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슈킨의 드라마 <보리스 고두노프>를 강의하게 된 김에 자료들을 정리하다가 그의 소비극 작품들 가운데 하나인 <석상손님>에 대해 예전에 써놓은 글을 옮겨놓는다(이 작품은 열린책들의 <보리스 고두노프>에 <석상방문객>이라고 번역돼 있다). 초고는 3년전 가을 모스크바통신에 올려놓았던 것인데 이번에 부분적으로 다듬으면서 이미지들을 붙여놓는다.  

 

 

 

 

푸슈킨의 ‘돈후안 텍스트’ <석상손님>을 일주일간 붙들고 있었는데, 내가 쓴 분량은 참고문헌을 포함해서 원고지 215장이다. 계획했던 내용의 2/3밖에 쓰지 못했지만, 그래도 분량이 오바되는 바람에 거꾸로 1/3을 줄여야 한다. 해서, 드는 생각이 내가 상당히 ‘수다적’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이 통신문의 ‘부작용’인 듯하다. 지금은 쓴 글에 대해서 ‘애정’이 남아있기 때문에 놔두지만, 얼마간 ‘거리’가 생기면 가차없이 잘라낼 수 있을 것이다(나는 남의 논문을 2/3로 잘라내는 일을 여러 번 해왔다). 

200장 분량을 여기에 다 옮겨올 수는 없고, 일단 서론에 해당하는 대목만 정리해서 옮겨온다. 본문의 러시아어는 다 삭제하고, 전문적인 각주도 다 제외하도록 한다. 드라마 소품인 <석상손님>은 열린책들과 솔출판사에서 나온 푸슈킨 전집에 들어 있으며, 예전에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의 푸슈킨 편에도 들어 있다.

일단 이 작품을 읽기/이해하기 위해서는 같은 ‘돈후안 텍스트’로서 ‘계열체 관계’에 놓여 있는 티르소, 몰리에르, 모차르트/다 폰테의 <돈후안>을 참고할 필요가 있으며(나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조반니>의 영어대본을 인터넷에서 찾다가 못 찾았다. 이탈리아어만 떠 있었다. 어딘가에 있을 테지만, ‘현지사정상’ 검색이 제한적이다), 다른 한편으론 같은 ‘소비극(Little Tragedies)’에 속하는, 그래서 ‘통합체 관계’에 있는 세 작품, <인색한 기사>,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페스트 중의 향연> 등의 작품과 연관지어 읽어야 한다. 비교적 짧은 텍스트가 텍스트-무한인 것은 그 때문이고, 그런 텍스트를 읽는다는 건 언제나 쉽지 않은 노릇이다.

이 작품을 비롯한 소비극들에 관한 가장 훌륭한 연구서는 예전에 언급한바 있지만, 예브도키모바(S. Evdokimova)가 편집한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소비극(Alexander Pushkins's Little Tragedies: The Poetics of Brevity)>(2003)이다. 푸슈킨의 소비극들에 대한 국제학술회의 발표논문들을 모은 것이다. 참고문헌 서지도 유용하며, 뒷부분에는 네 작품의 영역도 실려 있다. 러시아에서는 유독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를 높이 평가하며, 이 한 작품에 대해서만 학술회의가 개최됐을 정도이다(이 작품은 <아마데우스>의 ‘원작’ 정도라고 보면 된다. 각색자가 몰랐다고는 하지만).

 

더불어, 연극 공연은 대개 실패했지만(왜 실패했는지도 연구대상이다), 영화화된 소비극 작품들은 볼 만한데, 1979년에 TV용으로 만들어졌고 감독은 미하일 슈베이체르(Mikhail Shveitser)이다. <석상손님>에서 주연인 돈후안(돈구안) 역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가수이자 시인 겸 배우, 고(故) 블라지미르 비소츠키가 맡고 있다. 그는 햄릿 역으로도 유명하며(http://www.youtube.com/watch?v=-r01fRADCII 참조), 그의 아들도 배우이다.



비소츠키? <백야>에 나오는 노래, <야생마>(직역하면, <길들여지지 않는 말>이고, 노래 분위기에 맞게 의역하면, <말은 채찍으로 길들여지지 않는다>)를 걸쭉하게 부른 가수 말이다(어제 이곳의 ‘가요무대’ 같은 프로에서 한 개그맨이 <야생마>를 약간 패러디해서 부르길래 나는 한참 낄낄거렸다. 이 노래도 길들여지지 않는 듯했다).

일단은 푸슈킨과 관련한 약간의 전기적 지식이 필요하다. 우선, 전기적인 차원에서 이 작품이 1830년 ‘볼지노의 가을’의 산물이라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데(볼지노는 푸슈킨의 영지가 있었던 곳이다), 그것은 <석상손님>이 작가의 삶에 있어서 다른 시기에는 씌어질 수 없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볼지노의 가을’은 결혼과 관련한 작가적 삶의 이행기에서 ‘정점’에 해당한다. 푸슈킨은 30세이던 1829년 5월 1일 1차로 나탈리아 곤차로바에게 청혼하지만 지참금 문제로 거절당하고, 그가 재차 청혼해서 곤차로바와 약혼하게 되는 것은 1830년 5월 6일이다.

그해에 예정돼 있던 결혼은 모스크바에 창궐했던 콜레라로 인하여 이듬해로 연기되고(그때 모스크바가 봉쇄되는 바람에 푸슈킨은 볼지노에서 가을 석 달을 보내게 되는데, 이때가 그의 창작의 전성기이며 <벨킨이야기>, <소비극> 등이 이때 창작된다), 두 사람은 1831년 2월 18일에야 마침내 결혼하게 된다(곤차로바가 19살 때이고, 두 사람은 네 자녀를 두었다. 1837년 푸슈킨이 결투로 죽을 때까지. 곤차로바는 물론 재혼했다).

작가적 삶의 ‘이행기’, 푸슈킨에게서 ‘<나>에서 <우리>로의 이행기’라는 것은 바로 1829년 5월부터 1831년 2월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그리고 이 시기는 그가 <나>라는 삶에서의 ‘낭만주의’로부터 <우리>라는 ‘사실주의’로 옮겨가는 때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 그는 문학장르상으로도 ‘시’에서 ‘산문’으로 이행해가는바, 그는 ‘시적인 삶’에서 ‘산문적인 삶’으로 옮겨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1824년을 경계로 하여 푸슈킨은 자유의 문제를 놓고 바이런주의라는 ‘바다’를 넘어온바 있다. 그리고 이제 ‘이행기’에 그가 건너뛰어야 할 매혹적인 심연은 돈후안주의가 된다. 이때 돈후안주의가 가리키는 것은 문학적 의장(儀裝)이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이다.



이런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이제 텍스트를 읽어보기로 하자. 우리말 번역은 열린책들의 번역을 참고하여 다시 옮긴 것이다(몇 가지 오역과 교정상의 실수들이 교정되어야 한다). 우리가 읽을 건 일단 모차르트의 <돈죠반니>에서 따온 작품의 에피그라프이다.

