 독자층이 적은 분야에 기약 없이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출판사는 흔치 않다. 그래서 차린 게 마티다. 그는 자신의 모든 책의 기획ㆍ편집ㆍ디자인을 해왔다.

“우리 근대 형성에 일본 못지않게 영향을 준 서양 근대에 대한 책은 많지 않아요.” 세기말 파리의 시각문화 양상을 분석한 책 <구경꾼의 탄생>이나, 20세기 초 상용화된 최초의 항공 운송수단인 비행선이 대중 문화에 미친 영향을 살핀 <비행선, 매혹과 공포의 역사> 등이 그렇게 출간됐다. 서양 미학사의 고전인 에드먼드 버크의 <숭고와 아름다움의 이념의 기원에 대한 철학적 탐구>도 그가 낸 책이다.

돈이 돈을 버는 자본의 논리가 출판시장을 장악한 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먹이 피라미드 안에, 돈 없이 돈 안 되는 인문서만 내는 마티의 자리는, 적어도 논리적으로는 없다. 주거와 사무를 겸할, 보증금 싼 집을 구하러 가는 길이라며 털고 일어서던 그는 “다 잘 될 것”이라고 했다. “제가 낸 책이 모두 살아있잖아요. 뜨겁게 활활 타지는 않아도 가장 오래 타는 출판사를 만든다는 게 제 모토랍니다.”(최윤필 기자) 

겸사겸사 <기억>에 대한 언론 리뷰도 하나 옮겨놓는다. 조만간 수정판의 '속살'이 드러나길 고대하면서.

서울신문(07. 01. 20) 침묵했던 제3제국 속살 드러내다

알베르트 슈페어의 ‘기억-제3제국의 중심에서(김기영 옮김, 마티 펴냄)’는 96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 우선 독자를 압도한다. 이처럼 두꺼운 자서전을 펴낸 슈페어(1905∼1981)는 과연 누구인가.‘히틀러의 건축가’로서 그는 히틀러의 과대망상적 아이디어를 현실로 옮긴 장본인이다. 또한 2차 세계대전 이후 전범재판에서 나치 독일의 장관 중 유일하게 살아 남았다.20년 징역형을 언도 받고 복역을 마쳤다.



독일 만하임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슈페어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건축가가 되었다. 그는 1931년 베를린의 대학생을 상대로 맥주홀에서 가진 히틀러의 연설을 처음 들었다. 히틀러에 대한 첫인상은 “열광에 넘치는 분위기 자체만으로 깊은 인상을 받았지만 그의 모습 또한 나를 놀라게 했다…모든 것이 적절한 겸손함을 풍겼다.”란 것이었다.

조금은 쑥스러운 듯 유머를 섞은 그의 연설이 풍기는 분위기와 열정에 빨려든 슈페어는 나치의 민족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에 가입한다. 나치당 청사 공사에 참여한 슈페어는 뉘른베르크 전당대회의 장식과 시각적 장치를 맡아 큰 성공을 거둠으로써 히틀러의 신뢰를 얻는다. 히틀러의 대중선동을 물리적으로 뒷받침하는 장치를 만든 것이다. 나치 정권에서 최연소인 37살의 나이에 군수장관에 오른 슈페어는 전시경제를 장악한다. 또한 점령지 강제수용소의 노동력을 군수생산을 위해 착취했다. 하지만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모든 시설을 파괴하라고 명령하는 히틀러에 맞서 독일의 문화유산과 산업시설을 보호하려고 노력했다.

종전과 함께 연합군에 체포된 슈페어는 변명으로 일관하며 히틀러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 다른 피고인들과 달랐다. 자기반성과 변호를 절묘하게 뒤섞은 태도를 보이며 ‘선량한 나치’ ‘최고의 피고인’으로 불리며 교수형을 면한다. 재판 과정에서는 자신의 서명이 들어 있는 서류가 제시되면 무조건 히틀러의 명령이었다고 설명하는 피고들을 향해 “엄청난 월급을 받는 우편배달부들!”이라고 외쳐 세계 신문에 대서특필됐다.

