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등록 버튼을 누르는 순간 먹통이 되어 날아간 글을 다시 퍼온다(그나마 퍼온 글이어서 화를 참았다). 작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곧 100만부를 돌파한다는 소식이다. 100만부 이상 팔려나간 문학작품이 없는 건 아니지만 '베스트셀러'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사실 내가 기억하는 '베스트셀러'의 개념도 온전하게 <난쏘공>에 빚지고 있다. 초등학생시절과 중학생시절에 가끔씩 TV나 잡지에서 접한 베스트셀러 순위에 언제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수위로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게는 '동시대 현대문학'과 거의 동일시된 작품이 <난쏘공>이었다. 비록 대학 1학년에 들어와서야 나는 작품을 읽었지만. 아무려나 작가의 노고를 다시금 되새기게 되며 우리시대의 <난쏘공>에 값하는 작품은 무엇일지 생각해보게 된다.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둔다.   

한겨레(07. 09 03) '난장이가 쏘아올린 공’ 100만부 넘었다

‘난장이’가 마침내 100만번째 공을 쏘아올렸다. 조세희(67)씨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이 100만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1978년 6월5일 문학과지성사에서 초판이 출간된 뒤 29년여 만의 일이다. 

문학과지성사에 이어 2000년 7월부터 <난쏘공>을 내고 있는 도서출판 ‘이성과 힘’의 조중협 대표는 2일 “8월15일 227쇄로 99만9800부까지를 찍었으며 다음주 중에 100만부 기념쇄로 228쇄를 찍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 대표는 “100만부 기념쇄에는 문학평론가 권성우 숙명여대 인문학부 교수의 표사 글을 새로 싣고 띠지를 씌워서 <난쏘공> 100만부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고 말했다.

대중성에 초점을 맞춘 베스트셀러 소설들이 짧은 기간에 100만부를 넘겨 팔리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순문학 작품으로 30년에 걸쳐 100만부를 넘긴 것은 매우 드문 일. 문단에서는 한국 현대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난쏘공>은 산동네 철거민 출신으로 공장 노동자가 된 난쟁이 일가를 통해 도시빈민과 노동자 등 70년대 민중의 고통스러운 삶을 다룬 작품이다. 75년 말에 발표된 <칼날>에서부터 78년 여름에 발표된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까지 단편 열두 편으로 이루어진 이 연작은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과 서해안 항구도시 ‘은강’을 한국 문학의 지도 속에 확고히 편입시켰다.

민중의 삶을 핍진하게 그리면서도 세련된 문체와 독특한 형식실험을 구사한 <난쏘공>은 사회성과 예술적 완성도를 아울러 성취한 드문 사례로서 한국 현대문학의 고전으로 우뚝 자리잡았다. 80년대 대학생들의 필독서였으며, 그 뒤로도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추천도서로 자주 선정되고 있다. 96년 초에 최인훈씨의 소설 <광장>과 함께 100쇄 기념잔치의 주인공이 된 데 이어 2005년 말에는 200쇄를 넘어섰다.

<난쏘공> 초판 발간 30돌이 되는 내년 6월에 맞추어서는 <난쏘공>과 조세희씨의 문학세계를 집중 점검하는 기획 단행본 <조세희 깊이 읽기>(가제)도 나올 참이다. 권성우 교수가 편집을 맡은 이 책은 작가와의 집중대담, 작가론 및 작품론, 작가에 관한 인물 에세이 등이 실릴 예정이다.(최재봉 문학전문기자)

한겨레(07. 09. 03) "난쟁이 가족 불행,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세희씨의 연작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난쏘공’)이 세상에 첫선을 보인 것은 1978년 6월 5일이었다. 그러나 책에 수록된 연작 열두 편의 무녀리 격인 단편 〈칼날〉이 처음 발표된 것은 75년 12월호 〈문학사상〉에서였다. 78년 여름호 〈창작과 비평〉에 연작의 마지막 편인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가 발표됨으로써 이 책-폭탄은 세상을 향해 발사될 준비를 마쳤다.

“책을 내고서 작고한 평론가 김현을 출판사 근처 다방에서 만났어요. 김현은 ‘밤새워 읽었다. 좋다. 8천부는 나갈 거다’라며 흥분하더군요.(웃음) 그게 벌써 30년 전입니다. 그랬던 김현은 일찍 죽고, 저도 여기저기 몸이 아프고…. 무언가 마무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인데, 100만부가 되었다네요.”

명민한 평론가 김현이 ‘8천부’를 장담했던 〈난쏘공〉은 그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선전에 선전을 거듭했다. 90년대 초의 어느 무렵에는 순문학으로서는 드물게 100쇄를 넘어서서, 60년에 초판이 나온 최인훈씨의 소설 〈광장〉과 함께 뒤늦은 100쇄 기념행사도 열었다(1996년). 초판 출간 30년을 앞두고 100만부를 넘어섰으니 평균으로 치자면 매년 3만부 남짓이 팔렸다는 얘기다. 신작들도 1만부를 넘기기 힘든 상황을 고려하면 놀라운 기록이다.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는 봄에, 그리고 여름방학에 특히 많이 나가더군요. 올여름에도 제법 나간 것 같아요. 초판이 나왔을 때 5단 5센티미터짜리 광고 한번 한 게 다였고 지금도 광고는 전혀 안 하고 있는데 신통한 일입니다.”

〈난쏘공〉은 광고의 도움 없이 알려지고 팔려나가는 책이다. 지난 80년대에는 대학가의 필독서로 읽혔고 지금은 중고등학교의 추천도서로 사랑받고 있다. 2002년에는 어느 문학잡지가 문학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20세기 최고의 한국 소설’로 뽑히기도 했다.

“처음 책을 낼 때는 몇 부가 팔릴 거라는 식의 예상보다는, 검열에 걸리지 않고 세상에 나가 제 몫을 다할 수 있기만을 바랐어요. 이제 30년이 지나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100쇄 기념판’ 출간 같은) 흉한 짓을 하는 이유도 지금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사회가 풍요롭고 자유로워진 것 같지만, 〈난쏘공〉을 처음 내던 때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고 봅니다. 난장이 가족의 불행은 아직 끝나지 않은 거죠.”

〈난쏘공〉 출간 30주년이 되는 내년 6월에 맞추어 〈난쏘공〉과 조세희씨의 문학세계를 전반적으로 되짚어보는 기념 도서도 준비되고 있다. 문학평론가 권성우(숙명여대 인문학부 교수)씨가 편집을 맡은 이 책에는 시대와 문학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들어보는 집중대담, 작가론과 작품론, 그리고 작가와 가까운 이들이 쓴 인물 에세이 등이 실릴 예정이다. 권성우씨는 “조세희 선생님처럼 한 작품에 문학적 염결성과 진정성을 몽땅 쏟아 부은 작가도 흔치 않다”며 “〈난쏘공〉 30년의 발자취는 한 시대의 정치·사회적 핵심과 대결한 작가 정신의 산 증거”라고 말했다.

〈난쏘공〉과 소설집 〈시간 여행〉(1983년), 사진산문집 〈침묵의 뿌리〉(1985년) 이후 작가는 신작을 쓰는 대신 카메라를 들고 노동자와 농민 등의 집회장을 찾아다녔다. 피 흘리는 노동자·농민의 사진 등 한 시대를 증거할 그의 사진들은 정리를 기다리고 있다. 90년대 초 이후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며 붙들고 있는 장편 ‘하얀 저고리’도 마무리는 하고 싶은데 몸이 따라 주지를 않는다.