Leporello. O statua gentilissima
Del gran' Commendatore!..
...Ah, Padrone!
- Don Giovanni

“오, 위대하신 기사단장님의/ 고귀하신 석상이시여!../...아, 주인님!”(<돈조반니>) 푸슈킨이 ‘볼지노의 가을’에 완성한 네 편의 ‘소비극’ 중 세번째 작품 <석상손님>(1830)의 길잡이로 내세운 건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조반니>(1787)에서 따온 레포렐로의 대사이다(돈후안의 하인은 작품마다 이름이 다르다. 티르소에서는 카탈리논이고, 몰리에르에서는 스가나렐이다). 즉, 이 길잡이 대사가 <석상손님>의 에피그라프(epigraph)인바, 문학적 관례로서의 에피그라프란 “작품의 기본적인 갈등과 테마, 관념, 혹은 정조를 독자들이 감식할 수 있게끔 밝혀놓은” 것이다. 그런데, 어원적 의미에서의 에피그라프는 작품의 ‘제사(題詞)’이기 이전에 ‘비문(碑文)’이란 뜻이며, 그것은 작품이라는 ‘무덤’의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이다.

푸슈킨의 <석상손님>을 읽고자 할 때, ‘석상손님’이라는 제목에 이어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것이 작품 입구에 문지기처럼 서 있는 바로 이 대사이다(이 이탈리아어 대사는 본문과는 다른 언어, 다른 표기체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텍스트의 바깥(=죽음)을 지시한다. 그것은 텍스트-안에-있는-바깥이다). 그리고, 그것의 진정한 ‘메시지’는 작품을 다 읽은 후에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레포렐로의 대사는 작품의 회귀점이기도 하다. 요컨대, 돈후안의 연애행각과 비극적 죽음을 줄거리로 한 푸슈킨판 ‘돈후안 텍스트’ <석상손님>은 레포렐로의 대사로 시작해서 레포렐로의 대사로 끝난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에게 길잡이가 되는 레포렐로의 대사에서 ‘주인님’이 가리키는 것은 오페라 장면의 경우 돈후안이지만, 에피그라프만 본다면 ‘주인님!’이란 호명은 두 가지 방향성을 갖고 있다. 즉, 기의적으로는 출처로 밑에 주어진 ‘돈조반니(Don Giovanni)’ 곧 ‘돈후안’을 지시하지만, 기표로서의 ‘주인님(Padrone)’은 ‘기사단장(Commendatore)’, 곧 석상과 각운을 맞춤으로써 오히려 ‘기사단장(=석상)’과 의미론적으로 등가화/동일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은 충분히 음미해볼 만한데, 게다가 이 푸슈킨의 돈후안 텍스트의 제목은 ‘돈후안’이 아니라 ‘석상손님’이 아닌가. 즉, 에피그라프뿐만이 아니라 텍스트 전체를 마치 거대한 바위처럼 내려다보며 제압하고 있는 것은 바로 ‘석상손님’이란 타이틀이며, 이 타이틀의 기표는 텍스트의 궁극적인 물질적/기표적 잔여물로서 프로이트-라캉적 의미에서의 사물(Thing)에 대응한다. 때문에 당연한 일이지만, 이 드라마에서 타이틀롤(주제역)을 맡고 있는 인물은 오페라에서처럼 돈조반니(=돈후안)가 아니라 석상손님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돈후안 텍스트의 원조로 간주되는, 티르소 데 몰리나(Tirso De Molina)의 텍스트는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의 초대(El Burlador de Sevilla y el Convidado)>(1624/1630)란 제목이며, 몰리에르의 텍스트는 <돈주앙 혹은 석상의 잔치(Don Juan ou le Festin de Pierre)>(1665)란 제목이다. 티르소에게서 ‘세비야의 난봉꾼’으로 지칭되는 인물이 주인공 돈후안 테노리오인바, 이들 대표적인 돈후안 텍스트들의 제목은 ‘돈후안’과 ‘석상(손님)’을 핵심적인 구성소로 갖고 있다. 거기에서 이미 암시되는 바이지만, 돈후안 신화는 사실상 별개로 존재하던 두 가지 전설/신화의 종합이다(이러한 종합의 공로는 티르소에게 돌려져야 할 것이다).

첫 번째 전설은 사자(死者; Death)의 식사/잔치 초대에 관한 것인데,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한 젊은 농부가 들에서 해골을 발견하고서는 원래의 자리에 묻어주는 대신에 발로 차면서 농담으로 식사에 초대한다. 그런데, 사자가 정말로 나타나서 이번엔 반대로 농부를 자신의 식사에 초대한다. 그리고 이 두 번째 식사, 산송장(living dead)의 잔치는 이 무례한 농부가 죽음을 맞이하거나, “앞으로는 죽은자를 존중하라”는 도덕적인 교훈을 새기면서 용서를 받는 걸로 끝을 맺는다. 그리고 물론 두 번째 전설은 ‘돈후안’이란 이름에 각인돼 있는 한 난봉꾼, 혹은 변덕스런 유혹자에 관한 신화이다.(이 대목은 장 루세를 참조한 주판치치를 다시 참조한 것이다.)

해서, 어떤 텍스트가 ‘돈후안 텍스트’로 분류되기 위한 필수조건은 첫째, 돈후안(혹은 석상)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것, 둘째, 예시한 줄거리 구도가 관철될 것, 이다.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될 경우, 그 텍스트는 돈후안 신화의 ‘직계’ 텍스트로 간주될 수 있다. 반면에 어느 하나만이 충족된다면, 그 텍스트는 ‘방계’ 텍스트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두 전설/신화의 종합을 바탕으로 하여 구성된 돈후안 텍스트의 기저 신화소는 (1)돈후안의 연애행각과 살인, (2)죽은자에 대한 돈후안의 모욕/불경, (3)돈후안에 대한 죽은자(=신)의 응징이다. 돈후안 텍스트에서 그가 여성들을 유혹/농락하는 과정에서 살인하게 되는 인물이 기사단장이며, 죽은 기사단장은 전설에서의 ‘산송장’에 대응하는 ‘석상’으로 변형되어 돈후안을 응징한다. 이것이 티르소와 몰리에르, 모차르트 등 대표적인 돈후안 텍스트들을 관통하는 줄거리 구도이며, 이 구도는 이들 텍스트들을 참조하고 있는 푸슈킨의 <석상손님>에서도 예외없이 반복되고 있다. 즉, 이 구도는 직계의 돈후안 텍스트들을 식별할 수 있도록 해주는 텍스트의 불변항이며, ‘차이 속의 반복’이다.

