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학원신문에 기고한 글인데, 분량상 다 적지 못한 내용을 보충하고 이미지들을 덧붙여서 옮겨놓는다. 최근에 나온 책들에 대한 소개가 글의 취지이지만 대부분의 책들은 아직 손에 쥐어보지 못했다(그나마 최근에 몇 권 구입한 정도이다. 이 계절이 가기 전에 몇 권 읽으면 다행이겠다). '지정학이란 무엇인가'가 제목으로는 보다 적합하겠지만 며칠전에 같은 제목의 페이퍼를 올려놓았던지라 마지막 문장을 제목으로 삼는다. 정현종의 시구를 바꿔쓰자면, 책 읽을 시간이 많지 않다!.. 

 

가을이 독서와 무관한 계절이 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런 탓인지 다른 계절에 비하면 출간되는 책들의 수준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기대에 못 미친다. 최근에 나온 책들의 목록을 뽑으려고 하니까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물론, 걱정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읽을 만하거나 읽어두어야 하는 책들은 언제나 차고 넘치니까.   

 

책에 길이 있다면 그것은 천 갈래 만 갈래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책들이 펼쳐놓는 공간은 그 자체로 ‘지리적 공간’이다. 그 지리적 공간을 삶의 공간과 포개놓을 때 그것은 지정학적 공간이 된다. 지정학적 공간은 현실적인 힘의 비균질적 분포에 따른 굴곡을 갖는다. 고로,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  

 

 

 

 

 

 

 

 

 

콜린 플린트의 <지정학이란 무엇인가>(길)는 바로 그러한 전제에서 ‘장소의 정치학’을 제안하는 교재용 책이다. “지식이나 표상은 지정학적이다. 자신이 처해 있는 입장에 따라 지식은 달리 구성된다.”는 문구가 그 문제의식을 압축적으로 전달해준다. 한때 국가주의 학문으로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저자와 역자들은 지정학 비판(anti-geopolitics)까지도 포괄하는, 지정학의 적극적인 자기갱신을 시도한다. 헤게모니의 지정학이 가능하다면 탈식민주의 지정학도 가능하다는 게 이들의 문제의식이다.  

 

마침 때맞춰 나온 프레드릭 제임슨의 <지정학적 미학>(현대미학사)은 예술, 보다 구체적으로는 현대영화 또한 이러한 지정학적 문제틀 안에서 사고되어야 한다는 걸 보여준다(*이 책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다룰 예정이다). <보이는 것의 날인>(한나래)과 함께 제임슨의 대표적인 영화론인 이 책은 영화에 대한 그의 변증법적 사유가 도달할 수 있는 높이를 보여준다. 제임슨에 대한 간단한 입문이 필요하다면 애덤 로버츠의 <트랜스 비평가 제임슨>(앨피)를 참고할 수 있겠다. 하지만 모든 경우에 가독성에 대한 기대는 반(反)제임슨적이다(국역본들은 사태를 결코 호전시키지 않는다).

 

 

 

 

 

 

 

 

 

 

지정학의 이론적 틀과 개념적 도구들이 어느 정도 마련됐다면 몇 가지 키워드를 길잡이 삼아서 지정학적 여행을 감행할 수도 있겠다. 미국부터다. 미국의 키워드는 ‘종교’이다. 데이비슨 뢰어 목사의 설교들을 모은 책 <아메리카, 파시즘 그리고 하느님>(샨티)은 미국의 근본주의 기독교와 제국주의적 정치 행위가 어떻게 파시즘으로 귀결되고 있는지 환기시키는 책이다(돈과 권력, 그리고 종교의 왜곡된 조작들로 인해 미국식 민주주의가 끝장났다고 설파하는 목사님 말씀이 왜 남의 얘기 같지만은 않은 것일까?).

 

그리고 류대영의 <미국종교사>(청년사)는 국내 필자가 탈식민주의적 관점에서 쓴 미국 종교 통사이다(*거기에 보태자면 미국의 정체성을 다룬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김영사)과 '미국의 식민지 대한민국'을 다룬 인터뷰집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시대의창)도 같이 읽어두면 좋겠다).

 

 

 

 

 

 

 

 

 

이어지는 여정은 ‘혁명’의 나라 프랑스이다. ‘하버드의 석학이 분석한 프랑스인들의 삶’이란 부제를 달고 있는 <프렌치 프랑스>(고려대출판부)는 프랑스 문화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만한 교재용 책이다. 국내 전공자들이 쓴 <프랑스, 하나 그리고 여럿>(강)과 함께 나란히 읽어봄 직하다. 거기에 ‘프랑스 공화주의의 이면’을 다룬 <공존의 기술>(그린비)은 지난 2005년 ‘방리유 사태’를 추적하고 진단한 글 모음으로 ‘교재들’을 보완해줄 수 있겠다. 필자의 한 사람인 에티엔 발리바르의 주저 <대중들의 공포>(도서출판b)를 그러한 계급적대 문제에 대한 철학적 개입으로 읽어볼 수도 있겠고. 

 

 

 

 

 

 

 

 

 

아직도 ‘나치 독일’이 연상된다면 독일인들이 섭섭해 할 테지만, 히틀러와 그의 나치즘은 여전히 출판계의 단골 메뉴이다. 그 중 최신간은 노먼 메일러의 논픽션 3부작 중 1부로 출간된 <숲속의 성>(뿔). 어린 아돌프 히틀러와 그의 가족, 그리고 그들의 불안정한 삶에 대한 소설인데, 절대 악에 대한 작가의 완벽한 이해를 보여준다는 평이다.  

 

 

 

 

 

 

 

 

 

나치와의 연루로 많은 논란을 낳은 지휘자의 평전과 철학자의 연구서도 겸사겸사 읽어봄 직하다. 각각 헤르베르트 하프너의 <푸르트벵글러>(마티)와 박찬국 교수의 <하이데거는 나치였는가?>(철학과현실사, 2007)이다. 전자는 작년에 나온 <레니 리펜슈탈, 금지된 열정>(마티)에 이어지는 책이고, 후자는 <하이데거와 나치즘>(문예출판사, 2001)의 개정판이다(*부르디외의 <나는 철학자다> 등도 같은 주제의 책이다).

 

 

 

 

 

 

 

 

 

 

 

이제 눈길을 시베리아를 거치거나(김경주, <패스포트>) 지중해를 거쳐서(로버트 카플란, <지중해 오디세이>) 아시아대륙으로 돌릴 차례이지만 어느새 분량이 바닥났다(*<유라시아 천년을 가다>(사계절출판사, 2002)와 <지중해 철학기행>(효형출판, 2007)도 같이 들어볼 만하다). 자판에서 손을 떼고 다시 책상머리에 앉을 때이다. 독서와 무관한 계절은 다른 이들의 몫이니, 가을은 내게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입 닥치고 책이나 읽어!”   

 

 07. 0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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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07-09-28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맘에 드는 여자친구 만드는 법> 확실하게 배울 수 있는 책은 없나요?

로쟈 2007-09-28 23:11   좋아요 0 | URL
'The Game'이란 책을 참고해보시길. '작업'에 대해서는 유익한 정보들이 많이 있습니다. 꼭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자꾸때리다 2007-09-28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오타가 있네요? "박찬국 교수의 <히틀러는 나치였는가?>(철학과현실사, 2007)이다. "
히틀러는 나치가 맞잖아요.ㅋㅋㅋ

로쟈 2007-09-28 23:09   좋아요 0 | URL
감사. 히틀러, 히틀러 하다보니 말도 안되는 오타가 들어갔었네요.^^;

마늘빵 2007-09-29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맨 위 사진은 영화 <가을로> 군요. 실제로 영화에선 저 장면은 없었던거 같은데, 검색하면 사진은 나오더라고요.

로쟈 2007-09-29 01:22   좋아요 0 | URL
포스터용 사진인가 봅니다...

