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21의 '로쟈의 인문학서재'를 옮겨놓는다(http://h21.hani.co.kr/section-021162000/2008/07/021162000200807090718049.html).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 통치형태에 관한 일부 내용을 읽고 그 '교훈'을 생각해본 것이다. 발단은 핀레이의 <고대 세계의 정치>(동문선, 2003)를 읽으려고 손에 든 것이었다. <정치학>의 번역은 아직 정본이 없는지라 영역본도 부분적으로 참고했고, 원고 자체를 급하게 쓰느라 꽤 애를 먹었다. 덕분에 오타도 그대로 남았다. 지면에서 ''국민의, 국민에 의한' 정부로 들었지만'이라고 돼 있는 부분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정부로 들어섰지만'으로 교정되어야 한다. 

한겨레21(08. 07. 15) 아리스토텔레스와 '고소영'

“참주정은 통치자 한 사람의 이익을 위한 통치형태이고, 과두정은 부자의 이익을 위한 통치형태이며, 민주정은 빈자의 이익을 위한 통치형태이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구절인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빈자’ 곧 ‘가난한 사람들’로 번역된 말은 ‘데모스(demos)’다. 때문에 ‘민주정’이라고 옮겨진 ‘데모크라티아’는 ‘빈민정’이라고 번역되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이 데모스의 의미는 이중적이었다고 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전체로서의 시민집단을 뜻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보통사람, 다수, 빈자를 가리켰다. 피플(people)의 어원인 라틴어 ‘포플루스(populus)’도 마찬가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에서 특히 흥미를 끄는 건 과두정과 민주정의 차이이다. 그에 따르면, 이 둘의 차이를 낳는 것은 부와 빈곤이다. “과두정은 소수의 부자들이 국가의 관직을 맡는 정치질서이며, 마찬가지로 민주정은 다수인 가난한 사람들이 국가를 지배하는 정치질서”이다. 하지만, 특정한 사회적 계급에 봉사하는 정치체제를 중용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옹호하지 않는다. 그가 보기에 올바른 정치질서의 세 가지 형태는 왕정, 귀족정, 혼합정이다. 그리고 참주정은 왕정의 왜곡이고 과두정은 귀족정의 왜곡이며 민주정은 혼합정의 왜곡이다. ‘혼합정’은  ‘입헌정’ ‘공화정’으로도 번역되는 ‘폴리테이아’를 옮긴 것이다. 한데, 왜 혼합정인가? 과두정과 민주정을 절충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전제는 단순하다. 모든 국가의 시민들은 넉넉한 계급, 가난한 계급, 그리고 그 중간을 형성하는 중산계급으로 구분될 수 있다. 그리고 일반원칙으로서 절제와 중용은 언제나 바람직한 것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재산의 소유에 있어서도 가장 좋은 것은 중간상태이다. 그가 보기에는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이성에 잘 따른다. 때문에 중간계급의 시민으로 구성된 국가가 가장 잘 조직된 국가이다. 지나치게 아름답고 튼튼하고 가문이 좋고 부유해도, 또 반대로 지나치게 나약하고 가난하고 비천해도 이성에 따르기가 어렵다. 첫 번째 부류는 거만하여 중대 범죄를 저지르는 경향이 있고 두 번째 부류는 불량배나 잡범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거만한 자들이나 불량한 자들이나 모두 정치에는 부적격하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판단이다.

따라서 정치적 공동체의 가장 좋은 형태를 이룩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가의 구성원들이 알맞은 재산을 갖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재산이 많고 다른 사람들은 재산이 전혀 없는 경우, 우리가 얻게 되는 결과는 극단적인 민주정(빈민정)이거나 극단적인 과두정, 혹은 이 두 극단에 대한 반발로서의 참주정이다. 참주정은 가장 무분별한 형태의 민주정이나 과두정에서 생겨나며 중간 정도의 정치질서에서는 나올 가능성이 적다. 중산계급이 클 경우에 시민들 사이의 분열이나 파벌이 생길 가능성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어떤 통치형태를 규정하고자 할 때 가장 기본적인 기준이 통치자의 재산이라는 점은 지금도 시사적이다. 물론 인간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공동체의 이익을 고려하는 데 재산의 유무가 정말로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적 현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통찰이 여전히 유효함을 말해준다. ‘강부자’, ‘고소영’ 인선 파문이 그렇지 않은가. ‘국민의, 국민에 의한’ 정부로 들어섰지만 이명박정부는 여러 정책을 통해 자신이 ‘넉넉한 계급’을 위한 ‘과두정부’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진통 끝에 비고려대, 비영남권, 재산 10억 미만을 새로운 인선기준으로 고려할 것이라고도 하는데, 아직 촛불 민심을 반영한 내각 개편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과연 더 기대할 수 있을까?