물론 개별적인 돈후안 텍스트를 읽을 경우에, 보다 더 우리의 관심대상이 되는 것은 텍스트의 불변항, 즉 ‘차이 속의 반복’이라기보다는 변항들, 즉 ‘반복 속의 차이’들이다. 그리고 푸슈킨의 <석상손님>의 경우, 제목에서 ‘난봉꾼’ 돈후안/돈주앙이 제거된 것은 일차적이면서도 가장 두드러진 차이이다. (아마도) 이 차이를 최초로 지적한 이는 시인 겸 ‘푸슈킨학자’ 안나 아흐마토바일 것이다(아흐마토바의 글은 물론 우리말로 번역돼 있지 않으며, 그녀의 <석상손님>론 앞에서 언급한 연구서에 영역돼 있다. 아흐마토바는 한 권 분량의 푸슈킨론을 쓴 바 있다).

그녀는 열정(정념)과 도덕의 문제를 돈후안 텍스트의 중심테마로 보는데, 푸슈킨의 선행자들이 도덕/복수의 문제를 직접적으로(조급하게) 제기하지 않았던 데 반해서, 푸슈킨은 제목에서부터 ‘돈주앙’이 아닌 ‘석상손님’을 선택함으로써 이 작품이 ‘복수의 비극’이라는 걸 단도직입적으로 독자들에게 주지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에 반드시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석상손님’이라는 제목이 푸슈킨의 의도적인 선택의 결과라는 점만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구상단계에서의 제목은 <돈주앙>이었다).



이 점은 그가 에피그라프를 따온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조반니>와 비교해 보아도 알 수 있다. 모차르트를 위한 다 폰테(Da Ponte)의 오페라 대본은 <돈조반니 혹은 벌받은 방탕아(Don Giovanni ossia Il dissoluto punito)>(1787)란 제목을 갖고 있으며, 이것은 ‘2막의 익살극’으로 되어 있다. ‘돈죠반니’나 ‘벌받은 방탕아’가 똑같이 가리키는 것은 돈주앙 텍스트의 ‘고정적 지시자(rigid designator)’로서의 ‘돈후안’인바, 요컨대 모차르트/다 폰테의 제목에서는 ‘석상손님’이 제거돼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모차르트의 ‘익살극’ <돈조반니>와 푸슈킨의 ‘소비극’ <석상손님>은 거울상적인 반영관계에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모차르트/다 폰테(‘돈조반니’)와 푸슈킨(‘석상손님’) 텍스트의 제목이 ‘종합’될 때, 비로소 ‘돈후안(돈죠반니) 혹은 석상손님’이라는 보다 완전한 제목이 구성된다. 

푸슈킨이 <돈조반니>에서 인용해온 에피그라프의 다양한 의미작용과 복잡한 의미망은 거기에서 종결되지 않는다. <돈죠반니>의 2막에 나오는 이 레포렐로의 대사는 돈죠반니의 초대를 레포렐로가 석상에게 전달하는 장면에 나오는 것으로, 이어지는 대사는 “가슴이 떨려서 말도 못 끝내겠네!(Mi trema il core, Non posso terminer!)"이다. 즉, 그에겐 아직 다 끝내지 못한 말들이 남아있는바, 에피그라프의 의미작용 또한 마찬가지이다. 거기에 덧붙여져야 할 것은 푸슈킨 텍스트의 이 에피그라프가 티르소 텍스트의 에피그라프와 맺고 있는 상호관련성, 혹은 상호텍스트성이다.

티르소의 텍스트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의 초대>에는 물론 제사(題詞)로서의 에피그라프는 붙어 있지 않다(그의 텍스트는 ‘원조’ 돈후안 텍스트이다). 대신에 거기에 놓여 있는 것은 비문(碑文)으로서의 에피그라프이다. 그 비문은 작품의 후반부에서 돈후안이 그의 하인 카탈리논과 함께 자신이 죽인 기사단장 돈곤살로의 무덤을 지나가는 장면에서 나온다.

돈후안 이게 누구의 무덤이지?
카탈리논 명예로운 전사, 돈곤살로인뎁쇼.
돈후안 그럼, 내가 죽인 노인네인데.../ 무덤 한번 거창하군.
카탈리논 국왕께서 만드신 겁니다./ 비문에는 뭐라고 써 있나요?
돈후안 (읽는다) “한 기사가 여기에 잠들다.
그는 신의 (오른)손이 살인자에게/ 복수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복수의 열망 때문에, 아마도/ 편히 잠들지 못하는 모양이군.
그런가, 돌수염 늙은이?/ (석상의 수염을 잡아당긴다.)


번역은 러시아어본에서 옮긴 것이다. 우리말 번역으로 <돈후안: 세비야의 난봉꾼과 석상의 초대>(서쪽나라, 2002)를 참조할 수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별로 신뢰할 만하지 않다. 하다못해, 막이나 장의 구분이 전혀 안돼 있는데, 실제 티르소의 드라마가 그런지?(공연을 위한 대본이 그렇다는 건 넌센스이다.) 게다가 지문들도 거의 생략돼 있다.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인용한 대목의 국역본 번역도 나로선 요령부득이다). 아무튼, 이 대목에서 돈후안이 돈곤살로 석상의 수염을 잡아당기는 행위는 ‘사자(死者)의 초대’에 관한 전설에서 젊은 농부가 해골을 발로 차는 행위에 대응하는바, 죽은자에 대한 모욕/불경에 해당한다. 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서 카탈리논은 그러한 돈후안의 행위를 만류한다.

여기서 돈후안의 손에 의해 죽은 돈곤살로가 “신의 오른손(=정의)이 살인자에게 복수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라는, 비문의 내용은 비단 티르소 텍스트의 결말에서 이루어질 복수를 암시하는 복선일 뿐 아니라, 모든 돈후안 텍스트 전체의 구도를 규정하는 에피그라프이기도 하다. 적어도 ‘직계’ 돈후안 텍스트들에서는 석상이 돈후안에게 손을 달라고 하며, 돈후안이 그 손을 잡음으로써 파멸하는 걸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비록 분량에 있어서는 티르소나 몰리에르의 텍스트에 비해서 아주 짧지만, 푸슈킨의 <석상손님> 또한 이러한 결말을 충실히 따른다는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비대(碑臺), 즉 돌에 새겨진 비문이 전통적으로/명시적으로 상징하는 것은 (십계명의 예에서 보듯이) 신의 정의이고 율법이다. 그것은 모든 정념적/병리적 과잉(pathological excess)을 제한함으로써 상징적 질서를 유지하고 보존하는 힘이다. 그리고, 돈후안 텍스트에서 죽은 기사단장의 석상은 그러한 힘의 대행자이다. 따라서, 에피그라프에서 “오, 위대하신 기사단장님의 고귀하신 석상이시여!..”라는 레포렐로의 대사는 대행자-석상을 예찬함으로써 암묵적으로 그러한 힘, 곧 신의 정의/율법을 승인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거기에 이어지는 “아, 주인님!”이라는 대사는 (신의 대행자를 가리키는) ‘위대한 주인님!’과 (그에 희생되는 돈후안을 가리키는) ‘가련한 주인님!’을 동시에 이중적으로 호명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표면적으로 돈후안의 무분별한 애정행각과 그로 인한 파멸을 그리고 있는 <석상손님>은 심층적으로는 레포렐로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가를 밝혀주는 이야기이다. 그의 주인은 ‘가련한 주인’ 돈후안에서 ‘위대한 주인’ 석상손님으로 ‘이행’하게 되는바, 이 작품의 주제는 그러한 이행에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이행이 갖는 의미는 이미 다른 방식으로 푸슈킨 자신에 의해서 언표/암시된바 있는데, 그는 1830년 9월 29일, 친구인 플레트뇨프(1792-1865)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바라트인스키가 말하길, 약혼남들 가운데 행복한 건 오직 바보들뿐이라더군. 하지만, 생각이 있는 남자라면 미래에 대해서 걱정이 되고 불안하기 마련이라고. 이제까지는 <나>였다가 곧 <우리>가 되는 거니까. 그럴 듯한 농담이지!”