섬나무 2007-10-02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생각을 해보는데요... 로쟈님의 '최소한의 도덕'을 위해 바쳐지는 맥시멈의 인내들은 남들에게 없는 어떤 장치가 하나 더 뇌에 장착되어 있거나 남들에게 있는 심장의 퓨즈가 없는 것 같다는...아니면 책 읽는 터미네이터쯤 - 존경스럽단 뜻입니다.^^

로쟈 2007-10-02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책 읽는 터미네이터'도 하나 고용해야겠습니다. 저 혼자 읽기는 좀 벅차서.^^

블루비니 2009-09-28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책을 나열해놓고, 느낌 몇줄 서술하는 것이 독자들이 책을 선택하는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의아하다. 단순히 '시간 많음'이나 '돈이 남아도는 상황'을 과시한다는 평가를 받지 않으려면, 차라리 책 한권을 '논리적'으로 파해쳐 보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전철에서 읽은 기사를 옮겨놓는다. 얼마전부터 대학가에서 '학문 융합'이란 말이 새로운 화두로 등장했는데, 이전의 '학제적 연구'보다 더욱 강조된 전공연계, 특히 인문학과 자연과학/공학의 만남을 지향하는 것이 '학문 융합'이 그리는 상인 듯하다('통섭'이란 용어가 비슷한 의미로 쓰인다). 물론 이런 제안들이 쏟아지고 있는 것은 거꾸로 지금의 대학과 학문의 위기의식을 반영한다. 겸사겸사 참고가 될 만한 기사들을 몇 개 모아놓는다.  

한국일보(07. 09. 27) '학문 융합' 어떻게 해야하나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공학도, 첨단 유전공학을 파악하는 철학도는 시대의 요청이다.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는 가시각(可視角) 30도의 일관된 자세로 한 학문을 파고 드는 방법이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빠르게 발전하는 문명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예측하는 데는 분명 한계를 안고 있다. 국내외 대학들이 미래의 키워드를 ‘학문 융합’으로 정하고 각종 연구소와 기구를 설립해 연계 전공이나 통합 과정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연구ㆍ시행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화여대 최재천(53) 석좌교수와 서울대 정진홍(70) 명예교수가 최근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 정 교수의 개인 연구실에서 만나 왜 학문 융합이 필요한지, 학문간 벽을 넘어선 연구가 우리 학계에 뿌리내리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를 함께 고민해봤다.

환원주의에서 융합주의로
정진홍(이하 정)=지금까지 통용됐던 개념이나 인식을 추출하는 방법론이 새로운 시대에는 적절하지 않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지심리학에서는 ‘뇌 세포의 어떤 부분이 상처를 입으면 종교적 감동이 사라질까’ ‘어떤 부분을 자극하면 종교적 감동이 만들어 질까’하는 문제를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종교학에서 말하는 ‘초월’이나 ‘신비’라는 개념은 더 이상 적합하지 않지요.

때문에 이제껏 이어져온 분과 학문의 울타리 안에서, 지금껏 사용했던 개념이나 논리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다른 학문과 만날 수밖에 없는 것이죠. 다른 학문을 받아들이고 서로 다른 학문끼리 대화하면 새로운 인식 방법이나 개념을 만들 수 있고 또 현실적 요구에 응할 수 있습니다. 종교학과 생물학, 종교학과 뇌 과학이 다른 쪽의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인식 지평을 만들 수 있습니다.

최재천(이하 최)=다산 정약용, 연암 박지원 선생이 활동 했던 시기에는 한 학자가 여러 분야를 두루 다뤘고 자연스럽게 학문 융합이 됐습니다. 이후에는 서양 중심의 환원주의의 영향으로 학문은 분과로 쪼개져 발전했습니다. 그 영향으로 인류가 지닌 지식의 총량이 크게 늘었죠.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정약용 같은 학자는 나올 수 없습니다. 그 시대는 인류가 축적해 놓은 지식의 총량이 많지 않아 한 사람이 여러 분야를 섭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한 사람이 2, 3개 분야를 완벽히 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때문에 또 다른 차원의 융합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학문 융합은 새 공용어 창출 과정
최=지난해 말 가야금 연주자 황병기 선생에게서 ‘우물을 깊이 파려면 넓게 파라’는 말씀을 듣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 여럿이 함께 넓고 깊게 파야 물이 나오는 시대입니다. 혼자 파 봐야 겉만 긁적거리다 끝납니다. 다른 학문과의 공용어를 찾는 게 학문 융합이자 통섭(統攝)이지요. 많은 학자들은 ‘내 학문만 파면 되지’ 하는데 그래서는 답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 옵니다. 나와 너의 학문을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공통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개별 학문을 하는 학자들끼리 각자 사투리를 써서는 소통이 안 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자존심을 ‘자존감’이라고 합니다만 철학에서는 안 쓰는 말입니다. 학문의 공용어를 만들어야 하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새로운 학문적 리얼리티(진실)를 발견했다면 그 진실은 기존 학문의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지요. 새 언어로 표현해야 하고, 그 언어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 바로 학문 융합입니다.

이기적인 학문의 벽 뛰어 넘어야
최=국내 대학은 ‘학과’ 체계의 높은 벽에 막혀 있습니다. 만약 자연과학 전공 교수가 인문학 전공 학과에 새로운 연구를 해보자고 제안하면 혼만 나는 게 현실입니다. 학문 이기주의, 학과 이기주의라고 비판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에 앞서 교수들에게 안정성을 보장해 줘야 합니다. 기존 틀을 완전히 뒤엎는다고 하면 학과 체계에 익숙한 교수들은 자신의 지위가 불안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하버드대 인문학, 자연과학 전공 교수들은 학과가 아닌 ‘예술과 과학’ 교수단에 속해 있습니다. 이들은 새로운 내용으로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한 결정이 나면 학과 눈치 볼 필요 없이 자유롭게 움직입니다.

정=학문 융합을 잘못 이해하는 학자들이 많아요. 융합은 기존 학문이 잘못 됐다는 것이 아니라 기존 학문의 한계를 넘어 새로운 힘을 얻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학문은 그냥 두면 자칫 경화해서 죽어버리고 맙니다. 종교학의 경우 옛날 같으면 초월, 신비라는 개념에 묶여 있었죠. 그러나 정치, 경제로 외연이 넓어지면서 천당 가자는 말로는 매우 모자라게 되고, 결국 과학이라는 벽과 부닥치게 됩니다. 때문에 종교, 정치, 과학을 통틀어 함께 봐야 합니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사건도 종교, 정치, 과학이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경우였죠. 정치학자의 말, 과학자의 말 등을 모두 귀담아 들으면서 문제가 서로 어떻게 만나는지 파악하고 또 사태 전체를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인문ㆍ자연 아우르는 기초교육 절실
최=문, 이과를 갈라 놓은 중등 교육과정도 큰 문제입니다. 뭐 하나 제대로 가르치는 게 없어요. 중고교에서는 모든 학문의 기본을 제대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래야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와서 여러 공부를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대학은 신입생에게 기본기 가르치기도 버겁습니다. ‘수학(修學) 장애우’ 들이 대부분이에요. 문과 출신 학생들은 이과 수업을 못 알아듣고, 이과 학생들은 문과 수업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런 학생들에게 연계전공, 협동과정 같은 학문 융합을 시킨다 한들 뭐가 되겠습니까.

정=학문 융합이 가능해야 개별 학문도 훨씬 빨리 발전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방향과 폭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학문 융합의 시각에서 분과 학문을 바라볼 때 융합 자체가 살아납니다.

최=어느 미래학자의 말처럼 앞으론 평생 한 직장에서 일을 하는 경우는 드물고 여러 차례 전직할 수밖에 없게 될겁니다. 40대 중반에 첫 직장을 그만 둔다면 한 가지 전공만 했을 경우 큰 어려움을 겪게 되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이 바로 학문 융합입니다. 미국 유명 대학은 학생들에게 전공에 관계없이 인문학, 자연과학 등 학문의 기초를 가르치는데 큰 비중을 둡니다. 그렇게 해서 다른 학문 분야에서도 금방 적응할 수 있는 수학 능력을 갖추도록 합니다. 만일 그런 능력이 있다면 여러 직종을 옮겨도 잘 적응할 수 있겠죠. 반면 우리 대학들은 기본조차 안된 학생들에게 그나마 편협한 교육을 하고 있어요. 대학생들은 인문학적 소양과 자연과학의 기초를 확실히 닦고 대학 문을 나서야 합니다. 잡탕 학문만 잔뜩 가르치고 배워서 사회에 나온다면 10년은 버틸지 몰라도 그 이후는 어렵다고 봅니다.(정리 박상준기자)

국내 대학 '학문 융합' 현주소

국내 주요 대학 가운데 이화여대의 학문 융합을 위한 움직임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이화여대는 올해 초 ‘이화학술원’과 ‘스크랜튼 대학’을 창설했다. 이화여대를 설립한 미국인 감리교 선교사 메리 F 스크랜튼(1832~1929)의 이름을 딴 스크랜튼 대학은 하버드대의 기숙대학(Residential College) 개념을 도입했다. 기존 국제학부를 확대해 만든 2년제 과정으로, 올해 처음 30명의 학생들을 모집했다. 학생들은 인문ㆍ자연과학 등 기존 학과 체계를 뛰어 넘어 모든 분야에 걸쳐 자기 목표를 설정한다. 자신이 원하는 전공을 스스로 설계하고 공부하면서 국내외 석학으로부터 디지털 인문학, 문화연구, 생명과학기술 등 통합 과목을 배운다.