그는 자살을 하려고 수건으로 아픈 다리를 묶어 정맥염을 유발하거나, 니코틴도 물에 녹으면 치명적이란 내용을 기억하고 부서진 시가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그러나 자살 시도를 행동에 옮기지는 않았다. 슈페어는 메모광이었다. 감옥에서 군수장관으로서 작성한 업무일지, 편지, 전보 등을 바탕으로 내부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히틀러의 내밀한 모습을 담아낸다.



히틀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가 비전문성이었다든지, 체중을 항상 걱정했다는 일화 등을 생생하게 기록했다. 히틀러는 독학으로 자수성가를 이루었기에 모든 분야에 문외한이었지만, 재빠른 두뇌회전으로 전문가가 시도하기 어려운 특별한 방식을 고안했다. 전쟁 초기에는 과감성으로 승세를 잡았지만, 패배가 확산되면서 비전문성은 아집으로 변했다.

“끔찍하군! 배를 불룩 내밀고 걸어다니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그건 바로 정치적 파멸이야.”라고 외치며 채식을 고집했던 히틀러는 고기를 먹는 사람들을 조롱했다.1943년 이후 대중으로부터 고립된 히틀러는 “슈페어, 요즘은 친구가 둘뿐이군. 브라운(히틀러의 연인이자 비서었던 에바 브라운)과 개라네.”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치 정권의 ‘속살’을 보여주는 ‘기억’은 유일한 내부 증언으로서 사료적 가치가 크다. 그럼에도 슈페어의 가장 두꺼운 자기변명이란 비난이 뒤따르는, 여전히 논란 속에 놓인 책이다.(윤창수기자)

07. 01. 30.

P.S. 둘러 보니 오드리 설킬드의 <레닌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2006)이 또한 마티에서 낸 책이다. 그러고 보니 그 책 또한 젊은 여사장의 '열정'이 낳은 산물이었다. 내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은 <혁명을 팝니다>와 <구경꾼의 탄생> 정도이다. 1인 출판사가 출판계에 드문 건 아니지만 이만한 실적은 드물지 않을까 싶다. 사람은 혼자서도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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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는 핑계로 지난주에 깜박 잊고 넘어간 게 있다. '작가와 문학 사이'를 옮겨오지 않은 것. 짐작대로 경향신문의 이 연재는 심진경, 신형철 두 평론가가 번갈아가며 연재하고 있다(시와 소설로 분담한 것인지?). 지난주에 다루어진 작가, 아니 시인은 재작년 한국시단의 '뉴히어로' 황병승 시인이다. '미래파' 논란의 중심에 있던 이 시인에 대해서 젊은 비평가가 차분하게 그 의의를 짚어주고 있다.

경향신문(07. 01. 27) [작가와 문학사이](4) 황병승-본능에 충실한 ‘언어 모험가’

역사적인 시집들이 있다. 한 시대의 기념비 같은 책들이다. 이를테면 이성복과 황지우의 첫 시집은 1980년대 초반 한국 사회의 양심이 쓴 혈서다. 철조망 같은 시집들이었다. 다가가 부딪치면 살갗을 뚫고 들어왔다. 독서가 곧 출혈이었다. 장정일과 기형도의 시집은 80년대 후반 한국 사회의 진단서다. 전자는 삐딱한 독학자의 눈으로 한국 사회의 ‘쓸쓸한 퇴폐’를 포착했고, 후자는 우울한 기자의 눈으로 ‘무서운 슬픔’을 보고했다. 90년대는? 풍요로웠지만 고요했다. 2000년대가 시작되고도 한동안은 그랬다.