갑작스런 콜레라의 창궐 때문에 부득이 연기되긴 했지만, 나탈리아 곤차로바와의 결혼을 목전에 두고 있던 ‘약혼남’ 푸슈킨에게서 결혼, 즉 <나>에서 <우리>로의 이행은 바이런적 시인이었고, 돈후안적 시인이었던 그가 이전까지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경험이 될 것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푸슈킨에게 새롭게 제기된 과제는 (나의)‘자유’가 아닌 (우리의)‘행복’ 찾기였는바, <석상손님>을 끝낸 바로 다음날, 즉 1830년 11월 5일에 오시포바(1781-1859)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쓴다: “행복에 관해서라는 저는 무신론자입니다. 저는 행복을 믿지 않습니다. 다만, 친구들과 섞여 있을 때나 조금 양보해서 회의주의자가 될 따름입니다.”(원문은 불어)

물론 푸슈킨의 이러한 제스처는 아흐마토바의 지적대로, 행복의 상실에 대한 염려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행복을 두려워하는 심리에서 발원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요컨대, 푸슈킨 창작에 있어서 최전성기라고 할 ‘볼지노의 가을’은 <나>에서 <우리>로의 이행기였으며(그는 이듬해인 1831년 2월에 결혼한다), 행복에 대한 갈망과 불안(두려움)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다. ‘소비극 사이클’에 대한 중요한 연구논문에서 벨략/비롤라이넨(러시아 연구자들이다)은 이러한 상황에 처한 푸슈킨이 새롭게 맞부닥치게 된 ‘행복’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러시아적) 전통에서는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자신이 직접 찾아야만 했고, 그의 소비극 사이클은 그러한 모색 과정의 산물이라고 보았다.

그들에 따르면, <인색한 기사>의 ‘드라마적 연구’(푸슈킨이 ‘소비극’을 지칭한 용어이다) 대상은 중세의 위기이며, <석상손님>과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페스트 속의 향연>은 각각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동시대)낭만주의의 위기를 연구대상으로 한다. 그리하여 이 드라마 사이클의 주제는 (유럽)근대사이며, 그것은 <행복에서 불행으로>의 거대한 이행으로 특징지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거대한 이행’은 ‘소비극’의 연구대상이 되기에는 너무 거창하며, 두 연구자의 단언적인 주장은 너무 ‘고지식하다.’ 예브도키모바의 지적대로, 소비극 사이클의 시공간적 배경은 극도로 간소화돼 있고 일반화돼 있기 때문이다.

<석상손님>에 한정하여 보더라도, 르네상스라는 배경은 돈후안의 개인주의적 세계관에 근거한 과잉유추일 뿐 작품속에 직접적으로 지시돼 있지 않다. 벨략/비롤라이넨은 이 작품이 스페인 르네상스 드라마의 전통을 따르고 있는 걸로 보는데, 거기에 적합한 드라마는 티르소의 <돈후안> 정도일 테지만 이 역시 이미 17세기(바로크) 드라마이며(스페인 극문학사에서 티르소는 로페 데 베가와 칼데론 사이에 위치한다), 돈후안 신화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관점은 그것을 ‘근대 개인주의 신화’로 읽는 것이다(이언 와트의 <근대 개인주의 신화> 참조). 에브도키모바는 이러한 관점에서, 소비극 사이클의 연구대상이 ‘근대적 자아의 해부’에 있다고 보며, 네 작품의 주인공들은 특정한 개인이라기보다는 근대적 인간 ‘유형’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석상손님>의 경우에 문제가 되는 것은 ‘돈후안’이 아니라 ‘돈후안주의’라는 것이다.

벨략/비롤라이넨과 에브도키모바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분명 소비극 사이클의 네 작품은 ‘행복에서 불행으로의 이행’을 보여주며, 특히 <석상손님>은 무절제한 정념의 추구라는 ‘돈후안주의’의 비극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설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데, 거기에는 작가 푸슈킨의 자리가 제대로 고려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행복에서 불행으로의 이행’이라는 것은 근대사의 거대한 이행이기 이전에, 미래의 삶에 대한 예감과 각오를 담지한 푸슈킨 자신의 <내적 드라마>이며, ‘돈후안주의’의 운명이라는 것은 돈후안-시인 푸슈킨의 <자기 알레고리>이다. 물론 이 점에 대해서는 이 작품 연구의 '원조‘가 되는 아흐마토바가 충분히 지적했지만, 문제는 아흐마토바의 경우 이러한 내적 드라마와 자기 알레고리를 설명해줄 수 있는 텍스트의 매개항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텍스트적 매개항은 작가 푸슈킨에 의해서 (무)의식적으로 너무도 쉽게 주어져 있는바, 이미 앞에서 에피그라프에 대한 자세한 분석을 통해 그 존재감을 부각시킨바 있는 ‘레포렐로’가 바로 그것이다. 푸슈킨의 <석상손님>에 대한 그동안의 읽기/연구에서 레포렐로에게 충분한 주의가 두어지지 않은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지만, 한편으론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것은 마치 E. A. 포우의 단편 <도난당한 편지>에서의 ‘잃어버린 편지(missing letter)’에 해당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즉, 레포렐로가 잘 눈에 띄지 않은 것은 그가 너무 잘 보이는 곳에 있기 때문인바, 그는 <석상손님>의 ‘잃어버린 인물(missing character)’이다.

일반적인 견해와는 다르게, <석상손님>에서 푸슈킨의 시적 ‘자아(=에고)’를 대변하는 인물은 돈후안이 아니라 레포렐로이며, (프로이트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맹목적 욕망(혹은 충동)의 형상으로서의 돈후안은 그의 ‘리비도(이드)’를, 억압적인 ‘아버지’ 형상을 구현하고 있는 석상은 ‘초자아’를 각각 상징한다. 즉, <석상손님>은 푸슈킨의 <리비도-자아-초자아>가 <돈후안-레포렐로-석상손님>에 투사된 내적 드라마로 다시 읽을 수 있다. 아흐마토바가 지적하고 있는 바이지만, 소비극 중 (가장 길고 완성도가 높은 데도 불구하고) <석상손님>만이 유독 그의 생전에는 발표되지 않았다. 그 이유가 이 작품에 ‘푸슈킨 자신’이 너무 많이 투여돼 있기 때문이리라는 아흐마토바의 견해는 억측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구도를 전제한다면, 하인 레포렐로는 ‘위대한 주인’(=석상)도 ‘가련한 주인’(=돈후안)도 아니지만, 그들에게 의미를 부여해주는, 의미작용의 누빔점으로서의 ‘주인기표’이다...