이화학술원은 국내외 석학이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어 공동 연구와 강연을 진행하는 연구 기관이다. 1호 국가과학자인 이서구 교수, 이어령 명예 석좌교수 등 국내 석학과 200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 총재, 침팬지 연구가 제인 구달(영국) 박사 등 해외 석좌교수가 함께 연구와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대는 내년 중 경기 수원시 인근 광교신도시의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에 ‘범학문통합연구소’를 개설할 예정이다. 연세대도 2010년 인천 송도신도시에 학문융합 관련 연구소를 열 계획이다. 정진홍 서울대 명예교수는 “학문 융합에 대한 교수 사회의 거부감이 심하기 때문에 저변을 넓힐 터전이 필요하다”며 “학문 융합을 전담할 교원을 배치하고 별도 예산을 편성해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박상준기자)

한국일보(07. 09. 17) "인문학 소양 갖춘 공대생은 왜 못키우나"

14일 오후 서울대 공대 연구동내 한 강의실. '공학 문제 해결과 창의적 사고' 제목의 세미나 수업이 한창이다. 교수는 학생들이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 내도록 질문을 유도한다. 단순한 문제 풀이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10명 남짓한 1학년 수강생은 3조로 나눠 '소변기에 내리는 물을 어떻게 절약할 수 있는가' '교내 전단지 공해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등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묘수를 짜내야 한다. 재료공학과의 한 교수는 "공대생은 애매하고 답이 명확치 않은 문제에 약하다"며 "인문학적 소양과 창의적 사고를 갖췄을 때 비로소 완전한 공학도가 된다"고 강조했다.

● 대학에 부는 '융합' '통섭' 바람
요즘 대학의 화두는 '학문 간 융합'이다. 대학이 사회와 소통하려면 학문 간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탓이다. 특히 최근 위기를 맞고 있는 이공계 분야에 융합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추세다. 최근 부임한 강태진 서울대 공대 학장은 이공계 위기론과 관련, "융합과 통섭의 시대를 맞아 리더십을 가진 이공계 지도자를 육성해 이를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학문 융합은 대학 발전계획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이화여대의 경우 지난해 9월 통섭원을 만들어 학문 간 벽을 허물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통섭(統攝)이란 '서로 다른 것을 아우른다'는 개념이다. 대학에서는 이를 '학문 접목'을 통해 기존 학문 체계의 고립화를 극복한다는 뜻으로 받아 들이고 있다. 가령 성형외과 의사가 미학을 연구하고, 제품 디자이너가 시(詩)의 은유를 배울 때 더 완전해질 수 있다는 생각과도 맞닿아 있다.

연세대는 신촌캠퍼스에 융복합프로그램을 개설하고 2010년 개교 예정인 송도캠퍼스에 관련 연구소를 만들 예정이다. 서울대 역시 3월 장기발전계획을 통해 융합분야에 참여하는 교수나 연구원의 교육 결과를 인사고과에 반영하고, 차후 세계적 수준의 융합분야 연구소를 설립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경기 수원 광교신도시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내에 범학문통합연구소를 내년에 문을 열어 인문 자연과학 예술이 함께 어우러진 중심 기구로 발전시키겠다는 계획도 들어 있다.

● 학생들 "부담 크고 필요성 덜 느껴"
대학들은 저마다 연계전공제(학부)와 대학원 협동과정(석ㆍ박사)제도를 통해 학문 융합을 시도하고 있지만 갈 길은 한참 멀다. 학부생들은 단순히 '취업에 도움이 별로 되지 않는다' '부담만 된다'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이유로 연계전공을 외면하고 있다. 연세대는 2000년 1학기 8개 전공을 도입하며 이 제도를 시작했지만 올해 1학기 이수 학생은 143명에 불과하다. 송예슬(21ㆍ연세대 문헌정보학과)씨는 "연계전공 이수학점이 부담이 된다"고 지적했다. 복수전공을 하면 본 전공과 제2전공이 각각 36학점씩인데 연계전공을 하게 되면 본 전공 57학점을 다 채워야 하니 같은 조건이라면 연계전공보다는 복수전공을 한다는 뜻이다.

연계전공에 대한 기업 인사담당자들의 인식도 매우 낮은 편이다. 본보가 대졸 취업준비생들이 비교적 선호하는 11개 기업(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커뮤니케이션즈 한국IBM LG패션 넥슨 한국전력 한국은행 산업은행 기업은행 NC소프트) 인사팀에 문의한 결과 관련자 모두 용어 개념을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아예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가산점을 주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대학원 협동과정은 학부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이 과정엔 하나의 학문적 테마를 놓고 겉으로는 이질적인 분야에서 활동하는 교수들이 참여하는 게 보통이다. 예를 들면 의료법ㆍ윤리학 협동과정(연세대)의 경우 법학 의학 철학 보건학 이학 전공 교수들이 함께 참가하는 식이다. 그러나 학부와는 달리, 이와 같은 협동과정 자체엔 전임교수가 없어 지속적이고 책임있는 연구·교육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 전임교수 확보 시급
융합학문 분야에서 오랫동안 몸 담아 온 학자들은 '학문 간 벽 허물기'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선 학문 간 융합의 필요성에 대한 학계 전반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취업을 중요하게 여기는 학생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을 줄 방안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고려대 비교문학ㆍ비교문화 협동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정우봉 국문과 교수는 "우리 학계는 아직 학문 간 경계를 넘어서는 것에 대해 경계(警戒)를 하고 있다"며 학과 중심의 강한 연구풍토를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전임 교수 확보도 시급하다. 단순히 구색갖추기 식으로 '이 학과에서 이 교수 빼오고, 저 학과에서 저 교수 빼오는' 식으로는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학문 발전이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의 전공주임을 맡고 있는 홍성욱(생명과학부) 교수는 "학과가 소속 교수의 협동과정 겸임교수 활동을 얼마나 인정해주고, 밀어주냐에 따라 겸임교수 섭외가 쉬워지기도 하고 어려워지기도 한다"고 말했다.(박원기기자)

주요 대학들의 학문융합 추진 현황
▦고려대= 2004년 교과과정 개편 통해 연계전공 실시. 학부생 이중전공 의무화
▦연세대= 신촌캠퍼스에 융복합 프로그램 개설. 송도캠퍼스(2010년 개교 예정) 융복합 관련 연구소 개설 예정
▦이화여대= 5월 학문융합 전담 스크랜튼 대학 설립(문화연구, 디지털인문학, 사회과학심화, 생명과 과학기술 4개 분야). 지난해 9월 통섭원 개설. 파주 새 캠퍼스 화두를 '학문융합' 으로 결정
▦서울대= 2008년 경기 수원 광교신도시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내 범학문통합연구소 개설.
(장기발전계획) 학문융합분야 참여 교수나 연구원 인사 고과 반영, 세계적 수준의 융합분야 연구소 설립 추진

고대신문(07. 09. 16) 학문융합 모양만 있고 '내실'이 없다

본교 대학원 응용언어문화학협동과정 선정규(인문대 중국학부) 주임교수는 학문융합에 대해 "르네상스 이후에 세분화된 학문의 분류로 생긴 틈새를 보완하는 작업의 일환"이라고 설명한다. 본교도 학문융합 추세에 동참하고 있다. 지난 2004년 본교는 학부 교육과정 개편을 통해 연계전공을 실시했으며, 학생설계전공 시행을 준비중이다.