“첫머리와 결론 부분을 싹 바꾸고 싶은데, 글을 보고 있으면 어지럽고 정신이 없어서 엄두를 못 내고 있어요. 내년의 〈난쏘공〉 30주년 기념 도서에 맞추어 책으로 내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지….”(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07. 09. 03.

P.S. 생각난 김에 <난쏘공>의 시나리오와 사진집 <침묵의 뿌리>를 주문했다. 최불암, 안성기, 전영선, 금보라 등이 출연했던 영화는 언젠가 TV에서 본 적이 있다(관련 DB는 http://www.kmdb.or.kr/movie/md_basic.asp?nation=K&p_dataid=03547). <침묵의 뿌리>는 당연히 절판된 줄 알았는데, 아직 남아 있다. 

영화 포스터는 상당히 후지군(전형적인 80년대 스탈). 이원세 감독의 1981년작이다. 아래는 몇 개의 스틸사진이다. 덧붙여 새로 제작된다는 영화 관련기사도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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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06. 01. 17) '난쏘공’ 스크린서 ‘거인’ 된다

조세희 작가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을 원작으로 한 영화 <거인>이 제작된다. <웰컴 투 동막골> <박수칠 때 떠나라> 등을 제작했던 영화사 ‘필름있수다’(대표 장진)는 “지난 6일 조세희 작가와 원작 사용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으며, 신인 김중 감독이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는다”고 16일 밝혔다.

<난쏘공>은 지난 1981년에도 <전우가 남긴 한마디>를 연출했던 이원세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적이 있다. 하지만 <거인>은 <난쏘공>의 12작품 가운데 하나인 ‘칼날’과 신애네 등 <난쏘공>의 등장인물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김중 감독이 현대적으로 새롭게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영화화될 예정이어서, 원작이나 1981년작과는 크게 달라진 내용을 담게 될 예정이다.

<거인>의 이은하 프로듀서는 “원작을 그대로 영화화 하거나 원작의 시대적 배경인 1970년대를 그대로 반추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난쏘공>이라는 뛰어난 작품의 환경과 인물을 빌려 이 시대 가장 낮은 곳에 살고 있는 소시민 가족들의 정신적인 소통과 애정, 사랑을 다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작자인 장진 대표는 “가능성 있는 감독이 진정성 있는 작품을 영화화 한다는 점에 매력을 느껴 제작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필름있수다 쪽은 원작의 작품성과 완성도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계약 체결 전 조세희 작가에게 시나리오 초고를 보여줬으며, 조 작가도 직접적으로 시나리오 수정 과정에 관여하지는 않지만 <난쏘공> 집필의 이유와 배경 등에 대해 제작진에게 도움을 줄 예정이다.

<거인>은 드라마와 멜로와 판타지적인 요소가 두루가미된 독특한 작품으로, 비주얼 등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순제작비만 최소 20~25억이 투입된다. 연출을 맡은 김중 감독은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 영화학과를 졸업하고 아메리칸영화연구소(AFI)에서 프로덕션 디자인을 공부했으며, <웰컴 투 동막골>의 비주얼 수퍼바이저를 담당하기도 했다. <거인>에는 김중 감독 외에도 <복수는 나의 것>과 <말아톤>, <웰컴 투 동막골> 등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에 참여했던 스테프들이 대거 참여한다. 필름있수다 쪽은 클랭크 인 시기를 7~8월께로 잡고 있으며, 이르면 내년 봄께 개봉할 예정이다.

한편, 조세희 작가의 원작 소설 <난쏘공>은 1975년 <문학사상> 12월호에 실린 <칼날>을 비롯해 여러 잡지에 발표된 중·단편 소설 12편을 묶어 1978년 문학과지성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도시화의 광풍 속에서 벼랑 끝에 몰린 하층민들의 삶을 자유로운 형식에 담아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지난해 연말에는 200쇄를 돌파해 한국 문학계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전정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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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9-03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로쟈님도 날리셨군요. -_- 어제 여기저기 오류가 났나봅니다. 이런 말들이 좀 들리던데. 날려먹었다고.

로쟈 2007-09-03 19:40   좋아요 0 | URL
네, 바로바로 등록을 안 하면 꼭 한번씩 당하는군요.--;

twinpix 2007-09-03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단한 기록들이네요. 올해 난쏘공을 늦게나마 읽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올해 가장 인상깊은 책이었고요.^^

로쟈 2007-09-03 19:41   좋아요 0 | URL
작가들의 평생 100만부짜리 한권씩만 쓰면 작가나 독자나 모두 편할 텐데요.^^;
 

이번주에 눈에 띄는 신간은 특이하게도 모두 경제학책들이다. <부의 기원>에 이어서 리처드 세일러의 <승자의 저주>(이음, 2007)가 많은 신간들 가운데 유독 눈길을 끌었으니 말이다. 당연 관련기사들을 스크랩해놓는다.  

문화일보(07. 08. 31) 경제학으로도 못푸는 ‘이상한 경제’

<문제1> 석유가 매장돼있을지도 모르는 좋은 땅이 나왔다. 처음에는 3개 회사가 입찰을 했다. 100억원 정도에 입찰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7개 회사가 더 참여해 모두 10개 업체가 경매에 참여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애초에 생각했던 금액보다 입찰가를 올려야 할까, 내려야 할까.

<문제2> A에게 1만원을 준 뒤 B와 나눠 갖도록 배분 몫을 정하게 한다. 일단 A가 배분몫, 즉 B에게 나눠줄 금액을 제시하면 B는 제안금액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할 수 있다. 그런데 B가 거절하면 둘 다 한푼도 갖지 못한다. 이때 A는 얼마를 제시해야 하는가.

<문제3> 주식시장에서 매년 초, 매달 초, 공휴일 직전에는 수익률이 높게, 매주 월요일에는 수익률이 낮게 나타난다. 그렇다면 모두가 1월에 주식을 팔고, 월요일에 주식을 산다면 1월의 수익률은 점점 떨어지고 월요일 수익률은 높아져야 하지만 1월의 수익률이 높고 월요일 수익률이 낮은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왜 그럴까?


먼저 문제1의 답. 더 낮게 적는다. ‘승자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서다. 만일 있을지도 모르는 석유 매장량 예상치는 입찰자들의 예상치 평균과 일치한다고 가정했을 때 이 경매의 승자는 매장량을 가장 낙관적으로 예측한 사람이다. 그는 매장량을 과대평가했기 때문에 실제가치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적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그는 경매에서 이기고도 적자를 보게 된다. 이것이 그 무섭다는 ‘승자의 저주(The winner’s curse)’다. 여기서 ‘승자의 저주’는 ‘승자가 내리는 저주’가 아니라 ‘승자에게 내려지는 저주’다. 오해의 여지가 있지만 이 용어는 이미 국내 학계에서 ‘승자의 저주’로 굳어져 버렸다. 비슷한 말로 ‘피로스의 승리’라는 말이 있다. 고대 그리스의 명장 피로스는 로마와 싸워 승리를 거뒀지만 자신도 적지 않은 손해를 봤다. 작은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종합적인 ‘전쟁’에서는 진 것이다. 지느니만 못한 승리를 ‘피로스의 승리’라고 부른다.