여기까지가 서론이고, 작품의 에피그라프 읽기이다. 시간을 봐서, 나머지 부분들도 전부 올리든가 대폭 축약해서 올리든가 하겠다. 모스크바에는 아직 눈이 내리지 않았으며, 오후 5시가 넘으면 어둑해진다. 어제(일요일)는 모처럼 해가 났었지만, 논문의 초고를 쓰고 저녁 6시가 넘어서 인터넷카페에 갈 때는 ‘캄캄한’ 밤중이었다. 나에겐 아직 한 계절이 남아있다…

04. 11. 08./ 07. 09. 2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필라멘트 2007-09-23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에 너무 각인된 탓인지 푸슈킨의 다른 작품들이 낯설어 보입니다. 로쟈님이야 푸슈킨으로 박사학위논문을 쓰셨으니 그의 모든 작품들이 다 낯익겠지만. 간간히 올라오는 러시아 문학 포스트로 러시아 문학에 조금씩 젖어들고 있습니다. 로쟈님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해도 '전도'효과는 큰 듯합니다. 이 서재에 오면 늘 제 지식결핍에 '절망'하면서 동시에 분발하자는 '절감'을 또 느끼곤 합니다. 인문학 지식의 정보제공와 자극에 늘 빚지고 있는 느낌인데, 설마 빚독촉을 하시진 않으시겠죠. ㅎㅎ 아무튼 감사드리며 한가위 연휴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로쟈 2007-09-23 18:09   좋아요 0 | URL
러시아문학 포스트를 더 자주 올려야겠네요.^^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필라멘트님도 편안한 연휴가 되시길...
 

이번주에 나온 책들의 '라인업'을 보고서 가장 먼저 구입을 결정한 책 두 권은 영화평론가 김영진의 <평론가 매혈기>(마음산책, 2007)와 미국의 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플란의 <지중해 오디세이>(민음사, 2007)다. 관련 리뷰를 찾다가 카플란과의 인터뷰 기사가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역시나 조선일보에서 크게 다루고 있다). '극우 보수파'란 비판도 많이 듣는 듯하지만 좌우야 어찌됐던 간에 탁상공론파들과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이 그의 강점이다. 얼마전에 나온 <제국의 최전선>(갈라파고스, 2007)을 손에 들어보기도 전에 또다른 신작이 나온 것이어서 뻘쭘하긴 한데, 마침 '그리스 읽기'를 관심테마로도 정해놓은 터여서 <지중해 오디세이>를 먼저 들여다볼 것도 같다. 원로 영문학자 이상옥 교수가 번역을 맡은 것도 특기할 만하다.   

  • 조선일보(07. 09. 22) "국가 경영의 도덕적 책무는 개인의 도덕성을 넘는다”

    로버트 카플란(Robert Kaplan·55)은 골방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그를 만난 건 9·11 다음날 미국 메릴랜드 주도(州都) 애나폴리스의 해군사관학교 바로 앞 작은 집에서였다. 안온한 초가을 서정이 내려 앉은 집 바깥과 달리, TV·침대 말고 살림살이라곤 없는 집이 휑뎅그렁했다. 해사 방문 교수인 그는 해사 측이 마련해 준 이 집에 강의가 있는 매주 이틀만 머문다고 했다.



    ‘신보수주의자(neo-con)’로서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분쟁지역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국제문제에 대한 분석과 예측을 내놔 주목 받았고, 미국의 군사·외교 정책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다면 카플란을 읽으라”고 했고, “카플란에 매료된 조지 부시 대통령이 별장까지 그의 저서 ‘타타르로 가는 길’(Eastward to Tartary)을 가져가 읽었다”는 얘기가 있었다.

    ‘승자학’(Warrior Politics)은 뉴트 깅리치 미국 전 하원의장이 “9·11 이후 미국의 대응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려면 필독하라”고 권했다. ‘발칸의 유령들’(Balkan Ghosts)은 유고슬라비아 전쟁(1991~2000)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의 보스니아 군사 불개입 결정에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가 백악관에서 흘러 나오고, 클린턴이 겨드랑이에 끼고 있는 게 목격되면서 판매에 불이 붙었다.

    한때 ‘극우 국수파’ ‘주전론자(主戰論者)’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던 그는 ‘월간 애틀랜틱(Atlantic Monthly)’ 편집장을 지냈고 현재도 해외통신원을 맡고 있으며 뉴욕 타임스, 월 스트리트 저널, 워싱턴 포스트, 포브스에도 칼럼을 써왔다.

    이번 주 번역 출간된 ‘지중해 오디세이’(Mediterranean Winter·민음사)에서 그는 “2류 대학(코네티컷 주립대 영문과) 나와 대도시 신문사에 지원했다 계속 낙방해 버몬트의 허름한 지방 신문사에 다니다 사표 내고 지중해 여행을 통해 미래를 설계했다”고 털어 놓았다. 이스라엘 주둔 미군에서 1년간 복무했고, 그 뒤 동유럽·중동과 특히 에티오피아·아프가니스탄·이란·이라크·우간다·수단·시에라리온 같은 분쟁 지역을 찾아 다녔다.



    ―스물 셋에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유럽행 편도 비행기만 끊어 훌쩍 떠날 당시 무슨 생각이었나? 그래서 쓴 ‘지중해 오디세이’는 어떤 책인가?

    그땐 젊었고 색다른 방랑을 원했다. 당시의 취재와 기록이 저널리스트로서 밑바탕이 됐다. 나로선 열 번째 책이고, 정치색을 띠지 않은, 드물게 사적(私的)인 순수 여행서다. 기억과 기록으로 썼는데, 점차 뇌리에서 잊혀져 가고 있어 기록해 놓길 잘 했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에서의 군 복무 경험이 이후 삶에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병영 체험은 좋은 것이고, 그것이 나를 현실주의자로 이끌었다. 그곳에선 모두가 군 복무를 했고, 안보 상황이 무척 생생했다.”

    ―당신의 저서들에는 미래를 예측하는 대목이 많다. 누구를 또는 무엇을 단골 정보원 삼는가?

    “많이 읽고 많이 만난다.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독서가 가장 쉬운 방법이다. 미래는 반복되지 않지만, 역사를 알수록 예측은 쉬워진다.”

    ―당신은 도발적인 글로 종종 세상을 달궜다. ‘미국 정치·경제적 지도자들은 기독교 윤리를 내팽개쳐라’ 같은 주장이 그렇다.