연계전공은 두 개 이상의 전공이 모여 새로운 전공을 만들어낸 것이다. 수학과와 정보보호대학원이 융합한 ‘암호학 연계전공’이 그 사례다. 한편, 학생설계전공은 학생이 개별적으로 원하는 전공분야가 있는 경우 학과에 상관없이 스스로 커리큘럼을 계획해 이를 이수하는 제도다. 학교 측은 지난 2006년부터 학생설계전공을 시행하려 했지만 현재 보류 중이다.

학부에 비해 심도 있는 학문계발이 이뤄지는 대학원은 한 발 먼저 학문융합의 추세에 합류했다. 본교 대학원은 지난 1996년부터 학과 간의 벽을 허물고 두 개 이상의 전공이 모여 ‘학과 간 협동과정(이하 협동과정)’을 시행하고 있다. 금융공학협동과정의 경우 △경영학과 △수학과 △경제학과 △통계학과 △산업시스템정보공학과가 통합된 것이다. 하지만 학부의 연계전공 및 대학원의 협동과정에 학생들의 관심이 적어 제대로 운영되는 학과가 많지 않다.

▲학생들의 관심 부족으로 운영 ‘삐걱’
지난 2006년 2학기 04, 05학번 학부 재적생 8038명 중 연계전공을 이수한 학생은 안암 · 서창 캠퍼스를 합쳐도 272명 뿐이다. 특정 학과에 학생들이 몰리는 것도 문제. 2007년 1학기 연계전공 지원 · 합격 현황을 보면 전체 지원자 211명 가운데 166명이 합격해 79%의 합격률을 보였다. 하지만 △환경디자인학(5명) △산업디자인공학(6명) △사회복지학(14명) 등 대부분의 학과는 지원자 전원이 합격했다. 이번 학기 신설된 나노바이오정보기술학전공의 경우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으며, 지난 2005년 2학기 개설된 환경생물자원공학의 경우 지난 학기까지 지원자가 없어 폐지됐다. 대학원 역시 2007년 2학기 현재 석사, 박사 및 석 · 박사통합과정 재학생 5035명 중 협동과정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은 273명뿐이다.

▲다양성 부족한 전공수업
연계전공과 협동과정의 전공과목 수 또한 부족한 실정이다. 본지는 협동과정 대학원생 30명을 대상으로 만족도 및 개선사항 조사를 실시했다. 학생들은 ‘다양한 전공 간의 교류를 통해 폭넓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들며 본교 협동과정의 만족도에 보통 이상의 점수를 매겼다. 하지만 '개설과목이 적어 선택의 폭이 좁다'는 점을 지적한 학생들이 다수 있었다.

실제로 이번 학기 16개 협동과정의 개설 전공과목 수를 살펴보면 △마이크로/나노시스템 △통신시스템기술 △메카트로닉스 협동과정은 한 과목 뿐 이었고 기전융합신기술협동과정은 개설과목이 없었다. 이는 협동과정을 전공하는 학생 수가 적기 때문이다. 대학원 수업의 경우 학생 수 3명이 폐강 기준인데 이번 학기 기전융합신기술협동과정의 재적생은 3명이다.

학부 역시 14개의 연계전공 중 7개 전공만 해당 전공만을 위한 과목이 개설됐다. 이마저도 한 과목씩 뿐이다. 연계전공을 이수하는 학생들은 단순히 연계된 단일전공들의 과목을 들어야 한다. 패션디자인 및 머천다이징을 전공하는 한 학생은 “각 학과의 전공과목들이 모였을 뿐 학문융합됐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식품과학 △생명공학 △의과대가 모인 식품생의학안전학 김경헌(생명대 식품공학부)주임교수는 “만들어 놓은 과목이 있지만 운용이 잘 안된다”며 “교수들이 해당 전공을 맡기도 바쁘다 보니 과목 개발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설문조사에 응한 30명의 협동과정 대학원생 중 11명의 학생들이 ‘전임교수의 부재’를 문제점으로 꼽았다. 여러 전공의 교수들이 있지만 협동과정만을 담당할 전임교수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체계가 덜 잡혀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금융공학협동과정을 전공하는 한 대학원생은 “협동과정을 '학과'로 전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응용언어문화학협동과정의 한 학생은 “독자적인 건물이나 연구실도 없고 협동과정의 이름도 계속 바뀌니 붕 뜬 기분이다”라고 협동과정의 모호함을 표현했다.

과학기술학협동과정 과학관리학전공의 한 학생은 “기존의 단일 학과만으론 풀기 어려운 문제들을 다양한 학문간의 배움을 통해 해결할 수 있어 만족한다”고 했지만 “좋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학과간 협동과정에 대한 학교의 지원이 부족해 여러 도약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행초기인 협동과정의 시스템은 오랜시간 독자적으로 성장해온 단일전공에 비해 아직 갈 길이 멀다.

비교문학비교문화협동과정의 정우봉(문과대 국어국문학과)교수는 "학문융합이 필요한 시기이며 추세지만 일시적인 유행이 돼선 곤란하다"고 경고한다. 이어 정 교수는 “발전적인 학문융합을 위해선 각각의 독자적인 학문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아직까지 한국 학계는 학문간 경계를 넘어서는 것에 대해 경계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재학협동과정의 이홍종(인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역시 “모든 사회조직이 결국 총체적이고 유기적이 듯 학문도 이제는 독자적인 연구를 벗어나 이를 융합해야할 시점”이라며 “하지만 아직까지 학과 중심체제가 강하다”고 말했다.

점점 무너지는 학문의 경계에서 간학문적 접근의 필요성은 가속화되고 있다. 낯선 것에 대한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고 보다 열린 태도가 학문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학교와 정부 또한 적극적인 자세로 학문융합에 접근해야 한다.(김효원기자)

07. 09. 27.

P.S. 연세춘추의 관련기사는 http://chunchu.yonsei.ac.kr/news/read.php?idxno=10246&rsec=S1N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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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나온 책들 가운데는 지정학 표준 교재로 쓰일 만한 <지정학이란 무엇인가>(길, 2007)도 들어 있다. 10년전에 출간된 필립 드파르쥐의 불어권 교재 <지정학 입문: 공간과 권력의 정치학>(새물결, 1997)을 가뿐하게 대체할 수 있겠다. 저자인 콜린 플린트는 일리노이 대학 지리학과 교수로서 7년간 펜 주립대학교와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가르쳤던 수업의 결과물들을 묶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현재의 국제정세와 사건들을 보다 큰 그림 속에 위치지어 큰 틀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지정학이라는 이론적인 틀"을 제공하는 책이라고 돼 있다.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동아일보(07. 09. 22) 숙명론 걷어찬 지정학…‘지정학이란 무엇인가’

지정학은 한국에선 사회과학의 탈을 쓴 운명결정론이었다. 개인의 운명이 사주에 달렸다는 것처럼 한반도의 운명이 주변 열강의 파워 게임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숙명론적 요소가 강했기 때문이다. 지정학은 19세기 세계제국을 운영한 영국과 이에 도전한 독일에 의해 학문의 영역에 진입했으나 국가전략과 정책을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사회과학의 대접을 받지 못했다. 지정학의 현실정합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대부인 한스 모겐소도 ‘사이비 과학’이라고 비판했다.



이 책은 그런 지정학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국제정치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지정학의 이론과 모델을 소개한다. 그렇게 재탄생하는 지정학은 지리학과 정치학의 결합으로만 설명할 수 없고 ‘공간의 정치학’이라는 더욱 추상적 표현이 더 어울린다. 지정학에선 공간(space)으로 추상화되기 전 좀 더 구체적 장소(place)에 대한 4가지 차원의 표상 이해가 중요하다. 로케이션, 로컬, 장소감각 그리고 규모다.

로케이션은 장소의 역할을 통해 그 장소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용산은 역할에 따라 미군기지로도, 전자상가 밀집지로도 볼 수 있다. 로컬은 장소를 제도나 권력관계의 부산물로 보는 것이다. 광주와 대구가 지역정치의 중심지로 자리 매김한 게 그 사례다. 장소감각은 특정한 장소와 연결된 집단적 정체성이다. 규모는 지역경제-국민경제-동북아경제-세계경제처럼 장소의 범위가 확장됨에 따라 그 속에서 표상이 유동하는 것을 말한다.