‘정치적 동물’로서 인간에게는 정치적 공동체를 이루려는 자연적인 충동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완성되었을 때 동물 중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이지만, 법과 정의로부터 배제된다면 가장 나쁜 동물로 전락하고 만다.” 국민을 법과 정의로부터 소외시키는 것은 ‘가장 나쁜 동물’로 전락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건 가장 나쁜 정부가 하는 일이다.

08. 07. 09.

P.S. '고소영' '강부자' 인선 파문을 들먹인 것은 '뒷북'이긴 하나, 지난주에 글을 쓸 때는 내각 개편이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이었다. 알다시피 이대통령은 엊그제 장관 3명을 교체하는 선에서 개편을 마무리지었다. 예상대로 더 기대할 수 있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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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 2008-07-10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핀레이의 책의 번역 상태는 어떠한지요? 구매자평에는 벌써 다시나와야 한다는 악평이 뜨네요. 알라딘 책 소개 창에도 원제목으로 'POFITICS IN THE ANCIENT WORLD'라고 되어 있네요.Polifics가 아니라 Politics겠지요.

로쟈 2008-07-10 00:22   좋아요 0 | URL
말씀대로 별로 좋진 않습니다. 저도 원저와 대조해서 좀 읽다가 머리가 아파서 덮어둔 상태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10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쁜 고소영 누나를 말썽 많은 내각의 별명으로 만들게 해버린 정부는 나쁜 정부입니다.

로쟈 2008-07-10 21:46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별로 떠오르는 게 없는 배우라...

람혼 2008-07-10 0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민의, 국민에 의한 정부로 들었지만(I've heard/people say)"이라는 오타가 사뭇 뼈가 있고 징후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로쟈 2008-07-10 21:47   좋아요 0 | URL
그런 건가요?^^

노이에자이트 2008-07-14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앙...저는 고소영 누나가 무조건 좋아요.우리 옆집에 살면 좋겠네요....
 

거짓말에 관한 책 두 권에 대한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 앨리엇 애런슨 등이 지은 <거짓말의 진화>(추수밭, 2007)은 사실 작년말에 나온 책이어서 신간은 아니다. 그때 한창 BBK 사건이 사회적 관심사였는지라 나름대로 시의성 있는 책이란 생각이 했었다. 이번에 나온 <거짓말의 딜레마>란 책 때문에 다시 불려나온 듯하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한 건 '거짓말하는 권력'이다. 아마도 필자 또한 그 점을 의식했을 듯싶고, 기사를 옮겨놓는 나 또한 의식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당장 오늘만 하더라도 현정부는 '경제위기=촛불책임론’을 거론하며 프레임화하고 있다(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말대로 "경제활동이 중단된 것도 아닌데, 촛불집회 때문에 경기가 안 좋다는 것은 문제해결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밖에 안"되는데도 불구하고. 김 전수석과의 인터뷰기사는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07071801375&code=210000 참조). 앞으로도 5년내내 그런 거짓말에 시달려야 한단 말인가?..

교수신문(08. 07. 07) 속임수와 변명, 자기정당화가 번성하는 이유

오늘의 날씨처럼 다들 ‘오늘의 거짓말’을 갖고 산다. 약속 시간에 늦으면, 전철 바퀴도 기꺼이 펑크 나고, 미처 답장 못한 메일은 스팸 편지함에 들어갈 준비가 돼 있다. 연인 앞에서 남자들은 모두 개과천선한 왕년의 ‘짱’들이고, 여자들은 모기만큼 먹어도 언제나 배가 부르다. 취업 준비생들은 ‘뽀샵질’로 위장한 사진을 갖다 붙이고, 자기 소개서를 메워 줄 장점으로도 읽힐만한 단점을 자신에게서 찾아낸다. 자국에서마저 리콜당한 미국산 쇠고기는 싸고 맛 좋고 안전할 수밖에 없으며, 그걸 모르는 국민 대다수는 배후 세력에게 ‘속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피노키오의 코를 가졌다, 온갖 거짓말에도 결단코 길어질 리 없는. 하루 거짓말의 횟수는 200번. 10분 대화에서 대략 2번. 이 ‘거짓말 같은’ 거짓말에 대한 진실로 『거짓말의 딜레마』는 시작한다. 물론 정확한 수치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분명한 것은 우리는 날마다 거짓말을 하며 생각보다 훨씬 자주 한다는 것.



일상적인 거짓말의 상당수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의 일종이다. 예컨대 ‘어떻게 지내요?’같은 질문에 ‘고마워요, 잘 지내요’라는 대답은 가장 의례적인 거짓말 중 하나다. 이것은 옷가게 점원의 미소마냥 사회적 상호작용의 서막 노릇을 한다. 또한 인생극장에서 우리들은 관계 양상에 따라 번갈아 다른 가면을 쓴다. ‘페르소나(persona)’는 인간됨의 조건이다.