    개인적인 도덕성과 회사 또는 나라를 경영하는 데 필요한 도덕적 책무는 구분돼야 한다. 더 큰 선(善)을 생각해야 하고, 개인적 도덕성을 뛰어 넘어야 한다. 저술가로서의 배짱(guts)이란 것이 즐거운 건 아니지만, 무얼 쓰더라도 비판을 각오해야 한다. ‘내가 이걸 왜 쓰는가’를 상기해야 한다. 남을 의식하고 조종 받을 바에 뭐 하러 쓰는가? 익명의 블로거·네티즌 공세가 최악인 이 시대에도, 책은 여전히 영향력이 있고 정의를 위해 존재한다.”

  • ―당신을 가리켜 국익 우선론자라고도 한다. 군대의 보호 속에 종군 취재를 하도록 한 미 정부 취재 방침(embedding program)을 옹호하며 ‘기자이기 앞서 한 나라의 국민이어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기자이자 미국 시민이다. 기자는 중요한 존재(somebody)다. 보통의 저자라면 진실만 전하면 되지만, 기자라면 자신의 관점을 전하는 것이고 그것은 미국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함께 보여준다는 의미다.”

    ―지난해 10월 ‘북한이 무너진 뒤(When North Korea Falls)’라는 칼럼을 월간 애틀랜틱에 게재해 화제를 일으켰다.

    칼럼 쓰기 앞서 한국사를 공부했고, 한국을 방문해 취재도 했다. 어딜 가든, 그에 앞서 그 지역 역사를 먼저 공부한다. ‘지중해 오디세이’ 때도 마찬가지로, 무작정 길을 나섰지만 그 전에 지중해 연안국 역사를 축적해 놓았다. 과거의 기록을 제대로 읽으면 현재의 풍광이 더 잘 보인다는 게 지론이다. 북한은 일반의 인식과 달리 이성적이다. 미사일 위협을 통해 긴장 상황을 만들고 미국과 1대1 협상을 하려는 건 고립된 북한 입장에서 매우 영리한 전략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졌던 한국인 인질 사태를 어떻게 보는가?

    “국제 협력에 있어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인질 사태에 관해선 국제적 공조가 중요하다.”

    ―미국은 제국으로서 정점에 올라 내리막길이 불가피하고, 중국은 통일 한국(Greater Korea) 시대 아시아의 유력한 승자가 될 걸로 내다봤는데.

    “미 제국이 쇠락할 것은 확실하다. 다만 그 시기가 언제일지 알 수 없다. 제2차 대전 후 미 해군이 사실상 지배했던 태평양만 해도 한·중·일·호주 해군이 강화돼 다극화 체제가 굳어가고 있다. 통일 한국은 식민역사 때문에 일본과 긴장 상태가 유지될 것이고, 정서적으로 중국과 가까워질 것이다.”

    ―두터운 고정 독자를 가진 작가로서 인기 비결은?

    “나는 어떤 누구도 만족시키려 글을 쓰지 않고, 절충자(gap-filler)가 될 생각도 없다. 이라크에 국한하지 않고 다른 저자가 건드리지 않은 세계의 모든 현안을 쓰려고 한다.”



    ―앞으로 저술 계획은?

    “2년 전 낸 ‘제국의 최전선(Imperial Grunts: The American Military in the Ground)’ 속편을 막 마쳐 가제본이 나왔다. 이제 다른 주제로 쓸 계획이다.”

    ―스스로의 기록과 장서가 방대할 것 같다. 글을 쓰는 서재를 어떻게 관리하는가?

    “매사추세츠 스탁브리지 내 서재는 산과 숲을 앞에 둬 정경이 빼어나다. 크지는 않지만 책과 동양에서 갖고 온 카펫들로 가득한 아늑한 공간이다. 책은 수천 권 있는데, 그리스·터키·중앙아시아 식으로 지역별로 자료를 분류해 뒀다. 어떤 주제를 쓸까 궁리할 때 항상 지도를 먼저 본다.”

    ―글은 하루 중 언제 쓰는가?

    “아침형 인간(morning person)이다. 아침 5시에 일어나 뉴스나 이메일이 쇄도하기 전까지 집중해서 쓴다.”(박영석 기자)

    07. 09. 22.


  •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딸기 2007-09-29 00:12   좋아요 0 | URL
    카플란의 새 책이 나왔다고 해서, 어쨌든 보기는 해야겠네, 하고 있었는데...
    저 인터뷰는, 카플란의 글에 대한 제 느낌이나 생각거리와는 너무나너무나 동떨어져 있군요.
    로쟈님은 카플란의 세계관을 어떻게 보시나요.

    로쟈 2007-09-29 00:25   좋아요 0 | URL
    김훈을 떠올리게 됩니다.^^ 강대국과 약소국의 차이가 있지만...
     

    중앙일보의 '글로벌 책읽기' 코너에 <뉴로맨서>의 작가(이자 <코드명 J>의 원작자) 윌리엄 깁슨의 신작 소설이 소개돼 있기에 옮겨놓는다(찾아보니 지난 8월에 나온 최신작이다). '세계의 책'에 올려놓지만 조만간 번역돼 나오지 않을까 싶다.

    중앙일보(07. 09. 22) [글로벌책읽기] 테러 공포·미래 불안 … 미국은 `유령의 나라'

    미국은 현재 유령의 나라다. 사이버스페이스라는 말을 만들어낸 것으로 유명한 윌리엄 깁슨의 신작 소설에 의하면 그렇다. “미래는 이미 와 있다”고 선언한 그는 과학소설이야말로 문학이 가진 전복적 힘을 잃지 않고 있다고 믿는다. 그는 말한다. “나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현재를 그리려고 한다. 과학소설이 쓸모가 있다면 그것은 인류가 나아갈 미래의 방향을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탐사하는 것이다. 지구는 이미 외계 행성이다.”



    공상과학소설가인 저자가 공상적 미래가 아닌 2006년의 미국을 배경으로 쓴 이 소설은 미국이 처한 방향 상실과 정체성 혼란을 잘 형상화하고 있다. 중심적 인물 없이 세 겹의 스토리라인이 서로 뒤엉키고 결말조차 열려있어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주요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홀리스는 전직 인디 락 밴드의 가수였지만 현재는 창간되지도 않은 잡지 ‘노드’의 프리랜서 기자다. 그녀에게 오밤중에 떨어진 취재 목표는 새로이 등장한 ‘위치예술’이다. 하지만 나중에 드러나는 실제 취재 목표는 뱅쿠버에 도착하는 정체불명의 화물 콘테이너의 위치다. 취재를 명한 막후 인물은 광고 재벌 빅 엔드로서 현재의 미국을 움직이는 유령같은 권력을 상징한다. 비정규직 기자가 존재조차 불확실한 잡지를 위해 아리송한 대상의 취재에 나서는 것이다.

    두 번째 스토리 라인은 CIA 요원으로 간주되는 브라운과 그에게 인질로 사로잡힌 마약중독자 해커 밀그림이 만들어간다. 브라운은 마약과 위협으로 밀그림을 조종해 그가 가진 KGB의 암호화된 인터넷 기술로 쿠바와 러시아 커넥션을 감시하며 콘테이너를 추적한다.