새로운 지정학은 공간에 대한 표상을 국가차원에만 적용하던 데서 벗어나 국제기구, 비정부기구(NGO), 다국적 기업, 테러단체, 젠더 등 다양한 차원으로 확대하고 구조와 행위자 간 상호 작용을 강조한다. 덕분에 지정학은 19∼20세기 국가주의적이고 구조결정론적 학문에서 비판적이고 구성주의적 학문으로 거듭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는 미국 일리노이대 지리학자이지만 이성형(이화여대) 김명섭(연세대) 이혜정(중앙대) 교수 등 8명에 이르는 공동번역자는 모두 정치외교학자라는 점이다. 한국근현대사에서 숙명론과 같았던 지정학을 능동적 운명개척의 학문으로서 재정립하려는 문제의식을 읽을 수 있다. 지정학의 발전사와 이론에 이라크전, 북한 핵, 이란 핵 문제 등 최신 사례를 접목해 생동감이 넘치지만, 주제에 대한 집중력이나 문장의 치밀함이 다소 떨어진다.(권재현 기자)

07. 09. 27.

P.S.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 대한 강의도 준비해야 하는 터여서 보다 눈길이 가는 책은 저자 콜린 플린트가 엮은 <전쟁과 평화의 지리학>(옥스포드대출판부, 2004)이다. 두께가 좀 있는 책이지만 마저 소개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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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7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9-27 13:2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감사. 알라딘에는 아직 안 들어와있네요(워낙에 굼떠서인지). 덕분에 원서의 먼지도 털 수 있게 됐습니다.^^
 

한국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우리시대의 명저50'에서 조혜정(조한혜정) 교수의 <한국의 여성과 남성> 꼭지를 옮겨놓는다. 아주 오래전에 들춰봤던 듯한데 그다지 강한 인상은 받지 못했다. 오히려 나로선 저자의 최근의 인터뷰나 기고기사에 더 눈길이 간다. 남녀간의 성차보다는 계급차나 세대차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탓이겠다. 그럼에도 사회과학서가 거의 20년 동안 절판되지 않고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다('명저50' 가운데 '현역'으로 남아있는 책들이 몇 권이나 되는지 의심스럽기에 더욱 그렇다). 관련기사와 인터뷰, 그리고 최근 기고기사를 함께 모아놓는다.

한국일보(07. 09. 20) 억압과 착취 구조의 뒤틀린 유산을 일갈하다

가부장제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가장 교묘하게 인간성을 억압해온 제도이며, 여성 억압은 인간에 의한 자연의 착취와 맥락을 같이 한다.” 조혜정 교수가 1988년 발표한 <한국의 여성과 남성>(문학과지성사 발행)이 당시 지식사회에 던진 충격파는 컸다. 6ㆍ29선언으로 민주화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서울올림픽이 열리면서 세계화가 화두로 떠올랐지만 가부장제를 가족관계의 본질로 여기는 통념은 여전히 유효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 책은 가부장제는 가족관계의 본질이 아니라 조선시대 사대부의 권력 확장을 위해 고안된 역사적 구성물이며 이를 통한 여성의 억압은 곧 남성도 ‘남성다움’의 굴레에 갇히게 만드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고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모성(母性)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이라는 주장은 가히 선동적이었다.

김영옥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는 “가부장제나 모성의 신화, 억압과 착취에 기반한 남녀관계의 기원 등을 역사적인 맥락 아래 검증한 최초의 저작”이라며 “출간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성을 잃지 않는 저자의 혜안과 선 굵은 문제의식이 놀라울 뿐”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여성학의 고전이 된 책이지만 편협한 여성주의에 머물지 않고 여성과 남성이 다 함께 행복한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하고 구체적인 성찰을 담고 있는 것이 이 책의 큰 미덕”이라고 덧붙였다.

저자는 한국의 남성과 여성이 이뤄온 생활세계를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여성해방 이론가이자 운동가로서 구상하고 실천해온 평등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분석적 토대를 이 책에 담고 있다. 저자가 처음 시선을 둔 것은 ‘여성 차별과 비하의 근원인 가부장제가 어떤 과정을 통해 생활세계를 지배하게 됐나’ 하는 문제다.

조선 초기에는 재산 분배나 제사 상속도 받을 만큼 비교적 평등한 지위를 누렸던 여성들은 조선 후기로 갈수록 부계 순수혈통의 원리가 절대화되면서 ‘2등 백성’으로 전락했다. 그 이유를 저자는 왕권 확장을 저지하기 위해 양반관료층들이 유교 이념을 교조화하면서 남존여비 이데올로기를 심화했기 때문이라고 파악한다.

가부장적 지배는 빈곤과 혼란기를 거치면서 불변적 남성우월주의로 고착됐고, 발전 이데올로기가 주도한 근대 공업화 시대와 산업자본주의 사회를 거치며 ‘국가와 일터를 위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남성의 공적 영역과 그를 위한 ‘휴식처’로 전락한 가정의 관장자로서 여성의 사적 영역을 명확히 가르는 데 이용된다. 공ㆍ사의 명확한 구분과 고정된 성 역할 관념은 제도의 차원이 아닌 일상의 문화로 강력한 의미를 지닌 채 존속된다. 가부장제 아래 여성들은 인격이 아닌 어머니로서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자발적으로 체제의 협력자가 되면서 스스로의 역할과 공간을 제한했다. 이른바 ‘도구적 모성’의 탄생이다.

저자는 부부 역시 권력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파악한다. 특히 경제적 능력 여부에 따라 지배와 복종이 정확히 갈리고, 경제력이 없는 여성들은 자녀의 성공을 자신의 성공으로 대리만족하면서 가족 내 존재감을 획득한다. 저자는 “가정에서 소외된 남편, 과도한 교육열 등은 어머니로서의 정체성에 안주하는 여성들의 계산된 헌신의 산물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면서 “부부관계가 애정과 신뢰를 잃을 경우 자녀의 도구화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고 경고한다.

가정에 안주하지 않은 여성들은 그럼 행복할까. 저자는 “전통사회에서 여성이 배제되었다면 현대에 들어서서는 배제의 정도가 줄어든 대신 보이지 않는 통제는 더욱 체계화되어 여성의 삶은 더욱 교묘하게 왜곡되고 있다”고 갈파한다. 소위 ‘성공적인’ 전문직 취업여성일지라도 남성중심적인 조직문화의 이방인으로 전문직의 역할 수행 이외에 여성에게 기대되는 성역할을 수행하느라 기진맥진하게 된다. 결혼을 했을 경우는 가정과 일터 모두에서 늘 ‘약간씩 모자란 느낌’을 갖고 자식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저자는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고 고도의 산업화가 진행중인 사회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결혼과 가족에 대한 인식이 중요해진다”며 “특히 결혼과 자녀 출산 시기 및 자녀의 수를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에 무리함이 없도록 조정하는 것, 경우에 따라서는 자녀를 낳지 않는 것도 하나의 정상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한국의 여성과 남성>은 씌어진 지 30년이 됐지만 불평등한 남녀관계가 잉태하는 가족해체, 저출산, 고령화사회 등 우리 시대의 가장 첨예한 문제들을 정확히 꼬집어내고 있다.

저자는 여성과 남성이 다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성간의 유대를 강화할 것, 여성을 남성과 똑같이 사랑 존경 즐거움 성취 권력에의 욕구를 가진 인간으로 대할 것, 남성은 가부장적 부권을 포기하고 가족구성원으로서 소통과 보살핌의 노동에 적극 참여할 것”을 권한다. 가족간의 소통과 감정교환이야말로 행복한 삶의 전제조건이기 때문이다.

한국 여성학계의 성과를 여실히 보여주는 이 책은 인문ㆍ사회과학 전문서로는 드물게 현재까지 14쇄를 찍었고, 2002년에는 일본 법정대 출판부가 <한국사회와 젠더 연구>라는 제목으로 번역서를 출판하기도 했다.(이성희기자)

"신정아 사건은 일터에서의 남녀관계가 동료라기보다는 여전히 연애의 대상으로 환원되고, 성취의 수단으로 쓰이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 조직문화도 바뀔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거죠."