저자가 인용한 알데르트 브리지에 따르면, 거짓말 뒤에는 복합적인 이기적 동기가 도사리고 있다. 그의 심리 실험에서 거짓말의 50퍼센트는 자신을 더 돋보이게 하고 조롱당하지 않으려는 이기적 이유를 깔고 있다. 그리고 25퍼센트는 이타적 이유였는데, 가령 친구가 과음으로 결석했는데도 강사한테 친구가 아프다고 거짓말하는 경우다. 나머지 25퍼센트는 ‘친사회적’ 이유에서다. 머리 모양이나 옷에 대한 칭찬은 흔히 작은 선물과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누군가를 속이는 것 자체가 쾌감과 더불어 우월감을 주기도 한다. 이것이 만우절 거짓말이나 몰래 카메라의 인기 비결이다.

‘여자는 기만적인 종족’이라는 악의적인 고정관념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 따르면, 남자와 여자의 거짓말 횟수는 별반 차이가 없다. 다만 남녀 간에는 거짓말의 종류가 다를 뿐이다. 여러 심리학자들은 ‘여자들은 남들을 위해, 남자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거짓말하는 편이다’는 결론을 내렸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이러한 여성의 거짓말이 집단 내에서 공격적 태도와 갈등을 방지하고 안정과 결속을 강화하는 역할을 해 왔다고 주장한다.

인간종의 장구한 역사에서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성장 과정을 통해서도 거짓말은 학습된다. 아이들은 만 네 살 전까지는 거짓말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남을 속이려면 타인이 무엇을 알고 기대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어린 아이들은 그러한 전제 조건을 결여하고 있는 탓이다. 저자가 소개한 정신의학자 찰스 포드는 고유의 정체성을 키우고 부모로부터 자신을 구분하기 위해서 거짓말이 아동의 발달과 사춘기 성장에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외에도 『거짓말의 딜레마』는 자기기만, 거짓말쟁이들의 술수, 거짓말 탐지기 체험담 등 거짓말에 대해 궁금할 법한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거짓말의 백과사전’같은 이 책의 저자 클라우디아 마이어는 “거짓말은 삶과 인간 존재의 일부이다. 거짓말은 진화의 원동력이고 생존 전략이며 일종의 사회적 윤활제이다”고 말한다.

‘자기정당화의 심리학’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거짓말의 진화』는 ‘자기정당화’라는 심리적 갑옷의 형성과 해체에 충실히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자기 정당화는 흔히 타인을 대상으로 하는 거짓말과 달리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이를테면, 호텔 기물 파손 사실을 숨기는 짓은 이미 숙박비에 부주의한 고객들로 인한 비용이 포함돼 있으므로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세금 신고 시 소득 누락 역시 정부의 세금 낭비 형태를 감안할 때 정당한 나의 권리에 속한다.

이러한 자기정당화를 추동하는 엔진, 즉 행위와 결정을 정당화할 필요성을 만드는 에너지는 1957년 미국의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가 창안한 ‘인지 부조화’라는 불유쾌한 감정이다. “인지 부조화는 ‘나를 죽일 수도 있기 때문에 흡연은 어리석은 짓이다’와 ‘나는 하루 두 갑을 피운다’처럼 상반하는 두 가지 인지 요소(사상, 태도, 신념, 견해)를 가지고 있을 때 발생하는 긴장 상태다 … 사람은 부조화를 해소하기 전에는 자유롭지 못하다. 앞의 예에서, 흡연자가 부조화를 해소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흡연이 해롭지 않다, 긴장 이완이나 비만 예방에 도움이 된다 등의 여러 구실을 들어 흡연에 대한 부작용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고 자신을 설득하는 것이다.”

이 책에 의하면, 신경 과학자들은 이러한 편향된 사고가 뇌의 정보처리 방식 그 자체에 내장돼 있다고 말한다. 뇌를 핵자기 공명 장치(MRI)로 관찰한 결과, 부조화 정보에 접했을 때는 피험자들 뇌의 추론 영역이 거의 정지돼 있고, 조화가 회복됐을 때에는 뇌의 정서 회로가 환하게 밝혀졌다. 인지 부조화를 해소하려는 자기 정당화는 시간이든 돈이든 노력이든 불편이든 선택에 동반된 비용이 클수록 그리고 결과를 되돌릴 수 있을 가능성이 낮을수록 강력해진다. 큰 거래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 바로 전에 그와 관련된 선택을 한 사람에게는 조언을 구하지 말라고 저자들은 충고한다. 그는 자신의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의 선택대로 하는 것이 옳다고 당신을 설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자기정당화는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으로 오만과 편견을 키울 뿐만 아니라 과거의 기억마저 왜곡하고 재구성한다. “기억은 우리 내부에 웅크리고 있는 자기정당화에 종사하는 역사가 노릇을 한다 … 듣고 싶지 않은 정보는 가차 없이 지우고, 여느 파시스트 지도자들처럼 승자의 관점에서 역사를 다시 쓴다.”