    한편 러시아에서 첩자 훈련을 받고 현재 미국에서 암약중인 쿠바-중국 정보마피아의 일원인 티토는 스파이 세계의 현란한 기술적 판타지를 보여준다. 아프리카 토착 종교의 믿음을 간직하고 있지만 카톨릭을 가장하고 있는 그는 이 소설에서 유일하게 자유를 향한 인간의 탐구를 대변한다.

    이 세 가닥의 이야기를 얽어매는 것은 온갖 종류의 최첨단 과학 용어들과 장비들을 현란하게 운용하면서 벌이는 추격전이다. 거기다 로스엔젤레스·뉴욕·뱅쿠버를 왕복하는 공간 이동을 통해 미국 전체의 문화적 지도를 정치지리학적으로 그려낸다. 첨단 정보기술에 관한 세부 묘사는 과학기술의 진보가 세상을 바꾸는 힘임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하지만 깁슨이 이러한 힘의 세계와 의미심장하게 대비시키는 것은 ‘위치 예술’이다. 위치 예술이란 특정 장소에서 특정 안경을 써야만 작품이 보이는 예술을 말한다. 사이버스페이스가 공간과 시간의 차이를 무화시켰다고 해서 주체적 시점의 고유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깁슨은 지구적 시장단일화가 세계관의 모델로 제시하고 있는 사이버스페이스의 일원화에 반대해 지리적 고유성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 ‘매트릭스’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합친 듯한 이 소설은 현재의 미국 문명에 대한 준엄한 비판으로 읽힌다. 테러 공포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방향 감각을 상실한 미국인들은 현재 출구 없는 미로 속에 갇혀 있고 유령들만이 활개치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의 원제 ‘유령의 나라(Spook Country)’에서 Spook는 유령이란 뜻이지만 스파이를 의미하는 속어이기도 하다.(이영준/ 문학평론가)

    07. 09. 22.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람혼 2007-09-25 03:25   좋아요 0 | URL
    안 그래도 윌리엄 깁슨의 신작 소식을 접하고 이곳 로쟈 님의 서재에서 그에 관한 소식을 다시 접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던 터입니다.^^ 기사 감사합니다. 풍성한 한가위 되시길~!

    로쟈 2007-09-25 10:10   좋아요 0 | URL
    제가 그 정도로 발이 빠른 건 아니고 우연히 소개기사를 읽었을 뿐입니다.^^; 람혼님도 편안한 연휴가 되시길...
     

    이번주 한겨레에 게재된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옮겨온다(http://h21.hani.co.kr/section-021162000/2007/09/021162000200709200678067.html). 이번이 세번째 연재인데, 매번 '초읽기'에 내몰려 쓰는 바람에 한두 가지씩 아쉬움을 갖게 되지만 그만하면 선방('선빵'이 아니라)이라고 자위하는 편이다. 이 글도 미처 주문했던 원서가 도착하기 전에 씌어진 것이다(책은 원고를 보내고 수시간 뒤에 받았다). 그런 식으로 글은 자신의 운명을 갖는다. 아무리 짧은 글이더라도.

    한겨레21(07. 09. 20) 부시 안에 빈라덴이 있다

    20세기가 10월 혁명과 함께 시작했다면 21세기는 9월 테러와 함께 막이 올랐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 이 스펙터클 어드벤처 뺨치는 테러사건과 그에 뒤이은 반테러 전쟁 때문에 현생 인류가 평온하게 지내기는 이번 세기도 이미 글러먹은 듯하다. 6주기를 맞이하여 백악관은 이렇게 말했다. “테러와의 전쟁은 군사적인 대결을 능가하는 것으로, 21세기의 중대한 이념투쟁이다.” 그리고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는 이렇게 보고했다. “국제 테러조직 알카에다를 완전 소탕하려면 앞으로도 수십 년이 필요하다.” 종합하면, 21세기의 이 중대한 ‘이념투쟁’은 우리의 생전에 끝나지 않을 것이다!

    과연 다른 길은 없는 것일까? 당장은 ‘그라운드 제로’에서 생각의 골을 더 깊게 파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 영국의 문학평론가 테리 이글턴의 <성스러운 테러>(생각의나무 펴냄)가 보여주고 있는 것도 그 ‘깊게 파기’이다. 저자는 ‘서구 문명사에 스며 있는 테러의 계보학에 대한 고찰’로 우리를 초대한다.

    ‘테러리즘의 의미’를 묻기 위해서 그가 먼저 확인해두는 것은 테러리즘이란 말이 요즘의 용례보다 훨씬 복잡하면서도 넓은 의미를 가졌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때의 테러리즘은 인류의 기원만큼이나 오래된 것이며 축복과 저주, 성과 속을 모두 의미할 만큼 오지랖이 넓다. 그에 따르면 “고대 문명에는 창조적인 테러와 파괴적인 테러, 생명을 부여하는 테러와 죽음을 불러오는 테러가 동시에 존재”했다. 이러한 테러의 양가성은 곧 신성(the sacred) 자체의 양가성이기도 하다.

    <성스러운 테러>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그 양가성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이글턴이 제시하고 있는,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바쿠스> 읽기다. 이 드라마는 ‘바쿠스’ 곧 디오니소스에 관한 이야기다. 이글턴이 ‘최초의 테러리스트 지도자 중 하나’로 지목하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는 알다시피 “포도주와 가무, 환희와 연극, 풍요와 과잉, 영감의 신”이지만 동시에 “탐욕적이고 폭력적이며 차이를 적대하는 획일성의 지지자”이다. 그의 이 양면적인 성격은 결코 분리되지 않는 성질의 것이다. 대저 이 디오니소스를 어찌할 것인가?

    <바쿠스>에 등장하는 테베(테바이)의 지도자 펜테우스는, 자기 어머니의 고향인 테베를 찾아와 여인들로 하여금 자신을 흥청망청 숭배하도록 한 디오니소스에게 적개심을 품고서 상식 밖의 폭력으로 대응한다. 그는 주신의 머리를 베고 쇠지레로 그의 성소를 부숴버리려고 했던 것이다. 심지어 무질서의 신 디오니소스가 화해를 제안했을 때조차도 이를 경멸하듯 거절하며 아예 신을 감옥에 가두어버린다. 화가 난 디오니소스가 지진을 일으켜 감옥을 나온 뒤에 무자비한 복수를 감행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에우리피데스의 극에서 이렇듯 서로 충돌하고 있는 디오니소스와 펜테우스 가운데 누가 테러리스트인지 판가름하기는 쉽지 않다. 펜테우스 또한 디오니소스와 똑같은 논리 및 감수성으로 전투에 나서면서 디오니소스 못지않은 광적 행태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우리는 <바쿠스>가 “분명 테러리즘과 부당한 정치적 대응 사이의 결정적 유사성을 강조하는 작품”이라는 이글턴의 평가에 공감하게 된다. 이 그리스 고전 비극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가?