문제2는 최후통첩게임이다. 이론대로라면 배분자는 0에 가까운 금액을 제안해야 하고, 수령자는 조금이라도 +의 값을 갖는 금액이 제안된다면 무조건 받아야 한다. 그러나 실험결과 보통 가장 많은 배분몫은 50%였다. 배분자들은 제안을 거부할 위험이 없는 때 조차도 50대50을 선택하는 ‘무른’경향을 보인 반면, 수령자들은 “고작 그것만 줄 바에는, 그냥 그것 갖고 뒈져버려라(Take your offer of epsilon and shot it!)”고 외치는 ‘단호’한 경향을 보인다.

문제3은 주식시장에서 유명한 캘린더 효과다. 효율적 시장가설에 따르면 주식가격은 랜덤워크(random walk·불규칙보행)를 따라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캘린더 효과는 최소 90년 넘게 계속되고 있으며 또 그 사실이 최소한 50년 넘게 잊어져 왔다. 이와 관련, 시장으로의 자금 유입과 유출에 영향을 주는 관습적 요인, 펀드매니저들이 계절에 맞춰 남들이 보기 민망한 보유분을 제거하는 분식회계, 나쁜 뉴스를 금요일 장이 마감될 때 기다려 발표하는 타이밍 등의 설명이 제기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없다. 실증이 이론을 앞서고 있다는 학설이 있지만 저자는 아직 이론으로 넘어오지 않았다며 경제학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라고 설명했다.

이 책은 이밖에 ▲무임승차가 가능한 상황에서의 협조적 현상 ▲똑같은 일을 하면서 어느 산업에 종사하느냐에 따라 임금수준이 달라지는 현상 ▲선호역전 ▲시점간 선택 ▲소득과 소비의 상관관계 ▲폐쇄형 뮤추얼펀드의 할인 거래 등 합리성과 이기성의 가정으로 구축된 경제학으로서는 잘 이해되지 않는 13개의 경제학 역설과 이상현상들을 다양한 실험과 분석을 통해 재미있게 설명한다. 시장은 효율성의 굴레에만 갇혀 있지 않으며, 인간은 언제나 합리적이고 이기적으로만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통쾌하게 증명한다.(김승현기자)

매일경제(07. 09. 01) 승자가 스스로 재앙을 부르다니 경제는 정말 이론대로 안되는군

복잡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경제학의 기초는 의외로 간단하다.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가능한 많은 것을 얻고자 하며, 아주 영리해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방법을 알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한다는 가정, 즉 `이기성`과 `합리성`이라는 두 가지 가정만으로 모든 경제 현상을 분석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 영역에서는 경제학의 이론적 틀로는 해명되지 않는 역설과 이상현상이 비일비재하다. 이 책은 이러한 경제의 이상현상 13가지를 다루고 있다. 이상현상 중 대표적인 것은 책 제목이기도 한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다. `승자의 저주`는 경매시장에서 사람들이 승자가 되기 위해 너무 높은 가격을 부른 나머지 실제로는 손해를 본다는 말.

다음과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보자. 많은 석유회사가 어떤 지역에서 원유 시추권을 획득하려 경쟁하고 있다. 이 시추권의 실제 가치(원유 매장량)는 경매에 참여한 모든 기업에 동일하다. 하지만 각 기업이 예상하는 가치는 서로 다르다. 어떤 기업은 원유 매장량을 실제 매장량보다 적게 평가할 것이고, 어떤 기업은 그 반대일 것이다. 경매에 참가하는 석유회사들은 각기 전문가를 고용해 매장량을 예측하는 만큼 이들이 제시하는 추정치의 평균은 실제 매장량과 일치한다고 하자.

경매에서 어떤 기업이 승리하게 될까. 당연히 가장 높은 가격을 적어 낸 기업이다. 가장 높은 가격을 적어 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원유 매장량을 과대평가했다는 말이다. 이 경우 경매에서는 이기지만 금전적으로는 손해를 보게 된다.

현실에서 `승자의 저주`는 매우 자주 발생한다. 프로야구 FA(free agentㆍ자유계약선수) 계약에서부터 출판권 경매, 기업 인수ㆍ합병(M&A), 주파수 경매 등 사례가 무궁무진하다. 실험에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MBA 학생들을 대상으로 8달러어치의 동전이 담긴 동전 단지를 경매에 붙였는데 총 48번의 실험에서 승자들은 평균 10.01달러를 적어 냈다. 2.01달러만큼을 손해 본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합리성의 가정에 위배된다. 경매 참가자들이 계속 체계적인 실수를 한다는 것인데, 합리성의 가정은 사람들이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가 비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지만, 다른 편의 비합리적인 행동 때문에 효과가 상쇄돼 전체적으로는 합리성이 유지된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논리다.

이상현상의 사례는 `승자의 저주` 외에도 많다. 경마장을 떠올려 보자. 경마시장이 효율적이라면 어떤 말에 돈을 걸더라도 건 돈에 대한 기대수익의 크기는 같아야 한다. 합리적인 경제 주체는 기대수익이 큰 쪽을 선택하게 마련인데, 어느 한쪽이 높다면 사람이 몰려 기대수익이 낮아지고 종국에는 다른 나머지와 같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실증분석에 의하면 우승확률이 높은 말에 돈을 걸면 다른 말에 비해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람들이 승률은 낮지만 일단 우승하면 대박을 터뜨리는 말에 몰리기 때문이다. 이른바 `한탕주의`인데, 이는 경제이론과는 배치되는 행동이다. 또 사람들은 이길 확률이 높은 대신 상금이 낮은 도박과 이길 확률은 낮지만 상금이 큰 도박 중에서 선택을 하라고 하면 대부분 전자를 택한다. 하지만 두 권리에 대해 가격을 책정하라고 하면 대부분 후자에 더 높은 가격을 매긴다. 명백한 선호체계의 모순이다.

주식시장은 어떤가. 주식시장에는 `캘린더 효과`라고 불리는 현상이 있다. 매년 초, 매월 초, 공휴일 직전에는 수익률이 높고 매주 월요일에는 수익률이 낮은 것을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현상 역시 경제이론과는 어긋난다. 1월의 수익률이 높다면 12월에 주식을 사 1월에 팔면서 이득을 올릴 수 있을 테고,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1월의 수익률은 점점 떨어져야 정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책은 이처럼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 때 사람들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 사례와 실험연구를 통해 보여준다.(노현 기자)

07. 09. 02.

P.S. <승자의 저주>는 '경제현상의 패러독스와 행동경제학'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덕분에 떠올린 책이 도모노 노리오의 <행동경제학>(지형, 2007)이다. 이건 구입해놓은 책이기도 한데, 그러고 보면 경제학에 대한 나의 관심은 '복잡계 경제학'과 '행동경제학' 쪽으로 정향돼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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瑚璉 2007-09-02 16:14   좋아요 0 | URL
참고로 말씀드리면 승자의 저주는 게임이론에서도 나오더군요.

로쟈 2007-09-02 21:14   좋아요 0 | URL
그렇더군요. 저도 검색하다가 알았습니다...
 

러시아 제일의 갑부가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라는 것 정도는 퀴즈문제에 나올 만한 상식이다. 하지만 두번째는? 여기부터는 '상식밖'일 텐데, 나도 아래의 기사를 읽으며 이름을 기억하게 됐다. 올렉 데리파스카(1968- )이고 세계 최대 알루미늄 생산기업이라는 루살의 '오너'이다. 얼마전 GM 지분을 5% 인수한 것과도 관련해서 뉴스에 오르내린 적이 있는데, 이 '잘 나가는' 올리가르흐에 대한 자세한 기사가 눈에 띄기에 스크랩해놓는다(러시아의 올리가르히에 대해서는 http://blog.aladin.co.kr/mramor/1091634 참조).