그 무렵 황병승의 ‘여장남자 시코쿠’(2005)가 나왔다. 괴물 신인의 괴팍한 등장이었다. 불온한 붉은 빛깔의 시집은 단숨에 기념비가 되었다. 매력적인 정체불명의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들, 이해되기 이전에 먼저 빨아들이는 수사들, 비문(非文)의 근처에서 아슬아슬하게 씌어지는 문장들, 격렬한 분노와 황량한 슬픔이 뒤엉켜 있는 정서들이 시의 막장에서 쏟아져 나왔다. 몇몇 동료들이 그와 더불어 각개약진했다. ‘2000년대 시’ ‘미래파’ ‘뉴웨이브’ 등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기념비 주위에 화환들이 쌓여갔다.

1970년생이니까 문태준과 동갑이다. 공통점은 그것뿐이다. 문이 유토피아의 순간적 현현(顯現)을 도모하는 서정의 사도라면, 황은 언어의 모험과 정체성의 실험이 같은 것이라고 믿는 전위의 척탄병이다. 전자가 내실을 보살핀다면 후자는 외연을 넓힌다. 이것은 모든 시사(詩史)를 관류하는 두 개의 근원적 기질이다. ‘시’의 이름으로 ‘시 아닌 것’들을 솎아내는 야금술의 길이 있고, ‘시 아닌 것’들을 긁어모아 ‘시’가 될 때까지 밀고 나가는 연금술의 길이 있다. 문과 황은 당대 한국 시의 남북극에 있는 전진기지다. 둘 사이의 거리가 곧 최근 한국 시의 넓이다.

“메리제인./우리는 요코하마에 가본 적이 없지/누구보다 요코하마를 잘 알기 때문에//메리제인./가슴은 어딨니//우리는 뱃속에서부터 블루스를 배웠고/누구보다 빨리 블루스를 익혔지/요코하마의 거지들처럼.//(중략)//우리는 어느 해보다 자주 웃었고/누구보다 불행에 관한 한 열성적이었다고//메리제인. 말했지//빨고 만지고 핥아도/우리를 기억하는 건 우리겠니?//슬픔이 지나간 얼굴로/다른 사람들 다른 산책로//메리제인. 요코하마.” (‘메리제인 요코하마’)

인용한 시가 황병승의 본령은 아니지만 비교적 온건한 입구쯤은 된다. 태생적이라고 해야 할 비주류 의식을 여기서 본다. “뱃속에서부터” 블루스를 배웠다질 않는가. ‘그들 안의 블루’가 그것을 연주한다. 끼리끼리 모여 “빨고 만지고 핥아”가며 견딘다. “우리를 기억하는 건 우리”뿐이라서, 그들이 “다른 사람들” 즉 ‘타자’라서 그렇다. 그러니 그의 시에 출몰하는 이국의 인명과 지명은 모국어에 대한 불경이 아니다. 노동계급에 조국이 없듯, 그들에게는 국적이 없다. 내 나라의 ‘꼰대’들이 아니라 ‘요코하마의 거지들’이 그들의 동포다.

그런 이들이 세계 각지에서 모여들어 “슬픔이 지나간 얼굴로” 말문을 연다. “나의 또 다른 진짜는 항문이에요”라고 고백하는 게이가 있다. 입술을 뜯어버리고 얼굴을 갈아버릴 테니 제발 사랑해 달라고 그가 말할 때 우리는 어쩐지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시코쿠’라는 크로스드레서는 “그대여 나에게도 자궁이 있다 그게 잘못인가”라고 냉소하고, 어느 트랜스젠더는 “눈을 씻고 봐도 죄인이 없으니 나라도 표적이 될래요”라고 쓸쓸히 자조한다. 이들은 실로 한국 시가 처음 경험하는 주체들이다.

그는 마이너리티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마이너리티가 그의 시에서 말한다. 이것이 그의 괴력이다. 세 군데 이상의 학교를 다녔고 세 장르의 예술을 넘나들고 있는 이 시인은 시를 ‘혼자 할 수 있는 최고의 놀이’라고 정의한 적이 있다. 즐겁고 슬픈, 이상한 놀이다. 그의 시에서 ‘즐거운 놀이’만을 본다면 그것은 절반밖에 못 본 것이 아니라 전부를 못 본 것이다. 어서들 오시라, 이곳은 한국시의 신개지(新開地)다.(신형철|문학평론가)

07. 01. 30.