    “에우리피데스의 위대한 극은 디오니소스를 신으로 인정하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그에게 정당한 대응을 하느냐의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킨다. 그 정당한 대응이란 바로 ‘경외심’(reverence)이다. 경외심이란 맹목적인 억압의 반대말이면서 디오니소스가 펜테우스의 타자가 아니라 펜테우스 안에 잠복한, 자아의 또 다른 중심이라는 걸 인정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즉, “내 안에 너 있다”라고 말하는 태도다. ‘테러 시대’의 예지는 먼 곳에 있지 않은 것이다.

    07. 09. 22.

     

     

     

     

    P.S. 칼럼에서 언급되고 있는 에우리피데스의 <바쿠스>는 두 가지 번역본으로 국내에 소개돼 있다. 하나는 희랍어 원전 번역 <에우리피데스 비극>(단국대출판부, 1999)의 '박코스의 여신도들'이고, 다른 하나는 영역본을 옮긴 <그리스 비극>(현암사, 2006)의 '바코스의 여신도들'이다. '바쿠스'는 물론 '디오니소스'를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다. 거기에 덧붙여, 천병희의 <그리스 비극의 이해>(문예출판사, 2002), 김상봉의 <그리스 비극에 대한 편지>(한길사, 2003), 그리고 사이먼 골드힐의 <러브, 섹스 그리고 비극>(예경, 2006)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참고문헌들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09-22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부시 사진 미치겠다.

    흥미로운 내용이예요 로쟈님, 감사합니다 :)

    로쟈 2007-09-22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흥미로운 책입니다.^^
     

    지난주에 출간된 발리바르의 <대중들의 공포>(도서출판b, 2007)에 대한 한 서평을 옮겨놓는다. 책은 만만찮은 두께 때문에 얼른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지만 부분적으로 몇 개 장 정도를 읽어보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도 싶다. 그런 로드맵을 짜는 데 미리 참고해둘 만한 서평이다.

    경향신문(07. 09. 22) 폭력을 넘어서는 법 ‘시민인륜’

    아포리아(aporia)는 논리적 궁지를 뜻한다. ‘대중들의 공포’를 읽을 때 가장 많이 눈에 띄는 용어들 가운데 하나가 아포리아이다. 발리바르의 친구이자 스피노자 전문가인 마트롱은 언젠가 발리바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은 매년 새로운 아포리아를 발견하려 한다. 스피노자의 대중들 개념에는 아포리아가 있다, 민주주의에는 아포리아가 있다, 이런 식으로. 그건 미친 짓이다.”

    이 에피소드는 역설적으로 발리바르의 철학하는 핵심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체계적인 통일성과 정합성을 전제하거나 새롭게 구축하려 하지 않고, 통일적인 체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 아포리아를 찾아낸다.

    아포리아를 찾는 과정은 사유가 어디까지 근본적일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도정이다. 먼저 어떤 사유가 닦아놓은 논리의 길을 끝까지 따라가야 하고, 그 논리의 끝에서 마주하게 되는 막다른 골목의 정체를 확인해야 하며, 또한 이 막다른 골목에 도달하게 된 근본 전제와 가설을 복기해야 한다. 여기에 이를 때 비로소 아포리아 너머에 있는 새로운 사유의 길이 열릴 수 있다. ‘대중들의 공포’는 이 고통스럽고 지난한 근본적인 사유의 도정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탁월한 성과물이다.

    이 책의 문제 틀은 ‘대중들의 공포’라는 말 속에 녹아 있다. 발리바르가 고민하는 철학의 대상은 계급이 아니라 대중들이다. 이는 경제주의적 계급론에 대한 비판인 동시에 ‘대중들이 역사를 만든다’는 마르크스의 언급을 구체적으로 해명하려는 시도이다.

    또한 대중들은 과학적인 적합한 인식이 아니라 진리와 허구가 혼재되어 있는 이데올로기를 통해 현실의 갈등을 인식하고 실천한다는 점에서, 이런 문제 틀은 필연적으로 이데올로기에 대한 탐구를 함축한다. 여기서 ‘대중(mass)’이 아니라 ‘대중들(masses)’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하는데, 이는 대중들이 단일한 주체(단수)가 아니라 복합적인 양면성(복수)을 담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대중들의 양면성을 표현하는 말이 ‘대중들의 공포’이다. 스피노자에서 유래하는 이 용어는 대중들이 느끼는, 그리고 불러일으키는 공포를 가리킨다. 이는 1차적으로는 민중의 능동성과 진보성을 신화화했던 과거 민중론이 지닌 한계와 유사하게 대중들의 일면적인 봉기성만을 특권화하는 논의에 대한 비판이다. 대중들은 능동적인 만큼 수동적이고, 진보적인 만큼 보수적인 양면성을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함의는 대중들의 역량이 갖는 잠재적 폭력성에 관한 것이다. 대중들의 힘은 때로 폭력과 구별하기 어려운 형태로 나타난다. 사회의 구조적 폭력에 공포에 느끼고 이를 제거하려는 대중들은 오히려 대항폭력을 통해 대중들에 대한 가공할 공포를 초래하여 사회의 변화가 아니라 붕괴로 나아갈 수도 있다.

    발리바르가 이런 양면적인 긴장을 전환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 반폭력 정치이다. 반폭력 정치에 대한 사고는 이 책의 가장 독창적인 대목이라고 할 수도 있는 시민인륜(civilite) 개념으로 정교해진다. 시민인륜은 ‘시민권’과 ‘사적이고 공적인 윤리’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결합한 신조어이다. 이 개념은 대중들의 폭력이 동일성(identity)과 결부되어 있으며, 따라서 공동체(국가) 내부에서 증오와 잔혹으로 나아가는 동일성들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한에서 해방의 정치나 변혁의 정치가 가능해질 수 있다는 문제 의식을 담고 있다.

    물론 이상의 간략한 정리는 전체적인 문제 틀에 불과하며, 이 책에는 훨씬 풍부한 논의들이 담겨 있다. 그것은 근본적인 사유가 갖는 전복적인 힘을 예증한다. ‘대중들의 공포’는 구태의연한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도전이고, 최근 주목 받고 있는 네그리, 푸코, 들뢰즈 등의 철학과 쟁점을 형성하면서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려는 시도이며, 무엇보다 빈곤과 잔혹이 공존하는 오늘날의 정세를 돌파하려는 이론적 실천이다. 이 두툼한 책이 옮긴 이들(최원·서관모)의 오랜 정성과 노력으로 우리 앞에 당도했다.(김정한|서강정치철학연구회 회원)

    07. 09. 22.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eEe 2007-09-22 22:58   좋아요 0 | URL
    그 밥에 그 나물인 (것 같은) 김정한 씨가 서평을 써서인지 좋은 말만 해났네요.

    로쟈 2007-09-23 00:06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책을 미리 읽어본 독자가 많지는 않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