 

조선일보(07. 09. 01) '포스트 푸틴’ 대비책? 영국行 엑소더스 논란 

크렘린의 지지를 업고 혜성처럼 떠오른 ‘러시아의 철강왕’ 올레그 데리파스카(Oleg Deripaska·39)가 이번에는 영국으로의 ‘엑소더스’(exodus·대탈출) 논란에 휩싸였다. 혹시 모를 권력의 변덕과 포스트 푸틴 체제에 대한 방어책으로 자산 전체를 영국으로 옮기려 한다는 것이다.

데리파스카는 세계 최대 알루미늄 생산기업 루살(RUSAL)의 오너(owner)로, 영국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에 이은 러시아 2위 갑부다. 보리스 옐친 전 러시아 대통령 외손녀의 남편으로, 푸틴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칭찬을 아끼지 않는 인물로 유명하다. 소치 공항을 통째로 인수해 대대적인 재건축에 나서며 러시아의 동계올림픽 유치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런 데리파스카가 때아닌 논란에 휩싸인 것은 런던 고급 주택가 벨그라비아(Belgravia)에 일찌감치 사놓은 저택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몇 년간 ‘개인적으로’ 인수해온 유럽 기업들 지분에, 올해 말로 점쳐지는 루살의 런던증권거래소 상장이 가장 유력한 증거로 제시된다. 루살은 기업공개(IPO)에 성공할 경우 90억 달러의 자금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까지는 데리파스카가 굳이 러시아를 탈출하는 위험을 감수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는 여전히 푸틴이 가장 신임하는 올리가르히(Oligarchy·러시아 신흥재벌)다. 또 그는 전직 오너가 탈세 혐의로 재판 중인 석유기업 루스네프트(Russneft)의 유력한 인수자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크렘린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운 영국인 거부가 될 수 있다는 건 달콤한 유혹임에 틀림없다. 그 역시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보리스 베레조프스키, 블라디미르 구신스키 등 걸출한 올리가르히들의 몰락을 눈앞에서 지켜봐 왔다(*아래는 철창의 호도르코프스키. 유코스그룹의 회장이었던 그는 러시아 최대의 갑부였다).

성공적으로 서방 미디어의 보호막 안에 들어선 아브라모비치의 선례도 있다. 포스트 푸틴 체제는 언젠가 다가올 현실이고, 푸틴 아래서 누렸던 특혜는 다음 정권에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데리파스카는 자신의 엑소더스에 대한 세간의 의혹을 일축한다. 그는 루살의 기업공개를 주장하는 것은 자신이 아닌 다른 주주들이라며 “나는 부끄러운 것도 없고 숨길 것도 없다. 역사가 나를 심판할 것이다”라고 공언하고 있다.

데리파스카는 1990년대 러시아 알루미늄 산업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알루미늄 전쟁’의 최후 생존자라 할 수 있다. 권력과 마피아가 동원된 이 혈투에서 알루미늄 업자들은 기습과 암살을 주고받았고, 살해된 사람은 수십 명에 이른다.



모스크바대에서 양자물리학을 전공하던 데리파스카는 1992년 국유 재산 민영화의 격동기에 시장 경제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알루미늄 매매 시장이었다. 그리고 그의 운명을 결정한 것은 당시 알루미늄 산업을 장악하고 있던 유대계 금속기업 트랜스월드그룹(TWG)의 러시아 대리인 미하일 체르노이와의 만남이었다.

체르노이는, 이재에 밝고 수완을 갖춘 푸른 눈의 이 청년을 알아봤고, 시베리아 남동부 사얀스크(Sayansk)의 알루미늄 공장 사장 자리에 앉혔다. 그러나 데리파스카는 훨씬 큰 야망을 갖고 있었다. 데리파스카는 1998년 트랜스월드그룹의 뒤를 봐주던 정치인의 실각과 체르노이 형제 간 불화로 회사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 비밀스러운 증자를 추진했고, 결국 사얀스크 공장의 경영권을 빼앗았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트랜스월드그룹의 오랜 독점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던 알루미늄 업자들을 회유하기 시작했다. 애국심을 이용한 선전도 곁들였다. 기자회견을 열어 “러시아에 대한 강탈은 이미 충분하다”며 세금 감면 혜택을 받고 있던 트랜스월드그룹을 공격한 것이다. 자신은 3년 내에 주식을 공개하고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선언했다.

1999년 크렘린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트랜스월드그룹이 세금 감면을 받기 위해 고위관료들에게 뇌물을 제공했다고 발표하며 그간의 특혜를 빼앗아 버린 것이다. 데리파스카는 타격을 입은 트랜스월드그룹이 주춤하는 사이 공장들을 인수하며 세력을 넓혀 나갔고, 결국 알루미늄 기업 연합인 루살 회장에 오를 수 있었다.

흑해 연안 크라스노다르(Krasnodar) 지방의 전통 마을에서 태어난 데리파스카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와 친척들 집을 전전했다고 한다. 그는 “삶의 어려움은 재앙이 아니다. 홍수가 있으면 뛰쳐 나가서 맞서면 된다”는 말로 당시 생활을 표현했다. 후에 데리파스카는 정략결혼에 예기치 않은 행운을 더해 수직 신분상승을 이루게 된다.



2001년 2월 데리파스카는 옐친 전 대통령의 측근인 발렌틴 유마셰프의 딸과 결혼했다. 그런데 8개월 뒤 장인 유마셰프가 옐친 전 대통령의 딸인 여장부 타티야나와 재혼했다. 데리파스카는 하루 아침에 옐친 가문의 일원이 된 것이다. 데리파스카는 푸틴에 대해 “러시아의 대통령은 나라 전체를 이끄는 최고 관리자이다. 그는 똑똑하고, 적절하고, 그의 권위는 한계를 벗어난 적이 없다”고 노골적으로 말한다. 푸틴은 그런 그에게 “국가에 이바지한 경제인”이라고 화답한다. 언제까지 이런 관계가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데리파스카는 몰락한 올리가르히들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성적인 행동보다 룰렛 게임에 돈을 걸던 무능력한 무리는 제거됐다. 죽거나 아니면 노동 캠프에 가거나.” 데리파스카의 엑소더스를 둘러싼 논란은 서방 언론들의 푸틴 공격과 맞물려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선정민 기자) 

07. 09.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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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독서의 주제 중 하나를 '제국'으로 정했는데, 마침 한겨레에서 '우리시대 지식 논쟁'이란 기획기사를 만들면서 '제국'을 첫번째 테마로 다루고 있어서 옮겨놓는다(네그리/하트의 <제국>은 리스트에서 제외했지만). '제국인가 제국주의인가'라는 테마 타이틀에 세 명의 필자가 가세하는 모양인데, 첫번째 타자는 네그리/하트의 제국론의 지지자인 조정환 다중네트워크 대표이다. 이후 정성진, 이진경 교수의 글들도 옮겨놓도록 하겠다.