연세대 교정에서 만난 조혜정 교수는 "<한국의 여성과 남성>을 쓸 때만 해도 남녀 모두 행복한 세상이 곧 올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고 말했다. "1980년대는 국내 사회학이 꽃핀 시기였고, 여성해방주의자들 사이에서 남녀가 모두 주인공인 일상의 문화를 새롭게 짜보자는 움직임이 활발했어요. 83년에 여성학자 조형, 조옥라, 고(故) 고정희 시인 등과 함께 대안문화운동단체인 '또하나의 문화'를 결성하면서 이들과 토론하고 싸우며 얻은 성찰들이 책을 쓰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조 교수는 그러나 "지금은 사회가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접었다"고 말했다. 여성운동이 성숙하면 남녀평등사회가 구현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알파걸, 킹콩걸, 골드미스 등 여성파워를 상징하는 용어들은 쏟아지되 남녀간의 적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해졌기 때문이다. "여성은 '피해 볼 일은 절대 안 하겠다'는 의식으로 무장하고, 남성은 기득권을 빼앗긴 박탈감에 시달리면서 '사이버 마초' 같은 감정적 대응을 일삼습니다. 문제의 본질은 사회구조에 있는데 서로 감정싸움만 되풀이해요. 남녀 문제만 나오면 너무나 단세포적인 반응을 쏟아내는 사회가 된 것이죠."

조 교수는 '누구도 승자가 되기 어려운' 초경쟁 시장경제와 그로 인한 인간의 개체화를 이렇게 분열된 사회의 주범으로 꼽는다.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주체적인 각성을 바탕으로 대안문화나 대안학교 운동 등을 유연하게 받아들였던 사람들도 IMF사태 이후 개별적 생존경쟁에 내몰리면서 지금은 오로지 일류대학을 목표로 한 무한질주에 동승한다. 동료든 친구든 가족이든, 기본적으로 경쟁자일 수 밖에 없다.

"이른바 성공한 사람들은 24시간 그야말로 '빡센' 노동에 시달립니다. 잡지 않으면 잡히는 사냥꾼의 시대에 들어선 거죠. 이렇게 경제논리가 압도하는, 극도로 도구화ㆍ개체화한 사회에서 자란 세대는 과연 행복할까요?" 조 교수는 시장경제체제의 제도는 숨가쁘게 변화하지만, 의식의 변화는 여전히 지체상태라면서 '지속 가능한' 사회에 대한 모색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가깝게는 호주제 폐지 이후의 삶에 대한 광범위한 인식의 공유가 필요합니다. 호주제 폐지 이후 가족의 정의는 어떻게 내려야 할지, 누구랑 살지 하는 문제 말이죠. 그리고 양극화사회에서의 육아의 사회화 만큼이나, 군 복무도 사회적 책임을 함께 지는 차원에서 여성이 공유하는 문제 등을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해요. 소통과 상호 돌봄을 통해 남녀가 조화롭게 살 수 있는 사회만이 지속가능성을 갖는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지요."

 

경향신문(07. 08. 29) IMF 목격한 불행한 청년들 ‘88만원 세대’ 우리가 껴안자

“부유한 50대여, 파이팅!”이라는 주간지 표지 글이 눈길을 끈다. 내용은 청년기에 통기타와 청바지, 팝송을 들으며 성장한 50대가 이제 다양한 문화생활을 즐기고 패션을 주도하는 신소비군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제목을 본 청년이 “다 가지셨으니 어련히 잘 하겠수~”라고 툭 한마디를 던진다. 그의 말대로 지금 50대는 많은 돈과 시간과 건강을 가진 세대이다. 반면 그 자녀 세대는 시간에 쫓기고 늘 불안하다. 안정된 직장을 얻기 힘들고 직장이 있더라도 독립할 집을 마련하기 어렵다. 어릴 적에 갖게 된 소비수준을 유지하려면 부모에게 기대는 수밖에 없고, 이런 경제적 의존성은 젊은이들을 나약한 기회주의자로 만들고 있다.



최근 한 경제학자와 신문기자는 현 시대의 20대들은 월 88만원으로 일상을 꾸려가야 하는 세대라면서 그들의 곤궁한 삶에 대한 논의의 불을 지폈다. ‘너희는 고생을 모른다’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이들 ‘88만원 세대’는 어린 나이에 IMF 금융위기 급보를 접하고 일찍이 암울한 미래가 온다는 것을 감지한 ‘불안 세대’다.

이들은 1990년대에 대중문화와 인터넷의 주역으로 잠시 부상하였지만, 그 이후 진행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서 가장 배려받지 못한 계층이었다. “너희는 왜 패기가 없느냐?”라는 핀잔을 듣지만 불안정한 고용상황과 끊이지 않는 재난과 소통불능 상황에서 패기를 부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 연봉 억대를 버는 변호사나 대기업 사원들은 행복한가? 타고난 낙관주의자거나 그 세대에는 드물게 헝그리 정신을 가진 경우를 제외하고 이들 ‘잘나가는’ 청년들 역시 위장장애와 조울증으로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좋은 미래가 올 거라는 믿음이 가지 않는 시대에, 생각할 틈도 없이 일해야 하는 자신이 마치 ‘소모성 건전지’ 같다는 것이다.

‘잘 팔리는’ 인재건, 하루 종일 방안에서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면식수행’하면서 지내는 백수건, 공무원 시험 자료집과 법전암송 오디오북, 다이어트 비디오를 공짜로 다운로드해 보면서 취업준비를 하는 반백수건, ‘88만원 세대’라는 별명을 갖게 된 이들에게 미래라는 단어는 거북스럽다. 청년들은 부모나 어른 세대의 말을 들어야 돈이 나오는 세상에서 그들의 말에 순종하거나 숨어드는 생활 외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긴 계획은 세우지 않는다. 하루살이처럼 살아가는 것이 적응력 있는 삶의 방식이라는 것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방콕 생활’은 불화와 불균형이 만들어낸 구조적 산물이며, 애초부터 위장장애와 공황장애를 앓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태를 방치할 때 국가는 거대한 ‘기생 국민’을 떠안는 부담을 안게 된다. ‘88만원 세대’의 저자들은 이들 ‘청년존재’에 대한 질문을 진지하게 제기하면서, “20대를 위해서 뭔가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미국에서는 클린턴 정권 때 노동정책을 담당했던 로버트 라이시 장관이 청년기금을 마련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그는 ‘고용 없는 성장’ 정책을 고수할 경우에 초래될 사회적 파탄에 대해 경고하면서 하나의 해결책으로 모든 젊은이가 18세가 될 때 일정한 금융자본금을 주어서 계속 공부를 하건, 벤처를 시작하건,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건, 증권이나 채권을 사건 각자의 생각대로 재투자를 하게 하자는 제안을 했다. 국가의 미래를 청년들과 함께 만들어가자는 초대장인 셈이다.

‘경제 대통령’ 논의가 분분해지고 있다. 개발 독재시대의 패러다임을 넘어서자는 주장은 지루하고 경제성장을 해놓고 보자는 논의는 무지하다. 전문가들은 돌봄과 창의적인 노동이 후기 근대 경제의 핵심 노동이라고 말한다.

그간 한국의 많은 청년들은 인디와 언더 문화, 인터넷과 대안교육 영역에서 기존 경제학에서는 노동으로 계산되지 않는 돌봄과 소통과 나눔이 가능한 창의적인 노동을 하면서 사회 이곳저곳에 새로운 생명의 씨앗을 뿌려왔다. 대통령은 바로 이들의 ‘비물질 노동’의 잠재력을 인지하고 이를 체제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바뀐다고 세상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당사자 젊은이들이 더 깊은 늪에 빠져들기 전에 스스로를 돌보기 시작하면 좋겠다.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건, 선후배간 자원을 공유하며 대학 동아리를 부활시키건, 동네에 카페를 차리건, 바리케이드를 치건 조상이 물려준 물적, 비물적 공공재를 챙겨내기 위해 이제 슬슬 방에서 나와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불안은, 정말이지, 영혼을 잠식한다.(조한혜정/ 연세대교수· 문화인류학)

07. 09. 26.