추억은 그래서 늘 과도하게 달콤하거나 쓰라린 법이다. 기억은 과거의 자신을 지금의 긍정적 자아상을 위해 미화하기도 하지만 폄하하기도 한다.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현재의 모질거나 별 볼일 없는 삶을 역경에 대한 빛나는 승리로 바꾸어 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료·사법 전문가, 정치인, 결혼생활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자기정당화의 분석에 비해 저자들의 대안은 다소 소박한 편이다. 실수를 인정하는 사회적 풍토를 조성하고, 자기정당화에 따른 미래의 폐해를 깨닫고, 인지 부조화와 더불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저마다 ‘오늘의 거짓말’을 갖고 산다 해도, 오늘의 날씨와 달리 ‘화창한 거짓말’들을 만들어갈 책임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역사에서 ‘큰 거짓말’들이 영웅을 탄생시키기도 했지만, 독재자들의 공통분모라는 것 또한 증언해 준다. 거짓말이 모듬살이의 조건이자 사회의 윤활유가 되려면 특히 공적 영역에서의 악의적인 기만이나 자기정당화를 정당화해선 안 된다.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다.(김창한 객원기자)

08. 07.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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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예일대학 사회학과의 제프리 알렉산더 교수가 지난주에 내한강연을 가졌다고 한다. '권력, 정치, 그리고 시민영역'이 그 주제인데 시의성이 있어 보이기에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알렉산더 교수는 이름이 낯설지가 않아서 찾아보니 작년 가을 그의 책 <사회적 삶의 의미>(한울, 2007)가 출간된 바 있다. 사회학 교재로 많이 쓰인다는 <현대 사회이론의 흐름>(민영사, 1993)도 눈에 익은 책이다. 겸사겸사 사회학 분야의 신간들을 챙겨둔다.

한겨레(08. 07. 03) 제프리 알렉산더 “정치권력은 시민사회를 설득해야”

제프리 알렉산더 미국 예일대 교수는 ‘신기능주의’를 주창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사회 체제의 조화·균형에 주목한 파슨스와 머튼의 구조기능주의 등을 비판하면서 행위자의 의지가 사회변동에 끼치는 영향을 강조했다. 기능주의 또는 구조기능주의가 외면했던 사회 갈등의 요소를 주목했다. 그가 쓴 <현대사회 이론의 흐름>은 국내 사회학 강의에 단골로 등장하는 입문 교재다.


그가 지난달 30일 오후, 고려대 인촌기념관에서 ‘권력, 정치, 그리고 시민 영역’을 주제로 강연했다. 한국이론사회학회가 후원하고 연세대·고려대 사회학과가 공동주최하는 자리였다. 시민사회를 ‘시빌 스피어’(Civil Sphere)라는 개념으로 설명해 온 그는 이날 강연에서 “현대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파워 엘리트’와 시민사회의 관계”라고 말했다.

“나라에 따라 그 사회를 지배하는 파워 엘리트가 자본가일 수도, 지식인일 수도, 군인들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한 사회의 파워 엘리트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둡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그들 파워 엘리트에 대항하는 시민사회가 존재하느냐, 그리고 파워 엘리트는 그런 시민사회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현대 정치권력은 시민사회를 설득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교수들은 파워 엘리트죠. 대학에서는 그들도 권력을 갖습니다. 그러나 대학을 넘어 공공의 권력을 행사하려면 시민사회의 동의를 얻어야 합니다. 정치권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알렉산더 교수는 “현대 사회에서 국가가 권력의 중요한 원천인 것은 맞지만, 권력의 모든 것은 절대 아니다”라며, 일단 국가권력을 장악한 뒤에도 시민사회에 대한 설득과 동의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차이는 권력이 시민사회를 향해 힘을 사용하는지 설득을 시도하는지에 있습니다.”

그는 한국의 촛불집회에 대해 “대단히 자발적인 한국 시민사회의 에너지에 감동 받았다”며 “종교적 상징인 촛불과 순수의 상징인 10대 소녀가 만나 이 운동을 촉발했다는 것은 매우 환상적이고도 새로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좋은 사회는 조용한 사회가 아니라 스캔들이 많은 사회”라며 “모든 사회에는 부정과 부패가 있는데, 그것이 지속적으로 밝혀져서 시민들이 이에 반응하는 것이 좋은 사회”라고 말했다.(안수찬기자)

08. 07. 06.