P.S. 해설만으로 감이 안 오시는 분들을 위해 두 편의 시를 옮겨놓는다. "그는 마이너리티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마이너리티가 그의 시에서 말한다."라는 평론가의 말을 비틀어서 말하자면, 그의 시들은 그가 쓰는 게 아니라 그의 '똑똑한 오리들'이 쓰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검은 바지의 밤 

호주머니를 잃어서 오늘밤은 모두 슬프다
광장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모두 서른 두 개
나는 나의 아름다운 두 귀를 어디에 두었나
유리병 속에 갇힌 말벌의 리듬으로 입맞추던 시간들을.
오른 손이 왼쪽 겨드랑이를 긁는다 애정도 없이
계단 속에 갇힌 시체는 모두 서른 두 구
나는 나의 뾰족한 두 눈을 어디에 두었나
호수를 들어올리던 뿔의 날들이여.
새엄마가 죽어서 오늘밤은 모두 슬프다
밤의 늙은 여왕은 부드러움을 잃고
호위하던 별들의 목이 떨어진다
검은 바지의 밤이다
폭언이 광장의 나무들을 흔들고
퉤퉤퉤 분수가 검붉은 피를 뱉어내는데
나는 나의 질긴 자궁을 어디에 두었나
광장의 시체들을 깨우며
새엄마를 낳던 시끄러운 밤이여.
꼭 맞는 호주머니를 잃어서
오늘밤은 모두 슬프다

주치의 h 

1
떠나기 전, 집 담장을 도끼로 두 번 찍었다
그건 좋은 뜻도 나쁜 뜻도 아니었다

h는 수첩 가득 나의 잘못들을 옮겨 적었고
내가 고통 속에 있을 때면 그는 수첩을 열어 천천히 음미하듯 읽어 주었다

나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커다란 입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깊이 더 깊이

아버지와 어머니 사랑하는 누이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며 더 크고 많은 입을 원하기라도 하듯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귀에 이마에 온통 입을 달고서
입이 하나 뿐인 나는 그만 부끄럽고 창피해서 차라리 입을 지워버리고 싶었다

2
입 밖으로 걸어나오면, 아버지는 입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로 조용한 사람이었고 어머니와 누이 역시 그러했지만,
나는 입의 나라에 한번씩 다녀올 때마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침묵의 식탁을 향해
‘제발 그 입 좀 닥쳐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집을 떠나기 전 담장을 도끼로 두 번 찍었지만
정말이지 그건 좋은 뜻도 나쁜 뜻도 아니었다

버려진 고무인형 같은 모습의 첫 번째 여자친구는 늘 내 주위를 맴돌았는데
그때도(도끼질 할 때도) 그 애는 멀찌감치 서서 버려진 고무인형의 입술로 내게 말했었다

“네가 기르는 오리들의 농담 수준이 겨우 이 정도였니?”

해가 녹아서 똑 똑 정수리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h는 그 애의 오물거리는 입술을 또박또박 수첩에 받아 적었고
첫 번째 여자친구는 떠났다 세수하고 새 옷 입고 아마도 똑똑한 오리들을 기르는 녀석과 함께였겠지

3
나는 집을 떠나 h와 단둘이 지내고 있다 그는 요즘도 나를 입의 나라로 안내한다
전보다 더 많은 입을 달고 웃고 먹고 소리치는 아버지와 어머니 사랑하는 누이가 둘러앉은 식탁으로
어쩌면 나는 평생 그곳을 들락날락 감았다떴다, 해야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더는 담장을 도끼로 내려찍거나 하지 않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4
이제부터는 연애에 관한 이야기뿐이다
악수하고 돌아서고 악수하고 돌아서는,
슬프지도 즐겁지도 않은 밴조 연주 같은... 다른 이야기는 없다 스물 아홉,
이 시점에서부터는 말이다 부작용의 시간인 것이다