P.S. 기사를 읽으면 혼자 음미하고 말 일이지 이렇게 옮겨오는 것도 '습관'이다. 끽연자들이 하루 한 개비씩 담배를 줄이는 것처럼 앞으론 줄여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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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9-26 22:23   좋아요 0 | URL
^^ 기사를 소개해주시면 쉽게 접할 수 없는 좋은 글을 볼 수 있어 좋아요. 한국일보는 제가 구독하고 있어 거의 보는 편이지만.

로쟈 2007-09-26 23:49   좋아요 0 | URL
저로선 기회비용의 문제라서요.^^;

심술 2007-09-27 19:25   좋아요 0 | URL
정말 고생 많으십니다.^^

로쟈 2007-09-27 22:38   좋아요 0 | URL
제가 푸념한 셈이 됐나요?^^;
 

울적할 때 볼 만한 영화 가운데 <글루미 선데이>(1999)가 있다(주제가 뮤비는 http://www.youtube.com/watch?v=N2fGWQKbX68). 오늘 같은 날 보거나 듣기 좋은 헝가리 영화이고 주제가이다. 한데, '글루미'라는 게 영화 제목 이상의 '유행어'라는 건 오늘 알았다. 우연히 담비에서 읽은 기사가 '글루미 제너레이션'을 다루고 있었던 것(http://www.dambee.net/news/read.php?section=S1N5&rsec=&idxno=5894). 알고 보니 지난 봄에 TV에서 이 '우울한 세대'를 기획특집으로 다루기도 했었다(알라딘만 드나들다 보니, 세상 물정에 까막눈이 될 때가 있다!). 이 대학원신문의 기사와 함께 (언제나 앞서가는!) 마케팅 기사를 같이 옮겨놓는다.  

동국대 대학원신문(143호) '글루미 제너레이션'이 뜬다

「어느 여자가 인사동의 골목들을 지난다. 그녀의 왼손에는 따뜻한 커피가 들려 있고 오른손엔 가벼우면서도 조그만 디지털 카메라, 귀에는 목소리 굵직한 래퍼의 웅얼거림을 전해주는 이어폰이 꽂혀 있다.」 ‘그녀’에겐 가까운 사람의 체온, 시선, 목소리를 대신할만한 것들이 모두 갖춰져 있다. ‘그녀’는 ‘우리’보다 ‘혼자임’을 사랑하고, ‘우리의 관계’보다 ‘나’에 집중한다. 유행처럼 ‘그녀’를 닮은 ‘그들’이 늘어나고 세상은 그들을 글루미족(Gloomy 族)이라고 부른다.



글루미 제너레이션(Gloomy Generation), 이 새로운 세대는 이름 그대로 우울하기보다 ‘우울함을 즐기는 세대’이다. 이들을 가리켜 글루미족(Gloomy 族) 혹은 나홀로족(族)이라 한다. - 결혼이라는 틀에 자신을 맞추기보다 이상과 일, 능력을 더욱 중요시 여기는 싱글족(Single 族)과는 분명 구분되어야하는 개념이다. 싱글족(Single 族)은 결혼이라는 체제에 묶여 자신을 가두기보다 독신을 고집하면서 자신의 이상을 이루어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반면 글루미족(Gloomy 族)은 외로움과 고독을 고통으로 받아들이기보다 즐기는 것으로 여기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 한 방송사의 아침 프로그램이 대인관계연구소와 함께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 484명 중 60%를 차지하는 291명이 자신이 글루미 제너레이션(Gloomy Generation)이라고 답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함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Internet)의 사용이 증가하고 DMB 단말기, MP3등의 기기들이 등장하면서 혼자만의 시간도 무료하지 않은 세상이 되었다. 거기다 개인주의가 발전하면서 현대인들에게 외로움과 우울함은 일상이 되었고 이제 사람들은 외로움에 몸부림치며 고독에 괴로워하기보다 오히려 즐기기로 했다. 글루미족을 위한 마케팅이 블루 오션으로 환영받는 세상이 된 것이다.



우울함을 즐기기

장기화된 경기 침체, 실업률의 증가 등으로 사회 전반에 우울함이 형성됐다면 우울함은 자신감 저하, 의욕 상실, 대인기피증을 가져왔다. 어떤 의사는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표현했다. 현대인의 다수에서 흔히 발견되는 증세라고 보는 것이다. 감기를 방치하면 폐렴으로 발전되어 생명을 위협하듯 우울증도 가볍게 여기고 그냥 지나치면 누구에게든 치명적일 수 있다. 게다가 우울증 환자의 15%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한다니 이는 더욱 심각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 OECD 회원국 중 최고 수준이다. 인구 10만명당 26.1명, 교통사고 사망률 1위를 달리는 우리나라에서 교통사고 사망자의 1.5배에 달한다. 그야말로 우울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세상을 살고 있는 셈이다.

멀지 않은 과거엔 우울증에 걸려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하면 사람들이 손가락을 빙빙 돌려가며 수군거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우울함을 숨기고 나아가 우울증에 걸린 자신을 자학하기도 했다. 2005년 직장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조사에서 설문에 응한 2475명의 59.8%가 우울증을 경험하거나 치료했다고 대답했다. 현대인에게 우울증은 아프면 약을 먹고 치료해야 하는 일반적인 질병이 된 것이다. 소수에게 국한되었던 외로움과 고독이 보편적으로 확대된 이런 현상은 글루미 제너레이션(Gloomy Generation)의 등장을 보다 의미있게 한다. 글루미족은 우울함을 내면에서 끄집어내어 삶의 한 면으로 인정하고 극복해야할 대상으로 인정한다. 숨기기보다 우울함 자체를 즐기는 고독으로 대체함으로써 우울증을 이겨내는 것이다. 혼자있는 시간을 보내면서 나만의 감정과 느낌에 집중하고 내 외로움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법도 배운다. 이렇게 보낸 시간이 다음의 일상을 준비하는 에너지가 되는 것이다.

글루미족은 우울함에 도전장을 던진다. 고독한 시간에 쓸모없는 ‘나’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온전히 ‘나’를 위해 준비된 시간에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법을 찾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글루미족의 우울함 극복기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가 될 것이다.

진화된 개인주의

「점심 메뉴를 고르면서 상대방의 취향이나 입맛을 배려해가며 식사를 하는 것보다 혼자 먹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다. 전시회 관람을 좋아하는 친구와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 골목길 산책을 좋아하는 내 취향을 버릴 바엔 과감하게 혼자 여행을 떠난다.」

글루미족이 추구하는 건 절대 자유이다. 어느 누구의 침해도 용인할 수 없는 나만의 절대적인 자유를 위해 그들은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포기한다. 직장 상사가 오전에 부부싸움을 하고 한나절을 찡그린 얼굴을 하고 있어도 내가 뭘 잘못했을까하며 자존감에 상처를 내는 일은 글루미족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조율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거부한 그들은 이미 타인과의 소통 역시 차단한 것이다.

타인과의 소통은 단순히 타협과 통제, 절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또한 완전한 소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음성을 통해 표현된 생각을 한 번에 정확하게 이해하고 수긍하는 것은 좀처럼 힘든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울림을 통해서 그 사람과의 벽을 허물고 거리를 좁힌다. 글루미족에겐 이 어울림이 껄끄럽고 부담스럽다. 혼자가 편안하고 익숙한 이들은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는 일이 어색하기만 하다.

예전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자기애(自己愛)를 구현했다면-자기 가치의 고양(高揚)을 위해 타인의 확인과 인정,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함-현대의 글루미족은 자신만의 세계에 구축된 자기애(自己愛)에 치중한다. 거울 속에 비치는 아름다운 나의 모습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내 거울을 훔쳐보며 혀를 차건 말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마음상함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절대 자유를 얻기 위해 당당하게 자신을 지키고 형성해나갈 수 있다는 것은 저주라기보다는 축복이다.