P.S. 한겨레의 '7월 3일 학술 새책'으로 소개된 두 권은 ''97년 외환위기와 사회불평등'을 다룬 김문조 교수의 <한국 사회의 양극화>(집문당, 2008)와 '당비의 생각' 첫 권으로 나온 <광장의 문화에서 현실의 정치로>(산책자, 2008)이다. 각각의 간단한 소개를 덧붙여둔다.

"경제적 요인을 분석해 양극화를 설명한 기존의 방식을 넘어 각 계층의 의식적·정서적 열망-절망 구조에 주목해 한국 사회 양극화를 분석했다. 상류계급에 귀속되려는 소수의 ‘야망 계급’과 상시적 불안감에 시달리는 다수의 ‘절망 계급’으로 분절된 한국 사회가 사고·느낌·삶의 방식을 달리하는 ‘신 신분사회’로 진입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소통 합리성을 증진해 야망·절망 계급 사이에 놓인 인식의 괴리를 좁혀 경제적 양극화 극복의 공통분모를 찾자고 제안한다."

"발행을 중지했던 계간 <당대비평> 그룹이 ‘당비의 생각’이라는 제목을 달아 연속 단행본 시리즈의 첫 권을 내놓았다. 민주화 체제와 이명박 정권 사이에 어떤 연속성이 있는지를 따져 묻는 야심찬 기획이다. 지난 20년간 진행된 ‘민주주의 기획’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고, ‘민주주의의 재민주화’를 위해 대면해야 할 과제를 짚었다. 정치학의 패러다임을 벗어나 문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여러 필자들의 글을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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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7-08 00:14   좋아요 0 | URL
당대비평에 좋은 글이 많았죠.환영!

제프리 알렉산더의 <사회적 삶의 의미>는 올해 봄.시내 모 도서관의 신간서적 서재에 있어서 제목 요상하다...하고 봤는데 저자 서문에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는가,중요한 사회문제의 여론형성은 어떤 과정을 거쳐 주류로 자리잡는가를 뒤르켐의 집합표상과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을 분석도구로 하겠다는 말이 나와서 야...대단하구나...생각했죠.그 중 제가 관심있는 홀로코스트에 관한 기억을 읽었습니다.박노자가 소개해서 국내에도 알려진 노만 핑켈슈타인의 견해를 비판하면서 마이클 왈쩌의 손을 들어주는 대목에서 아하...그래...했죠.마이클 왈쩌는 친 이스라엘 파로 알려져 있어서요.좀 더 자세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뒤 대출하지 못했습니다.이번주 대출해야겠네요.

그런데 제가 로자 님의 페이퍼를 뒤쪽부터 읽고 있는데 댓글이 안 달릴 때는 한국사 또는 본격적인 이론을 다룬 책 소개할 때이더군요.

로쟈 2008-07-08 00:22   좋아요 0 | URL
<사회적 삶의 의미>는 터무니없이 비싼 책의 하나인데, 도서관에서 대출이나 해볼까 합니다. 왈쩌는 한국에도 왔다갔지요. 한국사에 대해선 저도 나름 문외한인데, 댓글들을 안 달아주시는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7-08 00:54   좋아요 0 | URL
왈쩌는 친이스라엘적인 주장때문에 촘스키나 핑겔슈타인에게 비판을 많이 받죠.알렉산더의 책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도 다루고 베트남전 논쟁도 다루고 있는데 좌파를 의식하면서 중도보수적인 느낌이 강하더군요.본인 스스로가 좌파주도에 제동을 걸겠다는 식으로 말도 하구요.

로쟈 2008-07-09 22:15   좋아요 0 | URL
중도우파쯤 되겠군요...
 

'이번주의 책'은 아닐지 몰라도 '오늘의 책'은 단연 클레이 서키의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갤리온, 2008)이다. '새로운 사회와 대중의 탄생'이라는 책의 주제와 책이 나온 타이밍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고 있다(오늘은 국민행동의 날이다).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297131.html). 혹 저자가 속편을 쓸 거리를 찾는다면 지금 한국에 와 있어야 할 것이다...

한겨레(08. 07. 05) 모여라! 인터넷과 사랑의 힘으로

“촛불을 누구 돈으로 샀는지 보고하라.” 지난 5월31일, 청와대 대책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했다는 이 말의 속뜻은 간단하다. ‘나는 촛불집회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겠어.’ 온라인 글을 삭제하고 관련 누리꾼들을 수사하며 시청 앞 광장을 봉쇄하고 시민단체 간부들을 배후로 몰아 구속하는 따위의 대책도 같은 맥락이다. 최초 촛불집회 이후 두 달이 지나도록 그들은 전혀 감을 못 잡고 있다.