한겨레(07. 09. 01) 제국주의는 죽었다, 21세기는 지구제국 시대

이번주부터 매주 한차례씩 학계의 주요 쟁점을 보는 전문 연구자들의 각기 다른 시각을 엮어 내보낸다. 학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관심을 가질 만한 시사성 있는 쟁점에 대해 그 논리의 틀거리와 각기 다른 논지의 차이를 세밀히 들여다볼 계획이다. 풍부한 논리 소개로 해당 주제에 대한 독자 이해도를 높이고자 원칙적으로 매주 한 꼭지의 글로 한 면을 채우기로 했다. 시리즈의 첫번째 쟁점은 ‘제국이냐 제국주의냐’이다.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의 책 <제국>이 지난 2000년 출간된 이후, 이 주제는 여러 나라에서 뜨거운 논란거리가 됐다. 지은이들은 현재의 전지구적 권력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제국’을 내세운다. “경제적 문화적 교환들이 전지구적으로 전개되고 권력의 중심이 사라진” 상태에서 국민국가를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제국주의론’은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제국주의론’에 사망 선고를 내린 셈이다. 이들은 전지구적 주권질서의 등장으로 미국 등 어떤 국민국가도 오늘날 제국주의적 기획의 중심을 형성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제국’에 비판적인 학자들은 “오늘의 세계는 미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이며, 이른바 세계화란 미국 제국주의의 세계적 지배의 확장 과정일 뿐”이라고 논박한다. 제국론의 지지자인 조정환 자율평론 상임만사(*상임간사?)의 글에 이어 정성진 경상대 교수가 제국주의론의 견해에서 반론을 펼치며, 이후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가 제3의 시각을 제시한다.(편집자)

제국인가 제국주의인가 / ① 왜 제국인가

왜 미국은 양귀비가 주요 산품일 뿐인 농업국 아프가니스탄에 수천억 달러의 전비를 쏟아붓고 있는가? 미국인도 아닌 한국인이나 독일인이 어째서 탈레반의 인질로 이용될 수 있는가? ‘전지구적 주권질서’가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고서는 오늘날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태들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국가주권의 확장메커니즘을 설명했던 ‘제국주의론’은 20세기 세계를 이해하는 데 긴요한 것이었지만 탈식민화가 전개된 20세기 후반부터는 적실성을 잃기 시작했다. 신제국주의론, 종속이론, 세계체제론, 탈식민주의론 등은 그것의 부적실함을 메우고자 만든 이론들이다.

하지만 21세기의 세계는 더는 제국주의라는 개념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물론 제국주의 현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초강대국 미국이 ‘국익’을 위하여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작은 나라들을 침략·점령한 뒤 석유·가스와 같은 자원을 약탈하거나 그 수송로를 매설하고 무기를 비롯한 상품을 팔고 자본을 수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해할 때 미국은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을 제치고 소련 제국주의와의 냉전에서 승리한 뒤 점점 더 거대한 제국주의 초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는 일면적이다. 그것이 감추는 다른 면들이 있다. 예컨대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투입한 전비는 점령을 통한 자원 확보나 상품 수출을 통해 볼 수 있는 이익을 훨씬 초과한다. 게다가 전후 ‘국가건설’ 프로젝트에 거대한 자금이 원조로 제공되어야 한다. 저항이 끝나지 않음으로써 전쟁은 항구화하고 전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누적된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제국주의’ 행동은 미국 자신을 연간 7000억 달러의 무역적자와 연간 4000억 달러의 재정적자를 기록하며 평균 매일 20억 달러를 차입해야 하고 또 매일 50억 달러의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 ‘빚더미 국가’로 만들어 놓는다. 제국주의론이 이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래서 제국주의론의 좀더 발전된 판본은 미국을 단일하게 행동하는 제국주의 국가로 이해하기보다 여러 종속국 혹은 동맹국들을 거느리고 살아가는 ‘제국’으로 설명한다. 그 종속국의 범위는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독일과 같은 이전의 적대국, 그리고 프랑스·영국과 같은 옛 제국주의 맹주국들도 포함할 만큼 넓다. 동맹국들을 거느리는 데 드는 높은 비용 때문에 미국의 부채는 부단히 증가한다.

그래서 빌 보너의 <부채의 제국>, 에마뉘엘 토드의 <제국의 몰락>, 차머스 존슨의 <제국의 슬픔> 등은 미 제국의 불가피한 몰락을 예언한다. 전지구적 주권질서의 등장을 보지 못하고 국민국가를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이상의 이론들은 미국의 군사적 강대화와 경제적 취약화의 모순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실천적으로 제국주의론은 민족해방을 아직도 유효한 투쟁전략으로 제시한다. 그래서 미국에 맞섰던 사담 후세인을 군사적으로 지지할 뿐만 아니라 탈레반을 민족해방운동의 전위대로 지지한다. 이런 시각에서는 테러와 납치도 민족해방운동의 부득이한 전술일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도 반제국주의 보루로 보일 것이다. 반면 미 제국론은 미국의 붕괴를 예상하면서 미국을 대체할 대안제국(가령 유럽이나 중국)을 상상하는 데 머무른다. 이러한 정치학이 가져올 퇴행적 결과를 여기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이렇듯 이들이 국가행동에 정치의 초점을 맞추는 한에서 자본에 대항하는 다중들의 국경을 넘는 전지구적 연합운동의 중요성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사태를 근본적으로 그리고 총체적으로 이해하자면 오늘날 주권이 일국적 수준을 넘어 전지구적 수준에서 구축되고 있다는 점을 먼저 직시해야 한다.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의 <제국>은 주권의 이러한 전지구적 구성에 대한 커다란 밑그림을 제공한다. 각 층에 각 3단의 작은 계단을 가진 3층 피라미드의 주권 구성체 그림에서 미국은 피라미드적 주권 질서의 최상층, 최상단에서 전지구적 무력사용에 대한 헤게모니를 쥐고 있다. 미국은 강대한 용병국가로서 지구에 산재한 미군들뿐만 아니라 동맹국의 군대들을 지구제국을 지키는 용병으로 결합함(이른바 ‘연합군’)으로써 군사적 헤게모니를 행사한다. 한국의 파병도 이러한 맥락 속에 있다. 미국 대통령은 이런 의미에서 전지구적 용병대의 우두머리다.

그 아래로 전지구적 통화수단을 통제하면서 국제거래를 조절하는 일단의 국가들의 연합체(주요8국, 파리클럽과 런던클럽, 세계경제포럼 등). 그 아래 단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처럼 군사적 혹은 재정적 수준에서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국제단체들이 놓인다. 이상이 제국을 ‘통합’하는 군주층이다. 그 아래의 귀족층은 초국적 기업들 및 시장을 조직하는 세력들(세계무역기구, 세계은행 등과 같은 국제경제기구들)과 국지적으로 영토화된 국민국가들(유럽연합 등)에 의해 ‘절합’되어 있다. 이것이 귀족층이다. 그 아래의 민주층에 전지구적 권력배치에서 민중의 이해를 ‘대의’하는 집단들이 놓인다. 유엔을 통해 다중을 대의하는 국민국가들, 미디어들, 그리고 비정부기구(NGO)들 등이 그것이다.

등장하고 있는 전지구적 주권질서에 대한 이 그림은, 수많은 크고 작은 권력체들이 위계질서화된 그물 속에 마디들로 배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그물 주권기계의 기능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대답은 다중이야말로 오늘날 지구적 삶의 생산자라는 사실의 인식에 근거해야 한다. 전지구적 주권기계의 기능은 다중의 삶활력을 권력흐름으로 뒤바꾸는 것이다. 민주층의 대의회로를 거친 그 힘들을 귀족층에서 마디마디 절합하면 군주층이 통합하여 단일한 세계명령(보편공리)으로 만든다. 예컨대 신자유주의는 자본 착취의 무제한 자유를, 테러에 대한 영구전쟁은 다중의 삶자유에 대한 무한한 억압을 공리화한다. 이 명령기제를 통해 다중의 생산적 활력은 제국주권의 동력으로 포획된다.