하지만 사회가 존재하기에 인정받는 개인이라면 타인과의 소통이 없는 삶을 과연 뭐라고 해야 할까? 당당하다 못해 도도해 보이기까지 한 이 완벽한 개인주의를 변화된 사회의 치부(恥部)로 인정하고 묵인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회 안에서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아예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연 개인주의가 도시의 세련됨과 맞물려 그럴듯하게 포장되었다고 해서 매력적인 부메랑을 얻은 것을 기뻐해야만 할까?(박수령 동국대학원신문 편집위원)

한겨레(06. 12. 10) 마케팅, 우울한 현대인을 겨냥하다

지난 7월 서울시광역정신보건센터가 1,49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이 조사에 의하면 서울 시민 10명 중 4명이 우울하다고 답변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우울한 현대를 살고 있다. 이런 사회적 현상은 최근 개봉된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영화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정신적으로’ 우울한 현대인을 코믹하게 그려냈다.

또 최근 서울 명동에선 ‘프리 허그(Free Hug)’라 불리는 자유롭게 껴안아주는 캠페인이 펼쳐졌다. 그러나 이는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이 운동은 이미 2년 전 호주에서 처음 시작했다. 해외에선 이미 우울한 현대인을 위한 다양한 상품이 속속 등장하는 추세다.

영국 글래스턴베리(Glastonbury)에서 열린 ‘침묵 디스코’ 라는 뮤직 페스티벌에 참가한 사람들은 헤드세트를 끼고 음악을 들었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페스티벌에 참여했지만 음악은 혼자서 조용히 심취할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이다. 또, 영국 런던에 위치한 클럽바 ‘필링 글루미(Feeling Gloomy)’는 우울하고 멜랑꼬리한 음악을 즐기는 클럽으로 오는 12월 31일에는 ‘우울한 새해’를 기획하고 있다. 우울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과 가는 해를 더 우울하게 보낼 사람들을 위한 파티인 셈이다.

또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한 건강 포럼에서는 계절성 감성 치료나 만성 피로, 각종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첨단 기술을 활용한 안경이 소개되어 화제가 되었다. 루미넷 안경(Luminet glasses)이라 이름 붙여진 이 안경은 빛을 망막에 집중시키고, 이 빛이 곧 뇌에 인식되어 우울증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멜라토닌 호르몬 분비를 억제시킨다.



우울함을 즐기는 사람들

트렌드 컨설팅 업체인 아이에프네트워크(대표 김해련)는 ‘0708 FW 트렌드 워치(Trend Watch)’ 설명회에서 앞으로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현대의 우울한 소비자들 즉 ‘글루미 컨슈머(Gloomy Consumer)’의 감성을 공략하는 것이 소비 트렌드에서 앞서가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른바 우울한 현대인, 글루미 제너레이션(Gloomy Generation은 코쿤족, 싱글족 등의 나홀로족과는 다른 개념이라는 점이다. 결혼 여부에 따라 구분되던 싱글족과는 달리 결혼을 했건 하지 않았건 현대 사회의 고독한 개개인, 글루미 제너레이션들은 곳곳에 널려 있다.

글루미 제너레이션을 주목해야 할 한 가지 이유는 이들이 외로운 현실을 피하지 않고 즐겨야 할 부분이라고 여긴다는 점이다. 이들은 고독이나 우울증을 숨기지 않고 건강하게 밖으로 끄집어낸다. 이런 특성은 이들이 향후 다양하게 출시되는 우울상품을 소비하는데 주축이 될 개연성이 높다. 많은 트렌드 워처들은 향후 등장할 우울 모드(Melancholy Mood)를 이용한 기발한 상품들이 새로운 소비를 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최근 눈길을 끌고 있는 외톨족을 위한 여행 상품이나 나홀로족을 위한 놀이동산의 프로그램, 테이블마다 칸막이가 있어 옆자리 눈치를 볼 필요 없는 식당의 1인 공간 등은 더 이상 화젯거리가 아니다. ‘디스턴스 프레즌(Distance Presence)’은 글루미 제너레이션을 겨냥한 대표적인 케이스이다. 존재감을 느끼는 공간이라는 의미의 디스턴스 프레즌은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있는 것 같은 편안한 느낌을 제공하는 이불이다.

이불 원단에 열을 감지할 수 있는 기능이 있어 이불 한쪽에 손을 대면 그 정보가 이불의 반대쪽에 전달되고 그에 따라 반대쪽에 따뜻한 열기와 함께 서서히 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LED를 이용하여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디자인을 많이 한 스웨덴 디자이너 칼 헤이걸링(Carl Hagerling) 디자인 그룹이 만들었다.

미국의 마이클 커쉬(Michael Kersch)가 디자인한 ‘리아이우스(Lyaeus)’는 사용자에게 편안한 3차원 공간을 제공하는 릴렉세이션 체어(Relaxation Chair)다. 휴식, 독서, 경치 즐기기 등 목적에 맞춰 리아이우스를 놓아두는 곳에 따라 사용자가 원하는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야외에서 사용 시 발생하는 자외선을 막기 위해 햇빛 가리개도 있다.



4등분 되는 4인용 식탁도 있어

주변의 환경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데 도움을 주며, 이로 인해 눈과 마음을 편하게 쉴 수 있게 하며 동시에 사생활을 보호 해주는 장점이 있다. 스프링 스틸 디자인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일본 출신 네덜란드의 활동 작가인 쿠니코 마에다(Kuniko Maeda)가 디자인한 ‘4등분 되는 4인용 식탁’은 현대인의 식문화를 반영한 디자인 작품이다. 일반적으로 현대의 가정에 놓인 식탁은 4인용 이상인데 비해, 네 식구가 얼굴을 맞대고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매우 드물다. 쿠니코 마에다는 혼자 외로이 끼니를 때우는 이를 위해 이케아(IKEA)의 4인용 식탁을 친절히 4등분했다. 외톨족은 식탁의 한 조각만 TV앞으로 가지고 나가 식사를 할 수 있다.

최근 화제가 된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 안나 마리아 코넬리아의 ‘라이프 드레스(Life Dress)’도 우울한 현대인들을 겨냥한 상품이다. 이 드레스’는 한마디로 변신 스커트다. 항상 혼자만의 공간으로 숨고 싶은 욕망을 채워 줄 신개념의 옷이다.

비상 상태가 발생했을 때, 즉 주위가 견딜 수 없이 혼잡하거나 시끄러우면 스커트로 머리를 감싼 후 지퍼를 잠그면 자신만의 개인 도피처가 마련된다. ‘라이프 드레스’는 ‘살인적인’ 소음과 스트레스를 견디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위한 특별한 프로젝트 작품인 셈이다.(류근원 기자)

우울한 어린이를 위한 상품

다양한 글루미 제너레이션들을 공략하기 위한 상품은 어린이들에게도 적용된다. 외로운 외동 자녀를 위한 상품을 공략하는 것도 시장 트렌드를 앞서가는 한 방법이 된다. 일본 니프로사의 코코로 스트레스 미터(Cocoro Stress Meter)는 자신의 감정표현이 구체적이지 못한 아이들을 위해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를 측정할 수 있는 '스트레스 측정기'이다. ‘코코로 스트레스 미터’를 입속에 넣었다가 빼면 침을 분석해 스트레스의 정도를 측정해준다고 한다.

일본 토미사의 유아용 프로젝터 드림 에너지(Dream Energy)는 부모와 아이의 다정한 시간을 연출하는 디즈니의 신 플랫폼 ‘Disney 캐릭터 이야기 극장 판타지움’을 발매했다. 이 제품은 콤팩트 사이즈의 유아용 프로젝터로 전용 소프트를 본체에 세팅 하면, 디즈니 캐릭터 관련 슬라이드가 투영된다. 화면에 표시되는 자막(스토리)을 그림책이나 그림 연극을 읽듯이 엄마나 아빠가 읽어주면서 함께 하는 엔터테인먼트 기기이다. 곧 있으면 엄마나 아빠의 목소리로 녹음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된다.

핀란드의 론리 자켓(Lonely Jacket)은 옷에 벨크로(Velcro), 일명 찍찍이가 붙어 있어 다른 사람과 접촉만 하면 쉽게 붙어 있을 수 있다. 핵가족화 되어 사람들과 접촉이 많지 않은 요즘 가정에서 부모와 아이들이 이런 옷을 입고 있으면 재미있는 놀이도구로서의 기능도 가능하다.

07. 0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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