그러나 같이 늙어 가는 나의 의사선생님은 여전히 똑같은 질문으로 나를 맞아주신다
“이보게 황 형. 자네가 기르는 오리들 말인데, 물장구 치는 수준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
낡고 더러운 수첩을 뒤적거리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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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mer 2007-01-31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는 '역할극'의 달인이 아닐까 생각이 들더군요. 난장이/시인을 초과하는/압도하는 기계/인형들의 반란같은...

로쟈 2007-02-01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uture님/ 라캉-지젝 말고 미래파도 읽으시는군요.^^

sommer 2007-02-01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장남자'라는 일종의 가면이 끌려서 읽은 거죠, 미래파는 나중에 따라 온 구실이고요...^^
 

엊저녁 학교에 있는 서가에서 연구서 한 권을 찾다가 우연히 칸트의 <판단력 비판>(책세상, 2005)를 손에 들게 됐다. 물론 이 책세상판은 제1부에서 '미의 분석론'과 '숭고의 분석론'만을 옮긴 발췌본이다. 완역본이나 영역본이 모두 집에 있기 때문에 굳이 학교에 놓아둘 필요가 없어서 가방에 챙겨넣으려다 역자가 쓴 '들어가는 말'을 읽어보고, 또 거기서 '감성적asthetisch'이란 번역어에 대해서 용어해설을 참조하라고 하길래 그것까지 읽어보았다.

 

 

 

 

흔히 '미감적', '미적'이라고 번역되어온 칸트의 'asthetisch'를 주로 '감성적'이라고 옮기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놓고 있는데, 서양어권에서 사용하고 있는 '아름다운'이란 표현(schon/beautiful/beau)의 연원이 'asthetisch'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aisthesis'에 있지 않다면서 역자가 인용하고 있는 것이 폴란드의 미학자이자 미술사가 타타르키비츠(1886-1980)였다(국내엔 그의 주저인 <여섯 가지 개념의 역사> 외에 3권짜리 <미학사> 가운데 두 권이 더 출간돼 있다). 

현대 영어에서 말하는 beautiful은 그리스어로는 kalon, 라틴어로는 pulchrum이라고 지칭되었다. 라틴어 명칭은 고대와 중세 동안 줄곧 사용되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접어들어 bellum이라는 새 단어로 대체되면서 사라졌다. 이 새 명칭은 유래가 다소 특이한데, '선'을 뜻하는 bonum에서 지소사 bonellum을 거쳐 다시 bellum으로 축약된 것이다. 처음에 이 말은 여성과 어린이에 한정해서 쓰이다가 나중에는 앞서의 pulchrum울 밀어내고 모든 종류의 미를 가리키게 되었다. 현대어에는 pulchrum의 파생어가 전혀 없으니 bellum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형태로 채택되었다. 즉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의 bello, 프랑스어의 beau, 영어의 beautiful이 그것이다. 그밖의 유럽어는 토착어에서 유래한 독자적 표현을 사용한다. 독일어의 schon, 러시아어의 krasseeviy 등이 그것이다.(178-9쪽)