2년 전인 2006년 5월, 유럽 변방의 신생국 벨로루시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똑같은 일을 벌였다. 독재자인 그가 3선에 성공한 직후, 한 누리꾼(‘by_mob’)이 ‘플래시 몹’(잠깐 동안의 집단 행동을 보여주고 사라지는 행위)을 제안하는 글을 올렸다. 수도 민스크의 광장에 나와 그냥 아이스크림이나 먹자는 것이었다. 경찰은 광장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시민 몇 사람을 잡아갔다. 그러나 일은 더 커졌다. 아이스크림을 먹었다는 이유로(!) 잡혀가는 시민들의 사진을 누리꾼들이 인터넷에 올렸다. 이때부터 무수히 많은 시민과 집단들이 다양한 형태의 플래시 몹을 광장에서 벌였다. 서로 보고 웃으며 그저 광장 주변을 걸어다니는 플래시 몹도 있었다. 이 일은 그해 가을까지 계속됐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의 지은이 클레이 서키는 “비밀 경찰은 무용지물이 됐다”며 루카셴코 같은 권위주의적 통치자들을 비꼰다. “개인의 삶을 틀어쥐고 있던 독점적 힘이나 사회를 장악하던 권력의 힘은 점차 약해지고 있다. 대중은 이곳저곳에서 동시에 서로 연결되어 끌리고 쏠리고 들끓는다.” 그는 사회학·경제학·경영학·언론학 등을 넘나들며 “완전히 새로운 대중과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탄생”한 배경을 분석한다. 그의 탐색을 이끄는 질문은 이런 것이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했던 거대하고 강력하며 지속적인 ‘행동’을 어떻게 평범한 시민들이 그리도 쉽게 조직할 수 있는가?

여기서 그는 조직 관리의 방식에 주목한다. 근대 자본주의 이후 지난 100년 어떤 일을 조직할 때 제기된 화두는 두 가지였다. ‘국가가 지휘하는 게 최선인가, 아니면 시장의 기업들이 맡는 게 최선인가.’ 그 답을 판가름 짓는 것은 조직 관리의 비용이었다. 사람을 모으고 하나의 방향으로 매진하게 하려면 여러 형태의 비용이 반드시 발생한다.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면 조직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따라서 “(국가 또는 기업이 관리하는) 조직 활동의 대안이라고 해 봐야 (조직) 활동을 안 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나 디지털과 인터넷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관리자의 지휘 없이, (경제적) 이익이라는 동기를 초월해 활동하는, 구조가 느슨한 그룹이 탄생하여 적은 비용으로도 대규모 조율이 가능해지면서 과거 어떤 조직도 손대지 못했던 진지하고 복잡한 작업을 해낼 수 있게 됐다.” 지은이는 조직의 구성 및 관리에 들어가는 비용의 감소가 “혁명의 원동력”이라고 지적한다. 휴대폰, 인터넷 카페, 블로그 등은 개인과 개인 사이의 정보 공유, 협력, 집단행동의 능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전통적 조직에서는 층층으로 쌓인 위계구조의 어느 층위까지만 정보를 전달한다. 그래야 조직을 관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과 인터넷에 기초한 새로운 조직은 오히려 ‘정보의 공유’를 통해 조직을 확장시킨다. 이 때문에 “어느 때보다 더 거대하고 더 널리 흩어져 있는 공동 작업 그룹이 탄생하고,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집단 행동이 가능”해졌다.

흥미롭게도 지은이는 이 대목에서 공동체적 선을 지향하는 인간의 본성을 끌어들인다. ‘인터넷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는 식의 기술결정론으로 치우치지 않는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형성시킨 기존의 조직들이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에 주목한다. 그것은 서로 아끼고 배려하는 가운데 형성되는 ‘사회적 자본’의 힘이다. 특별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 아픈 이웃을 대신해 그 집 개를 산책시키는 일 따위가 그가 말하는 사회적 자본이다. “협력하는 습관이 더 강한 그룹의 개인은 그렇지 않은 개인에 비해 건강·행복·잠재수입 등에서 더 넉넉한 삶을 산다”는 실증적 연구결과도 소개한다.