요컨대 제국의 재생산은 다중으로 하여금 창조적으로 살되 공포와 예속 속에서 살게 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정리해고, 비정규직화와 같은 사회적 갈등들은 물론이고 외형상 국가간 전쟁형태를 띠는 갈등조차 실제로는 다중에 대한 제국의 전쟁, 곧 전지구적 내전이다. 21세기의 전쟁들은 자본의 이러한 필요에 따라 각층 각단의 주권마디들의 명시적 혹은 암묵적 지지 아래 일상적·보편적·항구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지구제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군대는 지구상 어느 오지라도 파견된다. 그런데 그에 수반되는 전비는 누가 치르는가? 미국은 동맹국들로부터 전비를 거두는데 이것은 해당국 다중들의 세금에서 나온다. 미국 자신의 전비는 부채(국채판매)로 충당하는데 미국의 국채를 구입하는 것은 중국이나 한국 같은 여러 나라이며, 그 주요 자금은 국민들의 연금·기금·보험료·저축 등이다. 결국 전세계의 다중들이 다중 자신을 공격하는 제국의 전쟁에 전비를 치르는 셈이다.

미국의 부채는 미국이 붕괴되지 않는 한에서만, 아니 전쟁 강국으로 남아 있는 한에서만 다른 부채를 통해 상환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다. 결국 전지구적 전쟁질서로 말미암아 미국은 부단히 ‘제국주의적’ 행동을 일삼게 되고 그것은 다중의 건강과 노년, 다시 말해 생존과 안전을 볼모로 잡는다. 

이 착종되고 역설적인 상황을 깨뜨릴 대안은 무엇인가? 그 답은 오늘날의 전지구적 주권질서 자체가 암시하고 있다. 그것은, 다중 자신이 다양한 수준에서 벌이고 있는 투쟁들을 지구적 수준에서 연결함으로써 제국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길이다. 투쟁하는 다중의 지구적 네트워크의 길을 열어감에서 전지구적 주권질서의 실재성을 보지 못하는 제국주의 정치학을 넘어서는 것은 필수불가결한 과제다.(조정환/다중네트워크센터 공동대표)

07. 09. 02.

P.S. 어휘론적 차원에서 네그리/하트의 <제국>이 낳은 최대 기여는 '제국'과 (특히) '다중(multitude)'이란 어휘의 대중화이다(적어도 지식사회에서는). 나는 말 그대로 '다중적(muliple)' 의미를 갖는 '다중'이란 개념의 현실적 유효성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때문에 "다중 자신이 다양한 수준에서 벌이고 있는 투쟁들을 지구적 수준에서 연결함으로써 제국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는 길이다."라는 선언적 주장에서 '이론투쟁'의 뉘앙스만을 읽는다. 이후의 반박과 지양(?)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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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슐라르의 <불의 정신분석>(이학사, 2007)을 영역본과 함께 읽다가 문득 모스크바통신에서 바슐라르에 대해 간단히 적어놓았던 게 생각났다. 찾아보니 '<텍스트>-바슐라르-로트만'이라고 타이틀을 달았던 꼭지이다. 모스크바통신의 내용은 비공개로 돌리기 전에 대부분 새로 정리해서 옮겨놓았었는데, 간혹 빠진 글들이 있다. 이 꼭지도 그런 경우인 듯하다. 간혹 사실에 맞지 않거나 불필요한 일부 내용은 교정을 보면서 옮겨놓도록 한다. 한 줄기 추억담으로. 때는 2004년 5월이었다.

지난주초에 서울에서 온 우편물을 받았다(여기 와서 통틀어 두번째로 받은 우편물이었다). 월간 북매거진 <텍스트>의 3월호와 4월호 두 권이 들어 있었다(우라!) 우연한 계기로 그 잡지에 ‘로쟈의 노트’라는 걸 연재했었는데, 담당기자는 내가 모스크바에 온 이후에도 책을 보내주겠다고 했고, 약속을 지킨 것이었다. 메일로 이 곳 주소를 알려주긴 했지만, 책을 직접 보내겠다는 약속은 ‘덕담’으로 흘려도 좋은 것이었는데(비용도 만만찮고), 세상엔 아직 고지식한 사람들이 더러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이곳에 와서 제일 처음 읽는 한글 책이 지난번에 언급한 <항상 라캉에 대해…>와 함께 이 <텍스트>가 되었다. 

나는 이곳에서의 ‘과제’와 관련된 책 두어 권을 제외하곤 한글책은 한권도 들고 오지 않았고, 영어책도 전공서 몇 권을 빼면, 얇은 데리다 책 세 권(<죽음이라는 선물> 등)과 브루스 핑크의 책 한 권(<라캉적 주체>)이 전부이다. 그런데, 아직 이 책들을 책꽂이에서 한번도 꺼내보지 않았다. 읽어야 할 러시아어 책들이 책장을 다 채우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지만(그보다 더 원론적으로 책 읽을 시간도 많지 않았다, 책을 ‘보러’ 다니느라고), 굳이 한글이나 영어에 대한 ‘욕구’가 생기지 않았던 것. 이것의 주된 원인은 길게 건 짧게 건 한글이나 영어로 메일을 자주 보내기 때문인 것 같다(이걸 자제하면 책을 읽게 될까?).

내가 집어든 <텍스트>의 3월호엔 이곳에 오기 전에 사두었던 이지훈의 바슐라르 연구서 <예술과 연금술>(창비)에 대한 서평도 실려 있었는데, <텍스트>를 나에게 배달해준 할아버지가 딱 이 바슐라르를 닮았다. 월요일인가, 화요일 아침부터 문을 여러 차례 두드리길래, 누군가 싶었더니 언젠가 한번 엘리베이터에서 만나서 편지 몇 통을 내가 사는 7층 수위 아저씨(라기보다는 할아버지) 책상에 갖다 놓아달라고 부탁받았던 배달부 할아버지였다(나에게 우편물에 적힌 주소를 확인시키더니, 장부에 사인을 하도록 했다). ‘스빠씨바!’ 나는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이 할아버지의 별명이 ‘바슐라르’이다(내가 붙인 거지만). 약간 ‘고생한 바슐라르’. 수염은 비슷하게 났지만 약간 검은 얼굴에 좀 말랐다(말도 약간 더듬는다). 그래도, 배달부답게 모자와 배낭을 다 챙겨서 다니신다(영화 <일 포스티노>의 배달부 아저씨가 갑자기 생각난다). 사실, 젊은 바슐라르도 우체국에서 일하지 않았던가! 이 러시아의 바슐라르 할아버지가 밤에는 촛불 밑에서 몽상도 하고, 남몰래 연금술도 꿈꾸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이 할아버지를 자주 만났으면 싶다!

참고로, 러시아에서는 시학자로서보다는 과학철학자로서의 바슐라르를 더 자주 만나게 된다. 그의 <공간의 시학>이 근년에 번역/소개되었고(로스펜출판사), <새로운 과학철학>과 <부정의 정신>이 함께 묶인 책은 헌책방에서 볼 수 있었다(그리고 <새로운 합리주의>인가 하는 책도). 사실, 이 두 권의 책은 오래전 국내에도 번역/소개됐었다. 물론 (역자의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번역이 아니었다. 국내에서 과학철학자 바슐라르의 자취를 좀처럼 찾을 수 없는 건 그간에 제대로 된 번역/소개가 드물었기 때문이다. 물론 시학서 번역을 두고서도 논란들이 있었지만. 그 두 권의 책을 낸 곳은 출판사 ‘인간사랑’이다. 하지만 정작, 그 출판사에 부족한 건 ‘책사랑’인데, 이런 날림 번역서를 이미 오래 전부터 서슴없이 출간해 온 것. 그런 틈바구니 속에서 그나마 <예술과 연금술> 같은 책으로 바슐라르를 다시 읽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 건 다행스런 일이다(*러시아어로 번역돼 나온 바슐라르를 나는 이후에 모두 구했다).



