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이슈메일
이스마엘이라고 불러주게
아니 이쉬미얼이라고 해두자
무엇 하나 확실한 게 없구나
흰고래 모비딕은 누가 쫓는가
에이해브 선장이 등장하자
아합 선장이 뒷갑판에 나타난다
에이헙의 한쪽 다리는
향유고래를 갈아서 만들었다
에잇, 누가 누구를 쫓는 것인가
나는 일개 선원
이 세상에 노예 아닌 자가 있느냐고
나는 묻는다
이슈메일이 묻는다
바다로 나갈 때면 우리는
돛대 앞에 서 있거나
앞갑판으로 내려가거나
돛대 꼭대기로 올라가야 한다
우리는 일개 독자
늙은 선장이 아무리 후려갈겨도
참아야 하듯이 출항한 다음에는
모든 것이 숙명이다
한 번 펼친 책의 뱃머리는
다시 돌리지 못한다
무엇이 우리를 잡아끄는가
고래잡이가 어떤 건지 알고 싶다고?
네 이름을 이슈마엘이라고 불러주마
이슈메일이라고?
이쉬미얼은 어디 간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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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인생은 마라톤이라고
한 번도 뛰어본 적 없는 마라톤이 인생이면
나는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인생
작별도 필요 없는 인생

하지만 인생이 마라톤 같은 것이라면
나는 인생 같은 걸 살아보았다
터벅터벅 걸어가는 일이 잦았어도
어제도 걷고 오늘도 걷고

그렇지만 걷는 걸로는 충분하지 않다
마라톤은 그게 아니지
마라톤전투의 승리를 전하고
숨을 거둔 아테네 병사를 생각하자

쉼없이 달려 한마디 전하고 쓰러지기
마라톤의 정신은 쓰러지기의 정신
장거리의 정신이 아니라 탈진의 정신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에야 마라톤

그리고 전해야 할 한 마디 승전보
그게 승전보가 아니어도 좋다
마지막 숨과 바꿔서 토해놓을 한 마디 말
평소에 할말이 많았다면 한 권의 책

마라톤은 목숨을 건 달리기와
한 마디 말의 콤비네이션
가끔 숨이 찰 때마다 나는
마라톤 벌판을 떠올리고
나의 마지막 책을 상상한다

누군가 인생이 마라톤이라고 말할 때
한 번도 뛰어본 적 없지만
나 또한 마라토너였다고 털어놓으며
쓱 꺼내서 건넬 한 권의 책

작별의 말은 하지 않겠다
바라건대 제때 탈진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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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7-09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때에
한마디의 말(한권의 책)을.
누구나 원하는 인생의 마지막 날.
그러나 아무나 누릴수 있는 것은 아닌듯.
때를 못맞추거나
한마디의 말을 전하지 못하거나.
 

휴일 근무는 야간조
나는 오후 4시에 기상하여
카페로 출근한다
방탄소년단이 미리 와 있다
휴일이 없는 건 마찬가지구나
너희는 노래를 부르고
나는 책을 읽고
나는 야간조의 자세로 책을 읽고
하지만 퇴근은 주간조와 함께
휴일 근무수칙에 따라
나는 집에서 야근할 테지
이런 건 방탄이 필요 없을 테지
어디서건 총알이 날아올 거 같진 않아
하지만 어느덧 세뇌되어
나는 방탄소년단을 믿는다
카페는 참호가 되고
야간조는 야간전투조가 되어
나는 출근하다 말고 투입된다
나는 전투적으로 책을 읽고
가끔 신음소리를 듣는다
헤밍웨이와 함께 구급차를 운전하고
생텍쥐페리와 함께 야간비행에 나서고
나는 다리에 부상을 입고 쓰러지거나
정찰비행에서 귀환하지 않는다
이것이 전투가 아니면 무엇인가
흥얼거리다
책을 읽다가 죽는 것도
전사라고 믿는다
방탄소년단과 함께 책을 읽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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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7-08 19: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근중 전투에 끌려나가
폭탄(책) 맞아(읽다가) 전사라.
책은 도끼도 되고 폭탄도 되고
책도 샘도 드라마틱하다는~

