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태양탐사선 터커가
아니 파커가 길을 떠났다
터커가 엉덩이를 세게 차주었고
파커가 7년간의 장도에 올랐다
냉정히 생각해보려 해도 뜨거운 여정이다
미안하게도 파커의 일은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다
파커는 되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무얼 탐사하러 지구에 왔던가
너무 오래돼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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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가 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초음파로 그대를 감지한다는 건
그대를 보지도 만지지도 않고
메아리로 그대를 감지한다는 건
박쥐도 그런 기분일까
입을 틀어막고 하루종일 그대를 부르는
더이상 아무 소리도 새어나오지 않을 때
비로소 초음파를 내보내는 것일까
그때 느껴지는 것일까
메아리가 떼지어 되돌아온다
그대 이름이 사정없이 온몸을 후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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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프라이 2018-08-21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파리나 잠자리처럼 입체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보면
어떻게 보일까요 ~~

로쟈 2018-08-21 23:01   좋아요 0 | URL
정신없어 보일 거 같은데요.^^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여우가 말했어
눈에 보이는 건 껍데기뿐이야

너를 만나도 너를 보지 못하고
나는 딴데만 보았지
너를 보고도 못 본 체했지
너는 어느새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너를 보았지
보이는 건 모두 바스라질 것 같아서
나는 꿈에서도 가끔만 너를 보았지

이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너는 어디에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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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파제를 달려가던 바람이 기억나
바람은 누굴 보고 달려갔던 것인지
세찬 파도가 집어삼킬 듯 밀려오던 날
그럼 바람은 어느 방향으로 달려간 건지
그래도 달려나가던 바람 소리를 들었어
바람은 달려오기도 하고 달려가기도 하나
물어보면 바람의 변덕이라고 하겠지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던 바다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와 소나기를 뿌리고
바람은 어느 새 비바람으로 돌변했지
바람은 마음먹은 게 있다는 듯이 내달렸지
방파제의 콘크리트 바닥을 쿵쿵 울리며
어쩌면 기합소리도 냈는지 몰라
방파제 아닌 건 모두 다 날려버리려는 것처럼
바람은 방파제를 내달려가고
그런 바람이라면 나도 온몸으로 맞고 싶었지
비바람에 흠뻑 젖고 싶었지
방파제를 내달리는 바람이 되고 싶었지
여기가 세상의 끝이라고 해도
뒤도 안 돌아보고 내닫는 바람이 되고 싶었지
바람은 귀가 없어 듣지 못할까
바람은 바람의 미친 소리를 듣지 못하는구나
그런 바람소리를 들어주고 싶었지
방파제를 달려가는 바람에게 이유가 필요했을까
바람의 사생활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세상의 모든 방파제야
바람이 맨발로 뛰쳐나갈 방파제
내달리는 바람과 함께 몸을 던지고픈 방파제
바람의 발작이 느껴져
바람이 오고 있어
바람이 될 테야
방파제를 달려가는 바람
그래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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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넘어 가자
여름밤 매미 소리도 잦아든다
잠시 쉬는 것도 같고
소리 죽여 우는 것도 같다
너도 열대야겠지
너도 잘못 산 일이 있겠지
너도 흘려버린 인연이 있겠지
소리 죽여 우는 소리는
알아들을 것 같다
나도 숨죽여 시를 쓴다
열대야가 아니면
언제 숨죽이며 땀을 흘릴까
네겐 이 여름이 마지막 계절인가
나도 이번 생이 마지막이야
우리는 다시 만날 일이 없지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인연
너는 쉬다가도 다시 울고
나는 물 한 잔 마시고 다시
숨죽여 시를 쓴다
어쩌면 네가 쓰고
내가 우는 건지도 모른다
너는 바짝 시를 쓰고
나는 숨죽여 운다
네가 울면 나는 쓰고
네가 쓰면 나는 운다
우리가 무얼 더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네게 내일이 남아있다면
하루치의 울음이 더 남아있다면
나도 힘을 아껴두어야지
너는 한껏 소리 죽여 울고
나는 또 숨죽여 시를 쓰고
여름밤 우리는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인연을 완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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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8-07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대야로 새벽에 잠드는 날이 이어지면서
내일치 힘까지 당겨 쓰는 하루하루네요
그럼에도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시를 쓰고
하루치 값도 못하고 사는 못난 1인.

로쟈 2018-08-07 22:40   좋아요 0 | URL
요즘은 그냥 버티는 게 몸값하는 것 같아요.~

로제트50 2018-08-07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연을 향한 감정표현은 울음인가 봐요. <서역의 달은 서쪽으로 흘러간다>에서 가장 감동받은 부분이
버스로 사막을 지나는 장면이었는데 그 사막에서 김영현은 울었다네요...
작가의 또 다른 수필에서
초목에 대한 감성이 저랑 많이 닮아서, 그에게 남다른 친밀감을 느낍니다.
지난 7월말은 화성이 지구에 가장 가깝게 접근한 날이라 하죠.
이젠 밤하늘이 정답게 보여요^^
칼 세이건에 대한 단상 등이 덧붙여져서요...
이번 달 로쟈쌤 강의 일정표 보고 살짝 놀랐어요. 부산에서 강의하시는 날이
제가 며칠간 휴가 보내고 올라오는 날.
또 제가 사는 동네에 쌤이 오시네요@@ 강의 마치시는 시간이
녹초가 돼 퇴근하는 시간^^
아, 제가 생각하는 인연은 일방적이네
요^^;;
이또한 이 시대의 반영이겠지요*^^*

로쟈 2018-08-07 22:49   좋아요 0 | URL
네, 언젠가 인연이 닿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