타타르키비츠를 인용한 이 문단은 원저 'A history of six ideas : an essay in aesthetics'(영어본 1980)의 국역본 <여섯 가지 개념의 역사>(이론과실천, 1990), 144쪽에서 재인용한 것이다. 이 책은 <미학의 기본개념사>(미진사, 1990)라고 다른 번역서가 같은 해에 출간된 바 있으며, 손효주 역의 이 책은 <미학의 기본 개념사>(미술문화, 1999)로 재출간되었다. 그리고 원제의 '여섯 가지 개념' 가운데 '예술' 파트만 따로 떼 번역한 책으로 <예술 개념의 역사>(열화당, 1990)가 있다. 짐작에는 이 세 종의 번역이 거의 동시에 진행되었다가 한꺼번에 출간된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인용문에 흥미를 갖게 된 건 러시아어의 krasseeviy 란 말이 아무래도 미심쩍어서였다. 이론과실천판을 내가 갖고 있는지 기억에 가물가물해서(있다고 해도 박스보관도서이지만) 미술문화판을 구해볼 작정이었는데, 귀가길에 들른 서점에서 뜻밖에도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아직 판매중인 책을 구할 수 있었다(내가 산 건 2006년판 초판 4쇄이다). 1997년에 찍은 미진사판도 품절되지 않고 알라딘에서는 판매하는데 같은 역자의 같은 책이지만 나중에 나온 미술문화판보다 3,000원이 더 비싸다(물론 미술문화판의 후기에서 역자는 이전판의 일부 오역들을 바로잡았다고 했으니 엄밀하게 '같은 책'은 아니겠다). 좀 희한한 시스템이긴 하나 아무튼 45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을 12,000원에 사들고서는 제일 먼저 펼쳐본 곳이 역시나 '미: 개념의 역사' 파트였다.

미술문화판의 이 대목 번역(155-6쪽)은 그리스어 kalon을 희랍어로 표기해준 것 말고는 이론과실천판과 대동소이한데, 차이라면 마지막 문장이 "독일어의 schon, 러시아어의 krasseeviy, 폴란드어의 piekny 등이 그렇다"로 마무리되는 것 정도이다. 한데, 여기서도 러시아어의 krasseeviy 라고 내 짐작과는 다르게 표기돼 있었다. 국역본의 대본이 된 영어본을 바로 찾아볼 수 없어서 집에 돌아와 내가 한 일은 이 장의 원출처가 되는 저널을 인터넷으로 뒤져보는 것이었다. 미국미학회가 발행하는 잡지에 실린 '미의 대이론과 그 쇠퇴The Great Theoty of Beauty and Its Decline'(1972)가 그 원출처이다.

The Journal of Aesthetics and Art Criticism Cover Image

다행히도 텍스트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는데, 거기엔 'Russian, krassivyj' 라고 짐작했던 단어가 제대로 표기돼 있었다. 'krasseeviy'와 'krassivyj'는 철자가 전혀 다르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추정해보면, (1)영어본의 오타이거나 (2)두 국역본의 오기, 두 가지 가능성밖에는 나로선 떠올릴 수 없다. 그런 오타를 내기도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 명의 역자가 똑같은 착시를 일으켰을 가능성도 매우 낮다(비슷한 시기에 출간됐으므로 한 역자가 다른 역자의 번역을 참조했을 리도 없고). 영어본을 확인해보기 전까지는 이래저래 미스테리하다.

참고로, 러시아어의 '아름다운 krassivyj'을 구글에서 검색하면 가장 먼저 뜨는 이미지는 '아름다운 정원'이다. 형용사의 남성형이기에 기대(?)를 약간 벗어나는 것. 러시아 여성들이 아주 듣기 좋아하는 단어이기도 한 '아름다운'의 여성 형용사 'krassivaja'를 검색해야 그래도 기대에 부응하는 이미지들이 조금 뜬다. 아래의 미스 우크라이나처럼...

07. 0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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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80 2007-01-31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남성형과 여성형의 구분이 있는 단어를 쓰는 나라의 언어관을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 나라일수록 미학과 철학이 뿌듯하게 발전한 곳이 많은데 이것도 일종의 언어현상과 관련된 것인지. 저는 아주 오래전 잠깐 배운 프랑스어도 남성형과 여성형의 구분때문에 애를 좀 먹었거든요.

로쟈 2007-02-01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구분은 사실 대부분의 서구어들에 공통되는 것인데요. 그렇다고 미학/철학의 발달과 관계가 있을 거 같지는 않은데요. 제 생각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