로쟈 2018-07-08 20:46   좋아요 0 | URL
드라마틱한 책들에 얹혀 있을 뿐이죠.^^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날인 것처럼
그렇게 살 수만은 없다
피곤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잠이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고
그렇게 오전시간을 보내고서야
오늘 하루가 인생의 마지막날이라니
오 하느님!
오늘이 그날이 아닌 당신의 축복
지리한 장마 사이 햇볕처럼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건 아무일 없는 하루
좋은 햇볕에 이불 빨래를 널면서
다시금 당신의 은총을 생각한다
완벽하지 않은 날
속 편하게 빨래를 널 수 있는 날
이 순간이 마지막 순간이어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어서
조바심치지 않아도 좋은 날
그런 날은 일이 많아도
아무일 없는 날처럼 시간이 흘러간다
밀린 빨래에 세탁기만 여러 번 돌아가는 날
기분으로만 일하는 것 같은 날
나는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날이 아니어서
불현듯 흐뭇하고 축복에 감사한다
사랑의 순간이 아니어서
짜릿하지도 안타깝지도 않은 날
점심에 짜장면을 먹어도 아쉽지 않은 날
하루종일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 날
이런 날이 오늘이어서
오늘은
인생의 마지막날이 아닌 게 분명하고
오늘은 축복받은 날이 분명하고
오늘은 기념할 만하다
대체 얼마나 많은 날들이 아직 남은 것이냐
오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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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7-08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체 얼마나 많은 날들이 아직 남은 것이냐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꾸역꾸역...드라마 대사가 생각나고.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체하듯 살다보니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 아니여서
축복이란걸 자꾸 잊어 버리네요.

로쟈 2018-07-08 20:47   좋아요 0 | URL
마지막날은 뭔가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죠. 어릴 적 생일날처럼...

로제트50 2018-07-09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두산 폭발이 일어나지 않아서
그가 아직은 혈액투석 받는 단계가
아니어서
감사하고 행복하게 살아요*^^*
지구, 인생 마지막 하루라도
리츄얼 하면 된거죠^^!
 

아침에 체리 한 종지를 먹고도
기운이 나지 않는다
한 접시를 먹어야 했나
아니면 한 사발
아니면 체리라고 먹은 것이 앵두였나
작은 건 앵두고 큰 건 체리라지만
자두에 비할 바는 아니다
각자가 자기 수준으로 먹는다
앵두생활자, 체리생활자, 자두생활자
그런데 버찌와 체리는 뭐가 다른가
벚나무가 동양종과 서양종이 있어 다르단다
국내산은 버찌고 수입산은 체리인가
더 달달한 게 체리여서
우리는 주로 체리를 먹고
나도 아침에 체리를 먹은 것이지만
여물이 아니어서 쟁기질할 기운이 없다
그럼 시는 무슨 기운으로 쓰는가
없는 기운으로 쓰는 게 시
체리 먹고 쓰는 시
누구는 이슬만 먹고도 쓴다지만
나는 그 수준에는 이르지 못해
꼬박꼬박 체리를 먹는다
그리고 이렇게 값을 치른다
체리 먹고 쓰는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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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7-07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리__20대 딸아이가 지금도 말해요- 엄마, 미국에서 먹은 체리,
정말 맛있었는데!
딸 6학년때 뉴욕을 갔었지요. 한낮의 여름 센트럴파크와 미술관을 찾아
걸어다니던 때. 거리의 가게에서 산
체리 한 팩. 체리가 원래 이렇게 달고
맛있냐며 감탄했던 기억이 나요^^*
쌤! 체리로 기운 나나요?^^
여름엔 <맘스 터치 삼계탕>이죠!
Try! *^^*


로쟈 2018-07-07 15:07   좋아요 0 | URL
요즘 체리가 다 수입산이라는데, 신맛이 없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