하여간에 이 <텍스트>(3월호)를 가방에 넣고 나는 지난 화요일과 목요일에 시내에 있는 <비블리오-글로부스>란 서점을 찾았다. <돔 끄니기>와 함께 모스크바에서 그래도 손꼽히는 대형서점이라고 해서 한번 찾았고, 보아둔 책을 사기 위해서 한번 더 찾은 것. 그리고 그때마다 볼일을 본 이후에는 정처 없이 시내를 30-40분간씩 산책했다. 아무 전철역이나 다시 나타날 때까지. 나중에 지도를 보니까 돌아다닌 곳이 거기서 거기였지만.

모스크바의 지리를 알거나, 나중에 혹 찾게 될 사람을 위해서 밝혀두면, <비블리오-글로부스>는 빨간색 라인(1호선)의 '루뱐까'역에 있다. 출구쪽으로 나오다 보면 <비블리오-글로부스>로 나가는 쪽 출구를 확인할 수 있고(모스크바 지하철은 입구와 출구가 일방통행이다), 출구로 나와서는 곧장 1분 정도를 걸어가면 된다. 가는 길 오른편에는 들어가 보지 않았지만, 20세기 초의 걸출한 시인(혁명의 목청!) 마야코프스키의 박물관이 있다. 참고로, 내가 한참을 ‘산책’하다가 도착한 역은 각각 '취스뜨이 쁘루드이'와 '수하렙스까야'이다.

<비블리오 글로부스>는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구성된 매장인데, 전체적인 면적은 <돔 끄니기>보다 좀 작아보였지만, 분야별로 ‘방’이 나뉘어져 있어서 둘러보기에는 더 편했다. 물론 <돔 끄니기>의 1층을 내가 자세히 돌아보진 않았지만, <비블리오 글로부스>의 지하 1층에는 오디오, 비디오와 화집 코너가 따로 있어서 ‘구경’은 잘 할 수 있었다. 비디오는 DVD와 비디오CD까지 다 망라돼 있었는데, 비디오CD는 역시 종류와 양이 많지 않아서 내가 새로 살 만한 것이 없었다. 비디오로는 러시아 영화들 외에 명작(클래식) 시리즈로 펠리니, 부뉘엘, 르누아르, 구로자와의 영화들이 여러 편씩 눈에 띄었고(특이하게도 히치콕과 오즈는 안 보였다),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도 한 켠에 있어서 나를 잠시 즐겁게 했다.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카바를 보니 무삭제판이다) 옆에.

Империя чувств

대형서점들을 몇 번 찾으면서 받는 인상이지만, 엄청나게 많은 책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가 꼭 사야 할 책, 혹은 살 수 있는 책은 별로 많지 않다. <비블리오-글로부스>만 해도, 말로만 듣던 <톨스토이 전집>을 구경할 수는 있었지만, 이 91권(이게 끝인지는 모르겠다. 너무 높이 꽂혀 있어서 확인해보지 못했다)짜리는 보기만 해도 경탄/경악스럽다. 내가 톨스토이 전공자가 아니란 사실에 안도할 따름. 막심네 가게에서 산 <고골 전집>의 1권(<지칸카 근촌 야화>, 국내에는 8편 중 6편이 번역된 게 있다)도 있었지만, 막심네보다 200루블(8,000원) 이상이 더 비쌌다.

Агата Кристи. Собрание сочинений. Том 48. Книга 1. Мертвецы не катаются на лыжах. Под парусом среди мертвецов. Фантастическое убийство

포크너 전집(9권), 드라이저 전집(8권) 등 미국 현대작가들의 신간 전집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지만, 나를 또 가장 경탄/경악케 한 것은 아가사 크리스티 전집이었다. 42권까지 나와 있었는데, 한 권당 보통 700쪽 이상이었고, 어떤 권들은 분권이 3-4권씩 됐다(*전체 48권짜리이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 하랴? 하지만, 아가사 크리스티는 두려워 할 만했다! 그밖에 20세기 러시아 작가들의 전집들도 많이 나와 있었지만, 나는 눈요기를 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값도 값이고, 부피도 부피였기 때문에. 19세기만 해도 확실한 거장들의 리스트가 있지만, 20세기는(특히 후반) 거의 (올망졸망한) 백가쟁명의 시대여서 불가코프나 파스테르나크, 플라토노프, 나보코프 등 손가락에 꼽는 작가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안 사기에는/안 읽기에는 찜찜하고, 사기에는/읽기에는 부담스러운 작가들이다(이들이 한 권씩만 썼으면 그래도 다행이련만!).

나에게 이 서점을 소개해 준 후배의 메일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는데, 이 <비블리오-글로부스>에도 <북끼니스트>라고 헌책방이 따로 있었다(새로 생긴 것인가?). 하지만, 여기도 한 방 가득 채우고 있는 책들 가운데, 나와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책은 몇 권 없었다. 그 중 한 권은 1979년에 나온 <레르몬토프: 연구와 자료>인데, M. 알렉세예프, V. 바쭈로 등이 편집을 맡은 책으로, 러시아와 미국 학자들의 논문과 연구자료 25편 정도가 실려 있다(미국과 러시아의 레르몬토프 학자들이 함께 책을 낸 건 최초라고 서문에 밝혀져 있다). 430쪽 분량이고, 16,300부를 찍을 걸로 돼 있다. 무슨 연구서를 소설보다도 많이 찍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이유 때문인지 책값은 80루블로 생각밖에 저렴했다. 화요일에는 이 책과 유리 로트만의 동료였던 B. 예고로프의 <로트만의 삶과 창작>(1999)을 73루블에 사는 것에 만족했다.

Физиология символического. Книга 1. Возвращение Левиафана

예고로프의 책은 <신문학평론>(영어로는 ‘New Literary Observer’이다. NLO로 약칭)이란 출판사에서 나온 것인데, 이 NLO는 수년 전부터 러시아 문학연구계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출판사이다. 특히 맘에 드는 건 책이 모양새 있게 나옴에도 불구하고 책값이 저렴하다는 것. 아무리 두꺼워도 150루블을 잘 넘지 않고(가장 최근에 나온 건 유럽의 18세기 문학/문화에 대한 얌폴스키(Jampolsky)의 아주 두툼한 연구서이다. 얌폴스키는 앞으로 이름을 기억해 둘 만한 중요한 러시아 연구자 가운데 한 명이다), 웬만하면 80루블 이하이다(*물론 지금은 가격이 2-3배 이상 뛰었다).

이 노보예출판사는 같은 이름의 격월간 문학잡지도 내고 있는데, 2004년호로는 지난달 중순쯤에 첫호(No. 64-1)가 나왔다(여섯 번이 다 언제 나올 건지?). 가장 유명한 문학잡지의 하나이고, 가장 품위있게 나오는 잡지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놀란 건 고작 2,000부를 찍는다는 것. 480쪽에 5천원도 채 안되는 책값이지만, 독자가 그만큼 없는 것인지?(인터넷으로 원문이 다 서비스되기도 하지만.) 이 잡지는 대개 내용도 새로운 경향인데다가 알차지만(적어도 목차상으론), 특별히 고마운 건 권말에 영어로 써머리가 다 돼 있다는 것(그리고 다양한 서평이 풍부하다는 것).

