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도 사생활이 있다지
사람들이 볼 때는 근무시간
인형은 인형답게 눈을 깜박이고
인형답게 북치고 춤추고

근무시간에는 군것질을 하지 않아
한 끼도 안 먹는 게 근무수칙

인형은 인형답게 눈알을 빼주고
근무시간에는 팔도 떼주고
미소지으며 다리도 떼준다네
한결같은 표정으로 인형은

영국여왕의 근위대처럼 절도를 지키지
근무시간에는 말이야

특수한 신경에다 특별한 내장에다
인형은 사람답지 않지
인형의 영혼은 용궁에 있지
인형의 가족은 아마도 별궁에 있지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만
인형은 기지개를 켜지
인형의 아침이 밝으면
인형은 뉴욕의 영국인이 되지

사람들이 보지 않을 때
인형은 인형답지 않지
인형은 꿈을 꾸고
인형은 군것질을 하고

달리는 차에도 뛰어들고
옥상에서도 뛰어내리고
인형은 제대로 미쳤지
휴일의 인형은 말릴 수 없어

인형도 사생활이 있는 거지
그런데 누가 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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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을 지날 때는 언제나
대전발 0시 50분
그 시각에 떠나본 적도
지나가본 적도 없지만
나는 시계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대전은 0시 50분에만 떠날 수 있다
누구를 떠나는지 잊었어도
어디로 떠나는지 알지 못해도
시각은 정해져 있다
모두가 잠들어 고요한 시간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누구와 작별하고 떠나는지 묻지 않는다
그대로 떠나고 또 떠난다
그렇게 떠났건만
이제 또 지난다
대전에는 머물 수 없다
시계를 0시 50분에 맞춘다
그대가 떠난 곳은 대전이 아니고
내가 떠난 곳도 대전이 아니다
대전은 무엇인가
대전을 지나가야 한다
대전은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대전을 지난다
나는 대전을 지나갔다
지금은 0시 50분
나는 대전을 떠나지 못한다
대전은 왜 나를 붙잡지 않는가
나는 기억되지 않는다
나는 누구를 떠나는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누가 떠난 것인가
나는 누구를 떠난 것인가
그렇게 떠날 수밖에 없다
대전발 0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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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7-13 2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분~~~~~~
이시 보자마자 가사가 술술
두동생에 밀려 시골 친할머니한테 맡겨줬던 그시절
할머니의 18번이였었나~
바바리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아빠가 절 데리러 오셨더랬죠
(목포행 완행열차를 타고 오셨어야 딱인데 ㅋ)

로쟈 2018-07-14 15:20   좋아요 0 | URL
네, 제목을 대전블루스로 달려고 했음. 5월에도 한번 쓰려고 했다가 안 됐는데, 어제는 마무리.~
 

말미잘의 장례식이라고
적어내려가던 시를 날렸다
고작 몇 줄이라도
말미잘이 화낼 일이다
말미잘의 결혼식 아니고 장례식이다
특별한 날 말미잘은 아침부터 들뜨고
말미잘은 진작 초청자 명단을 작성했지
이미 죽은 것들은 사절이지
귀신 사절
멍게와 성게는 기필코 와야 하지
언제부터 단짝이었나 멍게와 성게
그리고 말미잘이 있었지
네가 바다의 꽃이었잖니
바다의 아네모네
그런 게 학창시절이던가
너네는 요즘 식당에도 나가더라
내가 마산에서 멍게비빔밥을 먹었어
제주에서는 성게비빔밥이지
해삼은 요즘 어떻게 지내니
전복만큼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우리가 명동에도 진출한 적이 있던가
바닷속처럼 수족관도 활보하고
그때가 좋았지
우리도 멋졌어
이렇게 모이니 해물 장례식인가
말미잘수육에 말미잘매운탕이라니
말미잘도 이런 날이 오는 거지
붕장어와 함께 듬뿍 끓으면서
여름보양식 되는 날
우리 기쁜 젊은 날
다 보내고 나면
말미잘의 장례식
말미잘은 잠을 설치고
말미잘은 특별한 날을 맞이하지
그리고 나는 이런 기념시를 쓴다
말미잘이 기쁜 날 나도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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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7-13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물장례식 초청자 명단에 소주가 왜 빠졌나 했더니
말미잘은 아직 식당에 진출하지 못~ㅋ
말미잘수육 말미잘매운탕은 무슨 맛일지 궁금.

로쟈 2018-07-14 15:23   좋아요 0 | URL
소주는 해물이 아니어서.~ 기장의 별미라네요.
 

이대로 시간이 멈춘다면
심장도 따라 멈추어야겠지
손끝도 멈추고
시도 여기까지 이대로 멈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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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제트50 2018-07-13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일에 맺음은 있겠죠~
전 일생에서 2번 경로이탈이 있었죠.
초등 때 2년 30대 후반에 11년.
그 시기가 하나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힘들고도 좋았던 기억이 제게 강함을
주었습니다. 제 여럿 아이디 중 하나인 로제트도 이 시기에 만든 거죠. 로제트는 식물의 겨울나기 형태죠^^ 20여년만에 시작한 시쓰기는 로쟈쌤에게 어떤 의미가
될런지요~~^^

로쟈 2018-07-13 09:51   좋아요 0 | URL
여러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입막음용이죠. 폭발하지 않게.~

two0sun 2018-07-13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멈추다를 끝나다로 읽었다
다시 읽어보니 멈추다이다
멈추다가 끝나다보다 슬퍼 보인다
시의 마지막 한마디를 미쳐 쓰지 못한것처럼
이대로 시간이 끝난다면 한톨의 미련도 없으련만
이대로 시간이 멈춘다면...
한번쯤 뒤를 돌아봐야 할것처럼
 

게으른 달팽이의 노고를 상상한다
느리게 느리게 기어가는 달팽이
보다도 더 느리게 전력을 다해
느리게 기어가야 게으른 달팽이
전력을 다한 게으름이란 무엇인가
남보다 절대로 앞서서는 곤란한
이 곤란한 게으름을 등에 지고
게으른 달팽이는 일생을 다해
기필코 느리게 기어간다
가기는 가는 것인지 기진해가는 것인지
그래도 꿋꿋한 자세로
게으른 달팽이는 한 뼘의 세월을
전력을 다해 통과한다
서서히 느려터져가는 달팽이
온몸이 부서져라 느려터져가는
궁극의 게으름을 향한 사투
오늘도 느리게 느리게 기어가는
게으른 달팽이의 노고를 상상한다
고단한 여정을 마칠 그날까지
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미친듯이 느리게 기어가는 달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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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7-13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겨운 달팽이네요.
한뼘의 세월을 전력을 다해 통과하는 달팽이 화이팅!
전력을 다해, 온몸이 부서져라, 미친듯이 해본것이
있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로쟈 2018-07-13 09:50   좋아요 0 | URL
달팽이보다야 다들 빨리빨리.~