지은이가 명시적으로 지칭하진 않았지만, 그가 말하는 사회적 자본은 ‘공동체’ 또는 ‘코뮌’으로 번역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디지털 혁명이라는 사회적 도구가 중요한 수단이 되긴 했지만, 이런 도구를 사용하는 ‘전혀 새로운 대중’이 탄생하게 된 것은, 바로 현대 자본주의가 놓치고 있는 인간의 어떤 본성과 관련이 있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위키피디아’다. 세상 모든 것에 대한 누리꾼들의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는 수많은 대중의 검토를 거쳐 끊임없이 자기 오류를 수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런 위키피디아가 존재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위키피디아를 ‘배경 삼아’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클레어 서키가 말하는 사랑이란 상대에 대한 배려가 언젠가 나에 대한 배려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이기도 하다. 국가 또는 기업에서는 이런 배려와 기여가 불가능하다. 나의 이익을 포기하는 만큼 타자 또는 조직이 나를 배려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흔히 ‘공유지의 비극’이라 일컬어지는 딜레마다. 그러나 디지털 혁명을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조직에서는 ‘이기주의의 딜레마’가 붕괴한다. “(인터넷과 같은 사회적 도구 덕분에) 서로를 충분히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범위로 보나 지속성으로 보나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일들을 이룩해낼 수 있다. 사랑으로 큰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비판하는 데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저 상호작용 방식의 변동을 디지털 혁명과 연관시켜 상세히 분석할 뿐이다. 그럼에도 어느 대목에 이르면 이 책의 메시지가 ‘디지털 코뮌’과 잇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 “혁명은 사회가 새로운 기술을 채택할 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사회가 새로운 행동을 채택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대중은 이미 새로운 행동을 채택하고 있다.” 지난 2월 출간된 이 책의 원제는 다. ‘여기 모든 이가 달려간다’ 정도로 직역할 수 있다. 그들은 공안정국 따위에 밀려 ‘새로운 행동’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안수찬 기자)

08. 07.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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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흑인 후보가 등장함으로써 올 미국 대선은 다른 때보다 '흥행'할 여지가 많지만 과연 오바마의 리더십이 '미국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장담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노골적인 미국식 '로비 정치'와 '국가적 경매'로 비유되는 미 대선판 자체가 '희망'의 걸림돌이다(차라리 '경매 민주주의'란 말을 붙이고 싶어진다). 이를 짚어주고 있는 칼럼을 옮겨놓는다(http://h21.hani.co.kr/section-021165000/2008/07/021165000200807020717068.html).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어서다.

한겨레21(08. 07. 02) 미 대통령 선거는 경매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철인 요즘, 필자는 민주당 후보로 확정된 버락 오바마 쪽으로부터 일주일에 한 번꼴로 편지를 받고 있다. 나이만 동갑일 뿐 일면식도 없는 그가 미국식으로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면서 시작하는 전자우편을 보내온 지 벌써 석 달째다. 하지만 필자는 한 번도 그에게 답장을 하지 않았다. 선거 진행 상황에 관한 간략한 소식 뒤에 이어지는 편지의 요점인즉, ‘오늘 중으로 25달러를 기부해달라’는 것이다. 필자 역시 다른 후보들에 비해 그에게 상대적으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 시민도 아닐 뿐더러 적은 액수일망정 그의 선거운동 비용에 보태려고 기꺼이 주머니를 털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우리 같은 외국인들까지 가세하지 않더라도 민주당과 오바마 진영에는 돈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고 25달러 타령
오늘 오바마 선거운동 관리자인 데이비드 플러프로부터 받은 편지에는 상대방인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 쪽이 지난 5월에만 무려 4500만달러(약 450억원)를 주로 워싱턴의 로비스트들과 특수 이익집단들로부터 모금했다는 폭로성 비난이 실려 있다. 매케인보다 당 차원의 후보 지명이 몇 달이나 늦어진 오바마로서는 빨리 따라잡아야 하니, ‘이번달 중 새로운 개인 기부자 2만 명 확보’라는 목표 달성에 협조해달라는 부탁이 이어진다. “오늘의 25달러 기부가 당신의 영향력을 2배로 만들 것”이라면서, 자기들의 ‘운동’에 동참할 것을 믿고 “미리 감사를 전한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오는 11월 본선까지는 150만 명의 개인 기부자들이 동참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바마는 미국의 정치 지형에 급진적인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지금까지 벌여온 선거운동이 전통적인 방식과 달리 각 지역의 자발적인 풀뿌리 운동을 광범위하게 동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참신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선거비용도 대부분 전국의 소액기부자들로부터 모금한 것이다. 민주당도 당 차원에서 오바마의 선거자금 모금 정책을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과연 오바마는 워싱턴의 악명 높은 ‘로비 정치’를 ‘풀뿌리 정치’로 바꾸는 데 성공할 것인가? 더 지켜봐야겠지만, 아직까지 그 대답은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오바마는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미국의 양당제 틀 속에서 나온 정치인이지, 기존 정치구조로부터 독립적인 ‘제3의 후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는 미국 정치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자본과 특수 이익단체, 기득권 집단들의 끈질기고도 효율적인 회유와 저항의 견고한 벽을 넘어야 한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그런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1968년과 같은 폭발적인 대중운동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1960년대 초반의 존 F. 케네디, 그리고 1990년대 빌 클린턴의 경험을 보라. 새로운 정치세대의 등장이라는 축복을 받으며 대통령직을 시작한 그들이었지만, 워싱턴 정치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부여해준 온건한 이미지 탓에 민주당의 타락이 은폐되는 역설적인 결과를 가져오기까지 했다.