Мифы - эмблемы - приметы. Морфология и история

이번호 <사건으로서의 책>란에서 특집으로 다루고 있는 저자는 <치즈와 구더기>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이탈리아 출신의 역사학자 ‘카를로 긴즈부르그’이다(현재는 UCLA에 재직중. http://blog.aladin.co.kr/mramor/1112172 참조). 그의 선집 <신화-상징-징후>가 작년말쯤에 이 노보예출판사에서 나온 걸 계기로 하여 마련된 특집인데, 긴즈부르그식의 미시사 연구의 특장과 한계를 짚는 글들과 긴즈부르그 자신의 강연원고 한편, 그리고 그가 이탈리아의 문헌학자이자 맑시스트 팀파나로(S. Timpanaro)와 1970년대에 교환한 서신들을 싣고 있다.

다시 예고로프. 그의 책도 러시아에서 공부한 전공자라면 대개 갖고 있는 책인데, 385쪽 분량의 하드카바 책이 우리 돈 3,000원도 안된다. 어쨌거나 반세기에 걸친 로트만과의 오랜 교우를 바탕으로 하여 씌어진 이 책은 저자의 자부심대로 그만이 쓸 수 있는 책이며, 로트만 연구에 있어서 1차 자료적인 성격을 갖는다. 에스토니아 출신으로(때문에 러시아학계에서 로트만은 오랫동안 비주류였다) 그곳 타르투대학에 오래 몸담으면서(아예 그곳 러시아문학부를 창설했다!) 유리 로트만(1922-1993)은 타르투대학을 러시아 문화기호학의 메카로뿐만 아니라 세계기호학계의 성지로 만들었다(*로트만 기호학에 대해서는 http://blog.aladin.co.kr/mramor/802010 참조).

기호학의 다른 성지들은 그레마스의 파리학파(몇 대학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파리학파’의 선집들도 출간된 바 있다)와 함께, 토마스 세벅의 인디애나대학 기호학연구소, 그리고 비언어기호학을 주로 하는 베를린 공대 기호학연구소(세계기호학회 회장까지 역임한 독일학자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등이다. 물론 그 지명도나 기여도에 있어서 모스크바-타르투 학파는 단연 독보적이지만(물론 로트만 사후에 그 이론적 업적이 발전적으로 계승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레마스 사후의 파리학파가 그렇듯이).

Пушкин. Биография писателя. Статьи и заметки. 1960-1990. `Евгений Онегин`. Комментарий

다른 한편, 로트만은 푸슈킨 연구에 있어서도 기념비적인 업적들을 남기고 있다. 이미 그의 전집 한 권이 <푸슈킨>으로 묶인 바 있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고골 연구에 있어서 유리 만이 차지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의 위치를 푸슈킨 연구에 있어서 유리 로트만이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순수 러시아’ 학자들은 의견이 다르겠지만). 그건 아마도 학자로서 그 자신이 가장 평가받고 싶어했던 부분들 가운데 하나이지 않을까 싶은데, 러시아문학에서 푸슈킨이 갖는 문학적 상징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1991-2년에 행해진 생전의 그의 마지막 TV강연 주제도 ‘푸슈킨’이었다). 그리고, 사실 그건 <예브게니 오네긴>에 대한 그의 주석만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을 만한 부분이다. 며칠 전 ‘볼쇼이’에서 공연됐던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의 팜플렛에서도 로트만의 이 주석은 여러 차례 인용되고 있을 정도이니까(가장 ‘대중적인’ 푸슈킨 학자?!)

로트만 얘기를 갑자기 길게 한 것은 <비블리오-글로부스>의 <북끼니스트>에서 그의 누이가 저명한 푸슈킨 학자인 포미쵸프와 공동으로 주석을 단 <보리스 고두노프>(1996)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맡은 부분은 역사적-문헌적 주석으로 130쪽 정도의 분량이다. 나는 이 주석이 그의 전집 속에 들어가 있는지 확인하지 못해서, 화요일에는 책을 사지 않았는데, 기숙사에 돌아와서 확인해 보니까 적어도 그의 <푸슈킨>(1995)에는 들어있지 않았다. 목요일에 다시 <비블리오-글로부스>를 찾은 건 8할이 이 책(더 정확하게는 이 주석) 때문이었다(원전보다 주석이 더 중요하다?). 책값은 128루블.

Ранний Достоевский 1821-1849

나머지 2할은 도스토예프스키 연구자 네차예바의 책 때문이었는데, 그녀의 1979년작 <초기의 도스토예프스키, 1821-1849>와 함께(이건 지난번에 필팍의 <이데아>에서 구입한바 있다), 이전작인 1975년작 <도스토예프스키와 ‘에포하’>(대략적인 제목인데, 형 미하일과 함께 창간한 잡지 <에포하>와 관련된 연구서로 1864-5년을 다루고 있다)가 나란히 꽂혀 있었다. 화요일에는 ‘너무 비싸다’고 생각해서 안 샀는데, 그 책을 구해달라는 후배의 부탁도 있고 해서 얼만큼 비쌌는지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고서 다시 찾아간 것이다(200루블대라면 사주기로 하고서). 그런데, 무려 450루블(18,000원).

부피도 300쪽이 안되는 책이건만, <초기의 도스토예프스키>가 120루블인데 반해서, 3배 이상이 비싼 건 납득할 수가 없었다. 그만한 돈이면, 로트만의 아내이자, 20세기초 러시아 최대 시인 알렉산드르 블록 연구의 최고 권위자 Z. 민츠의 두툼한 선집 3권을 모두 살 수 있는데 말이다. 비록 내가 필팍의 <그노지스> 서점에서 108루블 하는 그 중 한 권을 멀리 수하렙스까야 거리에까지 가서 178루블에 사는 우(愚)를 범하긴 했지만(원숭이도 나무에서 자주 떨어진다!). 해서, 나는 다른 곳에서의 다음 기회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8,000부를 찍은 책이기 때문에, 어디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Философия Достоевского

다시 <텍스트> 얘기로 넘어가기 전에, 책값 얘기를 하나만 더하면, 아마도 첫번째 통신에서 언급했을 라우트의 <도스토예프스키의 철학>을 <비블리오-글로부스>에서는 42루블(1,700원)에 팔고 있었다(이런 곳에서 책값이 싸서 놀라다니!). 그 책은 엠게우의 헌책방에 아직도 165루블(6,600원)짜리로 꽂혀 있는데 말이다. 나는 <이데아>에서 80루블에 사서 혼자 흡족했었는데, 최저가와 비교하면 두 배나 비싸게 산 셈이 된다. ‘협정가격’은 이런 식으로 사람을 희롱한다!..

이런 식으론 분량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서 여기서 막을 나눈다. <텍스트> 얘기부터 히치콕 번역까지의 이야기는 다음 통신문에서 다루기로 한다(*지젝의 히치콕 읽기에 대해서는 http://blog.aladin.co.kr/mramor/837642, http://blog.aladin.co.kr/mramor/836325 등의 페이퍼 참조).

04. 05. 10/ 07. 09.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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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술 2007-09-02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야한 그림이 감각의 제국 러시아판 껍질인가요?

로쟈 2007-09-02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그다지 야할 것도 없지만도...

심술 2007-09-02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긴 더 야한 것도 널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