금융자본이 오바마에게 접근하는 이유는
회의적인 시각을 뒷받침해주는 기사들이 벌써 나오고 있다. 오바마가 민주당 후보로 선출되는 데 필요한 대의원을 확보한 직후, <로이터통신>은 미국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월스트리트에서 민주당과 오바마 진영으로 선거자금이 몰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오바마가 지금까지 발표한 경제·통상 정책이 매케인 쪽보다 자신들에게 불리함에도, 미국과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금융자본이 오바마를 ‘주요 투자처’로 간주해 접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유무역, 각종 규제, 법인세, 배당세 등 자신들의 이익과 직결되는 문제에 대한 오바마의 정책을 ‘수정’하고자 하는 그들의 목적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5월 말까지 오바마 쪽이 월가로부터 받은 선거자금은 모두 790만달러(약 8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케인 쪽보다 거의 2배가 많은 액수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대기업들은 후보 개인에게 기부하는 것 말고도 양당의 전당대회 행사비용을 충당해주는 방식으로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있다. AT&T, 엑셀에너지 등 대기업들이 오는 8월과 9월에 치러질 공화당과 민주당 전당대회 비용 1억1200만달러(약 1120억원)의 80%를 지원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록히드마틴 같은 방위산업체와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 업체들로부터도 지원금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정치자금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임정치센터(www.opensecrets.org)에 따르면, 지난해에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기로 선언한 이후 오바마는 지난 5월 말까지 총 2억6500만달러(약 2700억원)를 거둬들였다. 힐러리 클린턴은 2억1400만달러(약 2150억원), 그리고 매케인은 9600만달러(약 970억원)를 선거자금으로 모금했다. 이미 중도에서 탈락한 후보들은 제쳐두고라도 3명이 모금한 액수만 벌써 5억7500만달러(약 5800억원)가 넘었다. 이게 미다스의 손이 아니고 무엇인가? 누가 최종 승자인가를 가리는 대통령 선거 날짜가 11월에 있으니, 그때까지 버티기 위해서는 양당 후보가 각각 5천억원씩 필요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명이 합쳐 1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액수다.

이처럼 엄청난 돈을 들이며 치러지는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일러 혹자는 ‘국가적 경매’(national auction)라고 조롱한다. 지금 공화당 후보로 나서고 있는 매케인 상원의원도 공화당의 ‘이단아’ 노릇을 하며 개혁 성향을 보일 때는 미국의 선거자금 모금 체계를 가리켜 “가장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응찰자에게 국가를 팔아넘김으로써 공직을 유지하려는 양당 공모하의 정교한 직권남용 체제”라고 비난한 바 있다.



업자들에 사로잡힌 정치인들
19세기 후반 미국의 경제력이 한창 번성하고 제국주의 정책을 감행할 때 작가 마크 트웨인은, 겉은 번쩍거리나 속은 부패한 당대 미국 사회를 ‘도금시대’(The Gilded Age)라고 풍자했다. 1970년대 중반 이래 미국 정치는 돈잔치로 전락해 ‘제2의 도금시대’가 도래했다. 대통령과 의회는 거대기업과 이익단체의 매수 대상 일순위에 올랐다. 정부와 의회는 물론, 심지어 사법부까지 그들의 이익을 반영하고 있다. 미국 정치는, 그리고 아메리카제국은 거대기업과 군수산업체, 에너지업계에서부터 광우병 발생의 위험을 기꺼이 무릅쓰고 쇠고기 수출을 감행하는 축산업계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방면에서 막대한 정치자금을 매개로 정치인들을 포섭하는 ‘업자들’에 사로잡혀 있다. 그 사이에 미국의 ‘국익’도, 전 국민을 위한 의료보험도, 공립학교의 재정도 질식돼가고 있는 것이다.(김창진 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

08. 07.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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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호 2008-07-14 21:36   좋아요 0 | URL
퍼오신 글은 흥미롭긴 하지만 저는 약간 다른 생각이 있어요. 원래 민주당 자체가 월가의 이해를 대변해오지 않았나..하는거죠. 그니깐 노골적인 석유와 무기 깡패냐 아니면 금융깡패냐..이런 차이인거 같아요. 캘리니코스가 제3의 길을 까는 걸 보면(얼마전에 인간사랑에서 캘리니코스의 책을 보내줬는데..역시 초 보수주의자인 저에게는 좀 당황스러운 내용이 많더군요, 흠...) 복지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자본주의의 노예로 만드는 클린턴과 블레어의 입장을 비판하더군요. 그런 면에서는 월 스트리트가 오바마를 지지하는게 하등 놀라울게 없다는 거죠.

로쟈 2008-07-19 11:01   좋아요 0 | URL
그렇다고 공화당은 월가와 반목해왔다고 볼 수 있을까요? 당선가능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